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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그로꾼

  • 작성일 2015-03-02
  • 조회수 1,684



어그로꾼




전성혁



삽화-어그로꾼


“클릭수를 올려라!”
연예부 기자로 갓 입사한 내가 편집부장에게 처음 들었던 말이다. 이쪽 세계에서 클릭은 곧 돈이다. 부장은 수습인 우리에게 기사 내용과 관계가 없더라도 오로지 자극적인 제목으로 누리꾼의 시선을 끌라고 말했다. 그들의 엄청난 댓글 수로 주요 포털사이트 뉴스란 메인에 뜨는 것이 우리의 목표이며 영세한 언론사로서 광고주를 얻는 가장 빠른 지름길이자 밥줄임을 수차례 강조했다. 그러고는 우리가 끼니도 거른 채 종일 시내를 돌아다니며 찍어 온 사진들을 모니터링하며 이른바 솎아내기를 시작했다. 부장은 외국의 명문 예술대학을 졸업한 동기의 사진을 유심히 보더니 다짜고짜 고함을 지르며 욕설을 퍼부었다.
“너 예술 할 거면 당장 짐 싸!”
사람을 주제로 내일 쓸 뉴스거리를 물어오라는 부장의 요구에 청일점이었던 동기가 장시간에 걸쳐 카메라에 담은 건 재래시장의 상인들이었다. 그는 노량진 수산시장과 광장시장을 이른 새벽부터 누비며 사람 냄새가 짙게 나는 흑백사진으로 포트폴리오를 완성했다. 하지만 부장이 바란 건 그런 게 아니었다. 다른 동기들의 사진 역시 인상을 잔뜩 쓰며 대충해서 넘겨보던 부장은 갑자기 내 포트폴리오 앞에서 시선을 멈추더니 환한 표정으로 크게 웃기 시작했다. 내가 찍은 건 다름 아닌, 영화제 레드카펫 위에서 짧은 드레스를 입고선 포즈를 취하는 여배우들의 쭉 빠진 다리 사진이었다. 나는 도촬에 가까운 보기에 민망한 사진들로 부장에게 과분한 칭찬을 받았다. 게다가 앞으로는 좀 더 대범하게 밀착해서 각선미를 부각하라며 친히 사진이 잘 나오는 카메라 화각까지 알려주고는 내일 아침 연예면 뉴스기사 톱으로 내가 찍은 사진이 대문짝만 하게 실릴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부장은 옆에 있던 남자 동기의 사진을 힐끔 다시 보더니 얼굴을 찡그리고는 내가 무안해질 정도의 큰 소리로 심하게 주의를 줬다. 하지만 동기들 사이에서 내가 부장의 사랑을 처음부터 독차지 했던 건 아니었다. 나 역시 대학 시절, 브레송과 로버트 카파를 멘토로 크고 작은 예술 공모전에서 입상하며 한때는 사진작가의 길도 꿈꿨었다. 하지만 예술가의 꿈을 접고 현실에 순응하며 어렵사리 취업한 이곳에서, 어그로(“어그로 끌다”라는 게임에서 나온 용어로 온라인상에 도발적인 글을 써서 누리꾼들이 자신을 공격하게 만든다는 뜻)는 좋은 학벌의 동기들에 비해 지방대 출신에다 이렇다 할 스펙도 빽도 없던 내가 살아남을 유일한 전략이었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기에 내가 부장과 같은 길을 걷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게다가 낚시는 물고기를 잡는 데만 쓰이는 것이 아니었다. 인터넷이라는 망망대해에 나는 맛은 좋지만 몸에는 안 좋은 불량 미끼를 마구 던졌다. 때로는 낚싯줄뿐만 아니라 정신 줄까지 놓는 각고의 노력 끝에 내가 쓴 기사가 조회 수 2만을 거뜬히 넘기며 순조롭게 출발했다. 댓글도 실시간으로 100개 이상 달렸다. 부장은 포털사이트 메인에 걸린 내 기사를 보더니 흡족해하며 청출어람이라고 엄지까지 치켜세웠다. 모처럼의 고기 회식과 함께 상여금으로 두둑하게 나온 현찰을 재빨리 세던 나는, 어느새 쓰레기보다 못하다는 일명 기레기(수준 낮은 기사를 쓰는 기자를 비하해 부르는 속어로 기자와 쓰레기를 합성한 신조어)가 되어 있었다.


미스 손을 만난 건 내가 한창 특종 기사로 이름 석 자를 떨치고 있을 때였다. 나는 파파라치계의 미다스라 불리며 유명 연예인들의 사생활을 전담하고 있었다. 낮이면 그들의 집 앞에서 진을 치고는 누가 출입을 하나 일일이 체크를 했고, 밤이면 그들이 몰래 연인과 데이트를 즐기는 한강 공원에 망원렌즈를 들고 숨어서 몇 시간째 기다리곤 했다. 대어의 입질이 있을 때는 주말도 반납한 채 사시사철 연휴를 가리지 않았다. 이로 인해 나는 공인들 사이에서 암적인 존재이자 찰거머리로 악명이 높았다. 하지만 아무렴 어떠랴. 정의보다는 돈 맛을 알게 되자 나는 거침이 없었다. 그들의 인권 따위는 안드로메다였고 오히려 그것이 가십을 원하는 대중에게 진정으로 즐거움을 선사하는 길이라 여겼다. 나는 내 직무에 관해선 어느 프로 기자보다 충실했고 그 어떤 부끄러움도 없었다. 톱스타 열애 특종 기자로서 유명세와 함께 일에도 재미를 붙이며 탄탄대로일 것만 같았던 내게도 어김없이 시련은 찾아왔다. 그것은 너무도 갑작스런 일이었다.


4월의 진도 앞바다는 아비규환 그 자체였다. 세월호는 순식간에 침몰했고 실종자는 대부분 어린 학생들이었다. 식음을 전폐하고 해경의 수색을 마냥 기다리는 학부모들을 보니 도저히 나 같은 날라리 연예부 기자가 있을 곳이 못 되었다. 차기 연봉 협상을 핑계로 국장과 밀당을 하다가, 휴가를 떠난 사회부 기자 대타로 부랴부랴 내려온 것이 내 인생 최대의 실수인 것 같았다. 부장은 힘없는 내 목소리에도 아랑곳없이 현장에서 무조건 일면 기사를 뽑아내라고 닦달했다. 그러면서 종군기자로도 유명한 모 거물급 여기자를 예로 들었다. 나는 조용히“네”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다그치던 부장은 전화를 끊으며 추후 막대한 보상을 약속했다.
밤새 팽목항을 서성이며 취재거리를 찾던 중 운명처럼 만난 사람이 미스 손이었다. 그녀는 자신이 민간 잠수부라고 말했다. 그리고 방금 한 종편 방송과 인터뷰를 마친 뒤라고 했다. 나는 현지 잠수사 중 유일한 여자였던 그녀에게 강한 호기심이 생겨 얘기도 나눌 겸 같이 컵라면을 먹었다.
“원래 하시는 일이 뭐예요?”
나는 면발을 몇 가닥 입에 넣다가 가방 속에서 기자 수첩을 꺼내며 그녀의 직업을 물었다. 그녀는 대답 없이 라면 국물만 서너 번 마셨다. 화장을 거의 하지 않은 상태였지만 상당한 외모의 소유자였다. 물론 약간의 시술 흔적은 보였지만 흔히 말하는 얼짱이라고 불려도 손색이 없을 얼굴이었다. 나는 미모가 상당하다며 그녀 면전에서 입이 닳도록 칭찬을 했다. 그녀는 거기에 마음이 동했는지 환하게 웃으며 자신의 신상명세를 하나씩 풀기 시작했다.
그녀는 홍대에서 자그마한 카페를 운영한다고 했다. 나이는 스물일곱, 나랑 동갑이었다. 가까이서 자세히 보니 예전 어느 곳에서 마주친 적이 있는 것처럼 낯이 익었다.
“혹시 고향이 어디세요?”
“서울이요.”
하지만 서울이 고향이라고 말하기엔 그녀의 억양 속에 경상도 사투리가 짙게 묻어있었다.
“그럼 어느 초등학교 나오셨어요?”
“기자님 근데, 그런 것까지 꼬치꼬치 다 얘기해야 하나요?”
“그건 아닌데 왠지 만난 적이 있는 것 같아서요.”
그녀는 강남에 있는 한솜 초등학교를 나왔다고 했다.
“이야 우리 정말 인연이다. 저도 그 학교 졸업했어요, 15회!”
“그래요……?”
반가운 표정의 나와는 다르게 그녀는 조용히 말끝을 흐렸다.
“6학년 3반?”
“아니요, 2반이요.”
그녀는 귀찮다는 듯 억지로 대답을 했지만 나는 캐물으면 캐물을수록 왠지 신이 났다.
“그래도 옆 반이네요. 우리 분명 가끔씩 복도에서 마주쳤을 거야.”
나는 마치 호구조사를 하듯 살던 동네 위치까지 낱낱이 물어봤다. 그녀는 꽤 오래전이라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며 내게 질린다는 표정을 대놓고 드러냈지만, 내가 누구랴. 나는 투철한 기자 정신으로 무장한, 세 살 적 지난 일까지 세세히 기억하는 기억의 달인이었다. 아마도 고등학교부터 유치원까지 밝히다 보면 서로 인연의 끈이 단단하게 연결돼 있을 듯했다.
옆에 지나가던 한 자원봉사자가 그런 그녀를 보더니 갑자기 옆 사람과 수군대기 시작했다. 나는 의아한 표정으로 자원봉사자와 그녀를 번갈아 쳐다봤다. 자원봉사자는 휴대폰에서 뉴스 기사를 클릭해 보는 것 같았다. 나 역시 주머니에 있던 휴대폰에 절로 손이 갔다. 그러는 사이 그녀는 도망치듯 슬쩍 자리를 피했다.
포털의 실시간 검색어로 세월호 침몰사건과 함께 그녀의 이름이 등장했다. 아마도 그녀가 방금 전에 한 방송사와의 인터뷰가 인터넷에서 화제가 된 듯했다. 댓글도 엄청났다. 순식간에 천 개를 넘어서고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 악플이었다. 그녀가 했던 인터뷰가 사태를 수습하고 있는 정부를 비난하는 성격이 강했기 때문이다. 현재 무척 민감한 부분이었기에 파장은 실로 어마어마했다. 각종 유언비어에 음모론까지 등장하자 일단 그녀 말의 진위 여부부터가 도마 위에 올랐다. 어쨌든 나는 본능적으로 대박 특종을 예감했다.
댓글을 읽던 중 한 누리꾼이 남긴 글이 유독 눈에 띄었다. “그녀의 본명은‘민자’이며 심각한 공상허언증 환자다. 그녀의 거짓말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나는 「리플리」라는 영화를 감명 깊게 봤던 터라 그 병에 대해 잘 알고 있었고 그런 사람들에게 관심도 많았다. 물론 취재하기에도 재밌는 대상이었다. 게다가 몇 해 전 신정아 사태로 대중에게도 잘 알려진 증상이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예슬이 아닌 민자라는 촌스러운 이름에 나의 뇌가 빠르게 작동했다.
“손민자 손민자, 그래 미스 손!”
나는 혼자 중얼거리다 이제야 기억이 났다며 손뼉을 탁 쳤다. 내가 알던 손민자. 미스터 손이라는 손오공 캐릭터가 등장하는 애니가 한창 인기를 끌던 때라 우리에게 치키치키차카차카 미스 손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던 소녀. 나는 기억을 더듬으며 초등학교 4학년 때로 돌아갔다. 여름이 지날 무렵 우리 반으로 전학 온 그녀는 또래 평균 키보다 훨씬 컸다. 맨 뒤에 앉은 한 남자 아이가 교단에서 자기소개를 하던 그녀를 보며 거인이라고 놀려댔다. 이에 반 아이들이 같이 따라 웃었다. 부끄러워할 줄 알았던 그녀는 익숙하다는 듯 태연한 표정으로 사실 자신은 몸집이 거대한 사람들이 사는 나라에서 지내다가 이곳으로 쫓겨 왔다고 말했다. 거인국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말에 긴가민가해하던 아이들은 일제히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공주였던 그녀는 새엄마인 왕비의 시샘에 어쩔 수 없이 이곳으로 전학을 올 수밖에 없었다고. 가만히 얘기를 듣던 나는, 백설 공주 동화가 떠올랐다. 이윽고 거짓말하지 말라는 개구쟁이의 말에 그녀는 거인국의 언어라며 이상한 억양으로 처음 듣는 낯선 말을 연이어 내뱉었다. 영어가 아닌 한국말인데도 불구하고 전혀 알아들을 수 없었다. 우리는 멍하니 그녀의 입만 쳐다봤다. 담임선생님은 재미있는 아이라며 피식 웃었고 어리둥절해하던 친구들은 점점 그녀의 말을 진짜라고 믿기 시작했다. 나는 그녀가 랩처럼 빠르게 쏟아냈던 말이 경상도 사투리라는 것을 경주로 수학여행을 다녀오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미스 손의 거짓말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이 불리한 상황에 처했을 때뿐만 아니라 주위 사람들의 관심을 받기 위해 말을 지어내기도 했다. 그 정점은 미스 손이 고아라는 소문이 돌던 날, 과학 실험시간이었다. 그녀는 아빠가 외계인이라고 주장했다. 그래서 학부모들이 모두 참석한 운동회도 아빠가 유에프오를 타고 우주를 횡단 중이라 미처 지구로 돌아오지 못한 거라고. 그런 아빠에게서 초능력을 배웠다며 우리 앞에서 직접 묘기까지 선보였다. 그녀가 눈을 부릅뜬 채 주먹을 내밀자 종이 위에 있던 철가루들이 홍해를 가르듯 양옆으로 흩어졌고, 미니 자동차 꽁무니에 기합소리와 함께 장풍을 날리자 차가 앞으로 저절로 움직였다. 우리는 눈앞에 벌어진 광경에 놀라 입을 벌린 채 박수를 쳤고 그녀는 어깨를 으쓱하며 별거 아니라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 뒤로 그녀가 한 번씩 주먹을 쥘 때면 덩치 큰 남자 아이들도 겁을 먹고 줄행랑을 치기 일쑤였다. 초능력을 쓸 줄 아는 그녀는 전학을 온 지 며칠 만에 우리 반‘짱’이 되었다. 하지만 그녀의 초능력이 자석을 이용한 속임수였음을 금세 알게 된 아이들은 그녀를 의심하기 시작했고 미스 손은 따돌림을 받지 않기 위해 또 다른 거짓말을 시작했다. 그 거짓말의 중심엔 호진이가 있었다.
호진이는 내가 짝사랑하던 친구였다. 어릴 적부터 같이 이웃에 살며 부모님끼리도 무척 가까웠다. 모 아이돌 가수를 닮아 잘생긴 호진이는 공부 역시 전교 1등으로 여자 아이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소풍 때면 장기자랑으로 멋진 팝핀댄스까지 춰 주목을 받았고 발렌타인데이에는 여느 남자 스타들처럼 책상 서랍 속에 편지와 초콜릿들이 넘쳐났다. 그런 호진이에게 미스 손은 크게 관심을 보이며 선물 공세를 퍼붓더니 공개적으로 좋아한다고 말했다. 나는 그 장면을 지켜보며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듯했다. 다행히도 호진이는 내 바람처럼 그녀에게 확실히 선을 그었고 미스 손은 우리가 보는 앞에서 망신을 당한 채 엉엉 울고 말았다. 그 충격이 몹시 컸는지 다음날 학교를 결석했던 미스 손은 이틀째 나와 우리에게 다시 고백을 하였다.
“사실 나는 트랜스젠더 1호다.”
초등학생인 우리들에게 그 말은 이해하기 어려운 단어였다. 방송에서 한창 하리수라는 가수가 이슈가 되긴 했지만 우리에겐 그저 예쁜 언니일 뿐이었다. 미스 손은 원래 자신이 남자였기 때문에 본능적으로 남성보다는 여성에 관심이 많다며 호진이는 그저 자신의 성적 실험 상대였다고 둘러댔다. 당시 그녀는 아마도 우리가 볼 수 없는 19금 책들을 많이 섭렵한 듯했다. 미스 손은 고백을 끝내자마자 호진이 앞에서 보란 듯이 내게 키스를 하였다. 나는 놀라 가만히 서서 눈만 멀뚱멀뚱 떴다. 불행히도 그녀는 내 입술의 첫 주인공이 돼버렸다.
레즈비언이란 단어를 어디서 들었는지 그 뒤로 아이들은 나까지 싸잡아 동성애자라 놀려댔다. 한 여자 아이는 내게 불결하다는 내용의 긴 글까지 남겼다. 소문은 일파만파로 퍼졌고 급기야 부모님까지 호출이 되었다. 황당해하는 엄마 앞에서 담임선생님은 학부모들의 잇단 항의에 어쩔 수 없었다고 했다. 그러고는 내게 사실 관계를 확인했다.
“너 진짜 여자 좋아하니?”
선생님은 내 손을 다정하게 잡으며 다 이해한다는 눈빛으로 물었다. 사실 당시 나는 아직 여자 남자라는 성적 구분이 제대로 확립되지 않았을 때였다. 남자든 여자든 친구라면 다 좋았다. 내가 솔직하게 고개를 끄덕이자 엄마는 울면서 내 등을 마구 때렸다. 나는 영문도 모른 채 엄마를 따라 같이 울었다.
나는 한 달 동안 엄마와 함께 정신과에서 상담 치료를 받았다. 주로 여자는 이래야 하고 남자는 이래야 한다는 고정된 성역할에 관한 것이었다. 나는 짧고 강한 주입식 성교육으로 또래보다 이른 나이에 아이에서 여자가 되었다. 엄마는 병원을 나오며 내게 미스 손을 멀리하라고 당부했다.
“왜요? 걔도 친구인데…….”
나는 엄마를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엄마는 담임에게 들었다며 전에 학교에서도 거짓말을 자주 해 말썽이 많아 서울로 강제 전학을 온 거라고 말했다.
“걔 엄마가 없대. 그리고 아빠도…….”
엄마는 미스 손이 보육원에서 지낸다고 했다.
“그럼 불쌍한 거잖아요?”
나는 엄마에게 대꾸했지만 그런 엄마는 내가 착해빠졌다며 머리를 세게 쥐어박았다.
“앞으로 걔랑 놀지 마.”


나를 향한 괴상한 소문들도 점차 잠잠해질 무렵, 언제부턴가 미스 손은 점심시간에 혼자서 밥을 먹었다. 아이들은 그녀를 놀이에 끼워 주지 않았고 의도적으로 멀리했다. 그러자 쉬는 시간에도 방과 후에도 그녀는 늘 혼자였다. 어깨가 축 처진 채 한없이 외롭고 쓸쓸해 보이던 미스 손의 뒷모습. 부반장이었던 나는, 엄마의 말도 거스르며 왕따를 당하던 그녀에게 손을 내밀고는 짝꿍을 자처했다.
“너는 내가 더럽지 않아?”
미스 손은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나를 보며 말했다.
“더럽긴. 우린 친구잖아.”
나는 그녀의 손을 잡으며 애들은 신경 쓰지 말라고 했다.
“고마워.”
미스 손은 나를 와락 안았다. 하지만 그녀는 그 뒤로 학교에서 보이지 않았고 우리의 기억 속에서도 점점 잊혀졌다.


미스 손의 소식을 다시 접한 건 얼마 전 동창회에서였다. 오지랖이 넓은 친구 말에 따르면 일 년을 쉰 그녀는 뒤늦게 초등학교를 졸업했다고. 그러고는 입양이 돼 일본에서 쭉 살았다고 한다.
“너 최근 민자 얘기 들었어?”
“민자? 누구지?”
나는 또 난처한 상황이 벌어질까 봐 일부러 모르는 척했다.
“미스 손 몰라? 그 유명했던 구라녀! 너랑 썸도…….”
미스 손의 왕따를 주도했던 장본인인 친구가 입이 몹시 근질거려 못 참겠다는 듯 나를 보며 수다를 풀었다. 자기도 뉴스를 통해 알게 되었는데 일본에 대지진이 일어났을 무렵 그녀는 도쿄에 거주하는 교민을 대표해 언론사와 인터뷰를 하였다고 한다. 친구는 방송에서 그녀가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서 오열하는 장면을 목격했다고. 얼굴이 많이 변해서 처음에는 못 알아봤지만 특유의 억양과 몸짓이 예전과 그대로였다고 말했다.
“엄청 예뻐졌더라고. 우는데도 마치 배우처럼 말이지…….”
친구는 맥주를 한 잔 들이켜며 그 모습을 회상했다. 그러고는 분명히 성형을 했을 거라며 험담을 퍼붓기 시작했다.
“걔 요즘 뭐 한다니?”
나는 마른안주를 하나 집어 입에 넣고는 오물거리며 말했다.
“내가 누구니? 안테나 김 아냐. 지인들을 좀 동원해서 알아봤지. 근데 걔 완전 사기꾼이더라고…….”
미스 손은 양부모에게 학대를 당하며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한다. 양아버지의 계속된 성추행을 참지 못하고 가출한 그녀는 재일교포가 운영하는 유흥업소에서 일하며 생활을 해나갔다고. 하지만 성인이 되자마자 주인과 손님에게 빌린 돈을 몽땅 챙겨 가지고 부산으로 도망을 왔다고 했다.
“야쿠자인가 뭔가, 일본 조폭 있잖아? 그 사람들에게 아직 쫓겨 다닌다네……. 예나 지금이나 기구한 인생이지 뭐.”
그 뒤로 서울에 머물게 된 미스 손은 주로 연예인과 운동선수들에게 거짓 신분으로 접근해 친분을 과시하며 이를 이용해 먹고 살아가는 스캔들 메이커로 이른바 관종(관심을 받고 싶어 하는 사람)이었다. 급기야 그녀는 모 프로야구 선수의 애인 행세를 하며 가짜 임신 소동까지 벌인 상태였다.
“야구광인 남자 친구가 그러더라고. 이 바닥에서 아주 유명한 꽃뱀이라고…….”
나는 초등학교 시절 미스 손을 떠올리며 입술을 매만졌다. 그러자 입술이 나도 모르게 뜨거워졌다. 부끄러움에 나는 괜스레 주위의 눈을 살폈다.
얼마 뒤 호진이가 늦게나마 자리에 참석했다. 호진이는 여의도 증권회사에서 잘나가는 애널리스트로 방송에도 고정으로 출연하며 여전히 잘생긴 외모를 뽐냈다.
“네가 보내주는 찌라시 잘 보고 있어. 고마워 사오정!”
어릴 적 사고로 고막을 다쳐 한쪽 귀가 잘 들리지 않아 생긴 사오정이란 별명. 나는 연예부 기자라는 지위를 이용해 그와 인연을 이어 가고 있었다. 친구는 내게 슬쩍 윙크를 한 뒤 호진이에게 맥주를 따라 주며 오랜만에 동창들이 다 모였으니 예전 그때처럼 게임을 하자고 부추겼다.
“삼육구 삼육구, 삼육구 삼육구…….”
유독 숫자 게임에 약해 매번 벌칙으로 당했던 인디안밥의 아픈 기억이 새록새록 살아났다. 오늘의 벌칙은 그 강도가 업그레이드된 딱밤이었고 나는 그때와 마찬가지로 벌칙 대장이 되었다. 겁을 먹은 채 친구에게 다가가 조심스레 이마를 들이밀자 옆에서 이를 지켜보던 호진이가 놀랍게도 흑기사를 자처했다.
“삼장법사 너, 사오정이랑 혹시…….”
부처님 귀처럼 양쪽 귀가 크고 길어서 붙여진 호진이의 별명은 삼장법사였다. 여느 스님들처럼 평소 점잖기만 했던 호진이의 이 같은 행동에 친구들은 얼레리꼴레리 야유를 보내며 둘이 무슨 사이냐고 어린애들같이 놀려댔다. 나 역시도 그 모습이 영 낯설었지만 어찌 되었든 호진이와 조금이나마 가까워진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우리는 어깨를 들썩이며 다소 유치하지만 수학여행을 가서 자주 했던 007빵과 함께 동물 시늉에서 바보 흉내까지 똑같이 내야 했던 아엠 그라운드 자기소개하기 등등. 주위 손님들의 따가운 눈총을 받아 가며 가게가 떠나갈 정도로 시끄럽게 웃고 떠들고는 모두가 순수했던 초딩 시절로 다시 돌아갔다. 분위기가 무르익자 이제는 짝꿍끼리 편을 짜서 커플게임을 시작하였고 다행히도 나는 호진이와 짝이 되었다. 게다가 통신사에 다니는 친구가 최신형 휴대폰을 1등 상품으로 내놓자 그동안 게임에 건성이던 동기들 모두 좀 전보다 더 전의를 불태웠다. 학창 시절 내내 그 누구보다 승부욕이 강했던 호진이기에 나는 막대과자게임을 빙자한 밀착 스킨십이 더 기대되었다. 나와 호진이는 안주로 시킨 후렌치 후라이를 입에다 물고는 어색하게 서로를 쳐다봤다.
“사오정, 바짝 물어!”
오직 게임에서 이겨야겠다며 결의에 찬 호진이와는 달리 나는 승패와 관계없이 가슴이 콩닥거려 그를 빤히 쳐다볼 수 없었다. 그저 소심하게 눈을 아래로 내리깐 채 얼굴만 붉힐 뿐이었다. 친구는 수줍어하는 내 모습이 재밌는지 옆에서 웃으며 마구 분위기를 띄웠다.
시작을 알리는 신호와 함께 호진이와 나는 입술을 최대한 오므리며 후렌치 후라이를 빠르게 먹어치웠다. 1초도 채 안 되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내겐 영원처럼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짧아진 후렌치 후라이 덕에 부끄럽게도 서로 입술이 살짝 맞닿았고, 찰나였지만 민망하게도 내 입술의 첫 주인공인 미스 손이 떠올랐다. 친구들은 박수를 치며 “키스해! 키스해!”를 외쳤고 나는 슬며시 눈을 감고는 호진이에게 전적으로 결정권을 맡긴 채 입술만 쭉 내밀었다. 하지만 호진이는 알 듯 모를 듯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남은 후렌치 후라이를 뚝 입에서 떼어내고는, 친구들에게 더 이상 장난하지 말라며 그만 요기까지라고 웃어넘겼다.
“칫…….”
오리처럼 입술을 내민 채 무안해하던 나는 못내 실망했지만 친구들 앞에서 애써 태연한 척 표정관리를 했다. 그러자 눈치를 살피던 친구가 호진이에게 혹시 지금 사귀는 여자가 있느냐고 나 대신 물어봤다. 대답을 기다리는 동안 나는 가슴이 미칠 듯이 뛰었다. 만약 없다면 커플게임의 여세를 몰아 그에게 적극적으로 먼저 대시해 볼 생각이었다.
“있어!”
호진이는 내 기대와는 달리 짧게 대답하고는 아무렇지도 않게 맥주를 원 샷 했다. 가만히 옆에서 호진이를 바라보던 나는 하늘이 무너지는 듯했다. 내가 호진이를 짝사랑하고 있다는 걸 잘 아는 친구는 우울한 내 표정에 더 신이 났는지 베일에 싸인 애인의 신상에 대해서 꼬치꼬치 캐물었다.
“아마 너희도 알 거야. 민자라고……. 물론 지금은 예쁜 이름으로 개명했지만.”
호진이는 작년에 한 라디오 공개방송 패널로 참여했다가 거기서 민자를 다시 만나기 시작했다며 그녀는 선약이 있어 오늘 모임에 같이 참석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호진이의 여자가 미스 손이라는 말에 자리에 있던 친구들 모두가 충격에 휩싸였다. 어떻게 학교 제일의 킹카가 그런 거짓말쟁이 왕따와 사귈 수 있는지 나는 억울하고 답답해 울고 싶었다.
“치키치키 차카차카 초코초코 초…….”
슬픔에 테이블 위에 그대로 엎드린 채 중얼거리는 나를 보고 호진이는 취했느냐며 내 속도 모르고 등을 두드려 주었다. 나는 결국 고가의 최신형 휴대폰을 상품으로 받게 되었지만 전혀 기쁘지 않았고 혼자 소리 내지 않고 우는 법을 그날 처음으로 배웠다.


부장에게서 다시 연락이 왔다. 늦은 밤이라 졸리는 목소리였지만 그는 미스 손을 다른 언론사보다 앞서 취재하라고 지시했다. 아마도 인터넷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그녀에 대해 파악을 한 것 같았다. 부장은 내일 인물 특집 면에 그녀의 기사가 크게 실릴 거라면서 베테랑인 나를 믿는다고 했다. 나는“네”라고 짧게 대답한 뒤 휴대폰 전원을 꺼버렸다.
우연찮게도 이미 미스 손에 대해서 취재 중이었고 그녀의 과거에 대해서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나였다. 하지만 모두가 그녀를 둘러싼 확인되지 않은 소문일 뿐, 실체는 없었다. 그래서 나는 미스 손에게 직접 진실을 확인하고 싶었다. 나는 경찰의 도움을 받으며 그녀를 찾았다. 마침 경찰도 그녀를 수배 중이었다. 죄목은 명예훼손이었고 나는 그 명예의 대상이 누구인지 실로 궁금했다.
민간 잠수사라는 말 역시 거짓이었다. 그녀는 누군가를 구조할 공인된 그 어떤 자격도 없었다. 수소문 끝에 미스 손을 발견한 곳은 진도 버스터미널이었다. 그녀는 모자를 눌러쓰고는 캐리어 두 개를 손에 쥔 채 서둘러 이곳을 빠져나가려는 참이었다. 경찰이 수갑을 들고 그녀에게 다가갔지만 나는 경찰에게 양해를 구한 뒤 먼저 그녀를 휴게실에서 만났다. 미스 손은 내 얘기를 차분히 듣더니 갑자기 담배가 피고 싶다며 내게 라이터를 빌렸다. 그녀는 말보로 담배를 입에 문 뒤 하염없이 연기를 내뿜었다. 처음 만났을 때와는 달리 표정은 어두웠고 무언가 체념한 눈빛이었다.
“왜 속였어요?”
나는 취조하듯 말을 건넸다. 미스 손은 대답 없이 바닥에다 담배를 비벼 껐다. 그녀는 처음부터 속일 생각은 없었다고 했다. 세월호가 침몰했다는 보도를 들었을 때 여느 국민들처럼 작은 힘이나마 보태고 싶은 마음에 곧바로 팽목항을 찾았고, 현지에서 봉사활동 거리를 찾던 중 생각해 낸 게 민간 잠수부였다. 하지만 정부의 실제 구조 상황은 답답하게 돌아갔고 현장에는 온갖 유언비어가 난무했다. 이를 지켜보던 그녀는 국민들에게 세월호 사건의 참모습을 알리고자 뉴스 인터뷰를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안타깝기도 하고 분하기도 해서 영웅 심리에 그만…….”
미스 손 역시 자신이 한 인터뷰가 이처럼 논란이 될 줄 몰랐다고 했다.
“지금 문제가 되는 건 사건의 진위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예슬 씨의 과거입니다.”
나는 미스 손과 애써 눈을 마주치며 이 모든 사실을 다 안다는 듯 그녀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미스 손은 마음을 들킨 사람처럼 불안해하다가 갑자기 한쪽 입 꼬리를 씩 올렸다.
“알고 있었지? 내가 민자라는 걸…….”
그녀는 내가 졸업한 초등학교를 얘기했을 때 누군지 이미 알아차렸다고 했다. 경찰은 손목에 찬 시계를 보더니 내게 그만 가야 한다는 신호를 보냈다. 나는 취재가 덜 끝났으니 조금만 더 시간을 달라고 부탁했다.
“궁금했어. 네 진짜 모습이…….”
나는 미스 손을 보며 말했다.
“뭐 진짜 모습? 웃기네. 사오정 너, 가식적인 건 여전하구나!”
그녀는 진짜라는 건 세상 어디에든 존재하지 않는다며 나를 비웃었다.
“네 과거를 친구한테 들었을 때 가엾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했어. 그때 좀 더 잘해 줬더라면 지금처럼 마음이 불편하지 않았을 텐데, 우리는 네게 상처만 줬으니…….”
미스 손은 내 말을 듣더니 얼굴을 붉혔다.
“동정 따윈 바라지 않아. 그렇게 나약하게 살아오지도 않았고……. 근데 내가 화가 나는 건 너의 그 다정한 말투야. 나는 네가 그날 내민 그 손을 잊을 수가 없어. 넌 정말 이중적인 아이였어!”
“난 널 친구라고 생각했어.”
나는 그날 내민 오른손을 만지작거리며 항변하듯 말했다.
“친구? 진짜 친구라면 어떻게 그렇게 소문을 내니! 내가 고아여서 보육원에서 산다고…….”
“왜냐면 호진이를 내가, 먼저 좋아했었으니까…….”
나는 울컥해하며 가슴 속 깊이 담아 둔 사실을 미스 손에게 털어놓았다. 그녀는 마치 전투에서 승리한 장수처럼 웃음을 짓더니 내게 다가와 그날처럼 입맞춤을 했다.
“이제 알겠니? 이게 진짜 내 모습이야!”
그녀는 놀란 나를 뒤로 하고 곧바로 경찰에 연행돼 갔다. 나는 잡혀가는 미스 손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다 뭔가 서러움에 복받쳐 눈물을 흘렸다.


호진이에게서 메일이 도착했다. 그는 미스 손에 대해 선처를 부탁하며 지금 마녀사냥을 당하고 있는 그녀를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나밖에 없단다. 온통 왜곡으로 얼룩진 뉴스 속에서 마치 흑기사처럼 나타나 유일하게 진실을 말해 줄, 그녀의 본모습을 가장 잘 알고 있는 기자. 하지만 나는 사회부가 아닌 연예부 기자였고 그녀는 이미 범죄자가 되어 있었다. 게다가 그녀는 내가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호진이를 빼앗아 가버렸다. 나는 답장을 미룬 채 호진이 페이스 북으로 들어가 미스 손과 찍은 사진들을 하나씩 훑어보았다. 둘은 얼마 전에 결혼을 약속한 상태였다. 이미 결혼식장과 예식 날짜까지 확정되었고 청첩장도 만들고 있는 중이었다. 호진이는 미스 손의 어떤 점에 그토록 반한 걸까. 다정한 둘의 모습을 보며 나는 패배자처럼 마음이 우울해졌다.


내일 실릴 뉴스 기사 작성을 위해 노트북을 두드렸다. 밤새, 쓴 커피를 연거푸 마시며 역대 최고의 어그로 기사를 쓰고 있다. 제목은 이미 정했다. 현시점에서 가장 자극적이고 모두의 관심을 끌 만한 것으로, 주인공은 우리의 영웅, 치키치키차카차카 미스 손이다. 물론 내가 아는 그녀가 아닌 내가 모르는 그녀에 대해, 팩트는 중요치 않다. 어차피 우리가 사는 세상은 세련된 솜씨로 보기 좋게 겉옷만 잘 입히면 된다.
“나에게 한 문장만 달라. 그러면 누구든지 범죄자도 영웅으로 만들어줄 수 있다.”
나치 선전부 장관을 지낸 파울 요제프 괴벨스의 말을 빌려 기사의 서문을 꾸몄다. 그리고 호진이 페이스 북에서 찾은 미스 손의 사진을 악의적으로 합성해 편집부장에게 전송했다. 조만간 내 기사에 달릴 엄청난 수의 악성 댓글을 기대하며 새벽에 나는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큰 소리로 웃다 울다 했다.




작가소개 / 전성혁(소설가)

1983년 출생.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극작과 전문사 과정 재학 중. 제3회 《세계의 문학》 신인상 등단.



《문장웹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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