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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죽 재킷

  • 작성일 2024-04-01
  • 조회수 455

   가죽 재킷


차성환


   하루 종일 가죽 재킷을 입고 뽐내고 다녔다. 집에 돌아와 옷걸이에 걸어 두고 잠이 들었는데 가죽 재킷이 식탁으로 나를 부른다. 이리 와서 대화 좀 해. 졸려 죽겠는데 억지로 식탁에 앉으니 가죽 재킷이 따듯한 커피를 내준다. 커피 마시면 잠 안 오는데 홀짝거리며 이야기를 듣는다. 사실 나는 가죽 구두가 되고 싶었어. 내가 소였을 때 나는 늘 딱딱한 발굽으로 대지를 딛고 서 있었지. 여물을 먹다가도 발굽을 땅에 두드리고 주인이 부드럽게 목덜미를 어루만질 때도, 축사가 기분 좋은 따스한 붉은 빛으로 번지는 황혼 무렵에도 나는 이 발굽으로 대지에 노크를 했지. 그때 내 영혼이 살아 있는 것 같았어. 내 유일한 기쁨이었지. 그런데 죽어서 재킷이 되고 나니까 나는 알량하고 경박하게 허공을 떠다니면서 돌아다니고 있어. 나는 바닥이 없어. 질 좋은 가죽 구두가 되고 싶었는데, 걸을 때마다 묵직한 굽 소리가 울려 퍼지고 그 소리와 대지의 감각에 마음껏 취해 이 굽이 닳아서 사라질 때까지 멈추지 않고 계속 걸어가고 싶었는데. 그때 나는 생각했다. 저놈이 구두가 안 되길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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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리자
  • 2024-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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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건

  • 해수면달빛
    최고에요

    아, 관심이 가는 시인이 생겼다.

    • 2024-04-15 09:23:22
    해수면달빛
    최고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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