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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편연재] 외계인 ③

  • 작성일 2016-03-04
  • 조회수 1,405


[중편연재]



외계인 (제3회)




박상우



women-ph「기도하는 여인」 / 중국 쓰촨성 광원 천불애(中國 四川省 千佛崖) / Photo by 박상우


오전 아홉 시 경, 새벽에 왔던 간호사가 주사액 두 개를 카트에 싣고 나타났다. 하나는 큼직한 사각 비닐봉지에 담긴 우윳빛, 다른 하나는 작은 직사각형 비닐봉지에 담긴 투명한 주사제였다. 내가 침대에 반듯하게 눕자 간호사가 왼팔에 토니캣을 묶고 혈관을 찾기 위해 검지와 중지로 나의 팔을 문지르기 시작했다. 몇 초 뒤 주사바늘이 살갗을 뚫는 게 느껴지고 곧이어 토니캣이 풀어졌다. 두 개의 주사제가 반창고로 단단하게 부착된 수액 연결 커넥터를 통해 동시에 혈관으로 흘러들기 시작했다.
“잠시 뒤 검사실로 이동할 거니까 어디 가지 말고 자리에 계세요.”
간호사가 허리를 펴고 나를 내려다보며 미심쩍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담당의사 회진은 없나요?”
여덟 시 전후로 몇 명의 의사가 젊은 수련의들을 대동하고 입원실의 다른 환자들을 둘러보고 갔지만 나에게는 아무도 오지 않았다. 그걸 이상하게 여겨 던진 질문이었다.
“아직 병명이 잡히지 않았기 때문에 담당의사 선생님이 정해지지 않았어요. 오늘 내일 검사를 마치고 결과 나오면 정해질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나는 머쓱한 표정으로 천정을 올려다보았다. 병명을 알 수 없는 격통이라니,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피할 수 없는 무엇과 맞닥뜨린 듯한 좌절감. 병명을 찾지 못하고 있다는 걸 간호사는 강조하고 있었지만 이상한 기분이 들기는 마찬가지였다. 스무 살이 되기 전까지 내가 겪은 온갖 통증의 경험 중에는 원인 불명이 많았다. 사람들이 흔히 통증 지점이라고 호소하지 않는 부위, 예를 들어 팔, 다리, 무릎, 허리, 목, 머리, 배 같은 곳이 아니라서 병원에 가면 황당한 대접을 받는 경우가 많았다. 의사가 나를 이상한 아이로 의심하는 눈초리를 여실히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른바 꾀병 환자.
“어디가 아파?”
“피부요.”
“어떻게 아파?”
“다리미로 지지는 것 같아요.”
나는 의사의 물음에 정확하고 정직하게 대답했지만 의사는 믿지 않는 눈치가 역력했다.
“오늘은 어디가 아파서 왔어?”
“세포가 아파요.”
“어떻게?”
“온몸의 세포 하나하나에 몇 만 볼트의 고압전류가 흐르는 것처럼 고통스러워요.”
통증을 호소하는 나에게 의사는 표현력이 좋다고 칭찬했다.
“오늘의 통증 부위는 또 어디야?”
“온몸의 감각이 다 아파요.”
“어떻게?”
“끊임없이 바늘로 쑤셔대는 것 같아요. 정말 죽을 것 같다구요.”
하나님이 나에게 바느질을 하는 모양이라며 의사는 교회에 가서 기도를 해보라고 했다. 할아버지가 나를 데리고 다닌 병원은 늘 한 군데였는데 나이가 든 의사와 할아버지의 친분 때문에 다른 병원으로 가서 진료를 받는 일은 좀체 생겨나지 않았다. 딱 한 번, 나이 든 의사의 권유로 정신과 진료를 받은 적이 있었는데 그때 젊은 여자의사는 아주 특이한 주장을 했다.
“너의 통증은 너의 몸이 아니라 머릿속에서 나오는 것일 수 있어. 어쩌면 마음일지도 모르지. 네가 통증이라고 생각하는 건 통증이 아니라 고통이야. 고통은 통증보다 훨씬 심각한 마음의 병이라서 고치기가 힘들어. 네 스스로 고치는 게 가장 빠르고 그것만이 유일한 치료방법일 수 있다는 걸 명심해야 한단다.”
그 여자 의사는 나에게 연민을 느끼는 눈빛으로 차분하게 말했다. 그리고 내가 느끼는 통증, 그녀가 말하는 고통을 소멸시킬 수 있는 치유의 일환으로 호흡에 집중하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나는 지금 숨을 들이쉬고 있다, 나는 지금 숨을 멈추고 있다, 나는 지금 숨을 내쉬고 있다……. 그처럼 단순 반복적인 알아차림을 통해 집중력을 고양시키면 통증 내지 고통이 소멸될 거라는 가르침이었다. 집으로 가는 길에 여자의사가 나에게 알려준 방식을 할아버지에게 전했더니 갑자기 표정이 환하게 밝아지며 탄성을 터뜨렸다.
“아, 그거 정말 좋은 묘안이로구나. 그게 바로 명상이란다.”
어처구니없지만 나는 여자의사가 가르쳐준 방식으로 큰 효과를 보았다. 열한 살부터 호흡명상을 시작하고 그것은 내 생활의 일부분이 되었다. 아무 때나 마음의 평형이 깨어지고 불안정한 상태가 되면 나는 재빨리 자리를 잡고 앉아 호흡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그것으로 내 인생의 통증 내지 고통을 완전히 소멸시킨 것은 아니지만 십대를 보내는 동안 나를 사로잡았던 원인 불명의 통증 내지 고통에 대해 호흡 명상은 큰 방어막 역할을 해 주었다. 호흡에 집중하는 일, 단지 그것만으로도 인간은 훌륭하게 존재할 수 있다는 뜻밖의 발견이 십대에 내가 얻은 가장 소중한 경험이었다. 호흡을 못하면 인간은 생명을 유지할 수 없는데 그 절대적인 기능성을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시하고 살아간다는 아이러니. 바로 그 지점에 인생의 혼돈과 혼란의 뿌리가 존재하고 있었다. 아무려나 생명의 핵심인 호흡법을 다시 배운 뒤부터 나는 어느 정도 안정적인 에너지 상태를 유지하기 시작했다. 열한 살 어린 나이에 내가 통증 내지 고통과 호흡명상을 맞교환했다는 건 그것을 강제하기 위한 일종의 통과의례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아주 뒷날 나는 했다.
간호사가 나가고 난 뒤 불길한 예감이 들어 통증에 대한 과거의 경험을 되짚어보았다. 통증의 문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각과 원인 규명이라는 걸 나는 오랜 경험을 통해 알고 있었다. 심리적인 문제일지라도 본인이 원인을 간과하거나 외면하는 것일 뿐 통증은 반드시 일대 일의 대응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는 게 내 지론이었다. 원인불명은 원인을 모른다는 말이지 원인이 없다는 말은 아닌 것이다.
여섯 살 이전에 엄마는 자신의 통증 때문에 심심찮게 나에게 이상한 자세를 보이곤 했다. 말놀이를 할 때처럼 무릎을 꿇은 자세에서 왼손으로는 가슴을 누르고 오른손으로는 방바닥을 짚고 머리를 한껏 숙인 채 꺼억꺼억, 이상한 소리를 내며 울곤 했다. 물론 그때는 그것이 통증 내지 고통 때문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지만 부모가 세상을 떠나고 나의 통증연대기가 시작된 뒤부터 나는 그것을 단박 되짚어낼 수 있었다. 그것이 엄마가 극도로 고통스러울 때마다 취한 고유의 자세였다는 것. 고통의 일대 일 대응관계로 미루어보자면 엄마의 가슴통증에도 분명 원인이 존재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결론을 내릴 수 없었다. 엄마가 아버지를 사랑하지 않은 것과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 사이에 내재된 인과관계를 알 수 없어서였다. 판단유보는 원인불명과 근원적으로 다른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보자면 엄마에 대한 나의 문제는 판단유보가 아니라 판단기피에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무튼 엄마의 외도에 대한 내 의구심은 어린 나이부터 시작된 갖가지 통증 경험 속에서 이해의 관문을 형성했다. 그것이 설령 사실이라고 해도 이해할 수 있다고, 공감할 수 있다고, 괜찮다고 말할 수 있다고, 얼마나 고통스러웠느냐고 함께 부둥켜안고 울어주고 싶었다. 엄마뿐 아니라 통증에 시달리는 이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그렇게 말해 주고 싶었다. 이 세상에 통증에 시달리지 않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걸 나는 이미 어린 나이에 알아버렸다. 통증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 통증을 모른다고 말하는 사람들의 가면 속에 더 큰 통증이 숨어 있다는 것도 또한 알아버렸다. 모두 아픈데 아무도 아프다고 말하지 않는다는 것. 이십대 초반에 어떤 시집을 읽다가 전율하며 운 적이 있다. 그 시인의 감성에 무릎을 꿇고 경의를 표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날 태연한 나무들 위로 날아오르는 것은 다 새가
아니었다 나는 보았다 잔디밭 잡초 뽑는 여인들이 자기
삶까지 솎아내는 것을, 집 허무는 사내들이 자기 하늘까지
무너뜨리는 것을 나는 보았다 새 점(占) 치는 노인과 변통(便桶)의
다정함을 그날 몇 건의 교통사고로 몇 사람이
죽었고 그날 시내(市內) 술집과 여관은 여전히 붐볐지만
아무도 그날의 신음 소리를 듣지 못했다
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


10시 30분 경 이십대 초반쯤으로 보이는 두 명의 아르바이트생이 나를 검사실로 데려가기 위해 입원실로 왔다. 그들은 두 개의 주사액을 맞는 나를 반듯하게 눕힌 채 앞뒤에서 밀고 당겨 침대를 복도로 이끌어냈다. 그리고는 능숙하고 빠른 동작으로 침대를 진료엘리베이터 앞으로 밀고 갔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동안 병원 구내방송에서 부드럽고 감미로운 멘트가 흘러나왔다.
“환우 여러분의 빠른 쾌유를 빕니다. 저희 임직원 일동은 최선을 다해 환우 여러분의 쾌유를 돕겠습니다. 완치되고 완쾌할 수 있다는 희망을 버리지 말고 투병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두 명의 아르바이트생은 나의 침대를 지하 3층의 검사실 철문 앞에 세워놓고 사라졌다. 일반병동과 달리 그 복도에는 간호사도 없고 안내 데스크도 없었다. 복도를 오가는 사람도 없었다. 기온도 낮아서 냉기가 느껴질 정도였다. 복도의 정적 속에 파묻힌 채 나는 두 눈을 끔뻑이며 천정을 올려다보았다. 아무리 기다려도 검사실에서는 사람이 나오지 않았다. 그러자 ‘나는 지금 통증을 느끼지 않는다’는 자각이 정도 이상으로 뚜렷해졌다. 아무런 통증도 느끼지 않는데 나는 왜 여기 버려져 있는가, 하는 데 대한 의식적 반발이었다.
삼십분쯤 지난 뒤에 복도 끝에서 발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고개를 들어보니 흰 가운을 입은 남자의사였다. 삼십대 후반쯤으로 보이지만 앞머리가 많이 벗겨져 분장한 개그맨처럼 우스꽝스럽게 보였다. 그가 다가왔을 때 나는 분노가 들끓어 오르는 비감어린 어조로 그에게 언성을 높였다.
“도대체 환자를 이렇게 오래 방치해도 되는 건가요?”
머리를 들고 인상을 쓰며 짜증스럽다는 어조로 말했지만 그는 나의 하소연에 아무런 응대도 하지 않고 냉혈한처럼 침대를 지나쳐 검사실 철문 안으로 사라졌다. 지나쳐가는 그의 표정이 나보다 훨씬 짜증스럽게 보였다는 걸 되새기자 갑작스럽게 맥이 풀렸다. 되살아나는 정적, 그리고 모멸스런 좌절감 때문에 눈두덩이 욱신거렸다. 아, 인간이 인간에게, 의사가 환자에게 저렇게 무심할 수도 있구나!
삼사 분쯤 지난 뒤 검사실 철문 안에서 누군가 신경질적인 어조로 한껏 언성을 높이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곧이어 문이 열렸다. 가운을 입은 여자와 남자, 보아하니 검사실에 근무하는 수련의들인 것 같았다. 두 명이 앞뒤에서 나의 침대를 밀고 당기며 검사실로 이끌었다. 검사실 중앙에는 위압감을 느끼게 하는 철제 프레임과 검사기구, 모니터, 검사대가 설치돼 있었다. 중앙의 모니터 앞에 좀 전에 복도에서 나를 지나쳐간 냉혈한이 신경질이 한껏 오른 표정으로 허리춤에 양손을 얹고 씩씩거리고 서 있었다. 혹시 수련의들이 나를 복도에 오래 방치한 것을 문제 삼고 있는 것인가.
“리포트 결과에 대해서는 너희 둘 중 하나가 반드시 책임져야 해. 알겠어?”
그럼 그렇지! 나는 침대에 누운 채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들 사이에 생긴 문제로 언성을 높인 것이지 나를 위한 배려로 언성을 높인 게 아니라는 걸 나는 단박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 순간, 검사실의 기온이 너무 낮게 느껴져 나도 모르고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두 명의 수련의는 내 침대 좌우측에 서서 고개를 숙인 채 꼼짝을 못하고 있었다. 나는 그들이 너무 불쌍해 보이고 방치된 나도 또한 한심해 보여 허공을 향해 헛소리를 터뜨리지 않을 수 없었다.
“이것 보세요, 내가 죽은 건가요?”
나의 헛소리에 세 명의 의사가 일제히 나를 내려다보았다.
“무슨 말이에요?”
침대 우측에 서 있던 여자 수련의가 물었다.
“내가 죽어서 시체 보관소로 끌려온 거냐구요?”
“아녜요. 왜 그런 말을?”
“시체 보관소도 아닌데 여긴 왜 이렇게 춥냐구요.”
“세균 감염이 생길까봐 저온 유지를 하는 거예요.”
여자 수련의가 한껏 낮은 어조로 속삭이듯 말했다.
그때 인상을 찌푸리고 있던 냉혈한이 다시 언성을 높였다.
“검사 준비해!”
냉혈한이 검사실 안쪽의 공간으로 사라지자 수련의 두 명이 나를 부축해 검사대로 옮겼다. 곧이어 그들은 나의 입원복 상의를 벗기고 구멍이 뚫린 녹색 천을 가슴에 덮었다. 무엇을 하려는 건지 알 수 없었지만 곧이어 마취를 한다고 해서 물어볼 수도 없었다.
마취주사를 놓기 전, 그들은 소독수에 적신 차가운 솜으로 나의 옆구리를 여러 번 문질렀다. 마취주사를 맞은 직후 나는 그들에 의해 모로 눕혀졌고 거의 동시에 희미하게 의식이 스러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의식이 완전히 단절되지 않은 상태, 다시 말해 눈을 감은 채 간유리를 들여다보는 듯한 상태에서 내 육신이 마루타가 되어가는 걸 어렴풋이 의식했다.
그들은 나의 옆구리에 가늘고 예리한 탐침봉 같은 걸 밀어 넣고 있었다. 한 번에 제 위치를 찾지 못하자 두 명의 수련의가 당황해서 소곤거리는 말이 어렴풋이 들리고, 안쪽에서 모니터를 지켜보던 냉혈한이 신경질적으로 언성을 높여 욕을 하는 소리도 들렸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말이 아니라 정황으로 인지되는 상황이라 내 몸뚱어리가 분자운동의 소용돌이 속에서 회전하고 있는 것처럼 위태롭게 느껴졌다. 그들이 한 번의 탐침에 실패하고 다시 또 찌르는 걸 감지하며 깊은 위기감을 느꼈지만 거의 동시에 의식이 가무러져 더 이상의 정황은 기억에 저장되지 않았다.
암전.
눈을 떴을 때 나는 다시 복도에 방치되어 있었다. 아직도 검사를 받지 않고 기다리는 중인가, 아뜩한 기분이 들어 고개를 들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마취에서 풀려날 때 느껴지는 메스꺼운 현기증 때문에 검사가 종료되었다는 걸 알아차릴 수 있었다. 마취 여운보다 또렷하게 옆구리에서 통증 기운이 부상하고 있었다. 손을 돌려 통증 부위를 가늠해보니 옆구리 뒤쪽에 네모난 반창고가 밀봉되어 있었다. 어떤 도구로 어디를 어떻게 쑤셔댔는지 모르겠으나 옆구리 안쪽, 정확하게 간이 위치한 부위가 은근히 결리듯 아팠다.
침대를 옮기는 아르바이트생들이 다시 나타난 것은 가늠할 수 없는 시간이 흐른 뒤였다. 그들은 복도 끝으로부터 뛰듯이 다가왔지만 나는 기다림에 지칠 대로 지친 뒤라서 아무런 말도 꺼낼 수가 없었다. 다만 온몸이 땀에 젖은 아르바이트생들을 측은한 눈빛으로 올려다보았을 뿐이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두 명의 아르바이트생 중 하나가 다른 하나에게 낮은 어조로 물었다. 너 이번 학기에 복학해? 그러자 다른 하나가 피식 웃으며 비아냥거리는 어조로 대답했다. 씨바, 복학은 무슨! 군대나 가야겠어. 잡념 생기지 않게 박박 기다 올래. 너는? 질문이 다른 하나에게 넘어갔다. 나?…… 난 몰라. 당분간 계속 이렇게 달려야 할 것 같아. 대책이 없어. 사는 게 다 그렇지 뭐. 너나 나나…….
입원실로 돌아와 침대가 제자리에 놓인 뒤 나는 서랍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시간과 날짜를 정확하게 확인해보고 싶어서였다. 내가 오늘 새벽 두 시 사십분에 입원 조치된 환자가 맞는가? 그게 사실인가? 시간과 공간에 대해 나는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었다. 완전히 다른 존재가 된 것 같다는 이질감 때문에 견디기가 힘들었다. 인간이 아니라 파기처분을 기다리는 쓰레기가 된 것 같은 모멸감 때문에 미쳐버릴 것 같았다. 10년 전이나 20년 전부터 입원환자로 살아온 것 같은 익숙한 망상을 어떻게든 떨쳐버리고 싶었다. 만 하루도 지나지 않았는데 이토록 낯선 시공, 낯선 차원에 완벽하게 폐기처분된 것 같은 고립감이 생성될 수 있다는 게 도무지 믿어지지 않았다.
-RAW 파일, 언제 받으러 갈까?
휴대폰을 열자마자 야마에게서 온 문자가 떴다. 도합 여섯 개. 시간을 확인해 보니 한 시간 반쯤 전에 첫 번째 문자가 당도하고 그 후 나의 무응답을 독촉하거나 자극하거나 질책하는 것들이 잇따른 결과였다.
-응답하라, 외계인!
-너 지금 내 문자 씹는 거냐?
-외계인 시체 해부 사진 첨부.
-RAW 파일 양도 각서 첨부.
-이제부터 간이 배 밖으로 나온 외계인 사냥을 시작한다. 각오해라!
야마가 보낸 여섯 통의 문자로부터 바깥세상과 현재 상황이 극명한 대비를 이루어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래, 중국에서 귀국한 뒤에 술탄과 야마가 나의 작업실로 RAW 파일을 받으러 온다고 했었다. 내가 이렇게 병원에 강제 입원 당했다는 것도 모른 채 그들은 자신들의 목적의식에 여적 집착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침대에서 일어나 앉자 깊은 현기증과 함께 헛구역질이 치밀었다. 우욱, 욱, 소리를 내며 가슴을 짚고 잠시 속이 가라앉기를 기다렸다. 그런 뒤에 두 눈을 부릅뜨고 부들부들 떨리는 손을 움직여 기어이 휴대폰의 종료버튼을 눌렀다. 그들은 나를 찾기 위해 혈안이 되겠지만 나는 그들과 단절하기 위해 현실과 연결된 마지막 채널을 닫아버렸다. 술탄과 야마로부터의 완전한 실종, 10년도 넘게 지속되어온 나의 오랜 갈망이 드디어 실현되는 순간이었다.


『시(時)/공(空)/불(佛)』 전시회가 끝나고 열흘쯤 지난 뒤 결국 나는 술탄과 야마의 강요에 못 이겨 중국행을 결심했다. 물론 말도 되지 않는 무리한 결정이라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내가 독자적으로 추진할 수 없는 일, 설령 추진한다고 해도 전적으로 그림자 작가의 도움을 받아야 할 일이었다. 뿐만 아니라 그림자 작가도 다시 중국 측 인사들에게 부탁을 해야 할 사안이었다. 그렇게 다리에 다리를 놓아야 할 일이라는 걸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처음부터 나는 기를 쓰고 그들의 부탁을 물리치고 싶어했다. 하지만 그들은 면전에 칼을 겨누는 표정으로 나를 몰아붙였다.
“공동 출사 한 번 추진하는 걸 가지고 왜 그렇게 유세를 떨어? 우리 사진동호회에 처음 들어왔을 때 넌 고작 스물다섯이었어! 까마귀고기 먹고 사냐? 너는 우리한테 사진 예술의 가나다라를 배웠다구. 뿐이냐. 우리는 전문작가 출사 때도 항상 널 데리고 다녔어. 네 싹수를 키워주고 싶어서 그랬던 거야. 그걸 모른다고 할 수 있어? 그때 우리가 널 보살피지 않았으면 넌 동호회에서 완전히 왕따 되고 퇴출됐을 인간이야. 오죽하니 네 별명이 외계인이었겠냐? 외계인이라니, 재수 없게, 이 위대한 지구인들의 땅에서 외계인이라니!”
“야마 말 하나도 틀린 거 없다. 중국 사진작가들이 대회를 개최하는 장소이니 네가 발품 팔아 혼자 개발한 것도 아니잖아. 그러니 이런저런 핑계 대지 말고 마음을 열어라. 우리가 네 사진전에서 받은 영감을 우리 식으로 표현할 기회를 만들어 달라는 부탁인데 예술 하는 사람끼리 이러면 곤란한 거 아니냐. 이 부탁 안 들어주면 네가 명성 좀 얻었다고 우리 같은 무명작가들 개무시하는 걸로 간주하마. 내가 마음 악하게 먹으면 너 SNS에서 하루 만에 사장시킬 수도 있어. 기억을 더듬어봐라. 그건 너도 알고 있겠지?”
나는 그들의 다양한 회유와 압박과 협박에 아무런 응대도 하지 않았다. 응대해봤자 불기둥에 기름 붓는 격. 시종 침묵을 고수하며 기억의 공간에서 점멸하는 지난 세월의 스냅들을 되새김질했다. 검은 강물처럼 흐르는 기억의 필름들……. 그것은 지울 수 없는, 지워지지 않는, 끊을 수 없는, 끊어지지 않는 악연의 동영상이었다. 오직 사진에만 몰두하며 살았던 지난 7년이 너무나도 행복한 시간이었다는 게 역으로 되새겨졌다. 그러니까 그들이 원하는 중국행은 시즌2의 불행을 알리는 신호탄일 수 있었다. 그것을 알면서도 물리치지 못한다는 것, 그것이 문제의 핵심이었다. 악이 지닌 구속력은 악한 행위를 통해 강화되는 게 아니라 그것을 극복하지 못하는 나약한 인성을 제물로 삼아 유지되는 것이다. 술탄과 야마가 나에게 두려움의 대상인 이유는 그들이 나에게 악한 행동을 해서가 아니라 그들을 극복하지 못하는 나의 유약함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두려움을 두려워하는 내 자신이 나는 더 두렵다. 통증을 두려워하는 나를 더 두려워하는 나, 고통을 두려워하는 나를 더 두려워하는 나……. 삶에서 비롯되는 문제는 모두 그런 식으로 뿌리가 깊어지는 것이다.
결국 나는 그림자 작가를 찾아가 전후 사정을 얘기했다. 너무 한심한 부탁이라 술탄과 야마의 요구를 있는 그대로 전할 수는 없었다. 그저 사진하는 선배들이 나의 사진전을 보고 쓰촨성 광원 천불애에 출사를 가자고 간곡하게 원해서 이렇게 어려운 부탁을 하러 왔노라, 각색된 말을 건넬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잠시 침묵하던 그림자 작가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내 능력이 닿지 않는 영역의 일이라 선뜻 도와줄 수 있노라 장담을 못하겠네. 남의 나라와 관계된 일이고 남의 나라 사람들에게 부탁해야 할 일이니 어쩌겠는가. 그래 같이 갈 사람들은 몇인가?”
“저 포함해 셋입니다.”
“내가 중국 쪽에 연락을 취해 볼 테니 하루나 이틀 정도 시간을 주게. 급히 가야 하는가?”
“가능하면…… 빨리 다녀오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것은 술탄과 야마의 요구인 동시에 나의 뜻이기도 했다. 이런 문제로 그들과 결부돼 오래 시간을 끄는 게 나로서는 바늘방석의 지옥을 견디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끊어지지 않는 악연의 사슬, 피할 수 없다면 차라리 죽는 게 낫다는 내 지론의 뿌리는 그들과의 10년 악연을 압축 요약한 표현이었다. 죽음만 못한 삶, 생이불여사(生而不如死)가 아닌가.


事情很棘手,但您若能答应这个人的请求的话,我将不胜感激!


이틀 뒤, 그림자 작가가 나에게 전화를 걸어와 집으로 와 달라고 했다. 갔더니 한 문장의 중국어로 된 편지를 건네주었다. 그리고 그는 덧붙였다. 그림자 작가가 중국말을 하지 못해 번역원에 있는 사람에게 부탁해 쓰촨성 작가협회에 전화를 했는데 작가주석과는 직접 통화를 못하고 담당여직원이 말을 전해 주겠다고 했다며 이 편지를 작가주석에게 전하라는 게 요지였다. 그럼 작가주석이 다시 공산당 서기에게 부탁을 해서 일을 성사시켜 주지 않겠느냐, 하는 게 그의 뜻이었다. 그래서 이 한 문장의 뜻이 뭐냐고 나는 물었다.
“어려운 일이겠지만 이 사람의 부탁을 들어주시면 대단히 고맙겠습니다…….”
그렇게 해서 불행의 극치를 장식할 3인의 중국행은 성사되었다. 중국으로 가는 기내에서 되짚어보니 참으로 기막히고 어처구니없는 출사가 아닐 수 없었다. 내가 쓰촨성 광원 천불애에서 사진을 찍게 된 건 전적으로 우연의 결과였다. 천우신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행운이었다. 그 석굴에서 촬영을 진행하는 동안 나는 돌아가신 할아버지를 여러 번 떠올렸다. 할아버지가 스승으로 삼았던 ‘부처선생’의 영향력이 내 예술적 영감을 구현하는 피사체가 되리라는 예상을 어느 누가 할 수 있었겠는가. 1500년의 시공을 건너뛰어 그 고색창연한 석굴과 내가 조우하게 된 데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우주적 조력이 있었을 거라는 생각 때문에 촬영을 진행하는 동안 어느 한 순간도 긴장을 누그러뜨릴 수 없었다.
천불애는 내가 지상에서 살아오며 견뎌낸 모든 통증과 고통을 위무하고 치유할 수 있는 숭고한 에너지를 품고 있었다. 그곳에서 나는 내 존재의 뿌리에 온기가 생성되고 그곳으로 광명이 스며드는 느낌을 받으며 여러 번 전율했다. 석굴에서 평생 먹고 자며 불상을 만들고 나한상을 만들고 보살상을 만들다 죽어갔을 숱한 석공과 화공들의 에너지가 감전을 일으키듯 산 자의 행보를 뒤흔들었다. 어떤 석공이 석벽에 파놓은 기도하는 여인상을 보며 나는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석굴에서 조각을 하며 얼마나 자기 아내가 보고 싶었으면 남편의 무사귀환을 위해 기도하는 여인상을 새겨 놓았을까. 이목구비가 없는 무안불(無顔佛)과 맞닥뜨렸을 때에는 내 얼굴이 가면이라는 선뜩한 자각 때문에 꼼짝도 할 수 없었다. 표정 없는 표정의 완전함, 그 순간 나는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온전한 표정과 마주했다. 그 무수했던 감동의 순간을 어떻게 말로 형용할 수 있으랴.
술탄과 야마와 함께 비행기를 타고 중국으로 가는 동안 나는 바늘방석에 앉은 것처럼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나에게 각인된 숭엄한 천불애의 이미지가 그들에 의해 훼손될까봐 지레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이 나의 사진전에서 받았다는 영감과 계획이라는 게 무엇인지 궁금했지만 물어볼 수도 없었다. 말할 수 있는 것은 스스로 말하지만 자신들이 말하지 않는 것에 대해 묻는 걸 그들은 불쾌해 했다. 그런 패턴 안에 언제나 밝지 않고 맑지 않은 의도가 숨어 있었다. 그들과 처음 만났던 10년 전부터 지금까지 그 패턴에는 일말의 변화도 없었다


나는 지구인으로서의 사고 패턴을 제대로 배워본 적이 없다. 지구인의 관점에서 보자면 불행이고 외계인의 관점에서 보자면 다행인 문제이다. 스물다섯에 나는 지구인들의 사적 조직에 처음으로 발을 들여놓았다. 그 사진동호회의 이름이 ‘트루 픽처스(true pictures)’였다. 나는 인터넷 검색을 통해 그 동호회를 알게 되었고 내가 회원으로 가입했을 때는 술탄이 초대 회장 노릇을 하고 있었다. 그는 이미 여행서적을 세 권이나 출간한 여행 사진작가였다. 하지만 디지털카메라 붐을 타고 동호회가 무섭게 활성화되고 가입회원이 늘어나자 동호회 공동 창립 멤버이자 친구였던 야마와 술탄 사이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이유는 한 가지, 사진의 순수성을 놓고 견해가 엇갈리기 시작한 것이었다. 야마는 몇몇 사진공모전에서 입상한 경력을 지닌 인물이라 ‘트루 픽처스’라는 동호회의 이름에 각별한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기회 있을 때마다 언성을 높였다. 진정한 사진의 세계란 여기저기 여행이나 다니며 찍은 사진에 허접한 글을 입혀 책을 출간하는 아마추어리즘과는 분명하게 차별되어야 한다는 야마의 노골적 선동으로 동호회의 파국은 기정사실이 되어가고 있었다.
나는 어느 편도 아니었다. 동호회가 술탄파와 야마파로 나뉠 때에도 나는 본의 아니게 초연했다. 본능적으로, 기질적으로, 그럴 수밖에 없었으니까. 동호회 사이트에서의 상호비방이 도를 넘어서고 오프라인 모임 때마다 혁명 전야와 같은 분위가가 감돌았지만 나는 어느 쪽으로도 마음을 열지 않았다. 아니 열 수 없었다. 지구인의 이분법적 사고 패턴, 양극적 행동 패턴을 익히지 못해서였다. 그래서 동회회에 가입하고 일 년쯤 지난 뒤, 그러니까 스물여섯이 되던 해 봄부터 이미 나는 회원들 사이에서 185cm의 키 큰 외계인이 되어 있었다. 이유는 오직 한 가지, 누가 무엇을 권유하거나 회유하거나 묻거나 반문할 때마다 한결같이 “나는 그딴 거 몰라요”라는 말만 되풀이한 때문이었다. 술탄파의 권유에도 나는 그딴 거 몰라요, 야마파의 회유에도 나는 그딴 거 몰라요, 그리고 나머지는 침묵. 그런 것 때문에 나는 ‘지구의 물정에 대해 좆도 모르는 외계인 같은 놈’으로 치부되었다. 그들은 나를 배타적으로 치부했지만 그들의 행동양상에 대해 내가 보인 배타적 태도로 말하자면 그들에 의해 내가 외계인이 된 게 아니라 내 스스로 외계인이 되었다고 해도 결코 과언이 아닐 터였다. 분열을 위해 타오르는 그들의 선동과 흥분과 격정이 나에게는 모두 광기와 광란의 에너지 난무로 보였기 때문이다.
‘나는 그딴 거 모른다’는 말은 나도 모르는 사이 트루 픽처스 사이트에서 유행어가 되었다. 신기한 인간의 화법이라는 반응부터 박쥐, 뱀, 바퀴벌레―아마도 기회주의, 교활함, 구역질난다는 표현을 달리 하고 있는 것 같았다―와 같은 화법이라는 반응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이 나타났지만 어느 쪽으로도 편들고 싶어하지 않는 사람들은 그 화법의 효과를 넌지시 옹호하는 글을 게시판에 올리기도 했다. 당연한 결과 이 편도 아니고 저 편도 아닌 외계인을 포섭하려는 엉뚱한 해프닝이 벌어졌다. 나를 포섭하는 진영에서는 중도파의 지지를 얻었다는 과장된 선전을 할 것이고 나를 포섭하지 못한 진영에서는 세 불리를 우려해 나를 저능아나 정신박약아로 폄훼하려들 게 불을 보듯 뻔했다. 그래서 술탄파와 야마파의 개별적 접촉 제안이 시작된 직후 나는 사이트 게시판에 간단한 글을 남기고 휴대폰을 꺼버렸다.
-오늘 밤, 제가 살던 외계 행성으로 떠납니다. ‘나는 그딴 거 몰라요’에 담긴 압축 에너지가 지구인들에게 통하지 않아서 다차원 메시지의 뇌파 자동변압기를 업그레이드해야 합니다. 돌아왔을 때 트루 픽처스에 평화가 도래해 있기를 빕니다. 다시 만날 때까지 안녕.
일주일 동안 나는 휴대폰을 끄고 세상과 소통하지 않았다. 그런 상태로 지낼 때 나는 지구에 존재하지 않는 것과 하등 다를 게 없었다. 가족도 없고 친구도 없고 애인도 없는 인간이 어떻게 지구인일 수 있을까. 존재하지 않는 듯한 존재감에는 내가 생각하기에도 기이한 신비가 내재돼 있었다. 내가 외계로부터 무수한 에너지를 수신하고 있다는 자각, 나아가 나의 뇌가 일종의 송수신 장치라는 인식이 들 때가 많았다. 그래서 밤마다 깊은 명상 상태에 빠져 근원 주파수에 의식의 초점을 맞추곤 했다. 지구인으로서의 패턴은 제대로 배우지 못했지만 내 직관력은 근원으로부터 수신되는 높은 주파수에 동조하고 있었다. 낮은 주파수의 라디오파로부터 마이크로파, 테라헤르츠 복사, 적외선 복사, 가시광선 대역, 자외선 복사, 엑스레이, 감마레이…… 그리고 무아(無我)! 내가 소멸되고 원천 에너지와 합일할 때의 그 완벽한 희열을 어떻게 말로 형용할 수 있을까.
일주일 뒤 동호회 사이트에 접속했을 때 놀라운 공지 메시지가 떠 있었다. 예상 못한 대반전이었다. 그것은 술탄과 야마가 동호회의 공동 가디언―그들은 회장이라는 낡은 직함을 버리고 우주적인 느낌이 드는 멋들어진 직함을 창출했다!―이 되어 트루 픽처스를 사진을 통한 소통과 교류, 그리고 진실을 추구하는 글로벌 채널로 활성화시키겠다는 포부를 밝힌 메시지였다. 그들의 전략적 화해로 동호회는 다시 활성화되고 알 수 없는 전류에 이끌리듯 나는 그들의 영역으로 스며들어갔다. ‘나는 그딴 거 모른다’는 말 때문에 생성된 나에 대한 관심이 그들로 하여금 나를 당기게 했고 나는 그것을 사진 예술가의 영역으로 진입하는 일이라고 생각해 아무런 저항 없이 스며들어갔다.


폭우가 내리던 어느 여름 밤, 술탄이 나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동호회에 가입하고 일 년 반쯤 지난 뒤였다. 지금 자기 집에서 두 명의 여성과 멋진 파티를 하고 있는데 여성들이 ‘나는 그딴 거 모른다’고 말하는 외계인을 초대해 달라고 해서 전화한 것이니 즉시 택시를 타고 오라는 것이었다. ‘즉시’라는 말에서 이상한 에너지가 느껴져 나는 그 즉시 집을 나서 택시를 타고 그의 집으로 갔다.
술탄의 35평형 아파트는 집인 동시에 스튜디오의 구조로 개조돼 있었다. 거실 창을 없애 사방을 흰 벽면으로 처리하고 천장에는 매립 조명과 촬영용 배경을 위한 레일까지 설치돼 있었다. 뿐만 아니라 실내 중간에 블랙컬러 슬라이딩 도어를 설치해 필요에 따라 가변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했다. 그 공간이 너무 멋지게 보여 흠흠, 하는 입소리를 내며 나는 선뜻 안으로 발을 들여놓지 못했다. 단지 사진을 찍는 기능만이 아니라 사진을 위한 공간까지 겸비해야 비로소 사진작가라는 존재가 완성되는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뇌리를 스쳐갔다.
술탄은 헐렁한 녹색 셔츠를 걸치고 두 명의 여자는 반팔 티셔츠 차림으로 거실 바닥에 앉아 레드와인을 마시고 있었다. 소파도 탁자도 없고 와인병과 잔, 그리고 키위와 스낵이 담긴 접시가 전부였다. 술탄의 안내로 실내로 들어서자 두 명의 여자는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실실 웃음을 흘리고 있었다. 하나는 블랙, 하나는 화이트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블랙은 머리를 노랑으로 물들이고 있었고, 화이트는 빨강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물론 두 명 다 몇 번의 동호회 오프라인 모임과 출사 모임에서 얼굴을 익힌 존재들이었다. 블랙 티셔츠가 술탄의 애인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화이트 티셔츠가 왜 그 자리에 있는지에 대해서는 강한 의구심이 들었다. 블랙 티셔츠가 술탄의 애인으로 통하는 것처럼 화이트 티셔츠도 야마의 애인으로 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뭐 궁금한 거 있어?”
나의 표정을 보고 술탄이 물었다. 화이트 티셔츠에 대한 의구심을 지레 알아차린 눈빛이었다. 짙은 눈썹이 송충이처럼 꿈틀거렸다. 내가 아무런 응대도 하지 않자 술탄이 다시 입을 열었다.
“쟤 얼마 전에 야마한테 차여서 셋이 같이 살기로 했어. 쟤네 둘은 친구거든.”
술탄의 말을 듣고 두 여자가 까르르 웃음을 터뜨리며 바닥을 뒹굴었다. 세 사람 모두 상당히 취해 있는 것 같았다. 여자들은 연신 웃음을 터뜨리며 과장된 동작을 보이고 있었고 술탄은 알 수 없는 집중력으로 고양되어 눈빛이 불안정하게 번들거리고 있었다.
“나는 술을 마시지 못합니다.”
그들도 내가 술을 마시지 못한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정황상 분명하게 밝혀둘 필요가 있을 것 같아 선 채로 입을 열었다.
“술은 안 마셔도 돼. 좀 있다가 시원한 음료수 만들어 줄게. 그 대신 우리가 기획한 파티에는 동참해야 돼. 아주 특별한 파티를 기획했거든. 자, 그럼 시작해 볼까?”
술탄이 옷을 벗자 두 명의 여자도 시합을 하듯 재빠르게 옷을 벗었다. 여자들이 옷을 벗자 블랙과 화이트보다 노랑과 빨강의 대조가 더욱 강렬하게 두드러졌다. 그때 선 자리에 얼어붙은 나에게 술탄이 으름장을 놓듯 말했다.
“오늘은 ‘난 그딴 거 몰라요’ 같이 유치한 말 하면 안 된다. 그렇게 유야적인 레퍼토리로 어떻게 세상을 살래? 예술을 해야 할 것 아니냐, 예술! 외설을 알아야 예술이 되지!”
세 사람의 알몸을 지켜보기 힘들어 나는 등을 돌렸다. 쉬운 상황이 아니었지만 아무튼 집으로 돌아가는 게 좋겠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순간, 뿌리칠 수 없을 정도로 강한 완력이 내 어깨를 낚아챘다. 미처 돌아볼 겨를도 없이 나는 엄청난 완력에 거의 들린 채로 공간 이동을 했다. 방문이 열리고 방문이 닫히고, 다음 순간 나는 차가운 벽면에 밀어붙여졌다. 숨 돌릴 겨를도 없이 술탄의 오른손이 나의 목을 조이기 시작했다.
“나에게 모욕감을 주면 안 돼. 지구에서는 힘이 모든 걸 결정하니까 힘이 없으면 고분고분하게 굴어. 그럼 모든 게 편안해지고 행복해지는 거야. 지구에서는 지구인의 방식을 따르라는 말이다. 알아들었냐?”
나의 목을 움켜쥔 술탄의 오른손에 힘이 가해지자 안압이 순식간에 부풀어 오르며 눈앞이 흐려지기 시작했다. 그의 오른손을 걷어내기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그의 손아귀에 더욱 강한 힘이 가해져 고통이 배가될 뿐이었다. 울고 싶지 않은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밀려나왔다.
“어서 의사 표시를 해!”
목전에 그의 얼굴이 있는데 다른 건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오직 푸른 광채만 시야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눈물 때문에 그 푸른 광채마저 물무늬처럼 어룽지고 있었다. 나는 컥컥, 소리를 냈지만 말을 입 밖으로 밀어낼 수 없어 간신히 고개를 끄덕이는 시늉을 했다.
“옳지, 옳지! 그러면 좋은 거지. 그렇지!”
목을 조이던 손을 거둠과 동시에 당기듯 그가 나를 품에 안았다. 그리고 등을 다독이며 나의 귀에 속삭였다.
“제발 강해져라. 예술을 하려면 독을 먹을 줄도 알아야 하고, 악을 즐길 줄도 알아야 한단다. 영혼을 팔지 않고 이 더러운 지구에서 어떻게 예술을 하겠니? 순수는 악과 독의 결과물이야. 그런 게 없는 순수는 쓰레기만도 못하니 네 안의 경계를 모두 없애라. 네가 생각하는 모든 것, 네가 분간하는 모든 것…… 그럼 자유로워질 거야. 그러면 아프지 않을 거야. 알겠니?”
거의 삼사 분 동안 나는 그의 품에 안긴 채 서러움에 복받친 것처럼 오열했다. 오열하는 동안에도 그것의 의미가 모호하게 여겨졌지만 그 순간 나의 내면에서는 이성과 감성을 넘어서는 강렬한 카타르시스의 기운이 용솟음치고 있었다.
방에서 옷을 다 벗고 거실로 나가자 노랑머리가 기다렸다는 듯 컵에 담긴 녹색 주스 한 잔을 나에게 권했다. 거부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자포자기 심사로 나는 그것을 받아 단숨에 마셨다. 무슨 즙인지 모르겠으나 쓰고 역하고 독했다. 그것을 마시고 일이 분쯤 지나자 공간이 우측 방향으로 조금씩 기울기 시작했다. 천정의 매립 조명에서 밀려나오는 빛에서 질감이 느껴지고 흰 벽의 경계가 무한대로 확장되며 멀어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깊은 현기 속에서도 모든 것이 해체되는 듯한 자유로움이 부풀어 나도 모르게 웃음이 실실 입에서 비어져 나왔다. 그 웃음이 끈적끈적한 타액처럼 느껴졌지만 그런 각성 상태가 싫지만은 않았다. 술탄의 말처럼 모든 경계가 해체되고 나와 남의 분간이 없어지는 것 같았다.
술탄이 거실 중간의 슬라이딩 도어를 해체하고 천정의 레일에 부착된 투명한 비닐을 펼쳐 새로운 경계를 만들었다. 투명한 비닐에는 의도적인 구김을 넣어 피사체를 촬영할 때 기묘한 효과가 생겨날 것 같았다. 그걸 확인하려는 듯 술탄은 두 명의 여자를 비닐 반대편, 매립 조명이 떨어지는 공간으로 밀어 넣었다. 여자들이 깔깔거리며 들어가자 술탄은 그녀들을 보며 조명을 조절하고 곧이어 카메라를 들고 와 나에게 넘겼다. 나는 웃음을 흘리며 그가 넘겨주는 카메라를 받아들었다. 아무런 의사 교환을 하지 않았는데도 나는 그가 나에게 원하는 게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 나는 그딴 거 몰라요? 내가 어떻게 그런 말을 하고 살아왔을까, 웃음이 터져 나와 견딜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술탄이 투명 비닐 반대편으로 들어가 여자들과 한 덩어리가 된 뒤부터 나는 본격적으로 촬영을 시작했다. 셋인데 하나로 보이는 덩어리, 하나이지만 무한으로 분열하는 세포들, 그리고 단순한 동작이 아니라 섬세한 물결처럼 흘러가는 움직임들……. 나는 세 명의 존재감을 완전히 망각한 채 무서운 집중 상태에 빠져 있었다. 언어로 형용하기 힘든 탐미적 황홀 상태, 나는 생사의 영역을 넘어서는 감각의 세계가 존재할 수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어느 순간 발기가 이루어진 것인지 성기에서 통증이 느껴질 정도였다.
셋은 아주 느린 동작으로 실제 섹스를 했다. 상대를 바꿔가거나 셋이 하나로 연결된 상태로 지속적인 움직임을 만들어나갔다. 나는 전체보다 부분적인 선을 포착하고 겹침의 순간 속에서 찰나적으로 조성되는 낯선 형상을 잡아내기 위해 미친 듯 셔터를 눌러댔다. 천정의 레일에 부착된 투명 비닐을 밀고 당기며 원근과 질감에 변화를 주기도 했다. 투명 비닐의 구김 속에서 그들의 움직임은 다양한 변형을 조성해 환각을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어쩌면 이 모든 게 실제로 거대한 착각일지 모른다는 일말의 불안감 때문에 탐미적인 집중력은 더욱 고조되고 있었다.
어느 순간, 누군가 나의 동작을 제지했다. 허리를 펴고 고개를 들어보니 술탄이 서 있었다. 그가 뭔가를 달라는 자세로 말없이 손을 내밀었다. 나는 그의 의도가 무엇인지 분명하게 알아차리고 곧바로 그에게 카메라를 건넸다. 카메라를 받아들자마자 그는 나를 투명 비닐 안쪽으로 밀어 넣었다. 그때까지 안쪽에 누워 있던 빨강과 노랑이 한껏 느린 동작으로 나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물결에 흐느적거리는 해초처럼 좌우에서 나의 몸을 자극하기 시작했다. 찰칵찰칵, 투명 비닐 밖에서 술탄이 눌러대는 셔터음이 바위를 때리는 파도소리처럼 선명하게 귓전으로 밀려들었다. 하지만 해초들의 흐느적거림에 온몸의 감각이 녹아들자 몇 초도 지나지 않아 모든 것이 희미해졌다. 해안선을 적시는 부드러운 파도소리처럼 찰칵거림이 아득하게 멀어져가고 있었다.
눈을 때 내 옆에는 빨강이 새우처럼 등을 구부리고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새벽 세 시 이십분. 보아하니 술탄과 노랑은 방으로 들어간 것 같았다. 머리가 깨질 듯 아팠지만 전후 상황을 파악하고 나는 정신없이 옷을 찾아 입었다. 그리고 거실을 살피며 카메라를 찾았다. 다행스럽게도 카메라는 수납장 안에 놓여 있었다. 나는 손이 떨리는 걸 느끼며 카메라의 메모리 슬롯을 열었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가, 메모리 슬롯은 비어 있었다. 순간적으로 뇌리를 스쳐가는 두 가지 가능성. 하나는 처음부터 메모리가 장착되지 않았을 가능성, 다른 하나는 술탄이 그것을 꺼내 숨겼을 가능성.
다리가 후들거리는 걸 느끼며 나는 몇 초 동안 망설였다. 칼을 들고 방으로 들어가 술탄을 죽이는 가상 장면이 뇌리를 스쳐갔다. 세차게 머리를 흔들었다. 메모리에 관한 두 가지 가능성 중 어느 쪽으로도 나는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찰칵찰칵, 지난밤 내가 눌러대던 셔터소리가 철커덕, 철커덕, 내 인생의 진로에 운명의 족쇄를 채우는 소리로 되살아났다. 이제 영원히 ‘나는 그딴 거 모른다’고 말할 수 없는 상황, 경험 무지의 순수에 불순한 비밀의 쐐기가 박히는 순간이었다. 술탄을 죽여도 해결할 수 없는 오염, 나를 죽여도 해결할 수 없는 오염― 그것은 영혼을 고사시키는 어둠에너지의 파동이었다.



작가소개 / 박상우 (소설가)

- 1988년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에 중편소설 「스러지지 않는 빛」이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다. 1999년 중편소설 「내 마음의 옥탑방」으로 제23회 이상문학상을 수상하고 2009년 소설집 『인형의 마을』로 제12회 동리문학상을 수상했다. 주요작품으로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사탄의 마을에 내리는 비』『사랑보다 낯선』『인형의 마을』『호텔 캘리포니아』『내 마음의 옥탑방』『가시면류관 초상』 등이 있고 산문집으로 『내 영혼은 길 위에 있다』『반짝이는 것은 모두 혼자다』『혼자일 때 그곳에 간다』『작가』등이 있다.


《문장웹진 2016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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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

용서 장진영 박정상이 과일 바구니를 들고 찾아왔다. 병문안하는 사람처럼. 교복 차림으로 미루어 보건대 박정상은 고등학생이었다. 과일 바구니도 무리해서 샀을 것이었다. 인디핑크 색깔의 광택 없는 종이로 고급스럽게 포장된 과일 바구니 안에 애플망고가 대여섯 개 담겨 있었다. 마치 크고 탐스러운 알 같아서 사람이 태어나는 것도 가능해 보였다. 박정상은 마르고 키가 컸으며 자신의 기다란 팔다리를 어떻게 가눠야 하는지 모르는 사람처럼 움직였다. 큰 키 탓에 눈을 내리깔았는데 거만함보다는 주눅 든 모습에 가까웠다. 과일 바구니를 든 오른손은 안정적으로 허벅지 부근에 떨구어졌고 아무것도 들지 않은 왼손은 불안스레 허공을 맴돌았다. 기타를 치는지 오른손만 손톱이 길었다. 처음에 부모님은 박정상이 누군지 몰랐다. 떨떠름하게 현관문을 열었을 뿐이었다. 문을 연 사람은 아빠였다. 잡상인이거나 종교인이겠거니 싶었다. 그럼에도 문을 열었는데, 이전에는 한 번도 없었던 일이기에 스스로 놀랐다. 심지어 안전고리도 걸지 않았다. 앞으로 아빠는 그 이유에 대해 자주 생각할 것이었다. 박정상이 “안녕하세요. 저는 박정상입니다.”라고 말하며 고개 숙여 인사했다. 거울을 보고 여러 차례 연습한 것 같은 동작이었다. 아빠는 박정상이 누군지 몰랐다. 초면이었고 이름을 들어 본 적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누군지 알 것도 같았는데, 아슬아슬하게 참아 내는 재채기처럼 그 앎을 흘려보냈다. 아주 잠깐의 평화를 위한 안간힘이었다. 박정상이 자신을 박태섭의 아들이라고 소개하자 아빠는 기절했다. 허물어지듯 넘어진 게 아니라 만화에 나오는 장면처럼 통나무 모양으로 뒤로 쓰러졌다. 퍽, 하고 전구가 터지는 듯한 소리가 났다. 부엌에 있던 엄마가 달려와 비명을 질렀다. 박정상은 움찔했지만 정면을 바라본 채 꼿꼿이 서 있었다. 처분을 기다리는 듯했다. 엄마는 식칼을 들고 있었다. 기절했던 아빠가 금세 정신을 차렸다. 몸은 그대로였지만 눈은 번쩍 뜨였다. 자신과 가족을 지켜야 한다는 본능에서 비롯된 초인적인 힘 때문이었다. 아니면 그저 장하나가 아빠의 가슴팍을 밟고 지나갔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장하나는 외부인인 박정상의 발 냄새를 곰곰이 맡더니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러고는 아직 쓰러져 있는 아빠의 손바닥에 엉덩이를 가져다 댔다. 때려 달라는 뜻이었다. 장하나의 동생 장하다는 스탠드형 에어컨 위에서 식빵 자세로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는데, 아닐 수도 있었다. 장하다는 사시였다. 아빠는 자신이 왜 현관 바닥에 큰대자로 뻗어 있는지 알아차리느라 한참 헤맸다. 그러던 중에 식칼을 든 엄마를 발견했다. 아빠는 엄마와 박정상을 번갈아 응시하더니 스프링처럼 튀어 올라 달려들다시피 엄마를 끌어안았다. 혹시라도 엄마가 저지를지 모르는 일을 막기 위함이었다. 기절하지 않은 사람 입장에서는 다소 뜬금없는 행동이었다. 엄마가 “왜 이래!” 소리치며 몸을 마구 흔들어 댔다. “놔! 아니니까 놓으라고!” 몸싸움이 격해

  • 관리자
  • 2024-06-01
짝만 찾으면 만사형통?

짝만 찾으면 만사형통? 정대건 1 얼마 전 오랜만에 박진수를 만나기 전까지 나는 인간의 변화에 대해 냉소적인 편이었다. 게다가 나이가 이제 삼십 대 후반이 되었다면 이미 세상을 바라보는 많은 것이 굳어져서 더욱 변화의 가능성이 적다고 여겼다. 진수와 나는 대학 시절 문학 동아리에서 만나 무척 가깝게 지냈던 시절이 있었지만, 현재는 책을 출간하면 건네주기 위해 일 년에 한 번 정도 만나는 사이가 되었다. 함께 문학 동아리 활동을 하던 사람들 중에 글을 쓰는 사람은 이제 얼마 남지 않았고 진수와 나는 읽는 사람이 많건 적건 꾸준히 글을 쓰자고 서로를 독려했다. 그런데 출간 소식도 아닌데 모처럼 만난 그는 내게 상기된 표정으로 자신이 일생일대의 선택을 했다고 말했다. “진정한 짝을 만났어. 천 퍼센트 확신해. 네가 쓴 문장처럼, 현실은 우리의 비루한 상상력을 앞서는 것 같다.” ‘현실은 늘 우리의 비루한 상상력을 앞선다.’ 내가 이 문장을 쓸 때는, 낙관적인 기대보다 현실은 늘 가혹하다는 의미로 쓴 문장이었다. 그런데 진수는 이 문장을 반대의 의미로 인용했다. 자신이 행복에 대해 꿈꿀 수 있는 최고의 상상보다 더 영화 같고 믿기지 않는 완벽한 짝이 현실에 나타났다는 거였다. 그렇게 확신에 찬 진수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신기했다. 내가 아는 그는 불안형과 회피형의 전형을 모아 둔 사람이었다. 그는 세상은 결코 선의로 이루어지지 않았고 사람의 마음은 쉽게 변하고 만다고 불신하는 쪽이었고, 나는 그 때문에 그를 나와 비슷한 부류라고 여겼다. 예비 신부인 민영은 아주 밝고 안정적인 성격의 회계사라고 했다. 뜻이 맞은 두 사람은 만난 지 100일 만에 이미 상견례도 마치고 예식장을 알아보는 중이라고 했다. 그는 불신과 불안의 아이콘이었기 때문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나는 그와 관련된 명확한 일화를 기억하고 있었다. SNS에서 한창 성인 애착유형 테스트가 유행이었다. ‘연애란 것은 안정형과 안정형이 하는 것이고 나머지는 사연 만들기 모임’1)이라는 SNS를 보고 우스갯소리처럼 넘기지 못하던 그였다. 불안형이라고 결과가 나온 그는 술자리에서 그 얘기를 하며 진심으로 분개했다. 2살까지 형성된 애착 유형이나 12살까지 형성된 성격으로 사람을 설명한다는 게 결정론처럼 느껴져서 싫다는 거였다. 하지만 실제로 그는 20대와 30대 동안 숱하게 불안정한 연애를 반복하며 많은 사연을 만들어 왔다. “그런데 너 여친이 안정형이면 안정형하고 만나지 뭐 하러 불안형을 만나?” 내 물음에 진수는 여유롭게 웃으며 대답했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었어. 그런데 그런 생각 자체가 불안형들이나 하는 생각이래. 안정형은 그런 건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자기가 좋으면 만난다고 하더라고.” 진수는 민영과 자신이 얼마나 천생연분인지 강조하며 일화를 들려주었다. 친구가 별로 없어서 예식장이 텅 비는 것을 걱정하는 그에게 친구가 없는 외톨이는 오히려

  • 관리자
  • 2024-06-01
안개가 시작된다

안개가 시작된다 김본 대관령에 간다는 건 여름휴가가 시작된다는 뜻이었다. 언니와 원규 오빠는 스키 동호회에서 만났다. 겨울이면 두 사람은 스키를 타러 대관령에 갔고, 연애를 시작하면서부터는 여름에도 가기 시작했다. 결혼 후에는 아예 연례행사로 자리 잡았다. 원규 오빠의 회사 일정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긴 했지만, 대체로 7월 마지막 주면 휴가가 시작되었다. 휴가 전주에 원규 오빠는 내게 전화를 걸어 언니네 집에서 하룻밤 자고 가지 않겠냐고 물었다. 평창까지는 자기 차로 함께 가자고. 사실상 그건 제안이라기보다는 확인에 가까웠다. 오빠가 전화하기 전부터 나는 기차표를 예매해둔 상태였다. 슬기가 너 바꿔 달라고 난리다. 슬기는 막 네 살이 된 나의 조카였다. 그렇게 말하면서 오빠는 난처하게 웃었다. 진정으로 곤란하다기보다 즐거움에서 비롯된 웃음이었다. 내가 슬기와 통화하는 동안 오빠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슬기를 안아 올려 무릎에 앉힌 채로 기다릴까. 아니면 슬기의 귀에 휴대전화를 대주고 있으려나. 평창으로 가는 길은 생각보다 한산했다. 오빠는 반쯤 장난으로 내 운전에 훈수를 두었다. 오빠, 나도 면허 있어. 내가 응수하자 오빠가 그럼 다음번에는 운전해서 오라고 했다. 세대 등록 해놔야겠다. 고속도로를 달리며 나는 상상했다. 다음번을. 오빠가 사는 아파트 단지에 차를 끌고 입장하는 모습을. 누구도 나를 막아서지 않고, 내가 그곳의 세대원이 아니라는 걸 의심하지 않는 상황을. 제한 속도를 초과했다는 알람이 울렸다. 나는 서서히 속도를 줄였다. 내비게이션 화면에 뜬 숫자가 조금씩 줄어들었다. 평창에 가까워지자 안개가 자욱했다. 눈앞의 거리를 가늠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날이 저물기 전에 서두르는 게 좋을 것 같았다. 7백 미터 방면 평창IC라고 적힌 표지판을 막 지나쳤을 때, 계기판에 타이어 공기압이 낮다는 경고문구가 떴다. 급하게 차를 갓길에 세우고 살펴보았지만 육안으로는 구별이 가지 않았다. 오빠는 뒷좌석에 앉은 슬기를 안심시켰다. 실 구멍인가 보다. 운전석 쪽으로 빙 돌아온 오빠가 말했다. 여분 타이어 챙겨올걸. 큰집에 있으려나? 오빠가 말하는 큰집이란 이모의 집이었다. 그뿐 아니라 오빠는 연구소에서 제공해 준 숙소 ― 오빠가 슬기와 함께 사는 아파트 ― 도 언니네 집, 이라고 불렀다. 마치 그곳이 언니의 소유이고 오빠와 슬기가 잠시간 얹혀사는 것처럼. 이모에게 도움을 요청할 생각인가 싶어서 잠시 긴장했다. 그러나 오빠는 보험사에 연락할 테니 차에 들어가 있으라고 했다. 나는 멍청한 얼굴로 돌아와 운전석 문을 닫았다. 뒷자리에서 슬기가 잠금장치를 잠갔다 풀었다 장난을 쳤다. 출발하기 전 전체 잠금을 설정해 놓아서 위험하지는 않았지만, 신경에 거슬리는 소리가 났다. 나는 문득 뒷좌석 문이 벌컥 열리면서 고속도로 한복판에 슬기가 쏟아지는 상상을 했다. 이모, 밝은데 어두워. 도로 양쪽으로 솟아오른 산 주위가 뿌옜다. 안개 때문에 그래. 내가 속삭였다. 안개가 뭐야? 슬기가 물었

  • 관리자
  • 2024-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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