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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층 관객 라운지 같은 1인칭 시점

  • 작성일 2023-04-18
  • 조회수 426

2층 관객 라운지 같은 1인칭 시점

김소연

기다린다는 것은 거짓말
그건 기다리고 있는 게 아니야
견디고 있는데 무엇을 위해 견디고 있는지를 모르므로

되어 본 적 없는 것과
되려고 노력해 본 적은 있는 것

소진시키기
믿고 싶은 것을 믿는 마음을 무효화시키기
물 흐리기 어깃장 놓기
이면의 이면의
이면

이십 년 전의 친구가 오늘의 적이 되는 일
어제까지의 내가 오늘의 강적이 되는 일
그러므로 내 친구를 친구에게 소개하기

갇힌 비둘기는 주인의 생업을 돕고, 맑고 흰 날개와 온순한
모습을 보는 사람들이 기뻐하는 것을 본다*

슬퍼하다 보면
한 겹 더 아래의 슬픔으로 깊숙이
발을 들여놓게 되는 슬픔,

내부를 다 보여주며 건축 중인 건물을
외부를 보이게 하려고 애를 쓰는 사각형들을

아침마다 목격했던 공사현장에
이제는 이삿짐 차가 와서 사다리를 댄다

* 중국 시인 심윤묵의 시 「비둘기」, 『굶주린 짐승』, 열린서원,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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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희동 놀이터

연희동 놀이터 홍지호 놀이터에 있을게 말하고 놀이터에 앉아 있으면 놀이터가 너무 좋아져서 다음에 보자 할 수도 없고 친구가 늦게 오기를 아주 천천히 걸어오기를 걷다가 길이 좋아서 잠깐 멈춰서 산책하는 사람들 틈에서 만남도 잊고 만남을 잊고 걷다가 그렇게 나는 친구가 어디쯤인지 알 수 없는 놀이터에서 바랬다 그러다가 나중에 놀이터를 지나가다가 기다리고 있던 자리에 앉아서 놀이터가 너무 좋아져서 거기에서 보았던 산책에 대해 생각하기를 친구도 걷고 있겠거니 어딘가로 걸어가는 사람들 틈에서 산책하고 있겠거니 생각하기를 걷다가 걷다가 행복하시길 그리고 다시 한 번 어쩔 수 없이 행복하시길

  • 최고관리자
  • 2023-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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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치 박세미 몬스테라의 새순이 뾰족하게 올라온다 흰 부분에 대한 직감 말린 새순이 조금씩 펼쳐질 때마다 선명해진다 아름답게 보인다…는 느낌은 나와 몬스테라 둘 중 누구의 유전적 형질로부터 기인하는 것일까? 나의 오른쪽 수정체에 드리워진 흰 막 몬스테라의 무늬와 겹쳐질 때 강력한 초점이 되어 타오른다

  • 최고관리자
  • 2023-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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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을 위한 주석* 박세미 기둥 1, 24 전시장은 거대한 하나의 공기통으로서 약 750일 동안 한 명의 남자가 호흡할 수 있다. 하나의 공기통으로서 약 천일 동안 한 명의 여자가 호흡할 수 있다. 관람자는 미술관이라는 공기통을 메고 잠수한다 기둥 6 후박나무 한 그루가 쓰러져 있다. 높이 20m까지 자란다는 후박나무 공중에 심겨진 뿌리는 옆으로 옆으로 자라다가 기둥을 타고 오르기 시작한다. 관람자는 기둥을 오르는 뿌리를 줄기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후박나무에게는 지금 위아래 앞뒤는 중요하지 않다 기둥 7~12 미국 스트라토론치 시스템스가 만든 비행기 스트라토론치는 세계에서 가장 긴 날개를 가진 비행기. 뜯어진 오른쪽 날개가 여기 있고, 날개 위 오케스트라의 연주가 시작된다. 음악이 고조될 때 관람자는 미술관을 타고 이륙한다 땅에 세워진 기둥만이 미술관을 증언하고 기둥 9, 10, 15, 16 거울 속 기둥들 거울 속 관람자는 기둥 사이에 감금되고 기둥처럼 복제되다가 천천히 거울 밖으로 풀려난다 기둥 13 숨어 있는 기둥 그림자를 모두 찾으시오. (서른여섯 개 이하이거나 이상일 수 있음) 관람자는 그림자들의 속닥거림을 듣게 되고 그들의 수다에 참여하려 하지만 조명의 저지로 포기한다 기둥 18 개미는 기둥을 이용하여 집을 지을 수 있다 / 없다 있다고 대답하는 관람자는 세계 유일의 개미가 될 것이다 기둥 19 전시를 가장 빨리 감상하는 방법은 벽을 따라 달리는 것이다. 만약 당신이 100m를 16초에 뛴다면, 1분 안에 전시를 볼 수 있다. 사실은 절대 볼 수 없겠지만. 이에 관람자는 항변한다 관람 속도와 관람 깊이는 무관하다! 기둥 21 주위에 고인 물 관람자는 두 부류로 나뉜다 신발을 벗고 물을 밟는 자 미술관 직원에게 미술관의 하자를 건의하는 자 기둥 31 누군가 신발 안 반쯤 벗겨진 양말을 다시 신느라 기둥에 한쪽 손을 살짝 댄다면, 기둥은 예상치 못한 횡력에 당황할지도 모른다. 작용이 있으면 반드시 반작용이 있고, 손은 잠시 기둥의 힘을 느낄 것이다. 기둥과 사랑에 빠진 관람자는 앞으로 전시가 열릴 때마다 기둥을 만나러 미술관에 올 것이다 기둥 33 전시가 지루해진다면, 기린에게 목말을 부탁해 보자. (과천어린이대공원에서 탈출시켜 주는 조건으로!) 의외로 기린의 키는 전시장의 높이보다 작다 의외로 관람자의 키는 미술관 입장에선 지루한 요소다 기둥 35~36 누군가의 발밑에 머리를 두는 일을 어른들은 두려워하겠지만, 침대 네 개를 잇는 어린이가 있다. 여기에 딱 맞기 때문에. 이어진 네 개의 침대는 누운 기둥이나 마찬가지다 관람자는 더 이상 눕기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기둥 36 누구도 기둥을 의심하지 않으며 의식하지 않을 때, 가장 기둥이다 관람자는 관람하지 않는다 여기 있을 뿐 가장 자신이기 위하여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2023)의 전시 제목이며, 전시의 커미션 작업인 본인의 구체시 를 위한 주석이자 연계 시이기도 하다.

  • 최고관리자
  • 2023-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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