볼니와 윤영
- 작성일 2022-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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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코문학창작기금 - 소설(중단편)]
볼니와 윤영
최유안
헬무트 볼니 씨는 1944년 8월 2일 새벽 다섯 시, 독일령 슐레지엔 브레슬라우에서 태어났다. 그는 사람들에게 자신이 태어난 ‘브레슬라우’가 공업 도시었다는 사실을 강조해 말하곤 했다. 볼니 씨가 태어날 당시에는 나라 전체를 먹여 살릴 정도로 중요한 도시였다는 거였다. 그것은 그의 정체성을 스스로 결정짓는 일종의 의식이었다. 자신이 폴란드의 브로츠와프가 아니라 독일의 브레슬라우에서 태어났다고 말하는 것, 동쪽 지방 억양이 드러나도록 굴림에 힘을 주는 그의 독일어 문장, 집안 곳곳에 걸린 1900년대 중반 고향의 모습을 찍은 흑백 사진들과 노란색과 파란색이 대치하듯 배열된 슐레지엔 주의 깃발. 그것들은 볼니 씨에게 자신의 근본을 알려주는 표징 같은 것이었다.
윤영을 처음 만났던 몇 년 전에도 그는 낯선 이십 대 아시아인인 윤영에게 자신이 나고 자란 그곳을 자랑삼아 이야기하는 자신만의 의식을 지켰을 것이다. 지금은 폴란드 땅이 되어버린 슐레지엔이라는 곳을 아느냐고, 나는 그곳에서 태어났지만 안타깝게도 그곳의 토양을 거름 삼아 자라지는 못했다고. 그럼에도 프로이센의 꽃과 철이라고 이름 지어진 그곳을 죽는 날까지 기억할 거라고. 그것은 자신이 누구인지 스스로 잊지 않게 만드는 절체절명의 행위라고. 윤영이 기억하지 못하지만 그는 아마 그렇게 말했을 것이다.
윤영의 머릿 속에 남아있는 그의 첫 모습은··· 지나칠 정도로 한국의 전쟁 역사에 대해 집요하게 묻는 그의 얼굴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출생 직후 벌어진 일을, 그는 마치 엊그제 보고 들은 듯 큰 목소리와 점점 굵게 패는 주름과 급한 손짓으로 표현해 내곤 했다. 죽어 가는 시체들, 널브러진 빵 쪼가리 위로 뛰어다니는 쥐떼들. 그 당시 한국은 사정이 어땠는지 그는 윤영에게 여러 번 물었다. 물론 그 시절 한국에 대해 윤영은 아는 바가 전혀 없었다. 그렇다고 국사책에서 봤던 6.25 전쟁을, 마치 직접 겪어 본 역사처럼 생생하게 이야기해 줄 수는 없는 일이었다. 게다가 윤영은 볼니 씨만큼 역사적인 사람도 아니니까.
사실 윤영에게 한국의 역사에 대해 이야기해 줄 수 있는 수준의 독일어 실력이 없었다는 것이 큰 걸림돌이었을 것이다. 7년 전의 윤영은 ‘고객님, 조식 시간이 끝났습니다.’ 라든지 ‘오늘 자몽 주스가 좀 많이 남았네요.’ 라든지,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같은, 유치원생들도 알아들을 정도의 독일어만 할 줄 알면 생활에 불편함이 없었으니, 역사와 문화를 논하는 독일어란 윤영을 피로하게 만들기만 했을 것이다. 아무래도 그때 윤영은 볼니 씨의 말을 그가 원하는 수준으로 알아들었을 리가 없다.
돌이켜보면 그것은 어쩌면 의사소통의 본질적 속성에 기인한 건지도, 그러니까 완전한 소통이란 애초에 불가능하기 때문인 탓인지도 모른다. 볼니 씨가 모국어 뿐 아니라 동유럽의 외국어들을 자유자재로 구사한다 한들, 그가 언어에 천부적 능력을 갖췄다 한들, 윤영이 쓰는 언어를 단 하나도 모르는 상황이라면 더욱 그랬다. 둘은 어차피 같은 장소에서 같은 공기를 마시면서도 끊임없이 자기 논리를 이야기해야 하는 발화자였고 그건 둘 간의 반복적이고 무차별적인 오해를 의미하는 일이었다. 소통을 위해 끊임없이 의미를 만들어 내는 언어라는 게 얼마나 무의미한지. 그 시점에 윤영은 그런 생각을 자주 했었다. 그것은 언어에 대한 회의였으며 감정적 방패이자 자존심이었다. 물론 그런 생각은 한국으로 돌아가 모국어만 구사하며 살았던 몇 년 사이 모르는 새 희미해져버렸다.
그런데 윤영이 독일로 생활의 터전을 아주 바꾸기로 결심한 지금의 시점에 볼니 씨는 다시 그때의 기억을 되돌려 놓으며, 어째서 윤영이 그런 결심을 하게 되었는지부터 묻고 있었다.
대체 어째서, 자신의 뿌리를 스스로 놓아 버리는 이 미련한 짓을 하게 되었는지.
그것은 윤영으로서는 참으로 난감한 질문이었다. 윤영은 이미 한국에서의 취업 활동을 그만두고, 서울의 전셋집에서 보증금을 빼 독일에 정착하는 비용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지금까지 한국에서 살았던 것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삶을 살아 보겠다고, 자본주의의 논리에 휘말리지 않고 나의 길을 찾아가보겠다고, 완전히 새롭고 낯선 일을 시작하겠다고 마음먹은 참이었기 때문이다. 한 번도 가 보지 않았고 한국 사람들은 많지만 그렇다고 정착하기 쉽다는 뜻도 아닌데다 별다른 로망도 없는 북미보다 유럽의 어느 곳이면 이주를 마음먹어 볼 수 있을 것 같기도 했다. 그곳이 유럽의 어느 장소여야 한다면 구체적으로는 당연히 독일이어야 했다. 볼니 씨와 그의 부인 헤나와 윤영보다 대여섯 살쯤 많은 그들의 아들이 있는, 그러니까 이미 여섯 달이나 홈스테이를 하며 익숙해진 바로 그 집.
그래서, 글쎄. 어디서부터 말을 해야 하나. 한국이 싫어서?
다음 날 아침, 윤영은 볼니 씨의 집 이층 복도 끝에 있는 작은 방의 침대에서 일어났다. 몇 시인지도, 며칠인지도 굳이 알 필요가 없었다. 외부의 자극이 멈춰 버린 기이한 느낌. 윤영은 눈을 뜨고도 한참을 움직이지 않고 다만 파동처럼 밀려드는 것들을 몸으로 체득하듯 받아들였다. 호오의 경계를 벗어난 것 같은 느낌, 경계의 언저리에 주저앉아도 좋을 것 같은 느낌, 세상에 발 닿지 않은 것 같은 낯설고 온유한 감각. 그것은 분명히 한국에서 사는 내내 잊고 있던 것들이었다. 앞으로 벌어질 일들에 희망도 절망도 요구하지 않는, 무기력마저 마음을 가볍게 하는 그런 감정, 감정이 없는 감정.
시차 적응에 실패해 두 번이나 깨어났던 윤영은 스마트폰이 알려주는 로밍 시간을 확인하고는 드디어 아침이 되었다는 사실이 반가웠다. 침대 위 어둠 안에 가만히 앉아 있다가 팔을 뻗어 블라인드를 천천히 끌어올렸다. 철제 블라인드가 드르륵거리며 서서히 빛을 방 안쪽으로 흩뿌리기 시작했다. 부연 빛이 천천히 차오르며 밤의 먼지들이 공중에서 미세하게 부유했다. 고요하게 방을 채우는 먼지들을 보며 안정을 실감한 적이 있었나. 기껏해야 먼지에 감동하고 있다니. 몇 달 전만 해도 아무 쓸 데가 없었던 스물 여덟의 무직자 윤영이 이런 쓸모의 감각을 얻어도 괜찮다니.
이대로라면, 계속 살 수 있을 것 같기도 했다. 어떤 욕망에도 구애받지 않은 채, 그저 조용히 숨을 붙인 채. 무엇을 욕망하라고 다그치는 세상에서 벗어나서. 그냥 살고 싶은 대로.
두 달 전 헤어진 도운은 말하곤 했다. 네 힘든 이야기를 들어줄 힘이 나에게도 없어. 둘 사이에 굳건히 존재한다고 믿었던 신뢰와 4년의 세월은, 그 말과 함께 햇볕에 바짝 마른 낡은 종이 귀퉁이처럼 바스라지고야 말았다. 속을 좀 썩긴 했어도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힘들게 하지도 않았고, 아주 가끔이었지만 서류 작업이 전부인 일에서 재미를 느끼기도 했다.
다만 모든 것이 무의미했다. 건물을 팔아 돈을 벌다 아주 중개업자가 되어버린 윤영의 오빠는 밤낮으로 집값에 관한 조언을, 윤영이 현실에 얼마나 무지한지에 대한 충고에 곁들여 하곤 했다. 윤영은 제 몫을 잘 챙기고 사는 주변의 사람들도 점차 견딜 수 없어지고 있었다. 현실을 직시할 줄 알면 그렇게 넋 놓고 두고 보고 있을 수는 없을 거라는 오빠의 말과, 힘들다고 하지만 너 스스로 옥죄는 것일 뿐이라는 도운의 말은 윤영을 세상에서 멀리멀리 밀어냈다.
윤영은 몸도 마음도 지쳐 너덜거리고 있었지만 스스로 그걸 깨닫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대한민국 어딘가 쉴 공간 하나 있으면 괜찮을 거라는 믿음이 사라지지 않는 탓이었다. 이 도발과 멈춤이 언제까지 갈지, 어디까지 갈지, 윤영은 알 수 없었지만 적어도 그때의 경험은 지금 윤영의 숨을 쉬게 해주는 유일한 방법이 탈출이었다는 사실을 반증시켜 주고 있었다.
창밖 하늘로 흩어지는 구름을 바라보다가 윤영은 오래된 가구들이 삐걱거리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러고 보니 헤나가 일어날 시간이 넘었는데. 볼니 씨의 가족은 오랜 비행에 지쳤을 윤영이 잠을 깨지 않도록 모두 신경 써 조용하는 걸지도 몰랐다. 밖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빛을 따라 윤영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볼니 씨의 집에서 나가기 전까지, 그러니까 여기에 머무는 것이 허락되는 날까지 사용할 물건을 좀 구해 와야지. 윤영은 생각했다.
7년 전 윤영이 여섯 달을 살았던 볼니 씨의 이 집은 이층짜리 주택이었다. 이층집이긴 했는데, 아래층과 위층이 완전히 분리되어 있었다. 볼니 씨는 아래층에 그의 부인과 함께 살고 있었고 위층은 아들 다니엘을 위한 공간이었다.
그들은 윤영이 온다는 소식을 듣고 어떤 생각을 했을까. 윤영은 그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해 줘야 하나. 나는 자유를 찾고 싶어 독일에 왔다. 독일에도 썩 나은 종류의 자유가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그래도 이곳이라면 적어도 한국에서 보다 나은 삶을 살게 될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당분간 이곳에서 지내면서 당신들의 도움을 좀 받아야겠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 내가 이 집에서 나가게 되는 날이 올 것이다. 볼니 씨에게 이미 말했지만 이렇게 갑자기 오게 되어 참으로 미안하다. 독일에 믿을 만한 사람들이라곤 당신네 가족뿐이었다··· 아니, 독일에 당신들이 있어 얼마나 마음이 편했는지 모른다. 당신들이 없었더라면 나는 지금 뉴질랜드나 호주, 아니면 캐나다 어딘가에 있었을지 모르겠다. 평생 당신들과 연락을 끊었을 수도 있었겠지만 그러기에 우리의 인연은 생각보다 길었나 보다···.
문을 열었을 때 집안은 어둠과 정적뿐이었다. 침실에서 번져 나오는 희미한 빛을 따라 윤영은 천천히 집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이 집은 변한 게 없었다. 복도 왼쪽에는 욕조와 샤워 부스가 있는 욕실이 있었고 그 옆에는 변기만 있는 작은 화장실이 마련되어 있었다. 복도 끝에는 다니엘이 썼던 조금 더 큰 침실이 있다. 복도 중간에서 오른쪽으로 돌면 현관문이 있는 통로로 들어갈 수 있고, 통로 반대편에는 주방이 있었다. 통로 오른쪽 문을 열면 큰 침실을 두 개 정도 이어 붙인 크기의 거실이 나오는데, 지금은 암막 블라인드가 쳐져 보이지 않지만, 창 너머 멀리 전나무들로 빽빽하게 둘러싸여 검은 숲이라고 이름 붙여진 산맥이 보일 것이 분명했다. 익숙한 것들로 둘러싸인 어둠이, 오래되어 묻은 냄새의 흔적이, 2년마다 전셋집을 바꿔 가며 이사를 해 왔던 윤영에게는 도리어 새로움이었다. 완전히 안착된 것들이 만들어 내는 낯섦 같은 것이었다.
윤영은 블라인드를 올려 볼 생각을 거둔 채 가벼운 티셔츠와 끝이 닳은 검은 면바지로 갈아입고 현관문을 열었다. 1층과 맞닿은 정원으로 나가 뚜렷한 방향 없이 걸었다. 세월 탓인지 집이 주는 느낌이 이전과 좀 달랐다. 차게 부는 바람은 쓸쓸했고 텃밭에는 생기가 없이 갈라진 흙 위에 잘은 덩이들이 뒹굴었다.
이 집에서 살았던 6개월의 시간에 윤영은 스물한 살이었다. 낯선 것들을 기꺼이 받아들였고 새로운 삶에 적응하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그때의 기억이 우주의 행성들처럼 천천히 윤영을 감싸고돌았다. 정원의 커다란 느티나무 아래에 놓인 간이 테이블, 그 테이블 옆 작은 그릴판에서 땀을 흘리며 두터운 고기를 올려 굽던 다니엘의 옆모습. 윤영은 느티나무 둥지에 등을 기대고 앉았다. 빛이 흘러 윤영의 다리에 작은 조각으로 닿았다. 그런 작은 것들의 시간이 어쩌면 윤영이 이곳에 온 이유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기억은 늘 어딘가의 틈을 통해 변주되며 인간을 모욕하는 법이다. 환한 빛과 나무의 그늘, 둥지 옆에 세워 둔 작은 목각 오리가 그랬을 것이다. 이런 것들이 사는 동안 틈이 되어 윤영의 기억을 변주시켜 애틋한 기분을 만들어냈을 것이다.
옆집의 블라인드가 올라가는 소리가 들렸던 건 그때였다. 윤영은 고개를 돌렸다. 그 집에 홀로 사는 볼니 씨의 유일한 말동무 토마스를 기억하고 있었다. 머리가 살짝 벗겨지고 키가 크고 마른 몸 때문에 늘 등이 조금 굽은 채 걷는 모습이 인상적이던 토마스. 기대하는 윤영의 입가에 미소가 저절로 지어졌다. 토마스가 윤영을 알아보고 서로 인사를 하게 된다면, 이곳이 역시 낯설지 않은 곳이었음을 실감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천천히, 블라인드가 끝까지 올라갔다. 그리고 마침내 윤영의 시야에 차오른 것은. 어떤 젊은 여자의 모습이었다. 윤영은 당황해 고개를 숙이고 자세를 틀어 버렸다. 이곳에도 물론 변하는 것이 있지, 하고 생각했다.
볼니 씨가 1층 정원으로 이어진 문을 열었던 것은 10시가 다 되었을 때였다. 어제 오후에 인사를 하고 윤영을 2층으로 올려 보냈던 볼니 씨의 모습과는 사뭇 다른, 지친 노인의 얼굴이 윤영의 앞에 그림처럼 지나갔다. 볼니 씨는 근육에 힘을 주어 큼직큼직하게 블라인드를 올리더니 거실에 난 창문을 돌아가며 반 정도 열었다. 느티나무에 기대있는 윤영을 발견한 볼니 씨가 손을 흔들어 인사했다.
“커피와 빵이 있는데, 잼은 없고 올려 먹을 거라곤 치즈와 햄뿐이다. 그래도 좋다면 이쪽으로 오렴.”
윤영은 고개를 돌려 토마스의 집을 다시 한번 흘끗 보고는 볼니 씨의 부엌으로 갔다. 변하지 않은 게 이상할 만큼의 시간이 당연히 흘러 있었다.
*
집에 아내가 없다는 말을 볼니 씨는 그제야 했다. 처음에 윤영은 헤나가 어디 잠깐 여행을 갔다는 말로 알아들었다. 그러다 볼니 씨의 표정을 살피고서야 윤영은 아내가 완전히 떠났다는 뜻이라는 걸 알아챘다. 다니엘이 프랑크푸르트에서 대학을 졸업한 후에 그쪽에 일자리를 잡았고, 그즈음 헤나도 볼니 씨를 떠나겠다는 의견을 공식화했다는 거였다.
볼니 씨는 그러니까 이 집에 혼자 남아 생활을 꾸리고 있다는 것이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윤영으로서는 이해되지 않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이를테면 헤나와 볼니 씨는 따로 살고 있지만 이혼을 하지는 않았다는 것, 그래서 헤나 역시 아직까지도 볼니라는 성을 사용하고 있다는 것, 헤나가 매년 여름이면 토요일 오후 두어 시간 정도 근처의 숲 안내 도우미 일을 하러 볼니 씨의 집에 왔다가 주말을 보내고 간다는 것.
윤영이 볼니 씨의 집에 한동안 머물 거라는 건 집안사람들 모두가 알고 있다고 했다. 그렇지 않아도 윤영의 소식을 들은 다니엘과 헤나가 이번 주말에 곧장 집을 찾아올 거라는 거였다. 이야기를 마친 볼니 씨가 윤영에게서 시선을 떼었다. 군데군데 모르는 단어들로 비어 버린 문장이 머릿속에 묶어 둔 단어들과 함께 윤영의 곁을 떠나가는 중이었다. 그런 침묵의 시간을 대신할 것도 역시 언어뿐이라, 윤영은 볼니 씨의 간이 오븐에서 꺼낸 바게트를 한 조각 베어 물며 답했다.
“빵이 너무 딱딱해요.”
볼니 씨는 그거야 뭐 별일도 아니라는 듯 어깨를 삐죽 위로 세워 올리더니 설명하기 시작했다.
“내가 태어나던 시절에는 말이다. 색이 아주 검은 빵이 있었어.”
마침 할 말이 떠올랐다는 듯 힘찬 목소리로 볼니 씨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당연히 조만간 그의 고향 슐레지엔 쪽으로 방향을 틀 이야기였다. 그가 얼마나 이야기를 즐겨 하는 사람이었는지, 그가 보고 들은 어린 시절의 참상이 그의 성격에 어느 정도 영향을 끼쳤던 것인지 생각하다 윤영은 어느 구절부터 언어의 줄기를 잃어버렸다. 흐름을 놓쳐 버리자 볼니 씨의 이야기는 빛의 무리처럼 흘러내렸다. 그렇게 윤영은 자신이 이 언어를 알아들을 수 있을 때까지만 알아듣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단어들도 문장 안에 뒤섞이면 모르는 단어가 되어 버린다는 사실을, 그러니 이해하는 것보다 이해하지 못하는 문장이 더 많다는 사실이 얼마나 다행인가를 떠올리고 있었다.
볼니 씨가 이야기를 하는 동안 윤영이 관찰한 건 볼니 씨였다. 볕에서 보니 볼니 씨는 7년 전에 비해 주름이 제법 많이 늘어 있었다. 혼자서 밥을 해먹고 혼자서 필요한 물품들을 사오고 혼자서 생활의 전반을 감당하는 삶, 삶에 대한 완전한 목표가 없지만 목표를 갖는 것에도 부담은 없는 삶. 그리고 가끔 그렇게 사는 것 자체가 지겨워지는 삶. 이상하게도 그것은 한국에서 윤영의 삶과 다를 것이 없었다.
볼니 씨는 윤영을 집에 들이게 된 것을 기뻐하는 모양이었다. 그는 윤영에게 당장 슈퍼마켓에 가서 장을 좀 봐 오자고 했다. 두 사람 먹을 것은 충분하지 않으니 창고를 좀 더 채워야 한다는 거였다. 그는 윤영을 못 본 지 7년이 지났다는 사실을 새삼 놀라워했는데, 그보다 놀라운 건 그사이 윤영의 외모에 큰 변화가 없다는 사실이라고 했다. 너희 아시아인들은 정말 나이를 가늠하기 힘들어. 지금 너를 고등학생이라고 해도 믿겠단 말이야. 볼니 씨는 그렇게 말했다. 칭찬인지 비하인지 쉽게 판단할 수 없는 모호한 말이었다. 어쩌면 볼니 씨에게는 그것이 윤영에 대한 친근감을 대변하는 걸지도 몰랐다. 그냥 독일어의 의사소통 방식이 한국어의 그것과 다른 건지도, 독일에서 허용되는 사고방식이 한국에서 허용되지 않는 것인지도 몰랐다. 그러니 대부분, 그냥 ‘그렇다’ 정도로만 해석하는 게 좋을 말들이었다.
7년의 시간 동안 볼니 씨에게도 많은 일이 있었다. 헤나가 집을 나간 후에 벨라라는 이름의 뮌헨 출신 여자 친구가 잠시 이곳에서 살기도 했었다고 그는 말했다. 몇 달을 함께 지내다 이혼도 하지 않은 아내가 가끔 찾아온다는 이야기에 짐을 싸더니 그 길로 집을 나가버렸다는 거였다. 몇 년 전에는 녹내장을 심하게 앓았고, 가벼운 뇌출혈 증세로 한동안 병원 신세를 지기도 했다. 주인이 늙어 가는 만큼 낡은 집에도 곳곳에 문제가 터져 누수와 난방 문제로 한동안 애를 먹었다. 무엇보다 사는 게 귀찮다고 그는 말했다. 사는 것 자체가 너무 귀찮다고.
사는 것 자체가 귀찮은 사람치고 볼니 씨는 하고 싶은 게 많았다. 그게 윤영과 함께하고 싶은 건지 혼자서 해도 좋다는 건지 모호했지만 그는 어쨌든 하고 싶은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했다. 자동차를 타고 서쪽 도시들을 따라 네덜란드까지 여행을 하고 싶었고 프랑스 고성을 배경삼아 치르는 사이클 대회에서 응원을 하거나 선수들을 위해 물을 건네는 봉사도 해 보고 싶었다. 다니엘이 있는 프랑크푸르트에서 하루 묵고 로스앤젤레스나 방콕으로 여행을 가고 싶었다.
그가 계속 떠들어 대는 말이 뜻 없는 소음으로 들릴 때마다 윤영은 집중력이 흐트러지고 시야가 흐려졌다. 지루하기도 했거니와, 모르는 단어들이 출몰해 맥락을 잡을 수 없을 때마다 대화가 흐르는 지점을 잡아내느라 애를 쓰다 포기하기도 여러 번이었다. 윤영이 인색한 미소조차 잃어버렸을 즈음 볼니 씨는 잠깐 기다려 보라더니 뒤뚱거리며 걸어가 낡은 박스 하나를 가져왔다.
볼니 씨는 오랜만에 누군가와 대화를 하게 된 것만으로도 무척이나 기쁜 것처럼 보였다. 그는 식탁 위에 빈자리가 생기도록 자신의 접시를 부엌 싱크대에 갖다 두고는 가벼운 휘파람을 불며 다가와 박스를 열었다. 박스에 담겨 있는 것은 인화되지 않은 필름들과 인화되었지만 낡아버린 사진들이었다. 또렷하지 않은 컬러 사진 속에 젊은 볼니 씨와 이미 죽었거나 곧 죽을 예정이라는 그의 친구들이, 팔짱을 끼고 어깨동무를 하고 베이지색 메르세데스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그곳에는 옆집 토마스의 젊은 시절 모습도 있었다.
“토마스는 잘 지내요?”
윤영은 그렇게 묻고 볼니의 얼굴을 바라봤다. 위독해 병원에 있다거나, 고생을 많이 하다 이미 세상을 떠났다거나, 그런 종류의 말이 나오면 어떻게 반응하는 게 좋을지 내심 걱정하면서. 블라인드가 올라갔을 때 우연히 본 창 안쪽 여자의 건강하고 무심한 얼굴을 떠올리면서.
“아주 잘 지내지. 젊은 애인도 생겨서 같이 지내.”
뒤통수에 화살이 꽂히는 느낌이었다. 그러게, 7년은 충분히 많은 일이 생기고도 남을 시간이었다. 윤영이 느낀 감정에 별로 궁금함 따위 들지 않은 것이 분명한 볼니 씨는 어째서 묻느냐는 질문도 없이 조금 흥분된 채 과거의 이야기를 다시 시작했다.
그는 사진을 들여다보며 모두 멋진 날들이었다는 말을 반복했다. 멋진 날들. 오일쇼크가 일어나기 직전까지 지독할 정도로 독일의 국가 생산력이 올라가고, 공장이 매 순간 가동되던 날들이었다고. 전쟁에서 잃은 것들을 만회하려던 사람들이 작정하고 일궈 놓은 것들이라고. 나의 세대는 정말이지 20세기 격변의 역사 속에 있었다고.
그의 이야기를 듣다가도, 윤영은 자주 길을 잃어버리고 그의 문장을 왜곡했다. 왜곡하고 싶어 한 것이라기보다, 그가 쓰는 어휘들을 모두 다 알 수 없었기 때문에 생기는 자연스러운 오해였다. 그의 말을 다 오해하고 있는 것은 아닌 것 같았고 간간이 들리는 단어들로 이해를 겨우 이어 가고 있었다. 모르는 단어가 생길 때마다 볼니 씨를 멈추게 하고 물어볼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렇게라면 대화 자체가 불가능할 테니까. 그저 그의 문장들이 흘러가는 대로 두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그러니 그의 말을 어디까지 이해하는지 아는 것은 윤영으로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자신이 그를 오해하고 있는지 그렇지 않은지조차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것은 대화의 진짜 모습이었다. 말하는 사람은 듣는 사람의 이해의 정도를 결코 알 수 없다는 이치. 사람 간의 완전한 소통은 영원히 불가능하다는 당연한 이치. 그것을 알면서도 계속 나를 이해해 달라고 부르짖는 행위. 그것이 바로 대화의 실체였다.
*
헤나는 원래 사람을 따뜻하게 안아 주는 법이 없는 사람이었다. 윤영에게는 물론이고 오랜만에 만난 아들도 본체만체 눈을 흘기는 것으로 어정쩡한 인사를 치렀다. 표현이 서툰 것이야 어제오늘 일이 아니었고 그것이 헤나 나름 반가움의 표시이기도 하다는 걸 윤영은 알고 있었다.
헤나는 트렁크에서 푸른색 체크무늬 헝겊으로 뒤덮인 바구니를 꺼내는 중이었다. 음식 만들 재료가 들어 있다는 말도 머쓱해 괜히 꺼내는 것 같았다. 선글라스를 쓴 칠십 대 할머니가 된 헤나는 윤영에게 눈을 찡끗하고 고개를 살짝 숙이는 것으로 어설픈 인사를 다시 한번 건넨 후에 트렁크를 닫고 집 안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다니엘은 헤나의 자동차 뒤에 주차된 자신의 차 바퀴를 유심히 살펴보더니, 윤영을 향해 손을 흔들어 인사했다. 그는 못 보던 사이 건장한 남자가 되어 있었는데, 엄마보다는 아빠 쪽을 더 많이 닮아 볼에 살이 많고 풍채도 좋았다.
“네가 온다고 했을 때 아빠 혼자 사는 것 때문에 네가 오해할까 봐 제일 걱정한 사람은 아빠야.”
윤영은 괜찮다는 표시로 살짝 입술을 들어 웃었다.
“불편하면 엄마 집이나 내가 사는 집으로 와도 돼. 너만 좋으면. 우리는 일단 다 네 편이니까.”
까칠한 헤나. 냉정한 다니엘. 말 많은 볼니 씨 중 하나를 골랐어야 했다면, 그래도 볼니 씨가 가장 낫지 않았을까. 윤영은 예의를 갖춰 살짝 웃으며 다니엘을 따라 집 안쪽으로 들어갔다.
부엌으로 들어간 헤나가 재료를 씻고 썰고 볶는 동안, 볼니 씨가 윤영을 식탁으로 불러들였다. 오랜만에 윤영을 보는 거라 호기심이 일었던 모양인지 다니엘도 어느새 와 앉았다. 7년 전 봄이 재구성되듯, 같은 공간에 같은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70년대부터 있었다던 단이 낮은 서랍장과 그 위에 있는 볼니 씨 어머니의 자수 작품과 아버지의 옆모습이 찍힌 흑백 사진도 그대로였고, 낡고 검은 라디오도 조금 더 낡았을 뿐 예전 모습 그대로였다. 그때보다 조금 더 주름진 얼굴의 볼니 씨와 그때보다 조금 더 수염이 굵고 단단해진 다니엘이, 칠 년의 세월을 보내고 돌아온 네 명의 인간이 물건들보다 조금 더 눈에 띄게 변해 있을 뿐이었다.
볼니 씨와 다니엘은 윤영에게도 관심 있는 어떤 주제로 대화를 시작해야 한다는 것을 안다는 듯 케이 문화와 케이팝에 대해, 오징어게임과 방탄소년단에 대해 자신이 알고 있는 것들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한국인의 대단한 열정과 성실함을 높이 샀다. 한국이 세상에 보여준 튼튼한 방역체계와 빠르고 편리한 디지털 인프라와 곧 가능할지도 모르는 통일은 한국의 경쟁력을 더 높여 줄 거라고 말했다.
“그런데 넌 대체 왜 한국을 떠나오겠다는 거야?”
다니엘이 물었다. 윤영이 뜸을 들이다 말했다.
“방금 둘은 한국의 보이는 점에 대해서만 말했잖아. 한국은 완벽히 경쟁 지향적인 사회야. 알아서 살아남지 않으면 죽는 나라. 세계가 열광하는 대부분의 한국 컨텐츠들에도 계급의 문제가 주제로 쓰여 있지. 그곳에 살다 보면 숨이 막히고 나는 그곳에 어울리는 인간이 아냐.”
그러자 다니엘이 말했다.
“적자생존이야 어느 나라든.”
다니엘은 그 얘기를 하면서 볼니 씨의 얼굴을 바라봤다. 그게 볼니 씨가 평생 해 왔던 말이라는 건 윤영도 다니엘도 잘 알았다.
1945년 2월, 볼니 씨의 가족은 영국군이 드레스덴을 침공한 다음날 이미 자신들이 살 나라를 결정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두 번의 전쟁을 일으킨 나라의 국민은 본인들이 나서서 전쟁을 일으키자고 선택한 것은 아니었으나 죄인이 되어야 마땅했다. 국가가 완전히 망해 버리기 전에 그들은 선택을 해야 했는데, 폴란드로 망명을 할 것이냐 독일 본토로 들어갈 것이냐가 고민의 최전선에 있었다. 그때 폴란드에서 가장 먼 독일 서부로 떠나자는 결정을 내린 건 볼니 씨의 어머니였다.
여보, 우리는 어디서든 손가락질을 당할 거예요. 그러니 살아남을 곳으로 가야 해요.
폴란드로 가는 위험을 감수했더라면 아마 볼니 씨는 돌팔매를 맞으며 학교를 다녔을 거라고 했다. 폴란드를 선택했던 볼니 씨 큰 아버지의 아들은 열여섯 살이 되는 해에 아이들의 괴롭힘을 견디지 못하고 학교 옥상에서 떨어져 죽었다고 했다. 살아남아 생존하는 것은 어쩌면 선택의 문제가 아니겠냐고 볼니 씨는 말했다.
“우리도 난민이었지. 지금 저 시리아인들과 우크라이나인들만 난민인 게 아니라. 우리도 떠돌아다니던 사람들이었어. 보호받아야 하는 사람들이었다고.”
윤영은 다니엘을 바라봤다. 2015년의 다니엘이 어땠는지 윤영은 아직 기억하고 있었다. 시리아 난민 반대 시위를 격하게 찬성하는 볼니 씨의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던 다니엘. 그들을 보호하려고 애쓰는 독일인들은 제 뿌리를 기꺼이 잃어버리는 멍청한 치들이라고 소리치던 볼니 씨의 말, 난민 관련된 뉴스를 보다 ‘고향으로 돌아가라’고 외치던 볼니 씨의 성난 모습. 다니엘이 그런 아버지를 뒤에 두고 부엌에서 했던 이야기를 윤영은 기억했다.
“나는 어릴 때 아버지 때문에 놀림을 많이 받았었어. 좋은 조롱거리였거든. 너네 아빠는 발음이 왜 저래? 너네 같은 애들을 2등 시민이라고 한다며? 애들이 그렇게 말하면서 놀리곤 했고.”
다니엘에게서 그 이야기를 듣던 때에도 볼니 씨는 텔레비전 화면을 보며 화를 내는 중이었다. 저런 인간들을 받아 주느니 독일인들한테나 더 잘하라고. 멍청한 행정 관료들은 다들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한다고. 그것은 윤영이 태어나 본 광경 중에 가장 아이러니한 장면이었다. 어딘가에서 이미 떠나온 사람이, 또 어딘가에서 떠나온 사람을 비난하는 광경. 다시 떠올려 보니 고국을 견디지 못해 이주를 하겠다는 윤영의 결심은 사실 그에게 이해받지 못했어야 맞았다.
마침 헤나가 접시를 들고 테이블로 나타났다. 맑은 야채수프와 따뜻하게 구워진 빵이 식탁에 차례차례 오르고 있었다. 헤나가 자리에 앉자 볼니 씨가 기다렸다는 듯 물었다.
“아까 하려던 이야기 계속해도 될까?”
헤나는 크게 반응하고 싶지 않은지 답 없이 폭이 깊은 수저만 들었다 놓았다. 윤영과 다니엘은 서로 눈을 마주쳤다. 윤영과 세 사람도 7년 만에 만나는 자리였지만 볼니 씨와 헤나 역시 꽤나 오랜만에 보는 자리였고, 헤나가 이 집에 왔을 때마다 2층에서 잠을 자고 다음 날 숲 해설사 일을 한 후에는 바로 집이 있는 슈투트가르트로 돌아가 버렸으므로, 헤나와 볼니 씨가 대화다운 대화를 할 겨를이 없었다는 것도 윤영은 그제야 이해할 수 있었다.
“다음에 해.”
아이들도 있으니 다음에 시간이 될 때 이야기를 마저 하자는 말이었다.
“다음에 하자고 하고선 당신이 정말 나와 이야기를 한 적이 있어?”
헤나는 수저를 놓으며 물었다.
대체 당신이 하고 싶은 말이라는 게 뭔데?”
헤나는 자기 생각을 지나치게 강요하는 볼니 씨 같은 성격은 아니었지만 반대로 스스로 엄격한 통제력을 가진 사람이었다. 본인의 선천적 성향이라기보다는 낙천적이지만 타인을 배려할 줄 몰랐던 볼니 씨와 함께 살며 길러진 습성일 확률이 높았다. 그래서 늘 대화는 볼니 씨가 추궁하고 헤나가 원치 않는 대답을 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졌다. 한번 만들어진 습관은 방향을 틀기가 힘든 것인지 이들은 여전히 이런 식으로 진행되는 대화의 룰을 암묵적으로 지키고 있었다.
“당신이 싫다고 하면 같이 살자는 말까지는 하지 않을게. 그렇지만 자주 이런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어. 다니엘도 오고 윤영도 오니까 한결 집이 집 같아.”
“그래서?”
“그래서, 당신도 다니엘도 한 달에 한 번쯤은 찾아왔으면 좋겠다. 우리도 다른 가족처럼 함께 시간을 보내면 좋겠다는 말이야. 성탄절이나 부활절이나, 새해 전야 같은 그런 기념일에 말이야.”
“이봐.”
윤영은 오물거리던 입술을 멈췄다. 다니엘은 별일 아니라는 듯 움직임을 멈춘 그대로 음식을 씹는 중이었다. 헤나는 한숨 한번 쉬지 않고 말했다.
“당신이 당신의 머릿속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인간이라는 건 잘 알아.”
“그게 무슨 말이야?”
볼니 씨의 말에 헤나는 알면서 모르는 척하지 말라는 듯 퉁명스러운 어투로 답했다.
“끊임없이 불쌍했던 과거만 복기하느라 세상에서 가장 비참한 인간은 자기 혼자일 뿐인 사람 말이야.”
순식간에 식탁 위의 공기가 매서워졌다. 윤영은 눈을 찔끔 감았다. 무언가 날카로운 것이 눈을 찌르는 것 같았다.
천천히 눈을 뜨며 윤영은 볼니 씨의 과거를 생각하고 있었다. 1944년 8월 2일 새벽 다섯 시, 독일령 슐레지엔 블레스라우에서 태어난 헬무트 볼니 씨. 전운이 감돌던 그 시절을 배경으로 자신을 주인공 삼아 살아온 그의 소설 같은 생애, 아니 역사. 시체가 즐비한 거리를 휘젓는 쥐 떼들, 손을 꽉 쥔 채 울지도 않고 그곳을 천천히 걸어 나가는 어린 볼니와 그의 가족. 보따리를 등에 멘 볼니 씨의 어머니와 그의 손을 꼭 잡은 어린 볼니 씨. 그렇게 수일을 걸어 독일 땅을 건너와 검디검은 숲이 멀리 보이는 산 중턱에 터전을 잡은 볼니 씨의 가족, 어린 볼니가 웃으며 뛰어노는 산속의 놀이터. 그 뒤로 펼쳐진 검은 숲. 그것들에 대해. 볼니 씨가 감당해 온 독일과 그 시대에 대해.
윤영은 포크를 들어 수프의 건더기를 떠올렸다. 포크 날 사이로 국물이 힘없이 흘러내렸다.
“불쌍한 당신을 챙기느라 정작 당신이 우리에게 충실한 적은 없었잖아. 왜 이제 와 가장 노릇을 하고 싶은 건데?”
조심스럽지만 날카로운 말투였다.
“가장 노릇이라니?”
“당신은 한 번도 아빠였던 적이 없으니까.”
“내가 아빠였던 적이 없었어?”
헤나는 하고 싶은 말이 많은 사람처럼 입술을 오물거리며, 입에 들어 있는 얼마 되지 않는 음식물을 꼭꼭 씹어 먹다 명확하고 차분한 목소리로 천천히 말했다.
“당신의 뿌리에 갇혀 사느라. 그 뿌리에 갇혀서 혼자 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았지. 저 고루하기 짝이없는 노란 깃발을 가방에 꽂고 연합군 비행기를 타 본 그 얘기라면 충분히 들어서 귀가 따가울 정도야. 실상은 뭔 줄 알아? 당신은 아이와 잠깐 가는 동네 산책도 귀찮아하는 사람이야.”
“그만해.”
모두가 다니엘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눈 둘 곳 없었던 다니엘의 시선이 향해 있는 곳은 윤영이었다. 윤영을 향한 눈빛이기보다 어쩌다 윤영 쪽으로 시선이 향한 상태였다.
“그만해. 엄마도 아빠도 다 갇혀 살지. 그게 누군가한테는 고향이고 누군가한테는 직업이고, 누구한테는 도망이고. 다 그런 거 아닌가?”
다니엘은 맑은 수프 안에 들어 있는 살이 연한 소고기를 포크로 찔렀다. 그 포크가 제 살을 파고드는 느낌에 윤영은 배에 힘을 주었다. 다니엘은 태연하게 포크에 찔린 고기를 입에 넣었다. 그 태연함이 윤영에게 방금 전의 문장을 다시 떠올리게 했다. 누구든 어떤 것에 갇혀 산다는 말이, 윤영의 안에 갇혀 있는 것이 도망이라는 말이, 윤영의 온몸을 포크로 콕콕 찔러대는 느낌이었다. 숨막히는 현실에서 도망가고 싶은 마음, 어디에도 매이고 싶지 않은 마음. 그것조차 무언가에 갇혀 있다는 증거라는 걸 이미 깨닫지는 않았느냐는 질문 같았다.
저녁 식사는 그렇게 끝이 나 버렸다. 그 후로도 차를 마시며 쿠키를 먹었고 윤영의 삶에 대한 이야기들이 간간이 흩어지듯 쏟아져 나왔지만, 호감으로 틈을 채운 맹렬한 대화는 없었다. 모두 각자 자신만의 갇힘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이야기는 겉돌았다.
다니엘과 헤나가 떠난 후 집안에는 정적이 흘렀다. 볼니 씨가 있는 아래층에서는 평소처럼 TV 소리가 들려왔다. 그렇게 별것 아닌 것처럼 잘 포장된 밤이 지나갔다.
*
날이 밝고 한참이 지난 뒤에 1층의 블라인드 올라가는 소리가 들렸고, 그러고도 시간이 조금 더 흐른 후에야 볼니 씨는 인터폰으로 윤영에게 함께 아침을 먹을 건지 물었다. 윤영이 집에 들어온 지 이주일이 가까워지도록 한 번도 장을 보러 가지 않았으므로 집에는 여전히 먹을 것이 없었는데, 그렇다고 윤영이 혼자서 장을 보러 가는 것에도 볼니 씨가 찬성하는 편은 아니었다. 함께 시장을 봐 와서 함께 요리를 해 먹어야 제맛이라는 거였다.
아침이라기보다 점심에 가깝긴 하지만 어제 남은 음식들도 있다며, 그는 그거라도 먹겠느냐고 물었다. 윤영은 빵 한 조각에 커피 한 잔이면 족하다고 했다. 어제 밥이든 말이든 너무 많이 먹은 탓인지 식욕이 전혀 돌지 않았다.
윤영이 1층으로 내려갔을 때 볼니 씨는 창고에서 거의 새것에 가까운 파라솔과 테이블을 꺼내 하나씩 정원으로 옮기는 중이었다.
“이게 다 뭐예요?”
“기왕 먹을 것, 파라솔에 앉아 초록을 감상하며 먹자.”
윤영은 고개를 돌려 초록의 나뭇가지들이 한꺼번에 흔들렸다가 다시 되돌아오는 광경을 몇 번이나 바라봤다. 오전의 햇살이 나뭇가지들마다 앉아 하얗게 빛을 부려 냈다. 볼니 씨는 의연했다. 어제 아무런 일도 겪지 않은 사람 같았다. 오히려 조금 들뜬 사람처럼 보이기도 했다. 테이블 다리로 바닥을 단단하게 고정시키고 테이블 가운데 구멍에 샛노란 파라솔을 꽂고 같은 색상의 줄무늬 방석이 깔린 플라스틱 의자들을 잔디 위에 놓으며, 볼니 씨는 오랜만에 무언가 의미 있는 것을 하는 사람처럼 활동적이었다.
그것을 멍하니 보고 있다가 결국 윤영도 일어나면서 무언가 거들게 없는지 물었다. 그러자 볼니 씨는 괜찮다고, 그런 것 할 힘 정도는 남아 있다고, 노인이라고 무시하지 말라고, 의자에 앉아 풍경이나 구경하라고 말했다. 윤영은 정원을 한번 둘러봤다. 잔디가 깔린 정원 끝에 밑동이 굵은 나무가 단단히 자리를 잡고 있었다. 볼니 씨 혼자 정원 전체를 돌볼 재간은 없었던지 깨끗하게 잘 깎인 잔디들과 다르게 다듬어지지 않은 나뭇잎들이 뾰족뾰족했다. 잘 깎인 잔디와 잎이 엉망인 나무. 그게 볼니 씨의 지금을 말해 주는 것 같았다. 낙천적이고 긍정적으로 보이는 볼니 씨와 엉망이 된 볼니 씨를 다 보여 주는 것 같았다. 그것들이 다 한데 모여 있었다. 잘 깎인 잔디, 엉망으로 자란 나무, 그리고 볼니 씨와 윤영.
파라솔 세팅을 마친 볼니 씨는 다시 창고로 들어가더니, 이번에는 커다란 풍선을 하나 들고 왔다. 그 모습을 보고 윤영이 소리쳤다.
“알고 보면 이 집에는 정말 없는 게 없네요.”
볼니 씨가 풍선에 헬륨가스를 넣는 동안 윤영은 주방으로 들어갔다. 아침 식사 거리라도 날라볼 요량이었다. 볼니 씨는 사실 그것조차 자신의 일이라고 했는데, 그것까지 하지 않고 가만히 의자에 앉아 칠순이 훌쩍 넘은 볼니 씨가 풍선을 부풀리고 커피를 내리고 오븐에서 빵을 꺼내 오는 장면을 보고만 있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커피용품은 오른쪽 아래 서랍, 달걀 삶는 기계와 빵 자르는 도구들은 왼쪽 서랍, 접시와 유리잔은 반대편 천장. 모든 게 그저 조금씩 낡아가며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7년 전 윤영이 선물했던 머그잔도 그곳에 여전히 있었다. 싱크대 위에는 이미 40년도 더 된 도자기 필터 사이로 커피 방울이 떨어지는 중이었다. 커피가 만들어지는 그 모습이 이 집안을 닮아있었다. 모든 것이 천천히, 급하지 않게 흘러가는 중이었다. 윤영은 부엌 창밖으로 천성이 게으른 볼니 씨가 윤영과의 아침에 들떠 부지런히 움직이는 모습을 한참 바라보았다.
잠시 후 오븐에서 청량한 알람이 울렸다. 윤영은 이동식 오븐의 뚜껑을 내려 이제 막 구워진 바게트 빵 두 개를 집어 바구니에 올렸다. 작은 쟁반 위에 빵 바구니와 치즈, 햄, 볼니 씨가 먹을 생양파가 담겨 있는 작은 통을 함께 올렸다.
쟁반을 들고 윤영이 밖으로 나갔을 때, 볼니 씨는 어제 토마스의 집 창가에 있던 그 여자, 토마스의 젊은 연인과 대화를 나누는 중이었다. 그 여자는 이미 윤영을 보았으며, 윤영이 어째서 그 집에 있는지 궁금했고, 그래서 볼니 씨와 윤영이 정원에 있는 차에 인사를 하러 정원으로 나왔다고 했다. 볼니 씨가 어서 이쪽으로 오라고 하자, 여자는 담장을 대신한 작은 둔덕을 넘어왔다.
“저는 요나예요.”
여자는 윤영에게 손을 내밀어 인사했다. 손 안쪽이 크고 따뜻한 사람이었다. 볼니 씨가 윤영을 소개했다.
윤영은 한국에서 왔고 – 한국이 얼마나 대단한 나라인 줄은 잘 알죠? - 교육을 잘 받았으며 – 대학 등록 비율이 90%가 넘는 한국이 어느 정도의 교육 강국인지 이해하겠어요? - 독일에서 이런 인재를 받아들여야 하는 거라고 - 독일이 멍청해서 난민들을 저렇게 대책 없이 받아들이는 거라고 -. 그렇게 윤영을 소개하는 것인지, 자신의 정치적 의견을 뽐내는 것인지 모를 이야기를 한참 동안 했다.
“나중에 같이 저녁 한 끼 해요.”
요나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지금 당장 차라도 한잔 함께 하자는 볼니 씨의 말에는 완강히 거절했다. 너무 급하게 나와서 지금은 시간이 부족하다고.
윤영은 잠자코 요나와 볼니 씨의 대화를 듣고만 있었다. 필터에서 물과 원두가 만나 쓰고 신 검은색 음료로 변한 눈앞의 커피를 바라보며. 그게 마치 방금들은 말들의 조합처럼 성글다는 생각을 하면서.
그들의 대화는 서로의 모국어로 이루어지고 있었지만 언어 밖에는 언어보다 읽어 내야 하는 행간이 많았다. 가령 이런 것. 요나는 볼니 씨에 대해 어떤 감정을 갖고 있는지(요나는 어째서 팔짱낀 손을 좀처럼 풀지 않는지), 둘 간의 마음의 거리는 어느 정도 되는지(요나는 혼자서 이 집에 살고 있는 볼니 씨의 상황을 어떤 식으로 이해하고 있는지), 어느 정도의 친절과 진심을 담고 있는지(담을 넘어올 정도로 윤영이 궁금했다는 게 윤영에 대한 어떤 종류의 호기심인지).
요나가 집으로 돌아가고 난 후에도 잔디 위의 볼니 씨는 하던 일을 계속했다. 다 부풀어진 하얀색 풍선의 꼭지를 하얀 실로 엮고 있었다. 볼니 씨는 어제 저녁식사처럼, 요나의 방문 같은 건 신경도 쓰지 않는 것 같았다. 오해를 할 테면 하고, 생각을 할 테면 하라지 하는 식이었다. 그런 볼니 씨는 어째서 윤영과의 아침 식사에 들뜬 걸까. 볼니 씨가 윤영에게 갖고 있는 감정은 대체 언어로 설명이 가능하긴 한 걸까.
아니, 언어라는 속박의 세계가 완전히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있긴 한 걸까. 역사의 중심에 있던 볼니 씨, 역사를 기꺼이 벗어나겠다는 윤영. 뿌리를 찾으려 안간힘을 쓰는 볼니 씨, 뿌리에서 벗어나려 안간힘을 쓰는 윤영. 차라리 볼니 씨와 윤영은 서로를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평생 서로를 완전히 이해할 수 없을 걸 서로 알고 있을 테니까.
볼니 씨의 세계를 다 이해하지 못하는 윤영이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언어를 들어가며 볼니 씨의 마음을 읽으려 애쓰는 것이, 일순간 의미 없는 일처럼 느껴졌다. 중요한 것은 지금 볼니 씨가 윤영을 위해 하얀색 풍선의 꼭지를 실로 엮는데 열중이라는 것뿐이었다. 그것 말고 다른 건 도무지 실체가 없으니.
윤영은 테이블 위에 쟁반을 올려둔 후에 볼니 씨의 커피 잔을 한쪽에 두고 제 몫의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어젯밤 헤나는 그런 말을 했다. 당신은 당신의 뿌리 안에 갇혀 살다가 현재를 잃어버리는 사람이라고. 당신의 정체성으로 뒤덮여 있는 이 집안에서 당신은 진짜 아빠 역할을 해 본 적이 없었으며 아내인 헤나 자신마저 평생 이 집의 손님이었을 뿐이라고. 윤영의 아빠일 필요도 없고 남편일 필요도 없는 지금의 볼니 씨는 커피를 한 잔 마시겠다고 혼자서 4인용 철제 테이블을 옮기고 파라솔을 펴고 닦고 풍선을 부는 중이었다. 볼니 씨의 역사와 그것을 지키려던 의지의 언어들은, 이미 없어진 그의 고향 브레슬라우처럼 사라져버릴까.
커피 잔을 입술에서 뗀 후에 한참 동안 볼니 씨의 뭉툭하고 거친 손을 바라보던 윤영의 입에서 문득 이런 말이 나왔다.
“다니엘의 말처럼 우리는 무엇인가에 다 묶여 사는 것 아닐까요?”
볼니 씨는 풍선에 엮인 실을 들고 하늘을 바라보는 중이었다.
“이 풍선처럼 말이지.”
볼니 씨가 말하면서 풍선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볼니 씨는 그 풍선을 손에 쥐고 있었다. 엄지와 검지로 야무지게 실을 잡아 묶는 중이었다. 윤영은 파라솔에서 시선을 돌렸다.
사람마다 쥐고 있는 집착이라는 것이, 어쩌면 저런 풍선 실 같은 게 아닐까 윤영은 생각했다. 있다고 믿으면 있게 되는 것. 허무하게 날아가 버리겠지만 또 다시 어딘가에 내려앉을 것이 분명한 무언가.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것. 존재했지만 존재하지 않을 것. 그것이 볼니 씨와 윤영 자신은 아닐까.
“커피 맛있네요.”
윤영이 그렇게 말했고 볼니 씨는 답했다.
“어쩌다 보니 맛있어졌나 보네. 실수다 그거.”
볼니 씨는 그 말을 하더니 큰 소리로 웃었다. 그것은 볼니 씨의 말투이자 살아온 방식이었다. 의연한 척, 아무것도 아닌 척, 강한 척. 고향의 깃발을 집안 곳곳에 꽂아 두고 그곳을 기억하며 살아온 그는 사실 자신의 삶을 견디고 있는 것일지도 몰랐다. 그가 겪어온 역사가 한 사람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거친 바람이라, 그것에 의연하게 대처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그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이었는지도 몰랐다.
그러니 어제 있었던 가족과의 일 같은 것 정도는 별일도 아니라고, 그 저녁 식사에서 수치심 같은 것은 없었다고, 그렇게 온몸으로 말하는 볼니 씨를 윤영은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의 시간은 지금도 흐르고 있고 그 시간은 언젠가 끝날 것이 틀림없고 그가 지나온 시간들은 천천히 역사라는 틀 안에 갇혀 반복 될 것이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차치하더라도 이것만은 당장 앞에 있는 현실이었다.
1944년에 태어나 팔십 년 가까이 숨을 쉬고 살아온 헬무트 볼니 씨와, 1994년에 태어나 삼십 년 가까이 살았지만 숨만 겨우 붙이며 살아온 것 같은 윤영이, 멀리 전나무가 빽빽하게 드리워진 검은 숲을 배경삼은 집의 정원에서, 햇빛을 받은 파라솔 아래 의자에 앉아 하얀색 풍선이 띄워질 순간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
둘의 시간과 둘의 언어가 겹치는 중이었다. 유해하면서 무해한 감정들이, 아무것도 아니면서 모든 것인 감정들이 겹치고 있었다. 역사란 엇갈리는 지점에서 다시 만나며 번복되곤 하는 것이고 볼니 씨와 윤영에게는 지금이 바로 그런 순간이었다. 그것은 또 수천 수백 겹의 시간 중에 단지 한순간일 뿐이기도 했다. 누구를 완전히 이해하고, 누구와 완전한 소통을 해야 하는 거, 그런 것 좀 못하면 어때. 윤영은 고개를 내려 볼니 씨가 꼭 붙잡은 하얀 실을 숨죽여 바라보았다.
이윽고 볼니 씨는 파라솔 가까이 풍선을 가져와 실을 제 쪽으로 당겼다가 가볍게 놓아주었다. 차고 맑은 바람이 불어와 윤영의 손을 스치더니 풍선을 데리고 하늘로 둥실 떠올랐다. 바람의 결을 따라 하얀색 풍선이 푸른 하늘을 향해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왼쪽으로 움직이며 멈칫하는가 싶더니 다시 멀리, 멀리 날아올랐다. 그 모습에서 윤영은 한동안 시선을 놓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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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담필담 구혜경 처음 본 날 아이는 딱 한 문장을 썼다. 공평했으면 좋겠어요. 그때 아이의 어깨에 손을 얹고 있던 사회복지사는 나와 눈을 맞추더니 고개를 한 번 저었다. 나는 그 고갯짓의 의미를 읽지 못했다. 사실 지금도 무슨 의미였는지 알지 못한다. 공평, 좋겠다. 나는 아이의 문장 어느 한 조각도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이응이 두 개나 들어갔는데도 네모나게 생긴 ‘공평’을 검지로 짚었다. “공평이 뭐라고 생각하는데?” 무릎 위로 양손을 모아 쥐고 있던 아이는 입을 꾹 잠근 채 가만히 있었다. 그날은 펜을 다시 쥐지 않았다. 모든 글자를 네모반듯하게 썼으니 내 소임은 끝났다는 듯이. 아이는 두 해에 걸친 학대 끝에 사명감 넘치는 어린이집 교사의 신고로 구조되었다. 부모 둘 다 경찰에 잡혀가거나 법정에 서는 일은 없었다. 누군가가 세운 학대 기준에 아이의 부모는 한참 못 미쳤기 때문이다. 피해자는 있는데 가해자가 없었다. 기준선에 닿지 못한 불성실한 가해자들은 아이를 버려두고 남남이 되었다. 가해자 둘은 감옥에 가는 대신 집으로 돌아갔는데 피해자인 아이가 돌아갈 집은 없었다. 복잡한 과정 끝에 아이의 책임 소재는 지역 아동복지관으로 넘어갔다. 복지관과 연계된 상담 기관의 상담사 1은 아이의 심리상담을 맡게 되었다. 그게 나다. 나와 아이의 상담은 기본적으론 필담(筆談) 형식이었다. 아이는 어느 날 불현듯 튤립반 교실 구석에서 연필로 성대 위를 그었다. 성대 안에 있던 아이의 모든 언어가 뾰족하게 깎인 연필 끝에 걸려 송두리째 뽑혀 나갔다. 인형뽑기 기계의 갈고리가 인형 대가리를 위로 뽑아내듯이. 치명상은 아니었으나 그 뒤 아이는 말을 하지 못했다. 복지사는 못하는 게 아니라 안 하는 것이라며 그게 아니면 여기가 아니라 병원에 가지 않았겠느냐고 친절하게 설명했다. 나는 키가 내 허벅지에나 겨우 오는 아이가 말을 안 하는 게 못하는 것과 뭐가 다른가, 생각했지만 말을 아꼈다. 아이가 오려면 20분 정도 남아 있었다. 이번이 상담 2회기였다. 나는 1회기에 아이가 썼던 글자를 몇 번이고 읽고 또 읽다가 포털사이트의 국어사전에서 ‘공평’을 검색했다.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고 고름. 내가 아는 한 아이는 여섯 살이었다. 여섯 살이 공평이라는 단어를 쓰는 건 이상하다. 아이의 언어는 육체가 그러하듯 그 부모가 낳는다. 세상을 만나기 전의 아이가 사용하는 언어는 곧 부모의 언어라 해도 비약이 아니다. 공평은 아이의 부모가 심어놓은 단어였다. 그들의 언어였다. 이번에도 복지사에게 어깨를 붙들려 온 아이는 얌전히 맞은편에 앉았다. 나는 끓였다가 식혀놓은 맹물을 종이컵에 따랐다. 그리고 작은 접시에 담긴 티백을 함께 아이의 앞에 놓았다. 얘기하다가 목마르면 마셔도 돼. 머릿속에서 맴돌던 말은 튀어나오려다 목젖에 걸렸다. ‘얘기하다가’라는 말은 아이의 사정에 맞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입을 다문 채로 아이 맞은편에 앉았다. 복지사가 나긋한 목
- 구혜경
- 2026-05-04
문장, 콤마 소설
럭키럭키 장진영 냉동실을 여니 증거물 봉투가 보였다. 질기고 불투명한 봉투 안에 핫도그가 아주 많이 들어 있었다. 얼굴로 냉기를 받으며 잠시 멈추었다. 증거물9: 핫도그(아주 많은). “여자친구가 핫도그 백 개 사 줬어.” 운석 오빠가 트렁크 팬티 차림으로 화장실에서 나오며 말했다. 샤워한 참인지 한 손에 수건을 들었고 머리카락이 젖어 있었다. “핫도그 싫어하는데. 너 좀 가져갈래?” 운석 오빠는 몸이 더 불어 있었다. 2미터 가까운 키에 지진이 나도 안 부러질 것 같은 뼈에 엄청난 근육질이었는데 지방까지 붙어서 더 압도적이고 과다해 보였다. 상냥하지 못해 보였다. 솔직히 내가 환장하는 타입의 몸이었다. 구구절절 없이 단박에 자기 존재를 증명하는 몸. 나는 0.1초가량 운석 오빠의 팬티를 바라봤다. 그 안에 들어 있는 것을 상상했다. 마찬가지로 클까? 포경수술은 했을까? 그러다 혼자 사는 집에서 샤워하러 들어가는데 팬티를 챙기는 습관에 대해 생각했다. 내가 오기로 되어 있었으니 그랬겠지만, 아니었어도 그렇게 했을 것 같았다. 감으로 느낄 수 있었다. 내 경우에는 샤워할 때 갈아입을 옷을 챙기지 않기까지 오래 걸렸다. 누가 알려 주지 않는 이상 알아차리기 어려운 버릇인데 누가 알려 주려면 누가 있어야 한다는 뜻이고··· 그러려면 이미 혼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설명하기 어렵다. 성인이 되기 전까지는 샤워하고 나갔을 때 단 한 순간도 밖에 사람이 없었던 적이 없었다. 단 한 순간도. 그러다 혼자 살게 되었다. 버릇은 오래 갔다. 버릇인 줄도 몰랐으니까. 깨달음의 순간은 계시처럼 찾아왔다. 알몸으로 나와 물기를 자연 건조시키는 건 어안이 벙벙할 만큼 기분 좋은 일이다. 습한 데서 땀 흘리며 옷을 입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특히 팬티는 최대한 늦게 입는 게 좋다. 운석 오빠에게도 알려 줄까 하다가 말았다. 어느 날 문득 깨닫게 되는 편이 더 멋질 듯했다. “운석 오빠 뚱뚱해.” 대신 그렇게 말했다. “뒤룩뒤룩해.” “헬스 못 가서 더 뚱뚱해졌어.” 운석 오빠는 별로 기분 나빠 하지 않고 인정했다. “핫도그 먹고 그렇게 됐어?” “응. 너 핫도그 좀 가져가라.” 운석 오빠가 머리를 말리는 동안 나는 집 탐색을 이어 갔다. 사랑의 증거가 보관된 냉동실 문을 닫은 다음 그 아래 냉장 칸을 열어 보고, 싱크대 찬장을 열어 보고, 수저통을 열어 보고, 옷장을 열어 보고, 서랍이란 서랍은 다 열어 봤다. 언젠가 운석 오빠가 말했던 것처럼 다 열어 봐야 속이 시원했다. 그렇지만 나는 내가 무얼 궁금해하는지 알고 있었다. 신경은 이미 한곳에 모여 있었다. 그리로 가는 시간을 충분히 음미하고 싶었다. 배달 음식 박스를 발로 밀치며 작은방으로 들어갔다. 못 보던 물건이 있었다. 전자피아노였다. KURZWEIL. “크루즈&mi
- 장진영
- 2024-11-05
문장, 콤마 소설
위장의 기술위장의 기술 박숲 상위 1%의 VVIP를 빛나게 해 줄 그림자. 그들이 민첩하게 움직였다. 그들의 입가엔 잘 훈련된 미소가 달콤한 아이스크림처럼 번져 있다. 어떤 모욕에도 쉽게 흘러내리지 않을 견고한 미소. 나는 30대 커플 앞에 고급 포장지로 감싼 다쿠아즈와 하트를 띄운 바닐라라떼 두 잔을 내려놓았다. 행동은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말투는 나긋나긋하지만 품위 있게, 걸음걸이는 조용하고 단정하게. 나는 고객 응대 매뉴얼이 마음에 들었다. 그들은 돈이 필요한 내게 ‘Very Very Important Person’이기 때문이다. 여자 고객이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손가락을 펼쳐 잔을 들었다. 노동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 손가락은 희고 가늘었다. 여자가 팔을 움직일 때마다 왼쪽 손목에 찬 시계와 팔찌에서 빛이 눈부시게 흔들렸다. 그들은 예의에 어긋나지 않을 정도의 간단한 인사 외엔 말을 걸지 않았고 무례한 행동도 하지 않았다. 그건 품위나 예의 또는 친절의 종류라기보다 섞일 수 없는 계급의 분리를 의미했다. 은은한 빛이 대리석에 반사되어 라운지를 화려하게 감쌌다. 띄엄띄엄 놓인 테이블을 둘러보며 바 쪽으로 걸었다. 생상스의 〈백조〉의 선율이 우아하게 실내를 떠다녔다. 갑작스러운 생리통이 아랫배를 압박했다. 칼로 찌르는 듯한 통증이 몰려왔다. 한 손으로 아랫배를 누르며 걸음을 빨리했다. 허 실장에게 전화가 왔다. 급하게 예약이 잡힌 고객이 있어서 30분 안에 제품을 공수해 오라는 지시였다. 각각의 명품관에서 공수해 올 제품 리스트를 문자로 넘겨받았다. 아무에게나 주어지지 않는 퍼스널 룸 고객의 명품 공수 기회가 오다니, 가슴이 떨렸다. 계약직 만료까지 보름도 채 남지 않은 시기에 좋은 징조였다. 재계약을 위해 허 실장의 입김은 절실했다. 선애 언니의 다이어리는 내 인생을 바꿔 줄 최선의 카드가 돼 줄 수 있을까. 어긋난 관계에 방부제가 필요하다고 한 건 선애 언니였다. 음식이나 음료도 아니고 ‘관계’라는 추상성에다 방부제라니. 방부제 종류가 뭐냐고 묻자 선애 언니는, 카무플라주라고 알아? 하고 되물었다. 모호한 표정을 짓는 내게, 위장이나 변장을 뜻하는 프랑스어라며 신상 스카프를 목에 두르듯 매끄럽게 말했다. 그러니까 관계를 유지하려면 위장이 필수라는 얘기야? 사회적 가면이라고 해도 될 걸 꼭 어려운 단어를 사용해야 신선하다는 건지. 끝없이 새로움을 추구해야 하는 직업 탓이라 이해했다. 어긋난 관계라도 있어? 많지. 누군데? 선애 언니는 청바지 지퍼를 올리고 셔츠 위에 블루종을 걸친 뒤 유니폼 구두를 하이힐로 갈아신고 클러치 백을 들었다. 모두 샤넬 제품이었다. 넌 아닌 건 확실해. 명품으로 치장하고 명품이 담긴 쇼핑백을 들고 탈의실에서 나간 선애 언니는 그날 이후 중환자실에 누워 정지된 생을 이어 가고 있다. 직원 전용 통로를 이용해 뛰다시피 명품관으로 갔다. VIP 고객들이 명품관마다 쇼핑을 하느라 어수선했다. 1층 중앙 통로에선 4인조 클래식 공연을 하고 있었다. 북적거리
- 박숲
- 2024-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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