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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經

  • 작성일 2007-04-30
  • 조회수 239

소리經

박주택


숙소에 들었을 때

퀴퀴한 옷장 안에는 섬뜩하니

여자 구두 한 켤레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아귀가 맞지 않는 미닫이 문

모서리 부분이 찌그러져 있었다

길을 모아 집을 만들다 뒤꿈치가 닳고

가죽이 저렇게 해어졌을 것이다

바람이 연민을 건드리고 가

누군가가 와야만 따스해질 수 있는 밤 

아무 것도 살지 않는 연못

불을 끈 방 휘어진 幽寂으로

파고드는 스르르 하얀 소리들


-흩어져 버렸어요, 달은 꽃잎을 물어뜯고 먼 곳에서 소리는 와요

그 누구도 내게 집이었던 적이 없어요 길을 모아 만든 건 헐떡거리는 일생

울긋불긋한 어둠뿐, 그 안에 숨어 있습니다 깊게 패인 자국이 이불에

덮여 있듯이 나 또한 마음의 미로에 운명을 빼앗겨

꽃이 핍니다 꿈에 불그레한 발자국이 찍혀 물처럼 찢어집니다 

박주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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