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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우일란, 빵의 비밀

  • 작성일 2005-06-02
  • 조회수 4,480

선우일란, 빵의 비밀

김민정


순간의 어떤 스프링 같은 용솟음을 치기어린 허기로밖에 말할 수 없었으므로 나는 먹었다. 가라앉지 않는 체증으로 날마다 삶을 증거 하는 재미, 쏠쏠하여 전봇대마다 속을 게워낸 흔적 동그마니 개와의 영역다툼에 혈안이던 어느 날, 종아리에 난 이빨자국을 보았다. 너덜너덜 남은 살점을 떼어먹기 위해서라도 넌 또 오리라, 피 흘리며 흘린 피 마를까 머큐로크롬을 부어가며 빈혈의 내가, 쓰러지는 척의 내가 눈을 떴을 때 나는 주둥이만 남은 비루먹은 개로 누군가에게 업혀가는 중이었다. 이봐요 왈, 누구세요 왈왈, 대체 어디로 가는 거예요 왈왈왈 말은 곧 짖음이었고 밀가루를 옴팡 뒤집어쓴 누런 러닝셔츠의 한 사내가 대나무 발을 헤치고 윔블던베이커리에 들어서는데 아픈 개 소리로 신음하던 그녀, 선우일란이 퇴주그릇같이 넙데데한 젖퉁이를 출렁이며 텔레비전 밖으로 기어 나오는 것이었다. 갓 구워낸 빵들은 땀내도 참 향긋하구나, 효모의 숨쉬기 운동으로 부풀대로 부푼 사내의 자지는 소시지 빵 밖으로 삐쳐 나는 문고리에 목이 묶인 채 가물가물 졸음에 빠져들었고 자이드롭에서 떨어지며 질러대는 사내의 비명에 오우-마이-갓! 튜브용 마요네즈를 흔들어 짜듯 사방팔방 튀어버린 슈크림이라지만 순간의 어떤 닻 같은 드리움을 허기어린 치기로밖에 말할 수 없었으므로 나는 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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