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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상

  • 작성일 2016-02-01
  • 조회수 6,368



문상




김금희



삽화-문상


부음을 듣고 대구로 내려가면서 송은 희극배우의 잘못된 선택들에 대해 생각했다. 희극배우는 자기 인생이 그런 선택의 연쇄이며 그런 연쇄들 끝에 희극배우가 됐다고 했다. 시작은 아주 작은 세포에 지나지 않았을 때 실수로 남자가 돼버린 것이었다. 송이 그런 걸 기억해요? 그런 걸 어떻게? 하고 마지못해 궁금해 하자 희극배우는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기억합니다, 라고 말했다.
“나는 코가 자라는 줄 알고 잡아당겼어요, 그랬다가 그만 남자가 된 거죠.”
“남자가 왜요?”
“남자라서 괴롭습니다.”
“남자가 뭐가 괴로워요? 여자가 죽을 맛이죠.”
“아니에요, 정말 남자란, 괴롭습니다.”
실제로 희극배우는 우울한 사람이었다. 무기력했고 일 처리에 능숙하지 못했으며 건망증도 심했다. 계절에 상관없이 옷을 입고 늘 불면에 시달렸다. 그런 건 우울증의 증상이라고 송은 생각했지만 쉬셔야 해요, 쉬셔야 한다고요, 라고만 충고했다. 그러면 희극배우는 젖은 빨래처럼 축 처져 있다가도 자리에서 일어나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래 봤자 극단의 소극장으로 돌아가거나 시장에서 순대 한 접시를 놓고 술이나 마실 거면서 말로는 바빠요, 일이 많아요, 하며 스위치가 켜진 로봇처럼 뻣뻣하게 걸어갔다. 그러지 않으면 삼십 분이고 한 시간이고 재단 사무실에 앉아 신세한탄을 하니까 어떨 때 송은 그만 가주었으면 하는 생각에서 쉬셔야 해요, 하고 한마디 했다. 사람이 고장 난다고요.
재단에서는 4년째 희극배우의 연극을 지원하고 있었다. 그가 사무장을 맡고 있는 극단은 일 년에 두세 차례 공연을 올리기는 했지만 그보다는 재단의 지원에 적지 않게 기대고 있는 상황이었다. 특히 극단에서 매년 기획하는 시민참여형 연극은 꽤 유명하고 호응도 좋은 사업이었다. 시민들의 참가 신청을 받아 여름부터 연습하고 연말 무대에 올리는데 사실 희극배우의 수입이란 그 과정에서 받는 기획료가 전부였다. 송이 매해 담당자였기 때문에 그와 가장 친했고 그래서 멀리 문상을 가게 된 것이었다.
오랜만에 기차를 탄 송은 개찰구에서 표 검사를 안 해서 놀랐다. 하기는 대학에서 엠티를 간 이후로 기차를 탄 적이 없었다. 여행을 잘 가지 않기도 했지만 기차를 좋아하지 않는 편이기도 했다. 오늘도 차를 정비소에 맡기지 않았더라면 운전을 했을 것이다. 송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좌석에 앉았다. 역방향 좌석이라서 출발과 동시에 어디론가 거꾸로 빨려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아버지가 부산 출신이라서 어린 시절 송은 자주 기차를 탔다. 무궁화이거나 비둘기이거나 하는 이름이었을 그 기차의 좌석은 푸른 인조 벨벳 천으로 되어 있었다. 그 보드라운 천에 얼굴을 대고 장시간 버텨 봤자 송을 맞는 것은 아파서 늘 누워 있는 조모의 무관심한 눈길뿐이라서 그 여행이 그렇게 좋지는 않았다고 송은 기억했다. 조모가 불행하게 세상을 떠나서일지도 몰랐다. 송이 열한 살 때 조모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삼촌들이 조모를 부산이 아닌, 장남인 송의 아버지가 있는 서울로 옮기기로 결정한 날의 일이었다. 그것은 남은 이들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주었다. 송 역시 그 일에 대해 생각을 하다 보면 마음이 난폭해지곤 했다. 그것은 실체가 있는 대상이 아니라 실체는 없지만 힘은 가지고 있는 무언가를 향한 것이었다. 이를테면 바람, 막 출발한 대구행 KTX가 지나면서 일으키는 이 광포한 바람, 흩날리는, 승강장 사람들의 머리카락과 현수막, 그리고 바람이 끝난 뒤에 찾아오는 정적 사이에서 느껴지는, 살아 있다는 것. 진행되지만 실감할 수는 없는 그것을 모멸하고 난폭하게 굴고 싶은 마음.


기차는 한 시간도 안 돼 대전에 도착했다. 기차가 정차했다가 떠나는데 가락국수 부스가 있었다. 부산에서 서울까지 오다 보면 기차는 대전에서 길게 정차했고 그러면 송의 아버지는 가락국수를 사왔다. 아버지가 기차에서 내리고 국수를 사들고 오기까지 송은 아버지가 기차를 놓칠까 봐, 영영 플랫폼에 남게 될까 봐 긴장했다. 그래서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는 아버지의 뒷모습을 눈으로 애타게 뒤쫓곤 했다. 아버지는 1980년대 남자들이 대개 그랬듯 귀밑까지 좀 길게 머리를 기르고, 마르고, 까맣고, 값싼 천의 양복바지를 입었으므로 얼마 못 가 더는 구별되지 않았다. 한번은 아버지가 미처 못 탔는데 기차가 떠난 적도 있었다. 그때 아버지가 급하게 다른 칸에 올라탄 줄도 모르고 송은 새파랗게 질려 울었다. 어린 시절 자신의 그런 애착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송은 좋아하지 않았다. 마음이 엉망이 되곤 했기 때문이다.
송은 희극배우가 보낸 문자메시지를 확인했다. 오시기 전에 연락을 주세요. 형제들이 다 똑같이 생겨 분간을 못 합니다. 송은 피식 웃으면서 지금이 농담할 상황인가, 생각했다. 알겠습니다 하고 답을 보냈지만 먼저 연락하고 나타날 생각은 없었다. 원래 문상은 경황이 없는 상주를 짧게 일별하고 오는 것이니까, 그런 것이니까 문상은.
동대구역에 내려서는 곧바로 택시를 탔다. 낮이라 그런지 장례식장에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희극배우와 형제들은 정말 생김새가 비슷했지만 헷갈릴 일은 전혀 없었는데 희극배우만 상복을 입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왜 그런지 짙은 파란색 양복을 입고 있었다. 희극배우는 형제들 옆에서 주눅이 든 사람처럼 서 있다가 송을 보자, 송 혀엉, 했다. 송은 가방에서 부의금이 든 봉투들을 꺼내 함에 넣고 절을 했다. 육개장과 편육, 떡을 앞에 두고 희극배우는 송과 앉았다. 혼자 온 송이 걸리는지 조문객이 와서 형제들이 곡을 하는데도 가지 않았다. 가만히 보면 뭔가 할 말이 있어서 그런 것 같지는 않고 오히려 무슨 말을 듣고 싶은 것 같았다.
“손님 왔는데 가보셔도 돼요.”
“나는 곡 안 해요.”
“왜요?”
“크리스찬이에요.”
“교회를 다녔나요?”
“어제부터 다닙니다.”
“어제요?”
“다니기로 했습니다.”
“왜요?”
“귀신소리 내기 싫어서요.”
희극배우는 파마기가 있는 머리를 귀 뒤로 넘기면서 희잉희잉 웃더니 시무룩하게 편육 한 점을 집어 먹었다. 정말 종잡을 수 없는 사람이라고 송은 생각했다.
“아버지는 정정했어요. 얼마나 정정했냐면 형들이 치매 등급을 받아 정부 지원을 좀 받을 요량으로 아버지한테 치매인 척하라고 했거든요. 그런데 보건소 사람들이 오면 더 또릿또릿하게 묻는 말에 대답하려고 노력한 겁니다. 이게 뭐예요? 거울! 몇 살이세요? 일흔! 실제론 더 됐지만 아버지는 언제나 일흔, 칠학년, 이라고 했으니까. 등급이 안 나와 지원을 못 받으니 형들이 평생 살던 고향에서 시내 요양병원으로 보내버리더라고요. 형들은 그게 치매라고 하던데요. 그렇게 하기로 꿍꿍이를 꾸미는 거 사람이면 다 하는 건데 이해를 못 하니까. 송 형 생각은 어떻습니까?”
“네? 뭐를요?”
“온정신이에요? 아니에요?”
희극배우는 화가 나 있는 것 같았다. 상처받은 것 같았고 상처 주고 싶은 것 같았다. 그런 사람의 마음은 조급하고 불안하다. 그때 형제 가운데 가장 풍채 좋은 남자가 희극배우를 불렀다. 한 무리의 문상객이 새로 왔고 그중 아재라 불리는 노인이 있었다. 희극배우는 안 가려다가 노인이 부르자 잠깐만요, 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노인은 이기 막내 맞제, 하면서 희극배우 앞으로 다가섰다. 희극배우가 인사를 하고 노인이 손을 내밀어 악수를 하는 동안 희극배우가 어려서 아주 공부 잘하는 아이였다는 얘기와, 여기서는 서울에서 교수를 한다고 알려져 있다는 얘기가 문상객들 사이에서 흘러나왔다. 희극배우는 연극을 전공했지만 무언가 정치적인 이유에서 공부를 그만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 정치적 이유가 무엇인지는 정확하지 않았다. 희극배우는 보수적인 색채의 예술단체에서 사무국장으로 일한 적이 있었고 그 반대편 단체 사람들과도 가깝게 지냈기 때문이었다. 송은 사실 그렇게 학교를 그만둔 것이 정치적 이유보다는 괴팍한 성미 때문이 아니었을까 추측하고 있었다. 어느 밤, 술에 잔뜩 취한 희극배우가 보도블록에 걸터앉아 누구와 통화하면서 알잖아, 나 젊었을 때 알잖아, 하고 말하는 것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벚꽃이 하늘하늘 지는 봄밤이었는데 희극배우는 바닥에 주저앉아 나 옛날에 나쁜 놈이었잖아, 나빴잖아, 넌 알잖아, 하고 따졌다. 너무 진지하고 간절하게 물어서 지나가던 송이라도 그래, 넌 나빴어, 아주 나빴어, 동의해 주고 싶을 정도였다.
“호상은 무슨 호상입니꺼? 호상 아입니더, 죽상입니더.”
노인이 형제들에게 이만 하면 호상이라고 인사하자 희극배우가 불쑥 말했다.
“죽상?”
“지 얼굴이 죽상 아입니꺼.”
희극배우의 말에 아무도 웃지 않고 오로지 송만이 사이다를 마시다가 훅, 하고 사레가 들렸다.
“나는 형들이 나쁘다, 아부지한테 아주 나쁘게 했다 이래 생각합니다.”
이어서 희극배우는 송에게도 한 이야기를 아버지 말투 ― 마치 큰 새의 짖는 소리 같은 ― 를 흉내 내며 전했는데, 의도와 달리 문상객들은 물결처럼 잔잔하게 웃었다. 치매 등급을 받으려는 아들들의 분투와 그것과 상관없이 한 인간으로서 자신이 그렇게까지 되지는 않았음을, 그렇게까지 모든 것을 잃지는 않았음을 증명하려는 상황이 충돌하면서 웃음을 자아냈다.
“살아생전에 좀 잘하지, 코빼기도 안 비차 놓코는 말은 많다.”
형제 중 하나가 면박을 줬고 장례식장은 다시 웅성임이 이는 평상의 분위기로 돌아갔다. 그 틈을 타 송이 일어섰고 배웅을 하려는지 희극배우가 따라나섰다.
“서울로 갑니까?”
“네, 그래야죠.”
적당한 순간에 인사를 하고 택시를 타려는데 희극배우가 계속 따라왔다. 배웅하려는 게 아니라 그 자리가 싫어서 나와버린 모양이었다. 언제 인사를 해야 하나, 언제쯤, 올라가서 다시 봐요, 하면서 언제. 큰길로 나와 송이 인사를 하려고 하자 희극배우가 잠깐 시간을 내줄 수 있느냐고 했다. 송은 거절하려다가 좀 전의 상황도 있고 해서 그래요, 하고 승낙했다. 문상을 온 길이니까 한두 시간 늘어진다고 그렇게 나쁜 상황이 되는 건 아니었다.
올 때는 몰랐는데 병원 바로 옆이 서문시장이라고 하는 큰 재래시장이었다. 희극배우는 어디 조용한 데 가서 이야기하자면서 송을 시장 안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시장은 송이 그때껏 봤던 어느 시장보다도 커서 길이 끝도 없이 분화되고 연결되었다. 낡은 건물 동에는 수십 개의 보세상점들이 입점해 있었는데 그 건물과 건물 사이에도 공중다리가 놓여 연결되고 있었다. 국수와 순대 같은 간식거리들을 파는 노점을 지나면서 송은 두리번거리며 어디서 나는 냄새인지 찾았다. 오래 끓인 무의 냄새에 아주 진한 국간장 냄새가 뒤섞인 것이었는데 그냥 뒤섞인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그것이 반복되고 반복되어서 주변에 완전히 배어버린, 그래서 솥이 끓지 않아도 마치 환영처럼 그 짜고 물큰한 내가 날 정도로 오래고 오래 달여진 국물 음식의 냄새였다. 이를테면 송이 부산에 내려가 조모의 부엌에서 맡았던 그런. 희극배우는 그렇게 송이 잠깐 흔들려 무언가 상념에 빠지는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왜, 뭘 찾아요? 물었지만 송은 더 이상 설명하지 않고 그냥 옛 생각이 나서요, 저도 경상도 사람이라, 라고만 했다.
“송 형 경상도 출신입니까?”
“아버지가 부산 분이시고 저도 부산 출생,”
“멀리 왔네요, 부산에서 북쪽 끝까지 말입니다.”
“끝은 아니죠, 평양도 있고 개마고원도 있는데.”
“송 형 지금 농담합니까?”
“농담이요?”
“지금 농담하는 겁니까. 4년 만에 농담도 듣고 고향도 알고 좋은데요, 또 말해 봐요.”
“아이고, 배우 님, 잘 아시면서 뭘 그래요. 뭘 모른다고.”
“양 주임하고는 어떻게 되었어요?”
“양 주임이요?”
송이 걸음을 우뚝 멈췄다. 시장길도 멈춰 있었다. 어깨를 치며 지나가던 그 많은 인파도 사라지고 하루 장을 마친 노인들이 버려진 푸성귀 이파리들을 정리하고 있었다. 송은 갑자기 나타난 대로를 사람들이 신호도 지키지 않고 건너가는 것을 보고 있었다. 그러고 나서 좀 짜증을 내듯이, 억울한 누명을 쓴 아이들이 울음과 신경질을 참으며 내뱉듯이 말했다.
“양 주임이 뭐요, 뭐, 뭐라고 해요?”
“양 주임 때문에 어쩌면 연극이 안 올라갈 수도 있겠어요.”
서문시장을 빠져나오자 북문길과 남문길이라는 표지판이 보였다. 양 주임 이야기를 꺼내 놓고 희극배우는 그답지 않게 한동안 말이 없었다. 양은 송과 재단에서 함께 근무했던 동료인데 4년 가까이 끌어 온 송과의 연애가 끝나면서 사표를 냈다. 그러다 여름에 나타나서는 시민연극에 참가 신청을 한 거였다. 그 소식을 듣고 송은 양이 재회를 바란다고도 생각해 봤지만 겨울이 오기까지 양과 마주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양과 송의 연애는 사내 연애인 데다, 사이가 끊임없이 위태로웠기 때문에 주위 사람들에게는 알릴 상황이 못 됐다. 송은 양에게 애정을 느끼다가도 어떤 대상과 가까워질 때마다 드는 복잡한 결의 불편함을 끝까지 참아내지는 못했다. 자기 내부에서 느껴지는 냉소, 환멸, 혐오감 같은 것들, 부담들을. 그런데 양 주임과는 어떻게 됐습니까, 하고 질문을 받은 것이었다. 송은 놀랐고 희극배우가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 알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희극배우가 앞산공원 안 갈래요, 대구에서 유명한데요, 했을 때 잠자코 버스를 따라 탔다.


공원까지는 버스에서 내려서도 산길을 한참 올라가야 했다. 바람은 매섭고 빠르게 칼칼칼칼 하며 불어 닥쳤다. 코트도 입지 않은 희극배우가 덜덜 떨어서 결국 송이 머플러를 건넸다. 양에게 선물 받은 머플러라는 걸 의식도 못 하고 있다가 희극배우에게 건넬 때에야 떠올렸다.
“송 형, 아버지를 잃어 봤습니까?”
희극배우는 취한 것도 아니면서 길을 이리저리 갈지자로 걸었고 그때마다 목소리가 가까워졌다 멀어졌다.
“없습니까?”
송은 몸이 떨리고 숨이 차서 대답하지 않았다. 화가 났는데 그건 여기까지 끌고 온 희극배우가 아니라 엉뚱하게도 양에게였다. 양이 미웠고 양이 원망스러웠다. 자기가 지금 춥고 힘들게 산길을 올라가는 게 모두 양의 탓처럼 느껴졌다. 단순히 느낌만이 아니라 실제로 그럴 만한 이유들이 있지 않은가. 연극에 왜 참가 신청을 했어, 그런 엉터리 연극에. 연극을 통해 상처를 치유하고 자신감을 회복하는 게 취지였지만 이렇게 우울한 희극배우가, 정작 자기 마음도 다잡지 못해 어디로 튈지도 모르는 희극배우가 그런 걸 정말 이루고 있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송은 양이 4년간의 연애를 희극배우에게 다 말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한 번의 낙태를 포함해서. 그 일은 송과 양에게 상처로 남았다. 송은 아직 부모가 될 준비가 되지 않았고 양도 동의했지만 그 일은 다툴 때마다 서로에게 휘두르는 흉기가 되었다.
“송 형, 귀순용사 이웅평을 압니까? 83년에 이웅평이 올 때 내가 여기 앞산공원에 있었거든요.”
희극배우는 혼자 전망대 앞에 있다가 사이렌 소리를 들었다고 했다. 이것은 실제 상황입니다, 하는 확성기 방송이 나오자 사람들이 썰물처럼 공원을 빠져나갔다. 희극배우는 함께 왔던 아버지가 어디를 가서 오지 않았으므로 움직일 수 없었다. 나중에는 다리를 덜덜 떨면서 무서워서 오줌을 쌌는데 그때까지도 아버지는 오지 않았다. 희극배우는 그날 아버지가 자신을 버리려 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때 아버지는 전 재산을 털어 어느 섬에선가 양파를 사들였는데 그 배가 가라앉으면서 모든 것을 잃었다. 결국 아버지는 대구로, 근처의 가장 크고 복잡한 도시로 아이 하나를 버리기 위해 온 것이었다.
“부친은 돌아왔잖아요? 돌아올 건데 왜 애를 버리려고 해요? 오해죠.”
“전쟁이 나는 줄 알고 돌아왔겠지요. 아버지는 참전용사였으니까 전쟁고아가 어떻게 되는지 잘 압니다. 차마 돌아오긴 했어도 날 버리려고 했었다, 이 말입니다. 아버지도 그런 적이 있었다.”
둘은 공원에 올라 케이블카를 탔다. 일정한 진동으로 흔들리면서 겨울 산을 거슬러 올라갔다. 케이블카가 지나는 곳만 밝아지면서 마치 창처럼 날카로워 보이는 겨울나무의 세세한 생김새가 드러났다. 무슨 생각이 났는지 희극배우는 죽은 사람이라도 삼일 동안 귀는 열려 있다고 말했다. 듣는 능력은 그러니까 심장이 멈춘 뒤에도 사라지지 않고 유지된다는 것이었다.
“그러니 돌아가야 할까요?”
“어디를요?”
“장례식장으로요.”
“그럼요, 가셔야죠, 상주 아닙니까.”
케이블카에서 내리자마자 둘은 코코아를 뽑아들고 목을 축이면서 대구의 야경을 구경했다. 도시를 둘러싸고 있는 산이 눈에 들어왔다. 둥근 형태의 도시였다. 대구는 분지였고 몰려 들어온 열기가 빠져나가지 않는 더운 도시였다. 비록 지금은 참을 수 없게 춥지만. 희극배우는 종이컵을 쥔 채 덜덜 떨면서 자기가 제작했던 코미디 연극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나마 좀 알려진 작품으로 「실패한 선택을 하는 남자」가 있었다. 연극은 남자 주인공이 자동차 사고로 죽는 데서 출발해 그 남자가 어떤 선택을 하면 죽지 않을 수 있었을까의 관점으로 과거를 돌아보는데 어떻게 해도 남자는 똑같은 사고로 죽는다. 자동차 대신 전철을, 야당 대신 여당에 투표를, A라는 여자 대신 B라는 여자와 데이트를 해봐도 매번 남자는 죽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이런저런 선택을 한 끝에 남자가 죽으면 객석에서는 웃음이 터졌다고 했다.
“이상한데요, 안 웃긴데.”
“웃깁니다, 송 형. 송 형이 보지 못해서 그렇지 웃겨요. 정말 웃깁니다.”
“아니 그런 얘기가 웃겨요? 사람들이 다 웃는단 말예요?”
“코미디잖습니까? 물론 배우는 안 웃어요. 배우가 안 웃어야 더 웃기죠.”
희극배우는 낄낄거리다가 침울하게 “아버지를 잃어 봤습니까?” 하고 물었다. 송은 아니라고, 자신의 아버지는 일흔도 되지 않았다고 대답했다. 여전히 일을 하며 돈을 번다고.
“하지만 언젠가는 아버지를 잃겠지요?”
“네?”
“송 형도 아버지를 잃을 거라는 말입니다.”
“그렇긴 하겠지요.”
송은 왜 갑자기 남의 아버지를 들먹이나 싶어서 떨떠름하게 동의했다.
“송 형은 아버지가 죽기를 바란 적이 있습니까?”
“네? 뭐라고요? 왜 그런 말을 해요?”
희극배우가 자판기로 돌아가 코코아 한 잔을 더 뽑았다. 그리고 좀 서둘러 마시다가 혀를 데였는지 급하게 입을 뗐고 머플러에 쏟고 말았다. 송이 머플러를 빼앗아서 급하게 털었다. 벌써 바알간 물이 들어 있었다.
“죄송합니다. 세탁해 드릴게요.”
“아니, 배우 님, 왜 이렇게 나를 괴롭게 합니까. 여기까지 끌고 와서 대체 나한테 왜 그래요? 왜요?”
송이 와락 화를 내자 희극배우가 시무룩하게 송 형, 미안합니다, 정말, 하고 사과했다. 송은 머플러를 더 털어 보다가 포기했다. 희극배우가 눈치를 보며 가져가 닦아 보다가 다시 목에 둘렀다.
“그리고 아까 양 주임은 왜 물어봤어요? 양 주임이 왜, 뭐라고 해요?”
“아무 말 한 거 없어요.”
“근데 뭐요? 우리 사이가 뭐 어쩌구 했잖아요.”
“그건.”
“뭐라고 했죠? 거봐요, 뭐라고 했잖아, 뭐래요? 뭐?”
“송 형, 그러지 말아요. 이제 다 상관없게 됐습니다. 양 주임은 곧 이민을 간다니까요.”
희극배우의 말을 들은 송이 놀랐다. 연락을 끊은 지 일 년이나 되었으면서도 이제야 그 부재를 깨달았다는 듯이, 심장이 묵직해질 정도로.
“난처하게 됐어요. 연극에서 중요한 역할인데요.”
“어디로 간답니까?”
“미국.”
“미국 어디요?”
“그게 중요합니까? 이제 여기 없을 건데 그게 왜 중요해요?”
말이 끊겼고 둘은 다시 케이블카를 타고 공원으로 내려왔다. 둘은 같은 방향으로 나란히 섰다가 케이블카가 불안하게 흔들리는 것 같아서 다시 마주 보고 섰다. 마주 보면서 송은 희극배우의 나이가 몇이었더라, 생각했다. 자기보다 많게는 열 살쯤 많을 것이다. 자기도 십 년이 지나면 저렇게 되어 있을까, 다시 생각했다. 저렇게 불안하고 우울하게 안정감 없게 외롭게 가진 것 없게 내쳐진 채 나쁘게, 살게 될까. 송은 희극배우가 확실히 나쁘다고 생각했다. 왜 나쁘냐면 지운 흔적이 없기 때문이다. 뭔가 옛일을 완전히 매듭짓고 끝내고 다음의 날들로 옮겨온 흔적이 없다. 그의 날들은 그냥 과거와 과거가 이어져서 과거의 나쁨이 오늘의 나쁨으로 이어지고 그 나쁨이 계속되고 계속되는 느낌이었다. 그러니까 그는 어떤 선택을 하든지 어차피 나빠질 운명인 것이다. 선택이 실패한 것이 아니라 실패가 선택되는 것이다.
공원으로 내려오자 희극배우가 택시를 불렀다. 택시 안에서 송은 이제 몇 주 안으로 한국을 떠나게 되는 양에 대해 생각했다. 양의 금테안경과 칼귀와 자신의 명치까지밖에 오지 않는 작은 키에 대해 생각했다. 그런 양이 아주 여기를 떠나 살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송이 알기로 양은 미국에 친척도 없는데, 그렇다면 결혼인가. 희극배우는 얼마 가지 않아 택시를 세웠다. 저녁을 먹고 가자고 했다. 송은 싫다고 이제 서울로 가겠다고 하고 희극배우는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이렇게 보낼 수는 없다고 말했다.
“형, 송 형, 대구까지 왔는데 이렇게 가면 내가 형 얼굴을 어떻게 또 봅니까?”
하는 수 없이 송은 따라 내렸다. 수성못 앞이었다. 유원지로 들어가기 전에 송은 안내판에서 100년이 넘은 인공 연못이라는 설명을 읽었다. 일본인 미즈사키 린타로가 축조. 축조라는 말을 되새기며 송은 오리구이와 숯불갈비집, 독일식 맥줏집과 한식당들을 지났다. 건물들은 야경을 위해서인지 알록달록한 알전구로 장식되어 있었다. 그 알전구는 최대한 건물의 실루엣을 따라 설치되어야 했겠지만 불행히도 어긋나 삐뚤빼뚤한 직선과 곡선을 이뤘다. 호수는 꽝꽝 얼었고 그 얼음에 오리배가 기울어서 잠겨 있었다. 희극배우는 걷다가 통나무로 된 경양식집으로 들어갔다. 포크 가수가 노래를 하고 중년의 남녀들이 돈가스 따위를 먹고 있었다.
“뭐 뜨끈한 거나 먹지요, 에? 남자 둘이서 경양식은요?”
“날도 날이니까 오늘은 좀 다른 걸 먹읍시다.”
희극배우는 메뉴판도 제대로 보지 않고 옆 테이블을 가리키며 음식을 시켰다. 수프가 나왔고 송은 하는 수 없이 후룩 마셨다. 이제 보니 희극배우는 굉장한 대식가였다. 돈가스 한 접시를 추가하더니 자기 혼자 해치웠다. 많이 걸어서인지 송도 공복감이 채워지지 않았다. 수프를 더 달라고 해서 먹었다. 희극배우가 고기를 씹으면서 식전 빵을 더 시켰다, 송이 피클과 샐러드를, 희극배우가 감자튀김을 리필했다. 송과 희극배우는 그렇게 음식들을 먹어치우면서 재단의 이런저런 사람들을 흉 봤다. 대표이사와 팀장들, 시설관리팀과 구내식당 운영자들을 평소 생각보다 더 부풀려서 욕했다. 그런 얘기들은 열도를 가지고 있었다. 지금까지 대구를 돌아다니면서 느끼지 못한 열기였다. 대구는 세숫대야처럼 오목한 도시였고 한번 들어온 것이 잘 빠져나가지 않아 언제든 부글부글 끓는 도시였다. 송은 텔레비전에서 어느 여름 대구의 아스팔트에 달걀을 깨서 익히는 장면을 본 적이 있었다. 대구는 그렇게 뭔가가 끓고 열이 오르는데 밖으로 나갈 수 없는 도시였다. 그래서 이렇게 문상이 길어지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러는 사이 다시 양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고 송은 희극배우가 양에 대해 너무 많이 안다고 생각했다. 맥주를 마시며 좀 취하다가 정신이 확 들었다. 희극배우는 양이 우는 모습에 대해 묘사하고 있었다. 양 주임은 어떤 기미도 없이 갑자기 눈물을 흘리지 않습니까. 그렇게 조용히 우는 사람은 본 적이 없어요. 양 주임은 조용히 우는 사람입니다. 옷장을 열어 본 적이 있습니까? 양 주임은 세 벌의 블라우스로 직장을 다닌 사람입니다. 양 주임은 어깨가 오른쪽으로 비뚤한 사람이지요. 정자세로 서 있어도 어깨가 비뚜름…… 하게, 자기도 모르게 돌아간다고. 내가 바로잡아 주면 배우 님, 소용없어요, 저는 어차피 이렇게 어깨가 외로 나가서, 나가버려서 돌아오지가 않아요, 그렇게 조용히 울면서.
“그만 해!”
송이 소리를 질렀다. 노래하던 가수가 멈출 정도로 큰 소리였다. 양이 아무렴 이런 인간과 가까웠을 리는 없다고 생각했지만 송은 기분이 상했다. 희극배우의 말은 하나 틀린 것이 없었지만 희극배우에게는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없지 않은가. 희극배우는 그럴 만한 사람이 아니지 않은가. 희극배우의 말은 정말이었지만, 양은 그런 여자였지만 그것이 희극배우의 입에서 나오니까 손쓸 수 없이 비극적으로 느껴졌고 송의 어떤 죄책감을 건드렸다.
“대체 양 주임이랑 뭔 사이예요?”
희극배우가 뭐라고 말했지만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라서 송에게는 들리지 않았다.
“네? 뭐라고요?”
“조용히 우는 사이.”
송은 그 말이 너무 유치하고 어이가 없어서 일격을 당한 것처럼 웃기 시작했다. 그건 송이 대구에 온 뒤로 희극배우에게서 들은 어떤 말보다도 웃긴 말이었다. 희극배우는 더 이상 아무것도 먹지 않고 송의 웃음소리를 들었다. 온몸이 뻣뻣하게 굳어서는 무언가를 견디면서 들었다. 그렇게 견디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송은 웃음을 멈추지 않았고 희극배우는 정말 웃길 줄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둘은 계산을 하고 나와 꽤 먼 거리를 유지한 채 유원지를 통과했다. 희극배우가 빨리 걸었고 송이 천천히 걸었다. 바람이 불어서 나무가 우우, 하고 흔들리는데 얼어버린 연못은 비현실적일 정도로 넓었다. 축조된 그것이 저렇게 얼음으로 변하면 거기에 무엇을 축조했는지 실감이 없게 텅 비어 버린다고 송은 생각했다. 먼저 가던 희극배우는 풍선 게임 부스 앞에 서 있었다. 상품으로 머플러가 있다고 했다. 희극배우는 다트를 수십 번 던졌지만 풍선을 맞히지는 못했다. 그걸 묵묵히 지켜보던 송이 2천 원을 내고 다트를 던졌다. 송은 몇 개의 풍선을 터뜨릴 수 있었다. 그것이 빵! 하고 터질 때마다 희극배우가 윽! 하면서 추임새를 냈다. 빵! 윽! 빵! 윽!


동대구역에 도착하자 희극배우는 기차에서 먹으라며 군밤을 사주었다. 역 앞에는 군밤을 굽는 노파들이 연탄난로를 하나씩 끼고 앉아 있었다. 노파들은 작고 둥글었다. 연탄불은 발갛고 부채질을 할 때마다 흰 연기와 함께 검은 재가 일어나 공중으로 떠올랐다. 희극배우는 군밤을 만 원어치나 사면서 노파에게 건강하게 오래 사세요, 하고 인사했다.
“오래 살긴 뭘 오래 사노, 얼른 죽어야지.”
노파는 퉁명스러웠다.
“아니, 아니요, 오래오래 사셔야 합니다. 꼭 그래야 합니다.”
희극배우가 군밤 봉투를 들고는 가지도 않고 떼를 쓰듯 말하자 비로소 노파가 알았다, 고마워서 눈물이 다 난다, 했다. 하지만 노파가 그렇게 말했을 때 정작 눈물을 흘린 것은 노파가 아니라 희극배우였다. 희극배우는 조용히 눈물을 닦으면서 군밤을 송에게 내밀었고 부스로 가서 표를 사왔다. 기차가 올 때까지 송은 희극배우와 대합실에 나란히 앉았다. 상점들은 문을 닫고 춥고 피로한 얼굴의 사람들이 텔레비전을 응시하고 있었다.
“송 형, 아버지는 치매였을까요?”
송은 대답하지 않았다.
“치매였겠죠? 그러니까 맨정신이어서 모든 거를 말입니다, 우리가 그렇듯이 다 그렇게 느끼고 생각하지는 않았겠지요, 그러니까 의사들이 입원을, 그렇지 않습니까? 마지막 면회에서 아버지는 촌으로 가게 해달라고 사정을 했다는데……. 우리가 보기에는 안 그래도 의사들은 전문가들이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배우 님, 죽은 분은 죽은 분이고 산 사람은 살아야죠. 정신을 똑바로 차리세요, 무엇보다 생활을 단정히 하세요. 남들처럼요. 술도 줄이고 아무거나 막 드시지 마시고 잠도 자고요, 낮에 일하고 밤에 자고 추운 날에는 코트를 입고요, 장갑도 끼는 겁니다.”
“송 형은 그렇게 삽니까?”
“그럼요.”
“그렇군요……. 하지만 나는 바빠서요. 바쁩니다, 송 형은 잘 모르겠지만요.”
대화는 거기서 끊겼고 송과 희극배우는 일어나 개찰구를 지났다. 이제 그만 돌아가 보라고 해도 희극배우는 가지 않았다. 송은 정말 악몽 같은 하루라고 생각했다. 기차가 플랫폼으로 들어왔고 송이 지친 몸으로 오를 때 희극배우가 송 형, 하고 다시 불렀다. 송이 뒤도 돌지 않고 손을 휘휘 내저어 인사하는데 “제가 나쁩니까?” 희극배우가 물었다. “내가 이번에도 나빴습니까, 그렇지요?”
송이 탄 뒤로 출입구가 덜컥 잠겼고 그때서야 송은 뒤를 돌아보았다. 기차가 떠나고 있었다. 그 방향으로 희극배우가 몇 걸음 걸어오다가 얼굴을 일그러뜨리는 것이 보였다.


송은 휴대전화로 뉴스를 읽고 동영상을 검색하면서 잊으려고 애썼다. 오늘 하루 희극배우가 늘어놓았던 말들, 시덥지 않은 농담과 우울한 개그들. 하지만 기차가 빠르게 대구를 벗어날수록 그런 말들은 머릿속에서 길게 이어져 결국 송은 양에게 전화를 걸었다. 정말 여기를 떠나는지, 이제 아주 떠나서 다시는 만날 수 없는지 궁금했다. 마치 죽은 사람처럼. 그렇게 만날 수 없는 사이란 죽은 사람이나 다름없으니까. 양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전화하기까지는 망설였지만 송은 어차피라는 생각으로 몇 번 더 걸었다. 그때부터 어딘가 무너지는 것 같던 마음은 대전이 다가오자 이상한 긴장으로 빠져 들어갔다.
송은 조모의 장례식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렇게 불행하게 간 조모에게도 죽음의 절차는 다르지 않았다. 다른 망자들처럼 대형 버스를 개조한 운구차에 실렸고 상복을 입은 자식들이 함께 탔다. 조부가 묻혀 있는 시립묘지까지 갔는데 장지가 마련되어 있지 않아서 한동안 장례는 중단되었다. 인부들이 착오로 다른 묫자리에 터를 판 것이었다. 욕설과 싸움이 오가고 남자들은 다시 조부의 묘 옆에다 땅을 파기 시작했다. 가족들은 일정한 간격으로 울음을 반복했다. 노모의 부양을 거절했던 삼촌들도 울었고, 숙모들도, 검고 늙은 얼굴을 한 익명의 친척들도 울었다. 송도 따라 울었다. 하지만 단 한 사람, 송의 아버지는 울지 않았다.
오후가 되어서도 인부들은 터를 다 파지 못했다. 지친 송은 층층의 묘지를 내려가 운구차 그림자 아래 앉아 있었다. 거기서도 묫자리를 파고 있는 마르고 검은 남자들이 보였다. 그들이 곡괭이나 삽을 움직일 때마다 시뻘건 흙이, 너무 시뻘게서 싱싱하기까지 해 보이는 흙이 파헤쳐졌다. 유월의 태양 아래 그것은 아주 나른하고 지루한 광경이었다. 송은 그런 생각을 하며 흙장난을 하다가 다시 조모가 죽었고 죽은 조모는 이 버스에 실려 있지 않은가, 생각하며 울었다. 조모를 생각하면 겁이 나니까 조모를 뺀 조모의 모든 것, 낡은 보료나 옥색 비녀, 부엌의 찐내, 장판의 검게 탄 자국들을 떠올렸다. 그렇게 울다가 멈추다가 노곤하게 오후의 피로에 젖어 들어갈 무렵 아버지가 지나갔다. 처음 무심히 지나는 듯 보이던 아버지는 다시 돌아와 눈물로 엉망이 된 송의 얼굴을 무섭도록 냉랭한 눈으로 쏘아보았다. 그렇게 차갑고 분노에 찬 얼굴을 송은 그전에도 이후에도 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아버지는 송에게 걸어와 뺨을 후려쳤다. 송의 고개가 팩 돌아갔고 아버지는 다시 팔을 들어 송을 갈겼다. 왜 우냐, 엉? 왜, 왜? 어린 송이 우는 것은 조모가 죽어서였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무언가 공포와 분노와 배신감이 뒤엉킨, 그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감정이 홧홧하게 치밀어 대답할 수 없었다.
아버지를 말릴 사람은 아무도 없고 그 후로도 아버지는 비명에 가까운 소리로 왜, 왜, 우냐, 왜, 하면서 송의 따귀를 계속 갈기다가 묘지로 홱 돌아 올라갔다. 송의 두 뺨은 부풀어 올랐고 쓰라렸지만 송은 억지로 울음을 참았다. 눈물을 닦았고 그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마음에서 차갑고 무거운 것이 일어나고 있었다. 인간으로서의 자존감이나, 모멸에 대한 명백한 거부 같은 것이었다. 송은 아직까지 그 이야기를 누구에게도 한 적이 없다고 생각했다가 사람은 죽어서도 삼일간은 귀가 열려 있다는 희극배우의 말을 떠올렸다. 그게 지독한 농담인지 과학적 사실인지는 알 수 없어도 만약 그랬다면 죽은 조모가 모든 것을 듣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조모가 마지막으로 들었던 것은 조금씩 파괴되어 가는 자신의 육체가 내는 소리가 아니라 그렇게 폭력적으로 드러날 수밖에 없는 누군가의 고통과 죄책감이었을 것이다.
“왜 전화 했나 해서.”
대전이 가까워졌을 때 양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일 년 만의 통화인데도 둘은 어제까지 연락을 주고받은 사람처럼 데면데면한 말투로 대화했다. 할 이야기가 없을 것 같았는데 엉뚱하게도 사소한 것들 ― 언젠가의 여행에서 지급하지 않은 고속도로 통행료 고지서가 날아왔다는 얘기나, 양의 집에 두고 온 송의 소지품들, 책이나 시디에 대한 이야기가 끼어들면서 말은 길어졌다. 송은 양이 먼저 말해 주기를, 동시에 말하지 않기를 바라면서 계속 대화를 지연시켰다. 선물한 머플러를 잃어버렸다고 하자 양은 별다른 감흥 없이 같은 걸 또 구할 순 없을 거라고 대답했다. 여행에서 산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래, 연극은 잘 되어 가고?”
기차가 역에 섰을 때 송은 여기를 떠나느냐는 질문을 그렇게 바꿔 물었다. 양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송은 내려올 때처럼 유리창에 얼굴을 대고 밖을 보았다. 가락국수 부스는 셔터가 내려지고 간판의 불도 꺼져 있었다. 마치 상자를 봉하듯 완전히 봉합되어 있었다.
“걱정이야, 마지막 장면에서 독창을 해야 하거든, 어디 이민이라도 가야지 싶다니까.”
양은 수백 명의 시선이 오직 자기에게만 꽂힐 것을 생각하면 어쩐지 자꾸 울고 싶어진다고 덧붙였다. 그렇게 말하는 양의 목소리가 담담하고 심드렁해서 그때서야 송은 희극배우가 농담을 잘못 전했음을 깨달았다. 그 의도에 대해서는 알 수 없어도.
“조용히 우는 사람이잖아.”
송이 말했다.
“내가?”
양이 하하 웃었고 재밌는 말이네, 했다. 다시 기차가 움직일 때 송은 문득 내가 나빴지, 하고 묻고 싶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그런 나쁘지 않음에 대한 기대, 이를테면 속죄 같은 것은 그 공허한 질문에 대한 답변을 듣지 않을 때 가능한 것이 아닌가 싶어서. 전화를 끊고 송은 가방에서 군밤을 꺼냈다. 뜨겁던 군밤이 식으면서 봉지는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깨물었더니 구웠다기보다는 생것에 가까웠다. 송은 생각보다 무르지도 달지도 않은 밤을 우걱우걱 씹어서 삼켰다. 삼키는데 헛웃음이 나와서 송은 좀 웃었고 문득 자신의 웃음과 희극배우의 깊은 우울은 관계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기차는 숱한 경계들을 넘으며 상행 중이었고 자정이 넘어 이제 하루가 지나 있었다. 희극배우의 불운을 위로하기 위해 간 문상길이었다.



작가소개 / 김금희(소설가)

- 1979년생. 2009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소설집 『센티멘털도 하루 이틀』이 있으며 제33회 신동엽문학상 수상.


《문장웹진 2016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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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조 안의 볼드모트 권혜영 내가 아홉 살이고 동생이 여섯 살이던 무렵, 우리 가족은 매일 밤 차를 타고 항아리 바위가 있는 계곡에 갔다. 집에서 차로 20분은 달려야 나오는 곳이었다. 산마루의 고갯길을 여러 번 넘으며 비포장 도로 옆으로 끊어질 듯 이어지는 실개천을 따라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계곡 주변 바위의 형질이 급변하는 지점이 나타났다. 세차게 흐르는 물 사이로 솟은 기암괴석들에는 하나같이 크고 작은 구멍이 뚫려 있었다. 그걸 지리학 전문 용어로는 포트홀이라고 하지만 이 동네 사람들은 항아리의 입구처럼 홈이 패었다고 해서 항아리 바위라고 불렀다. 바위 가운데에 물이 고인 구멍에는 올챙이나 송사리가 서식했고, 물이 마른 구멍에는 이끼 낀 자갈돌들이 쌓여 있었다. 우리 집의 볼드모트는 항아리 계곡에서 물고기를 잡았다. 볼드모트와 벨라트릭스는 나와 동생이 어렸을 때 해리포터 시리즈를 열심히 챙겨보다가 붙이게 된 아빠와 엄마의 별명이었다. 물론 우리끼리 뒤에서 남몰래 부르는 호칭이긴 했지만. 어쨌든 볼드모트는 민물고기를 잡는 행위로 돈을 번 것은 아니었다. 볼드모트는 할아버지의 대를 이어 농사를 짓는 영농후계자였다. 그런데 농사일엔 소홀하고 밤마다 물고기를 잡는 데만 혈안이었다. 이제 와 생각해 보아도 단순한 취미생활이라기에는 어딘가 병적으로 집착한 구석이 있었다. 한밤중에. 집 앞 냇가도 아닌. 자동차로 20분을 달려야 나오는 산골짜기를 밤마다 출근했던 것이다. 볼드모트는 그렇게 매일 거센 물살을 헤치고 수심이 허리까지 올라오는 곳으로 향했다. 볼드모트가 양동이 한가득 물고기를 잡아오는 동안, 벨라트릭스와 나와 동생은 자동차 문을 잠그고 계곡 입구에서 기다렸다. 벨라트릭스는 앞좌석에 앉아 ‘Now’와 ‘Max’ 같은 빌보드 최신 팝송 믹스 테이프를 듣곤 했다. 어린 동생은 내 옆에서 꾸벅꾸벅 졸았다. 나는 가져온 책을 읽고 싶어서 조명을 켜달라고 졸랐지만 벨라트릭스는 허락해 주지 않았다. 인적이 드문 깜깜한 도로 위에서 불을 켜면 아이들이 위험에 노출될까 걱정되어 그러는 건 아니었고, 자동차의 배터리가 방전될까 봐 그러는 거였다. 나는 할일 없이 벨라트릭스가 틀어 놓은 2000년대 초반 히트 팝송을 들으면서 시커먼 계곡 아래를 멍하니 쳐다봤다. 그러다 가끔씩 차들이 고갯길 사이에서 어둠을 뚫고 나타날 때마다 묘한 긴장과 흥분을 했다. 테이프가 A면을 훑은 다음 까드득거리는 소리를 내며 B면으로 뒤집힐 즈음이면 볼드모트가 돌아왔다. 볼드모트가 손전등을 들고 물가 멀리서부터 걸어오면 희미했던 불빛이 점점 커지다가 계곡 입구의 갓길을 환히 밝혔다. 그때마다 눈뽕을 당한 나는 팔을 들고 이마에 차양막을 쳤다. 볼드모트는 양동이 속 자신이 잡아온 물고기들을 한 마리씩 비추며 자랑했다. 동자개, 꺽지, 쏘가리, 모래무지, 메기. 기억력이 별로인 내가 지금껏 그때 잡혔던 어종의 이름들을 하나하나 기억하는 건 볼드모트가 하도 우쭐거리며 말했기 때문에 세뇌당한 탓이 크다.

  • 관리자
  • 2024-09-01
행복한 소설가

행복한 소설가 임현 1 언젠가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세상에는 무수히 많은 이야기가 존재하지만 그중에서도 소설을 쓰지 못하는 소설가의 이야기가 제일 많다는 것이었다. 명시적으로 드러나지 않은 경우까지 더하면 거의 전부라고도 할 수 있는데, 근대 문학의 출발이 무엇이냐? 자기 고백 아니냐? 그러므로 그것은 핍진성과 진정성의 문제이며, 지금 이 순간에도 전 세계 수많은 소설가들이 한 글자도 쓰지 못하고 있다는 개연성 때문이라고도 했다. 생각해 보면, 살면서 소설이 잘 써진다고 말하는 소설가를 나는 단 한 명도 본 적이 없었다. 있다면 분명 주변에 부러움을 살 만한 재능이었는데도 아무도 그런 자랑을 하지 않았다. 대신에 소설이 써지지 않을 만한 이유는 도처에 널려 있지 않은가. 그러니까 행복한 소설가는 대개가 비슷비슷해 보이지만 불행한 소설가는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할 수밖에 없다, 라고 말한 인물은 러시아의 대문호가 아니라 어느 늦은 밤 만취한 대한민국 출신의 선배 소설가였다. 결과적으로 무언가를 계속 쓰려 한다면 누구라도 한 번쯤은 그 괴로움에 대해 토로할 수밖에 없다는 것인데, 더구나 아이러니하게도 아무것도 써지지 않는다고 징징대는 동안 기어코 완성하게 되는 것도 다름 아닌 소설이라는 점이었다. 종로구 세종로 소재지의 조도가 낮은 호프집이었고 지하실에서나 날 법한 냄새가 유독 심했던 곳으로 기억한다. 안주 메뉴로 한치를 굽고 쥐포도 굽고 제육볶음과 어묵탕 등을 조리하는데도 좀처럼 그 눅눅하고 고린 냄새만큼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래서 그런가, 무얼 씹고 삼켜도 다 비슷비슷한 맛이 나는 것도 같았다. 일간지에서 주관하는 문학상 뒤풀이 자리가 줄곧 이어지던 것이었으나, 정작 축하를 받아야 할 사람은 이미 가고 없었다. 마지막 지하철 운행 시간은 한참 지났고 오히려 첫차를 기다리는 편이 더 가까운 시각이었다. 그런 탓에 주로 경기도에 거주하는 사람들만 남았는데, 무엇보다 함께 자리한 여남은 사람들 중 그 이야기에 호응해 주는 사람은 오직 나 하나뿐이었다. “원고 마감할 시간에 이러고 있으니까 못 쓰는 거잖아요. 근데요, 형. 많이 취했어요? 그거 먹는 거 아니에요.” 주문한 먹태 대신 자꾸 나무젓가락을 씹으려는 선배를 말리며, 나는 나름대로 이 불쾌한 냄새의 발원지를 추적해 보기도 했었다. 고정식으로 설치된 의자와 테이블은 혼자 앉기에는 넉넉하고, 둘이 앉기에는 비좁았는데 어떻게 앉아도 허리가 불편했다. 닦는다고 말끔하게 닦이진 않을 것 같은 지용성 얼룩이 벽마다 눈에 띄었고, 주방의 내부 구조까지 들여다볼 수 있는 것은 아니었으나 상태가 어떨지는 대강이나마 예상할 수 있었다. 어쩌면 그런 곳마다 오래 밴 냄새일 수도 있었다. 아니면 환풍기 탓인가. 주기적으로 세척을 해주지 않으면 화재의 위험이 크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었다. 불이 나도 벌써 여러 번은 났을 만큼 먼지투성이였다. 그러니까 당시에는 뭐랄까, 그런 뜬생각이라도 하지 않으면 술만 마시면 진지해지는 선배의 주정을 가만 듣고 있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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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9-01
슬픔은 나의 힘

슬픔은 나의 힘 문진영 침대에서 겨우 빠져나와 커튼을 걷자 어슴푸레한 빛이 방 안에 드리운다. 고양이가 천천히 기지개를 켜고는 사뿐히 침대 아래로 뛰어내린다. 나는 거실로 나가 이번에는 소파에 드러눕는다. 고양이는 곧바로 내 가슴 위로 올라와 자리를 잡고 엎드리더니 골골거리기 시작한다. 소리들이 들려온다. 근처 운동장에서 축구하는 아이들의 새된 목소리. 아랫집 세탁기가 웅, 웅, 하고 돌아가는 소리. 지금 나는 평화로운가. 권태로운가. 판단하지 못하겠다. 주영은 두 달째 부재중이다. 어젯밤 주영의 책상 앞에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다가, 한구석에 놓인 일력이 주영이 떠난 날짜에 그대로 멈춰 있는 것을 발견했다. 매일의 날짜와 요일, 그리고 문장 하나가 적혀 있는 일력이었다. 나는 그것을 한 장 한 장 뜯어내기 시작했다. 거기 적힌 문장을 읽고, 종이를 구겨 곧바로 휴지통에 던져 넣었다. 그러다 구기지 못하고 한참 동안 들여다본 문장은 바로 이것이었다: 사람의 탄생은 슬픔의 탄생이다. 장자의 말이라는, 맥락에서 떨어져 나와 덩그러니 놓여 있던 그 문장에 나는 온 마음으로 동의했다. 과연, 나는 한 시절을 사람의 모양을 한 슬픔과 함께 살았으니까. 그렇다면 잔디는? 한때 우리 — 주영과 나 — 는 잔디가 고양이의 몸을 가진 기쁨 그 자체라고 생각했었지. 그런데 아니었다. 잔디도 슬픔이었다. 잔디는 함부로 만지는 걸 싫어했다. 여간해선 울지 않았고 골골거리지도 않았다. 말이 쓸데없이 많고, 내가 움직일 때마다 다리에 몸을 비비고, 시도 때도 없이 꾹꾹이를 하는 이 작은 얼룩 고양이는 아직 이름이 없다. 나는 천천히 녀석을 쓰다듬는다. 따뜻하고, 부드럽다. 너도 슬픔이구나. 너를 슬픔이라고 부를까. * 엄청 웃기는 꿈을 꿨어. 그날 아침 샤워 부스에서 나온 주영이 수건으로 머리를 틀어 올리며 말했다. 그래? 뭐가 웃겼는데? 내 물음에 주영이 기억 안 나, 하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눈이 퉁퉁 부어 있었다. 꿈속에서 깔깔 웃다가 잠에서 깼는데, 실제로도 소리 내서 웃고 있었다고 주영은 말했다. 그렇다는 걸 깨닫는 순간 섬뜩했고 기분이 나빴는데, 언제인지도 모르게 다시 잠에 빠져들었다고. 그런데 막상 아침에 일어나 보니 불쾌한 기분보다는 그 꿈이 정말로 웃겼다는 것, 내용은 전혀 기억나지 않지만 정말 진심으로 깔깔 웃었다는 느낌만 남아 있다고 했다. 나는 침대에 누운 채로 천장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음. 내 생각엔 일종의 방어기제 같은데. 네 뇌가 너를 보호······ 주영은 내 대답이 끝나기도 전에 헤어드라이어의 전원을 켰다. 내 말끝은 드라이어의 소음 속으로 순식간에 휘말려 들어갔다. 듣기 싫다는 뜻. 주영은 내가 그냥 그렇구나, 하면 되는 일에 꼭 의견을 덧붙이고 가르치려 든다고 힐난하곤 했다. 나도 그게 좋지 않은 버릇이라는 걸 알았지만 잘 고쳐지지

  • 관리자
  • 2024-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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