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독한 우정
- 작성일 2007-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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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독한 우정
공선옥
어머니는 틀림없이 또 내 물건을 버렸을 것이다. 어려서부터 내가 모아 왔던 것들, 중학교, 고등학교 때의 교복, 교과서, 가방, 편지, 그때그때 유행하는 가수들의 사진들, 하다못해, 차표들까지 나는 무엇이든 버리지를 못했다. 내 버리지 못하는 습관은 어쩌면 어머니 때문에 생긴 것일 수도 있다. 늘 버리기만 하는 어머니에 대한 일종의 거부반응, 반항, 또 생활이 바뀌어야 하는 데서 오는 불안감의 호소. 내 버리지 못하는 습관이 간절히 말하고 있는 것들일 게다. 그러나, 어머니는 한 번도 내가 습관으로, 그러니까 몸으로 말하고 있는 것들에 귀 기울여 보려고 하지 않았던 것 같다. 왜냐하면 그 소리들에 귀 기울이다 보면 어머니 자신이 더 아플 것이기에. 나는 그렇게 믿고 있다.

내일은 그와 강릉엘 가기로 했다. 강릉에 가서 허난설헌 생가랑 오죽헌이랑 경포대랑 그리고 주문진엘 갈 것이다. 큼직한 자루를 가져가서 주문진 그 푸른 바닷가에 널려 있던 비리고 짜고 쓰고도 달콤했던 미역을 자루 가득 담아올 것이다. 미역은 물기가 많아 아무리 자루를 단단히 묶는다 해도 물이 잘 새지 않는 방수가방이 필요할 것이다. 이왕이면 등에다 맬 수 있는 방수가방이. 그런 가방이라면 내 고등학교 때의 책가방이 제격일 것이다.
지난여름에 어머니와 주문진 바닷가에 갔었다. 어머니의 남자친구도 함께였다. 처음엔 어머니와 단둘이 가는 여행인 줄 알았다. 그런데 어머니와 내가 간단한 여행복 차림으로 아파트 엘리베이터를 내리자마자 머리카락이 온통 새하얗게 센 어떤 중년의 남자가 옷은 양복을 입었는데 신발은 운동화에 차양 모자를 쓰고서 우리를 향해 수줍은 듯, 어벙벙하게 웃고 서 있는 것이었다.
“내 친구야. 차 때문에 부른 거야. 그냥 아저씨라고 불러.”
어머니가 낮고 빠르게, 읊조리듯이 말했다. 어머니가 낮고 빠르게, 읊조리듯이 말할 때는 뭔가 말로는 설명하기 어렵지만, 분명한 것은 수줍음을 타고 있을 때라는 것이다. 세상에서 어머니의 몸짓과 말투를 온전히 볼 수 있고 알아들을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나뿐이다. 나는 감정의 변화에 따라 달라지는 어머니의 목소리, 말의 결, 떨림 같은 것들을 얼마든지 구별해 낼 수 있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어머니의 슬픔 가득한 목소리나 기쁨에 겨운 목소리나 그저 ‘뇌성마비를 앓는 환자’의 ‘알아듣기 어려운’ 말, 혹은 단순한 소리일 뿐이다. 보다 심하게는 그것을 바보의 말로 치부해버리기도 한다. 그런 사람들 앞에서 바보가 아닌 어머니는 순식간에 바보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러니, 그런 세상의 사람들이 지금 같이 수줍어 할 때 내는 내 어머니의 말투를 어떻게 구별해 낼 수 있겠는가.
어쨌든 참으로 난감하지 않을 수 없는 순간이었다. 나는 사전에 어머니의 남자친구에 관한 정보를 전혀 전달받지 못한 상황이었다. 나는 어머니가, 차 때문에 아저씨를 불렀다는 말을 믿지 않았다. 어머니는 결코 우리가 차가 없어서 그래서 불편하다고 누구를 부르거나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그와는 반대되는 사람이 내 어머니라는 사람이다. 어머니는 당장에 그것이 없으면 생활이 불편해질 걸 뻔히 알면서도 누군가 필요하다는 사람이 있으면 줘버리는 사람이다. 남에게 폐를 끼치기보다는 내가 불편한 것을 기꺼이 감수하는 사람이 단지 차가 없다고, 오직 그 이유 때문에 불렀다니, 왜 어머니는 그렇게 뻔한 거짓말을 하는 것일까. 나는 어머니가 좀 더 솔직해지기를, 무엇보다 자신의 감정에 솔직해지기를 누구보다 바라는 사람이다. 설령 어머니가 나쁜 짓을 한다 해도 그 나쁜 짓에 화가 난다기보다 나는 어머니가 나쁜 짓을 솔직히 털어놓지 않는 것이 화가 날 것 같다. 혹시 어머니가 내 눈치를 보고 있는가?
“전 그냥 빠질래요.”
아저씨가 있으니까, 굳이 내가 동행하지 않아도 불편한 몸을 가진 어머니를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있으므로 빠지겠다는 것은 결코 아니라는 것은 어머니도 알 것이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이미 아저씨가 열어둔 차 안으로 쏙 들어가 버린 후였다. 아저씨가 휠체어에 앉아 있는 어머니를 업어다 차 안에 들여다 앉혀버린 것이다. 어머니는 휠체어를 타야만 할 정도로 심하게 불편하진 않지만, 장거리 여행을 갈 때면 만일을 대비해서 휠체어도 가지고 간다. 어머니는 어쩌면 혹시 아저씨가 어머니를 업어줄 것을 노리고서 휠체어에 턱하니 앉아 있었던 것은 아닐까? 어머니를 업고 차로 이동할 때 아저씨는 심하게 절뚝거렸고 절뚝거림 때문인지 한쪽 어깨는 심하게 기울어져 있었다. 그래도 그가 어머니를 차로 이동시킬 때의 손길은 의외로 섬세한 바가 있어 보였다. 어머니를 그래놓고는 이제 다음 차례는 내 차례라고 말하듯, 아저씨가 차문을 잡고 특유의 어벙벙한 웃음을 웃고 서 있었다. 그 모습을 나 또한 바라보고 있자니 쿡하고 웃음이 터져 나왔다. 나는 별 수 없이 꾸역꾸역 차 안으로 기어들어갔다.
아저씨 옆에 앉은 어머니는 뒷자리에서 내가 보고 있는 것을 의식해서 그러는지, 아니면 둘이 만나면 원래 그러는지, 알 수 없게 말 한마디 없이 꼿꼿하게 앞만 보고 있었다. 그것은 아저씨도 마찬가지였다. 하다못해 음악도 틀지 않았다. 차는 십년도 넘은 고물차임이 분명했다. 에어컨은 작동되지 않았고 엔진 소리는 귀를 먹먹하게 했다. 내가 불편해하는 기색이 느껴졌는지 아저씨가 라디오를 틀었다.
이 시간 전국 고속도로 상황 알아보겠습니다.
서울 톨케이트에 나가 있는 김진원 통신원 나와주세요. 김진원 통신원, 지금 그곳 도로 사정은 어떻습니까? 아, 김진원 통신원과 전화 연결이 되지 않고 있습니다. 영동고속도로 상황 알아보겠습니다. 이경호 통신원? 네 이경호 통신원입니다. 지금 이 시간 영동고속도로 주말 피서 차량으로 극심한 정체 현상 빚고 있습니다. 횡성 대관령 구간, 차들이 가다 서다를 반복하고 있고……
라디오는 오래전부터 오직 교통방송 한 곳에만 주파수가 맞추어져 있었던 건지도 몰랐다.
“에잇, 꺼버리자.”
교통 체증이 마치 교통방송 탓이라도 된다는 듯 어머니는 발작적으로 라디오를 껐다.
구리 톨게이트를 벗어날 무렵부터 차들은 이미 거북이걸음을 하고 있었다.
“심심해요?”
아저씨가 나를 돌아보고 물었다.
“네.”
나는 솔직하게 대답했다.
“껌통 안에 껌 있을 거예요.”
심심하면 껌이라도 씹으라는 것인가. 껌통은 먼지가 부옇게 앉아 있었다. 나는 껌통을 열어 바닥에 서너 개 남은 자이리톨껌을 모두 입속으로 털어 넣었다. 껌에서 단물이 다 빠져 나와 더 이상 씹는 것이 번거롭게 느껴질 때까지도 앞의 두 연인은 말이 없었다. 나는 껌을 뱉어 손가락으로 풍선을 만들어 딱딱거리다가 그나마도 창밖으로 버리고 나서는 앞의 연인들이 연출하는 나로서는 기괴하게만 느껴지는 분위기를 감당할 자신이 없어 그만 눈을 감아 버렸다.
자연만 놓고 말한다면 나는 그곳 바다가 생각보다 좋았지만 어머니는 강릉에 사는 어머니의 친구 집에서 하룻밤을 묵고 그 다음날 바닷가에서 하루 더 놀려고 했던 계획을 취소하고 친구와 밥만 함께 먹고 곧 주문진을 떠났다. 아저씨가 몸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강릉까지 올 때도 휴게소에서, 국도 변에서 몇 번을 쉬었는지 모른다. 운전을 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몸이 안 좋은 사람을 단지 차를 가졌다는 이유로 부른 어머니나, 그런 몸으로 두 여자를 데리고 여행을 하겠다고 나선 아저씨나 내가 보기엔 그저 한숨이 절로 나오는 사람들이기는 마찬가지였다. 바다가 보이는 횟집에서 다른 사람들은 이제 겨우 밥을 반나마 먹고 있는 참인데 아저씨는 물회에 국수를 후딱 말아먹고는 갑자기 벌떡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의아해 하는 사람들을 위해 어머니가 친절하게 설명했다.
“젊어서 교통사고를 당했어. 원래 의자에 앉아야 하는데 오늘 바닥에 앉아서 순환이 안 돼서 그러는 거야.”
“그럼 여기 눕잖고.”
어머니 친구, 경희 아줌마가 말했다. 경희 아줌마와 어머니는 같은 뇌성마비 친구다. 나 말고 어머니와 가장 잘 통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두 사람이 온몸을 흔들면서 때로는 배꼽을 잡고 자지러지게 웃으며 이야기하는 모습을 사람들은 되게 신기해하거나 아주 나쁠 때는 못 볼 걸 보았다는 투로 고개를 돌리기도 한다. 그러거나 말거나 두 사람은 만나면 명랑하다.
“자기 차 안에서 눕는 게 편해서일 거야.”
“니 팔자도 차암, 그렇다 이? 어떻게 만나는 사람마다……”
“애 보는 앞에서 별소릴 다 한다.”
경희 아줌마가 어머니의 핀잔에 움찔해서 내게로 고개를 돌렸다.
“니 엄마는 만나는 남자마다 꼭 어디서 그런 남자만 골라 만나는지 원. 넌 절대 그러지 마라. 남자는 그저 신체 건강하고 사상 건전하고 직업 확실한 남자라야만 해. 수정이 너도 이제 스무살이잖니. 아줌마 말 명심해라?”
이럴 땐 경희 아줌마 말을 제대로 알아먹는 사람이 나뿐이라는 사실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경희 아줌마의 남편은 다른 건 몰라도 정말 신체는 건강해 보이는 사람이었다.
경희 아줌마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어머니는 이미 식당 밖으로 나가고 있었다. 경희 아줌마 말에 토라져서 나가는 건 아닐 것이라는 걸 나도, 경희 아줌마도 알고 있었다.
어머니는 아저씨한테 가 있었다. 아저씨는 차 의자를 뒤로 제켜놓고 누운 상태였고 어머니는 아저씨의 다리를 열심히 주무르고 있었다. 나는 바닷가 모랫벌로 갔다. 며칠 전의 태풍 때문인가. 백사장엔 미역 줄기가 지천이었다. 나는 미역 줄기를 그러모았다. 금방 한 아름이 되었다. 그러나 그뿐, 가져갈 방도는 없었다. 나는 미역잎을 찢어서 물에 씻어 씹었다. 생미역은 몹시 비렸다. 비리고 쓰고 짜고 그러고는 끝내는 달콤한 듯도 했다. 어머니는 나를 낳아놓고 미역국 한 그릇도 먹지 못했다고 했다. 내 열다섯 살 생일날 미역국을 끓여놓고 어머니가 한 그 말을 나는 아직 잊지 않고 있다.
“나는 너 낳고 미역국도 한 그릇 먹지 못했다.”
그리고 그뿐이었다. 왜 미역국 한 그릇도 못 먹는 산모가 될 수밖에 없었는지, 그런 상황에서 왜, 어떻게 나를 낳을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내 출생의 앞뒤에 얽힌 이야기는 도통 하려 들지 않았다.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어머니는 이제 아저씨의 머리를 감싸안다시피 하고서 지압을 하고 있었다. 나는 잠깐 아버지를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아버지에 대해서 그 누구에게도 들은 바가 없으므로 아버지에 관한 그 어떤 기억도 없다. 내 생애 중 기억이 시작되는 처음의 풍경에도 어머니와 나 둘뿐이다.
“엄마아, 엄마아.”
나는 마루에 앉아 어머니를 불렀다. 사위는 적막했다. 나는 벌에 손가락을 쏘였던 것 같다. 천지사방이 온통 꽃나무였다. 꽃나무가 많으니 또 천지사방이 벌이었다. 꽃과 벌들 속에서 놀다보니 내 몸 사방도 벌에 쏘여 부풀어 올랐다. 벌에 쏘이면 나는 울지도 않고 어머니에게 달려갔다. 그러면 어머니는 어떤 날은 호오 한번 불어만 주기도 하고 어떤 날은 어머니 침을 발라주기도 하고 또 어떤 날은 된장을 바르고 비닐로 처매주기도 했다. 그날은 손가락이 된통 쏘였는데 지금도 된장 냄새가 코끝을 간질이면 이상하게 손가락의 통증이 느껴진다. 열이 나면서 욱신거리는 통증, 어쩌면 된장으로 인해서 더 아팠을 통증. 그러나 어머니가 처싸매준 것만이 좋아서 아픈 것도 행복했던 내 기억의 첫날.
아픈 왼쪽 가운뎃손가락을 불편하게 쳐들고서 어머니를 애타게 불렀으나 어머니는 대답이 없었다. 그곳은 외갓집이었다. 며칠 전까지 함께 살던 외할머니도 보이지 않았다. 언젠가 내가 문득 생각났다는 듯이 무심을 가장하며 그날을 말했더니, 어머니는, 그 며칠 전에 외할머니가 돌아가셔서 그렇지, 라고만 말했다. 그렇지만 내 기억에 외할머니의 죽음이나 장례 풍경 같은 것은 없다. 단지 그 며칠 전의 일이었다는데도. 다만 그날, 그 적막한 저녁 무렵의 풍경만이 내 기억의 시작일 뿐이다. 나는 사방으로 어머니를 찾아 헤맸다. 먼저 부엌문을 열었다. 외가는 아직 부엌 개량이 안 된 구식 부엌이었다. 부엌은 캄캄했다. 옛날 부엌 특유의 그을음 냄새와 시큼한 개숫물 냄새가 어둠과 적막과 함께 뒤섞인 부엌내가 어린 나를 진저리치게 했다. 나는 진저리를 꾹 참으며 어둠에 눈이 익기를 기다렸다. 그러면 거기 어둠 속에서 어머니가 보일 것을 기대하면서. 어둠에 눈이 다 익어지도록 어머니는 어둠 속에서 나타나 보이지 않았다. 나는 침착하게 부엌문을 닫고 그리고 다시 엄마아, 엄마아를 주문처럼 외우며 대문 옆 화장실문을 열었다. 어머니가 측간이라고 불렀던 외갓집 화장실에서는 시골 화장실 특유의 푸근한 냄새가 났다. 부엌 냄새가 늘 낯설고 때로 공포스럽기조차 했던 반면에 화장실 냄새는 아직도 내 기억에 푸근하게 남아 있다. 그것은 말하자면 짚벼늘 냄새였다. 건실한 농부였던 외할아버지는 화장실을 창고 겸 헛간 겸으로 지어놓았다. 여타의 시골 화장실이 어린 아이에게는 그 구조만으로 ‘똥통에 빠질 것만 같은 공포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건만 어쩌자고 우리 외할아버지는 그토록 정답고 푸근한 화장실을 만들어놓았는지 몰랐다. 화장실 안에는 소와 돼지와 염소와 닭과 강아지와 고양이와 쥐가 함께 살았다. 그 짐승들이 모두 짚벼늘을 자기들 몫만큼씩 차지하고서 살았다. 지금 생각해도 믿어지지 않을 만한 풍경이다. 내가 어둡기는 부엌이나 한가지인 그 속으로 들어간 것은 순전히 그 안에 사는 짐승들에게 내 외로움을 위로받고 싶어서였을지도 모른다. 지금은 내가 그런 능력을 잃어버린 지 오래 되었지만 자연 속에서 오래 산 어린 아이들이 흔히 그렇듯이 말 못하는 짐승이라고 어른들이 흔히 말하는 그 짐승들하고 얼마든지 말을 나눌 수가 있었다. 짚벼늘 속에 몸을 파묻고 염소 등허리를 문지르며 염소처럼 엄마아, 몇 번 쯤 했을 때였을까. 내 머리 위 짚벼늘 위에서 어머니 목소리가 들렸다.
“악아, 엄마, 여깄다.”
그 목소리는 너무나 가늘어서 조심하지 않으면 금방이라도 툭 끊겨 나가서 다시는 이 세상에 존재할 수가 없을 것만 같이 불안한 목소리였다.
어머니는 짚벼늘 위 닭둥우리가 매달린 시렁 밑에 있었다. 어머니 머리 위에 하얀 무명끈이 시렁 밑에서 둥글게 대롱거리고 있었다. 나는 그때 그것이 무엇인지 몰랐다. 내가 한참 커서 나 또한 아파트 화장실에서 그런 무명끈을 매달기 전까지는.
어머니는 짚벼늘을 데그르르 굴러내려와 나를 끌어안았다. 어머니 몸은 신 내린 무당이 잡고 있는 깃대가 떨듯이 떨고 있었다. 어머니는 이를 딱딱 부딪칠 정도로 떨면서 중얼거렸다. 사랑, 그까짓 게 다 뭐야, 사랑 없으면 어때…… 나는 다만, 어머니 품에 안겨서도 습관처럼 염소 울음소리 같은 엄마아 소리만 연발했을 뿐이다. 그 순간에도 구수한 짚벼늘 냄새는 내 코끝을 간질이고 있었다. 나는 그래서 나중에도 자꾸만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혹시 엄니가 죽을 결심을 그만둔 것은 나 때문이 아니고 그 푸근하고도 구수한 짚벼늘 냄새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는.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없는 외갓집은 적막했다. 특히 어둠이 짙어지면 그 적막을 가로질러 오는 발자국 소리들이 있었다. 그럴 때마다 어머니는 나를 꼭 끌어안고 고슴도치처럼 몸을 웅크렸다. 어느 날, 저벅거리며 다가오던 발자국 소리가 문 앞에서 딱 멈추었다.
“낼 우시장에 소 팔아줄게.”
소 장수는 소를 팔아서 소값을 주지 않았다. 얼마 후에 돼지 장수가 왔다. 돼지 장수 또한 돼지값을 주지 않았다. 염소도, 닭도, 강아지도, 고양이도 누군가들이 가져갔다. 이제 어머니와 내게 남은 것은 빈집과 빈집 텃밭에 심어진 고구마와 고추뿐이었다. 고구마를 윗집 사람이 캐갔다. 고추는 병이 들어 따갈 수 없어서 그랬는지 아무도 따가지 않았다. 어머니는 병든 빨간 고추와 늦게 달려서 파란 채로 시들어가는 풋고추와 고춧잎을 따로따로 따서 세 개의 비닐봉지에 담았다. 그것을 가지고 읍내 시장으로 가서 하루 종일 시장터 한 쪽에 앉아 있었다. 시장도 파하고 사람들도 지나다니지 않았다. 그때 어둠 속에서 어떤 남자가 나타났다. 그가 어머니에게 돈을 주었다.
“이걸 가지고 아무 데나 가거라. 다시는 이런 데서 병든 고추 같은 것 팔지 말고 눈에 안 보이는 먼 곳으로 가거라.”
무서리가 하얗게 내리는 깊은 겨울밤이었다.
나는 그가 내 아버지였느냐고 묻지 않았다. 다만 어머니로부터 그 적막한 시절의 이야기를 듣고 난 후 여러 날 동안 몹시 앓았을 뿐이다. 그리고 어머니는 다시는 그 시절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어머니와 내가 어딘가로, 어딘가 아주 먼 곳으로 가려고 터벅터벅 걸어가고 있는데 어둠 속에서 이번에는 수녀가 나타났다고 했다. 수녀는 우리 모녀를 수녀원으로 데리고 갔다. 수녀원에서 모자원으로 모자원에서 복지원으로 복지원에서 영구 임대아파트로 옮겨 다니며 우린 살았다. 그렇게 옮겨 다니며 살았으므로 우리에겐 옛날을 추억할 만한 물건들이 남아나지 않았다. 어머니는 말했다.
“잊어버려, 잊는 게 좋아, 그래야 살 수 있어.”
그러나, 나는 내가 목격하지 못했던 나의 과거가 잊혀지지 않아 살 수가 없었다.
“나는 너 낳고 미역국 한 그릇도 먹지 못했다.”
왜 어머니는 하필 그날 생전에 하지 않던 그 말을 했던 것일까. 이젠 내가 그런 말을 들어도 괜찮을 정도로 다 컸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아니면 비록 영구 임대아파트지만 이제야말로 남의 눈치 안 보고 오직 어머니와 나 둘이서 다리 뻗고 살아갈 수 있는 ‘우리집’이 생겨났다는 편안함이 그런 말을 무심코 내뱉을 만큼 어머니 마음을 풀어지게 했던 것일까. 열다섯 살 생일날, 나는 어머니가 나 낳고도 먹지 못한 미역국을 생일이라고 먹을 수가 없었다. 나는 어머니가 나를 낳고서 미역국도 못 먹고 벌벌 떨고 있었을 십오년 전의 어느 날을 잊을 수가 없었다. 내가 기억하는 날들은 무섭지 않았다.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날들이 나는 무서웠다.
내가 무섭지 않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하나밖에 없는 것만 같았다. 나는 화장실 문을 잠갔다. 그리고 10여 년 전 어느 날, 어머니가 외갓집 화장실 시렁 위에 매달았던 그 무명끈과 똑같은 끈으로 수건걸이에 둥근 고리를 만들었다.
“악아아, 악아아……”
어머니는 나를 꼭 악아, 라고 불렀다. 내 이름은 수녀원에 들어가서야 지어졌다. 어머니가 짓지 않은 이름을 부르는 게 어머니는 쉽지 않은 모양이었다. 딴은 막달레나라는 이름은 어머니가 부르기에는 결코 쉽지 않은 이름이기는 할 것이다.
“악아아, 악아아……”
어머니가 나를 부르는 소리가 아득하게 들려왔다.
나는 지금도 생각한다. 어머니가 죽지 않았던 이유는 나 때문이 아니고 짚벼늘의 푸근한 냄새 때문인 것 같았듯이, 내가 무명끈의 고리를 잡아당기지 않았던 이유는 오직 엄마 때문이라고. 엄마의 악아아, 소리 때문이라고.
그러니, 내게 어머니의 ‘악아’는 어머니의 짚벼늘인지도 모른다. 짚벼늘과 악아를 그러나, 어머니와 나 말고 세상 사람들 누가 알 것인가. 어머니와 나, 두 사람만이 알고 있는 것들이 어머니와 나를 살리는 것들이라고 나는 믿었다.
그런데 이제, 어머니와 나를 살리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어머니에게 아저씨인가? 나를 살리는 것은 그라고 내가 생각하듯이.
귀로는 생각보다 험난했다. 제일 첫째는 아저씨의 몸이 짙은 어둠 속에서의 길찾기를 감내해도 되는 상태가 아니었다. 지도가 있는데 어둠속이라고 길을 못 찾을 리는 없을 것이었다. 아니, 굳이 지도를 찾을 것도 없이 낮에 왔던 길을 거슬러 가기만 해도 될 것이었다. 그러나, 모든 것이 아저씨의 건강하지 못한 몸 때문에 불가능하다는 게 문제였다. 아저씨는 지금 당장 휴식이 필요했던 것이다. 휴식을 위해 어딘가 쉴 자리를 찾아야만 했다. 쉴 자리란 말하자면, 아저씨에게는 찜질방이었던 것이다. 돌아가는 길 찾는 게 문제가 아니라 찜질방을 찾는 게 문제였던 것이다. 나는 그것을 나중에야 알았다. 두 사람이 눈에 불을 켜고, 특히 어머니가 거의 혈안이 되다시피 하며 찾았던 것이 결국 찜질방이었다는 사실을 나는 찜질방에 들어오고 나서야 알았던 것이다.
하여간 우리는 찜질방을 찾아 어둔 밤길을 헤맸다. 낮에는 그리도 눈에 잘 띄던 게 찜질방 간판이더니 어인 일인지, 목욕탕 간판은 보여도 찜질방 간판은 보이지 않았다. 그 며칠 전에 영동지방이 수해를 입어 도로 사정도 좋지 않았다. 차는 어느 순간 울퉁불퉁한 비포장도로를 달리기도 하고 한참 달려가다 보니 도로가 뚝, 끊겨 있기도 했다.
어머니는 거의 울음이 터질 것 같은 얼굴이었다. 정작 아픈 사람보다 어머니가 더 아픈 사람 같아 보였다. 찜질방을 찾느라 헤매는 동안 우리는 어느새 속초까지 내려와 있었다. 속초 시내를 헤매다 우리가 찾아간 곳은 환락가를 방불케하는 바닷가 피서지였다.
우리는 그날 밤, 드디어, 마침내 속초 바닷가의 한 찜질방에서 잤다. 물론 찜질방 입실료는 아저씨가 치렀다. 근사한 호텔은 못 되고 찜질방값은 치룰 정도는 된다는 거겠지, 하는 심사를 가질 수도 있었겠으나, 어머니나, 아저씨나 내 앞에서 호텔 대신 찜질방 가는 것에 대해 그다지 주눅들어하는 태도는 아니었다. 두 나이 든 연인들이 보이는 자연스럽고 정직한 태도에 비틀려지려고 했던 내 심중의 어느 곳이 오히려 스스로 무안해졌다고나 할까. 하기사 어쩌다 남아 있는 방이 있어 막상 호텔을 간다 해도 비용도 비용이려니와 난감하기는 세 사람 다 마찬가지일 터였다. 비용 절감 차원에서 한 가족인 척 한 방을 쓰자니 그렇고 비용은 생각하지 말자 하고서 두 방을 잡자니 ‘그것도 그럴 것이기’ 때문이다.
한여름 한밤중 휴가철의 찜질방이라니. 나는 그냥 그때 그 순간의 풍경을 참혹하다는 정직한 수사 대신에 ‘장관’이었다고 해두고 싶다. 여름 휴가철 휴가지의 한밤중 찜질방은 참 대단한 풍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일단 드넓은 광장이라고 해두자. 그 광장에 말 그대로 입추의 여지없이 들어찬 사람, 사람들이라니. 더구나 그 사람들이 모두 똑같이 하얀 티셔츠에 하얀 반바지를 입고서 한 치의 빈 공간도 없이 드러누워 있는 광경이라니. 어머니는 그 광경에 기겁을 했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어지럼증이 일었다. 어머니와 나는 동시에 아저씨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는 한눈에 봐도 병자 기색이 완연했다. 어머니나 나나 운전을 할 줄 모른다. 운전을 할 줄 아는 사람은 병자뿐이다. 그 병자는 지금 당장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순환이 안 되는 몸을 찜질로나마 풀어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는 곧 쓰러져버리고 말지도 모른다. 어머니와 나는 그날 밤의 이동은 더 이상 불가능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했다. 어머니와 나는 절망으로 후들후들 떨리는 심정으로 여탕으로 들어가고 그는 남탕으로 들어갔다. 우리는 한 시간 뒤, 찜질방 내 게르마늄방 앞에서 만나기로 했다. 그때 이미 시간은 새벽 한 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어머니와 나는 목욕탕 구석 자리로 갔다. 어머니는 언제나 어디를 가도 구석을 찾아들어가는 게 습관이 되어 있었다. 어머니가 사람들 한가운데로 들어가면 그 자리는 금방 어머니 혼자 남겨지기 십상이었다. 어머니는 전염병 환자가 아닌데도.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되도록이면 사람들 눈에 띄지 않는 구석으로, 구석으로 어머니는 들어갔다.
“엄마, 아저씨 어디가 좋아요?”
“안 좋아.”
어머니는 놀랍게도 안 좋다면서도 깔깔거렸다. 어머니 몸 어딘가를 누가 지금 막 간지럼을 태우고 있기라도 하는 것처럼.
“말도 없고 몸도 아프고 멋도 없고 돈도 없고, 뭐가 좋다고.”
어머니는 슬며시 딴곳을 바라보았다. 어머니 마음을 설명할 수 없을 때면 늘 그러듯이.
아저씨와 우리가 찜질방 안에서도 가장 귀퉁이 자리인 게르마늄방 앞에서 만난 것은 새벽 두 시. 찜질방 안은 한 시간 전보다 더 고요해졌다. 일부 쪽은 불도 꺼졌다. 게르마늄방 앞에서 만나긴 만났지만 이제부터 우리는 우리가 몸을 누일 만한 공간을 찾는 게 급선무였다. 목욕탕하고는 달라서 이상하게 찜질방은 구석 자리가 인기인 모양이었다. 우리가 마음 편하게 있을 만한 자리는 다른 자리보다 누워 있는 사람들의 밀도가 더 촘촘했다. 간신히 좀 헐겁다 싶은 공간을 찾긴 찾았지만 그곳은 헐거울 만한 이유가 충분한 곳이었다. 찜질방 안에서도 가장 밝은 매점 앞이자 화장실 옆이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하는 수 없다는 듯 그곳에 자리를 잡으려는 눈치였다.
“전 다른 곳을 알아봐야겠어요.”
어머니는 굳이 말리지도 않았다. 나는 두 사람의 눈을 피해 되도록 아주 먼 곳으로 갔다. 세 바퀴를 돌았는데도 자리는 나지 않았다. 나는 이따금 두 사람이 있는 쪽을 돌아보았다. 아무리 멀리 있어도 그쪽이 유독 환해서 두 사람의 일거수일투족은 멀리서도 환히 보였다. 처음에는 그럴 마음이 없었는데 그쪽이 워낙 환해서 두 사람을 관찰하고픈 묘한 호기심이 발동했다. 마침 두 사람과 정확히 대각선 쪽의 자리 하나가 비어 있는 것이 포착되었다. 이제 방금 조그만 여자 아이가 잠에서 깨어나서 울상을 짓다가 어디론가로 떠났던 것이다. 아이의 엄마나 아빠도 지금 저 환한 곳의 두 사람처럼 아이를 버려두고 이 찜질방 어느 구석에선가 두 사람만의 즐거운 시간을 갖고 있는 것일까. 나는 아이가 떠난 자리에 잽싸게 기어들어 갔다. 아저씨가 매점에서 계란과 사이다를 사고 있었다. 두 사람은 잠시 나를 찾는 시늉을 하다가 포기하고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나는 두 사람을 오래 바라보았다. 보기는 좋았다. 그런데도 알 수 없는 상실감이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것도 어쩔 수 없었다. 나는 그만 자리에 누워 눈을 감았다. 내가 막 잠이 들려는 순간, 어디선가 여자의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아니 그것은 비명이라기보다 거의 욕설에 가까운 고함 소리였다. 고요하던 찜질방이 순식간에 와글거리는 시장통이 되었다.
“왜 그래?”
“무슨 일이야?”
“어디서 그래?”
누군가 악을 쓴 여자가 있는 곳으로 재빠르게 갔다 와서 말했다.
“응, 웬 병신들이 지들도 사람이라고 육갑을 하고 있대나 뭐래나. 나원 참. 둘이 보듬고 와들와들 떨고 있드만.”
“징그럽구만.”
가슴이 쿵하고 내려앉았다. 나는 반사적으로 환한 곳을 바라보았다. 두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견딜 수 없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찜질방 안에서 남녀가 부둥켜안고 있는 모습은 예사풍경이었다. 그러나 그런 풍경도 장애인이 하면 징그러운 것이 된다. 남자 품안에서 와들와들 떨고 있던 여자가 결국 울음을 터트리고 있었다. 흔히 왜소증이라고 부르는, 어린 아이처럼 작은 몸을 가진 여자였다. 그런데 정작 내가 찾는 두 사람은 어디를 갔을까.
“어…… 엄마아.”
엄마아를 발음하는 바로 그 순간에 내 눈에서 갑자기 눈물이 비 오듯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엄마아, 엄마아.”
게르마늄방 문이 열리며 엄마가 나왔다.
“악아, 나 여깄어.”
어머니는 아저씨와 함께 게르마늄방에 있었다. 어머니는 적어도 ‘육갑’은 하지 않고 찜질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새벽에 화장실을 가려고 일어났는데 어머니 방에서 속닥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머니가 전화에 대고 경희 아줌마에게 속삭이고 있었다. 나는 소변을 보고 나서 어머니 놀랄까봐 물을 내리지 않았다. 어머니는 경희 아줌마하고든 누구하고든 통화를 할 때 한 번도 속닥이는 법이 없었다. 더구나 새벽 시간에 누구와 통화를 한 적도 없었던 것 같다.
“경희야, 난 어떡하면 좋니. 그 사람이 애와 자기 중 선택하래.”
나는 침을 한번 꿀꺽 삼켰다. 드디어 올 것이 온 모양이다. 나는 소리 안 나게 조심조심 소변을 보았다. 어머니, 걱정 마세요. 저도 이제 스무살이에요. 저도 이제 어머니 곁을 떠날 때가 됐죠. 근데 떠나면 어디로 떠난다지? 그는 그의 집에서 아직 애 취급을 받는 막내아들이다. 집은커녕 그만의 방도 없다.
“경희야, 내 나이 마흔다섯이야. 이번이 마지막일지도 몰라.”
그럴지도 모른다. 아저씨는 어머니의 처음이자 마지막 사랑일지도 모를 일이다. 어머니 나이가 꼭 마흔다섯이 아니래도 말이다.
“그럼 나보고 어떡하란 말이야.”
어머니 목소리가 격정으로 떨려나오고 있었다. 마흔다섯이래도 사랑을 하면 격정이 치밀어 오르기도 할 것이다. 스무살인 나의 사랑에는 없는 격정 말이다.
“그 사람은 영영 건강하지 않을지도 몰라. 그래도 난 포기할 수 없어.”
최악의 조건에서 최선의 사랑을 하고 있는 사람들은 그러나, 자신들의 상황이 최악임을 알지 못한다. 왜냐하면 사랑하고 있으므로. 사랑이 그 모든 최악의 조건들을 덮어버리므로.
“난 다른 건 다 버리고 살아왔어. 수정인 버릴래야 버릴 수 없었을 뿐이야. 수정이 빼놓고 버릴 수 있는 건 다 버렸어. 그치만 이번만큼은 안 돼. 내가 바보라는 건 나도 알지. 그치만 바보래도 그것만은 알 거야. 무엇이 진짜고 무엇이 가짠지를 말이야. 무엇이 사랑이고 무엇이 사랑이 아닌지를 말이야.”
난 이제 어머니에게서 나에 대한 그 어떤 모진 말을 듣는다 해도 열다섯 살 생일날 같은 일은 벌이지 않을 만큼은 컸다. 어머니가 아저씨를 버리지 않기를, 혹은 놓치지 않기를 나는 바랐다.
나는 화장실을 나와 내방으로 조심조심 옮겨갔다.
“그 사람이 그랬어. 자기를 놓치지 않으려면 애를 지우라고 말야.”
내가 내 방 문을 열려는 순간이었다. 나는 그 자리에 얼어붙어 버렸다.
“수정이한테도 창피하니까, 그냥 몰래 가서 지울래. 돈은 그 사람이 준댔어.”
애란 말하자면 내가 아니라, 엄마 뱃속의 아이였던 것이다.
“그 사람이 그랬어, 우리 나이가 몇인데 새삼스럽게 애한테 코를 꿰냐고. 즐기기만 하고 살기에도 모자랄 나이라고 말야.”
내 손이 부르르 떨려오고 있었다.
“그치만, 경희야, 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이번 임신이 마지막 임신이 될 수도 있잖아. 앞으로 다시는 이런 식으로 애기 가질 기회가 없을지도 모르잖아, 내 나이가 그렇잖아.”
“엄마, 내 가방 어디다 두셨어요?”
“무슨 가방?”
“왜 있잖아요, 내가 고등하교 때 썼던 책가방요.”
“야야, 니 고등학교 졸업한 지가 언젠데 아직도 그 가방을 찾고 있냐 야.”
“그 가방 좋은 거잖아요. 엄마가 옛다, 메이커 가방이다, 하면서 입학 선물로 사주셨잖아요.”
“야야, 널린 게 메이커인 세상이다 야. 메이커 같은 소리 하지도 마라.”
“꼭 메이커래서가 아니고, 그냥 그 가방이 맞춤할 것 같아서, 왜 작년 여름에 강릉 갈 때도 그 가방 가지고 갔잖아요.”
“어디 가니?”
“강릉이요.”
“강릉은 왜?”
“그때, 난 되게 좋았는데, 아저씨 땜에 제대로 놀지도 못하고 와버렸잖아요. 그래서 올핸 꼭 실컷 놀다오려고 친구들하고 약속했단 말예요.”
나는 어머니 얼굴을 바라보고 말했지만 어머니는 얼른 딴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가방은 말야, 나도 모르겠어.”
“할 수 없죠, 뭐. 그냥 아무거나 메고 가죠, 뭐.”
사실 가방이 무슨 대수란 말인가. 나는 내가 쓴 쪽지가 어머니 눈에 잘 띌 수 있도록 전화기 옆에 놓고 집을 나섰다.
‘엄마, 제 동생 낳아주세요. 그래도 이번 아이는 사랑해서 생긴 아이잖아요. 제가 보기에 이젠 사랑이 아닌 것이 확실하지만요.’
나는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야, 오늘 강릉 못 가.”
그가 팩 악을 썼다.
“왜?”
“안 가고 싶어.”
“너 마음이 변했구나?”
그와 오늘 강릉에 간다면 나는 오늘 중으로 귀가하지 못할 것이다. 귀가하지 못한다면 나는 그와 함께 밤을 나야 하리라. 그가 기대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그럼 뭐 하나 물어봐도 돼?”
“뭔데?”
“나 애기 가져도 되니?”
“뭐, 뭐라구? 야, 우리 나이가 몇 살인데, 애를 갖냐? 그냥, 즐기기에도 모자랄 나이에 애 가지고 누구 코 꿸 일 있어?”
전화를 끊었다. 나는 시장으로 갔다. 주문진 앞바다의 싱싱한 자연산 미역을 자루 가득 담아오면 좋겠으나, 우선 시장 건어물 가게에서 두툼한 산모용 미역 한 다발이라도 살 요량이었다. 나는 엄마가 내가 두고 온 쪽지를 발견할 수 있도록 집에 전화를 걸었다.
“엄마. 전화기 옆에 쪽지……”
“이미 봤어.”
“미역 사가지고 갈게.”
“벌써?”
“나 낳아놓고 못 먹었던 미역국, 이번에는 실컷 먹어보지 뭐.”
전화를 끊고 나서 나는 한참동안 시장통 한가운데 서 있었다. 장사하는 사람들이 외치는 소리, 손뼉 소리, 물건 흥정하는 소리들 틈에서 문득, 악아,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마른 미역이 주렁주렁 걸려 있는 건어물 가게로 들어갔다. 비리고 짜고 쓰고 그러고도 달콤한 듯한 냄새가 확 끼쳐왔다. 그 냄새는 바로 엄마와 내가 살아오면서 맺은 우정의 냄새인지도 몰랐다. 왜 말이 있지 않은가. 사랑은 가도 우정은 변치 않는다고. 하지만 변하지 않는 우정의 맛이란 그렇듯 비리고 짜고 쓰고 그러고도 달콤하기까지 한, 지독한 것임에는 틀림없었다.《문장 웹진/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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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리자
- 2025-05-01
뉴 잭 스윙 박서련 시작은 사이렌 소리였다. 일하던 사람들이 별안간 화들짝 놀라 공장에 불이라도 난 게 아닌가 두리번거리게 만드는 전주. 무슨 테이프인지, 가져온 사람은 또 누군지 같은 건 몰라도 하필 〈바꿔〉 시작 부분에 딱 맞춰 테이프를 감아 왔다는 점이 괘씸했다. 이정현을 좋아해서 공장 사람들과 함께 그 노래를 듣고 싶었든 단순히 전주 부분 사이렌 소리로 골탕을 먹이고 싶었든, 즉 선의든 악의든을 떠나 고의인 것만은 분명했으니까. 길고 신경질적인 전주 뒤 모두 제 정신이 아니야 다들 미쳐 가고만 있어는 동감이었지만 그 노래를 더 듣고 싶지는 않았다. 매우 계속 듣고 싶다, 계속 듣고 싶다, 그저 그렇다, 듣고 싶지 않다, 전혀 듣고 싶지 않다 중 뭐냐고 하면 씨발 제발 그만 틀어 정도. 귀를 막으려면 손이 한 쌍 더 필요했다. 기존 왼손은 작업판을 누르고 기존 오른손은 인두기를 조작해야 하니까. 이정현한테는 큰 감정이 없었지만, 좋고 싫고를 떠나 아무 생각이 안 들었지만, 테크노 댄스 테이프를 굳이 공장에 가져와 안 그래도 짜증 나는 야간 특근 시간에 튼 인간은 인두기로 대가리를 갈겨 주고 싶었다. 젊다는 건 뭘 모르는 거. 유행이랑 자기 취향을 구분 못 하는 거. 결정적으로, 자기한테 뭐가 맞는지 모른다는 거. 그런 젊음이 공장 안에는 썩어지게 넘쳐 났고 나를 그들과 구별 지을 힌트는 나 자신에게조차 보이지 않았다. 나는 씨발 너무 젊고 젊다는 게 이제는 조금 질린다. “오늘까지 이번 달 총 열일곱 날 일했고 하루에 열 시간 곱하기 이천이백 원, 곱하기 십칠 더하기 만근수당, 여기다가 특근수당 삼천 원 곱하기 이십일 시간···.” 귀에다 납땜을 해 버릴까 진짜. 시끄럽게 울려 대던 테크노 곡이 끝나고 조성모 노래가 나오기 직전 도요 언니가 근무 시간 내내 끊임없이 중얼대는 급여 셈법 소리가 들려왔고, 그러자, 비명을 지르지 않으면 기절해 버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만큼 화가 났다. 인두기가 기판 대신 왼손 엄지를 지지고 있다는 걸 조금 늦게 깨달은 것도 그래서였다. 잠깐이나마 열이 잔뜩 오른 머리가 300℃ 넘는 인두 팁보다 더 뜨겁게 느껴졌기 때문. 앗, 뜨거, 씨발, 나는 덴 엄지손가락을 반사적으로 입에 물었다. 이끼 낀 불상을 핥을 때나 날 듯한 기이한 맛이 혀에 닿았다. 인두기에 얇고 집요하게 눌어붙은 겹겹의 땜납 자국이 그제서야 떠올랐고 입에서 나온 엄지손가락 옆구리는 희고 퉁퉁한 모양으로 기괴하게 부풀어 올라 있었다. 그 꼴을 보고서야 화가 식었다. 몸 안에 꽉 차 있던 열기가 작은 틈을 찾아 새어 나간 것처럼 맥이 탁 풀린 거였다. 그래 씨발 관두자. 화내 봐야 나만 손해지. 멍청하게 인두기로 제 손 지지는 꼴을 어디 들키지나 않았을까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아무도 내게 관심이 없었다. 야 청승 맞다 노래 꺼라, 누군가 큰 소리로 지청구를 놓았고 또 누가 대거리를 했다. 조성모가 왜 싫으냐 네가 나가라. 이만 이천 곱하기 십칠은
- 관리자
- 2025-05-01
미시적 동물 서이제 아무리 비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이렇게까지 비가 내리는 건, 원치 않았을 것이다. 지난 새벽부터 내린 폭우는 온 세상을 뒤집어 놓았다. 하천은 범람했고, 교통은 순식간에 마비되었다. 지하철역이 폐쇄된 것은 물론이고 버스 운행마저 중단되었다. 지대가 낮은 지역에서는 자동차들이 배처럼 떠다녔다. 뉴스에서는 하루 종일 각 지역 홍수 피해 현황과 구조 소식을 보도했다. 강풍에 간판이 날아가고 백 년 된 나무마저 쓰러졌다고 했다. 곧이어 집이 침수되어 대피한 사람들의 인터뷰가 나왔다. 돼지나 오리와 같은 농가의 동물들이 물살에 휩쓸려 가는 모습이 나왔다. 누군가 휴대폰으로 촬영한 산사태 영상이 나왔다. 흙더미가 무너져 내리며 순식간에 도로를 덮치는 장면이었다. 지금쯤 너는 어떻게 되었을까. 무사히 살아남았을까. 혹시라도 흙더미 속에 완전히 파묻혀 버린 건 아닐까. 아마도 비가 그치기 전까지, 아니, 비에 젖은 땅이 다시 딱딱하게 굳어지기 전까지는 너의 생사를 직접 확인하기는 힘들 것이다. 슬프게도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집안에 틀어박혀 실시간 뉴스를 들여다보는 일뿐이었다. 비가 그치기만을 바라면서, 망가진 일상이 회복되기를 바라면서. 저녁에는 설상가상으로 전기마저 끊어졌다. 창문을 열어보니 온 세상이 어두웠다. 거리는 이미 시커먼 흙탕물에 잠긴 상태였고, 불 꺼진 신호등과 가로수만 물 위로 불쑥 솟아 있었다. 어디에서도 사람을 찾아볼 수 없었다. 아마 미리 대피했거나 꼼짝할 수 없이 집안에 갇혀 있겠지. 나 또한 물이 빠지기 전까지는 집 밖으로 한 발짝도 나갈 수 없었다. 그날 밤 무서운 꿈을 꾸었다. 집안까지 물이 들어왔던 것이다. 물은 점점 불어 침대 높이만큼 차올랐고, 나는 침대에 누운 채 흙탕물 아래로 가라앉았다. 얼른 몸을 일으키려고 했지만, 생각처럼 되지 않았다. 일어나려고 애를 쓸수록, 내 몸은 물에 젖은 스펀지마냥 점점 더 무거워지기만 했다. 어마어마한 물의 무게가 나를 짓누르는 느낌이었다. 잠에서 깨어난 후에도 그 느낌은 한동안 지속되었다. 거대한 힘에 짓눌려 꼼짝할 수 없었던 것이다. 손가락 하나도 까딱할 수 없을 정도였다. 폭우로 기압이 낮아진 탓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원래 비가 오면 항상 몸이 피로했으니까. 한편 창밖에서는 빗소리가 계속 들려왔다. * 엄마는 내게 화를 낼 때마다 아빠를 들먹이곤 했다. 너는 어떻게 네 아빠랑 하는 짓이 똑같니. 내가 아빠를 연상케 하는 게 불쾌하다는 듯이, 내게 눈을 흘기면서. 그러나 정작 아빠는 내가 엄마를 쏙 빼닮았다고 했다. 그래서 꼴 보기 싫다는 건지,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내가 생각하기에 나는 그 둘을 모두 닮아 있었다. 외모나 성격, 심지어 건강 상태까지.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도 않고, 딱 반반씩. 어디에선가 듣기로 자식은 부모의 얼굴을 닮는 게 아니라, 장기를 닮는 거라고 했다. 장기가 닮아 얼굴이 닮는 거라고. 아빠는 간이 안 좋았고, 엄마는 위와 갑상선이 약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불행한 사실은 둘 다
- 관리자
- 2025-05-01
저번까지 읽은 이후로 이어보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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