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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劇]늑대는 눈알부터 자란다

  • 작성일 2014-05-01

 


시극 <늑대는 눈알부터 자란다>는 김경주 시인의 시집에 실린 동명의 제목 시 「늑대는 눈알부터 자란다」에서 출발한 희곡입니다. 시극은 일반적인 희곡의 전개와 달리 시적인 언어와 알레고리적 전개를 통해 드라마를 구성해 가는 이야기입니다. 시극 <늑대는 눈알부터 자란다>는 2006년 연극실험실 <혜화동 1번지>에서 초연을 시작해 국내 무대에 여러 차례 공연되었으며, 일본에서도 매혹적이면서도 독창적인 희곡이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이야기가 있는 곳에 시적 질감을 채우고 언어를 비우고 그곳에 침묵의 질을 배치하며 독특하고 매혹적인 이야기를 전개해 가는 시극 <늑대는 눈알부터 자란다>는 총 3회에 걸쳐 3막으로 연재될 예정입니다.

 

 

 

[詩劇]늑대는 눈알부터 자란다

 

 

 

김경주

 

 

 

 

    이 극에서 인물은 늑대처럼 보일 수도 있고 늑대가 아닐 수도 있다

 

    때 : 아주 상이한 시간들이 충돌하는 시간

 

 

    등장인물

 

    어머니
    아들
    경찰1, 2
    여자
    새끼늑대 1, 2(인형)

 

 

    공간

 

어두운 숲 속,
죽은 나무의 뿌리 안
캄캄하다
여기저기 뿌리들이 치렁치렁 뻗어 나와 있다

 

똑똑

 

물방울이
떨어진다

 

천장에 매달린 박쥐들
입을 벌린다
침이 흘러내린다
똑똑

 

창밖은
어둡고 묽은 나무
간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벽엔
갈고리에 걸린
박제들

 

실험기구들
유리통에 담긴 내장들
피 묻은 캐비닛

 

정육점인 듯
실험실인 듯

 

똑똑

 

누군가
서성이면서
밖에서
문고리를
놓았다가
잡았다가

 

물방울 소리

 

똑똑

 

 

    1장

    어머니, 냉장고에서 무언가 꺼내 먹고 있다.
아들이 양팔이 헐렁하게 늘어진 옷을 입은 채 (두 팔이 없는 것이 강조해 보이도록 크고 헐렁할수록 좋다) 힘없이 등장한다. 아들, 어머니 똥구멍에 고개를 들이대며 코를 벌름거린다.

 

 

어머니     아니 얘야? 네가 집에 웬일이냐?

 

아들      제기랄, 어쩌다 보니 또 오게 됐네요.

 

어머니     그래도 전화 한 통 없이 이렇게 들이닥치면 어떡하니? 집 안에 내 남자친구라도 있었으면 큰일 날 뻔했잖아.

 

아들      전화할 돈이 없었어요.

 

어머니     이번에도 내 목을 조르고 돈을 가지고 달아날 생각이라면 포기하는 게 좋을 거야. 난 이제 빈털터리니까.

 

  사이

 

어머니     여긴 어떻게 찾은 거야?

 

아들      어머니 분비물 냄새가 나기에 혹시 하고 들어와 봤죠.
              전 어디서도 어머니가 흘려 놓은 냄새는 잘 맡잖아요.

 

  사이

 

어머니     입을 벌린 채              내가 비쩍 말라 죽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니?
             꼭 그걸 확인하려고 온 표정이구나.
             찾아오다니 너무했어.

 

어머니     (아들의 몸을 훑어보며) 아니 얘야. 그 팔은 어떻게 된 거냐?

 

  아들 흔들의자를 흔든다

 

아들      그냥 사고였어요

 

어머니     사고라니? 그게 무슨 소리냐? 말해 봐라. 덫을 밟은 게냐?

 

아들      잘 아시잖아요.

 

  아들 흔들의자를 흔든다

 

어머니     맞아! 그건 그냥 사고였어. 내가 널 가졌을 때 그것들만 안 먹었어도…….

 

아들      또 그 얘기. 어머니 이제 그 얘긴 그만 좀 할 수 없어요?

 

어머니     얘야, 우린 2년 만에 만나는 거란다.

 

아들      입덧 이야기를 하고 싶으신 거잖아요.

 

어머니     맞아 입덧! 네 아버지가 구해온 고 살모사를 먹는 게 아니었어.

 

아들      입덧 중에 산 뱀이 먹고 싶다고 하신 건 아마 어머니가 이 세상에서 유일할 거예요. 아버진 어머니에게 푸릇푸릇한 새를 먹이고 싶어 했지만.

 

어머니     난 정말 몰랐단다. 내 뱃속에서 제 어미 몸을 찢고 나온 그 살모사 새끼가 아직 뱃속에 있는 네 팔을 뜯어 먹어 버릴 줄은…….

 

아들      어머니 몇 번을 말해야 하죠? 그건 어머니의 추측일 뿐이에요.

 

어머니     무서웠을 거야. 난 밤마다 뱃속에서 이를 갈며 자고 있는 뱀을 느끼곤 했어.

 

아들      그건 어머니가 꾸는 악몽이었어요. 저도 뱃속에서 같이 꾸었는걸요.

 

어머니     얘야. 난 네가 그날 내 몸속에서 지르는 비명을 똑똑히 들었단다.

 

아들      전 무서워서 그 녀석들 앞에서 한 마디도 하지 못했는걸요.

 

어머니     난 기억한단다. 넌 내 뱃속에서 하루에 두 번 하품을 했고, 세 번 오줌을 누었고, 밤이면 우는 연습을 새벽이 올 때까지 십 초 간격으로 했지.

 

아들      사실 너무 오래되어서 기억이 잘 나지 않아요.

 

어머니     맞아. 그곳은 어둡고 캄캄했을 거야. 나도 이제 그곳에 있을 때가 기억이 안 나니까. 하지만 어두운 그곳보단 바깥세상이 더 낫지. 넌 그 안에 있을 때 작은 주먹으로 밖을 끊임없이 두드리곤 했단다. 이 어미가 창피해서 숲을 나돌아 다니지를 못할 정도였으니까. 그래도 네 아버진 내 뱃속에 새가 날아다닌다며 좋아하셨지.

 

  아들 갑자기 시무룩해진다
  집 안에 있는 박제를 둘러보며,

 

아들      아직도 죽은 짐승들을 주워 오세요?

 

아들      그럼 오죽 좋겠니. 씨가 말랐는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아.
              차에 치이거나 덫에 걸려 죽은 짐승들조차 보기 힘들어.
              똥구멍이 다 말라붙을 지경이야.
              이렇게 배고픔을 느끼고 사는 것보단 박제가 되는 편이 낫겠다.

 

아들      그래요. 차라리 저도 박제가 될 걸 그랬어요.

 

어머니     (한심한 듯 바라보며) 박제는 내다가 팔 수라도 있지.

 

  아들을 흘깃 보며

 

어머니     끼니는 때우고 다니냐?

 

  아들 고개를 좌우로 끄덕인다

 

아들      어머니 눈알들이 노려보는 것 같아요.

 

어머니     난 박제를 할 때 제일 먼저 눈알을 도려내. 아주 불쾌하거든.
             그건 네 놈 눈알을 볼 때마다 내가 생각하는 것들이기도 하지.

 

아들      썩지 않나요?

 

어머니     방부처리를 확실히 하니까. 내장을 한 점도 안 남기고 파낸 후 솜을 넣어 주지. (웃으며) 아마 살아 있을 때보다 더 따뜻하고 푹신할 거야.

 

아들      썩지 않나요?

 

어머니     방부처리를 확실히 하니까. 내장을 한 점도 안 남기고 파낸 후 솜을 넣어 주지. (웃으며) 아마 살아 있을 때보다 더 따뜻하고 푹신할 거야.

 

아들      썩고 있어요.

 

어머니     박제는 썩지 않아. 절대로.

 

아들      울지를 않는군요.

 

어머니     박제가 운다면 얼마나 끔찍하겠니?

 

아들      맞아요. 박제라도 해도 운명을 벗어날 수는 없을 거예요.
              제 팔은 아직 박제가 안 됐겠죠? 어디 있죠?

 

어머니     또 네 팔 이야기를 하려는 모양이지. 네 팔은 여기 없어.

 

아들     제 팔은 여기 있어요.

 

어머니     미친 녀석. 일 년 만에 집에 와서 한다는 소리가 고작 그것이냐?
            내 안에 널 하나도 닮지 않는 여자가 널 신고할지도 몰라.

 

아들      제 두 팔을 찾으러 왔어요.

 

어머니     팔 이야길랑 그만 하거라. 그딴 건 여기 없어.

 

아들      팔은 여기 있어요. 여기.

 

어머니     그만 하라니까.

 

아들      잘 들어 보세요. 소리가 들려요. 들리세요?

 

어머니     부탁이다. 제발 그만 해!

 

  “찍찍. 찍찍. 찍찍”

 

어머니     으악. 쥐다. 사방에 쥐가 득실거려. 어찌나 번식이 좋은지, 덫을 놓아야겠어. 난 쥐가 싫어. 쥐가 싫어.

 

  어머니 쥐덫을 사방에 설치한다
  아들 불안하게 사방을 돌아다닌다

 

  사이

 

어머니     그 사이 머리털이 많이 자랐구나. 이리 와서 앉아 보거라.

 

아들      싫어요. 자연에 순응하려면 본연의 보호색이 필요해요.

 

어머니     이리 와 앉아. 어서!

 

  아들 흔들의자에 가서 털썩 앉는다
  어머니 가위를 들고 머리털을 자르다, 실수로 아들의 귀를 자른다

 

아들      (이빨을 드러내며) 크앙-.

 

어머니     넌 아직 젊고 야성이 남아 있으니까 어디서든 널 표현할 때 날카로운 송곳니를 보여 드리거라.
            하지만 그게 주인을 물 수도 있겠다는 뜻으로 보여서는 안 돼.
            고분고분한 게 좋아. 누구든 배신을 쉽게 용서하지는 않거든.
            널 받아들인다는 건 그래그래, 꽤나 실.험.적.일 수 있을 거야.

 

아들      싫어. 안 해!

 

어머니     그래?

 

  또 반대쪽 귀에 상처를 낸다

 

아들      크앙.

 

어머니     미안하구나. 귀가 걸리적거려서 그래. 이놈의 귀만 없으면 이발은 정말 쉬울 텐데.

 

아들      어머니!

 

어머니     알았다. 조심하마. (조심스럽게 가위질)
            이번엔 어떤 여자를 만났기에 이렇게 오래 걸린 거냐?

 

아들      앞이 안 보이는 여자였어요.

 

어머니     장님이란 말이야?

 

아들      네. 그 여자 앞에서 전 바지를 내렸어요. 그리곤 제 물건을 만져 보라고 했어요.

 

어머니     설마 그 여자에게 줘버린 건 아니겠지?

 

아들      아니요. 주지 않았어요.

 

어머니     잘했다. 어렵게 보관한 건데 길거리 여자에게 주려거든 차라리 나한테 다오. 그래……. 여자는 어떤 여자니? 앞이 안 보이는 것 정도는 별로 큰 문제가 아니야. 입은 맞추어 봤니?

 

아들      누군가의 입안에 혀를 넣어 본 건 처음이었어요.

 

어머니     (웃으며) 난 아냐.

 

아들      그 여자의 고향으로 인사를 드리러 갔었어요. 그런데 가족이 전부 눈이 안 보이더군요.

 

어머니     저런 잘생긴 네 얼굴을 아무도 못 봤겠구나. 하긴 네 모습을 봤다면 기절을 했을지도 모르지.

 

아들      티브이를 보고 계시다가 제가 나타나니까 벽을 더듬으면서 제가 있는 쪽으로 다가오더군요.

 

어머니     그래?

 

아들      제 얼굴을 돌아가시면서 한참 동안 만지작만지작 거리셨어요. 아랫목을 내주며 편하게 앉으라고 하더군요. 그러곤 두 손을 내밀고 제게 악수를 청하셨죠.

 

어머니     친절하기도 하지. 손을 뜨겁게 잡고 험난한 인생을 헤쳐 나가는 법을 들려주셨을 거야.

 

아들     어머니! 저는 한 번도 악수를 해본 적이 없어요.

 

어머니     맞아! 너는 악수를 해본 적이 없지. 그렇다고 예의를 못 갖추는 법은 없는 거야. 그래서 어떻게 했니?

 

아들      (의자에 앉은 채 두 다리를 들며) 두 발을 손에 공손히 올려 드렸죠.

 

어머니     잘했구나. 발이나 손이나 우리에겐 그게 그거지.

 

아들      제 발을 바닥에 슬며시 내려놓은 후, 손을 한번 꼭 잡아 주고 싶다고 하시더군요.

 

어머니     맞아. 화목한 가정은 원래 서로 손을 자주 잡아 준다고 하더구나.

 

아들      (발을 들어 올리며) 그래서 이번에도 두 발을 손바닥에 올려 드렸죠.

 

어머니     공손히?

 

아들      네. 헤어지라고 하시더군요. 지금 당장 자기 집 안에서 꺼지라고 하셨어요.

 

어머니     그게 무슨 소리냐? 처음 본 너를 그렇게 대접했단 말이냐?

 

아들     자기 딸은 눈물을 닦아 줄 수 있는 남자가 필요하다고 하더군요.

 

어머니     불량한 것들. 그래서 뭐라고 했니?

 

아들      이미 충분히 두 발로 닦아 주고 있다고 했죠.

 

어머니     필요하다면 지금 당장 보여줄 수도 있다고 했어야지.

 

아들      아! 그건 생각 못 했어요. 역시 저는 어머니를 따라가기엔 아직 멀었어요.

 

어머니     멍청한 것. 그래 이번에도 퇴짜를 맞은 게냐?

 

아들      둘이 살면서 세상이 힘들 땐 어떻게 견딜 거냐고 묻더군요.

 

어머니     천천히 생각해 보고 메일이나 편지로 답장 드린다고 했어야 했다.

 

아들      지금 당장 말해 보라고 그러셨어요.

 

어머니     씩씩하게 대답했어야 했다.

 

아들      제가 눈물이 나올 땐 눈물을 흘리고 있지 않다고 말해 주겠습니다.
             그녀가 눈물을 흘리고 있으면 눈물이 보이지 않는다고 말해 주겠습니다.
             이렇게 말했죠.

 

어머니     훌륭하다만 널 사위로 받아들였으면 그분들은 눈을 못 감고 죽었을 거야.

 

  사이

 

어머니     그래 결국 두 팔이 없는 이유 때문에 헤어진 거냐?

 

아들      그런 셈이죠.

 

어머니     넌 매사를 그렇게 쉽게 포기해서 문제다. 끝까지 부모님 발을 붙잡고서라도 사정했어야지.

 

아들      어머니, 저는 그런 건 어머니한테 배운 적이 없어요.

 

어머니     융통성이 있어야지. 다음부턴 필요하다면 발이 손이 되도록 빌거라. 그렇게 약해 빠져서 어디 국물이라도 얻어먹겠니?

 

아들      다음부턴 눈물을 흘리지 않는 여자를 만나는 편이 낫겠어요.

 

어머니     눈물을 흘리지 않는 여자는 없어.

 

아들      그럼 스스로 눈물을 닦을 줄 아는 여자를 고르죠.

 

어머니     그런 여자는 너 같은 병신을 좋아하지 않을 거다.

 

아들      병신? 그래요. 어머니 하지만 제가 그 집을 나오려고 할 때 그분들은 모두 눈물을 흘리셨어요.

 

  어머니 물 한 잔을 따른 후, 아들 쪽으로 온다

 

어머니     티브이 연속극을 다시 보기 시작했나 보지?

 

아들      벽 구석으로 모여들더군요. 구더기들처럼요.

 

어머니     네 목소리가 어땠니?

 

아들      저야 계속 으르렁거리고 있었죠.

 

어머니     얘야, 날 안아다오.

 

  어머니 아들을 버럭 안는다

 

어머니     좀 더 세게.

 

아들      갑자기 왜 그러세요? 어머니!

 

어머니     (웃으며) 그래 그분들 눈물은 닦아 드리고 나왔겠지.

 

아들      당연하죠. 다들 앉으시라고 한 뒤에 두 발로 닦아 드렸지요.

 

어머니     장하구나. 내 아들. 널 못 보았다고 하더라도 확실히 죽였어야 했다

 

아들      아직도 이빨에 피가 묻어 있나요?

 

어머니     아~ 해보거라.

 

  아들 입을 벌려 준다

 

아들      아~

 

어머니     세 번째 송곳니에 살점이 조금 붙어 있네.

 

아들      나머진 개들에게 던져 줬어요.

 

  아들을 끌어안고 포옹한다
  아들 갑자기 시무룩해진다

 

어머니     왜 그러니? 얘야.

 

아들      아니에요. 돌아다니면서 날것만 먹었더니 머리가 아파서 그래요.

 

어머니     (물을 먹여 주며) 물로 헹구어라.

 

  아들 입을 헹군다
  아들 발랑 바닥에 눕는다
  어머니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 한 잔 더 아들에게 물을 먹여 준다
  잠시 후 아들 눈치를 슬슬 보기 시작한다

 

어머니     얘야. 너도 이제 그만 쏘다니고 집안일을 좀 거들 때가 되었잖니?

 

아들      제 꼴을 좀 보세요. 이래 가지고 무슨 일을 하겠어요.

 

어머니     네 꼴이 어떻다고 그러니? 겨우 팔 두 개가 없을 뿐 그것만 빼면 넌 정상이야. 괜히 기죽고 다니지 말거라. 세상에 입으로 할 만한 일은 많아.

 

아들      전 사기꾼이 될 수 없어요. 지난번처럼 금방 들통 날 거예요.

 

어머니     그건 네가 연습이 부족해서 그래. 지난번처럼 연습하다가 도망가지만 않으면 된단다. 연습하면 돼. 팔이 없으면 입이라도 살아 있어야지.

 

아들      전 이제 아무 일도 하지 않겠어요.

 

어머니     그게 무슨 소리냐? 이 어미를 굶어 죽일 생각이냐? 자해공갈단은 그렇게 나쁜 일이 아니야. 너처럼 병신들을 차로 치고 나면 사람들은 더 동정을 베푸는 법이야. 넌 차에 받히고 나서 고통스러워하고 나중에 흥정을 하기만 하면 돼. 병원에 누워서 발가락으로 돈을 셀 수 있을 거야.

 

아들      지난번에 돈은 충분히 받아냈잖아요.

 

어머니     그건 이 년 전에 다 썼단다.

 

아들      서커스단에서 공을 입으로 굴리고 보내 드린 돈은요?

 

어머니     그건 너하고 서커스단 구경 가느라고 다 썼지.

 

아들      공장에서 전구알을 입으로 날라서 보내 드린 돈은요?

 

어머니     그건 집 안의 전구들을 모두 갈아 끼우는 데 썼지.

 

아들      어머니 두 팔 없이 할 수 있는 일은 그다지 많지가 않아요.

 

어머니     말하는 게 젊었을 적 네 아비하고 똑같구나. 여자 똥구멍이나 쫓아다니고 평생 빌어먹을 팔자야.

 

아들      아버지가 누구죠?

 

어머니     저기 산 속에서 어슬렁거리고 있는 분이 네 아버지야.

 

아들      (창밖을 바라보며) 안 보이는데요.

 

어머니     아버지는 항상 숲 속을 어슬렁거려.

 

아들      아버지는 몽상가인가요?

 

어머니     네 아버지는 시인이다 몰랐니?

 

아들      어머니, 전 아버지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요.

 

어머니     조금 있으면 이곳이 그리워서 언덕에 올라 똥구멍을 쳐들고 울고 계시는 소리가 들릴 거다. 유령처럼 말이다.

 

  아들은 창밖을 내다보다가 길게 운다

 

아들      아버지도 어머니 똥구멍을 킁킁거렸나요?

 

어머니     네 아버지도 그랬지.

 

아들      아버지가 그랬다니 믿어지지 않아요.

 

어머니     우린 외롭다는 표시로 서로 똥구멍을 벌려 보여주었다.

 

아들      어머니, 웃음이 나와서 참을 수가 없어요.

 

어머니     난 열아홉에 집을 나와 갈 곳이 없어서 숲 속에서 잠을 자고 있는데 네 애비가 다가와 내 항문에 대고 코를 벌렁거리더구나. 그러곤 내 귀에 대고 이렇게 속삭였다.

 

아들      뭐라고요?

 

어머니     같이……. 살자…….

 

아들      속아 넘어간 거군요.

 

어머니     네 아버지는 외로워 보였다. 밤마다 찾아와 내 똥구멍을 자꾸 핥았거든

 

아들      짐승!

 

어머니     원래 짐승들은 외로우면 서로 똥구멍을 보여주는 거야.

 

아들      그 정도는 저도 이제 똥 누면서도 깨달을 수 있어요.

 

어머니     네가 밖으로 돌더니 이제 똥구멍으로 숨 쉬는 법을 좀 배웠구나.

 

아들      그러곤 어떻게 됐어요?

 

어머니     우리는 결국 같은 곳에 똥을 누게 되었지. 같이 산다는 건 같은 곳에 똥 누자는 거야. 그리고 너와 누이들을 이곳까지 물어다 나르는 꼬박 삼십 년 동안 우리는 열심히 침을 흘렸지. 그 사이에 네 아버진 우릴 먹여 살리기 위해 공장에서 발이 두 개나 잘려 나갔단다.

 

아들      어머니 아이디어였죠! 재해보상금을 노리고 아버지가 기계에 스스로 두 발을 넣으시도록 하신 거죠. 그건 지금 생각해도 근사한 계획이었어요.

 

어머니     맞아. 그렇게 하지 않았으면 우린 모두 굶어죽었을 거야.

 

아들      어머니 그런데 전 어쩌죠. 두 팔이 없이 태어났으니 가족에게 보탬도 못 될 것 같아요.

 

어머니     잘 생각해 보면 네가 할 수 있는 일이 분명 있을 거야.

 

아들      음모를 생각해 봐야겠군요.

 

어머니     그래. 하지만 네 음모로 네가 죽을 수도 있는 것이 삶이야.

 

아들      무슨 말이죠?

 

어머니     네 아버지가 떠나기 전 내 입에 물려주고 간 쪽지 내용이야.

 

아들      아버지가요?

 

어머니     그래. 네 아버진 알 수 없는 말들만 남기고 집을 떠나버렸지.

 

아들      왜죠?

 

어머니     먹고 살기도 벅찬 판에 한 집에 병신을 둘이나 둘 순 없지 않니?

 

아들      …….

 

어머니     …….

 

아들      그러게 절 왜 유괴했어요?

 

어머니     유괴라니? 못 하는 소리가 없구나. 지 자식을 유괴하는 어미가 어디 있니?

 

아들      전 유괴당한 거예요. 아니 어머니가 이 세상으로 유괴한 거예요. 차라리 배 안에 있을 때가 더 좋았어

 

어머니     (화를 버럭 내며) 난 그런 적 없다니까. 그리고 널 안 낳았으면 넌 내 피가 되었을 거야. 오줌과 함께 질질 다리로 흘러나와서 버려졌겠지.

 

아들      어차피 병신으로 나왔잖아. (자신의 몸을 보면서) 이렇게요

 

어머니     차라리 날 죽여 달라고 낳자마자 말을 하지 그랬니? 먹고 살기 힘든 판국에 낳아 줬더니 이제 와서 한다는 소리하고는. 너처럼 배은망덕한 놈하곤 더 이상 통화하고 싶지 않다.

 

아들      어머니! 전 어머니 앞에서 대화를 하고 있는 거예요.

 

어머니     미안 미안. 난 갈수록 정신이 없구나.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어 본 게 몇 달 만이라서 그래. 이게 다 없이 살아서 그래. 천해진 거지.

 

  사이

 

아들      이게 무슨 냄새죠?

 

어머니     네 여동생들이 무서워서 바닥에 오줌을 쌌나 보다.

 

아들      오줌 냄새가 지독하군요, 벌벌 떨던 그 장님들처럼.

 

어머니     네가 죽인 그 사람들을 말하는 거냐? 그 시체들을 찾는 데 사람들은 결코 오래 걸리지 않을 거야. 군인이나 경찰관들이 몰려들 거라구. 넌 경찰관을 무서워하지?

 

아들      총을 가졌으니까요.

 

어머니     네 이빨 자국이 난 것들을 저기 <중앙>에 보내면 넌 종신형이야. 총을 든 사람들이 널 감시할거야. 그러니 날 돕는 게 좋을 거다.

 

아들      싫어요.

 

어머니     총이다. 탕. 탕. 탕.

 

아들      제발 .그 소린 그만. 어머니 전 총이 싫어요. 전 총소리가 싫어요. 총소리가 들리면 전 제정신을 차릴 수가 없어요.
     (그림자 극: 새가 날다 총소리 울리면 허공으로 추락한다. 짐승이 뛰다 총소리 울리면 맥없이 쓰러진다. 난무하는 총소리)
              알았어요. 어머닌 늘 저를 빠져나가지 못하게 하는군요.
              전 아직 어머니를 따라가려면 멀었어요.

 

어머니    세상의 어떤 밤도 총소리가 완전히 사라진 날은 없었어.

 

아들      울음소리도요.
     (철장-새장- 안에 새끼들이 낑낑거린다)

 

어머니     이리 와서 인사해라.

 

아들      됐어요. 또 얼마 못 가서 떠날 건데요.

 

어머니     이번엔 다르다. 이것 보라. 눈동자에 벌써 살이 오르고 있잖니.
             네가 나가 다시 돌아올 때 즈음엔 살이 토실토실할 거다.

 

  어머니 다가가서 늑대 인형을 하나씩 들고 혀로 핥아 준다

 

아들      집 안에 먹을 것도 없는데 자꾸 새끼들은 왜 낳으세요?

 

어머니     난 이제 힘이 없어 먹이를 스스로 구할 수 없단다. 이 녀석들이 날 먹여 살려 줄 거야. 그러지 말고 와서 손이라도 한번 잡아 줘.

 

아들      공포 때문에 금방 죽을 거예요.

 

어머니     인형들 귀를 막으며) 동생들이 듣겠다. 계속 그렇게 지껄이면 싸대기를 날려 주겠어.

 

아들      어차피 전 손을 잡아 줄 수도 없잖아요.

 

어머니     넌 너무 비관적인 게 문제야. 네 아버지가 싸질러 놓고 간 우주를 하나도 안 닮았어.

 

아들      우주라뇨?

 

어머니     내 우주에 들어오면 위험하다. 이렇게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아들      그건 무슨 말이죠?

 

어머니     나도 잘 몰라. 나한텐 지구에 사는 일도 너무 어려워.

 

아들      아버지는 언제 오시나요?

 

어머니     네 애비는 오지 않아. 거리에서 유괴 당했으니까.

 

아들      유괴는 아이만 당하는 거예요. 아버질 누가 유괴했죠?

 

어머니     나도 몰라. 하지만 아버지보다 무섭고 강한 우주였을 거야.

 

아들      어머니, 제 우주도 밤마다 끙끙 앓고 있어요.

 

어머니     그 생각이 방금 든 거라면 금방 사라질 거야.

 

아들      세상의 모든 장례식보다 오래됐어요.

 

어머니     그 아들에 그 아비구나. 무슨 소리인지 통 모르는 말만 하는 걸 보니.
             그보다 얘야, 너도 뭘 좀 먹어야 하지 않겠니? 그래야 일도 도울 수 있지. 그 사이 얼굴이 반쪽이 됐구나.

 

아들      젖이나 좀 주세요.

 

어머니    이리 오거라.

 

아들      (젖을 먹다가 갑자기) 쉿!

 

  멀리서 사냥개들 짖는 소리

 

어머니     뒤를 밟혔구나. 이를 어째.

 

  어머니 새끼들을 철창에 집어넣고 귀를 쫑긋한다. 사냥개들 짖는 소리 점점 커진다

 

아들      젠장! 사냥꾼들이 냄새를 맡았나 봐요. 가봐야겠어요.

 

어머니     위험해. 바깥세상은 개새끼들투성이야. 난 나가지 않겠어.

 

아들      쉿! 조용히 좀 하세요.

 

어머니     싫어. 싫어. 난 개가 싫어. 난 쥐가 싫어.

 

  사냥개들 짖는 소리 점점 커진다

 

- 암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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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장웹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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