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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숲에 깃들다

  • 작성일 2006-03-20
  • 조회수 4,279

저녁숲에 깃들다

함성호


어머님께 술 한잔 따라드렸더니

한 마리 물고기로 化해 어머니

술잔을 한바퀴 도시고는 이내

두만강 쪽으로 사라지셨다

물고기 헤엄치던 술잔에

쩡―하고, 떨어지는

이른 겨울 아침의 공명


나는 한쪽 다리로 서서

휘파람을 불며

저녁의 새들을 불러 모으니

나무야, 오늘은 어쩐지

너무 오래 기다렸구나


아니면 우리가

너무 오래 마주했던지

그 하류에 펼쳐둔

자가당착의 그물로 걸려든 건

오로지 내 얼굴


대나무 낚시를 들고

저녁의 새들과 함께 찾아 온

물고기들이 잠든 저녁의 숲

어머니를 낚아

(맛있는)어머니를 낚아

나는 나의 태생을

처음부터 

다시 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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