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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해진, 『홍의 부고』중에서

  • 작성일 2014-06-20
  • 조회수 1,576



“어른이 되면 자신이 두 개의 반쪽으로 존재한다는 걸 알게 된다.”

_ 메리 올리버「완벽한 날들」중에서



조해진, 『홍의 부고』중에서


홍의 사진요? 우리가 무슨 애틋한 사이였다고 내가 걔 사진을 갖고 있겠어요. 장례식장엔, 글쎄, 아무래도 전…… 못 갈 것 같아요. 너무 갑작스러운 소식이라 준비도 못했고 내가 가봤자 홍은, 아니 홍의 영혼은 날 불편해할 텐데요. 뭐. 저 대신 조의금이나 좀 부탁드려요. 여기요. 봉투는 알아서, 예, 예.
근데요, 아까부터 묻고 싶었는데, 어디가 좀 불편하세요? 아니, 안색이 안 좋아 보여서요. 뭔가에 쫓기는 사람 같다고나 할까. 혹시 이 약요, 한 알 드셔보시지 않을래요? 저도 가끔 먹는 항불안젠데, 마음을 안정시키고 싶을 때 확실히 도움이 되거든요. 약사는 이런게 좋은 것 같아요. 처방전이 필요한 약도 그냥 먹을 수 있다는 거. 물론 들키지 않게 조심조심 빼돌려야 하는 어려움은 있지만요. 정말, 필요 없으세요? 이거 구하기 힘든 약인데 …… 약을 잘 모르시는구나. 어떤 약은요, 사람 같아요. 아주 정교하고 섬세하고 게다가 말도 없는 사람, 그래서 위로를 주면서도 생색내는 법이 없죠. 진정한 친구처럼요. 아, 이런, 제가 괜한 얘길 한 것 같네요. 예, 어서 가세요, 어서, 빈소가 문을 닫기 전에. 맞다, 빈소는 밤새 문을 열어놓지. 하하, 내가 이렇게 맹하다니까. 참, 밤길 조심하시고요.
알다시피, 요즘 서울이 그렇잖아요.


▶ 작가_ 조해진 – 소설가. 1976년 서울에서 태어남. 2004년 《문예중앙》신인문학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 시작. 소설집『천사들의 도시』『목요일에 만나요』, 장편소설『한없이 멋진 꿈에』『로기완을 만났다』 『아무도 보지 못한 숲』이 있음. 신동엽문학상, 젊은작가상 등 수상

▶ 낭독_ 최정화 – 배우. 연극 <말들의 무덤>, <복사꽃 지면 송화 날리고>, <농담> 등에 출연.


배달하며

진실에 대해서 제가 어느 소설에서 쓴 짧은 문장은 이렇습니다. ‘진실은 수많은 깎은 면을 보이는 금강석과도 같다. 그 어떤 시각에서 보든 그것의 전체를 포착했다고 확언할 수는 없다.’
때때로 삶을 위해서 뭘 해야 하는지 모르듯 진실이란 무엇인지 역시 알 도리가 없습니다. 특히나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서는 말입니다. 그런 것을 가르쳐주는 학교 같은 곳은 없는 걸까, 여러 번 고개를 갸우뚱거린 적이 있습니다. 도리 없이 저는 이렇게 책들을 붙든 채 반생 가까이 보내고 있는 중입니다. 한 가지 확실한 건 글쓰기에 있어서 이야기가 필요하듯, 우리 삶에는 그 누군가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전부를 알진 못한다고 해도.

문학집배원 조경란

▶ 출전_『목요일에 만나요』(문학동네)

▶ 음악_ The Film Edge/underscores

▶ 애니메이션_ 이지오

▶ 프로듀서_ 양연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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