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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주의

  • 작성일 2022-11-01
  • 조회수 1,538

[단편소설]



최소주의



김개영





뱀이었다.
9월이 시작되었는데도 장마는 그치지 않았다. 태풍까지 서너 차례 연달아 올라온 탓에 8월 내내 푸른 하늘을 볼 수 없었다. 석은 불을 때야겠다고 생각했다. 온 집 안이 습기를 머금고 있었다. 창고에서 장작을 가져와 벽난로의 문을 열었을 때, 뭔가 꿈틀거리는 것이 보였다. 순간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듯했다. 119를 불러 볼까 하다가 말았다. 마침 옆집에 사는 김 교수가 들르기로 했던 터라 기다려 보는 것이 나을 듯싶었다. 집 안에 들어온 뱀은 함부로 대하는 것이 아니라고 들은 적이 있었다. 어떤 알 수 없는 존재가 덧씌워 있기 때문이라고 여겼을 것이다. 석은 속신을 믿는 편이 아니었지만 집주인이 사경을 헤매고 있는 터라 예사롭지는 않았다. 문을 닫아버리자, 뱀은 똬리를 풀며 더 깊은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석은 리클라이너 소파에 몸을 파묻었다. 손잡이를 당겨 거의 180도로 기울기를 조정했다. 편안함이 몰려들었다. 토마스가 인근 대학의 교수로 임용되면서 독일에서 가져온 가구였다. 부모님의 유품이라고 들었다. 30년도 더 된 물건이지만 기능에는 문제가 없었다. 소파는 삶의 긴장을 놓은 은퇴자처럼 넉넉함과 기품을 갖추고 있었다.
토마스의 의식은 지금 어디쯤에 가 닿아 있을까, 석은 눈을 감은 채 생각했다. 뒷산 부근에서 소쩍새가 울었다. 산으로 둘러싸인 집은 토마스가 적을 두고 있는 대학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비포장도로로 연결되어 있기는 했지만 20분이면 닿을 만큼 가까웠다. 석은 아침 식사를 마치면 그 길로 산책을 했다. 길을 따라 계곡이 이어져 있었다. 한적하면서도 풍광이 볼 만했다. 사나흘 머문다는 것이 벌써 2주를 넘겼다.
토마스는 석과 동향(同鄕)이었다. 적어도 토마스는 그렇게 생각했다. 석의 고향은 남서해안 끝머리에 위치한 이곳과 대각선 거리로 가장 멀리 있는 도시였다. 그런데 금발의 이 덩치 큰 백인 남성이 그곳을 자신의 고향이라고 우기는 거였다. 그는 독일 뮌헨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대학까지 나왔다. 재독 간호사였던 어머니가 같은 병원의 의사였던 아버지와 결혼해 낳은 아들이 토마스였다. 본인이 말하지 않으면 누구도 눈치 채지 못할 만큼 토마스는 전형적인 백인의 모습이었다. 눈동자가 옅은 갈색이라는 것이 그가 혼혈이라는 유일한 증거였다. 토마스는 외가에 대한 추억을 비교적 많이 가지고 있었다. 드높은 산과 그윽한 호수, 푸른 바다를 기억했다. 그곳에서 한 달간 머물렀는데, 자신의 인생에서 몇 안 되는 ‘시간의 점’으로 남아 있다고 했다. 그러니까 그가 고향이라고 말하는 곳은 어머니가 태어난 곳이었다.
토마스는 지금 서울의 한 병원에 누워 있다. 8개월째였다. 토마스가 의식불명 상태라는 소식은 미라를 통해 알았다. 미라는 토마스의 전 연인이었다. 연락이 닿자마자 석은 토마스가 있는 병원으로 향했다. 토마스를 문병하려는 것이 주목적이 아니었다. 무엇보다도 미라를 만나야 했다. 그녀는 석에게서 돈을 빌려 갔지만 4년째 돌려주지 않았다. 석은 그 돈이 간절히 필요했다. 6년 넘게 운영해 오던 학원이 문을 닫았다. 본원은 정규직 강사만 열 명이 넘는 대형 학원이었다. 초기 투자금의 반도 회수하지 않은 상태에서 전염병의 직격탄을 맞은 것이다. 근 2년을 버텼지만 전염병의 기세는 수그러들지 않았다. 비대면과 일대일 수업을 늘렸어도 상황은 더 심각해졌다. 대출마저 감당할 수 없을 즈음, 아파트를 처분했고 얼마 안 되어 이혼을 했다. 석은 오피스텔을 얻어 홀로 지내고 있었다. 하지만 빚을 완전히 청산하지는 못했다. 파산 신청을 고민하다가 미라가 생각난 것이다. 그때만 해도 석은 미라가 독일에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녀의 전화번호는 해지되었고 SNS 계정도 닫혀 있었다. 남은 것은 12년 전 주고받은 메일이었다. 다행히 메일 계정은 살아 있었고 보낸 지 하루도 안 되어 답장이 왔다. 새 연락처와 함께 자신이 서울에 있게 된 경위가 쓰여 있었다. 토마스가 재직하던 대학으로부터 연락이 왔다는 것이다. 토마스의 부모는 모두 사망했고 형제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었다. 연고자는 ‘파트너’로 기재된 미라가 유일했다. 미라는 지체하지 않고 서울로 왔다.
토마스에게 진 빚이 있잖아.
한국에 온 지 넉 달쯤 되었다고 했다. 병원 앞 벤치였다. 그녀는 담배를 붙이려다가 관두었다. 흡연 부스 아니면 담배를 피울 수 없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은 듯했다. 4년 만에 만났지만 예전처럼 서로 부둥켜안거나 하는 호들갑스러운 인사는 없었다. 가벼운 악수가 전부였다.
토마스를 보러 온 게 아니야, 사실.
석은 어렵게 말을 꺼냈다. 모든 관계의 끝에는 빚 청산이 중요하다는 미라의 말이 끝나고 나서였다. 미라가 독일로 돌아간 뒤로는 토마스와 거의 만나지 못했다. 석의 학원 사업이 궤도에 오르면서 시간 여유가 없었던 것이 큰 이유였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석이 두 사람을 한 묶음으로 여긴 탓도 컸다. 토마스와 미라는 늘 붙어 다녔으며 같은 취향과 가치관을 가졌다. 미라의 의견이 토마스의 의견이었으며 토마스의 행동이 미라의 행동으로 이어졌다. 토마스와 미라의 관계는 연인이라기엔 더 끈끈했고 부부라기엔 느슨한 감이 없지 않아 있었다. 둘은 서로 ‘파트너’라고 불렀다. 그 파트너 관계가 깨진 뒤로 석은 미라가 더 이상 미라처럼 여겨지지 않았다. 토마스도 마찬가지였다.
토마스와 미라는 함부르크에 있는 한국인 입양아 모임에서 만났다고 했다. 토마스는 입양아 출신은 아니지만, 한인계 연구자 자격을 가지고 옵서버로 참석했다. 당시 미라는 양부모 상대로 소송을 진행하고 있었다. 그것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얼마간 화제가 되었다. 양부가 미라에게 지속적으로 성범죄를 저질렀고, 양모는 이를 방관했다. 대학에 입학한 후에야 미라는 소송을 시작했다. 양부는 미라 남매를 키워 주는 것에 대한 유일한 보답이 ‘그짓’뿐임을 늘 주지시켰다고 했다. 미라는 성장기 내내 가스라이팅 상황에 놓여 있었던 것이다. 당시 토마스는 미라의 소송을 후원하는 사람 중의 하나였다.
설마, 나를? 오 그러지 마, 석…… 난 이제 늙은 여자야.
토마스가 아니면 자신을 보러 온 것이냐는 뜻이었다. 농담조의 말이었지만 석은 짜증이 났다. 미라는 자신에게서 돈을 꿔갔다는 사실을 잊은 듯했다. 방금까지도 모든 관계의 끝에는 빚 청산이 먼저라는 말을 하지 않았던가. 혹 그 돈을 순수한 호의라고 여겼던 것일까. 아마 당시에는 석도 그렇게 생각했는지 몰랐다. 석에게는 그 이상이라도 흔쾌히 빌려줄 수 있을 만큼 여유가 있었다. 이자도 필요 없었고 기한도 따로 정하지 않았다. 미라가 차용증을 내밀었지만 석은 손사래를 쳤다. 받지 못해도 상관없었다. 무엇보다도 돈을 빌리는 사정이 딱했다. 친모를 찾았는데 그 친모가 당장에 돈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친모를 찾는 과정에서 석의 역할이 없었다는 것이 섭섭하기는 했지만 어쨌든 잘 된 일이라고 생각했다. 양부모에게서 받은 상처를 친부모에게서 위로받기를 원했다. 해외 입양아들이 겪는 고통을 생각하면 석도 한국인으로서 책임이 있다고 여긴 터였다.
글은 쓰니?
석이 적당한 말을 찾고 있을 때, 미라가 물었다. 결혼을 하고, 학원을 개업하면서도 틈틈이 소설을 쓰던 석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는 듯했다. 등단은 점차 불가능의 영역임을 깨닫고 있었지만, 토마스와 미라 두 사람과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석은 글을 놓을 수 없었다. 자신이 일개 사업가에 불과하다는 엄연한 사실을 석은 받아들이고 싶지는 않았다. 글을 쓰고 있다는 모습을 보여서라도 작가라는 포즈를 취해야 했다.
석이 두 사람을 만난 곳은 경기도에 있는 한 창작 레지던스였다. 그곳에서는 작가 지망생들을 위한 창작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었다. 자기소개서가 입주를 결정하는 기준이었다. 문학을 닿을 수 없는 ‘성’에 비유하고, 그곳으로 가는 과정 - 어쩌면 영원할 - 을 즐길 준비가 되어 있다고 썼다. 합격이었다. 욕실과 옷장이 딸린 안락한 방 하나가 주어졌다. 끼니때마다 식사가 제공됐다. 주 2회 전문 강사의 강의를 들었고 최신 문학 관련 출판물을 맘껏 읽을 수 있었다. 글을 쓰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낙원과도 같은 곳이었다. 토마스가 대학에 자리를 잡기까지 1년여, 두 사람도 그곳에 머물렀다. 해외 연구자 자격이었다. 토마스는 문화학을 전공한 학자였고, 미라도 한국 문학을 주제로 박사 논문을 준비하고 있던 터였다.
석은 주말에는 서울로 나와 입시 학원에서 강의를 했다. 토마스와 미라도 서울에서 주말을 보냈기에 동선이 같을 수밖에 없었다. 그들과 자동차를 타고 오가면서 자연스럽게 가까워질 수 있었다. 토마스의 첫인상은 전형적인 학자의 모습이었다. 머리가 벗겨졌지만 수염이 풍성했고 말간 피부에 동그란 금테 안경을 쓰고 있었다. 그 옆에 서 있던 미라는 뭐랄까 독일 감독 스벤 타딕겐의 영화에 나오는 야생녀 엠마와 같은 이미지였다. 거침없는 말투와 검고 깊은 눈망울을 가졌다. 토마스의 체격에 비하면 반도 안 되는 몸이었지만 건강함이 넘쳤다. 연인 관계라기엔 나이 차가 많이 났다. 그 때문에 두 사람은 종종 오해를 사기도 했다. 아마 입주 작가들과의 술자리였을 것이다. 두 사람을 두고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색한 분위기가 흐르자 미라가 일어나 외쳤다.
내가 먼저 토마스를 덮쳤어요.
일순 적막이 흘렀다. 너무 섹시했거든요, 하고 미라가 덧붙였다. 그러고는 토마스의 민머리를 끌어안았다. 토마스는 미라의 품에서 활짝 웃었다. 좌중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혐오를 유머로 대응하는 모습이 석에게는 품위 있게 느껴졌다. 석은 그 커플과 끝까지 남아 맥주를 들이켰다.
당신은 내 동생을 닮았어.
취한 목소리였다. 미라가 동의를 구하자 토마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공교롭게도 석은 미라의 남동생과 같은 나이였다. 미라는 휴대폰에서 자신의 남동생 사진을 보여주었다. 넓은 이마와 큰 눈, 호리호리한 몸이 닮기는 닮았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미라의 말은 이해되지 않는 면이 있었다. 자기를 외면한 남동생이 질릴 만도 했기 때문이다. 3년 넘게 진행된 양부와의 소송은 미라의 패소로 끝났다. 함께 입양된 미라 남동생의 증언이 결정적이었다. 자신의 누나는 중학 시절부터 많은 남자를 만나 낙태를 일삼았으며 종종 마약에도 손을 댔다는 것이다. 심지어 자신의 누나가 먼저 양부를 유혹했을 거라고도 말했다.
뭐 그 자식은 늘 그랬어. 언젠가 미라는 남동생을 두고 그렇게 말했다. 양부에게 끌려가는 누나를 애써 모른 척하며 딴 짓을 하기 일쑤였다고 했다. 미라는 남동생을 이해한다고 했다. 남동생은 자신을 버린 한국이라는 나라만큼, 자신과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누나를 증오했다. 누나가 소송을 치르는 동안, 그는 베를린 시청의 공무원이 되었고, 독일 여자와 결혼했으며 얼마 안 가 두 아이의 아버지가 되었다. 양부모는 며느리와 손자들을 더할 나위 없이 대했다. 남동생은 유일한 혈육인 누나와의 관계를 폐기하는 쪽으로 자신의 평화를 지켰다. 어느덧 미라에게는 토마스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토마스가 먼저 한국행을 권했고 두 사람은 독일 생활을 정리했다.
그럼, 제 누나 하세요.
취기를 누르고 있었지만 어딘가 어리광이 흘러나왔다. 유사가족의 탄생이라 해도 좋을 순간이었다. 어쩌면 석에게는 그 순간이 시간의 점과 같은 것이었는지도 몰랐다. 세 사람은 주말을 거의 함께 보냈다. 석이 독문학을 전공한 것도 이들과 어울리는 데 한몫했다. 학과보다는 대학 이름을 보고 들어간 곳이고, 대학 생활 내내 학업보다는 아르바이트로 시간을 보낸 것이 걸리기는 했다. 하지만 석이 두 사람의 이야기를 주로 듣는 입장이라서 그럭저럭 장단은 맞출 수 있었다. 대화를 하는 데도 별다른 지장이 없었다. 두 사람 모두 한국어를 할 줄 알았다. 토마스는 간단한 회화가 가능한 정도였지만, 미라의 한국어 실력은 수준급이었다. 초등학교 때 입양되었을 뿐만 아니라 대학에서는 한국학을 전공했다. 독일어와 영어가 가끔 끼어들기는 했지만, 되도록 한국어로 말하려고 노력했다. 특히 토마스가 적극적이었다.
외국어를 모르는 사람은 모국어도 모른다.
토마스는 괴테가 했다는 말을 한국어로 읊조리곤 했다. 유머의 맥락에서 아포리즘식의 짧은 문장으로 말하는 것이 토마스만의 독특한 화법이었다. 그들과 함께 있으면 남들과 다른 삶을 살고 있다고 느꼈다. 석에게는 미라의 불행마저 후광처럼 여겨졌다. 토마스가 미라를 사랑하는 것은 어떤 숭고함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토마스와 미라가 결별하고 그들을 더 이상 만나지 않게 되자, 글에 대한 욕망은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돈을 버는 것만으로도 삶은 이렇게 재미가 있구나, 석은 원생들이 늘어 갈 때마다 그런 생각에 젖었다.


그럼 돈 좀 받아줘.
석이 자신에게도 청산할 빚이 있지 않느냐고 말한 터였다. 미라는 돈을 모으는 대로 갚을 생각이었다고 했다. 하지만 서울로 오게 되면서 직장을 그만둬야 했단다. 자신의 새 연인도 함께 와 있다고 했다. 그는 병원 인근 대학의 한국어학당에 다녔다. 자신이 그의 학비와 생활비를 책임지고 있다고 했다.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구구절절, 석도 자신의 사정을 얘기했다. 그 돈이 없으면 곧 파산 신청에 들어가고 그렇게 되면 ‘사회적 죽음’을 맞이할 거라고 말했다. 미라는 얼굴을 찡그리기는 했지만 석의 말을 잠자코 들었다. 얘기하는 내내 석은 자신이 비참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사회적 죽음, 석이 생각해도 오글거리는 말이었다. 젊은 한때, 정치적 올바름을 공유하고 문학과 예술, 창작을 논하던 사이가 아니었던가. 돈을 빌리는 것도 그렇지만 돈을 받는 과정에서도 얼마간의 영혼을 지불해야 한다는 사실을 석은 깨달았다. 미라가 내놓은 해결책은 미라의 친모를 찾아가 돈을 받아내는 것이었다. 대신 함께 가달라는 단서를 단 것이다.
석은 즉답을 피했다. 채무 관계가 확장되는 것도 싫었지만 더 이상 미라의 삶과 얽히고 싶지 않았다. 대신 토마스의 상태를 물었다. 뇌염으로 의식을 잃은 상태라고 했다. 의사는 더 이상 손쓸 방법이 없다며 전문 요양원으로 옮길 것을 권하고 있다고 했다. 석은 미라의 손에서 담배를 뺏어서 불을 붙였다. 미라도 담배를 물었다. 두 사람은 동시에 담배 연기를 뿜었다. 사람들이 눈살을 찌푸리며 지나갔다. 마침 중환자실 문병 시간이 다가왔다. 벤치에서 일어날 즈음, 저쪽 편에서 누군가가 손을 흔들었다. 적어도 190센티미터가 넘는, 마른 체격의 백인 청년이었다.
내 파트너.
미라가 손을 흔들며 말했다. 함부르크에 와 있던 벨기에 사람이라고 했다. 미라보다 적어도 스무 살은 어려 보였다. 창백한 얼굴에 흐리멍덩한 눈. 석은 욕지기가 일었다. 아담한 사이즈의 동양 여자만 보면 수캐처럼 달려든다는 그런 류가 분명했다. 혹 토마스도 그런 사람이었을까, 이전에는 한 번도 떠올려 보지 않은 생각이었다. 미라가 독일어로 뭐라뭐라 석을 소개했다. 마지못해 악수를 했지만 시선은 다른 곳에 두었다.


석은 어머니의 빚보증을 서기 위해 누군가를 찾아갔던 기억이 떠올랐다. 병원에서 미라와 토마스를 보고 오는 길이었다. 석이 학군단 소위로 임관하고 나서 처음 맞는 휴가였을 것이다. 어머니는 임관식 때 입었던 제복을 꼭 가져오라고 했다. 아침부터 정성스럽게 다리더니 그 옷을 입고 어디 좀 가자는 것이다. 제복을 입은 아들의 늠름한 모습을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싶은가 보다 했다. 자신을 박대했던 시댁 식구일 가능성이 컸다. 기껏해야 소위 계급이 무슨 큰 위세가 될까 싶었지만, 홀로 어렵게 아들을 키워 왔기에 그럴 만도 하다고 생각했다. 어머니 손에 이끌려 간 곳은 20층 건물 꼭대기에 자리한 한 건설업자의 사무실이었다. 사장인 듯한 남자에게 석을 인사시켰다.
잘 컸구나.
남자의 말투는 건조했다. 돌아가신 아버지와 고종사촌 간이고 생전에는 동업자였다고 했다. 남자는 서류 몇 장을 인쇄해서 내밀었다. 채무 관련 서류였다. 의외였다. 어머니는 늘 돈을 빌려주는 사람이었지 빌리는 쪽이 아니었다. 최근 들어 생활이 어려워지고는 있었다. 석이 학군단에 지원한 것도 등록금 면제가 이유였다. 서류에 찍힌 액수는 석이 평생 일해도 갚을 수 없는 돈이었다. 각서에는 어머니가 갚지 못할 경우, 석이 책임진다는 조건이 있었다. 앞으로 석이 받는 월급의 반을 이자로 지급한다는 조항도 들어가 있었다. 당시도 월급의 반을 어머니에게 부쳤으니 그 돈이 그 돈이었다. 그러나 석은 자신의 몸뚱어리가 사물로 거래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것도 유일한 혈육인 어머니에게서.
어쩌면 어머니는 석에게 ‘보상’을 요구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그녀는 평생을 석으로 인해 억울해하던 사람이었다. 석만 들어서지 않았다면 자신의 인생은 달라졌을 거라고, 결혼한 지 1년 만에 죽은 남편까지 싸잡아서 원망했다. 석은 아버지 몫까지 떠안은 채 늘 부채의식을 안고 살았다. 지금 이렇게 돈으로 현현되는 방식으로 석은 그 부채를 갚아야 하는 처지가 된 것이다. 석은 그때 카프카의 『성』이 떠올랐다. 학부 시절 과제 때문에 겨우 완독한 소설이었지만, 그 미완성의 결말 위에 세워진, 다가갈수록 멀어지는 성(城)의 이미지만은 선명했다. 어머니는 몇 년 후 돌아가셨다. 평생 돈을 좇았지만 결국 남긴 것은 빚뿐이었다. 법원 판결로 채무각서는 휴지 조각이 되었다. 온전한 월급이 통장에 찍혔다. 어머니의 죽음이 석의 몸뚱이를 사람의 것으로 되돌려 놓은 셈이었다.
열차 안으로 빛이 쏟아졌다. 지하를 벗어나 한강 다리로 접어드는 모양이었다. 잡상인이 틀어놨는지, 저편 어딘가에서 익숙한 클래식 음악이 들려왔다. 라흐마니코프의 피아노곡이었다. 토마스의 방에서 곧잘 듣던 음악이었다. 창 너머 마천루를 뒤로 하고 한강 공원이 펼쳐졌다. 음악과 어우러진 풍경은 평화로웠지만 석의 마음은 그렇지 못했다. 토마스의 파리한 얼굴과 미라의 피로한 표정이 잔상처럼 남아 있었다. 석은 자기 삶의 한 부분이 뭉텅이째 뽑혀 나간 기분이었다. 다시 사물로 돌아가는 듯 온몸이 굳어 오는 것만 같았다.


아, 그 토마스 친구요?
김 교수가 미소를 띤 채 말했다. 벽난로에서 뱀을 봤다고 하자 대수롭지 않은 표정을 지었다. 구렁이의 일종으로 사람 사는 집에 종종 출몰한다고 했다. 토마스도 애써 좇지 않았으니 그냥 둬도 괜찮을 거란다. 오전에 식료품을 사러 인근의 마트에 갔다가 김 교수를 만났다. 그가 할 얘기가 있다고 해서 약속을 잡은 터였다. 김 교수는 약속 시간인 8시에 정확히 맞춰서 방문했다. 그는 이 마을 촌장을 맡고 있었다. 흙집을 콘셉트로 마을을 기획하고 집짓기는 물론 입주민을 선정하는 모든 과정에 김 교수의 수고가 들어갔다. 그는 인근 대학 건축학과에 적을 두고 있었다. 토마스 커플이 첫 입주자였다. 석도 일 년에 서너 번은 이곳을 다녀갔다. 예닐곱 채의 주택이 모여 있었다. 소유자의 대부분은 인근 대학 교수였다. 세컨드 하우스로 사용되는 경우도 있었지만, 마을은 일종의 주거공동체로서 활기를 잃지 않았다. 몇 번 식사 자리에 초대되면서 석도 그들과 안면을 텄다. 토마스 커플은 석을 작가로 소개했다. 등단을 하지 못했지만 굳이 부인하고 싶지는 않았다. 모두 유쾌하고 여유로운 사람들이었다. 무엇보다 서로에 대한 선의와 배려가 넘쳤다. 이런 사람들 속에서 살 수 있다면 석의 삶은 더할 나위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김 교수는 집을 사겠다는 사람이 나타났다고 말했다. 제시한 돈이 미라가 꿔간 것보다 두 배는 많은 액수였다. 비포장도로로 간신히 연결된 숲속에 위치한, 20평도 채 안 되는 집의 가격이라 하기에는 꽤 높았다.
자재가 좋아요. 곧 도로가 뚫릴 예정이기도 해요.
김 교수의 눈매가 서글서글했다. 쓰러져 있던 토마스를 가장 먼저 발견하고 병원에 옮긴 사람이기도 했다. 미라가 오기까지 서울을 오가며 토마스를 보살폈다. 석이 가끔 방문하면 토마스와 미라 못지않게 반겼다. 그가 직접 만든 와인을 석은 좋아했다. 연로한 어머니를 모시면서 아내와 함께 남매를 키웠다. 취미 삼아 어머니는 텃밭을 가꿨고 아내는 이웃 주부들과 조각보를 만들었다. 남매는 학교에서 돌아오면 공부보다는 노는 데 열중했다. 부부는 그런 아이들을 특별히 타박하지 않았다. 오히려 함께 노는 편이었다. 계곡에서 수박을 깨 먹거나 물놀이를 했고 숲에서는 밤이나 감을 땄으며, 남은 자재를 이용해 한철 오두막을 짓곤 했다. 이상적이었다. 빚질 것도 없고 빚낼 것도 없는 관계, 존재 자체만으로 서로에게 전부인 삶. 석이나 미라는 가져 본 적 없는 삶.
매매는 미라 씨에게 소유권이 넘어가야 가능하겠죠.
집을 팔기 위해서는 복잡한 법적 절차가 필요했다. 토마스와 미라를 법적으로 연결해 주는 가느다란 실이 있었다. 두 사람은 프랑스에서 시민결합(PACS) 관계를 맺었다. 혼인보다는 법적으로 느슨한 관계라서 결혼이 주는 부담을 피하고 싶은 커플이 선호하는 방식이었다. 토마스가 프랑스 국적도 가지고 있었기에 가능했다. 문제는 그 제도의 효력을 한국에서 인정해 주느냐였다. 더구나 토마스는 대학교수가 되면서 한국 국적을 취득했다. 그러고는 그 이전의 국적을 모두 버렸다.
돌아갈 다리를 끊고 배를 부순다.
언젠가 그 이유를 물었을 때 토마스는 그렇게 답했다. 한국의 무협지를 읽다가 찾아낸 보석 같은 문장이라고 했다. 그때 석은 토마스가 미라를 온전히 사랑한다고 느꼈다. 아무리 어머니의 나라라고는 하지만 토마스가 한국에 머물 이유가 없었다. 이국 취향이 있기는 했지만 그것이 굳이 한국만일 이유가 없었고, 타국 생활을 하다 보면 얼마 되지 않아 향수병에 젖기 마련이었다. 약한 자는 고국을 그리워만 하고 강한 자는 그가 어디에 있든 그곳을 고국으로 여긴다고 토마스는 그 이유를 설명했다. 말끝에는 찡긋 윙크를 했다. 오 마인 구트, 석은 독일어로 맙소사, 하고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토마스는 여전한 거죠?
김 교수가 가져온 와인을 따르며 말했다. 토마스는 나아지지도 나빠지지도 않는 상태였다. 이 상태가 지속되면 전문 요양원으로 옮길 예정이라고 말해 주었다. 요양원 비용도 만만치 않으니까 돈이 더 들어갈 거라고 덧붙였다. 그 때문에라도 미라가 토마스의 재산을 처분할 수 있는 권리를 속히 가져와야 했다.
학생 식당에서 밥을 먹는 교수는 아마 토마스가 유일했을 거예요.
김 교수가 잔을 비운 뒤에 말했다. 석이 잔을 채웠다. 미라도 비슷한 말을 했다. 점심은 꼭 학생들과 먹는다는 거였다. 언젠가 식당에서 토마스를 본 적이 있다고 했다. 왁자한 학생들 사이에서 뭐가 그리 유쾌한지 실컷 떠들어 가며 식사를 하고 있었단다. 그때 미라는 조금 쓸쓸했다고 말했다.
한번은 과 학생회가 토마스의 출퇴근길을 막은 적도 있어요.
처음 듣는 소리였다. 토마스가 서울에 있는 대학으로 자리를 옮긴다는 소문을 듣고 학생들이 몰려온 것이다. 가뜩이나 입학 자원의 고갈로 독문과라는 간판을 내릴 판이었다. 원어민인 토마스가 떠난다면 과의 존립은 더욱 어두워질 터였다. 결국 토마스는 학교에 남았다. 그때 서울로 자리를 옮겼다면 미라와의 관계는 어떻게 됐을까, 서울이 주는 활기가 두 사람을 여전히 묶어 두었을까.
서울로 갔다면 토마스가 저렇게 되지도 않았겠죠.
석은 말하고 나서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뇌염의 원인은 모기로 추정되었다. 산으로 둘러싸여 있기 때문에 이 마을 사람들은 늘 더 많고 더 독한 모기에 노출되어 있었다. 한국인들이야 뇌염 예방주사를 맞았기에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토마스는 항체를 보유하지 못했다. 더구나 처음 인근 도시의 병원에 입원했을 때는 토마스의 증상이 무엇 때문인지 원인을 찾아내지 못했다. 의식을 완전히 잃은 후에야 서울로 옮겨졌고 그곳에서 정밀검사를 받았다. 이미 바이러스가 뇌까지 침투해서 손 쓸 방법이 없었다.
토마스가 건강한 상태였다면 이겨냈을 거예요.
김 교수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언제부턴가 토마스는 거의 저녁을 먹지 않았다고 했다. 학교 식당에도 가끔 보일 뿐이었다. 이웃에서 식사를 청하면 흔쾌히 와서 어울렸지만 혼자 있을 때는 식사를 거르는 눈치였다. 토마스가 서울 병원으로 실려 간 후, 김 교수는 마을 사람들과 함께 토마스의 집을 청소했다. 냉장고에는 음식 재료 대신에 맥주만 가득했다. 설거지를 한 흔적도 없었다.
저녁을 맥주로 때운 거군요.
김 교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중환자실에 누워 있던 토마스가 떠올랐다. 원래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바짝 마른 모습이었다. 식사만 거른 것이 아니었다. 난방도 하지 않았고 샤워는 학교에서 했으며 밤에는 양초만 켜놓았다. 혹 토마스는 죽음을 준비하고 있었던 것일까? 그렇게 삶을 최소화해서 마침내 점 하나로 남고자 했을까? 얼추 미라가 떠났을 무렵부터였다고 김 교수는 말했다. 하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았다. 이전부터 토마스는 되도록 고기를 먹지 않았고 플라스틱 포장을 질색했다. 이 집으로 이사하고 나서는 휴대폰과 자동차를 없앴다. 지구에 최소한의 폐를 끼치고 싶다고 농담인 듯 말한 기억이 났다.
이거 미라 씨 만나면 전해 주세요.
김 교수는 쇼핑백 하나를 건넸다. 아내가 만든 조각보라고 했다. 언젠가 토마스 커플은 김 교수 집에 걸려 있는 조각보를 보고 연신 감탄한 적이 있었다. 소비과잉의 시대, 영감을 부여하는 작품이라고 토마스는 말했다. 어떻게 누더기가 예술이 될 수 있지? 미라는 조각보를 만져보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 누더기처럼 느껴졌던 자신의 삶에 위로를 준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그러나 조각보가 여전히 미라에게 위안이 될 수 있을까 싶었다. 얼마 전 석은 미라와 함께 친모를 만났다. 돈을 받으러 가기 위해서였다. 시위 참가차 친모가 서울에 온다는 말을 듣고 광화문으로 간 터였다. 친모의 양손에는 태극기가 들려 있었다. 오랜만에 딸을 만났지만 그녀의 눈에는 경계하는 빛이 역력했다. 그녀는 석을 의미심장하게 쳐다보았다. 벗은 몸을 보이는 것처럼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녀는 석의 직업과 학력, 고향 등을 물었다. 석이 답하려는 것을 미라가 제지했다. 돈을 갚아 달라고 했다. 석을 가리키며 그 돈은 이 사람에게서 빌린 것이라고 말했다. 미라 친모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당신이 나를 팔아버린 거잖아!
미라가 외쳤다. 돈은 한 푼도 없으며 정 원하면 자신의 몸뚱이라도 팔라는 소리를 들은 터였다. 친모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러곤 마스크를 벗어 던지며 말했다.
너 누구 덕에 외국물을 먹었니? 누구 덕에 대학 나왔어?
석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양부가 미라를 범하면서 했다는 말과 다르지 않았다. 가해를 수혜로 둔갑시키는 기이한 논리였다. 그녀는 이번에는 석을 향해 말했다. 입양을 보내지 않았으면 미라는 창녀가 되고 미라의 동생은 조폭이나 되었을 것이란다. 양손에 쥔 태극기로 허공에 삿대질을 했다. 미라가 악을 썼다. 주위 사람들이 걸음을 멈추고 쳐다봤다. 친모는 비웃음을 머금은 채로 사람들 사이로 사라졌다.
토마스의 집을 가져.
미라가 말했다. 가까스로 마음을 진정시킨 후였다. 미리 생각해 두었다는 듯한 말투였다. 석은 즉각 거부감이 들었다. 친모에 이어 토마스까지……, 영혼이 너덜너덜해질 것만 같았다. 그만두겠다는 말을 간신히 붙들었다.
다시 누더기가 된 것 같아.
석이 말이 없자 미라가 말했다. 시위대는 어느덧 거대하게 몸집을 불렸다. 서울 시내를 온통 흰색으로 뒤덮을 기세였다. 두 사람은 그 가운데 갇혀 한동안 움직일 수 없었다. 웬일인지 몰라도 석은 공중에서 자신을 내려다보는 상상을 했다. 까만 점 하나가 보일 뿐이었다.


석은 김 교수를 배웅하고 나서 식탁에 앉았다. 매수자가 나타났으니 더 이상 이곳에 있을 이유가 없었다. 날이 밝는 대로 서울로 올라가야 했다. 거실을 한번 훑어보았다. 소파와 오디오 시스템, 어른 크기의 괘종시계가 전부였다. TV는 물론 인터넷도 없었다. 주방은 기본적인 조리기구들과 냉장고가 있을 뿐이었다. 한때 그림과 사진으로 가득했던 벽은 비어 있었다. 그 많던 책들도 사라졌다. 벽면의 허리 높이까지 차곡차곡 쌓여 있던 터였다. 김 교수 말에 의하면 책은 모두 대학에 기부했다고 했다, 토마스는 더 이상 책을 읽지 않는다고 했다. 어느 순간부터 책으로부터 얻는 것들이 시시해졌단다. 대단한 독서가였던 토마스가 책을 놓았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어느덧 그는 불립문자의 심원한 세계를 노니는 선승 같은 존재가 되어버렸는지도.
나는 중 팔자 운명이야.
토마스의 말이었다. 4년 전, 미라가 공항 출국장 너머로 사라졌을 때였다. 언젠가 거리의 점쟁이에게서 들은 말이라고 했다. ‘팔자’와 ‘운명’이라는 단어는 비슷한 뜻이라고 지적해 주고 싶었으나 그만두었다.
미라는 다가갈수록 멀어지는 성(城)이잖아요.
카프카를 들먹이며 석이 말했다. 장난기를 머금은 말이었다.
완성된 사람은 모든 곳에 대한 사랑의 불을 끈다.
토마스가 석을 바라보며 윙크를 했다. 토마스식 농담이었지만, 왠지 석에 대한 불도 조만간 꺼지고 말 것이라는 암시처럼 느껴졌다.
오디오를 켰다. LP 음반이 돌아갔다. 라흐마니코프의 곡이었다. 평생 망명자로 지내면서 한정된 친구들과만 교유하다 쓸쓸히 숨을 거둔 그의 삶이 토마스의 것과 닮아 있었다. 생각났다는 듯이, 석은 자리에서 일어나 벽난로 쪽으로 향했다. 방화 유리문을 열고 손으로 위쪽을 더듬거렸다. 역시 있었다. 토마스와 미라는 집 뒤편에 대마를 키웠다. 언젠가 한번 그들과 나눠 피운 적이 있었다. 대마에 불을 붙이려고 캔들 라이터를 켰다. 사라졌던 뱀이 그 자리에 있었다. 웅크린 채 미동도 없었다. 원래의 주인인 듯 완강함마저 느껴졌다. 토마스가 일부러 좇지 않은 이유를 알 것만 같았다. 그것은 단순한 생명체가 아니라 이 집의 영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 토마스는 집과 관련해서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신화의 공통점을 이야기해 준 적이 있었다. 집은 우주의 축소판이며 그 자체가 존재로 인식된다는 내용이었다. 어쩌면 토마스의 의식은 이 집 어딘가에 닿아 있을지도 몰랐다.
석은 천천히 문을 닫고 걸쇠를 내렸다. 마침 괘종시계가 자정을 알렸다. 소파에 누워 대마를 한 모금 들이마셨다. 한없이 무력한 편안함이 몰려왔다. 마약을 통한 쾌락은 한평생 수행 끝에 얻은 열락과 본질적으로 차이가 없다고 토마스는 말했던가.
세상에 점 하나로 남은 기분이야.
기분이 어떠냐고 미라가 묻자 석이 대답했다.
환(幻)이 멸(滅)하는 자리라네.
토마스가 예의 잠언을 읊듯 말했다.
자본주의가 질색할 일이네.
미라가 말하자 세 사람은 크게 웃었다. 어딘가에서 그 웃음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눈을 감았다. 음악은 절정을 향하고 있었다. 종이 한 번 울릴 때마다 환이 하나씩 멸하기로 했다. 토마스가 멸하고 미라가 멸하고 카프카가 멸하고…… 석의 결여와 균열과 틈 위에서 몸집을 키우던 것들이 하나둘 멸했다. 열두 겹 시간이 지나가자, 석은 둥실 떠올랐다. 소파 위에 누워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한없이 작아지고 있는 중이었다.











김개영
작가소개 / 김개영 

강원도 고성 출생. 2013년 문예중앙 신인상 수상. 소설집 『거울사원』(민음사). 2014년 서울문화재단 창작기금·2021년 대산문화재단 창작기금 수혜. 현재 목포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문장웹진 2022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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