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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속자들

  • 작성일 2015-04-02
  • 조회수 362

상속자들

김종연


이것이 편지라면 내가 사는 세계가 그저 한순간 날아와 내 집에 꽂혀 있다면 편지지에 쓰고 접어 누군가 꽂아 둔 뒤를 따라 어느 집엔가 사서함을 뒤지다 주인을 만나고 이웃하는 사이가 되어 다시 읽어 보게 되는 일이 내 세계의 전부가 될 수 있다면


나는 나의 종을 이해하고 나의 성질을 이해하고 물에 뿌리를 내리고 자라는 수상 식물들의 온화한 섭생을 이해하고 절망과 외교하는 희망의 관계자로 깊은 물을 유영하는 유령들의 두 번째 가옥이 되어 다음이 오기 전에 모두 허물어트리고 빈터에 나의 세 번째 주인을 들일 수 있다면


내분하는 쪽이 나의 여당이고 반골을 천형으로 지고 거꾸로 태어난 아기들이 무덤가에서 우는 소리가 사서함에 번지고 있다면 나의 퇴폐가 일찍이 완성되고 그 안에서 흐르는 젖과 음란이 나의 심지를 당기는 불꽃으로 세계를 태우기 시작한다면


머무르는 자리마다 빈 편지를 들고 찾아와 순진함을 요구하는 치욕이 내가 견뎌야 할 벌칙에 지나지 않는다면 내 옆에 가만히 앉아 나의 답장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 내가 사는 세계의 전부라면


갓 태어난 아기는 울어도 눈물이 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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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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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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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리자
  • 2024-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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