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속에서
- 작성일 2008-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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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속에서
김은경
집으로 향하는 성내천(城內川) 길
우산 없이 비를 맞는다 토끼풀과 나란히
비바람에 시시때때 꽃잎과 결별 중인
찔레나무와 나란히
눈 뜨고 잠든 돌멩이와
나란히 나란히
돌아보니 빗속을 이렇게
맨몸으로 걸은 기억이 없다 어느 저녁
피치 못할 소낙비를 맞으며
눈물로 한 사내를 기다린 적 있었으나
불손하게도 인생은 어차피
장마기의 연속이라고 생각한 때 있었으나
빗방울을 생애 단벌로 껴입은
토란잎처럼은 아니었다
황사 비에도 어김없이 제 초록을 키워 가는
청미래 이파리처럼은 아니었다
(슬픔의 연주 방식에도 고수와 하수가 있다니!)
눈 뜬 채 비 맞는
모든 맨몸은 매혹적이다
오디나무의 맨손 사마귀의 맨발
눈 먼 해바라기의 맨얼굴 그리고
나의 맨 처음, 그대
결코 회귀할 수 없는 물고기 같은 말
맨 처음……
몸보다 마음이 먼저 기운 어느 저녁
우연히 마주친 비,
가랑가랑 고저장단을 맞추어 내리는 빗속에서
나는 지금 오롯이 맨몸이다
사선으로 내리는 비가 직립의 한 생애를
둥글게 감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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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달프고 사나운 황인숙 느지막이 장년 훌쩍 지나 만난 나의 반려 내 젊은 날 친구랑 이름 같은 누군가 돌아볼지 몰라요 아니, 재길이 그대 부른 거 아니에요 “제기랄! 제기랄, 제기랄, 제기라알!” 시도 때도 없이 길바닥에서도 짖어 부르는 내 반려욕 사납고 고달픈 맘 달래 줍니다 사실 나는 내 반려욕을 사랑하지 않아요 못나기도 못났으니까요 어디서 그렇게 나 닮은 욕을 만났을까요 만나기는 뭘 만나 내 속으로 낳았지
- 관리자
- 2024-05-01
글 쓰는 기계 김응교 사실 기계들은 자기 프로그램을 업데이트 할 기계적 고독이 필요하여 자기만의 기계실에서 밤새 작동한다 그를 누구도 볼 수는 없겠지만 껍질이 날아간 뼈다귀 로봇 등 뒤 상자 서너 박스에는 유영을 멈춘 지느러미들 생선집 좌판에 파리 날리는 근간 시집들이 옆으로 누워 있다 그의 얼굴은 점점 기계를 닮아 가고 책 모양 사각형으로 바뀌어 옆으로 누운 가자미, 눈알과 손가락만 남아 상상력이 냉동되면 어떤 창작도 휘발되고 너무 많은 과거의 형태와 언어가 얼어붙어 더 이상 신선한 속살을 드러내지 못하는 이 기계에게도 컨베이어에 실려 뜨거운 화덕에서 태워질 운명이 다가온다
- 관리자
- 2024-05-01
멍쯔 삼촌 김응교 내 피의 4분의 1에는 몽골 피가 흐르고 아마 4분의 1은 옛날 중국인 피가 흐를지 몰라 내 몸에는 지구인들 피가 고루 섞여 있을 거야 그니까 삼촌이라 해도 뭐 이상할 거 없지 중국에 삼촌이 산다 삼촌이 쓴 책에 역성혁명이 나오는데 우리는 비슷한 혁명을 몇 번 경험했지 제자가 많다는데, 나는 삼촌으로 부른다 중국인은 멍쯔라 하고 한국인은 맹자라 하는 멍멍, 차갑게 웃을 중국인 삼촌 우리는 계속 역성혁명을 하고 있어 불은 든 프로메테우스들이 많아 멍쯔 삼촌, 우린 심각해요
- 관리자
- 2024-05-01
저번까지 읽은 이후로 이어보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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