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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의 소리 공개방송 발표 신작시] 키위

  • 작성일 2014-04-01
  • 조회수 1,270

 

[문장의 소리 공개방송 발표 신작시]

 

 

키위

 

 


석지연

 

 

 

 

 

    키위 속에 키위가 있다. 마오리족이 어슬렁대는 열대 숲에 숨은 겁 많은 짐승. 봉투를 덫처럼 든 사냥꾼의 발소리를 키위는 듣고 있다. 달걀처럼 둥근 몸과 갈색 털로 뒤덮인 거친 껍질. 땅에서 붙잡히고 만 새의 운명. 보이지 않는 부리와 다리로 키위는 발버둥 친다. 말없이 어깨를 웅크리던 당신, 그 속에 얼마나 많은 키위들이 발톱을 쳐들고 목구멍을 할퀴었을까. 키위 속에 키위가 자란다. 흰 접시 위의 당신이 나를 외면한다.

 

 

 

 

   《문장웹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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