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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물

  • 작성일 2007-10-29
  • 조회수 4,877

단물

성기완


당신이 선녀탕을 나와 무화과나무 속으로 사라졌어요 나는 얼른 물쿵뎅이 신발을 꺾어 신고 당신을 따라 갔죠 어디 계세요 어른어른 푸른 이파리 사이로 당신 흰 다리가 널을 뛰더니 붉게 익어 흐드러지기 직전의 무화과가 당신 치마폭에 하나 가득 당신이 씹두덩 같은 그걸 쭉 찢어주자 나는 오돌오돌 치모 끝 돌기 같은 씨가 징그럽게 촘촘히 박힌 그 속살을 입술에 즙 묻히며 받아먹어요 아 밍밍하고 지려 맛없어 투덜거리자 하나 더 먹어봐 이게 달콤하지 않니 당신이 그렇게 말하며 이번엔 아예 헤벌어지도록 익은 그걸 내 입에 대주자 나는 숨이 막혀요 이로 씹을 틈도 없이 혀끝에서 녹아드는 그 속살을 비로소 알아봐요 이 맛이로구나 수줍고 담담한 요런 달콤함이야말로 진짜 달디 단 자연의 맛이로다 단물이 줄줄

성기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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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리자
  • 2024-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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