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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우유

  • 작성일 2016-11-01
  • 조회수 282

책과 우유

김상혁


애지중지하는 책 위에 우유를 쏟았다.
주인공의 기쁨이 현관을 들어서며 중단될 수 있다. 반동인물의 슬픔이 술집 간판 밑에서 중단될 수 있다.


선한 주연이 악한 조연의 가슴팍에 일격을 가할 수 있다. 쓰러지는 자는 십년 전 동심으로 바라보던 가지 끝 열매를 떠올릴 수 있다. 같은 동심으로 선인은 나무를 흔들며 웃음 터질 수 있다.


누구나 흔들리지 않는 꿈을 키울 수 있다. 사방 눈이 날리는 하늘을 뚫고 키가 자란다. 망가진 책을 망가진 가방 속에 넣은 채 자기 생활에 해코지하려는 생각


바꿀 수 있다. 서로 붙어버린 몇 십 페이지의 책장이 후회의 시간 훌쩍 뛰어넘는 동안 시선이 창밖으로 방향을 틀었다. 우유처럼 쏟아지는 눈발에 믿음의 뼈가 단단해질 수 있다.


가슴에 쌓인 먼지를 털고 일어설 수 있다. 중단된 마음이 영영 발길을 끊을 수 있다. 그 사이 웃다가 울던 사람 깊은 잠에 빠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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