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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릴라성 폭우

  • 작성일 2022-12-01
  • 조회수 1,261

[단편소설]



게릴라성 폭우



김선영





여행이 끝나 갈 무렵부터 몸이 좋지 않았다. 목이 칼칼하고 뒷목이 무거우며 머리가 띵했다. 미열도 있는 것 같았다. 재채기가 나올 것 같아 입을 틀어막으며 일행들로부터 빠져나온 적도 있다. 영락없는 코로나 증상이다.
오늘의 마지막 프로그램인 조지아의 지방 학교에서 음식 만들기 체험 뒤 민속공연을 보려고 자리에 앉을 때, 눈앞이 까맣게 아웃되는 느낌이 들었다. 황급히 의자 바닥을 손으로 짚으며 중심을 잡으려고 애썼다. 여행 오기 전에 이석증으로 입원한 적이 있는데 재발한 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눈앞이 뱅글뱅글 돌았다. 머리 밑과 목덜미에서 진땀이 났다. 배도 살살 아팠다. 제발 코로나가 아니길. 긴 야외식탁에 둘러앉아 공연을 관람하는 일행들을 바라보며 빌었다.
어디선가 한줄기 바람이 불어왔다. 포플러나무 이파리가 일시에 나부꼈다. 그나마 식탁이 나무 그늘에 있어서 8월의 한낮 더위는 피할 수 있었다.
안정을 취하자 어지럼증이 가라앉는가 싶더니 속이 메슥거렸다. 조지아의 음식에 빠지지 않고 들어가는 고수 냄새 때문이다. 마을 사람들은 이국에서 온 손님을 대접하기 위해 즉석에서 빵을 굽고 고기 요리를 하고 고수를 넣어 수프를 끓이고 샐러드를 만들었다. 야외 테이블에는 음식이 산처럼 쌓이기 시작했다. 음식을 보자 구토가 일었다. 일행들은 갓 구운 게 뭐든 맛있다며 빵과 닭고기와 양갈비를 제각각 손에 들고 먹었다. 일행들의 왁자한 소음도, 낮게 깔리는 조지아의 민속음악도 견디기 힘들었다.
테이블에서 빠져나와 학교 밖으로 나섰다. 땀으로 목덜미가 진득거려서 여간 불쾌한 게 아니었다. 씻은 뒤 눕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만약 코로나라면 어쩌지? 사고다. 그것도 대형사고. 이 나라에서 출국할 수 없는 건 당연한 거고 함께했던 일행도 나로 인해 안전하지 않을 터다. 격리하는 동안 호텔 체류비도 만만치 않을 것이며 돌아갈 항공권도 새로 끊어야 한다. 이역만리에 혼자 남아 견뎌야 하고 응급 상황이 벌어진다면 손쓸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 제때 돌아갈 수 없으니 여행 후 잡아 놓은 일정도 다 어그러질 것이다.
어제 수도 트빌리시의 번화가에서 사람들과 밀접 접촉한 것이 문제였을까. 이곳 사람들은 마스크를 쓰지 않았다. 마스크는 일행인 한국 사람만 썼다. 되도록이면 밀집도가 높은 곳에 가지 말라는 가이드 최의 말을 신경 쓰지 않은 게 걸렸다.
혹시 일행 중 먼저 걸린 사람이 있는데 숨기고 있는 건 아닐까. 그들 중 누구한테서 내가 옮은 거라면? 일행들을 하나하나 둘러보며 혐의를 두려고 해도 나를 뺀 다른 사람들은 여행의 즐거움을 만끽하는 것처럼 컨디션이 좋아 보였다.
엊그제 나리칼리 요새 관광지에서 휴대용 컵을 사기 위해 가게 주인과 실랑이 벌일 때 튀었던 침방울이 문제였을까? 엊저녁 사람들로 꽉 들어찬 만찬장에서 내 등 뒤에 앉은 러시아 사람들의 왁자한 소리에 섞여 온 침방울이 문제가 됐을지도 모른다.
방을 같이 쓰는 장 선생은 내가 화장실을 쓰고 나오면 소독약을 분사한 뒤에 들어갔다. 장은 철저하게 여행 준비를 해왔다. 손소독제부터 각종 비타민과 진통제, 자가진단키트도 여러 개 가지고 왔다. 실내에 뿌리는 에탄올 살균제까지 가져왔다. 장은 호텔방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창문을 열고 곳곳에 살균제를 뿌렸다.
어제부터 가라앉은 내 컨디션을 알아채고 장은 되도록 나와 말을 섞지 않으려는 것처럼 보였다. 밥을 먹을 때도, 여행지를 둘러볼 때도 내 옆에 있지 않았다. 멀찍이 혼자 둘러보거나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었다. 나는 그런 장을 낯설게 바라보았다.
머리 밑에 흐르는 진땀을 손수건으로 찍어냈다. 가끔씩 불어오는 바람이 그나마 숨통을 틔워 주었는데 이제는 그조차 잦아들었는지 후텁지근한 열기가 더했다. 학교 앞 골목을 벗어나자 포도밭의 푸른 평원이 펼쳐졌다. 저 멀리 지평선은 푸른 바다처럼 보였다. 언덕 끝에 있는 나무를 향해 걸었다. 나무 둥치에 기대앉았다.
가이드 최가 멀찍이서 걸어왔다. 아까부터 나를 살피고 있는 걸 알고 있었다. 직업적 특성이겠지만 항상 얼굴에는 장난기가 도는 웃음을 띠고 있다. 최가 부드러운 음색으로 말을 건넸다.
“컨디션이 영 아닌 거죠? 아까부터 낯빛이 해쓱했어요.”
여행 내내 짓궂은 농담으로 좌중을 쥐락펴락하던 입담꾼이다. 일행들에게 따끔하게 주의를 줄 때는 주고 지나치게 긴장하고 있으면 그 정도로 긴장할 것 없다고 풀어 주며 열흘 내내 부드러운 분위기를 만들어 주었다.
“네, 고수 냄새를 제가 못 견디네요.”
“아마 여행이 끝나 가서 그럴 겁니다. 내일이면 집으로 돌아간다는 걸 우리 몸이 더 먼저 알고 있을 겁니다. 마이 참았다 아이가 그러면서 난 더 이상 견딜 수 없다고 위장이 아우성치고 있다는 증거일 겁니다.”
“아, 그런가요? 하하하.”
위장을 하나의 인격체로 대하는 최의 말에 웃음이 났다. 내 위장을 한 번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에 살짝 미안해지기도 했다. 눈으로 어루만지듯 위장을 머릿속에 그려 보았다. 애썼네, 조금만 더 참아 주면 안 되겠니? 집으로 돌아가면 맛있는 거 먹게 해주겠다며 사정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이거 좀 드시고, 차에 가서 쉬어 보세요.”
최의 손바닥에 두 개의 알약이 있다. 나는 말없이 두 개의 알약을 바라보았다.
“하나는 해열제고요, 하나는 위장 안정제예요. 여행객들이 비위가 상해 있는 경우가 많아 제가 상비약으로 갖고 다니는 거예요.”
두 개의 알약을 삼키자 불안감이 조금은 줄어든 것 같았다. 최가 시키는 대로 버스에 올라 눈을 감았다. 까무룩 잠이 들었던 모양이다. 행사를 마치고 돌아온 일행들의 왁자한 소리에 깼다. 내 옆에는 아무도 앉지 않았다. 나도 왠지 그게 마음이 편했다. 장도 피곤한지 뒷자리에 혼자 앉아 눈을 감고 있다.
호텔에 들어오자마자 침대 속으로 녹아내릴 듯이 잠들었다.
친정엄마가 꿈에 보였다. 어머니는 7년 정도 자리에 누워 계시다가 돌아가셨다. 꿈속에서도 여전히 편찮으신 상태로 내 앞에 누워 있다. 어머니는 더 이상 버티지 못하겠다는 듯 축 늘어져 있다. 나는 어떻게든 기력을 회복시켜 보려고 어머니의 몸을 주물렀다.
“시원하다.”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였지만 어머니의 반응이 그저 고맙고 반가웠다.
“시원해요?”
내가 기분 좋은 목소리로 확인하듯 재차 물었다. 어머니가 내 옆에 있다니, 꿈과 현실 사이 어디쯤에 있는 것 같았다. 분명 어머니는 돌아가셨는데 옆에 계시다는 게 더없이 기뻤다. 어머니의 마른 살갗이 그대로 느껴졌다. 축 처진 살과 꺼칠한 피부의 촉감이 그대로 만져졌다. 거기다 어머니의 몸은 아주 따뜻했다.
“너무 애쓰지 마, 너 힘들어. 나는 이제 갈란다.”
“어디로 자꾸만 간다고 그래? 여기 계셔. 그래야 이렇게 다리도 주물러 드리고 걷는 연습도 시켜 드리지, 그래야지 조금이라도 움직일 수 있어.”
“가야지, 가기로 약속했어.”
“안 된다니까! 왜 자꾸 간다고 해. 응? 엉엉엉.”
어머니 다리를 잡고 울었다. 가지 말라고 목 놓아 울었다.
“선생님, 왜 그러세요? 눈 떠 보세요.”
누군가 내 어깨를 마구 흔들었다. 볼을 두드리기도 했다. 장 선생이다.
“꿈꾸셨어요? 어머, 이 땀 좀 봐.”
나는 흐느끼며 눈을 떴다. 눈꼬리에 눈물이 자박자박했다. 손바닥에는 어머니 다리를 만졌던 촉감이 그대로 남아 있다. 손가락을 오므리면 어머니의 다리가 잡힐 것 같은 양감이 여전히 느껴졌다.
장 선생은 마스크를 쓰고 손에는 일회용 장갑을 낀 채 나를 내려다보고 있다.
등이 축축했다. 심한 몸살 끝에 한숨 푹 자고 일어난 느낌이다. 몸이 처지긴 했지만 머릿속은 개운했다.
“처음엔 깨우기 민망할 정도로 곤하게 주무셨어요. 그러다 울음소리가 나서 아무래도 악몽을 꾸는 것 같아서 깨웠어요.”
“돌아가신 어머니 꿈을 다 꿨네. 참내, 생전에 못해 드린 게 이렇게 걸리는 모양이야.”
“어머, 그래요? 전 생전 꿈속에도 안 나타나던데요, 호호호.”
장은 친정에도 시댁에도 이상한 애로 되어 있어서 별로 걸릴 게 없다고 말했다. 내가 이 시국에 여행 다니는 걸 죄인 취급하는 분위기라서 시댁에도 친정에도 말하지 않고 왔다는 말끝에 한 말이다.
“장 선생, 내가 좀 찜찜해서 그러는데. 장 선생 위해 부탁하는 거야. 코로나 검사할 때까지 따로 방을 쓰는 게 어때? 아무래도 불안해서.”
장은 일회용 장갑을 낀 손으로 쓰고 있는 제 마스크를 가리키며 말했다.
“걱정 마세요. 저도 조심하느라 애는 쓰고 있는데 걸렸으면 벌써 걸렸을 거예요. 그나저나 컨디션은 어떠세요?”
“훨씬 나아졌어.”
“코로나가 아닐 수도 있어요. 자가진단 해보실래요?”
장은 당장이라도 스틱을 꺼내서 내 콧속을 찌를 것처럼 진단키트 봉지를 흔들어 보였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더럭 겁이 났다. 두 줄이 뜨는 순간, 일행들에게는 비상사태가 될 것이고 나는 예상했던 최악의 상황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일이 벌어지는 걸 조금이라도 늦추고 싶었다.
오늘 오후에 코로나 검사를 하기로 했다. 조지아의 의사와 간호사가 신속항원검사를 한다고 했다. 두려움이 엄습했다. 해열제로 어찌어찌 열은 내린 것 같은데 아주 내린 건지는 알 수가 없다.
“하필이면 이런 시기에 그런 곳을 간다고 그래. 그 옆 나라는 지금 전쟁터잖아.”
짐을 쌀 때 내 등 뒤에 대고 말하던 남편의 목소리가 귀에 들리는 듯했다. 전쟁터라는 말에 불안한 것도 있지만 폭격에 죽어 가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죄스러운 마음이 앞섰던 것도 사실이다. 나도 찜찜했다. 그럼에도 나에게 일어나지 않는 일은 뉴스에 불과하다는 것, 코카서스 산맥이 국경이어서 안전하다는 등, 갖가지 괜찮은 이유를 찾으며 짐을 쌌다. 대꾸가 없자 남편은 재차 물었다.
“왜, 하필이면 그 나라야?”
“나도 뒤늦게 합류한 거라서 몰라. 같은 학교 장 선생이 죽기 전에 한번쯤 꼭 가봐야 하는 곳이라는 말에 확 끌려서 비행기 값을 그 자리에서 보내버렸어.”
코로나 시대에 해외에 나간다는 건 꿈도 꾸지 못했는데 딱 한 자리 남았다는 장 선생의 제안에 앞뒤 생각하지 않고 저질렀다. 이것저것 따지고 싶지 않을 만큼 나갔다 오고 싶었다. 장 선생과는 여행을 같이 다닐 만큼 가까운 사이는 아니다. 몇 년 전, 공항 출국장에서 우연히 마주친 적이 있어서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이 가까이 있다는 정도로만 알고 지냈다. 우리 학교는 학년별로 교무실을 따로 쓰기 때문에 1학년을 맡고 있는 장 선생과는 거의 마주칠 일이 없었다. 학교에서 장 선생은 젊은 축에 속한다. 나와는 나이 차이도 꽤 있다. 나이가 들수록 장벽으로 느껴질 때가 많았다. 특히 젊은 사람들을 대할 때 나이 많은 게 결코 내세울 만한 일이 아니라는 게 의식되었다. 그래서 미리 자리를 피한다거나 먼저 빠지며 거리를 두는 편이어서 장 선생과도 어울릴 만한 시간이 없었다.
남편은 자가진단키트 여러 개와 해열제, 소화제, 알레르기 약, 밴드, 연고 등 여행 시 필요한 구급약을 잔뜩 쌓아 놓았다.
“행여 무슨 일이 생기면 거기 호텔에서 격리될 각오해야 돼. 약도 안 준다니까, 가져간 약으로 견뎌야 할 거야.”
남편은 좀 수그러든 목소리로 말하며 불룩해진 약 팩을 건넸다. 두려움이 앞서긴 했지만 최악의 상황이 일어난다 하더라도 그때 가서 대처하자는 생각이 들었다.
가이드 최는 콧속과 입안을 깨끗하게 닦고 호텔 로비로 나오라고 하였다. 일행인 채란이 방마다 돌아다니며 입안에 프로폴리스를 분사해 주고 면봉에 인후염 항염 액체를 찍어 콧속을 소독해 주었다. 일행들은 누구 하나 거부하지 않고 채란의 지시에 따랐다. 인상을 쓰며 콧속 깊숙이 면봉을 넣고 입을 한껏 벌려 목젖까지 소독했다. 헛구역질이 올라와도 기꺼이 응했다. 나는 눈물이 그렁그렁할 정도로 콧구멍을 쑤시고 몇 번의 토악질이 올라오도록 목젖을 소독했다. 이곳에서 코로나를 맞이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이 시국에 해외여행을 다녀왔다는 욕을 먹더라도 어떻게든 내 집에서 당해야 한다는 그 생각만 했다.
로비에는 일행들이 검사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자가진단키트로 검사를 하고 있다. 어쩌면 이 정부도 코로나바이러스가 나오는 불상사를 면케 하기 위해 출국자에게 가벼운 진단키트를 사용하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증상이 있는 경우에는 진단키트에 한 줄이 나와도 여러 번 해보면 두 줄이 나오는 경우가 많아서 한 줄이 나온다 하더라도 믿을 만한 결과는 아니라는 것을 다들 알고 있다.
일행들의 얼굴엔 긴장감이 역력했다. 나는 되도록 검사를 늦추기 위해 맨 뒤에 섰다. 결과를 유예하여 듣는다고 하여 달라질 것도 없는데도 말이다.
먼저 한 사람들의 결과가 속속 나왔다. 아직까지는 모두 음성 판정을 받았다. 다들 환호성을 질렀다. 그들은 시내 관광을 가고 싶다며 먼저 호텔방을 나서도 되냐고 최한테 물었다. 최는 흔쾌히 웃으며 대신 마스크 쓰는 것 꼭 부탁한다고 했다.
나는 그들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며 순서를 기다렸다. 드디어 내 차례가 되었다. 의사가 콧속에 긴 스틱을 넣을 때 고개를 약간 뒤로 뺀다는 게 갑작스러운 손길에 그만 속수무책으로 찔리고 말았다. 눈물이 찔끔 나올 정도로 깊었다. 의사가 콧속을 찌를 때 고개를 약간 뒤로 젖히라는 채란의 말을 지키지 못했다. 프로폴리스로 소독을 하고 면봉을 피해 고개를 뒤로 뺀다 한들 바이러스를 숨길 수 없는데도 마치 최면에라도 걸린 것처럼 그러마 하고 약속했다. 그런 뻔한 것을 마치 어린아이처럼 믿고 있는 게 우스웠지만 어찌 됐든 최악의 상황은 면해 보자는 절박한 심정이었다. 그마저도 시키는 대로 하지 못했다.
내 검체가 든 진단키트를 마지막으로 검사는 끝났다. 나는 선고를 기다리는 죄수처럼 로비 한쪽에 앉았다. 나보다 앞서 한, 장 선생을 비롯한 몇 명도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다들 초조한 기색이다.
가이드 최의 목소리가 들렸다.
“전원 음성입니다. 하하하.”
아주 홀가분한 목소리로 통쾌하게 웃었다. 긴장을 일시에 풀어 주는 웃음소리가 로비 안에 퍼졌다.
나는 움츠렸던 어깨를 폈다. 두려움과 우울의 무게를 잴 수 있다면 방금 전의 나와 지금의 내 몸무게를 재보면 알 것 같았다. 공중부양 하듯 마음과 몸이 붕 떠오르는 것 같았다.
“선생님, 우리도 시내 관광 가요.”
장이 아주 산뜻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동안 유난 떨던 걸 눙치고 싶었던 건지 착 감기는 투였다. 나는 무리하면 안 될 것 같아 쉬겠다고 했다.
돌아갈 비행시간을 생각하면 몸서리가 쳐질 정도다. 무리하면 해열제를 아무리 먹어도 열이 떨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 입국하기까지 곳곳에 서 있는 체온계를 지날 때마다 마음 졸일 생각을 하자 지레 죽을 것 같았다.
경유 대기시간까지 합쳐 대략 열일곱 시간 정도를 공항과 비행기에서 보내야 한다. 가이드 최는 각별히 체력 관리하라고 일행들에게 말했다. 특히 과한 음주는 삼갔으면 좋겠다며, 오늘밤은 푹 쉬고 내일 비행을 마친 뒤 입국하여 PCR 검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마음을 놓을 수 없다고 했다. 일행 중 한 명이라도 이상이 있으면 우리는 모두 보균자 잠복기가 될 수 있다면서 한 배 탄 사실을 잊지 말라고 했다.
나는 줄곧 쉬어서 그런지 그런대로 컨디션이 회복된 것 같았다, 습관처럼 먹던 해열제와 감기약 덕분인지도 모른다. 약발이 떨어질 만하면 또 한 알의 약을 삼키곤 하였다. 어쨌든 음성이 떴으니 입국은 가능하게 된 것이다.
긴 경유 시간을 견디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공항에서 노숙자처럼 떠도는 건 여행의 좋은 느낌을 완전히 상쇄시키고도 남을 만큼 고된 일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몸이 뒤틀리고 더위와 땀에 찌들어서 발바닥과 목덜미로는 열이 수시로 오르내렸다. 지금 코로나바이러스가 쳐들어온다면 어디로든 뚫고 들어올 수 있을 정도로 무방비 상태가 된 것 같았다.
밤새 비행에 시달린 뒤 눈을 떴을 때 창문으로 햇빛이 쨍하게 비켜들었다. 다섯 시간 정도 의 시차가 나니까 우리나라는 지금 아침 8시경이다.
여행 중에는 시차 때문에 톡을 하기도, 전화를 걸기도 애매해 남편에게 자주 연락을 하지 못했다. 로밍을 해가면 여행의 맛을 즐길 수 없다며 남편이 권하는 것을 손사래 치며 마다했다. 단 열흘만이라도 모든 것으로부터 단절되고 싶었다.
또다시 몸살이 날 것처럼 목과 어깨가 무거웠다. 해열제를 먹어도 컨디션은 돌아오지 않았다. 돌아간다는 안도감에 긴장이 풀려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공항에 내리자 곧바로 문자 메시지가 열리고 톡이 들어왔다.
남편의 톡이 장문으로 와 있다. J시에 비가 많이 와서 아버지가 밤새 불안에 떨며 전화를 하는 바람에 오늘 새벽에 우리 집으로 모셔왔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이게 무슨 말인가 싶어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
“지금 막 도착했어. 무슨 말이야? 비가 그렇게 많이 왔어?”
“밤새 많이 오긴 했어. 지금 잠깐 소강상태야. 하천이 넘치거나 그러진 않았어. 비가 많이 오니까 불안해서 잠을 못 주무시고 밤새 전화를 하셨어.”
“그래서?”
“불안해서 못 견디겠다고 빨리 나 좀 데려가라고 성화였어. 밤새 시달리다 오늘 새벽에 모시고 왔어. 당신은 새벽 기차 타고 강의 가서 이 사실을 모른다 하고.”
눈앞이 아득했다. 타이밍이 이렇게 얄궂다니. 밤새 비 때문에 통화를 했다면서 내가 그 사실을 모르고 새벽 출장을 갔다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이다. 며느리가 시댁 식구들이 쳐들어오는 게 싫어서 피했다는 말밖에 더 되지 않겠나 싶었다. 시아버지가 그 말을 곧이들을 리가 없다. 시아버지는 구순이 넘었지만 단어 하나 떠오르지 않아도 짜증을 내며 기어코 찾아내어 말할 정도로 명석한 분이다. 평생 강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쳤고 지금도 손에서 책을 놓지 않는다.
그간 남편과 나는 해외 일정이 있어도 시댁에 일절 말하지 않았다. 사실을 안 순간, 돌아올 때까지 어머니가 전화를 하기 때문이다. 집에 남아 있는 사람이 그 전화를 다 받아야 했다. 어머니는 비행기에 대한 불신이 몹시 심했다.
해외에 나간 사실보다 더 큰 문제는 코로나였다. 남편의 전화를 끊자 더욱 열이 나는 것 같았다. 조지아에서 음성이 나왔다고 하더라도 안심할 수 없는 일이다. 열흘 동안 바꿔 잔 객실과 관광지에서 스친 사람들과 여행 말미부터 지금까지 내 몸 상태를 봐도 마음 놓을 수 없다. 돌아올 때 머물렀던 공항과 비행기에서 스친 사람들로 인해 바이러스로부터 온전하다는 보장도 없다. PCR 검사를 받기 전에는 안심할 수 없는 일이다.
전 세계가 코로나로 몸살을 앓고 있는 시국에 해외여행을 갔다는 건 조심성 많은 시어른들에게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일 것이다. 코로나로 세 해가 지나는 동안, 명절도 제사도 당신들 생일에도 모이지 말라고 했다. 내가 30년 동안 지내던 제사를 하루아침에 면제 받은 것은 코로나 덕분이다. 완고했던 아버님을 변화시킨 건 증가하는 고령층 사망자 수와 화장터 앞에 즐비하게 늘어선 관이었다. 장례 절차도 없이 끌어다 태우는 모습에 경악했다. 마지막 소원이 죽음을 잘 맞이하는 것일 텐데 코로나에 걸리면 그렇지 못할 거라는 극도의 공포감을 갖고 있었다.
모이지 말라는 말 속에 장남인 남편과 맏며느리인 나는 제외였다. 타지에 살고 있는 형제들에게 해당되는 말이었다. 지척에 살고 있는 나와 남편은 꼬박꼬박 챙겨야 했다. 얼마 전까지 우리 집은 시가와 한동네에 살다 외곽으로 이사 나왔지만 줄곧 J시를 벗어나지 않았다.
큰 하천 옆의 아담한 2층짜리 단독주택이 시가다. 구도심 한복판이지만 제법 큰 규모의 재래시장과도 가깝다. 무엇보다 대형 종합병원이 가까이 두 개나 있어서 입, 퇴원이 잦은 노년기에는 적격인 곳이다. 요즘 들어 최신식 실버타운과 요양병원이 하천 주변으로 들어서서 의료 타운으로 변모하고 있다. 이 도심에서는 풍광이 제일 좋다. 강줄기 같은 너른 하천이 시야를 확보해 주어 도시의 숨통을 틔워 주는 곳이다.
시가는 동네에서 마당 예쁜 집으로 소문이 나 있다. 화초를 잘 가꾸는 아버님 때문이다. 마당에 들어서면 크고 작은 화분에 갖가지 열대 나무와 야생화 화분이 즐비하고 마당 주위에 심어 놓은 나무도 섬세한 손길로 잘 다듬어져 있으며, 무엇보다 마당 한쪽의 수석정원은 금강산의 일만이천봉을 본떠 정교하게 꾸며 놓아 볼거리가 되었다. 동네 사람들이 철마다 마당 구경을 올 정도다. 시어른들이 그곳을 떠나 노후를 보낸다는 건 상상도 못 할 일이다. 그런데 그 마당을 송두리째 잃어버린 일이 있었다.
몇 년 전, 여름의 일이다. J시에 며칠간 비가 내렸다. 잦아들었다가 다시 퍼붓기를 반복했다. 상류 지역에 비가 많이 오지 않으면 하천은 위험 수위까지 올라가지 않는다. 상류와 하류에 동시에 비가 오지 않는 이상 크게 문제될 건 없었다.
게릴라성 폭우가 문제였다. 기후 변화로 몇 년 전부터 한 곳에 집중적으로 비가 내리는 경우가 많았는데 한번 쏟아지면 집어삼킬 듯이 퍼부었다. J시도 게릴라성 폭우가 비켜가지 않았다. 특히 시가가 있는 곳은 지엽적 폭우에는 취약한 곳이다. 하천의 물이 차오르고 집 안으로 물이 역류하기까지 채 30분도 걸리지 않았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다. 하천 옆에 제방을 쌓아서 도시를 형성했기 때문에 하천 바닥과 도시의 바닥은 같다고 보면 된다. 동네에서 빗물이 빠져나가는 우수관까지 하천의 물이 차오르면 물길은 역류하게 된다. 하늘에 구멍이 난 듯 비가 퍼붓고 물이 거꾸로 들어오면 한 동네를 물바다로 만드는 건 시간문제다. 집 안에 냉장고와 세탁기가 둥둥 떠다니고 누런 흙탕물은 안방까지 들어와 허리춤까지 차올랐다. 거동이 불편한 아버님은 안방에 앉아 있다가 물속에 갇히게 되었다. 싯누렇게 차오른 물 때문에 발밑이 보이지 않아 한 발짝도 내디딜 수 없었다. 어머니의 울부짖음 소리에 이웃사람이 업어 날라서 간신히 화를 면한 적이 있다. 전화를 받고 달려갔을 때 물이 빠진 집 안은 온전한 게 없었다. 하수구의 오물과 까만 진흙이 밀고 들어와 그야말로 처참했다. 아무것도 남지 않은 마당에 서서 아버님은 당신 아들을 붙잡고 울었다. 내 평생 이런 일은 처음이라고 하면서.
그 후 장마철이 되면 아버님은 그때의 충격이 고스란히 재현되는 것처럼 불안에 떨었다. 하천 수위를 점검하고 일기예보에 촉각을 세우며 잠을 이루지 못했다.
이번 장마에도 하천 수위를 신경 쓰고 몇 분 동안 폭우가 내리는지 재고 있다가 극한의 공포를 견디지 못하고 아들에게 전화했을 것이다.
하필이면 기다렸다는 듯이 이렇게 맞닥뜨릴 수가 있나 싶었다. 야속했다. 땀에 쩐 빨래가 든 여행 가방을 끌고 집 밖으로 떠돌아야 하다니. 혹여 코로나에 감염됐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은 누구와도 접촉을 꺼리게 했다. 연로한 시부모에게 코로나 바이러스는 치명적일 수 있다. 행여 며느리인 내가 바이러스를 옮겨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면 그 원망을 감당할 수 없다.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비구름이 북상한다더니 공항의 하늘도 심상치 않았다. 먹구름이 두껍게 내려앉아 있다. 곧 퍼부을 기세다. 버스를 타고 공항을 벗어나 J시에 가까워질수록 빗줄기가 거세졌다.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퍼부었다. 원망스러운 눈으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욕이 나올 것 같았다. 제발 그만 퍼부으라고!!! J시의 상황은 어떤지, 또다시 물에 잠긴다면 그곳을 떠날 수밖에 없다.
내 방 침대에 눕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익숙한 방 안 공기, 익숙한 이불의 촉감이 눈물 나도록 그리웠다. 시어른들은 집에 들어오지 않는 며느리를 어떻게 생각할까. 무슨 말을 해야 노여움을 사지 않을까, 머릿속이 어지러울 정도로 생각이 복잡했다.
남편은 나에게 보건소로 가서 PCR 검사 먼저 받으라고 했다. 해외 입국자는 48시간 내에 PCR 검사를 받아 큐코드에 입력하라고 질병청의 문자를 받은 터라 집에 가서 씻고 가방 정리도 하고 빨래도 돌린 뒤 한숨 자고 보건소로 향하려던 나의 계획은 완전히 틀어졌다.
남편은 몇 시간 후면 검사 결과가 나오지 않겠냐고 했다. 어른들께는 저녁이면 들어온다고 했으니 검사 결과 듣고 음성이면 들어오라고 하였다. 양성이면 어쩌라고.
미열은 여전했다. 무거운 몸을 끌고 보건소로 향했다. 임시 선별진료소 휘장 아래는 줄이 길었다. 또 한 번 깊숙이 콧속을 찔린 뒤 검사 결과는 내일 오전에나 문자로 알려준다는 통보를 받았다. 결과가 바로 나오는 게 아니었다. 결과가 나올 때까지 코로나로부터 해방될 수 없다. 비는 더욱 거세졌다. 선별진료소 휘장에 쇠구슬이라도 떨어지는 것처럼 소리가 요란했다. 빗줄기 사이로 자동차가 빼곡하게 세워져 있는 선별진료소 주차장을 암담하게 바라보았다. 갈 곳이 없다니. 갈 수 있는 곳이 없다는 게 이렇게 막막하다는 걸 처음 알았다.
집에 들어가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 세부 시나리오를 다시 짜야 했다. 거짓말은 거짓말로 덮을 수밖에 없다. 내일 오전이나 돼야 검사 결과가 나온다는 것을 남편에게 톡으로 전한 뒤 시아버지에게 전화를 했다.
“어디니? 내가 지금 느이 집에 와 있다.”
“아버님, 제가 내일도 여기 B시에서 강의가 있어요. 내일도 새벽기차 타고 다시 와야 하는 데 여기서 자고 내일 일 마치는 대로 들어갈게요. 아버님 어머님도 편히 계시고 저도 오가며 시달리지 않아서 좋고요.”
“뭐라고? 오늘 그럼 안 들어온다는 얘기니?”
목소리에 언짢은 기색이 역력했다. 저간의 사정 같은 건 들리지 않는 모양이다. 며느리가 오늘밤에 들어오지 않는 것이 가장 크게 들렸을 것이다.
“네, 내일 일 마치는 대로 KTX 타고 들어갈게요. 그러니까 편히 쉬고 계셔요.”
전화는 대답 없이 끊겼다. 심장이 툭 내려앉았다. 숨이 막혔다.
어쨌든 오늘은 집에 들어갈 수 없는 건 결정 난 거다. 어디든 하룻밤 지낼 곳을 찾아야 한다. 가장 가까운 주변 호텔로 검색했다.
방을 하나 잡고 들었다. 이름은 호텔인데 모텔급이다. 키를 받아들고 객실 문을 열었을 때 찌든 담배 냄새가 코를 찔렀다. 옷에든 몸에든 냄새가 밸 것 같아 어디 한 군데 앉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방 한가운데에 한참을 서 있었다.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창문은 철제 가림막에 가려져 있다. 가림막을 아무리 밀어도 열리지 않았다. 지금이라도 환불해 달라고 하여 나가고 싶었다.
프런트에 전화를 했다.
“담배 냄새가 너무 나는데요?”
나는 어딘가에 화풀이 할 대상을 찾기라도 하듯 날선 목소리로 말했다.
“아, 여기는 금연호텔이 아니라서요.”
“그럼 창문 있는 방으로 옮겨 주세요.”
“아, 그 방에도 창문이 있는데요. 저희 객실은 다 창문이 있습니다.”
“창문이 열리긴 하나요?”
“네, 그럼요, 손잡이를 잘 찾아보세요.”
손잡이를 잘 찾아보라고? 방범창 같은 가림막은 옆으로 미는 것이 아니라 안쪽으로 잡아 당기는 거였다. 그제야 바깥 창문이 보였다. 창문을 열었다. 빗줄기가 세찼다. 빗방울이 창턱에서 툭툭툭 터졌다. 얼굴에 그대로 튀었다. 나는 한참 동안 빗줄기를 바라보며 서 있었다.
쏟아지는 비를 보며 시가가 또 물에 잠길까 봐 걱정이었다. 비가 또 그렇게 많이 오겠냐며 한 해 한 해 넘긴 게 여기까지 온 것이다. 집이 물에 잠기던 해, 사촌 시누이 희원이 집을 높게 올려 짓자고 제안했다. 건축 비용은 희원이 대겠다고 나섰다. 남편과 나는 그 자리에서 단박에 거절했는데 장마철이 되면 목에 걸린 가시처럼 되살아나 몹시 부대꼈다.
일단 씻고 밥을 먹기로 했다. 기내식 이후 종일 먹은 게 없다. 여행지에서는 매 끼마다 비슷비슷한 메뉴가 나왔다. 조지아의 정찬 코스는 음식의 양이 많았다. 일행들은 음식의 반 이상을 남겼다. 여행이 끝나 갈 무렵에는 먹는 거에 대한 회의가 들 정도였다. 거기다 음식은 하나같이 짰다. 빵도 샐러드도 수프도 고기도 면도 만두도. 뜨거운 나라일수록 음식의 염도가 높다더니 조금만 먹어도 짜서 더는 입에 넣을 수 없었다. 각종 나물과 고추장이 어우러진 비빔밥이 먹고 싶었다. 밥 한 끼만 제대로 먹어도 컨디션이 회복될 것 같았다.
평소에도 종종 쇼핑을 오던 종합 몰이 바로 옆에 있다. 1층에는 맛집 식당이 제법 있다. 비는 여전히 거셌다.
쇼핑몰 회전문 앞에 다다라 우산을 접자 물이 좌르륵 쏟아졌다. 옷단에 묻은 빗물을 턴 뒤 막 돌아설 때였다.
“어머, 언니, 언니가 왜 여기에 있어요?”
사촌 시누이 희원이다. 시어머니가 친딸보다 더한 애정으로 키운 조카딸이다. 시어머니의 여동생이 딸 하나 낳고 죽자 거두어 키웠다. 엄마 없이 자란 불쌍한 아이라며 잘해 주라고 나한테 당부했다. 상견례 자리까지 데리고 나왔을 때 눈치 챘어야 했다. 사촌이면 거의 남이라는 생각에 가벼이 여긴 게 문제였다. 한 치 건너 두 치라는 법칙은 희원에게 적용되지 않았다. 희원은 시누이 노릇을 톡톡히 했다. 외려 자기는 친시누이가 아니니 시누이 노릇하는 거 아니라며 대놓고 시어머니 대변인 역할을 했다. 정작 친시누이인 두 형님은 멀리 살아서 늘 미안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데 희원은 달랐다. 희원이 이 집에서 큰소리치는 건 돈의 힘이다. 희원의 남편이 사업 수완이 좋아 다 쓰러져 가는 중소기업을 인수 받아 일으켜 세우며 회장님 소리를 들을 정도로 확장을 이어 갔다. 지역에서는 알아주는 기업인이다.
“어맛!”
나는 머리끝이 쭈뼛 설 만큼 소스라쳤다. 도둑질하다 들킨 기분이 이럴까. 그것도 웬만하면 마주치고 싶지 않은 사람 앞에서, 하필이면 희원이라니. 큰일 났다 싶었다. 저 촉새 같은 희원의 입을 막을 도리가 없기 때문이다.
올해 이 근처 고급 주상복합 아파트로 이사 온 것을 깜빡했다. 서로 곱게 보는 사이가 아닌 터라 말을 되도록 섞지 않고 지냈다. 혈연이든 결혼이든 가족으로 묶인 것은 죽어야 끝난다는 것을 가르쳐준 사람이다. 어떤 상황에서든 꼬투리부터 잡는 말버릇은 여전했다. 심장이 드세게 쿵덕거렸다.
“왜 이렇게 놀라요? 언니 B시에 있다고 들었는데요?”
부모님이 비를 피해 우리 집에 와 있고, 나는 B시에 출장이라는 것까지 다 알고 있다. 시어머니와 하루가 멀다 하고 통화하는 사이니 모를 리 없을 것이다. 장마철이면 안부 핑계 삼아 자동으로 흘러나오는 말을 하기 위해서라도 희원이 먼저 전화 했을 것이다.
“이모, 그때 제 말처럼 집을 올려 다시 지었으면 비올 때마다 이런 난리를 안 피워도 되잖아요.”
그럴 때마다 어머니는 남편과 나를 원망했다.
희원이 건축비를 대겠다고 나섰을 때 어머니는 희원을 얼싸안으며 좋아했지만 아버님과 남편은 떨떠름한 표정이었다. 나는 거의 사색이 되다시피 했다. 바깥으로 남편을 불러내어 우리 집으로 모셔가는 한이 있더라도 결사반대라고 말했다. 아버님과 남편은 이 집의 가장으로서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 것 같았다. 아버님 입장에서 본다면 출가외인인 처 조카딸의 제안이 반가울 리 없다. 가장으로서의 자존심이 절대로 허락하지 않을 만큼 철저히 가부장적인 분이다. 내가 결혼하던 해부터 희원은 어머니와 입을 맞춰 분란거리를 만들었다. 분란의 한가운데에는 늘 나를 끼워 넣어 화살은 언제나 내게로 향했다. 등 뒤에서 날아오는 화살은 피할 길이 없다. 끙끙 앓는 나를 보다 못해 남편이 희원에게 발길을 끊으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어머니가 서로 사과하기 전에는 밥을 먹지 않겠다고 하여 화해하는 시늉을 한 적도 있다.
“뭐예요?”
빚쟁이 대하듯 따지는 저 말투, 수십 년을 들었지만 매번 견딜 수 없다. 그렇지만 일이 크게 번지지 않으려면 참아야 한다.
“아, 저 사실은요.”
나는 단단히 마스크를 고쳐 쓰며 자초지종을 말하려고 하였다.
“거짓말한 거예요?”
피가 머리끝까지 솟구쳤다. 눈앞이 어찔할 만큼 화가 끓어올랐다. 그래도 꾹꾹 눌러야 한다.
“아, 아뇨, 그게 아니라요.”
정말 이런 상황이 너무 싫었다. 무슨 죄를 지은 것도 아니고 끝없이 저자세를 해야 하는 며느리라는 위치가 견딜 수 없이 모멸스러웠다. 이 개나 줘버릴 며느리 노예근성. 잘못한 것도 없이 박박 기어야 하는 처지가 너무 싫었다. 어떻게 해야 이 근성을 버릴 수 있을까. 결혼을 쫑 내야 없어지는 것일까. 그간 내 마음이 불편한 게 싫어서 친정에도 시댁에도 일이 생길 때마다 달려갔다. 누구한테든 좋은 사람이고 싶었고 괜찮은 사람이라는 소리를 듣고 싶은 내 욕심 때문에 참고 참았다. 장 선생처럼 진즉에 이상한 사람이 되자고 선언했으면 이렇게 끌려 다니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아니라뇨, 지금 언니가 여기에 있는 게 그 증거잖아요.”
“사실은요, 제가 오늘 코로나 확진자랑 밀접 접촉자가 됐어요.”
희원의 눈빛이 싸늘히 변했다. 내게로부터 한 발자국 떨어졌다. 겁에 질린 희원을 보자 확, 코로나 확진자라고 해버릴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그래서요?”
“방금 전에 보건소 가서 PCR 검사 받고 지금 결과 기다리는 중이에요.”
“그러면 그렇다고 사실대로 말씀드리면 되지, 왜요?”
“우리 집에 오신다는데 거기다 대고 이런 상황 말씀드리기가 그래서요, 어른들 성격 아시잖아요. 걱정 많으신 거.”
“근데 확진됐으면요? 어쩌려고 이렇게 돌아다니세요?”
희원은 금방이라도 질병청이나 보건소에 신고라도 할 낌새다. 푸르륵 열이 다시 올랐다. 마치 확진이라도 되라고 비는 어투였다.
“아직 결과는 알 수 없으니 지금 집에도 못 들어가고 격리하고 있잖아요.”
나도 쏘아붙였다.
“왜 그렇게 화를 내요?”
“말을 꼭 그런 식으로 해야 해요?”
“제가 뭘요?”
“관둡시다. 이제사 뭘.”
“무슨 말씀이에요? 이제사 뭐요?”
“그 같잖은 시누이 노릇 좀 그만 하시라고요.”
“뭐예욧! 같잖은?”
“사실 나한테 이럴 거까지는 없잖아요. 사촌이면 그럴 만한 사이도 아니고요. 왜 그렇게 나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에요?”
“뭐 뭐 뭐라고요? 못 잡아먹어서? 말 다했어요? 지금?”
30년 만에 처음이다. 속에 말이 이리 쉽게 튀어나오다니. 큰 죄라도 지은 듯 궁지로 모는 희원의 태도를 더 이상 견디고 싶지 않았다.
희원의 두 눈에 눈물이 툭 터졌다. 의외였다. 이렇게 쉽게 깨지는 유리 같다니. 부들부들 떠는 게 훤히 보였다. 나는 힘없는 사람을 한 대 때린 격이 되었다. 지난 시간 동안 크고 작은 신경전에서 내가 물러난 이유는 그거 하나였다. 격 떨어지는 게 싫었기 때문이다. 저 유치찬란한 사람과 같은 사람이 될 수 없다는 게 그동안 나를 버티게 한 힘이었다. 그런데 지금 희원과 나는 하나도 다르지 않았다.
희원은 휙 뒤돌아서 쇼핑몰 안으로 사라졌다. 희원의 등에서 가만 두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보였다. 망했다. 지금이라도 달려가 나 본 거 입 다물어 달라고 사정해야 하는 거 아닌가 하다가 웃음이 났다.
희원에게 친정붙이라고는 어머니밖에 없는데 이 집에서의 애매한 자기 위치 때문에 피붙이가 아닌 내게 유세를 떠는 것이라고, 그러고 보면 희원도 불쌍한 인간이라고 진즉에 정리했는데도 울화는 하나도 해결되지 않은 모양이다.
나는 식욕을 잃고 빗속을 터벅터벅 걸어 호텔로 향했다.
잠을 자다 중간에 깼을 때 여전히 나는 조지아 호텔방이라는 착각을 했다. 어디가 화장실이고 어디가 출입구이며 여기는 어디인가를 체크했다. 여행 중 방이 바뀔 때마다 새벽에 잠이 깨면 하던 버릇이다. 담배에 찌든 냄새 때문에 훅, 현실이 자각되었다. 여기는 어디이고 나는 왜 여기 있으며 어제 희원에게 퍼부었던 말까지 속속들이 되살아났다. 주워 담을 수도 없는 말은 지금 어디까지 갔을까. 다시 눈을 감았다. 눈 뜨고 싶지 않았다.
아침 6시 52분에 보건소로부터 문자가 왔다.
정**님
8월 19일 코로나 PCR
검사 결과 음성입니다.
- **보건소
음성이라는 말에 옥죄고 있는 것으로부터 해방되는 느낌이 들었지만 그것도 잠시, 전혀 반갑지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는 차라리 집에 들어가지 못하는 불가피한 일이 일어나는 게 낫지 싶었다.
창문을 열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비는 멎었지만 비구름은 여전했다. 또 언제 쏟아질지 모를 정도로 먹구름이 두꺼웠다.
전화벨이 숨 가쁘게 울렸다.
시어머니다.
“어디냐?”
내가 어디에 있는지 다 알고 묻는 것 같았다. 멈칫거리느라 대답을 놓쳤다. 전화기 속에서는 차가운 목소리가 연이어 들렸다.
“우리 갈란다.”
“어머니, 저 바로 들어가요. 비가 또 쏟아질 것 같은데 어디로 가신다고 그러세요.”
“느이 집이 아니면 갈 데 없겠냐?”
“네? 어디로 가시게요? 어머니, 저도 피치 못할 사정이 있어서 그래요.”
“희원이한테 다 들었다.”
다? 다 듣고도 내게 전화를 해서 이렇게 불편한 심사를 내비쳐야 하는 건가?
“들어가서 말씀드릴게요.”
어머니는 말없이 전화를 끊었다.
여행 가방을 끌고 호텔을 나섰다. 가슴이 짓눌리는 것처럼 갑갑했다.
허둥지둥 장을 본 뒤 집으로 향했다. 여행 가방은 차에 처박아 놓았다. 해외 나갔다 온 건 여전히 몰라야 한다.
어머니는 가방을 든 채 현관문에 서 있고 아버님은 전국의 침수 피해 현장을 중계하는 티브이 앞에 서 있다. 어머니는 나와 눈도 마주치려 하지 않았다. 아버님 또한 티브이에 시선을 두고 본 체 만 체했다.
“저 왔어요.”
“비 그쳤으니 갈란다.”
아버님은 창밖을 보며 말했다.
“밥 해드리려고 장 봐왔어요. 오늘 하루 더 있다 가세요.”
뉴스에서는 아직 장마전선이 물러간 게 아니어서 마음 놓을 때가 아니라고 한다. 폭우에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고 연신 말한다. 대비할 수 있는 게 있긴 있는 걸까.
또다시 구름이 몰려왔다. 저 멀리 도심 한가운데는 비가 퍼붓는 모양이다. 삽시간에 대기가 뿌옇게 변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곧 이쪽으로 쳐들어올 것처럼 비구름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
어른들은 창밖을 바라보고 섰다. 집을 나서지도 그렇다고 앉지도 못한 채였다. 가겠다고 고집을 피우면 어쩔 도리가 없다. 나도 그런 어른들을 잡지도 그렇다고 가라고 등 떠밀지도 못하는 엉거주춤한 처지였다.
굵은 빗방울이 베란다 유리창에 툭툭 터졌다. 어른들은 당신들 얼굴에 빗방울이 들이치는 것처럼 찡그리며 뒤로 주춤 물러섰다.
어디선가 전화벨이 울렸다. 어머니가 허둥지둥 가방을 뒤져 전화기를 꺼냈다. 어머니는 발신자를 확인하더니 아버님과 내 눈치를 살피는 것 같았다. 구석으로 등을 돌린 뒤 한 손은 입을 가린 채 전화를 받았다.
“으응, 그 그래, 알 알았다. 내가 조금 이따 다시 전화하마.”
“누군데요?”
아버님이 누군지 다 안다는 듯 책망이 담긴 목소리로 물었다. 어머니는 대답하지 않고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 누구냐니까요?”
“희 희원이요.”
“쓸 데 없는 짓 하지 말아요. 아까 얘기 끝났잖아요.”
아버님은 더욱 완고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숨을 죽이며 식재료를 정리했다.
“아이구, 고집을 부릴 때가 따로 있지요. 지금 그럴 때가 아니라고 했잖아요.”
아버님은 툴툴거리는 어머니를 쏘아본 뒤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왜요? 어디다 하시게요? 희원이한테 하는 거예요?”
어머니가 다급히 만류했지만 아버님은 손을 뿌리치며 전화기를 귀에 댔다.
“나다. 너, 남의 집 일에 그만 신경 꺼라. 너희 집으로는 안 간다.”
희원이 자기 집으로 오라고 했던 모양이다. 어머니가 느이 집 아니면 갈 데가 없겠냐고 했던 말이 생각났다. 아버님이 처음으로 희원에게 남이라고 선을 그었다. 이제껏 어떤 내색 없이 처조카를 거둔 분이다.
“울 거 없다. 니가 그럼 남이지 우리 집 식구더냐? 식구면 너도 그렇게 하는 거 아니다. 걸핏하면 달려와 입방정에 일러바치는 게 평생 네 일 아니었더냐?”
아버님은 단단히 벼른 듯 호통을 쳤다.
어머니는 안절부절못했다. 전화기 든 팔을 잡으며 저지했지만 아버님은 야멸차게 어머니의 손을 재차 쳐냈다.
“어제 일도 그렇다. 네가 그렇게 얘기할 일은 아니지 않냐? 큰애도 사정이 있다고 했으면 국으로 가만히 있을 것이지 분란을 만드냐? 그만 발길 끊어라.”
나는 식재료를 정리하다 손을 멈췄다.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내가 희원과 어머니 사이에서 크고 작은 일로 시달릴 때도 아버님은 알은척하지 않았다. 그래서 모르고 있는 줄 알았다. 나는 주방 아일랜드 식탁 뒤로 몸을 숨기며 털썩 주저앉았다.
아버님은 전화를 끊고 나를 찾았다.
“어딨니? 큰 애 너 이리 앉아 봐라.”
나는 종종걸음으로 나섰다. 쥐구멍에라도 몸을 숨기고 싶은 심정이었다.
“아버님, 죄송합니다.”
“네가 죄송할 건 없다. 넌 내가 왜 화가 났다고 생각하니?”
“…….”
“너도 그러는 거 아니다. 그런 사정이 있었으면 말을 하면 될 것이지. 평생 나는 어느 자식보다 널 믿고 살았다. 너도 우리를 그렇게 생각하는 줄 알았다.”
“잘못했습니다.”
“…….”
아버님은 말없이 티브이를 바라보았다. 게릴라성 폭우가 잦은 이유에 대해 앵커가 말을 이었다. 얼마 남지 않은 고산지대의 만년설과 극지방의 빙하가 무너지는 장면이 화면에 나왔다. 우리나라도 아열대기후로 변했기 때문에 기습 폭우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거기다 무너진 빙하 속에서는 인류가 처음 만나는 바이러스가 나올 것이라고 한다. 코로나에 이어 원숭이두창과 새로운 바이러스가 중국 어딘가에서 번지고 있다는 보도가 이어졌다.
뉴스 화면 하단에는 지역별 코로나 확진자와 사망자 수가 자막으로 흐르고 있다. 확진자 수는 좀처럼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밥 먹자.”
아버님은 한결 누그러진 목소리로 말했다. 어느 말보다 반가웠다.
나는 밥을 하기 위해 주방으로 향했다. 두 분 입맛에 맞는 거로 장을 봐왔다. 한 상 푸짐히 차려 마주 보고 앉아 숟가락을 기울이는 일, 그게 당장 할일이다. 내 손놀림은 점점 빨라졌다.











김선영
작가소개 / 김선영 

2004년 《대전일보》 신춘문예 「밀례」 등단. 2011년 제1회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상 수상. 소설집 『밀례』, 장편소설 『시간을 파는 상점1.2』, 『특별한 배달』, 『미치도록 가렵다』, 『열흘간의 낯선 바람』, 『내일은 내일에게』, 『무례한 상속』, 『붉은 무늬 상자』 외 공저 단편집 다수 펴냄.

   《문장웹진 2022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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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리자
  • 2024-05-01
원경

원경 성혜령 건강검진을 12월 마지막 주까지 미루는 사람이 자기 말고도 이렇게 많으리라고 신오는 생각하지 못했다. 대기실의 긴 좌석 중간중간 빈자리가 있긴 했지만, 신오는 한구석에 서 있기로 했다. 초음파 검사실 앞 복도는 자기 이름이 불리기를 기다리며 서성이고 있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헐렁한 가운에 느슨한 고무줄 바지를 입고 핸드폰을 보며 기다림을 견디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서 신오는 이들 중 내년에는 따뜻한 휴양지에서 연말을 보낼 사람들이 얼마나 있을지 궁금했다. 혹은, 오늘 치명적인 암이나 뇌동맥류 같은 것들을 발견하고 전혀 예상치 못한 인생을 살게 될 사람들은? 그런 일들은 언제나 일어나고 있었다. 직장 생활을 10년 정도 하니 주위에 아픈 사람들이 많아졌다. 이전 직장 동료는 출근길에 쓰러진 뒤 안면마비를 얻었다. 한쪽 입꼬리가 위로 당겨 올라갔는데 그는 멀쩡한 다른 쪽 입꼬리도 끌어올려 웃는 얼굴을 만들곤 했다. 병가에서 돌아온 뒤 매일 웃는 얼굴로 제일 먼저 출근하는 동료를 보면서 신오는 이직을 결심했다. 신오는 모든 일이 가능하지만 대개 나쁜 일들이 더 자주 일어난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되도록 좋은 음식을 먹고 운동을 꾸준히 하려고 했다. 불행은 대비하고 기다리고 있는 사람에게 오히려 쉽게 다가오지 않을 것이라는 근거 없는 믿음도 있었다. 복부 초음파를 보던 의사가 “어랏?” 하고 실없는 소리를 내며 배꼽 부근을 세게 눌렀을 때도 신오는 방귀가 나올 것 같다는 생각뿐이었다. 의사가 차가운 젤을 다시 묻히고 초음파 단말기를 문지르다가 복막에 종양이 보인다는 말을 했을 때는, 그래서 요새 변비가 심했나, 라는 생각이 먼저 났다. 대형 병원에 가서 생검과 CT, MRI 검사를 마치고 소화기내과 교수의 진료실 앞에서 대기하고 있을 때도 신오는 회사 메신저를 보고 있었다. 몇십 억 단위 공공사업의 수주가 걸린 입찰 제안서의 마무리를 앞둔 시점이었다. 병원 검사로 연차를 낸다고 했을 때 팀원들은 모두 별일 없을 거라고, 하루 푹 쉬고 오라고 말했지만 메시지를 보내면서 신오를 계속 태그했다. 신오는 그날 마지막으로 진료실에 들어갔다. 의사는 젊고 피곤해 보였다. 예약을 가장 빨리할 수 있었던 의사였으니 어쩔 수 없지, 신오는 생각했다. 의사는 신오가 자리에 앉자 간단한 인사도 없이 모니터 화면을 돌려주었다. 그리고 마우스 커서로 신오는 잘 알아볼 수 없는 흐릿한 음영을 짚었다. 여기예요, 여기. 의사는 약간의 승리감마저 느껴지는 말투로 말했다. 복막의 종양은 전이 암이고, 여기가 원발 암이라고. “이게 숨어 있어서 찾기 어려웠거든요.” 의사는 다시 한번 마우스 커서를 움직였다. 췌장하고 담도 사이인데 위치나 크기가 좋지 않다고. 오늘이 금요일이니 당장 다음 주부터 항암치료로 크기를 줄여 보고 수술을 잡아 보자고. 신오의 핸드폰이 또 진동했다. 신오는 치료를 이주만 미뤄도 되냐고 물었다. 프로젝트가 있어서요. 이주 후에 마감이라. 의사는 처음으로 웃어 보

  • 관리자
  • 2024-05-01
야생 식물원

야생 식물원 하가람 식물원으로 가는 길이었다. 다이아몬드 모양의 철골로 둘러싸인 거대한 유리 온실에는 열대와 지중해 지역에서 볼 수 있는 이국적인 식물이 자란다고 했다. 한 달 전 나는 식물원 근처에 있는 여러 호텔을 찾아 은규에게 링크를 보냈다. 보통 때의 그라면 어디든 좋다고 했을 것이다. 레스토랑도, 카페도, 동네의 작은 아이스크림 가게조차도 모조리 내 선택에 맡기곤 했으니까. 하지만 그날 은규는 이미 예약한 곳이 있다고 하여 나를 놀라게 했다. 은규가 보내 준 링크를 열어 보았다. 넓은 통유리 창 너머로 식물원과 공원이 내다보이는 스위트룸이었다. 나는 조금 들뜬 채 답장했다. — 우리가 만난 지 곧 1년이래. 믿어져? 1년이라는 시간은 내게 유별났고 은규에게는 별다른 감흥이 없는 것이었다. 그가 전에 사귄 여자친구는 단 두 명인데 각각 4년, 5년을 만났다고 했다. 매번 석 달도 채 넘기지 못하는 나와는 달랐다. 이따금 은규에게 이전 연인들에 대해 물었다. 그들이 어떤 성향의 사람이었고 어떤 외양을 가졌는지 궁금했다. 처음에는 응응, 하며 대꾸해 주던 은규는 내가 그녀들의 음악 취향이나 살던 동네처럼 구체적인 정보까지 캐묻자 태도를 바꾸었다. 기억 안 나. 그는 말했다. 다 옛날이야기라고. 그 후로는 이전에 나눈 대화를 떠올리며 그녀들을 생각했다. 눈, 손톱, 말투, 그리고 신발. 나와 닮았을지, 닮았다면 얼마나 닮았고 다르다면 무엇이 다를지도. 상상을 이어 가다 보면 늘 한 가지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은규는 한 번도 애인과 잠자리를 가진 적이 없다고 했다. 그러니까 여자와 밤을 보내는 일이 오늘 그에게는 처음이었다. 서른을 넘긴 남성에게서 보기 드문 경우였지만 그가 처음인 게 좋았다. 그 점이 무엇보다도 나와 그녀들을 구분 지어 주는 것만 같았다. 차창에 머리를 기대었다. 햇볕에 데워진 창문에서 온기가 느껴졌다. 인터넷으로 보았던 화려한 꽃과 기다란 나무들을 떠올렸다. 노랗고 푸르고 분홍빛이 맴도는 공간을. 여름 휴가철이었고 도로는 차들로 빽빽했다. 졸음 껌을 씹는 은규를 보며 말했다. “오늘은 내가 운전하고 싶었는데.” “다음에. 너 힘들어.” 은규가 말했지만 나는 안다. 다음에도 그다음에도 그는 내게 차를 맡기지 않을 것이다. “보면 놀랄걸? 너무 잘해서?” 나는 허리를 세운 채 한 손으로 반원을 그려 보았다. 휙휙. 입으로 소리 내며 운전대를 쥔 그를 따라 했다. 그가 웃었다. 머릿속으로 주행하기. 그것은 나만의 놀이였다. 캠퍼스 변두리에 있는 H관 1층, 5평 남짓한 주차관리실에서 상상력을 충족시켜 줄 만한 것은 많지 않았다. 먼지 쌓인 커피믹스와 낡은 소파, 책상 위에 시간별로 놓여 있는 분홍색, 파란색, 노란색 주차권들. 지겨운 서류, 서류, 서류. 드물게 실장이 자리를 지키는 날이 아니면 대체로 혼자 그곳에서 일했다. 사람들이 찾아와 주차권을 사거나 정기 등록을 마친 후 돌아가면 나는 모니터에

  • 관리자
  • 2024-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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