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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 부부

  • 작성일 2017-05-01
  • 조회수 2,490

[단편소설]



중국인 부부



나푸름



한밤중에 물을 마시러 나간 아내가 자고 있던 나를 다급하게 깨웠다.
“밖에 누가 있어.”
잠이 덜 깬 나는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이불 속에서 몸을 웅크렸다. 도대체 이런 밤중에 뭐가 있다는 거야.
“정말 누가 있다니까.”
아내의 말은 신음처럼 녹아내려 귀에 달라붙었다. 더는 듣고 있을 수 없어 마지못해 몸을 일으켰다. 방에 누가 있는 것도 아니고 밖에 누가 있는 게 뭐 어때서 그래. 우리 땅도 아니고 여긴 다, 남의 땅이잖아. 나는 속에서부터 올라오는 말들을 삼키며 방 밖을 나섰다. 아내는 무섭다며 내 뒤에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6월이었고 밤은 아직 쌀쌀했다. 침대 안에서 따뜻이 데워졌던 몸에 소름이 돋았다. 아직 온기가 남은 손으로 팔뚝을 쓸어내리며 아내가 가리키는 곳으로 갔다. 거실 창문 너머를 바라보니 밖에 정말 무언가가 있었다. 그것은 움직임이 없어 누군가가 대로변에 내놓은 너절한 쓰레기나 부서진 가구처럼 보이기도 했다. 다음 순간, 내가 생각을 굳히기 전에 그것이 움직였다. 얇고 작은 무언가가 양옆으로 조금 흔들린 것이다. 하지만 확신할 수 없었다. 밖은 무척 어두워 그림자와 사물마저 제대로 분간해 낼 수 없을 정도였다.
지금의 집으로 이사 오던 날, 늦은 저녁을 사오는 길에 집 주변에 늘어선 가로등 몇 개에 불이 나가 있는 것을 보았다. 이미 민원을 넣었다는 말을 이사 온 다음날에 들었는데 두 달이 지나도록 거리가 어두웠다. 이곳의 행정처리가 한국보다 몇 배는 느리다는 건 비자를 발급받을 때부터 어느 정도 체감한 일이었지만 이쯤 되면 답답한 수준이었다.
“여기 사람들은 한국에서처럼 죽을 것같이 일하지 않아요.”
젊은 시절, 임신한 아내와 함께 이민을 왔다는 한인 교회 권사의 말이었다. 나는 그의 누렇고 피곤해 보이는 얼굴을 살피며 별 생각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권사는 가족과 함께 한국인 전용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아내의 말로는 이 지역 한인 중 가장 성공한 사람일 거라고 했다. 목사님이 괜히 권사 일을 맡긴 게 아니라니까. 그때 아내의 목소리에는 부러움이 잔뜩 끼어 있었다.
“저기 좀 봐.”
아내는 어느새 내 옆으로 와 움직임이 있는 방향을 가리켰다. 호기심이 두려움을 앞선 것이다. 그녀의 말대로 대로변에 나와 있는 그것은 꺼진 가로등 아래에서 조금씩 움직이고 있었다. 윤곽이라도 구분해 내기 위해 미간을 좁히고 눈에 힘을 주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눈은 조금씩 어둠에 적응해 나갔다.
그곳에는 작은 사람이 서 있었다.
나는 조금 무서워졌다. 어쩌면 저 작은 사람이 영화에서 보았던 살인마일지도 모르는 것이다. 그러나 곧 어둠 속에서 움직이는 그 작은 사람이 발자국을 뗄 기력도 없어 보이는 마르고 벌거벗은 노인이란 걸 알아챘다. 비슷한 때에 노인의 모습을 분간해 낸 아내의 입에서 신음 같은 탄식이 흘러나왔다. 그것은 혐오와 의혹, 안도 따위가 뒤섞인 형태였다. 금방이라도 비틀어질 듯 여위고 연약한 노인의 몸에는 속옷 한 장만이 간신히 매달려 있었다.
“경찰에 신고해야 할까?”
나는 아내의 말을 듣고도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이곳에 온 지 두 달째였다. 주변 사정에 어두운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지금의 상황을 제대로 설명해 낼 자신이 없었다. 게다가 당황해서 오해를 살 말이라도 한다면?
“다른 사람들이 하겠지.”
이 시간에 다른 사람들이 할 거라고? 아내의 얼굴에는 납득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이 가득했다. 조금 짜증이 났지만 금방이라도 말을 쏟아낼 것 같은 아내의 입이 무서워 얼른 한 마디를 덧붙였다.
“전화해서 뭐라고 하게.”
창문 앞을 서성이는 아내를 뒤로 한 채 침대에 누워 이불을 덮었다. 누웠던 자리는 이미 차게 식어 있었다. 초여름이지만 밖은 아직 쌀쌀했다. 벌거벗은 채로 밖에 나와 있는 노인이 신경 쓰였으나 문 밖을 나서면 아내가 기어코 경찰서에 전화를 걸 것만 같았다. 아내는 내가 잠이 들 때까지도 침대로 돌아오지 않았다.


오전에 일어나 보니 옆에는 잔 흔적만 남아 있고 아내는 없었다. 위층을 울리는 요란한 웃음소리가 천장을 타고 내려왔다. 아내의 목소리는 그 안에서 어렵지 않게 구분해 낼 수 있었다. 오늘쯤 아내가 주인집 노부부와 식사 약속을 했다던 게 기억났다. 아내는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하지는 못했지만 목소리가 크고 잘 웃는 성격이라 외국인과도 빨리 친해지는 편이었다. 식사는 지금 막 시작된 것 같았다.
70년대에 프랑스에서 이주해 왔다는 주인집 노부부는 큰 근심 없이 유복하게 늙은 노인들답게 베풀길 좋아하는 사람들이었다. 주인 여자는 흥분하면 불어로 떠드는 버릇이 있어 대화하기 곤혹스러운 때가 있었으나 그것만 빼면 대체로 좋은 이웃이었고 까다롭지 않은 집주인이었다. 다만 우리는 일주일에 몇 번씩 2층에 불려가 함께 식사를 하거나 차를 마셔야 했다. 특별히 우리 부부를 좋게 봤다거나 무슨 속셈이 있어서라기보다, 그들에게는 세입자를 초대하여 무언가를 함께하는 일이 익숙해 보였다. 아내는 그런 것에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녀는 정원이 넓고 채광이 잘 되는 그들의 집을 무척 마음에 들어 했고 원한다면 그보다 더한 일에도 순순히 응할 생각인 것 같았다.
“우리가 당신들에게 낯선 사람이 아니었으면 좋겠어요.”
주인 여자는 얼굴에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를 띠고 있었다. 아내는 그들이 좋은 사람들인 것 같다고 했지만 나는 그렇게 그들과 함께하는 소소한 일상이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두 사람 다 현직에서 물러나 권태로워진 일상에 뭐라도 채워 넣고 싶은 거겠지. 때마침 함께 살게 된 젊은 동양인 부부는 좋은 구경거리일 것이다. 나는 노부부를 즐겁게 해줄 자신이 없어 몇 주 전부터 핑계를 대며 초대를 고사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어떻게 혼자서 낯선 사람들과 있느냐며 불평하던 아내는 어느 순간부터 노부부와의 시간을 기다리고 있는 듯 보였다.
간간이 들려오는 웃음소리에 음식 냄새까지 섞여 오는 것 같아 조금씩 배가 고팠다. 그래도 이제 와 위층에 올라가는 것도, 혼자 밥을 차려 먹는 것도 내키지 않아 좀 더 잠을 자기로 했다. 방음이 좋지 않아 다시 자기는 힘들 거라 생각했는데, 간밤의 소동으로 잠을 설쳤는지 금세 눈이 감겼다.
잠을 자며 꿈을 하나 꾸었다. 아내가 집 앞에서 간밤의 노인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나는 창문 밖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밖은 여전히 어두워 얼굴 표정 하나 분간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런데도 나는 그들이 내 쪽을 바라보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초조해져 그녀의 이름을 불렀는데 전혀 반응이 없었다. 나는 그녀가 내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라고 여겼다. 얼른 가서 그녀를 데려와야겠다고 생각했지만 도무지 발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나는 초조해하며 그녀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려야 했다.
한참을 잤는데도 주변이 조용했다. 아내는 부지런한 성격이라 내가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들으며 게으름을 피우고 있을 때도 주변 정리를 한다며 잦은 소음을 냈다. 그러다 이따금 무언가에 대해 물었는데 나는 그때마다 다른 곳에 신경 쓰느라 제대로 대답해 주지 못했다. 다리 사이에 이불을 끼고 몸을 웅크렸다. 눈꺼풀이 무거워 일어나고 싶지 않았다. 정신이 반쯤 꿈속에 가 있는 바람에, 방금 꾼 꿈이 정말로 전날 있었던 일처럼 느껴졌다. 이대로라면 아내가 나에게 질려 떠나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멍청한 생각이 전해지기라도 했는지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아내의 구두 굽 소리가 따라 들어왔다. 아내는 들어오자마자 주방으로 건너갔다.
“점심 먹어야지.”
나는 침대에서 반쯤 몸을 일으킨 채로 아내를 바라보았다. 밥을 먹고 온 것일 텐데도 아내의 입술은 붉게 번들거렸다. 기껏해야 노부부와의 식사에 저렇게까지 꾸밀 필요가 있었을까 싶었다. 아내가 냉장고에서 어제 먹다 만 반찬들을 내놓으며 불쑥 말을 꺼냈다.
“앞집에 사는 중국인 할아버지였어.”
“누구?”
“어젯밤의 그 노인 말이야.”
순간 그녀가 정말로 노인과 대화를 한 것이 아닌가 싶었는데 아내는 주인집 부부와 어제의 일에 대해 이야기했다고 알려주었다. 나는 며칠 전 집 근처에서 마주친 작은 체구의 노부인을 떠올렸다. 늙고 고집스러워 보이는 입매에 반백의 머리를 가진 동양인. 그녀가 저보다 십 년은 더 나이 들어 보이는 노인을 데리고 산책을 나가는 걸 몇 번 본 적이 있었다. 어제의 노인이 그녀의 남편이었던 것이다.
차이나타운이 아닌 다른 곳에 사는 중국인들은 처음 보았다. 시 외곽에서 중국어가 통하지 않기 때문인지, 대부분의 중국인들은 시가지에 있는 거대한 차이나타운 안에서 살았다. 들은 바로는 그 안에 없는 것이 없고 영어를 하지 않아도 충분히 살아갈 수 있다고 했다. 나는 그런 곳을 두고 굳이 낯선 이들에게 둘러싸여 살아가는 그들이 선뜻 이해되지 않았다. 게다가 우리가 사는 웨스트엔드는 개중 동양인의 비율이 가장 낮은 곳이었다.
“치매라나 봐. 부부 둘이 사는데 할아버지가 그렇게 밤만 되면 속옷 바람으로 대로변을 돌아다닌다는 거야.”
“지금까지 용케 안 잃어버렸네.”
나는 말을 한 뒤에야 그를 책이나 우편물이라도 되는 듯이 얘기했다는 걸 깨달았다.
“밖으로 나가도 집 근처에서만 그러고 있으니까. 주변에서도 몇 번 집에 찾아가서 말해 봤는데, 그때마다 영어 못 하는 노부인만 있어서 이제는 그냥 포기했대. 시끄럽게 구는 것도 아니고 그냥 가만히 서 있기만 하니까. 뭐, 새벽에 마주치면 으스스하긴 하지만.”
노인에 대한 아내의 태도는 전날 밤과 사뭇 달라져 있었다. 간밤에 경찰을 부르지 않은 게 다행스럽게 느껴졌다. 나는 아내가 차려 준 음식을 열심히 먹었다. 밥이고 반찬이고 미지근하거나 너무 차가워 아무 맛도 느끼지 못했다.
“주인집 말이야. 나한테 그 얘기를 해주면서 그래도 같은 나라 사람인데 친하게 지내라고 하는 거야.”
“우릴 중국인으로 안 거야?”
“그렇다기보다, 옛날 사람들이라 그런지 한국이랑 중국을 구별 못 하더라고.”
아내는 밥을 다 먹고 시내에 나가자고 했다. 장도 봐야 하고 아는 언니가 집에서 안 쓰는 물건들과 옷가지를 준다고 해 약속을 잡았다고 그랬다. 나는 아는 언니가 안 쓰는 물건이면 우리도 필요 없는 게 아니냐고 했는데, 아내는 언니는 안 쓰는 물건이지만 우리에게는 필요한 물건일지도 모른다고 그랬다.
아내는 이곳에 올 때 최소한으로 짐을 줄여 가자는 의견에 동의해 많은 것들을 한국에 두고 와야 했고 그 때문인지 오히려 이곳에서는 필요 없는 것과 있는 것을 구분하지 않고 쌓아 두었다. 그중에는 다 쓴 화장품 용기와 고장 난 헤어드라이어 같은 것도 포함되어 있었다. 나는 몇 번이고 그것들을 치우라고 했으나 아내는 쓸 데가 있을 거라며 아무것도 버리려 하지 않았다.
“다 갖추고 살 수는 없어.”
내가 말하자 아내는 나를 돌아보지 않고 대답했다.
“갖추고 살려는 게 아니야. 나는 여기서 살려고 하는 거라고.”


내가 늦장을 부리는 바람에 우리는 오후 네 시가 넘어서야 집에서 나왔다. 버스정류장으로 걸어가는 길에 저도 모르게 앞집을 힐끔거렸다. 중국인 부부의 집은 근처 정류장으로 가는 길목 맞은편에 있었다. 그 집은 비슷하게 생긴 주변의 다른 집보다 커서 우리 집 거실 창문에서도 그 집 현관이 보였고, 정류장에 앉아 바라보면 집 외관을 두루 살필 수 있었다. 전에는 우리가 묵고 있는 집이 일대에서 가장 크고 고풍스럽다고 생각했는데 앞집도 잘 가꿔진 정원과 커다란 테라스를 가지고 있었다. 내가 중국인 부부의 집을 보고 있자 아내는 늦었다며 내 손을 잡아끌었다. 집이 좋아서 보고 있었다기보다 어제 봤던 노인이 정말로 그곳에 사는지 궁금했던 것뿐이었지만 아내는 조금 마음이 상한 얼굴이었다. 그녀는 버스에 타고도 한참을 아무 말도 않고 가만히 있었다.
버스는 일정한 속도를 유지하며 균일한 간격으로 차체를 흔들었다. 차가 진동할 때마다 우리가 앉은 자리는 한 군데씩 나사가 빠진 듯 불안하게 움직였고, 좌석 밑에 깔린 낡은 엔진은 고통을 참아내듯 낮은 소리를 내며 무겁게 진동했다. 몇 안 되는 승객들 중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으나 버스 안은 이미 소리로 가득 차 있었다. 나는 그 불안한 소음들을 피해 창문 바깥으로 시선을 두었다. 보이는 것이라곤 온통 비슷한 나무와 집들뿐이었다. 여유롭고 평화로운 풍경을 보고도 아무런 감상이 떠오르지 않는 걸 보면 이곳도 고작 사람이 사는 곳일 뿐 그 이상의 의미는 사라져 버린 느낌이었다.
아내가 오랜 침묵을 뚫고 앞집 이야기를 꺼냈다.
“그 할머니 말이야. 분명 노리는 게 있을 거야.”
아내는 아까부터 앞집 일이라면 조금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무래도 생각보다 집이 좋았던 게 문제인 것 같았다.
“그러니 밤마다 정신도 온전치 않은 노인네를 혼자 산책시키는 거지. 제발 길 좀 잃으라고.”
고개를 돌려 아내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말에 악의가 있어 보이지는 않았다. 가끔 엉뚱한 상상을 할 뿐이지, 그녀가 다른 사람의 불행을 즐기거나 마땅하다고 여기는 모습은 보지 못했다. 문제는 이곳에 온 뒤로 아내가 방금과 같은 말들을 어디에서건 서슴없이 내뱉는다는 점이었다. 주변 누구도 우리의 말을 알아듣지 못한다는 게 이유였으나 나에게는 그녀가 해도 될 말과 하지 않아도 될 말을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처럼 보였다. 내가 시원치 않게 대답하자 대화는 얼마 안 가 침묵으로 바뀌었다.
아내와는 5년을 사귀다 결혼했다. 만난 지 이 년이 넘어갈 무렵 이 여자와 결혼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지만 변변치 않은 벌이 때문에 결혼은 자꾸만 미뤄졌다. 홀로 아내를 키운 장모는 나를 탐탁지 않아 했다. 사람이 너무 착하고 순진하여 미덥지 않다는 게 이유였다. 나는 착하지도 순진하지도 않았으나 장모가 내 앞에서 그렇게 얘기할 때면 가만히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엄마는 착하고 순진해서 싫다고 하지만 나는 그래서 자기가 좋아.” 결혼 전 장모에게 한소리 들은 날이면 그녀가 항상 그렇게 말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내가 그들의 말처럼 착한 사람이었다면 그녀에게 미안해서라도 헤어지자고 했을 것이다. 아내는 나와 사귀는 동안에도 장모에게 속아 몇 번이고 선 자리에 나갔다. 나는 그녀가 장모에게 번번이 속을 만큼 눈치가 없지 않고, 홀어머니의 말을 잘 듣는 딸도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도 그렇게 선을 보고 난 뒤에는 어김없이 돌아와 주는 것이 고마워 그녀가 하는 말을 모두 믿어 주었다.
우리는 장을 보러 가기 전에 시내에 있는 한인 교회에 들렀다. 아내의 눈치로는 지역 한인들에게 눈도장을 찍어 나중에 일자리라도 부탁할 요량인 것 같았다. 평일 오후라 그런지 교회에는 아내가 기대했던 것보다 사람이 적었다. 목사님께 인사나 드리고 가자며 발걸음을 옮기려는데, 권사 부부가 들어왔다. 아내는 그쪽에서 우리를 알아보기도 전에 먼저 다가가 살갑게 인사를 건넸다. 부부는 잠시 시간을 내 청소를 하러 온 것이라고 했다. 게스트하우스만 운영하는 줄 알았는데 원하는 손님들을 대상으로 싼값에 저녁을 지어 주고 있어 남는 시간이 많지 않다고 그랬다. 아내는 귓속말로 있는 사람들이 더하다며 혀를 찼다.
권사 부부가 사는 곳은 어떠냐며 이것저것 친절하게 물어 왔다. 나는 그들의 선한 인상이 부담스러워 잠시 전화를 하고 오겠다며 밖으로 나갔다. 아무래도 신앙이 없는 게 문제였다. 아내와 나는 둘 다 종교가 없었고 한국에서는 교회 문턱도 넘어 본 적 없는 사람들이었다. 이 나라에 도착하고 집도 구하지 못하고 있을 때, 아내는 어디선가 한인 교회에 가면 정보를 얻을 수 있다는 말을 듣고 무작정 이곳을 찾아왔다. 물론 그 덕에 지금까지 많은 도움을 받았다.
맨 처음 우리 사정을 듣고 지인을 통해 집을 알아봐 준 것도 권사 부부였다. 처음으로 추천한 집은 26번가에 있는 스튜디오 아파트였다. 시내와도 가깝고 근처에 대형마트가 있어 여러모로 편리한 위치였다. 무엇보다 중심가 부근에 있음에도 집세가 지금 사는 곳의 절반 정도에 불과했다. 가격을 들은 아내는 당장 집을 보러 가자며 재촉했는데 막상 아파트 앞에 도착하고 나서는 실망한 얼굴을 감추지 못했다. 아파트는 생각보다 노후했다. 여러 번 보수한 흔적이 있는 외벽은 새로 칠할 때마다 다른 채도의 색이 덧입혀져 지저분해 보였고, 정문 외곽에 위치한 배수관은 녹이 슨 채로 페인트가 반쯤 벗겨져 있었다. 다행히 내부는 외관보다 나았지만 아내는 욕실 한 번 제대로 둘러보지 않은 채 그곳을 서둘러 빠져나왔다. 아내는 권사 부부가 우리를 무시하는 거라며 골을 냈다.
이후에 본 다른 집들도 사정은 비슷했다.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중심가에서 살고 싶어 했으나, 집세를 감당할 수 있는 곳은 모두 지은 지 수십 년은 돼 보이는 낡고 노후한 아파트뿐이었다. 권사 부부의 지인이 한국인이었고 그 지인의 지인들 또한 한국인이었으니 당연한 결과였을 것이다. 그것은 곧 아내의 또 다른 불만이 되었다. 한국인이 사는 곳에는 언제나 또 다른 한국인들이 날파리처럼 꼬여 있었다.
아내와 달리 나는 집만 구할 수 있다면 아무래도 좋았다. 그러던 중 지금의 집을 구하게 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여러모로 보나 지금의 집은 아내가 내세운 조건에 대체로 부합하는 곳이었고 그것은 나에게도 좋은 일이었다.
담배를 피우고 들어가 보니 권사는 어디 가고 그 부인과 아내만 남아 있었다. 그들은 내가 들어온 것도 인식하지 못했는지 대화에 열중하고 있었다. 나는 아내의 입에서 나오는 중국 노인이라는 단어를 듣고, 대화의 주제를 알아챘다. 그녀의 입에서는 뒤이어 학대와 방치라는 말이 여러 번 반복해서 나왔다. 아내의 말을 듣는 부인의 얼굴에는 호기심과 안쓰러움이 뒤섞여 있었다.
“잃어버리길 바라는 게 분명하다니까요. 다 죽어 가는 노인 하나 집 안에 못 들여놓고 내버려둔다는 게 말이나 되겠어요?”
아내의 말에는 어느새 확신이 배어 있었다. 머릿속으로 노부인의 모습이 떠올랐다. 남편이 밤마다 어두운 도로를 헤매고 있을 때, 노부인은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장을 보는 데는 삼십 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우리는 돈에 여유가 없어 뭐든 조금씩 샀다. 아내는 대부분의 시간 동안 진열대 앞에서 고민하는 모습을 보였는데, 결국 구겨진 박스에 담긴 시리얼과 무른 과일을 몇 개 골라 바구니에 넣었다. 운반 과정에서 생긴 하자로 반 가격에 판매되는 물건들이었다. 아내는 우리의 사정을 별로 친하지도 않은 언니에게 보여줄 수 없다며 장바구니를 곧장 내 손에 들려주었다. 카페로 들어가는 아내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아마도 그런 처치 곤란한 잡동사니를 줘서 고맙다며 5달러가 넘는 커피를 사줄 것이었다. 구겨지고 멍든 음식이라도 속은 멀쩡하고 맛도 좋다고 말하는 아내와, 그럴 수밖에 없는 자신의 형편을 부끄러워하는 아내는 위선적이라기보다 안쓰러움과 죄책감을 느끼게 했다. 나는 어쩌면 아내가 보여주기 싫은 대상이 이렇게 평일 낮에 빈둥거리는 남편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집으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저녁으로 오늘 산 과일 조금과 시리얼을 먹고 있는데 아내에게서 늦는다는 연락이 왔다. 밥이 먹고 싶었지만 주방을 뒤지다 보니 집에 쌀이 한 톨도 남아 있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우리가 그 정도로 가난한 거냐고 아내에게 묻고 싶었는데 만약 그렇다 하더라도 해결해 줄 수 없을 것 같아 물어보지 않았다. 나는 우리에게 얼마가 남았는지, 앞으로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같은 건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그저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우리에게 버틸 수 있는 시간이 많이 남아 있기를 바랄 뿐이었다. 스스로의 무능에 대해 절감하는 게 얼마나 괴로운 일인지는 경험해 보아 알았다.
나는 내가 한국에 적응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적응할 수 없었던 것이라고 생각했다. 삼십 년 가까이 그곳만이 세계의 전부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애초에 맞지 않는 곳에서 태어난 것이다. 그렇다고 다른 나라에서는 달라질 것이란 확신은 없었으나 어느 곳이든 한국보단 나을 거라고 믿었다. 그런 믿음이 어디서 온 것인지는 몰랐다. 그저 더는 억지로 사는 사람처럼 살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이곳에 온 지 고작 두 달이 넘었을 뿐인데도 나는 자신이 없었다. 과연 이곳에서는 견딜 수 있을까. 어쩌면 나는 남들처럼 사는 게 애초에 불가능한 사람일지도 몰랐다. 그렇게 생각하다 보면, 나보다도 아내가 더 불쌍해지는 일이었다.
집주변 가로등이 아직도 고쳐지지 않은 게 기억나, 아내를 마중하러 버스정류장으로 걸어갔다. 주변을 둘러보다 중국인 부부의 집에 불이 켜져 있는 걸 보았다. 간밤의 노인이 궁금하기도 하여 그 집 창문 가까이 다가갔다. 거실에는 소파에 기대앉은 노인이 고개를 앞으로 숙인 채 졸고 있었다. 그가 어제 본 노인과 동일인물인지는 분간할 수 없었으나 아내가 알아 온 게 사실인 듯했다. 겉으로 보기엔 평범해 보이는 집에 그런 문제가 있을 줄은 생각도 하지 못했다. 저렇게 있으니 그저 나이가 들어 기력이 쇠한, 흔한 노인으로 보였다. 저런 노인을 보고 어제는 무서워 밖에도 나가지 못했던 것이다. 그가 금방이라도 내 쪽을 바라볼 것 같아 아내를 기다리기로 한 것도 잊고 서둘러 집 안으로 들어갔다.
아내는 버스가 끊길 시간이 다 돼서 돌아왔다. 술을 마셨는지 양 볼이 벌겋게 물들어 있었다. 그녀는 날이 더워 그런 것이라고 했다. 외투에는 차가운 밤공기가 잔뜩 묻어 있었다. 아내는 자기가 돈을 낸 것이 아니라 언니가 낸 것이니 괜찮지 않으냐며 말을 우물거렸다. 나는 그보다 아내의 양손이 비어 있는 게 더 신경이 쓰였다. 아내는 정말 아는 언니를 만나러 간 것이었을까. 어쩌면 아내는 거기에 대해 내가 물어보기를 원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떤 대답을 한다 하더라도 그녀의 말을 내가 믿을 수 있을지, 혹여 진실을 말한다 하더라도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었다.
늦잠을 자서 그런지 침대에 눕고서도 잠이 오지 않았다. 새벽이 되도록 자지 못하다 옆에 있는 아내 몰래 거실로 나갔다. 집 밖의 차가운 공기가 집 안까지 흘러 들어와 있었다. 창문에 다다를수록 외풍이 불어왔다. 아직 여름도 채 되지 않은 시기에, 놀라울 정도로 추울 겨울이 걱정됐다. 집 앞 가로등은 아직도 고쳐지지 않은 채로 주변을 더욱 어둡게 만들었다. 그때 앞집 현관에 불이 들어왔다. 어제 보았던 노인이 또다시 속옷 한 장만을 걸친 채로 밖을 나서고 있었다. 순간 노인이 미처 닫지 못한 현관문이 집 안의 누군가에 의해 닫혔다. 보지 않아도 될 장면을 본 것 같아 꺼림칙했다. 노인이 걱정됐지만 밖으로 나가지는 않았다. 잠을 자야 할 시간이 한참 지나 있었다.


며칠 후 아내의 성화에 못 이겨 주인집과의 점심식사에 참석했다. 이웃들까지 초대한 자리에 남편이 오지 않으면 사이가 나빠 보인다는 것이 이유였다. 아내는 전날 미리 재워 둔 갈비를 싸들고 위층으로 향했다. 주인 남자는 한집에 사는데도 오래도록 보지 못한 것 같다고 말했다. 나는 무안함에 얼굴을 붉히며 어색하게 웃었다. 오랜만에 듣는 아내의 영어는 두 달 전에 비해 많이 좋아져 있었다.
아내와 함께 주인 여자를 도와 식기를 정리했다. 곧 도착한 이웃들이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우리에게도 살가운 인사를 건넸다. 옆집에 사는 여자가 어떤 음식을 가져왔는지 묻자, 아내는 밀폐용기의 뚜껑을 열어 음식을 보여주었다. 여자가 호기심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전에 비슷한 걸 먹어 본 적 있어요. 그런데 그거, 날것으로도 먹을 수 있는 거예요?”
아내가 당황한 건 그때였다. 조리하지 않은 게 실수였다는 걸 그제야 깨달은 눈치였다. 자신을 쳐다보는 몇몇 사람들의 시선에, 아내의 얼굴이 순식간에 상기됐다. 다른 이들이 들고 온 접시에는 완전하게 조리된 음식들이 담겨 있었다. 당장 내려가 구워오겠다는 아내를 만류한 건 주인 여자였다. 그녀는 아내를 주방으로 안내하며 아직 한국 요리를 제대로 먹어 본 적이 없어 조리하는 것이 보고 싶다고 했다. 그것은 누가 보더라도 당황해하는 사람을 위해 꾸며낸 말 같았으나 정작 아내는 그것을 눈치 채지 못한 것 같았다. 아내는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의 요리가 가장 맛있을 거라는 말만 반복했다.
프라이팬이 달궈지며 달고 진한 간장 냄새가 주변으로 퍼졌다. 양념된 고기는 지나치게 천천히 익어 갔다. 조리 시간이 예상보다 길어지자, 불편한 표정을 애써 감추고 있는 이웃들의 얼굴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주방을 넌지시 바라보는 옆집 여자의 얼굴이 굳어 있었다. 이미 차려진 식탁의 음식들이 조금씩 식어 갔다. 초조해진 아내가 불을 강하게 올리자, 주방에서 연기가 새나가기 시작했다. 식탁에 앉아 있는 이웃들이 하나둘씩 잔기침을 했다. 이웃에 사는 중년의 여자가 인상을 쓰며 말했다.
“이게 무슨 냄새예요?”
중년 여자의 남편이 그녀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는데 정작 그의 얼굴도 여자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중년 여자가 내 쪽을 힐끔거리더니 창문을 열었다. 냄새는 익히 알던 것과 아무런 차이가 없었다. 그들의 반응 또한 냄새 때문만은 아닌 듯했다. 무례한 사람이 되는 것은 순간이었다. 내가 이국에 와 있다는 것을 그제야 실감할 수 있었다. 아내는 전날 자신의 음식이 가장 맛있을 거라고 했다. 갈비는 내가 좋아하는 음식이었다.
참을성 있게 아내 옆에 서 있던 주인 여자는 연기가 프라이팬 안을 벗어나자 환풍기를 켰다. 팬이 힘차게 돌아가는 소리가 주방을 넘어 내가 앉아 있는 식탁까지 도달했다. 이웃들은 서로 이런저런 대화를 하며 주방에서의 상황을 모른 척했다. 나는 거기에 대해 무슨 말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영어로 된 문장은커녕 단어 하나도 떠오르지 않았다. 언어의 문제만은 아니었다. 이 자리에서 도망치고 싶었다. 사람들의 눈치 속에서 갈비를 굽고 있는 아내 때문에 그럴 수 없는 것뿐이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아내가 있는 주방으로 갔다. 주인 여자가 내 옆을 지나가며 알 수 없는 말을 불어로 지껄였다. 뜻을 모르는데도 그 속에 들어 있는 단어의 날카로움은 착각이라 할 수 없을 정도로 분명하게 전해졌다. 같이 어울리는 건 좋다고 해도 자신들에게 폐가 되는 걸 좋아할 사람은 없었다.
프라이팬에서 나오는 연기는 어느새 주방 천장을 맴돌고 있었다. 아직까지 화재경보기가 울리지 않은 것이 신기할 정도였다. 아내는 열리지 않는 부엌 창문을 붙들고 허둥대고 있었다. 그녀는 나를 보고 어색하게 웃었다.
“먹어 보면 다들 좋아할 거야.”
그녀의 말은 그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는 사람의 말처럼 절박하게 들렸다. 나는 아내의 생각에 동의할 수 없었다. 가장 좋은 방법은 며칠 전으로 돌아가 오늘의 초대에 응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러나 모든 것은 이미 늦었다. 나는 아내에게 그만 하라고도, 자리에 돌아가지도 못한 채 그 옆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이미 맛 같은 건 아무도 신경 쓰지 않을 텐데. 다른 이들 또한 나처럼 이 시간이 빨리 지나가기만을 바라고 있을 것이었다.
“제발 그 냄새라도 좀 멈춰 봐.”
갈비는 속까지 익지 못하고 겉만 타들어가고 있었다. 손바닥이 축축하게 젖어들었다. 아내의 시선은 나를 피해 주변을 배회했다. 어떤 생각을 하는 것 같기도 했고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는 것도 같았다. 냄새는 더욱 심해질 참이었다. 아내 옆으로 다가가 스토브의 불을 껐다. 그녀가 붉어진 얼굴로 나를 보았다. 나는 얼른 아내의 시선을 피했다. 그러나 이미 모두 들켜버렸다. 아내는 내가 한 말을 들었을 것이고 내 옹졸함을 눈치 챘을 것이다. 주방 천장을 맴돌던 연기가 환풍기 속으로 차근히 빨려 들어갔다. 어쩌면 이 순간 아내에게 끔찍한 건 지금의 상황이 아니라 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환풍기 소리가 침묵이 흐르는 지점을 메우고 있었다. 나는 어떤 표정을 짓고 있어야 할지 몰라 주방 한가운데에서 우두커니 서 있었다.
“저기 좀 봐요.”
그때 식탁에 앉아 있던 누군가가 말했다. 사람들이 일어나 창문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나는 순간 그들의 시선이 다른 곳으로 쏠렸다는 것에 안심했다. 주방에 홀로 서 있는 아내를 뒤로 한 채 창가로 다가갔다.
우리에게도 분명 한국에서의 미래를 기대하던 때가 있었다. 장모가 생각하는 제대로 된 직장을 잡은 뒤에는 갑자기 모든 일들이 괜찮게 흘러가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착하고 순진하다는 말을 오래 들어서 그런지, 결국 그런 성격 때문에 중요한 계약 하나를 망치고 회사에서도 잘리고 말았다. 해고통지를 받고도 나는 한동안 그녀에게 말을 하지 못했다. 그때는 스스로의 무능에 질려버린 상태라 자신감이 바닥을 치고 있었고, 장모에게 어렵사리 허락을 받은 직후였기 때문에 말을 꺼내기가 어려웠다. 그녀는 얼마 안 가 회사 앞에서 나오지 않는 나를 기다리다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는 뻔뻔스럽게도 5년간 사귀던 그녀를 잃게 될 것이 두려워 서둘러 청혼했다.
그녀가 왜 청혼을 받아들였는지는 지금도 알지 못했다. 내 쪽에서 물어보고 싶지는 않았다. 그녀의 대답이 어떻게든 나를 비참하게 만들 거라고 믿었다. 해외에 사는 그녀의 사촌에게서 연락이 온 것은 우리가 결혼을 준비하고 있을 때였다. 그녀는 기회가 온 것이라고 했다. 우리의 미래가 달라질 수 있는 기회라고 그랬다. 나는 그것이 표면적인 이유라는 걸 알았다. 그녀 또한 한국을 벗어나면 내가 달라질 거라 믿었으리라. 하지만 새로운 곳에 오면 변하리라는 생각이 순진했다. 굳이 이곳까지 오지 않더라도 내가 아무 곳에도 적응하지 못하는 인간이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스스로가 그런 사람이라는 걸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
일이 생각과는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건 이곳에 도착한 이후부터 어렴풋이 알아챌 수 있었다. 사촌의 연락이 뜸해질수록 아내는 스스로를 바쁘게 만들었다. 집주인 부부와의 교류에 매달리고 매주 교회에 나갔다. 사람들과 친분을 쌓고 무언가를 나눌 때마다 우리의 삶이 좀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으리라 믿었을 것이다. 나는 그런 그녀를 이해했다. 이해하지 못할 것이 없었다. 그녀가 그러는 사이 나 또한 어쩌면 삶은 달라질 수 있으리라 믿었으니까.
창가에 모인 사람들은 하나같이 도로의 한 지점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곳에는 중국 노인이 있었다. 전과 같이 속옷 한 장만을 간신히 걸친 그 모습에 사람들이 인상을 썼다. 형편없이 마른 몸과 볼품없는 차림새, 어디에도 정착하지 못하는 눈. 그 모든 것들은 한낮의 햇빛 아래에서 조금의 그림자도 없이 모두 드러나고 말았다. 이웃들은 나가 봐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수군거렸는데 실제로 자리를 벗어나는 사람은 없었다. 노인은 이번에도 그저 도로 한복판에 가만히 서 있을 뿐이었다. 얼핏 보면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도 같았다. 문제는 그 앞에 있는 차였다. 높고 큰 경적소리가 동네 가득 울려 퍼졌다. 노인의 집에서는 인기척이 없었다. 산책을 나갈 때마다 노인의 손을 잡아 주던 늙은 아내는 보이지 않았다. 자신의 무고한 남편을 내버려둔 채로 노부인은 어디에 간 것인지. 다른 사람들은 그렇다 하더라도 아내는 그러면 안 되는 것이 아닌가.
운전자는 내리지 않은 채 집요한 소음만을 방출했다. 노인은 귀가 먹은 사람처럼 전방의 한 지점만을 집요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그의 시선이 향하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멀리서 경찰차가 다가오고 있었다. 조용한 동네에서 일어난 때 아닌 소동에 누군가가 신고를 한 것 같았다. 주변을 바라보자, 사람들의 얼굴이 흥분으로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그들은 지금의 소동으로 중국인 부부의 집에서 일어나는 숨겨진 일들이 밝혀지기를 고대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니 그들이 슬슬 내 눈치를 보는 것이었다. 영문을 알 수 없었다. 아내가 나 몰래 저 노인을 신고한 적이 있었나. 하지만 아내에겐 혼자 경찰서에 전화를 걸 만큼의 용기가 없다. 그렇다면 권사 부부에게 했던 것처럼, 그런 억측에 가까운 이야기를 사실인 양 말하고 다니기라도 했던 것일까. 그런 방향이라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었다. 아내라면 그랬을지도 모른다. 그것은 추측이 아닌 확신이 되어 갔다. 제 이야기에 취해, 그게 진실인지 상상인지도 개의치 않고 말하는 아내의 모습은 쉽게 떠올릴 수 있었다. 덜컥 가슴이 내려앉았다. 금방이라도 낯선 누군가가 현관문을 두드릴 것 같았다. 아내를 찾아 주방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그곳에 아내가 없었다.
근처에 있는 화장실 문을 두드렸다. 아무런 대답도 들려오지 않았다.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집 안의 문들은 현관문을 포함하여 모두 굳게 닫혀 있었다. 애써 별일 아닐 것이라 자위했다. 아마도 외국에서 겪게 된 이런 상황에 갑자기 두려워진 것이리라.
끊임없이 울리던 경적소리는 서서히 멈춰 가고 있었다. 집 안의 사람들은 더는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하나둘 식탁에 둘러앉았다. 하지만 나는 밖에서 아내의 이름이나 내 이름이 들려오기라도 할 것처럼 신경이 쓰였다. 그럴 일은 없으리라 믿었지만 불안은 조금씩 커졌다. 그때까지도 아내는 돌아오지 않았고 그건 어떤 식으로든 나쁜 일이 일어날 것만 같은 기분이 들게 했다. 나는 다른 이들에게 그녀가 속이 좋지 않아 잠시 아래층에 내려갔다고 했다. 사람들은 염려하는 표정으로 아내를 걱정하는 말을 건넸는데, 인사치레였는지 곧 저들끼리 하던 대화를 마저 이어 나갔다. 그러다 문득 누군가가 말했다.
“어쨌든 당신이 한번 얘기해 봐야 하지 않겠어요?”
주변에 둘러앉은 이웃들이 동의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까지도 내 신경은 다른 곳을 향해 있어 테이블에서 들려오는 말을 듣고 있지 않았다. 나는 한참 전에 맥락을 놓친 대화를 기억해 내기 위해 머리를 굴려 보았지만 머릿속에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들의 대화에 내 이름이 한 번이라도 나왔었는지조차 감감했다. 내가 당황한 표정을 짓자 주인 여자가 이제야 기억났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맞다. 당신, 중국인이 아니죠.”
나는 마치 내가 중국인이 아닌 것을 들키기라도 한 사람처럼 고개를 떨어뜨렸다. 숙인 얼굴로 열이 올랐다. 왜 웃는지 알 수 없었다. 주인 여자가 말했다.
“그런데 왜 여태 말하지 않았어요.”
그 말은 마치 나를 책망하는 것처럼 들렸다. 자격지심일 수도 있었으나 그렇지 않다고 해도 다른 식으로는 생각할 수 없었다. 나는 고개를 돌려 아내를 찾았다. 냄새는 이제 희미하게만 남아 있었는데 공기는 순환되지 않은 채로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 같았다. 문득 노인과 아내가 함께 서 있던 광경이 떠올랐다. 꿈이라고 여겼는데 어쩌면 꿈이 아닐지도 몰랐다. 내가 잠든 사이에 아내가 문 밖을 나섰을 수도 있었다. 늦은 밤 혼자 밖으로 나설 정도의 용기는 없는 사람이라 여겼지만 결국 용기가 없는 사람은 아내가 아니었다.
고개를 들어 밖을 바라보았다. 2층 창문을 통해 본 중국인 부부의 집은 다른 집들과 다르지 않아 보였다. 나는 그들의 집과 다른 이들의 집을 구분하기 위해 한참 동안 창밖을 바라보아야 했다. 그렇게 찾아낸 집은 조금 전의 소란과는 무관하다는 듯 고요했고 집 안은 환한 바깥과 달리 무척 어두웠다. 그 어둠은 사람과 사물을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침침하여 나는 그저 가만히, 무언가 움직이기만을 기다릴 뿐이었다.











김경욱
작가소개 / 나푸름

서울 출생. 2014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로드킬」 당선.


《문장웹진 2017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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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마음 없이

좋아하는 마음 없이 김지연 안지는 이른 결혼을 했는데 실패로 끝났다. 아니, 그걸 실패라고 할 수 있을까? 이혼을 한 건 사실이었지만 안지는 자신의 인생 여정에서 그때 이혼한 일을 실패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 뒤로 더 행복해졌다고 할 수는 없을지언정 조금 더 자기 자신에 가까운 삶을 살게 된 것은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혼이라는 단어를 떠올릴 때면 늘 그에 대해 변호하고 싶은 여러 말들이 떠오르곤 했기 때문에 처음부터 결혼 같은 건 하지 않는 편이 더 나았을 거라는 생각을 하곤 했다. 때문에 이혼했다는 사실은 안지의 비밀은 아니었지만 먼저 나서서 밝히지도 않았다. 어릴 때 안지는 무척 전형적인 사람이 되고 싶었다. 구체적으로 그런 표현을 떠올리지는 않았다. 그저 자신이 속해야 하는 집단에서 튀지 않는 사람, 아주 평균적인 사람이고 싶었고 그런 사람이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을 했다. 찬반투표를 할 때면 눈치를 보다가 다수의 의견에 따라 슬그머니 손을 들었다. 친구가 좋아하는 가수를 따라서 좋아하고 친구의 것과 비슷한 브랜드의 신발을 사서 신었다. 친구들이 싫어하는 선생을 따라서 싫어했다. 사실 안지는 그 선생에게 남몰래 호감을 갖고 있었지만 친구들과 함께 떡볶이를 먹다가 술술 흘러나온 그 선생에 대한 욕을 듣고 재빨리 노선을 바꿔 함께 욕을 했다. 한동안 안지는 수학 시간마다 왜 애들은 저 선생을 싫어할까? 에 대한 답을 알고 싶어서 더 열심히 선생의 행동거지를 살폈다. 수학을 가르친다는 점만 빼면 딱히 나무랄 데 없는 사람이었다. 학생이 쉽게 답할 수 없는 내용을 골리듯 물어보지 않았고 무엇보다 학생들한테 사과를 할 줄 알았다. 뭔가 잘못 알고 섣불리 화를 냈을 때, 그러다 결국 진실을 알게 되었을 때, 다른 선생들은 그러게 헷갈릴 만한 짓을 왜 하고 다니느냐고 도리어 짜증을 부렸는데 그 선생은 재빨리 미안하다고 말했다. 미안하다. 내가 잘못 알았어. 미안해. 가끔 안지는 머릿속으로 그 목소리를 재생해 보곤 했다. 그 때문에 선생이 더 좋아졌지만 여전히 싫어하기 위해 애썼다. 누구나 다 그런 식으로 청소년기를 보내지 않나? 내가 아닌 사람이 되어 보려고 노력하면서? 안지는 대학에 갔고 연애를 했고 졸업을 했고 취직을 했다. 결혼도 했다. 아주 평균적인 삶이었다. 조금씩 빠르기도 했다. 조바심이 나 있었으므로. 자신도 남들처럼 지극히 평범하게 살 수 있다는 것을 빨리 증명해 보이고 싶었으므로. 어느 정도 성공적인 것 같기도 했다. 남편이 바람이 나기 전까지는 그랬다. 식도 올리기 전 임신을 해 낳은 아이가 막 돌을 지난 참이었다. 임신이 아니었으면 결혼까지는 이어지지 않았을지도 몰랐다. 남편은 계속 후회하는 것 같았다. 그때 낙태를 밀어붙이지 않은 것을, 시간을 끌다가 영영 타이밍을 놓쳐버리고 만 것을, 어떤 결단력을 가지지 못한 자신을 자책했을지도 모른다. 그때 뼈저리게 깨달은 바가 있었는지 새로운 여자가 생겼을 때는 안지가 알아차리기도 전에 이혼을 해달라고 요구했다. 겨우 육 개월을 만났을 뿐

  • 관리자
  • 2024-07-01
소금 샹들리에

소금 샹들리에 정한아 호주에 사는 김이 오랜만에 귀국해서 친구들이 다 같이 모이기로 했다. 4명이 만나는 건 대략 7년여 만이었다. 방을 잡고 밤새 보자고 해서 오기 직전까지 망설였는데, 남편이 등을 밀었다. 정민이와 자신에게도 내가 없는 날이 필요하다고 큰소리를 치더니 정말 밤새 전화 한 통 없었다. 친구들과는 대학 동기였다. 전공은 문예 창작이었는데, 나는 2학년까지 다니고 학교를 그만뒀다. 그렇지만 정작 작가가 된 사람은 나뿐이라고 친구들이 투덜거렸다. 나는 작가가 아니라고 아무리 말해도 소용없었다. 그들은 십 수 년 전 내가 낸 단 한 권의 책을 기억하는 몇 안 되는 사람들이었다. 세 명 모두 미혼이었고, 아이를 가지지 않았다. 놀라울 정도로 예전 그대로인 친구들 사이에서 나만 철 지난 옷차림에 좀처럼 대화에도 섞이지 못했지만, 그런 것 때문에 마음이 상하지는 않았다. 오랜만의 서울 나들이에 술자리도 즐거웠다. 좋은 친구들이었다. 7년 전 정민이 자폐 스펙트럼 장애 판정을 받았을 때 그들은 자신의 일처럼 울어 줬고, 이후에도 종종 아이의 간식과 선물을 집으로 보내 줬다. 서서히 연락을 거둔 것은 내 쪽이었다. 애써 관계를 유지하는 일이 힘에 부쳤을 뿐, 그들에게 섭섭한 마음은 조금도 없었다. 지난 몇 년 동안 나는 집이 아닌 곳에서 밤을 보낸 적이 없었다. 다들 술에 취해서 침대로 간 뒤에도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아 휴대폰만 들여다보았다. cctv 속 거실은 엉망이었다. 엎어진 식판, 사방에 흩어진 블록 조각, 길게 늘어진 옷가지들. 남편은 불도 끄지 않고 아이를 재우러 방에 들어간 모양이었다. 나는 정지화면 같은 그 풍경을 한참 바라보다가 해 뜰 무렵에야 겨우 잠이 들었다. 다음날 우리는 점심을 먹고 헤어지기로 했다. 맛집마다 대기가 길어 종로의 좁은 골목을 돌고 또 돌았다. 앞장서 구글 맵을 보며 걷던 김이 갑자기 작은 서점 앞에서 멈춰 서더니 책을 사야겠다고 말했다. 지난 이사 때 내 책을 분실했다는 것이었다. 나는 집에 돌아가서 책을 다시 보내 주겠다고 김을 달랬다. 다섯 평도 안 되어 보이는 그 작은 서점에 내 책이 있을 리는 만무했기 때문이다. 김은 막무가내로 서점에 들어갔다. 할 수 없이 그녀를 따라 들어갔다가 전면 책장에 전시된 내 책을 발견했다. 죽은 친구를 만났다고 해도 그처럼 놀라지는 않았을 것이다. “미애 씨!” 그곳에서 누군가 나를 불렀다. 우아한 노부인이었다. 린넨 바지에 화이트 셔츠, 큼지막한 호른 목걸이를 한 여자는 환하게 웃으면서 나를 바라봤다. “반장님?” 나는 말끝을 흐리며 물었다. 여자는 성큼성큼 내 앞에 다가와서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나를 와락 끌어안았다. 누군가 나를 그렇게 안은 것이 너무 오랜만이라 온몸에 힘이 풀리는 것 같았다. 그녀는 오래전 나와 함께 공부했던 문우였다. H 백화점 문화센터 소설 창작 교실의 반장. 친구들이 책을 구경하는 사이 나는 그녀와 짧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ldqu

  • 관리자
  • 2024-07-01
그동안의 정의

그동안의 정의 최예솔 작정하고 사라진 사람은 작정하고 찾아야만 한다. 나는 윤정수를 작정하고 찾지 않았다. 보통의 남매 사이라는 게 정확히 어떤 건지는 모르겠지만 윤정수와 나를 그냥 보통 남매, 라고 하기에는 좀 어렵지 않을까. 윤정수는 나보다 4년 먼저 태어났다. 그리 적지도, 그리 많지도 않은 애매한 나이 차이 덕분에 윤정수와 나는 딱히 친해지지 못했다.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윤정수는 중학교에 갔고, 내가 중학생이 되었을 때 윤정수는 고등학교에 갔다. 물론 윤정수와 내가 영 친해지지 못한 건 우리의 나이 차이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윤정수는 내게 없는 사람에 가까웠다. 말수도 없고 센스도 없고 자존심도 없고 공부머리도 없고 돈도 없고······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나? 아무튼 남매 사이에 정이라도 있었다면 걱정이라도 했을 텐데 그럴 이유조차 없었다. 쥐뿔도 없는 윤정수니까. 특이사항이라곤 개그맨 윤정수와 동명이인이라는 것 정도밖에 없는. 그러니 윤정수가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집을 나갔다고 해도 이상할 것 하나 없었지. 뭐 내가 찾는다고 윤정수가 나타났을 거라는 보장도 없지만 나는 막연히, 어련히 때 되면 나타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했다. 하지만 윤정수는 죽을 때까지 나타나지 않았다. 물론 내가 죽은 것은 아니다. 윤정수가 죽었다. 내 나이가 이제 서른이니까, 윤정수는 서른넷에 죽었다. 이제 내게 남은 혈육은 없다······ 아닌가? 고모. 그렇게 부르지 마. 왜요. 낯설어. 저도 고모가 낯설어요. 윤현수는 맹랑하다. 윤정수와 장현아의 딸이라고 해서 윤현수. 그거 좀 유치하지 않니? 물었을 때 윤현수는 뭐 어때요 엄마아빠말곤 모르는데, 하고 대답했다. 이제 나도 아는데? 하니까 이젠 고모도 모르는 척해 달라고 했다. 참 나 어디서 이런 게 굴러왔는지. 현수야. 네. 네 엄마 입국 날이 언제라고 했지? 다음 주 토요일이요. 아직 한참 남았네. 고모도 고모 할일을 해요. 시간 금방 갈걸요. 알겠다 그래. 윤현수를 데리고 온 사람은 장현아다. 이제는 나흘쯤 됐으려나. 아침부터 현관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하도 시끄러워서 나가 봤더니 장현아가 윤현수의 손을 붙잡고 서 있었다. 장현아는 다짜고짜 윤정수를 아느냐고 물었고 나는 오랜만에 듣는 윤정수의 이름에 잠깐 벙쪘다가 네, 저희 오빠네요, 하고 대답했다. 조카입니다. 그날 장현아의 대사를 나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그건 도저히 내가 아는 사람이 뱉을 만한 말이 아니어서 대사라고밖에는 표현할 수 없겠다. 아직도 문득 의심스러울 때가 있다. 윤현수가 정말 나의 조카가 맞고 장현아가 정말 나의 새언니가 맞을까. 가족관계라는 게 그렇게 단순하게 정리되는 거라면 이제까지 윤정수와 나는, 또 윤정수와 나와 우리의 부모는, 왜 이렇게 흩어지거나 죽거나 혼자 남을

  • 관리자
  • 2024-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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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2건

  • 신창용

    이게 끝인가? 결말이 뭐 이래? 우리 안에 차별의식을 드러낸 것 같은데... 이런 결말은 좀 자제합시다.

    • 2017-05-18 00:49:46
    신창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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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애란이누나

      작가의 의도를 본인이 파악하지 못했다고 해서 찡찡거리는 이런 식의 댓글은 좀 자제합시다

      • 2017-10-19 11:00:22
      애란이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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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잘 읽었습니다.^^

    • 2017-12-28 16:4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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