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척도 없이
- 작성일 2011-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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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척도 없이
김경주
문장이 기웃거리다가 떨어뜨린 깃털
새때에 걸려,
문장은 기척을 내기도 한다
내 얼굴에서 내려야 하는데
얼굴을 놓쳐버린
뺨처럼
문장은 행진곡을 못 듣고
횃불로 들어가 날을 샌다
기척도 없이
아무도 모르는 내 난동과
잘 지내야 하는데
기척도 없이
꿈속의 새가 내 베개에 침을 흘린다
침에게 기울고 있는 내 얼굴처럼
문장은 나의 타향살이다
자신의 영정 앞에 와서
기척도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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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리자
- 2025-06-01
저번까지 읽은 이후로 이어보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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