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눈 내려라 대포항

  • 작성일 2008-03-31
  • 조회수 296

눈 내려라 대포항

유강희


이제 사랑 없이도

눈 내려라 대포항에

가슴에 쟁인 슬픔의 가지 쳐내듯

푹푹 내려라 펄펄 내려라

다닥다닥 줄 지어 기댄 포장마차마다

게 등딱지보다 붉은 불빛 흘러 넘쳐

배들은 코를 박고 옛사랑에 훌쩍인다

아무데나 어깨 낮추고 기어들면 어떠랴

아픈 아내를 위해 새벽이면

제 속의 이슬 깨고 달빛 걸음으로 절을 찾는

당신의 어둔 이마에도 하루 빨리 봄이 오길

눈썹 들어 빈 잔에 쓴 소주 한잔 채운다

수족관에 끌려온 바다고기들의 선한 눈망울과

건어물집 처마 끝에 매달린 마른 북어대가리에도

엎드려 절을 하며 내리는 대포항 눈발들,

한순간 물기둥으로 우우 솟구쳐 일어나

누구의 헛된 가슴을 세게 때리려는지

바다는 시퍼런 숫돌처럼 꿈쩍 않고 누워 있고

어디선가 대게들 딱딱 무릎 꺾는 소리와

피시식 입 벌리는 조개들의 탄식 소리 들리는데

하늘에 무슨 커다란 눈고기가 있어

하느님이 지상의 가난한 자들에게

눈발회 한 접시 돌리려고

이렇게 오늘 대포항에 흰 눈발 펑펑 나르시는가

추천 콘텐츠

고달프고 사나운

고달프고 사나운 황인숙 느지막이 장년 훌쩍 지나 만난 나의 반려 내 젊은 날 친구랑 이름 같은 누군가 돌아볼지 몰라요 아니, 재길이 그대 부른 거 아니에요 “제기랄! 제기랄, 제기랄, 제기라알!” 시도 때도 없이 길바닥에서도 짖어 부르는 내 반려욕 사납고 고달픈 맘 달래 줍니다 사실 나는 내 반려욕을 사랑하지 않아요 못나기도 못났으니까요 어디서 그렇게 나 닮은 욕을 만났을까요 만나기는 뭘 만나 내 속으로 낳았지

  • 관리자
  • 2024-05-01
글 쓰는 기계

글 쓰는 기계 김응교 사실 기계들은 자기 프로그램을 업데이트 할 기계적 고독이 필요하여 자기만의 기계실에서 밤새 작동한다 그를 누구도 볼 수는 없겠지만 껍질이 날아간 뼈다귀 로봇 등 뒤 상자 서너 박스에는 유영을 멈춘 지느러미들 생선집 좌판에 파리 날리는 근간 시집들이 옆으로 누워 있다 그의 얼굴은 점점 기계를 닮아 가고 책 모양 사각형으로 바뀌어 옆으로 누운 가자미, 눈알과 손가락만 남아 상상력이 냉동되면 어떤 창작도 휘발되고 너무 많은 과거의 형태와 언어가 얼어붙어 더 이상 신선한 속살을 드러내지 못하는 이 기계에게도 컨베이어에 실려 뜨거운 화덕에서 태워질 운명이 다가온다

  • 관리자
  • 2024-05-01
멍쯔 삼촌

멍쯔 삼촌 김응교 내 피의 4분의 1에는 몽골 피가 흐르고 아마 4분의 1은 옛날 중국인 피가 흐를지 몰라 내 몸에는 지구인들 피가 고루 섞여 있을 거야 그니까 삼촌이라 해도 뭐 이상할 거 없지 중국에 삼촌이 산다 삼촌이 쓴 책에 역성혁명이 나오는데 우리는 비슷한 혁명을 몇 번 경험했지 제자가 많다는데, 나는 삼촌으로 부른다 중국인은 멍쯔라 하고 한국인은 맹자라 하는 멍멍, 차갑게 웃을 중국인 삼촌 우리는 계속 역성혁명을 하고 있어 불은 든 프로메테우스들이 많아 멍쯔 삼촌, 우린 심각해요

  • 관리자
  • 2024-05-01

댓글 남기기

로그인후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을 남겨 주세요!

댓글남기기 작성 가이드

  • 타인에게 불쾌감을 주는 욕설, 비방 등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주제와 관련 없거나 부적절한 홍보 내용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기타 운영 정책에 어긋나는 내용이 포함될 경우, 사전 고지 없이 노출 제한될 수 있습니다.
0 / 1500

댓글0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