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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도착

  • 작성일 2021-08-01
  • 조회수 1,494

이상한 도착

김수원

사과야 수박하자, 보채더니 사과꽃 피기 전에 비가 된 사람처럼


있다


젖은 리어카 속에서 우두커니


얘기 좀 할까, 두드리면
그때 그 사과만큼 무겁고


그러니까 수박이다 또 봐, 해놓고 비를 앞세운 때를 놓친 사과다 다시 봐도 수박이라서 사과가 아쉬운


수박은 여기로 오는 계절
사과의 밤으로부터 오는 이상한 얼굴이다


물냉면으로 소주로 파란 줄무늬 컵으로 오동동 골목길로 노래로 바이크로 낮달로, 오늘은 수박으로


누군가 좋아했거나 아꼈거나 즐겼거나 사랑했거나 못 해봤거나 그리워한 것들은 볼 때마다 좋아하거나 아끼거나 즐기거나 사랑하거나 못 하거나 그리워하거나


죽어도 죽지 않는다 낮달을 삼키는 골목처럼 밝아지지 않는 노래처럼 깨뜨린 컵을 또 깨뜨리는 바이크처럼


끊임없이 도착하는 수박인 거다
여기에 없으면서 있는

김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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