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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거리의 불빛

  • 작성일 2017-02-01
  • 조회수 1,856


[단편소설]



사거리의 불빛



금 희



17년 전의 어느 여름밤, 아버지는 괴이한 어둠들이 어슬렁거리고 있는 사거리에서 종이돈을 태우는 여자를 만났다. 할머니네 아파트 뒷문으로 들어가는 골목길이었는데 온 저녁 들이마신 소주와 맥주 때문에 아버지의 오줌보는 터질 듯 팽팽히 불어났다.
아버지는 차를 길가 낡은 가로등대 아래에 세워 놓고 급히 그 곁 담벽 앞으로 달려갔다. 작고 볼품없는 초등학교의 오래된 벽돌담 벽에는 아버지 같은 ‘취민’들이 질러 놓은 오줌 자국들이 군데군데 축축하니 번져 있었다. 지린내 진동하는 그 음습한 곳에 마주 서서 아버지는 허리춤을 끄르고 서둘러 자신의 ‘연장’을 꺼내 놓았다. 순간, 그의 방광과 요도와 구불구불한 창자에까지 꽉 들어차 있는 것 같던 뜨거운 오줌이 마치 성문을 밀어젖히고 쓸어 나온 노한 군중마냥 쏴아ㅡ 사정없이 뿜겨졌다. 세상에, 얼마나 시원했던지 몸은 물론 마음까지 날아갈 듯 가뿐해졌는데 그 처치 곤란한 구정물이 빠져나간 자리로는 어떤 종류의 순도 높은 행복감이 충만히 차오르는 것마저 뚜렷이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이제껏 살면서 맛보았던 다른 수많은 종류의 ‘행복’ ㅡ 다정다감한 큰딸과 약간 퍅하긴 하지만 그래도 너무 애교스러운 작은딸, 이제는 눈빛만 보내도 알아서 척척 챙겨 주는 현숙한 아내와 가끔 있는 앳된 여자들과의 색다른 섹스, 점점 넓어져 가는 인맥이며 영향력, 그에 따르는 전에 상상해 본 적조차 없었던 부와 명예…… 그 모든 것들을 어렵사리 소유하고 누리면서 얻었던 ‘행복’과는 같지 않았다. 이 통쾌하면서도 직접적인 원초의 행복감이 밀려오자 다른 것들은 전부 허접한 가짜였다는 듯 흐물흐물 형체도 없이 사라지고 잊힌 가운데 아버지는 심지어 혼돈의 우주 속에 홀로 우뚝 서 있는 진실한 자아를 소름끼치도록 생생히 느꼈다고 했다.
시간이 바로 그런 찰나에서 멈춰 버렸더라면 얼마나 좋겠냐고, 아버지는 언젠가 내게 그날의 신비한 ‘방뇨’에 대해 떠들어댄 적이 있었다. 키스도 아니고 사랑도 아니고, 성공과 명예, 평화나 희생…… 이런 우아한 것들은 관두고라도 하다못해 ‘먹는’ 순간도 아닌 ‘싸는’ 순간이라니? 아버지는 확실히 나의 경멸을 받아 마땅한 인간이었다. 정말이지 아버지가 배출한 것이라면, 그가 먹고 난 자리나 자고 깬 침대, 쩐니(珍妮)에게 뱉는 욕설이나 싸질러 놓은 자식들까지 어느 것 하나 지저분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아무튼 그날 체내에 남은 마지막 한 방울의 오줌까지 모두 짜 보낸 뒤, 그토록 생생하게 차오르며 강력하게 자신을 붙들고 있던 행복감이 갑자기 빛의 속도로 사라져 버린 것을 아버지는 알아버렸다. 무한한 우주 속에 오직 하나뿐인 진실한 존재로 튼실하게 서 있던 아버지는 눈 깜짝할 사이에 지린내 나는 담벽 앞의 추잡한 취객으로 돌아와 있었다. 이게 무엇인가, 대체 이게 다 무엇이란 말인가. 한줄기 연기와도 같은 인생의 시말(始末)을 모두 깨달아버린 듯한 허무감이 후줄근히 늘어진 ‘연장’을 집어넣고 줄레줄레 바지 지퍼를 올리는 아버지를 엄습했다.
아버지는 얼떨떨한 정신으로 가로등대 아래에 세워 놓은 차를 지나친 채 공허한 걸음으로 쿵쾅거리며 어두운 골목길의 굽이를 틀었다. 아파트를 둘러싼 철창 바자가 저만치 보였고 그 검은색의 바자와 아버지 사이에 작은 교차로같이 사거리 하나가 나 있는 그곳에서 벌건 불길이 활활 밤을 태우고 있었다. 긴 꼬챙이를 손에 쥐고 쭈그리고 앉아 불길 속으로 연신 뭔가를 집어넣는 여자의 실루엣이 날름거리는 불의 혀와 묵직하게 사방을 누르고 있는 어둠의 그림자를 기괴하게 이어 주고 있었다. 아버지는 직감적으로 여자가 태우고 있는 것이 누런 종이돈임을 알아차렸다. ‘귀신날’(鬼节:中元节의 속칭. 음력 7월 15일. 염라대왕이 음력 7월 초부터 저승의 혼들을 잠깐 풀어 놓아 이승의 가족들을 만날 수 있다고 전해지는데, 7월 15일이면 다시 돌아가는 날이라고 함.)이 그즈음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으므로 아버지에게 그것은 그리 희한한 장면도 아니었다.
할아버지, 곧 그의 아버지가 고향마을에서 조상들에게 제를 지낼 때 그 역시 무덤 앞에 머리를 조아린 뒤 장에서 사온 종이돈과 종이웬보우(元宝) 같은 것들을 함께 태웠었다. 아파트로 이사 온 다음에는 고향에 내려가기가 수월치 않았고 그보다 정부의 권고대로 조상님의 관을 모두 화장해 버린 탓으로 그 밤의 여자처럼 사거리에다 열십자를 긋고 종이돈을 태울 수밖에 없었다. ‘할머니, 할아버지, 태할머니(太奶奶:증조모), 태할아버지(太爷爷:증조부)요…… 요즘에는 다들 어찌 잘 지내시는감요? 저 리만창, 당신들의 손군이 용돈 좀 보내드리려 찾아왔구만유…….’ 사거리는 무덤 앞과 달리 받는 주소가 애매해서 아버지는 조상들에게 돈을 태워 드리기 전 항상 거처 없이 떠도는 고혼야귀(孤魂野鬼)들을 달래기 위해 먼저 그들에게 약간의 ‘위로금’을 태워 주었다. 용돈 챙겨 줄 후손이 없는 그들은 한편 불쌍한 처지이기도 했고, 한편 조상님들의 용돈을 먼저 앗아갈 잠재적 위험군체이기도 했으니까.
아버지는 또 할아버지에게서 배운 대로 저승의 사자와 관리들에게 뇌물로 줄 돈을 따로 더 태웠다. 그래야 거기서 사는 조상님들이 좋은 곳으로 거처를 옮기거나 한층 편한 삶을 살 수 있었다. 재산이 점점 불어남에 따라 태워 드리는 종이돈의 두께도 점점 늘었지만 아버지는 자신의 잘나가는 인생이 저승에서 힘을 써주신 조상님들 덕이라고 확신하지는 않았다. 어쩌다 청명이나 중원절(中元节:귀신날의 정식 호칭)을 건너뛰고 종이돈을 태우지 않았을 때 가족 중 누가 몸이 아프면 허겁지겁 치성을 드리기도 했지만 그때뿐, 그가 매년 종이돈을 태우는 이유는 그렇게 해서 나쁠 것이 없다는 신조와 가문의 어른들을 섬겨야 한다는 전통적인 ‘효심’ 외에 다른 것은 없었다.
실제로 아버지는 굉장히 이기적인 사람이어서 거래하는 사업가들이나 정부인사들, 심지어 친구들한테까지 거짓말을 밥 먹듯 했지만 할아버지와 할머니에 대한 효심만은 각별했다. ‘양아방노(养儿防老)’, ‘연속향화(延续香火)’라고 아들을 낳고 후손을 번성시키는 목적이 무엇인가. 끊임없이 출생하는 후손들의 섬김으로 점점 기력을 잃어 가는 연장자들이 편한 생을 살아가는 것, 그것이 중국식의 가장 자연스러운 복지 방법이며 한 가문이 소멸되지 않고 저승에서까지 영원히 흥왕할 수 있는 비결이기도 하지 않는가.
저승에서까지…… 라고 하기에는 좀 그랬다. 사람에게 영혼이 있는지 없는지도 가름나지 않은 판에 그곳을 실재하는 것처럼 논한다는 건 오버였다. 설령 그런 곳이 실재한다더라도 용돈을 태워 드려야 한다는 것이나 그곳의 관리들에게 뇌물을 안겨야 한다는 것 등의 설법이 아버지가 보기에도 그리 ‘공정’하지는 않은 것 같았다.
그러나 그날, 활활 타오르는 불길 앞에서 어떤 상념에 깊숙이 사로잡힌 여자를 보는 순간 아버지는 여태 살면서 한 번도 있어 본 적 없는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평온하면서도 진지한 여자의 표정은 무엇인가 확실히 느낄 수 있는 존재들과 교감하는 듯 보였는데 꾸미지 않은 경건함이 그 속에서 흘러나와 보는 이로 하여금 숙연해지기까지 했었다. 여자는 정말 아버지가 모르는 무언가에 대해 확신이 있었단 말인가. 하면 그 ‘확신’은 과연 보편적이 될 만한 것이었을까. 바람을 따라 춤추는 불꽃의 그림자가 여자의 얼굴 위에서 소리 없이 뛰놀고 있었다. 그 불꽃의 리듬에 맞추어 여자 주위의 어둠들도 술렁거리며 함께 움직이는 것 같았다.
아버지는 술기운을 물리치려고 머리를 세차게 털면서 계속하여 걸음을 앞으로 옮겨갔다. 좀 더 가까이 사거리에 이르렀을 때 아버지는 그제야 긴 꼬챙이를 쥔 여자의 행동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당연히 종이돈을 태우고 있으리라 생각했던 여자는…… 그러나 되감기 버튼을 누른 영화 장면처럼 오히려 불길 속에서 끊임없이 종이돈을 꺼내고 있었다. 검은 그을음조차 없는 새 종이돈들을 말이다. 너무 어처구니없는 일이라 아버지는 자신의 눈을 믿을 수가 없었고 그다음에는 오싹 소름이 끼쳤다. 아버지는 그 자리에서 곧장 돌아섰다. 절대 뒤를 돌아보아서는 안 된다고 스스로를 닦달하면서 아버지는 뻣뻣해진 다리를 질질 끌고 갔다. 갓 오줌을 지른 담벽과 낡은 가로등대가 보이자 그는 안도의 숨을 내쉬며 키를 열고 재빨리 차 안으로 기어 들어갔다. 할머니네 아파트로 올라가 침대에 쓰러진 뒤로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한 채 깊은 잠에 빠져버렸다.
며칠이 지난 뒤, 새벽잠에서 깨어난 아버지는 침대에 비스듬히 누워 담배를 피우면서 그날 밤의 일들을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자신이 본 게 무엇이었던지, 혹은 시각신경세포의 착란이었던지 알 수가 없었다. 만약 망상이 아니라면 그 여자는 무엇이었단 말인가. 정말 누군가 태워 놓은 종이돈을 가져가고 있던 야귀라도 된단 말인가, 아니면 그런 야귀를 가장한 다른 한 종류의 영적 존재였단 말인가. 그것의 실체가 무엇이든 아버지는 본능적으로 그 시점에서 반드시 어떤 행동이든 취해야 한다는 긴박감을 느꼈다. 커튼을 들어 아직 밝지 않은 동녘을 향해 푸른 담배연기를 뿜어내다가 아버지는 드디어 새로운 계획 하나를 세웠다. 그 도시의 가장 크고 좋은 대학교에 가서 제일 머리 좋고 건강한 (가급적이면 예쁜) 여학생 하나를 꼬시는 것이었다. 아버지는 그 계획을 곧바로 시행했고, 가장 크고 좋은 대학은 아니지만 그래도 본과급인 대학에서 사지 멀쩡하고 엉덩이가 펑퍼짐해 보이는 여학생 하나를 꼬시는 데 성공했다. 그 멍청하고 허영심 많은 여학생은 아버지의 비싼 차에 홀려서 몇 개월 버티지도 못하고 큰 저항 없이 그의 오피스텔까지 따라갔는데 그렇게 해서 1년 반쯤 뒤 태어난 아이가 바로 나였다.


나는 전형적인 사생아였고 쩐니는 사람들이 말하는 그 ‘쇼싼(小三:내연녀)’이었다. 큰어머니(아버지의 정실)는 좀처럼 상스런 욕설을 퍼붓지 않았지만 고모와 숙모는 화가 날 때 가끔 나를 ‘들아이(野孩子)’, ‘덜돼먹은 자식’, ‘훔쳐서 낳은 놈(偷生的)’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나는 속칭 ‘토호(土豪)’ 리만창의 유일한 아들이자 리씨 가문의 향불을 이을 수 있는 마지막 희망의 주자였으며 동시에 가족 중 가장 껄끄러운 존재였다.
어린 나의 무의식 속 제일 밑바닥에 깔려 있던 것은 하얀 목도리를 기다랗게 드리운 쩐니의 희미한 모습이었다. 내가 그 모습을 기억한다고 말하면 쩐니는 움찔 놀라며 ‘허튼소리’라고 빈정댔다. “니가 뭘 봤다고? 거짓말 말어. 넌 그때 겨우 여덟 달이었는데. 잘 먹여서인지 애가 올돼서 걸음마도 꽤 탔다만, 그런 걸 기억할 리는 없어. 이 작은 사기군아, 넌 어쩜 입만 열면 그렇게 거짓말이 정말처럼 술술 나오니?” 몇 번 쩐니에게 당하고 나서 나는 나의 기억들이 진짜 나의 것인지, 아니면 누구에게서 귀동냥으로 들었거나 또는 인터넷으로 본 일들을 적당히 버무려서 억지로 집어넣은 것인지 분간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좀 더 컸을 무렵에는 이런 기억도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 집 문 밖에서 웅성거리고 있었고 하얀 가운을 입은 사람들이 안방 침대에서 쩐니를 들어내 가는 장면이었다. 누렇게 색이 바랜 이불 아래에 무서운 표정으로 입을 앙다물고 누운 쩐니, 그녀의 입귀에 흐르던 거품까지 생각이 나는데 그것도 내가 상상해 낸 것이란 말인가. 쩐니의 말로는 그것은 내가 두 돌쯤 되었을 때의 일이었고, 이불 색깔이 실제 상황과 들어맞지 않는 것으로 보아 역시 신빙성이 없다고 했다. “어쨌든 그런 일이 있긴 있었다는 거네? 그럼 그때 이불은 무슨 색깔이었는데? 왜 그렇게 들려 나갔는데?” 하고 내가 바투 물었다. 쩐니는 눈을 부라리며 ‘이불은 무슨 개뿔 이불이냐고, 너그 바보 같은 아버지의 코트였었지.’ 하다가 또 이내 ‘아니, 그런 일은 애초에 있지도 않았다.’고 되는 대로 지껄였다.
대여섯 살쯤 되었을 무렵, 나는 쩐니가 아파트 옥상으로 올라가서 뛰어내리겠다고 아버지를 협박하는 장면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았었다. 그제야 나는 나의 기억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비로소 똑똑히 알게 되었다. 아버지는 추잡하고 이기적이고 냉혹한 인간이었으며 쩐니는 멍청하고 탐욕스러운 데다가 성가시고 귀찮은 여자였다. 아버지는 대학생이었던 쩐니에게 분명히 말했었다. 아버지에게는 행복한 가정이 있으며 그의 아내와 자식들에게 어떤 고민거리나 불편을 끼칠 생각은 조금도 없다고. 그에게 필요한 것은 첩이나 소실이나 뭐 그따위 년들이랑 차린 딴살림이 아니라 그저 아들 녀석일 뿐이라고. 고추 달린 애를 배기까지 정기적으로 섹스를 하고 그동안의 비용, 이를테면 밥을 먹고 쇼핑을 하고 혹 여아가 임신되어 유산이 필요할 시 들어갈 금액은 섭섭지 않게 쳐줄 것이며 그렇게 해서 일이 성사만 되면 당장 아파트 두 채를 사주겠다고 약속했다. 물론 원하는 아이를 낳은 다음에는 쩐니가 아버지 인생에서 깨끗이 사라져 주어야 한다는 조건이 덧붙여 있었다.
농촌마을 가난한 집 태생인 쩐니는 과부어미의 장녀였다. 본명은 후얼야(胡二丫)였는데 아버지를 만나 쩐니로 고쳐 불렀다. 쩐니는 죽어라 공부를 해서 현성의 고중(고등학교)에 진학했고 그다음에는 명문대는 아니더라도 그리 녹녹치 않은 사범대에 들어갔다. 머리가 남들보다 월등히 좋은 편도 아니고 남자들을 후릴 만한 빼어난 외모를 가진 것도 아니었다. 아버지의 차가 쩐니의 대학교 캠퍼스 안에서 유유히 달리는 것을 보고 그녀는 가슴이 뛰었다고 했다. 변변한 연애도 해보지 못한 쩐니였지만 물고기처럼 매끄럽게 달리는 차를 보고 순간 그것과, 현실적으로 말해서 그것을 운전하는 사람이랑 자보고 싶다는 충동이 들었다. 아버지의 목표는 더 예쁘고 섹시한 여학생들이었지만 미끼를 문 사람은 처녀라는 것 외에 딱히 내놓을 것이 없는, 아직도 촌티가 꾀죄죄하게 남아 있는 쩐니뿐이었다. 좀 더 공을 들여 다른 여학생들을 사냥해 보았더라면 만족스러운 결과가 있을지도 몰랐지만 그렇게 하기에는 시간이 아까웠다. 어차피 데리고 살 여자도 아니고 건강한 아들만 낳아 준다면 촌스런 외모쯤은 참아 보자, 고 아버지는 생각했다. 유전이 되더라도 아들애니까 외모가 그리 중한 것도 아니고, 오히려 잘 된 일인지도 몰랐다. 매력적이지 않은 여자이기에 정들 일도 없을 테니까.
나를 낳고 산후조리가 끝나자 아버지는 쩐니가 묵고 있던 오피스텔을 그녀의 이름으로 서류를 고친 뒤 약속대로 다른 한 채의 아파트도 사주었다. 나의 호적을 올려야 했으므로 아버지는 부득불 큰어머니한테 나의 존재를 얘기하긴 했지만 차마 키워 달라는 말은 못 하고 할머니한테 나를 맡길 심산이었다. 그 대목에서 쩐니는 젖이 너무 불어 아프다고, 젖 뗄 동안만 나랑 같이 있게 해줄 수 없냐고 제안했다. 그즈음 아버지네 집안에서는 나의 출생 때문에 식구마다 예민해져서 난리도 아니었었다. 큰어머니는 멍청한 쩐니처럼 ‘자살소동’ 따위는 일으키지 않았지만 머리를 싸맨 채 안방에 틀어박혀 무언의 시위 중이었고, 이미 대학생이 된 리이란(李依然)과 고중 2학년생인 리야란(李亚然)은 충격을 금방 사그라뜨릴 수 없어서 아버지와의 ‘관계를 끊겠다’고 선언했다. 워낙 성깔이 더럽고 충동적인 야란은 선언 후 스스로 학교를 중퇴하고 3개월간 가출까지 했다. 그게 다 나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을 이제는 모두가 알고 있다. 야란은 공부라면 질색이었고 핑계거리가 없어 학교를 그만두지 못하는 상황이었는데 마침 어떤 불량배와 위험한 ‘연애놀이’에 빠져서 집을 나간 것이었다.
할머니네 상황도 별로 좋지 않았다. 풍을 살짝 맞은 할아버지의 건강이 옛날 같지 않아서 할머니는 늘 마음 졸이며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니 당장 어느 누구에게 핏덩이 같은 나를 맡길 수 있었을까. 결국 아버지는 쩐니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쩐니의 배가 부르면서부터 오피스텔에 와 있던 쩐니의 엄마는 며칠 걸러 한 번씩 고기를 사오거나 용돈을 던져 주고 가는 아버지를 어려운 사위 모시듯 깍듯이 대접해 주었다. 자신보다 겨우 네 살 아래인 아버지가 애젊은 쩐니랑 몸을 섞을 안방 침대를 그녀는 정성껏 정리해 주었다. 누가 뭐라고 해도 그녀에게 아버지는 그저 쩐니의 남자이자 외손군인 나의 아빠였으니까. 그녀는 늘 아버지더러 들으라는 듯 그의 앞에서 나를 안고 높은 소리로 ‘요놈의 작은 조상아(我的小祖宗啊).’ 하고 불렀다. 그녀의 손에서 자라는 동안 나는 그 호칭을 귀에 못 박히도록 들어서 한때는 내 이름이 ‘작은 조상(小祖宗)’인 줄 알았다. 그녀는 쩐니가 한 번, 또 한 번의 자살소동을 거쳐 아버지와 나의 곁에 계속하여 남아 있도록 조언하고 도와주었다.
여덟 달이 되어서 내가 젖을 떼자 아버지는 다시 쩐니에게 그만 사라져 달라고 부탁했다. 일이 이렇게 된 바 하고 할머니 할아버지가 가장 먼저 아버지를 받아 주었던 것이었다. 며느리 눈치 보기가 좀 그랬을 뿐 그들에게는 사실 나의 존재가 기분 나쁘지 않았다. 건강이 악화되면서 할아버지는 전보다 더 ‘향불 이을 사람’이 필요해졌는데 지병으로 자궁을 들어낸 큰어머니한테 그것을 바랄 수는 없었다. 큰어머니가 머리를 싸매고 앓으면서도 나를 내치지 못한 것 또한 그런 연유에서였다. 오랜 공산당원의 딸이었고 본인 또한 철저한 무신론 교육을 받아 온 공무원이었지만 전날 그렇게 자상했던 시아버지의 소원 앞에서는 그녀 역시 마음을 모질게 먹을 수가 없었다. 곧 목숨이 끊어질 노인네가 붙잡고 싶은 유일한 구원의 동아줄이라는데 그것을 어떻게 막을 수가 있으랴. ‘그랴, 우리 리씨 가문이 너한테 큰 빚을 졌다 셈 치자. 그래도 어떡하겄니? 우리 가문의 향불을 이어 줄 하나뿐인 핏줄인데. 나 저승에 가서도 너 위해 복을 빌련다, 넌 우리 가문의 은인이나 다름없어.’ 드라마 대사 같은 할아버지의 말이 끝나자 큰어머니는 침묵했다. 가문의 생존, 종족의 번식은 아메리카합중국의 독립선언문에서와 같이 그 누구에게도 양도할 수 없는 권리가 아니던가.
큰어머니마저 아버지를 받아 주자 고모와 삼촌과 아버지의 딸들도 더 이상 아버지를 배척하지 않았다. 그들에게는 항상 아버지의 돈이 필요했으니까. 웬만한 친지들도 이제 쩐니와 나에 대해서 모두 알고 있었고 한동안 쉬쉬거리더니 곧 어느 정도 조용해졌다. 그들은 내가 없었던 평온하고 질서 있는 생활보다는 내가 있으므로 ‘토호’ 리만창을 비난하고 씹을 수 있게 된 삶을 더 재미있어 하는 것 같았다.
이제 아버지에게는 더 이상 쩐니를 곁에 둘 이유가 없었다. 겉보기보다 쩐니의 성욕은 대단해서 그 점이 좀 아쉬웠지만 말이다. 애가 젖을 뗐고, 그래서 젖이 붇지 않아 아프지도 않을 것이니 조용히 다른 곳으로 가 직장을 다니든지 젊은 남자를 사귀든지 하라고 아버지는 권했다. 쩐니는 며칠 밤을 침대에 머리를 틀어박고 울어대더니 그날 오후, 아버지가 들르겠다고 말한 시간에 좀 못 미쳐 하얀 비단천을 커튼 고리에 높게 매달았다. 최초의 자살 시도는 그녀의 엄마가 가르쳐준 것이 아니었다. 그녀의 엄마는 장보러 나가서 곁에 없었고 돌아온 다음 딸내미가 벌인 행각을 보고 혼이 나갈 듯 통곡하면서 아버지를 붙잡고 난리쳤기 때문이었다.
어찌 됐든 그 사건을 통해 그녀들은 한 가지 중요한 교훈을 배울 수 있었다. 사람의 마음은 필경 고기 덩어리로 만들어졌다는 것(人心是肉长的), 아무리 냉혹한 인간이라도 죽음을 무릅쓰고 ‘떼’를 부린다면 차마 못 들은 척하지는 못한다는 것을 말이다. 한동안 조용하던 아버지가 다시 떠나라는 말을 꺼내기만 하면 쩐니는 곧 행동에 들어갔다. 약을 먹기도 하고 팔을 긋기도 하고 아파트 옥상 위에 올라가기도 했다. 옥상 위에 올라갔을 때에는 시의 소방차마저 불려 와서 쩐니는 난생처음 ‘도시만보(城市晚报)’에 핫뉴스의 주인공으로 실렸었다. 일이 이쯤 되자 이제는 아버지가 문제가 아니라 쩐니가 모든 가족의 ‘공공의 적’이 되었다. 모든 가족의 미움을 일제히 받음으로써 쩐니는 가족들을 오랜만에 끈끈히 단합시켰다.
그 바보 같은 여자는 리씨 가문에서 자신이 그런 역할을 맡고 있다는 것도 깨닫지 못한 채 계속하여 불쾌한 종양처럼 그 집에 붙어살았다. 유아기의 나는 고모네와 삼촌네와 할머니, 그리고 큰어머니네 집과 고모의 딸네 집까지 전전긍긍 돌아다니며 얼마 동안씩 키워졌는데, 한 집에 머무르는 기간이 수개월을 넘지 못하고 쩐니의 성화에 못 이겨 다시 그녀의 곁으로 돌아오곤 했다. 하지만 쩐니는 자상하거나 친절하거나 가슴 깊이 새끼를 사랑하는 엄마가 돼주지 못했다. 학교에서 돌아와 보면 그녀는 늘 술에 절어 있었고 때로는 혼자 노래방 기계를 켜놓은 채 꽥꽥거리며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내가 돌아오는 시간에 맞춰서 따스한 밥을 지어 놓거나 정성들여 만두 따위를 빚어 주는 일은 아주 드물었다. 우리 집 현관에는 늘 여러 식당의 전단지들이 널려 있었고 배고프면 밥솥을 열어 보는 대신 전화부터 거는 게 상책이었다.
캔 맥주와 음료수와 말라비틀어진 과일 몇 알만 들어 있는 냉장고, 라면 국물이 말라붙은 싱크대, 계절의 구분 없이 쌓이고 걸려진 옷가지들, 며칠에 한 번씩 무져지는 쇼핑백들, 휴지 뭉치와 빈 맥주 캔이 굴러다니는 거실, 이상한 향수 냄새가 진동하는 안방의 거대한 침대. 쩐니의 집은 평소에 대충 이런 모양새였다. 쩐니의 엄마는 이제 농촌 집으로 돌아가서 명절 때나 특별한 일이 있을 때만 올라왔고, 아버지는 일주일에 한두 번, 혹은 두 주일에 한 번 정도로 들러 주었다. 쩐니는 다른 젊은 남자와의 새로운 생활을 꿈꾸지 않았으며 자존감 있는 여자로서의 떳떳한 삶도 동경하지 않았다. 그녀는 아버지에게서 받아 물 쓰듯 하는 용돈이 아까워서 더 이상 아버지를 떠나 살고 싶어 하지 않았다. 큰어머니의 명분을 탐내지도, 사랑타령을 하지도 않았고, 다른 사람이랑 다른 모양의 삶을 시작하는 것이 귀찮으니 그저 아버지와 그 상태만큼의 관계만 줄곧 유지하고 싶어 했다.


나는 그런 분위기 속에서 하루하루 자라 갔다. 나는 가족들이 한편 나를 받아 주려 애쓰면서 한편 경계와 경멸을 멈추지 못하는 태도를 진저리나도록 보아 왔다. 어느 집에 가나 나는 사실상의 ‘잡종’, ‘비정상 인간’, ‘그들과는 다른 위험한 족속’, ‘천덕꾸러기’였다. 그들은 나를 더러운 벌레 취급 하면서도 또 어딘가 나를 두려워하였다. 그들은 내가 동년배의 아이들보다 훨씬 큰 몸집으로 자라는 것과 저들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조숙하는 것을 보고 더욱 나를 싫어했다.
현대 인류사회의 정상 질서를 위반하며 태어나 하늘의 노여움을 샀기 때문이었던지 나는 확실히 가증스러운 데가 있었다. 눈도 깜빡이지 않고 똑바로 어른들을 쳐다보며 거짓말을 주워댔고 나보다 몸집이 작은 또래 애들을 선생님 몰래 괴롭히기를 즐겨 했다. 나는 또 어른들이 넘겨짚지 못할 정도로 머리가 약아서 그들 간의 이해관계를 손금 보듯 빤히 꿰고 있었다. 얽히고설킨 그들의 관계 사이에 자주 끼어들어 참견을 함으로써 나는 모든 사람에게서 미움을 받았다. 거기까지는 그래도 아직 어렸을 적 얘기여서 ‘장난 좀 심한 아이’나 ‘불건강한 가족 분위기의 피해자’ 정도로 봐줄 수 있었다. 하지만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나는 번데기로부터 탈피한 나방마냥 자신의 본색을 걷잡을 수 없이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것은 연 며칠 장맛비가 쏟아진 뒤의 후덥지근한 여름밤이었다. 내가 태어나던 해부터 중풍에 걸려 운신이 자유롭지 못하게 된 할아버지는 8년 가까이 혹 좀 나아진 듯 보이기도 하고 혹 많이 못해진 듯 보이기도 하면서 가까스로 버텨 오다가 드디어 마지막 기력을 모으는 단계에 접어들었다. 대소변을 받아내며 가족들도 알아보지 못한 것이 벌써 1년째, 식구들은 할아버지의 생명에 대해 더 이상 희망을 가지지 않았고 다만 조금이라도 더 평안하고 쉽게 이 승에서의 삶을 마치기를 바랐다.
연 네댓새를 드시지도 못하고 혼미 상태에 빠져 있다는 말을 듣고 가족들이 모두 할머니네 집으로 모였다. 누렇게 뜬 할아버지의 얼굴은 튀어나온 광대뼈 때문에 더욱 음침하고 무섭게 보였다. 도우미 아줌마가 정기적으로 몸을 닦아 주어서 냄새는 그럭저럭 견딜 만했다.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소리를 듣자 예상 밖으로 할아버지는 혼미 상태에서 깨어나 다시 죽을 드시고 대변을 보았다. 이틀이 지나서는 입귀로 침을 질질 흘리면서도 대충 자식들의 얼굴마저 알아보는 것 같았다. 할아버지의 회생에 식구들은 얼마간 실망하며 바쁜 일정을 핑계대고 하나 둘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아버지도 큰어머니도 쩐니도 일상에 복귀하였고 넓은 아파트에는 할머니와 도우미 아줌마와 내가 남아 있었다. 그즈음 쩐니의 술버릇이 장난이 아니어서 나는 쩐니를 따라 돌아가지 않았다. 어차피 여름방학이었고 밤에는 아버지가 돌아와 같이 잘 것이었다. 아래층 북향 방 침대에 누워 계신 할아버지에게 죽을 드시게 한 뒤 다들 각자 방으로 돌아가 누운 자정이었다. 나는 갑자기 잠에서 깨어 복도로 걸어 나왔다. 아버지는 아직 돌아온 기척이 없었고 나는 목이 말라 주방 쪽을 향해 걸어갔다. 할아버지의 방문은 비스듬히 열려 있었는데 그 앞으로 지나치려니 끄응, 끙, 신음소리가 약하게 들렸다.
나는 문을 밀고 그의 방 안으로 들어가서 조도가 낮은 벽걸이 등을 켰다. 이불을 가슴 위까지 젖힌 할아버지는 마른 갈고리 같은 손을 들어 앞으로 뻗은 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혹시 나처럼 목이 마른 게 아닐까 싶어서 침대머리 작은 탁자 위에 놓아 둔 잔에 물을 따라 주었지만 그것이 아니었던지 반응이 없었다. 그는 마치 자신의 유일한 손자를 알아본 것처럼 입귀를 푸들푸들 끌어올리며 우, 우, 짧은 소리를 냈다. 그의 눈빛이 전에 없이 반짝이고 있어서 나는 잔을 놓고 그의 손을 잡아 주었다. 그다음, 내 아물아물한 기억 속에서 오랫동안 말을 할 수 없었던 할아버지가 그랬다. “얘야, 나 지금 곧 죽을려나 보구나. 너 무섭지 않니?” 어두운 불빛 아래에서 나는 할아버지의 얼굴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이렇게 분명하게 말씀하시다니, 꼭 꿈을 꾸고 있는 것만 같았다.
나는 머리를 저었다. 무서워하고 있는 사람은 내가 아니라 할아버지라는 것을 나는 느낄 수 있었다. 나를 애절하게 바라보는 그의 눈은 꺼져 가는 그 속의 빛을 살려 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그다음에는 어떻게 되는지 모르겠어. 내가 정말 사라지는 건 아니겠지?” 나는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어서 묵묵히 그를 내려다보았다. 할아버지는 그나마 나의 버팀목이었고 나라는 존재를 받아 주기로 한 첫 번째 인간이었다.
이윽고 마지막 숨을 톺는 건지 할아버지의 숨이 가팔라지기 시작했다. 내 손을 잡은 그의 손에도 어느새 불쾌한 느낌의 힘이 들어가 있었다. 나는 그만 내 손을 빼내고 싶었다. 그대로 있다가는 그가 가는 저승길에 나도 함께 딸려 들어갈 것 같았다. 당황하는 나를 보고 할아버지는 고통스레 일그러진 얼굴로 큭큭 웃었다. “그래, 니가 살아 있는 한 나는 사라지지 않아. 너의 몸 속에 내 피도 흐르고 있을 테니까.” 여덟 살짜리 손자의 눈앞에서 턱을 뚝 떨구어 버린 할아버지의 얼굴은 더없이 추했다. 자신의 삶과는 물론 죽음조차와도 싸워 이겨서 어떤 형식으로든 살아남으려는 인간의 비장함을 나는 그때 보았다.
나는 아버지가 돌아와서 할아버지의 방에 들를 때까지 그 침대에 잠자코 앉아 있었다. 위대한 인간의 후손으로서 나는 더 이상 자신의 출생이 지저분하지 않았다. 아버지와 쩐니와 큰어머니 및 모든 가족과 세상 사람들, 무릇 인간의 본능을 위한 그들의 우스꽝스럽고도 추접스런 행위를 전부 용서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빠끔히 열려진 창문 너머 까만 쇠창살 사이로 습하고 더운 밤바람이 불어 들어왔다. 할아버지의 혼을 데리러 온 저승의 포졸들이 그 밤바람 속에 숨어 있었는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것들이 내 얼굴을 가벼이 스치자 나는 어쩔 수 없이 한 모금 들이마셨다. 그제야 뭔가 갑자기 머릿속이 정리되면서 인간의 삶이라는 것을 확실하게 깨달아 버린 느낌이 들었다. 새벽이 가까워 돌아온 아버지가 할아버지의 죽음을 온 집안에 알리며 법석을 떨 때, 나는 위층에 있는 창고에 들어가서 보따리들 속에 웅크리고 누운 채 혼자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그 뒤로부터 나는 아버지가 보내는 대로 다른 가족들의 집에서 수개월씩 머무는 대신 스스로 가고 싶은 집을 선택하여 며칠 혹은 몇 주일을 머물렀다. 나는 그들의 집에서 더는 눈치를 보지 않았으며 팬티 바람으로 거실과 다른 방을 돌아다니는가 하면 밤중이라도 허전하면 스스럼없이 냉장고를 열어 요거트와 과일 따위를 꺼내 먹었다. 나는 허우대뿐인 삼촌과 천성적으로 약골인 고모부의 ‘개인금고’ 위치를 추적하여 때때로 그들의 비상금을 꺼내 용돈으로 썼고 가끔 노처녀가 다 된 리야란이 자신의 방에서 남자 친구와 즐기고 있는 줄 알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불쑥 쳐들어갔다. 남은 식구들 중 나를 가장 안쓰럽게 여기는 할머니네 집에는 들르는 횟수를 줄였고, 하루하루 늙어 가는 주제에 아직도 아버지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늘어진 쩐니의 집과 여전히 품위 있고 우아한 큰어머니네 집을 번갈아 들락거렸다. 쩐니의 집에는 내가 가지고 싶은 것이 별로 없었지만 큰어머니네 집에는 탐나는 것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아버지의 명품 가방, 지갑과 벨트에서부터 야란의 최신형 핸드폰, 백과 구두, 그리고 여러 가지 공예품들과 서화, 심지어 큰어머니의 속옷까지 내게 필요하든 그렇지 않든, 내가 쓸 수 있든 그렇지 못하든 상관하지 않고 챙길 수 있는 만큼 챙겨 넣었다.
아무도 그런 나의 행각을 반가워할 리 없었다. ‘저놈이 햇빛을 보지 못하고 태어나더니 과연 음험하게 사는구나.’ 하고 그들은 나에게 손가락질했다. 소학교 5학년에 벌써 나이보다 훨씬 빨리 자라 앳된 청년의 모습이 된 나에게 그들은 예전처럼 함부로 하지는 못했다. 내가 들렀다 하면 그 집에서는 귀중품들과 챙겨가기 쉬운 물건들을 단단히 감춰 두느라 많은 신경을 썼다. 한번은 삼촌네 집에서 모태주(아버지한테 뇌물로 들어왔던 것)를 포장박스째로 챙겨 넣다가 숙모에게 딱 걸린 적이 있었다. ‘너 지금 뭐 하는 거야? 술이 먹고 싶은 거니? 아니면 팔아서 돈 쓰려고 그러는 거니?” 하고 숙모가 물어서, ‘그냥 가지고 싶어서요.’라고 대답했다. 숙모는 어이가 없다는 듯 코웃음을 치며 눈을 둥그렇게 홉떴다. ‘얘, 그건 네 것이 아니잖아. 아무리 친척지간이라 해도 우리 집 물건이 어떻게 몽땅 네 물건이 될 수 있겠니? 이건 상식 아니야? 인간이라면 누구나 자기가 갖고 싶다고 해서 그것들을 모두 가져서는 안 된다는 상식.’ 그래서 내가 말했다. ‘왜요? 왜 가지고 싶은 걸 가지면 안 되는데요?’ 숙모는 얼굴이 빨개지며 나한테 삿대질을 했다. ‘이놈의 자식, 말하는 거 좀 봐라. 너 일부러 그러는 거지? 어렸을 때 너한테 좀 듣기 싫은 말 했다고 지금 나 엿 먹이려는 거지?’ 숙모는 삼촌한테 나를 가리켜 보이며 ‘리씨 집안의 끔찍한 망종’이라고 욕했다. 삼촌이 내 눈치를 보며 끙끙 갑자르고 있는 틈을 타서 나는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자기가 가지고 싶은 것을 모두 가져서는 안 된다’는 게 상식이었던가? 내 경험으로 미루어 보면 ‘가져서는 안 되’는 게 아니라 ‘가질 수 없는 것’이 아니었던가? 쩐니나 아버지, 고모와 삼촌, 할머니와 할아버지, 그리고 큰어머니까지, 모두들 득과 실의 총량에 견주어 보아 본인의 능력 한계 내에서 가질 수 있는 것을 차지하며 살아가고 있지 않는가. 물질이나 명예가 아니라면 하다못해 양심의 평안이라도 얻고 싶어 하니까. 어쩌면 우리는 정말 리처드(리처드 도킨스)의 말처럼 태생적으로 ‘이기적인 유전자’의 조종을 받아 살아가는 생체기계였을지도 모른다. 도덕이란 군체와 개인의 공생을 위한 더 영리한 전술일지도 모르고. 그러니 모든 사람들의 본능에 따른 목적은 그저 살아남는 것과 더 잘 더 오래 살고자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더 잘, 더 오래 살고자 하는 게임에서 쩐니는 세상이 돌아가는 룰을 제대로 읽어내지도 못하고 불쑥 끼어든 서투른 피에로였다. 그녀는 다른 승자들의 흉내를 내보았지만 내공이 부족한 탓에 의도했던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오히려 사람들의 웃음거리로 전락해 버렸다. 고모와 숙모는 물론 이제는 어엿한 성인이 된 리이란과 야란까지 쩐니를 무시하고 경멸했다. 십 수 년을 같이 부대끼며 살아왔으면 고운 정이 없더라도 미운 정은 들었을 법한데도 쩐니는 아버지를 제외한 가족 중 어느 누구도 자기편으로 만들지 못했다. 춘절이나 중추절, 또는 집안에 큰 일이 있을 때면 어쩌다 가족들 모임에 얼굴을 드러내기도 했지만 아무도 반가워하거나 체면상으로라도 수다를 떨어 주지 않았다. 쩐니의 비천하면서도 초라한 처지를 지켜보면서 나는 좀 더 능숙해져야겠다는 필요를 느꼈다.
그 점에 있어서 가장 좋은 모델은 큰어머니였다. 하는 짓마다 못남뿐이라고 나를 악평하는 쩐니나, 대놓고 나를 비난하며 내 버릇을 아버지한테 고자질하는 다른 가족들과 달리 큰어머니는 대개 비교적 중립의 발언으로 아버지의 노를 눅잦혔다. ‘여보, 화내지 마. 그 애 입장에서는 충분히 그럴 수 있어. 아직 애가 작잖아. 좀 더 크면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그 애도 알 날이 있을 거요. 누구보다 영리한 애라는 걸 당신도 알잖소.’ 아버지는 그렇게 말해 주는 큰어머니에게 항상 고마워했다. 아버지는 내가 큰어머니의 염색체를 물려받지 못한 것을 진심으로 애석해했다. 큰어머니는 리씨 가문의 명실공한 맏며느리이자 실세였고 고모와 삼촌은 물론 할머니의 존경마저 차지하고 있었다. 속생각이야 어떻든지 그녀는 내게도 쩐니보다 훨씬 친절해서 그녀가 몸소 빚어 준 따끈한 물만두를 먹고 있을 때면 나도 몰래 자신이 정말로 그녀의 아이가 된 것 같은 착각에 빠지곤 했다. 아버지와 그녀가 안방이나 거실에서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는 모습을 보는 순간이면 슬그머니 그들 사이에 비집고 들어가 앉아 여느 집 애들처럼 응석 부려 보고 싶은 충동을 느낀 적도 있었다. 이제는 그렇게 하더라도 예전처럼 야란의 유치한 질투를 받지 않겠지만 이란의 9살배기 딸아이가 오는 날이면 온전히 그 아이의 것이 되어버리는 큰어머니를 보면서 나는 그 소망 역시 스스로의 환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많은 변화와 고민을 거친 끝에 중학생이 된 나는 식구들과의 직접적인 충돌을 가급적 피하는 삶의 방식을 택했다. 눈에 띄는 대로, 특히 아버지나 큰어머니의 물건에 손을 대는 짓을 삼갔으며 학교에서도 되도록이면 말썽을 일으키지 않았다. 가족들은 전보다 조용해진 내 겉모습에 ‘어렸을 때 그리 말썽을 부리더니 이제 철이 드나 봐?’라고 미심쩍게 바라보았다. 이런저런 쓸데없는 생각과 감정에 빠지지 않으려고 나는 마음과 머리를 비웠다. 별반 힘들이지 않고도 성적은 중등권에 들 수 있었지만 늘 불량스러운 친구들 속에서 하루하루를 무뇌의 인간처럼 되는 대로 보냈다. 그 애들 중에는 부모 몰래 오토바이를 사서 밤거리를 달리는 아이, 친구들이나 선생님 지갑까지 슬쩍 하길 잘하는 아이, 걸핏하면 무리를 지어 싸움을 하는 아이, 그리고 벌써 여러 명의 여학생들을 건드려 놓아 임신시킨 아이들도 있었다. 나 역시 그 애들의 친구로서 그 모든 짓거리들에 함께 참여했다.
주로 휴일을 이용하여 나는 그들과 어울려 도시의 유흥가를 굶주린 늑대 무리처럼 누비고 다녔다. 호프집에서 폭탄주를 마시고 Ktv에서 노래를 부르고 나이트에서 미친 듯이 춤을 추거나 볼살이 얼얼하도록 찬바람 맞으며 오토바이를 달려 보았다. 친구들이 하는 대로 상대를 바꿔 가며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섹스를 해보기도 했다. 그 시절, 나는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수많은 종류의 쾌락에 도전해 보았다. 어차피 인간이란 본능을 위한 더 영리한 생물이라면 젊고 건강하고 돈이 있을 때에 누릴 수 있는 것들을 모두 누려야 수지가 맞지 않는가.


예년보다 기온이 훨씬 낮아진 늦가을의 어느 토요일, 아침부터 하늘이 찌뿌둥해서 점심시간이 가까워오기까지 늦잠을 자고 있는데 친구 녀석들이 전화를 걸어왔다. ‘니가 언제 휴일날 집에서 복습을 했다고 그래? 시험을 잘 보지 못하면 네 아버지 돈 내고 고중 가면 되잖아.’ 몸살 기운이 좀 남아 있어서 요란하게 놀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았지만 내가 없으면 안 된다고 녀석들이 하도 졸라대는 통에 그날도 응낙하고 말았다. 주섬주섬 옷을 입고 거실을 질러 현관으로 향하는 나를 큰어머니가 만류했다. 날도 춥고 오후에 아버지가 일찍 들어온다고 했으니까 간만에 저녁을 같이했으면 좋겠다고 그녀는 말했다. 나는 알겠다고, 저녁을 먹기 전까지는 들어오겠노라고 그녀와 약속을 했다.
종전처럼 녀석들과 술집으로 몰려가서 술을 퍼먹고 흥청거렸지만 몸살기 때문인지 술맛도 없었고 흥도 나지 않았다. Ktv에서는 녀석들이 소개시켜 준 다른 학교의 여자애랑 붙안고 노래를 부르다가 별 생각 없이 지하방에 들어갔고, 일이 끝나자 시간을 확인하며 방을 나섰다. 온종일 흐렸던 하늘에서 그해의 첫눈 격으로 가는 눈발이 점점이 흩날렸고 까만 아스팔트 길바닥은 눈석임물로 젖어 미끄러웠다. 큰어머니네 집 부근에 사는 친구 녀석이 오토바이에 나를 태워 달렸다. 느닷없이 내린 눈 때문에 차가 막히자 친구 놈은 길가 가게 앞의 주차장들을 요리조리 비집고 들어가 골목길에 접어들었다.
우리 도시에서 건설된 지 가장 오래된 입체교까지 와서 어둡고 한산한 다리 밑을 지나는데 예상치 못한 피로감이 갑자기 온몸을 엄습했다. 내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지, 왜 이렇게 사는지 모든 게 귀찮다는 생각이 갈마들었다. 열이 오르면서 고막이 얼얼해서인지 귀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눈에 들어오는 모든 장면은 음소거 버튼을 누른 침묵의 티브이 화면 같았고, 낡고 네모난 돌기둥 사이로 언뜻언뜻 보이는 무표정의 행인들은 마치 영혼을 빼앗긴 허깨비 같았다. 여태껏 살면서 사람들이 그렇게 보이기는 처음이었다. 그다음 순간, 다리를 거의 지나쳐 한창 대로의 일차선에 합류하고 있는 우리의 오토바이를, 왼쪽으로부터 무리하게 끼어든 중형 화물차가 그대로 박아버렸다. 눈 깜짝할 새에 친구 녀석은 화물차 바퀴 아래에 깔렸고 나는 길가 가로수와 돌덩이가 있는 비탈길로 내동댕이쳐졌다. 나는 얇은 종이 인형처럼 붕 떠서 날아갔다. 생각해 보면 그동안 그렇게 많은 위험한 짓을 벌였음에도 그런 사고쯤 당하지 않고 살아온 것이 오히려 신기했다.
병원 침대에서 정신을 차려 눈을 뜬 나는 의사를 붙잡고 다급히 상황을 묻는 아버지의 뒤 잔등을 보았다. ‘……네? 의사 선생님, 얘가 사내구실을 못 할 수도 있다고요?…….’ 내 얼굴에는 겹겹이 붕대가 싸였고 눈꺼풀 외의 다른 곳은 아직 움직일 수 없어서 마치 다른 사람의 육체 안에서 세상을 내다보는 것 같았다. 초록색 수술 가운을 입은 의사와 그 곁의 간호사와 그들을 둘러싼 여러 사람들 속에 아버지가 서 있었다. 구부정한 뒤 잔등에 희슥한 머리카락의 아버지는 17년 전 낡은 학교의 벽돌담 벽 아래에서 기운차게 오줌을 지르던 그 사내가 아니었다. ‘그럴 수는 없습니다, 이 아이가 어떤 아이라구요, 내가 어떻게 만든 아이인데……. 선생님, 그게 아니라, 이 아이는 우리 집 대를 이을 유일한 아이랍니다…….’ 아버지는 ‘토호’ 리만창답지 않게 덜덜 떨면서 횡설수설했다.
쩐니는 사람들한테 가려져 울음소리만 들렸다. ‘아이고오, 이게 무슨 일이란가요? 수술 잘 끝났다면서요? 돈은 얼마든지 드릴 테니까 선생님, 다시 한 번 잘 좀 봐주세요…….’ 쩐니는 거기까지 말하고 나서 또다시 어이어이 흐느꼈다. 그녀의 울음소리를 좇아 시선을 움직이다가 나는 큰어머니의 얼굴을 찾아내었다.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평소의 침착한 모습 그대로였다. ‘사내구실’이라는 말에 그녀의 얼굴 위로 드디어 참평안의 빛이 한줄기 스쳐 지났다. 버겁고도 오래된 짐, 어느 곳에도 부려 놓을 수가 없어서 마냥 지고만 있던 짐을 끝내 처치할 수 있게 된 듯한 얼굴이었다. 나는 본능적으로 그날 오후, 벌써 얼굴조차 아리송하니 잊어버린 여자애의 몸 속에 뿌려 넣은 나의 분신, 나의 정자들을 떠올렸다. 긴 꼬리를 꼼지락거리면서 그것들은 아직 잘 헤엄치고 있을까. 나는 곧 다시 정신을 잃었다.
파열된 장기들과 신경회로들이 치열하게 복구 작업을 하는 동안 나는 환영 속에서 오줌을 지르고 있는 거대한 아버지를 만났다. 그는 천지를 나눈 반고(盘古)라도 된 것처럼 거인이었는데 혼돈의 우주 속에 외롭게 서서 벌써 수억 년 동안 오줌을 지르고 있었다. ‘뭐 하고 있는 거예요, 아버지?’ 하고 내가 물었다. 아버지는 그 자세 그대로 서서 내게 대답했다. ‘내가 살아 있는지 확인하는 중이야. 나는 이렇게 쌀 때만이 내가 살아 있다는 걸 느낄 수 있거든.’ 아버지는 자신이 언제부터 거기에 서 있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이미 그렇게 된 이상 계속 살아가고 싶다고 말했다. 아버지가 싸지른 오줌 줄기를 마시고 땅에서는 수많은 도시의 건물들과 고가도로와 차들과 공장과 기계…… 그리고 예술품들이 생겨나고 있었다. 그것들은 자꾸자꾸 쌓이더니 아버지보다도 더 높게 우주의 경계 끝을 향해 위태로이 올라갔다. 드디어 우주가 찢어지며 강렬한 빛이 쏟아져 들어오자 아버지와 아버지가 만든 모든 것이 무너지고 흩어지고 산산이 조각나고 있었다…….


하마터면 ‘사내구실’을 못 할 뻔했던 사람은 내가 아니라 한쪽 소퇴를 절단당한 친구 녀석이었다. 머리 가죽이 한 손가락 남짓 터지고 목뼈와 늑골이 부러진 나는 다행히 위험한 부위를 다치지 않아서 끈질긴 잡초처럼 푸릇하게 되살아났다. 그러나 내가 퇴원한 뒤로 아버지가 심장질환으로 다시 입원하는 통에 우리 집안은 더 큰 비상에 걸렸다. 아버지가 중환자실에서 나오기 바쁘게 쩐니는 영감탱이를 붙들고 유언장 얘기를 꺼냄으로써 온 가족의 질타를 받았으며, 유난히 성깔 센 리야란의 귀싸대기도 된통 얻어맞았다. ‘지금이 어느 때라고 아픈 사람 앞에서 그런 얘기가 나오냐? 망할년, 겨우 쇼싼 주제에 어디 감히 유산까지 넘봐? 십 수 년 동안 너 먹여 주고 내치지 않은 것만 해도 감지덕지해야 할 판에……. 분수도 모르는 얼떨한 년!’ 쩐니는 자기보다 다섯 살 아래인 야란한테 볼따구가 벌겋게 부어나도록 얻어맞고는 분해서 나한테 달려와 엉엉 울었다. ‘아들, 나한텐 너밖에 없다. 너그 아버지 돌아가고 나면 저년들이 나를 어떻게 할지 뻔하지 않냐? 그니까 넌 나를 위해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
아버지는 퇴원했지만 원기가 크게 상했다. 여태 아버지의 뒤를 봐주고 큰 힘이 되어 준 정부의 어느 어른이 비리사건에 말려들어 심사를 받게 되자 그의 부동산개발 사업체도 위태롭게 되었다. 자칫하다간 벌금은 물론 여생을 감옥에서 지낼 수도 있다고 누군가 귀띔해 주어서 아버지는 그 나이에 국외로 도피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다. 가세는 완전히 기울어진 셈이었다. 복은 쌍으로 들어오고 화는 혼자 다니지 않는다는 말이 이 시점의 우리 집안에 적격이었다. 큰어머니는 단위에 병가서를 내고 집에 들어앉았다. 그녀 역시 여러 가지 걱정거리 때문에 수개월 사이에 폭삭 늙어버렸다. 하얀 머리가 많이 생겼는데도 좀처럼 염색할 기분이 없어 했다. 그해 봄이 오기 전 리야란이 큰어머니의 성화에 못 이겨 평범한 직장인과 조촐한 결혼식을 올렸고 오월에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할머니의 장례식에서 큰어머니는 아버지보다 더 슬퍼하는 것 같았다. ‘어머이, 어머이 이제 아버님 만나셨는가요? 우리 애 아빠, 일 좀 잘 풀리게 해달라고 힘 좀 써보시지요……. 아버님, 저승에서도 저를 위해 복을 빌겠다고 하셨잖아요, 제 노년을 평안하게만 보낼 수 있게 지켜주세요…….’ 큰어머니는 할머니를 위해 종이 소*를 태우셨고 또 많은 종이돈을 더 태우셨으며 그 후에도 신기 있는 여자를 찾아 아버지를 위해 치성을 드렸다. 큰어머니는 생전에 그런 일이 처음이라고 했다.
그해의 중원절, 인적이 드문 교외의 어느 사거리에서 원을 그려 놓고 종이돈을 태우며 큰어머니는 내게 그랬다. ‘이젠 정말 너밖에 없구나, 이 가문이 살아남을지, 우리 늙은이들이 편히 눈감을 수 있을지는 너 하기에 달린 거다…….’ 누런 종이돈은 활활 잘도 타올랐다. 뜨거운 불길 위로 연기를 따라 까만 재가 날아올랐다. 고요한 어둠을 등진 채 앉아 있는 큰어머니의 얼굴은 어른거리는 불빛에 비춰져 처음 보는 사람의 것마냥 낯설었다. 모든 것이 그토록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수가 없었다. 나는 저주받은 시지프도 아니고 바벨탑의 니므롯도 아니었다. 나는 심지어 자신이 어떤 욕망의 환영이 아니라 실체로 살아 있는지조차 의심스러웠다. 모든 것은 그저 한 편의 길고 긴 피영극(皮影戏)일 뿐이었다.



* 중국의 장례 풍속으로 여자가 죽으면 종이 소, 남자가 죽으면 종이 말을 태운다. 남자는 말을 타고 빨리 달려 더 좋은 곳으로 임명받아 갈 수가 있고, 여자는 이승에서 많은 물을 썼기에 소가 그 죄를 대신해 물을 마셔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금희
작가소개 / 금희

- 1979년 중국 길림성 출생. 2007년 단편소설 「개불」로 윤동주신인문학상 수상. 두만강문학대상·연변문학 소설대상·김학철문학상·백신애문학상·신동엽문학상 수상. 중단편소설집 『슈뢰딩거의 상자』(중국)와 『세상에 없는 나의 집』(한국) 출간.


《문장웹진 2017년 0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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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집에 사는 소녀1) 김숨 1 내 방엔 거울이 있어. 빛— 빨간색. 세상의 모든 빛— “지금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 2 지금, 지금, 그리고 지금, “난 다른 곳에 있고 싶어.” 3 딱딱하게, 딱딱하게, “내 사랑을 받아 주세요.” 다른 곳에선 똑같은 노래가 다르게 흘러, 다르게 슬프게, 다르게 쓸쓸하게, 다르게 외롭게. 다른 곳의 다른 나. 난 나를, 난 나를, 딱딱하게, 딱딱하게, 빨갛게, “난 설레고 싶어.” 4 다섯 살 때 처음 빛을 봤어. 네 곁에, 내 곁에, 빛은 환한 어떤 것. 아, 난 날······. 다섯 살 때 처음 빨간색을 봤어. 엄마가 빨간색을 가져다 내 얼굴에서 45도 사선 밑에 놓았어. 빨간색을 나는 외우고 외웠어. 내가 빨간색을 외우자 엄마가 빨간색을 치우고 노란색을 놓았어. 나는 노란색을 외우고 외웠어. 그리고 파란색, 흰색, 검은색. 세상은 다섯 가지 색깔로 만들어졌어. 세상은 다섯 가지 색깔로 만족해. 다섯 색깔 무지개, 다섯 색깔 도마뱀. 분홍색은 꽃에게. 초록색은 달에게. 내 얼굴에서 45도 사선 밑에 놓여 있는 빨간색만 나는 볼 수 있어. 내 방 거울은 흐르지 않아······. 5 딱딱한 벽에 딱딱하게 거울이 걸려 있어. 거울이 날 봐. 거울은 날 봐. 거울은 엄마 몰래 울고 있는 날 봐. 난 날 안 봐. 음, 흐른다는 건······. 생각하고 싶지 않아. 내가 생각하고 싶은 건 오직 하나. 6 빨간색 크레파스를 선물 받고 난 흥분해 소리 질렀어. “엄마, 난 화가가 될 거야!” 빨간색 크레파스가 흰 도화지 위를 신나게 날아다녔어. (그녀의 엄마) 뭘 그리는 거야? (그녀) 집! 빨갛게, 빨갛게, (그녀의 엄마) 뭘 그린 거야? (그녀) 집! 엄마, 난 집을 그렸어! (그녀의 엄마) 네가 그린 집을 만져 보렴. 엄마가 내 손을 내가 그린 집으로 데려갔어. (그녀의 엄마) 집에 창문이 없네. (그녀의 엄마) 집에 문이 없네. (그녀의 엄마) 집에 지붕이 없네. 난 창문을 본 적 없어, 난 문을 본 적 없어, 난 지붕을 본 적 없어. (그녀의 엄마) 집에 나무도 없네. 7 집에 나무가 있어야 해? 세상에 나무가 있어야

  • 관리자
  • 2024-05-01
원경

원경 성혜령 건강검진을 12월 마지막 주까지 미루는 사람이 자기 말고도 이렇게 많으리라고 신오는 생각하지 못했다. 대기실의 긴 좌석 중간중간 빈자리가 있긴 했지만, 신오는 한구석에 서 있기로 했다. 초음파 검사실 앞 복도는 자기 이름이 불리기를 기다리며 서성이고 있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헐렁한 가운에 느슨한 고무줄 바지를 입고 핸드폰을 보며 기다림을 견디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서 신오는 이들 중 내년에는 따뜻한 휴양지에서 연말을 보낼 사람들이 얼마나 있을지 궁금했다. 혹은, 오늘 치명적인 암이나 뇌동맥류 같은 것들을 발견하고 전혀 예상치 못한 인생을 살게 될 사람들은? 그런 일들은 언제나 일어나고 있었다. 직장 생활을 10년 정도 하니 주위에 아픈 사람들이 많아졌다. 이전 직장 동료는 출근길에 쓰러진 뒤 안면마비를 얻었다. 한쪽 입꼬리가 위로 당겨 올라갔는데 그는 멀쩡한 다른 쪽 입꼬리도 끌어올려 웃는 얼굴을 만들곤 했다. 병가에서 돌아온 뒤 매일 웃는 얼굴로 제일 먼저 출근하는 동료를 보면서 신오는 이직을 결심했다. 신오는 모든 일이 가능하지만 대개 나쁜 일들이 더 자주 일어난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되도록 좋은 음식을 먹고 운동을 꾸준히 하려고 했다. 불행은 대비하고 기다리고 있는 사람에게 오히려 쉽게 다가오지 않을 것이라는 근거 없는 믿음도 있었다. 복부 초음파를 보던 의사가 “어랏?” 하고 실없는 소리를 내며 배꼽 부근을 세게 눌렀을 때도 신오는 방귀가 나올 것 같다는 생각뿐이었다. 의사가 차가운 젤을 다시 묻히고 초음파 단말기를 문지르다가 복막에 종양이 보인다는 말을 했을 때는, 그래서 요새 변비가 심했나, 라는 생각이 먼저 났다. 대형 병원에 가서 생검과 CT, MRI 검사를 마치고 소화기내과 교수의 진료실 앞에서 대기하고 있을 때도 신오는 회사 메신저를 보고 있었다. 몇십 억 단위 공공사업의 수주가 걸린 입찰 제안서의 마무리를 앞둔 시점이었다. 병원 검사로 연차를 낸다고 했을 때 팀원들은 모두 별일 없을 거라고, 하루 푹 쉬고 오라고 말했지만 메시지를 보내면서 신오를 계속 태그했다. 신오는 그날 마지막으로 진료실에 들어갔다. 의사는 젊고 피곤해 보였다. 예약을 가장 빨리할 수 있었던 의사였으니 어쩔 수 없지, 신오는 생각했다. 의사는 신오가 자리에 앉자 간단한 인사도 없이 모니터 화면을 돌려주었다. 그리고 마우스 커서로 신오는 잘 알아볼 수 없는 흐릿한 음영을 짚었다. 여기예요, 여기. 의사는 약간의 승리감마저 느껴지는 말투로 말했다. 복막의 종양은 전이 암이고, 여기가 원발 암이라고. “이게 숨어 있어서 찾기 어려웠거든요.” 의사는 다시 한번 마우스 커서를 움직였다. 췌장하고 담도 사이인데 위치나 크기가 좋지 않다고. 오늘이 금요일이니 당장 다음 주부터 항암치료로 크기를 줄여 보고 수술을 잡아 보자고. 신오의 핸드폰이 또 진동했다. 신오는 치료를 이주만 미뤄도 되냐고 물었다. 프로젝트가 있어서요. 이주 후에 마감이라. 의사는 처음으로 웃어 보

  • 관리자
  • 2024-05-01
야생 식물원

야생 식물원 하가람 식물원으로 가는 길이었다. 다이아몬드 모양의 철골로 둘러싸인 거대한 유리 온실에는 열대와 지중해 지역에서 볼 수 있는 이국적인 식물이 자란다고 했다. 한 달 전 나는 식물원 근처에 있는 여러 호텔을 찾아 은규에게 링크를 보냈다. 보통 때의 그라면 어디든 좋다고 했을 것이다. 레스토랑도, 카페도, 동네의 작은 아이스크림 가게조차도 모조리 내 선택에 맡기곤 했으니까. 하지만 그날 은규는 이미 예약한 곳이 있다고 하여 나를 놀라게 했다. 은규가 보내 준 링크를 열어 보았다. 넓은 통유리 창 너머로 식물원과 공원이 내다보이는 스위트룸이었다. 나는 조금 들뜬 채 답장했다. — 우리가 만난 지 곧 1년이래. 믿어져? 1년이라는 시간은 내게 유별났고 은규에게는 별다른 감흥이 없는 것이었다. 그가 전에 사귄 여자친구는 단 두 명인데 각각 4년, 5년을 만났다고 했다. 매번 석 달도 채 넘기지 못하는 나와는 달랐다. 이따금 은규에게 이전 연인들에 대해 물었다. 그들이 어떤 성향의 사람이었고 어떤 외양을 가졌는지 궁금했다. 처음에는 응응, 하며 대꾸해 주던 은규는 내가 그녀들의 음악 취향이나 살던 동네처럼 구체적인 정보까지 캐묻자 태도를 바꾸었다. 기억 안 나. 그는 말했다. 다 옛날이야기라고. 그 후로는 이전에 나눈 대화를 떠올리며 그녀들을 생각했다. 눈, 손톱, 말투, 그리고 신발. 나와 닮았을지, 닮았다면 얼마나 닮았고 다르다면 무엇이 다를지도. 상상을 이어 가다 보면 늘 한 가지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은규는 한 번도 애인과 잠자리를 가진 적이 없다고 했다. 그러니까 여자와 밤을 보내는 일이 오늘 그에게는 처음이었다. 서른을 넘긴 남성에게서 보기 드문 경우였지만 그가 처음인 게 좋았다. 그 점이 무엇보다도 나와 그녀들을 구분 지어 주는 것만 같았다. 차창에 머리를 기대었다. 햇볕에 데워진 창문에서 온기가 느껴졌다. 인터넷으로 보았던 화려한 꽃과 기다란 나무들을 떠올렸다. 노랗고 푸르고 분홍빛이 맴도는 공간을. 여름 휴가철이었고 도로는 차들로 빽빽했다. 졸음 껌을 씹는 은규를 보며 말했다. “오늘은 내가 운전하고 싶었는데.” “다음에. 너 힘들어.” 은규가 말했지만 나는 안다. 다음에도 그다음에도 그는 내게 차를 맡기지 않을 것이다. “보면 놀랄걸? 너무 잘해서?” 나는 허리를 세운 채 한 손으로 반원을 그려 보았다. 휙휙. 입으로 소리 내며 운전대를 쥔 그를 따라 했다. 그가 웃었다. 머릿속으로 주행하기. 그것은 나만의 놀이였다. 캠퍼스 변두리에 있는 H관 1층, 5평 남짓한 주차관리실에서 상상력을 충족시켜 줄 만한 것은 많지 않았다. 먼지 쌓인 커피믹스와 낡은 소파, 책상 위에 시간별로 놓여 있는 분홍색, 파란색, 노란색 주차권들. 지겨운 서류, 서류, 서류. 드물게 실장이 자리를 지키는 날이 아니면 대체로 혼자 그곳에서 일했다. 사람들이 찾아와 주차권을 사거나 정기 등록을 마친 후 돌아가면 나는 모니터에

  • 관리자
  • 2024-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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