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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찰

  • 작성일 2024-02-01
  • 조회수 465

   관찰


차유오


   축소된 사과나무. 유리병 안에서 기울기 시작합니다. 일정한 간격을 둔 사과나무들이 간격을 허물며 서로에게 가까워집니다. 수평을 맞추기 위해 그곳에 지지대를 받칩니다. 사과나무는 바로 세워지지만 감당할 수 없을 때마다 다시 기울어질 것입니다. 


   사과나무에는 각자의 이름이 있었습니다. 이름이 생기자 그들에게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어떤 사과나무는 너무 많은 사과를 견디다 쓰러져 버리고, 어떤 사과나무는 사과를 자신에게서 버리기 시작했습니다. 버리면 사라지는 줄 아는 인간들처럼. 자신이 만들었지만 자신의 것인 적 없던 사과를 떨어트립니다. 


   폭설처럼 바닥에는 사과들이 하나둘 쌓여 갑니다. 차가운 손가락으로 썩은 사과를 꺼내 먹습니다. 불타버린 짐승의 몸에서 적당히 익은 부분을 발견하는 인간의 모습으로. 


   무심코 집어 든 사과를 들여다봅니다. 자신이 파먹은 구멍 속에 숨어 있다 끝내 죽어버린 벌레가 그곳에 있습니다. 징그럽고 슬픈 벌레. 자꾸만 죽어버리는 벌레. 입을 열면 그런 벌레들이, 이름이 생긴 사과들이 튀어나올 것 같습니다. 썩은 채로 영영 자라나던 사과나무들이 그것을 바라볼 것 같습니다. 


   축소된 사과는 뼈처럼 단단하지만 입안에서 살처럼 말랑해집니다. 썩은 부분이 가장자리를 썩게 만들 때까지 유리병 밖의 인간들은 썩은 사과의 맛을 알지 못하고. 반쯤 그을린 얼굴로 사과의 썩은 맛과 썩은 사과의 맛에 대해 생각합니다. 소진되지 않고 계속해서 생겨나는 사과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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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리자
  • 2024-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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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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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리자
  • 2024-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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