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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일월이 지나면

  • 작성일 2024-02-01
  • 조회수 1,272

   십일월이 지나면


정선임



   어느 것이든 참여해야 했다. 

   노래자랑, 볼링, 농구, 윷놀이, 탁구, 축구. 루시아가 줄줄이 나열하는 단어들이 생소했다. 이런 종류의 선택과 마주한 것이 언제였더라. 까마득한 대학 신입생 시절 이후 처음이지 않을까. 소영은 손을 들까 말까 움찔거리다 고개를 돌려 대식의 옆얼굴을 바라봤다. 대식은 윷놀이를 일찌감치 골랐다. 고집스럽게 다물고 있는 입을 보자 숨이 턱 막혔다. 소영은 욱신거려 오는 왼쪽 발목을 주물렀다. 

   “노래자랑과 축구만 남았습니다. 아직 정하지 않은 보호자님?”

   망설이는 사이 선택지는 점점 줄어들었다. 노래자랑만은 피하고 싶어 소영은 엉거주춤 손을 들었다. 축구라고 해봐야 테이블 게임기였다. 소영과 동시에 누군가 손을 들었다.

   “김해숙 마리아 보호자님과 윤대식 요한 보호자님, 축구를 선택하셨습니다.”

   그 사람도 파란색 줄로 된 보호자용 명찰을 목에 걸었다. 명찰에는 정민재, 라고 적혀 있었다. 사실 소영은 자기소개를 할 때부터 민재를 의식하고 있었다. 

   보호자와 함께하는 5박 6일 교육 프로그램은 요양원 입소 전 절차였다. 이곳에 입소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을 충족해야 했다. 다른 병이 아닌 암이어야 했고 혼자서도 거동할 수 있어야 했다. 보호자가 교육 프로그램에 동행해야 한다는 규정이 제일 까다로웠다. 스무 명 정도 새로 입소하는 환자들의 보호자는 대부분 배우자였다. 보호자로 자녀가 동반한 경우는 소영과 민재뿐이었다. 60대도 어리다는 소리를 듣는 곳에서 그들은 가장 젊었다. 휴가철도 아니고 연휴도 없는 11월 평일에 엿새간 시간이 되는 40대가 얼마나 될까. 다른 입소자와 보호자들이 착한 딸, 아들이라고 칭찬했지만 내심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보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소영도 민재가 궁금했으니까. 

   요양원은 충북 청주 시내에서 떨어진 마을 근처에 있었다. 산책로가 잘 정비되어 있었고 종교재단에서 운영하는 터라 기도하는 곳도 마련되어 있었다. 단점은 거의 없었다. 공항 근처여서 비행기가 지나갈 때마다 말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다는 점을 제외하면. 무엇보다 다른 요양원보다 가격이 저렴해 신청자가 꽤 많았다. 소영은 여름이 시작될 무렵 대기 신청을 걸어 두었다. 그사이 왼쪽 발목이 골절됐고 수술을 받았다. 통깁스와 목발에서는 벗어났지만, 아직 걸을 때면 절룩거렸고 오래 걸으면 부었다. 자리가 생겼다고 연락을 받았을 때 물리치료를 더 받아야 하는 상태였으나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환자는 물론 보호자에게도 세 끼 식사가 영양식으로 제공된다는 블로그 후기를 훑어보면서 공기 좋은 곳에서 쉬고 오는 셈 치자고 좋게 생각했다.

   일 년 전, 대식이 암 진단을 받았을 때 소영은 냉정하게 거리를 유지하려 했다. 대식이 수술을 받고 입원한 며칠을 제외하고는 자신의 일상을 지켰다. 간병인을 구했고 오빠와 나눠서 비용을 보탰다. 그럼에도 대식은 소영을 끊임없이 호출했다. 결혼하지 않은 친구들이 간병이라는 몫을 짊어지게 된 사례를 익히 접했던 소영은 그렇게 되고 싶지 않았다. 할 수 있는 한 시간보다는 돈으로 메우기로 했다. 그동안 소영은 일을 핑계 댈 수 있었다. 

   “인터넷으로 신청하면 된다더라.” 

   이곳의 안내서를 건네주며 입소를 원한 것은 대식이었다. 소영은 의아했다. 대식은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으니까.

   5박 6일 일정표를 뒤적였다. 매일 아침 미사 후, ‘암 재발 방지와 면역력 증진 교육’이 오전 중에 이루어졌다. 오후에는 ‘마니또 게임’과 ‘선배들과의 만남’ 등 주로 친목 도모를 위한 프로그램이 마련되어 있었다. 첫날인 오늘은 오리엔테이션이 끝난 뒤 체육대회와 장기 자랑이 있을 예정이었다. 엿새만 참자, 엿새만. 한숨을 내쉬며 소영은 행사가 진행된다는 강당으로 향했다.

   진행을 맡은 루시아가 먼저 무대에 올랐다. 본래 암 환자였다가 완치 판정을 받았고 안내자로 머물게 된 사연에 대해 고백하듯 자신을 소개했다. 장기입소자 선배들의 환영 인사가 이어졌고, 새로 들어온 입소자들과 보호자들이 섞여 게임을 벌였다. 테이블 축구 게임에도 꽤 기술이 필요했다. 생각보다 소영은 많이 흥분했다. 연달아 골이 들어가자, 만세를 외치듯 팔을 올렸고 민재와 하이파이브까지 했다. 항암치료가 시작되고 머리털이 모두 빠진 이후로 기운 없어 보이던 대식도 즐거워 보였다. 윷가락을 힘차게 던지는 대식의 상기된 얼굴을 보면서 이곳에 오기를 잘했다고 처음으로 생각했다. 흥이 한껏 오른 사람들을 뒤로하고 소영은 강당에서 빠져나왔다. 

   산책로에는 마른 잎이 달린 나무가 줄지어 서 있었다. 낙엽이 잔뜩 쌓인 길을 걸을 때마다 바스러지는 소리가 났다. 커다란 십자가 아래 놓인 벤치에 앉아 소영은 왼쪽 검지에 끼고 있던 묵주 반지를 버릇처럼 돌렸다. 한때 소영은 매일 아침과 저녁 기도를 했다. 무엇을 바란다기보다는 견디기 위해. 

   성모상 앞에는 사람들이 기도하며 바친 작은 초들이 놓여 있었다. 끝까지 타서 눌어붙은 촛농만 남긴 것들과 환하게 타오르는 중인 것들, 그리고 꺼질 듯 말 듯 위태로운 것들이 뒤섞여 있었다. 유리컵에 담긴 작은 초는 한 개에 2천 원. 소영은 주머니를 뒤적였다. 초에 불을 붙이고 무엇을 빌어야 할지 모르면서도 습관적으로 두 손을 모았다. 

   밤 열 시가 가까웠음을 깨달은 소영은 휴대전화를 꺼내 앱으로 라디오 방송을 들었다. 익숙한 시그널을 배경으로 디제이가 오프닝을 막 시작한 참이었다. 피디는 엿새 동안이나 자리를 비운다는 말에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골절로 다리를 수술했을 때도 원고는 써서 보내야 했다. 병원비와 간병 비용 때문에 그나마 일을 할 수 있는 상황이 다행이라 여겨졌다. 소영은 느리게 회복했고 그 과정에서도 피디는 여러 가지로 편의를 봐주었다. 언제까지 갑작스레 닥친 사고에 대한 배려를 받을 수 있을까. 소영은 피디에게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다짐하듯 약속했다. 

   어느새 강당에서 나온 사람들이 숙소로 향하고 있었다. 소영도 배정받았던 방으로 돌아갔다. 대식은 이미 침대에 누워 유튜브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소영도 대식 곁에 있는 간이침대에 누웠다. 대식은 볼륨을 줄이지 않았다. 유튜브의 내용은 뻔했다. 건강과 연예인에 대한 가십들. 대식은 홀로 지내는 시간이 늘면서 연예인들의 소식을 마치 이웃이나 친구의 근황을 전하듯 소영에게 들려주곤 했다. 

   소영은 이어폰을 끼고 릴스를 보았다. 다리를 다친 뒤부터 휴대전화를 붙들고 살았다. 릴스를 이것저것 찾아보다가 미니어처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완두콩만 한 양파를 지우개 크기의 도마 위에 올려놓고 엄지와 검지로 간신히 쥐어지는 칼로 잘라낸 뒤, 백 원짜리 동전만 한 프라이팬에 올려 볶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평화로워졌다. 삼시 세끼를 챙겨 먹는 일이 지겹다가도 축소해서 보면 귀엽게 느껴졌다. 세상을 작은 미니어처로 생각하는 일은 꽤 도움이 되었다. 저만한 크기가 된다면 이동도 쉽고 식비도 절약되겠지.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소영도 한없이 작아지고 싶었다. 바람과는 달리 운동 부족과 호르몬의 영향으로 소영은 갈수록 비대해졌다.  


2


   방은 꽤 넓었다. 소파와 TV, 작은 옷장과 테이블이 있는 원룸이었다. 민재가 아침에 일어났을 때 해숙은 리모컨으로 채널을 이리저리 돌려 보며 만족해하고 있었다. 

   “이 정도면 됐다. 더 필요한 게 뭐 있겠니. 세 끼 다 주고. 성당도 바로 옆에 있고.” 

   해숙은 침대 옆 협탁에 십자고상과 초를 꺼내 놓았다. 그리고 민재와 누나가 어릴 때 제주도에서 찍은 네 식구의 가족사진이 담긴 액자도. 해숙은 금세 새로운 장소에 적응한 듯 보였다. 해숙은 사람들에게 민재를 소개할 때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친다고 했다. 강사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민재는 해숙의 화법이 낯 뜨거웠지만 굳이 수정하지는 않았다.

   촛불을 켜고 기도하는 해숙을 뒤로하고 민재는 방을 나섰다. 민재는 선뜻 조장을 맡겠다고 했다. 다른 보호자들은 고령이었고 소영은 다리가 불편해 보였다. 조장의 역할이란 아침 식사 전 301호부터 305호까지 밤사이 안녕을 묻는 일이었다. 문을 두드리고 보호자가 나오길 기다렸다가 컨디션은 어떤지 묻고 오늘의 일정과 준비해서 나올 것들을 알려 주었다.

   소영과 대식이 있는 302호 앞에서 민재는 살짝 긴장했다. 어제 자기소개 시간에 둘 다 미혼인 것을 알게 된 사람들은 노골적으로 소영과 민재를 맺어 주고 싶어 했다. 

   “운명이네, 운명. 그냥 여기서 상견례를 하자고.”

   대식과 해숙도 사람들 말에 따라 웃었다. 민재도 어쩔 수 없이 웃었지만, 소영은 웃지 않았다. 그렇다고 기분이 나쁜 것 같지도 않았다. 민재는 소영이 혼자 있는 것에 익숙하듯 이런 상황에도 익숙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소영이 잠이 덜 깬 듯한 얼굴로 나왔다. 밤사이 별일 없는지를 묻자, 공기가 건조해서인지 대식의 기침이 조금 심해졌다는 답이 돌아왔다. 

   방으로 돌아오자, 해숙은 세면도구를 챙기고 있었다. 샤워실과 화장실은 복도에 있어 공용으로 사용해야 했다. 민재도 뒤따라갔다. 얼마 전 무릎 관절 수술을 받은 뒤라 해숙의 걸음은 불안했다. 해숙이 샤워실로 들어서는 모습을 민재는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마침 샤워실에서 막 나오던 소영은 민재의 표정만으로도 짐작한 듯했다. 

   “제가 같이 들어가 볼게요.” 

   민재는 뜻밖의 말에 감사합니다, 를 연발했고 소영은 해숙을 부축해 샤워실로 들어갔다. 민재는 그 앞에서 기다리다 복도 저편에서 이쪽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는 루시아와 눈이 마주쳤다. 인사를 건네자 루시아가 웃으며 다가와 민재에게 종이 한 장을 건넸다. 

   “보호자들은 모든 프로그램에 참여할 필요가 없어요. 어디 다녀와도 좋죠. 젊은 사람들끼리.” 

   종이에는 주변의 맛집과 관광지가 적혀 있었다. ‘젊은 사람들끼리’를 특히 강조해 말하는 루시아가 부담스러웠지만 민재는 공손히 받아 들었다. 마침 해숙이 샤워를 마치고 나왔다. 도와준 소영에게 다시금 고맙다는 말을 건넨 민재는 괜히 어색해져 주머니에 종이를 숨기듯 구겨 넣었다. 

   식사를 마치고 미사에 참석한 뒤, 해숙과 산책로에 있는 긴 벤치에 나란히 앉아 있는데 소영과 대식이 걸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소영은 걸음이 불편해서인지 대식보다 한참 뒤처져 있었다.

   “다리가 원래 그런 건 아니래.”

   불쑥 그 말을 꺼낸 해숙의 의도를 민재는 알아차렸다. 해숙의 얘기를 통해 소영이 자신과 동갑이며 결혼한 오빠가 있다는 것도 알게 됐다. “나이는 좀 많지.” 해숙은 그렇게 말했지만, 소영이 마음에 든 듯했다. 민재는 기시감과 피로감을 동시에 느꼈다. 정식으로 소개한 적은 없어도 민재의 주변 여자들에 대해 해숙은 관심을 가졌다. 해숙은 역시 딸이 좋다는 말도 덧붙였다. 마치 자신에게도 딸이 있다는 걸 잊은 듯이. 

   이곳을 찾아낸 것도, 신청한 것도, 돈을 낸 것도 누나였다.

   “그것만 부탁할게.” 

   돈을 보내면서 누나가 항상 덧붙이는 말이었다. 민재는 돈이 없으니 시간을 써야 했다. 누나에게는 돌봐야 하는 가족이 있었다. 무엇보다 누나는 해숙과 1분 이상 대화를 이어 가지 못하고 번번이 부딪쳤다. 누나는 해숙이 말하지 않은 것까지 짐작해서 챙기려 애썼고 해숙은 매번 맘에 흡족하지 않다고 타박했다. 반면에 민재는 해숙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미리 생각하지 않았다. 다만 그저 시키는 것을 했다. 

   “누나는 너무 신경을 써.”

   그 말에 누나가 왜 섭섭해 했는지 민재는 종종 생각했지만, 여전히 이유를 찾지 못했다. 

   민재가 자판기에서 밀크커피를 가지고 오는 사이 해숙은 누군가와 나란히 앉아 대화중이었다. 항암치료로 빠진 머리를 가리기 위해 카키색 비니를 눌러쓴 그와 해숙은 서로를 자매님이라고 불렀다. 민재는 해숙에게 커피를 건네고 근처 벤치에 앉아 둘이 나누는 대화를 들었다.

   “자매님, 아들이 함께 와서 참 든든하겠어요. 우리 애는 워낙 바빠서.” 

   두 달 전 먼저 입소했다는 그에게 해숙은 “어디?”라고 물었다. 암의 부위를 묻는 것이었다. 해숙과 같은 부위여서 둘의 대화는 병의 정보를 주고받는 것으로 이어졌다. 그는 해숙과 얘기하던 도중 민재를 넘겨다보며 말했다. 

   “이제 걱정할 게 하나도 없어요. 여기 있으면 주님께서 보호해 주시니까.”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라 민재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영원한 우리의 보호자이신······. 너희를 고아처럼 내버려두지 않겠다.

   이 말은 해숙이 필사해 놓은 성경 구절에 자주 등장했다. 보호자, 누군가를 돕기 위해 불려서 그 옆에 서 있는 사람. 해숙은 아들딸이 그 역할을 해주길 바랐으나 기대에 못 미치자, 신에게 더 의지하게 된 건지도 모른다. 해숙의 모습은 근래 들어 가장 생기에 찬 모습이었다. 도무지 끝날 것 같지 않은 둘의 대화를 흘려들으며 민재는 소영의 자기소개를 떠올렸다. 

   “안녕하세요. 박소영이라고 합니다. 어머니도 암이었는데 이런 곳이 그때도 있었다면 좋았을걸요.” 

   민재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요양원에서 지냈다면 아버지가 수술 뒤에 술을 끊지 못하는 일은 없었을지도 모른다고. 민재는 대식을 볼 때면 체형이 비슷했던 아버지를 떠올렸다. 어쩌면 소영도 해숙을 보며 자신의 어머니를 떠올렸을지도 모른다. 우리 애가 글을 쓴다는 대식의 말투에는 자랑스러움이 묻어났다. 그 옆에서 소영이 어정쩡한 미소를 지을 때 동질감을 느꼈고 눈이 마주쳤을 때는 더 대화를 하고 싶었다.

   이 요양원은 지어진 지 5년이 채 되지 않았다고 했다. 민재는 휴대전화로 주소를 검색해 위성지도로 10년 전에는 이곳에 무엇이 있었는지 살펴봤다. 9년 전, 8년 전으로 거슬러 내려오며 어떤 변화를 거쳤는지도. 본래 그 자리에 무엇이 있는지를 확인하면 안심이 되는 것은 민재의 오래된 버릇이었다. 공터였던 곳이면 마음이 놓였다. 밭과 논인 경우는 어쩔 수 없다 여겼지만 집이나 묘지가 있던 자리라는 걸 알게 되면 마음이 불편했다. 

   루시아가 다가와 일정이 바뀌었다며 강당에서 전 입소자들 대상으로 특강이 있다고 했다. 보호자가 같이 들으면 더 좋다는 말에 민재도 따라나섰다. 그 둘은 걸으면서도 대화를 멈추지 않았다. 민재는 갈증을 느꼈다. 시원한 맥주가 마시고 싶었다. 요양원 안에도 매점이 있었지만 당연히 술을 팔지는 않았다. 내일은 강의가 있으니 오다가 편의점에라도 들러야겠다고 마음먹었다.


3


   “이건 제가 사고 싶어요.”

   소영은 키오스크 앞에 나란히 선 민재에게 말했다. 

   밤 열 시쯤, 소영이 라디오를 들으며 산책로를 걷고 있는데 주차장으로 들어서는 차가 보였다. 차에서 내린 민재가 묵례하고 지나치나 싶더니 가까이 다가왔다. 야식이라도 먹지 않겠냐는 민재의 말에 선뜻 고개를 끄덕인 건 가습기를 구해다 준 일이 고마워서였다. 저녁마다 족욕기에 따뜻한 물을 담아 방으로 나르는 것도 매번 도와주었다. 민재의 차로 10분쯤 걸려 도착한 곳은 맥도날드였다.

   “너무 건강해진 것 같아서요.” 

   좀 의외의 선택이었지만 소영은 민재의 말에 수긍했다. 사흘째 나물과 간이 강하지 않은 국과 잡곡을 먹었다. 간식은 비스킷 정도가 전부라 슬슬 지겨워지던 참이었다. 민재는 근처 대학에서 야간 강의를 마치고 오는 길이라고 했다. 

   “그래도 이번 학기는 강의가 그리 많지 않은 편이에요”

   환한 불빛 아래 민재는 요양원에서 볼 때보다 나이 들어 보였다. 소영은 안경이나 모자라도 쓰고 올 걸 하고 잠시 후회했다. 맥도날드 안에는 대학생으로 보이는 남녀 한 무리가 노트북을 하고 있었다. 요양원을 나오자 더 이상 젊지 않구나. 소영은 피식 웃음이 났다. 대식은 언젠가부터 소영과 마주 보기를 꺼리는 듯했다. 정기적으로 염색하지 않으면 흰머리를 가리기 어려워졌을 때부터였을까. 화장해도 피곤해 보이기 시작한 즈음부터일까. 절룩이며 걸을 때면 자신을 외면하는 게 느껴졌다. 자신이 늙는 만큼 딸이 늙어 가는 모습도 보기 싫은 듯했다. 차마 볼 수 없는 건지도 모른다. 소영이 느린 걸음을 핑계로 대식에게서 멀리 떨어져 뒤따라 걷듯이.

   주문한 음식이 나오길 기다리며 마주 앉았다. 민재가 먼저 말을 꺼냈다. 

   “생각보다 시설이 좋아요. 지내시기에 편할 것 같아요.”

   소영도 쉽게 동조했다. 

   “혼자 계신 것보다는 말동무할 사람이 있는 게 좋겠죠. 저도 암에 걸리면 이곳에서 지낼까 봐요.”

   소영은 민재의 표정을 보고는 마지막 말은 하지 말았어야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민재는 해숙을 살뜰히 보살피는 것처럼 보였다. 언제나 곁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그에 비해 소영은 대식과 멀찌감치 떨어져 다녔고 틈틈이 원고를 쓴다며 다 같이 모이는 자리도 빠졌다. 민재가 선뜻 조장을 맡겠다고 한 것도 믿음직스럽다는 평가를 받았다. 특히 루시아는 소영만 만나면 민재가 얼마나 살가운지 모른다며 칭찬했다. 소영은 민재의 효심이 어디서 기인했는지 궁금했다. 

   “너무 비교돼요. 우리 부녀는 둘 다 대화도 없는데.”

   마침 그들의 주문 번호가 전광판에 떴고 민재가 일어서며 자조하듯 말했다. 

   “제가 가진 게 시간밖에 없어서요.”

   햄버거와 음료를 받으러 가는 민재를 보면서 소영은 “돈을 벌면 시간이 없고 시간이 많으면 돈이 없다”며 프리랜서 동료들과 한탄했던 일을 생각했다. 그런데 요즘은 시간도 없고 돈도 없었다. 소영은 음식을 탁자에 내려놓는 민재에게 그 말을 하려다 그만뒀다. 대화는 소영이 발목을 다친 이유로 이어졌다. 민재가 생각났다는 듯 물었다. 

   “낮에 통화하는 걸 들었어요. 잘 해결됐나요?”

   소영은 민재가 그 모습을 봤다는 사실에 낯을 붉혔다. 보험사에서 걸려 온 전화였다. 방에서 작업하는 일이 답답해 노트북을 챙겨서 야외에 놓인 테이블 쪽으로 가는 길이었다. 비행기가 마침 지나가고 있어서 소리를 지르듯 통화해야 했다. 

   “저는 프리랜서라니까요. 산재보험이 적용 안 돼요.”

   보험사 직원은 반문했다. 

   “하지만 직장에서 넘어지셨다면서요?”

   애초에 어디에서 다쳤냐는 말에 일터였다고 한 게 화근이었다. 같은 말을 되풀이할 수밖에 없었다.

   “저는 프리랜서인걸요.”

   그 뒤로도 비슷한 설전이 오갔다. 산재보험과 실비보험을 동시에 받는 경우가 있어서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분명 20년 가까이 일했는데 어디에도 속하지 않음을 증명해야 보험금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민재도 강사로 일하며 교직원임을 증명해야 하는 순간들에 관해 이야기하다 둘은 어느새 자정을 넘겼음을 깨달았다. 

  요양원으로 돌아오니 대식은 휴대전화를 든 채 잠들어 있었다. 채팅창이 열려 있었다. 환자들만 있는 단톡방에 자기 전 오늘 있었던 일 중 감사한 일 세 가지를 매일매일 적어 올려야 했다. 암 환자들이 시간이 있으면 생각만 많아지고 우울해지기만 하니 그 틈을 없애기 위해 주어진 여러 일과 중 하나였다. 

   딸이 함께 있어 감사하다.

   세 끼를 먹을 수 있음에 감사하다.

   오늘도

   대식은 미처 마지막 감사기도를 채우지 못하고 잠들었다. 오늘도, 그다음에는 어떤 말을 쓰려고 했을까. 소영은 휴대전화를 대식의 손에서 조심스레 빼내 협탁에 올려 두었다. 요양원에 입소하기 전, 대식이 세례를 받겠다고 할 때 소영은 놀랐다. 엄마의 권유에도 의지를 굽히지 않더니 이제 와서 두려워진 걸까. 소영은 소파에 기대앉아 쿠션 위에 왼쪽 다리를 올려놓았다. 발목까지 검붉은 양말을 신은 것처럼 색이 변했고 부었다. 평소보다 오래 걸은 탓이었다.

   방으로 들어오기 전, 민재가 소영을 불러 세우더니 머뭇거리며 말했다.

   “세종대왕이 안질에 걸렸을 때 머물렀다는 행궁이 주변에 있어요. 유명한 온천도 있고 약수에서는 후추 맛이 난대요. 정말 후추 맛이 나는지 같이 가볼래요?” 

   맥도날드에서 2층에 있는 화장실에 들렀다. 계단이 가파른 탓에 한 걸음씩 조심해서 내려오면서, 119를 홀로 기다릴 동안의 캄캄한 어둠과 계단의 냉기를 떠올렸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민재의 제의에 고개를 쉽게 끄덕인 것은. 

   방송은 자정에 끝났지만, 스튜디오에 남아서 글을 쓰다 보니 새벽 세 시가 훌쩍 넘었다. 서둘러 짐을 챙겨 계단을 통해 내려가다 발을 헛디뎠다. 일어서려다 도로 주저앉았다. 비명을 질렀지만 아무도 올 사람이 없다는 걸 깨닫고 119를 불렀다.

   “보호자가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수술 전 간호사가 물었지만 소영은 고개를 흔들었고 동의서에 사인을 했다. 수술한 뒤에는 간병인을 구했다. 6인실 병실의 환자들은 소영처럼 어딘가 부러져서 거동이 불편했다. 보호자로 상주하고 있던 간병인들은 모두 중국 교포였다. 간병인은 엄마와 비슷한 연배로 보였다. 처음에는 내심 불편했다. 간병인은 살갑게 결혼한 딸과 손주 사진을 보여줬고 자기 간식까지 나눠줬다. 청하지도 않았는데 머리를 감겨 주고 몸을 씻겨 주며 말했다. 

   “아직 살이 단단합니다.” 

   간병인이 곤하게 자고 있으면 소영은 목이 말라도 요의가 느껴져도 참았다. 퇴원하는 날 간병 비용을 이체하려고 물어 보니 하루치인 13만 원을 더 요구해 왔다. 원래 관행이 그렇다고 경험이 없어서 잘 모르나 보다며 정색했다. 소영은 목소리를 높이고 싶지 않아 순순히 13만 원을 더 내주었다. 화가 나지는 않았다. 소영은 다시는 만날 일도 없는 그에게 서운함을 느꼈고 그 사실이 내내 의아했다. 이제 그 답을 알 것 같았다. 간병인은 13만 원어치의 돌봄을 제공한 거지만 소영은 마음까지도 원했다는 것을. 

   대식이 코를 고는 소리가 들려왔다. 자면서도 고집스레 꽉 다문 입매를 바라봤다. 대식은 자신을 돌봐줄 곳을 찾아냈다. 그러니까 대식이 스스로 선택한 곳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소영은 어딘가 편치 않았다. 소영은 한동안 몇 번이나 접촉 사고를 내면서도 운전대를 놓지 않겠다고 우기던 대식과 말다툼을 하다 지쳤고 어느 순간 포기했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지만 늙은 부모의 고집을 이길 수 있는 자식도 없을 것이다. 대식의 운전을 말리면서도 정작 운전을 그만두고 나면 소영이 지게 될 무게가 짐스러워 묵인했을 때와 지금의 불편함은 닮은 듯했다. 이제 요양원에서의 밤은 사흘 남았다.



   민재는 302호 문을 노크한 뒤 기다렸다. 방 너머로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어젯밤 혹시 내가 실수라도 한 걸까. 민재는 걱정스러웠다. 305호에 이르러서야 뒤늦게 소영에게서 온 메시지를 발견했다. 

   아버지가 일찍 일어나셔서 식당으로 바로 왔어요.

   행궁에 가보자는 약속을 하며 소영과 전화번호를 교환했다. 첫 연락인 셈이었다. 민재는 해숙을 재촉해 식당으로 향했다. 식판에 밥과 나물을 담은 뒤 빈자리를 찾는데 소영이 반갑게 손을 들었고 해숙과 민재는 자연스레 그 앞에 앉았다. 

   루시아가 의미심장하게 쳐다보고 지나갔다. 네 사람은 마치 한 가족처럼 식사했다. 둘의 밤 외출에 대해 대식과 해숙은 물론 모두가 알고 있는 듯했지만 아무도 언급하지 않았다. 민재는 요양원으로 돌아왔을 때 몇몇 창에 불이 켜져 있던 것을 기억했다.

   식사하는 동안 작은 소동이 일었다. 오래 머무는 입소자들 사이의 흔한 다툼이었다. 호전된 병세를 시샘하기도 했고 가족들의 방문 여부도 비교와 질투의 대상이 되었다. 계속해서 1인실에서 지내는 이도 있었지만 형편에 따라 4인실로 옮기기도 해서 경제적인 상황으로 갈등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래서 그 귀한 자식이 몇 번이나 온다고.”

   “자주 오면 뭐 하나. 간식 한 번 사 오지도 않았으면서.”

   다투는 소리로 싸움의 원인을 짐작할 수 있었다. 주위에서 말려도 거친 고성이 오고 갔다. 그러다 한 명이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채 벌떡 일어나 밖으로 나가버리자, 루시아가 그 뒤를 따라나섰다. 

   식사하는 내내 소영은 평소보다 자주 웃었다. 민재도 대식이 금세 비운 고사리나물을 더 채워 주기 위해 일어섰다. 식사를 마친 네 명은 성당에서 미사를 볼 때도 나란히 앉았다.

   위령 성월이었고 죽은 이들을 위한 기도가 이어졌다. 민재는 아버지를 떠올렸다. 아버지는 이른 퇴직 후 아파트 경비원으로 잠시 일했다. 이맘때쯤이면 낙엽을 쓸러 나갔다. 분수대 안에 장화를 신고 들어가 낙엽을 건지기도 했는데 그 일을 할 때의 아버지 모습을 민재는 좋아했다. 그 기간에는 아버지에게서 술 냄새 대신 낙엽 냄새가 났기 때문이다. 민재는 술을 멀리하려고 애썼다. 비틀거리다가 욕을 뱉으며 굴러다니는 캔을 걷어차던 아버지와 닮지 않으려고. 아버지가 술에 취한 밤이면 식구들 모두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지금이 평화롭지. 예전에 어떻게 살았는지 몰라.” 민재는 종종 해숙이 하는 말에 서운함을 느꼈다. 긴 간병 끝에 아버지가 죽은 뒤 해숙은 더 이상 음식을 하지 않았다. 기도하는 데 시간을 썼다. 민재는 아버지가 취한 다음날이면 항상 밥상에 올랐던 북엇국 같은 것이 때때로 그리웠다. 

   성체를 모시기 위해 사람들이 줄지어 나갔다. 민재는 자리에 앉아 줄에 서 있는 소영과 대식, 해숙을 바라봤다. 민재는 신을 믿지 않는다고 효도하는 기분으로 성당에 나간다고 소영에게 고백했다. 소영 또한 신을 믿지는 않는다고 했다. 그저 몇 천 년 동안 되풀이해 온 의식을 행하는 것만으로 마음이 편해질 때가 있다고 했다. 어젯밤 소영에게 즉흥적으로 야식을 먹으러 가자고 해놓고 민재는 실은 당황했다. 소영이 선뜻 옆자리에 올라탔을 때도. 그제야 누군가를 태울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좌석 아래 아무렇게나 던져 놓은 빈 캔들을 보고도 소영은 말없이 옆자리에 앉았다. 그러더니 허리를 굽혀 캔을 하나하나 주웠다. 민망해진 민재가 그냥 두라고 몇 번이나 말했지만 듣지 않았다. 늦은 시각에 마땅한 곳이 없어 들렀던 맥도날드에서 소영이 가파른 계단을 올라 화장실에 다녀올 때도 미안해졌다. 조심해서 올라가는 모습을 보며 다리가 아픈데 배려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마지막 성가를 부를 때쯤에야 자신이 한 시간 남짓한 동안 아버지 대신 소영을 떠올렸음을 알고 머쓱해졌다.

   미사가 끝난 뒤 넷은 숙소로 가지 않고 자판기에서 밀크커피를 뽑아 들고 야외 테이블에 둘러앉았다. 햇빛이 있어 날이 따뜻했다.

   “몸에 안 좋다지만 참 달아요.”

   해숙은 만족하듯 한 모금씩 아껴 마셨다. 대식은 민재가 어쩌다 혼기를 놓쳤는지 조심스레 물었다. 민재 대신 해숙이 대답했다.

   “공부하느라 바빴죠. 공부밖에 몰라요.”

   “우리 애도 그렇죠. 일만 하느라.” 

   기다렸다는 듯 대식도 맞장구를 쳤고 겸양을 포장한 이야기가 오고 갔다.

   “그래도 아플 때 물이라도 떠다 줄 사람이 필요한 법인데.”

   대식과 해숙은 서로 맞장구를 쳤다.

   “이곳은 정말 편하죠. 우리는 열심히 기도해서 특별하게 선택된 거예요.” 

   민재는 해숙이 이런 이야기를 할 때면 거부감을 느꼈다. 해숙은 다른 이들보다 특별하다고 여겼다. 주님이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느꼈다고. 종교 안에서조차 평등하지 않다. 이 안에서조차 경쟁해야 하고 남을 의식해야 하는 걸까. 민재는 하느님이 아닌 하나님을 믿는다는, 모음 하나 차이로 헤어졌던 여자를 오랜만에 떠올렸다. 해숙의 입에서 ‘교수’라는 단어가 나왔다. 민재는 가만히 있지 않고 바로잡았다.

   “아닙니다. 시간강사인걸요.”

   굳이 고쳐 말하자 해숙의 얼굴이 굳었다. 

   “글을 쓰니 아무데서나 일할 수 있어요.”

   대식은 화제를 돌리면서 자랑스러운 듯 말했다. 그러자 소영이 끼어들었다.

   “개편 때마다 어떻게 될지 모르는걸요. 언제 잘릴지 몰라요.” 

   대식의 얼굴도 굳어졌고 침묵이 흘렀다. 

   “둘 중 하나는 회사에 다녔다면 좋았을 텐데.” 

   해숙이 혼잣말인 듯 한숨을 섞어 말했다. 때마침 비행기가 지나갔다. 민재는 아무도 듣지 않길 바랐지만 자신이 들은 걸 대식과 소영 또한 못 들었을 리 없었다.

   민재는 수업이 있다며 일어섰다. 낮부터 강의가 있는 날이라 두 시간 전에는 출발해야 했다. 소영이 따라서 일어섰고 해숙과 대식은 앉아서 잘 다녀오라고 했다. 순간 민재는 아내와 부모님의 배웅을 받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강의를 마치고 요양원으로 돌아오는 길, 민재는 소영이 원고를 쓴다는 라디오 방송 주파수를 찾았다. 음악과 사연, 신청곡으로 이루어지는 조용한 프로그램이었다. 오프닝은 소영이 민재에게 들려줬던 이야기였다. 의사는 소영에게 다리를 심장보다 높이 올리고 있어야 한다고 했단다. 그래야 멍이 점점 위로 올라와서 심장으로 빠져나간다고. 두 달 가까이 거의 누워 지내느라 지겨워서 혼났다고 민재에게 들려줬던 이야기는 감성적으로 변해 있었다. 디제이는 나직한 음성으로 말했다.

   “어떤 상처든 회복되기 위해서는 마음을 통과하는 게 마지막이어서 아닐까요. 아마도 그때가 제일 아프겠죠. 보이지 않는다고 상처가 다 나은 건 아닙니다.” 

   소영은 원고를 쓰고 나면 공기 중으로 휘발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남는 것 없이 헛헛한 기분이라고. 민재가 지금 그랬다. 강의한 뒤 돌아오는 길의 허탈함에 대해서 소영과 좀 더 얘기를 하고 싶었다. 민재는 힐긋 비어 있는 조수석을 쳐다봤다. 학교 근처에서 들렀던 편의점에서 캔맥주 묶음을 집어 들었다가 내려놓았던 일을 떠올렸다. 이제 겨울이 시작된다는 디제이의 끝인사를 듣고나서야 민재는 내일이 입동인 것을 알았다. 


5


   해숙과 대식이 저녁 식사를 하러 간 뒤, 소영과 민재는 요양원을 나섰다. 입소자들의 교육이 끝나고 내일부터 정식 입소하게 되는 날이라 선배 입소자들과 담소를 나누는 시간이 마련된다고 했다. 그들은 메밀국수로 저녁을 먹기로 했다. 루시아가 건네준 종이에 적혀 있는 맛집이었다. 

   소영은 발걸음이 무거웠다. 오전부터 루시아의 암이 재발했다는 소식으로 요양원 전체가 침울해졌기 때문이다. 대식과 해숙도 덩달아 우울해졌다. 정작 루시아만이 여전히 환한 미소로 요양원을 오고 가며 환영의 밤을 준비했다. 아마도 환영의 밤은 루시아를 위로하는 자리가 될 터였다. 민재의 옆자리에 타려던 소영은 조금 웃었다. 좌석 밑이 깨끗했기 때문이다. 

   행궁까지는 30분 정도 걸렸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건너편에 있는 메밀국수집으로 갔으나 문이 닫혀 있었다. 바로 옆에 있는 순대국밥집으로 들어갔다. 뜨끈한 국물에 밥을 말아 먹고 나와 행궁 쪽으로 향했다.  

   궁 안으로 들어서자 널찍한 잔디밭이 펼쳐졌다. 측우기와 해시계 같은 모형이 먼저 보였다. 풀밭 한가운데 놓인 달 모양의 커다란 조명을 중심으로 여러 개의 달 토끼 모양의 조명이 둘러싸고 있었다. 늦은 시간인 데다 가을 축제도 끝난 뒤여서 행궁 안에 마련된 한옥 숙소에서 체험하는 숙박객들만이 오고 갔다. 소영은 커다란 달 조명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초등학교 운동회 때 함께 힘을 모아 굴리던 공만 한 크기였다. 촬영음이 들려 돌아보니 민재가 휴대전화 카메라로 소영을 찍고 있었다. 웃어요, 라는 말에 소영은 어색하게 웃으며 포즈를 취했다. 

   민재는 소영에게 어제 오프닝 곡이 좋았다고 말했다. 소영의 엄마가 좋아하던 노래였다. 암으로 투병 중이던 엄마는 소영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아도 그곳에서 일하고 있다는 걸 알면 안심이 된다고 했다. 어느 날 엄마는 라디오에서 9월이 끝나면 깨워 달라는 제목의 노래를 들었다며 그걸로 컬러링을 하고 싶다고 부탁했다. 소영은 귀찮아서 물었다. 

   “엄마가 듣지도 못하잖아?”

   “다른 사람이 듣잖아.”

   9월이 끝나기 전에 소영의 엄마는 죽었다. 소영은 바꿔 주지 못한 컬러링이 계속 마음에 걸렸다. 그러나 소영은 민재에게 그저 엄마의 컬러링이었다고만 얘기하고는 행궁의 소개가 적혀 있는 안내문을 가리키며 화제를 돌렸다.

   “121일간이면 그냥 시간이 걸려서 나은 걸 수도 있어요. 물 때문이 아니라.”

   다친 뒤 가장 많이 들은 얘기는 “날짜가 약이다”라는 말이었다. 입원해 있는 동안 간병인이 하루도 빠짐없이 해줬다. 동료나 친구들에게도 비슷한 위로를 들었다. 소영은 그 말에 완전히 동의하지는 않았다. 물론 소영도 시간의 위력을 알고 있었다. 통깁스를 제거하고 발끝이 땅에 닿던 순간을 기억했다. 두 달도 채 안 되는 시간 동안 발은 그새 걷는 법을 잊은 듯 땅을 거부했다. 한 달이 채 되지 않아 민재와 소영도 오늘 있었던 일을 잊어버릴지도 모른다. 

   시간이 지난다고 모든 것이 회복되고 해결되는 것은 아니었다. 엄마의 경우는 갈수록 나빠지기만 했다. 루시아처럼 암이 재발했다는 소식을 전하면서도 희망을 품고 웃는 이들을 보면 엄마가 떠올랐다. 엄마의 고통을 덜어 준 것은 묵주가 아니었다. 꼬깔콘을 열 손가락에 꽂고 우유와 함께 먹는 순간이었다. 소영은 몸에 좋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꼬깔콘과 우유를 사다 주고는 했다. 그때만 엄마가 아이처럼 근심 없이 웃었으니까. 대식은 요양원 입소 전에 세례를 받았지만 실제로 믿음에 기인한 것은 아니었다. 가짜 뉴스가 나오는 유튜브에 의지했다. 대식이 신청을 해달라며 건넨 안내서에는 호스피스 병동도 함께 있다고 적혀 있었다. 소영은 요양원 한편에 자리 잡은 그 건물을 볼 때면 부러 외면했다. 대식이 이곳에서 여생을 보내기로 마음먹었다는 것을 묻지 않고 짐작하고 있었으니까. 

   오프닝을 쓰기 위해서는 매일매일 긍정과 희망을 줄 만한 소재가 필요했다. 한밤중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와 멘트에 위로받는 이들이 꽤 많다는 걸 알고 있었다. 소영의 엄마도 그중 한 사람이었으니까. 그러나 소영은 이제 겁이 났다. 계단 하나만 남아 있다고 생각했는데 두 개의 계단이 있었듯 어디인지 모를 곳에 발을 내딛을까 봐. 스스로 믿지 않는 것을 원고로 쓰는 일이 소영은 괴로웠다. 


   민재는 말이 없어진 소영이 마음에 걸렸다. 블로그에서 봤던 행궁의 모습과 달리 을씨년스러운 데다 기대했던 야외 족욕 체험장은 동절기라 운영하지 않았다. 민재는 조급한 마음으로 둘러보다 실내에서 족욕을 체험할 수 있다는 안내문을 발견했다. 다행히 마감이 한 시간 정도 남아 있었다. 

   체험장을 찾아 들어간 민재와 소영은 나란히 앉아 족욕탕에 발을 담갔다. 기포가 보글거리며 톡톡 터졌다. 맨발로 같은 물에 발을 담그고 있으니 왠지 어색해 민재는 장난기를 담아 말을 건넸다.     

   “발목이 싹 나을 수도 있어요.”

   “온천이라 뜨거운 줄 알았는데 차갑군요. 정신이 번쩍 들어요.”

   웃으며 대답하는 소영이 밝아 보여 민재는 한시름 놓았다. 소영의 왼쪽 발목 복숭아뼈 양쪽에 세로로 꿰맨 자국이 보였다. 불과 석 달 전만 해도 이 상처를 가지고 있지 않았을 것이다. 민재는 소영의 십 년 전 얼굴이 궁금해졌다. 

   “사람들은 상처를 보이고 있으면 자기 상처를 보여주나 봐요.” 

   소영은 집 근처 공원에서 걷기 연습을 했다고 했다. 걷기 연습을 하다가 벤치에 앉아서 쉬고 있으면 사람들이 다가와서 물어 보지도 않았는데 자신이 다친 경험을 털어놨다고. 그래서일까. 민재도 털어놓고 싶어졌다. 아버지와의 마지막 대화 같은 것들을.

   “자고 갈래?”

   병원에 입원 중이던 아버지가 물었다. 민재는 바쁘다고 했다. 거짓말은 아니었다. 박사 논문을 쓰는 중이었고 강의도 해야 했다. 사실 그다음 날에는 모처럼 일이 없어 늦잠을 자고 싶었다. 그런 말을 할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푹 자다 일어난 민재에게 아버지의 임종을 알려 준 이는 간병인이었다. 

   “인간의 생과 사를 지켜보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민재는 소영에게 그렇게 말했지만, 해숙과 같이 지내는 시간이 지금도 종종 아까웠다. 

   족욕을 마치고 나오자 비가 내리고 있었다. 민재는 소영을 기다리게 하고 차 트렁크에서 우산을 꺼내왔다. 곳곳에 고여 있는 물웅덩이를 피해 지나가야 했다.

   “젖은 낙엽은 특히 더 미끄러워요. 조심하세요.”

   민재는 자신도 모르게 한 말이 언젠가 아버지가 알려 준 얘기인 것을 깨달았다. 소영과 우산을 함께 쓰고 천천히 보폭을 맞춰 걸었다. 다친 발목이 삐끗해 미끄러지는 순간 소영은 민재의 팔을 잡았다. 균형을 찾은 소영이 이내 놓으려고 하자 민재는 소영의 손을 찾아 꽉 쥐며 말했다.  

   “또 넘어지면 안 되잖아요.”

   소영은 민재에게 의지해서 걸었다. ‘초수’라고 적혀 있는 음수대 앞에 이르렀다. 표주박과 우물을 상상했는데 기대와 다르다며 둘은 마주 보고 웃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초수는 고을 동쪽 39리에 있는데 그 맛이 후추 같으면서 차고 ······.”

   민재가 휴대전화 불빛을 비춰 주고 소영은 음수대 옆에 붙어 있는 안내문을 꼼꼼하게 읽었다. 수도꼭지를 돌려 번갈아 입을 대고 물맛을 보았다. 민재가 물었다.

   “어때요? 후추 맛이 나요?” 

   소영은 갸우뚱거리다 대답했다.

   “실은 후추 맛이 뭔지 모르겠어요.” 

   차가운 비가 내리는 밤에 찬물까지 마시니 속이 시렸다. 민재는 소영의 손을 자연스레 다시 잡았다. 


   소영은 손으로 전해지는 온기를 느끼면서 가골이라는 말을 떠올렸다. 의사는 엑스레이 사진을 보다가 가골이 형성됐다고 설명해 줬다. 뼈가 부러지면 연결 부위에 뼈와 흡사한 조직이 생기는데 뼈는 아니라고. 그러다 시간이 지나면 진짜 뼈가 된다고 했다. 남녀 사이도 비슷하지 않을까. 사랑 비슷한 감정이 생겨나고 시간이 지나면 정말 끈끈하고 단단한 사랑이 되는 건 아닐까. 보호자란에 ‘정민재’라고 적는 순간을 떠올렸고 대식과 해숙이 있는 요양원을 민재와 함께 찾아가는 어느 날을 상상했다. 

   “복원이 아니라 재현이라고 하는군요.”

   안내 문구를 읽던 민재가 탄성처럼 내뱉는 말에 소영은 상상을 멈췄다. 주춧돌이나 기단석 같은 유구가 발견되지 않아서 아마도 이쯤에 행궁이 있었을 거라고 여기고 재현을 한 거라고. 

   “원래 있던 자리가 여기가 아닐 수도 있는 거군요.”

   소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아까 맛본 초수를 떠올렸다. 배수관을 거쳐 이곳에 당도한 물은 그 물이었을까. 

   찻집에 들어선 뒤에야 민재와 소영은 손을 놓았다. 민재가 차를 주문하러 간 사이 소영은 손을 쥐었다 폈다. 아직은 어색했다. 이 온기에 점차 익숙해지면 놓기 싫어질 것이다. 목발을 짚는 일이 처음에는 서툴렀어도 의지하기 시작하자 편했다. 그러나 홀로 걸을 수 있게 되자 목발은 오히려 짐이 되었다. 이 온기도 거추장스러워질 때가 올까. 


   민재는 지난 이삼 년간 업데이트하지 않은 SNS에 접속해 어린 시절 사진을 찾아냈다. 소영에게 사진을 보여주기 위해 둘은 더 가까이 다가앉았다. 벚꽃나무 아래서 네 식구가 찍은 사진을 보더니 소영이 반가워하며 말했다. 

   “여기 과천이죠? 우리도 비슷한 사진이 있어요.”

   소영도 자신의 가족사진을 찾아 보여줬다. 그들의 모습은 국가에서 이상적으로 장려하던 4인 가족에 부합했다. 같은 장소에서 아마도 비슷한 나이대에 찍은 사진 같았다. 어린 민재는 풍선을 들고 해숙 품에 안겨 있었고, 어린 소영은 솜사탕을 들고 대식의 목마를 탔다. 민재의 누나는 아버지의 손을 잡았고, 소영의 오빠는 엄마의 팔을 잡고 기대고 있었다. 그 외에도 양쪽의 가족들은 비슷한 장소에서 비슷한 모습으로 사진을 찍었다. 풀밭에 돗자리를 펴놓고 모여 앉아 김밥을 먹고 있거나 성당에서 세례를 받거나 해수욕장에서 모래성을 쌓거나 졸업식장에서 꽃다발을 들고 있거나 돌하르방 옆에서 한껏 폼을 잡고 있거나. 소영은 여덟 살이 되던 해 엄마가 식구들을 데리고 성당에 다니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해숙도 그즈음 신앙을 가졌다. 가족끼리는 부족하다고 여겨서 신을 끌어들였을지도 모른다. 사진 속에서 지금의 민재와 소영과 비슷한 나이였을 대식과 해숙은 환하게 웃고 있기도 했고 때로 지쳐 보이기도 했다. 수천만 년 전 가족의 모습도 이랬을까. 가족은 이런 모습이어야 한다고 언제부터 정해졌을까. 사진 속 그들은 어딘가 존재했을 이상적인 가족의 모습을 최대한 닮기 위해 애쓰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 노력은 수백 년 전 불에 타 소실된 행궁이 있던 자리를 짐작해 재현하는 일과 어쩌면 유사한 건지도.     

   민재는 어떤 충동에 의해 곧 교수로 임용될 것 같다고 털어놓았다. 민재는 소영에게 왜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도중에 깨달았다. 누군가를 보호할 능력이 충분함을 보여주기 위해서라는 걸. 낯을 붉히며 흥분된 어조로 미래를 말하고 있는 민재를 멈추게 한 것은 휴대전화의 진동음이었다. 


   양해를 구하고 전화를 받기 위해 밖으로 나간 민재를 기다리며 소영은 부어오른 발목을 주물렀다. 의사가 완전히 회복하기는 어렵지만 일상생활에는 지장이 없을 거라고 했다. 소영이 사는 곳에서 요양원까지는 두 시간 남짓 걸렸다. 왕복 네 시간. 요양원에는 한 달에 한 번쯤 들르면 될까. 부담스럽지 않으려면 어느 정도 기간이 적당할까. 대식은 매일 밤 감사할 세 가지로 무엇을 적게 될까. 답을 찾지 못하고 한숨을 내쉬다가 소영은 아까 민재가 달 모양 조명 앞에서 찍어 준 사진을 찾아봤다. 밤하늘의 달도 함께 찍혀 있었다. 진짜 달은 너무도 작은데 가짜 달은 소영보다도 컸다. 


   다음 학기에는 강의가 없다는 이야기를 들은 뒤 민재는 허탈하게 전화를 끊었다. 굴러다니는 빈 캔을 힘껏 걷어차고 욕을 뱉었다. 자기 모습이 누군가의 눈에는 아버지와 같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술을 마시고 싶었다. 민재는 조금 전만 해도 소영 앞에서 확신에 차 떠들어댄 자신을 책망했다. 입동이라더니 한층 스산해진 바람에 저절로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찻집 창문으로 보이는 소영이 고개를 숙이고 차를 마시고 있었다. 따듯해 보였다. 그러나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민재는 행궁 쪽을 바라봤다. 원래 여기가 아니었다면 본래 무엇이 있던 자리였을까. 민재는 여전히 궁금했다. 


   소영은 고개를 들어 창문 밖으로 민재의 모습을 찾았다. 민재는 돌아오지 않고 한자리를 맴돌듯 서성이고 있었다. 거리가 먼 탓에 작게 보였다. 아직 통화 중인지, 어디를 보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소영은 가로로 긴 창문 밖으로 보이는 민재의 모습이 마치 릴스 화면 같다고 생각했다. 스멀거리는 불안을 다독이듯.


   십일월이 지나면 겨울이 온다. 그들이 자신할 수 있는 미래란 그것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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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4-01
알파벅스

알파벅스 이원석 사라진 마을의 이름은 소몽笑夢이었다. 소몽리는 작은 마을이었지만 유속과 깊이가 적당한 계곡이 가까워 외지 사람들이 많이 찾던 관광지로, 몇몇 주민들은 일찍부터 부업으로 관광객들을 재워 주며 얼마간의 돈을 벌었다. 그러던 중 높은 시청률을 기록한 드라마의 촬영과 유명 연예인의 방문이 화제가 되어 마을이 여러 매체에 소개되고 관광객이 늘어나며, 생업과 부업의 위치가 바뀌기 시작했다. 살던 집을 개조해 전문적으로 민박을 운영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더니 종국에는 마을 주민 대부분이 그 일로 먹고살게 되었다. 처음에 그들은 같은 마을 주민들끼리 동종 업계 종사자가 되었다는 것을 기쁨으로 삼았다. 자신이 손님을 받을 수 없는 상황일 때는 다른 집을 소개해 주기도 하고, 소개받은 집에서는 소개해 준 사람에게 작은 보답을 하는 일종의 중개업도 활발히 이루어졌다. 한동안 그들의 사회적 유대감이 혈족의 그것 이상이었을 것이라고 보는 사회학자들도 있다. 소규모 민박집이 성행하던 어느 날 ‘물꼬리 펜션’이라는 이름의 첫 대형 독채 펜션이 문을 열었고 관광객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넓고 쾌적한 시설, 안전한 보안과 차량 픽업 서비스 등은 특히 가족 단위 손님들이나 젊은 세대 단체 손님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다. 읍에 하나 있는 2금융권 은행에는 대출 상담을 받는 주민들의 줄이 길게 늘어섰다. 그리하여 소몽리는 다시 한 번 변화의 바람에 휩쓸렸다. ‘물꼬리 펜션’ 이후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서른 개가 넘는 크고 작은 독채 펜션이 생겨났고, 일대에서는 가장 유명한 펜션 단지로 자리 잡게 되었다. 대를 이어 펜션을 운영하는 집도 있었고 외지인이 지은 펜션의 관리인으로 일하는 주민도 있었다. 관광객들은 해마다 늘어 갔다. 물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었겠지만, 대부분의 주민들은 이전보다 경제적으로 넉넉한 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을 거라고 사회경제학자들은 말한다. 그러나 리스크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숙박업에 종사하는 주민들은 여름 한철 외지인들이 쓰고 간 돈으로 겨울을 견뎌야 했다. 규모가 커지다 보니 자연스럽게 숙박객 유치를 위한 경쟁이 치열해지기 시작했고, 여름이면 집과 집 사이로 고성이 오가거나 주먹다짐이 일어나는 일도 빈번했다. 산을 잘 모르는 외지인들의 부주의한 행동도 골칫거리였다. 술을 먹고 입수하는 외지인은 해마다 몇 명씩 있었고 출입이 금지된 곳에 억지로 들어가 뱀에 물리거나 말벌에 쏘여 구급차에 실려 가는 사람도 많았다. 몇몇 부덕한 업주들이 성수기 숙박 요금을 지나치게 올려 받아 신문과 텔레비전 뉴스에 오르내리는 것도 부지기수였다. 주민들이 외지인을 대상으로, 외지인이 주민들을 대상으로 일으키는 범죄의 빈도도 날이 갈수록 잦아졌다. 어느 순간부터 주민들은 ‘이래서 사람을 믿으면 안 된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간혹 어린아이가 태어나도 가장 먼저 그런 것을 가르쳤다. 다른 사람을 믿지 않는 법. 타인에게 다가가지 않는 법. 그러나 영특한 아이들은 어른들

  • 관리자
  • 2024-04-01
양파가 들어간 토마토 수프

양파가 들어간 토마토 수프 김나현 1 엄마는 내 말을 듣지 않았다. 원룸 안에서 그 냄새를 해결하지 못할 거라고 했지만, 결국 양파가 들어간 토마토 수프를 끓였다. 수프는 메인 재료가 양파와 토마토가 맞나 의심이 들 만큼 동그란 기름이 둥둥 떠 있었다. 돼지고기에 붙은 비계 때문이거나 양파를 볶을 때 버터가 들어간 탓인 듯했다. “이렇게 먹어야 제 맛이야.” 제 맛? 양파가 들어간 토마토 수프에 과연 그런 게 있을까? 엄마의 기분에 따라 혹은 우리 가족의 재정 상태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수프의 맛이었다. 그러고 보면 금전적 여유가 있을 땐 소고기가 잔뜩 들어가곤 했다. 여유랄 게 없을 땐 몇 조각의 고기만 들어간 야채수프에 가까웠다. 그 수프는 마녀 수프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다이어트 음식으로 각광받기 훨씬 전부터 우리 집의 시그니처 메뉴였다. 다른 집 엄마들이 된장찌개나 김치찌개를 특기로 내세울 때, 엄마는 양파가 들어간 토마토 수프를 주력으로 삼았다. 깊은 맛의 토마토 수프, 따뜻한 쌀밥, 그 위에 계란 프라이를 올리면 특별히 다른 반찬이 필요하지 않았다. 엄마의 수프에 특별한 비법은 없었다. 냉장고 안의 남은 재료에 양파와 토마토를 넉넉히 넣고 끓일 뿐이었다. 그래서인가 그 수프의 이름은 자연스럽게 양파가 들어간 토마토 수프가 되었는데, 어떤 이들은 종종 그것을 토마토가 들어간 양파 수프라고 부르기도 했다. 어쨌거나 내가 먹어 본 어떤 수프도 엄마가 만든 수프 맛을 따라오지 못했다. 이웃들이 엄마의 레시피를 그대로 따라 해도 그 맛은 나지 않았다. 그러니까 그것은 엄마의 장기이자 우리 집의 자랑이었다. 그 수프가 이제 내 신경을 건드렸다. 방 안에 겹겹이 쌓인 냄새 때문에 짜증이 밀려왔다. 어떤 냄새든 밀폐되면 지독해진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주방 후드의 환풍기를 켜고 침대를 밟고 올라가 창문을 열었다. 쌀쌀하게 불어오는 바람을 들이마시자 어딘가 모르게 매캐함이 밀려왔다. 그건 이웃집에서 흘러온 담배 냄새 따위가 아니었다. 공기 질이 좋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도로변 오피스텔은 어쩔 수 없었다. 미세먼지가 있든 없든 주위는 옅은 안개에 휩싸여 흐릴 때가 많았다. “그만 내려와. 상이나 펴.” 접이식 탁자를 펼치고 엄마와 마주 앉으니 다섯 평 원룸이 꽉 차는 듯했다. 받침대에 냄비를 내려놓은 엄마는 할 말이 가득한 표정이었다. 편안히 수프 맛을 음미하기에는 엄마의 눈치가 보였다. 나는 무슨 소리를 들을까 내심 마음을 졸이며 먼저 입을 열었다. “저번 집보단 낫지 않아?” 그 집은 방충망에 벌레가 자주 들러붙었다. 작은 날벌레도 아니고 엄지만 한 크기였다. 그게 집으로 날아 들어오곤 했다. 오래된 주택의 2층집에 딸린 셋방이었다. 화장실은 밖에 있었다. 부엌은 없었다. 그에 비하면 여긴 화장실이 집 안에 있고 부엌도 딸려 있었다. 그러나 엄마는 줄곧 말이 없었다. 한동안 이어진 침묵에는 그 돈을 갖고 겨우 이런 곳밖에 구

  • 관리자
  • 2024-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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