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돈이여, 숫자여, 길과 숙소로 바뀌어라

  • 작성일 2012-12-01
  • 조회수 1,243

 

   꿈꾸는 것 같은 순간이 있다

   ─ 쿠바와 남미의 나날들 #1

 

 

 

돈이여, 숫자여, 길과 숙소로 바뀌어라

 

김성중(소설가)

 

 

 

 

 

   1.

 

   눈뜨고도 꿈꾸는 것 같은 순간이 있다. 너무 좋아서라기보다 비현실적이어서. 지금이 정확히 그렇다. 불 꺼진 밤비행기 안에서 맥주를 쏟지 않으려 조심하며 이 글을 쓰고 있다. 쿠바행이 결정된 것은 거의 일 년 전이다. 일찌감치 흥분을 소진한 탓에, 막상 떠날 때는 뚱하게 가라앉아 있다가 허둥지둥 비행기를 탔다.

   외국 작가들의 연보를 읽다 보면 나라의 지원으로 어디어디를 다녀와 무슨 글을 썼다는 말이 간혹 나오는데, 외국이니까 그렇겠지 했다. 한데 우리나라에도 작가들을 해외에 보내 주는 프로그램이 생겨났고 운 좋게 지원한 나라에 선정되었다. 3개월간 내가 머물게 된 나라는 무려 쿠바. 맙소사! 쿠바라니. 행운의 신이 졸다가 가지고 있던 대야를 내 머리에 쏟은 모양이다. 천문학적(내 기준에서) 액수의 항공료와 체류비가 주어지자 차가운 이성이 밀려들어, 나는 남미행 4개월을 추가하기로 결심했다. 지구 반대쪽으로 날아갈 기회가 왔는데, 쿠바에서 지내다 항공료 쪼끔 더 보태면 남미로 내려갈 수 있는데, 아시다시피 남미는 배낭여행자의 로망 아닌가. 항공료가 굳었으니 여비를 만들면 라틴 아메리카를 여행할 수 있을 것이다. 스스로 수전노라 여기며 결코 손대지 않던 철옹성 같은 내 통장. 그 견고한 성벽이 여리고의 함성으로 무너질 때가 온 것이다. 돈이여, 숫자여, 길과 숙소로 바뀌어라! 생활비로 녹느니 ‘여비’로 변하는 것이 네게도 영광일 터.

   정신을 차려 보니 문우들의 환송회다. 어느새 내 손엔 침낭, 해먹, 보디크림, 선크림 등등이 들려 있었고 성중아 잘 다녀와, 까를로스 조심해. 언니 겁먹지 말아요 같은 말들이 쏟아진다. ‘술자리’라는 꽃의 봉오리가 이윽고 한 장 한 장 만개해 활짝 피어나자 쿠바 가지 말고 이차나 가자, 아니다 겨울에 다 같이 통영이나 놀러가자는 흰소리들이 낭자한 가운데 나 혼자 일찍 자리에서 일어난다. 다음날 황열병 예방 접종 주사를 맞기 위해서다. 택시 창문 밖으로 취한 친구들의 얼굴을 보고 있으니 그제야 내가 먼 나라로 떠난다는 실감이 난다.

   이제 인천 공항. 에어 캐나다에서 규정한 수하물 무게가 약간 넘치는 바람에 짐을 조정한다. 3개월은 쿠바에 ‘살러’ 가는 것이고 그 후 4개월은 남미에 ‘여행’을 다니는 것이다 보니 짐이 많을뿐더러 복잡하다. 캐리어 하나와 38리터짜리 큰 배낭, 23리터짜리 작은 배낭 하나, 요렇게 셋으로 짐을 꾸리기까지 얼마나 진저리를 쳤는지. 매사 대충인 나와 꼼꼼한 엄마가 절충한 모종의 협상물을 부치고 마침내 국제선 입국장 앞에 섰다.

   커다란 배낭은 등에, 작은 배낭을 앞으로 멘 내 꼬라지가 우스운데 엄마 잘 다녀올게요, 하는 순간 둘 다 눈에 압력이 밀려온다. 울 줄은 몰랐는데 갑자기 눈물이 나와 당황스럽다. 이렇게 나이가 많은 자식인데도 어디 멀리 가는 순간이 오자 엄마는 엄마고 딸은 딸인지, 우리는 급격히 축축해진다. 군대를 갔다 온 남동생만 꿋꿋하다. 여권을 든 채 줄줄 울면서 당연한 사실을 깨달았는데, 일시적이라도 작별은 작별이라는 것이다…….

 

 

   2.

 

   가는 길이 정말이지 멀긴 멀다. 아홉 시간 비행하고, 밴쿠버에서 한 번 갈아타고 다시 다섯 시간가량 날아와서 토론토 공항 호텔에서 하룻밤을 잔다. 다음날 오후 4시 40분이 돼서야 아바나행 비행기를 타는데, 내 앞에 야구복을 입은 남자들이 시커멓게 줄을 서 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들은 쿠바 국가대표 야구 선수들이었다. 여기저기서 사인을 받거나 사진을 찍고 있는데, 난 아바나 공항에 내려서야 그들이 국가대표 선수인 걸 알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야구 좋아하는 박성원 선배를 위해 사인을 받아 두는 건데.

   밤 아홉 시에 아바나에 떨어졌다. 마침내 쿠바에 왔지만 컴컴해서 그런지 전혀 실감이 나지 않는다. 한국 코디네이터를 맡아 준 암뻴로스 그룹 직원이 마중 나와 있다. 한인 4.5세대인 세르기오 씨도 함께 있는데 이분이 호세마르티 문화원 직원으로 내 비자 문제며 기타 제반 상황을 도와주실 것이다.

   일행과 함께 세르기오 씨가 잡아 놨다는 숙소로 이동한다. 아침저녁을 제공하는 조건으로 한 달 방값이 우리 돈으로 약 백만 원가량이다. 쿠바는 이중환율제를 택하고 있어 외국인과 내국인의 물가를 다르게 적용한다. 한국에서 내 예상은, 방값이 비싸니 엄청 호화찬란한 숙소가 아니겠는가 싶었다. 그런데 와서 보니 골방도 이런 골방이 없다! 부엌 앞이라 요리하는 냄새가 진동하는 데다 가구라고는 달랑 침대 두 개가 전부. 창문이 없어 어두운 데다 결정적으로 화장실이 바깥에 있다. 이런 고시원 같은 곳에 살면서 백만 원씩 내라고! 이박삼일 걸려 날아온 나는 울고 싶은 심정이다.

   결론적으로 나는 딱 삼일만 이곳에서 지냈다. 이 숙소에는 아바나 대학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권봉철 교수님이 계셨는데, 이분의 통역으로 집을 나가겠다고 한 후 근처 골목의 빈 방을 뒤지기 시작해 마음에 드는 숙소를 찾아냈다. 아바나 대학 후문 쪽의 아름다운 스페인풍 건물로, 안에 서재도 있고 흔들의자가 잔뜩 놓여 있는 응접실도 있다. 집주인은 ‘아나’라고 하는 여자 변호사로, 이혼한 전남편 아스뚜르발 아저씨와 함께 살고 있다.(이혼 후에도 함께 사는 이유는 알 수 없으나 내 직업이 소설가라는 말을 들은 아나는 자기의 인생이야말로 소설이라고 했다) 점잖은 개 루나와 니뇨, 앵무새 한 마리와 이 집에서 밥을 주되 근처를 어슬렁거리는 고양이 네 마리도 있다. 요컨대 처음 숙소에 비해 한결 집다운 집이랄까. 방값도 훨씬 싸서 아침 포함 우리 돈 65만 원 정도다.

   이 집에서 나는 ‘훌리’로 불리고 있다. 내 천주교 본명인 율리아나를 줄여서 스페인식으로 부르는 것이다.

   쿠바에 온 지 나흘이 흘렀다. 지금 내 눈앞에 말레꼰 방파제가 있고 그 너머 푸른 하늘과 카리브 해가 펼쳐져 있다. 눈뜨고도 믿어지지 않는 비현실의 시간이 차차 현실로 바뀌어 갈 것이다. 시차 적응이 되지 않아 아직 멍하지만, 나는 지금 쿠바에 있다…….

 

 

  《문장웹진 12월호》

 

 

 

추천 콘텐츠

일상의 닻을 내리다 - 아바나에서 살아가기_2

꿈꾸는 것 같은 순간이 있다 ─ 쿠바와 남미의 나날들 #3 일상의 닻을 내리다 ─ 아바나에서 살아가기_2 김성중(소설가) 3. 문화생활 1) 출판기념회 집주인 아나의 친구가 책을 내서 출판기념회를 한다고 한다. 쿠바에서는 출판기념회를 어떻게 할까 궁금했는데 결론적으로 매우 소박했다. 강당이 있는 건물(간판이 없어 아직도 그곳이 학교인지 뭔지 모르겠다)에 사람을 모아 놓고 몇 마디 축사와 저자의 말을 들은 후 콜라를 탄 럼주를 나눠 마신다. 그럼 글쓴이가 무명씨냐, 그렇지 않다. 60대의 저명한 사회학자인 마르타는 쿠바와 칠레와 미국에서 공부했다. 이 자리에는 미국 대사를 비롯해 국제관계를 가르치는 교수님, 또 무슨무슨 교수님, 기타 ‘선생님들의 선생님’들로 그득하고, 기자도 두어 명 와 있다. 책 표지에는 바지와 높은 하이힐을 신은 여자의 뒷모습, 그 뒤로 작게 표현된 남자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제목은 『Yo Sola(나는 혼자다)』. 표지 분위기가 작가 연보에서 겨우 건져낸 소수의 단어로 추측컨대 페미니즘에 관한 내용인 것 같다. 강연 후에는 책을 사고 줄을 서서 사인을 받았다. ‘이곳에서 산 최초의 책이 여성 사회학자의 책이구나’라고 생각하며 책장을 넘기는데 기자가 와서 찰칵, 나를 찍어 간다. 동양인이 있으니 신기해서 찍는 것이다. 난 읽을 수 없는 책을 펼치고 맹꽁이 같은 표정을 짓고 있는데……. 쿠바는 노년층일수록 영어도 잘 쓰고 지식인이 많은 것 같다. 그때는 지금보다 덜 궁핍했고, 혁명세대라는 자부심도 강할 테니까. 반면 젊은이들은 어디에나 그렇듯 유행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 싸이의 〈강남스타일〉을 크게 틀어 놓고 따라하는 청년들을 여기저기서 많이 봤다. 2) 영화 12월 둘째 주가 되자 중남미 국제영화제가 열린다. 집 근처에 극장이 세 개나 있어서 나도 가보았다. 관람료는 우리 돈 백 원 정도? 거저나 다름없다. 그 앞에서 파는 팝콘이 관람료의 2.5배인데 말이지. 사회주의 국가라는 게 이럴 때 빛을 발한다. 쿠바의 의자들은 유달리 딱딱하고 불편하다. 일단 쿠션 있는 의자가 많지 않고 각도는 대체로 90도다. 극장 의자도 예상대로 작고 불편했다. 첫날 본 영화가 하필이면 세 시간짜리라서 벌서듯 본 다음부터 나는 극장에 갈 때마다 쿠션을 가져갔다. 그랬더니 한결 편하게 잠들 수 있었다. 어차피 여기서 영화를 볼 때마다 반은 자버리니까. 근데도 영화관에서 여러 명 사이에 끼어서 자면 달콤하단 말이지. 이상한 꿈도 꾸고……. 3) 파티 아스뚜르발 아저씨의 생일이다. 저녁부터 손님들이 모여들었다. ‘깜짝 파티라더니 그건 아닌가 보네?’라고 생각한 순간 커다란 초코 케이크가 나온다. ‘옳지, 저게 비밀이었구나.’ 얼음을 사오라고 일부러 내보낸 아저씨가 집으로 들어온 순간, 불을 끄고 기다리다가 일제히

  • 웹관리자
  • 2012-12-31
일상의 닻을 내리다 - 아바나에서 살아가기_1

꿈꾸는 것 같은 순간이 있다 ─ 쿠바와 남미의 나날들 #2 일상의 닻을 내리다 ─ 아바나에서 살아가기 김성중(소설가) 말이 통하지 않는 낯선 곳에 혼자 떨어지니, 내 행동은 다른 영역에 끼어든 동물과 유사해진다. 우선 안전한 주거지를 확보하고, 근거리에 화장실을 눈여겨봐 둔 후(문짝이 없는 화장실도 더러 있기에), 식사를 해결할 식당과 노점을 물색한다. 그 다음엔 반경 2킬로미터 내의 골목을 살살 다니며 지형지물을 눈에 익히기 시작한다. 가만히 보니 동물과 다를 바가 없다. 조금 더 시간이 흐르자 생활에 틀이 생긴다. 오전에는 아바나 대학 도서관에 가서 작업을 하고, 오후에는 하릴없이 쏘다니며 사진을 찍거나 영화관에 간다. 주말에는 한국 사람을 만나거나 올드 아바나에 가서 중국 음식을 먹고 온다. 이곳에 오니 그동안 내가 얼마나 상품과 미디어를 호흡하며 살았는지 알겠다. 쿠바에 와서 쿠바에 대해 알아 간다기보다 그동안의 내 생활에 대해 거꾸로 깨닫게 되는 것이 더 많은 것 같다. 이를테면 ‘마트에 가서 물건을 산다’라는 문장은 굉장히 자본주의적이다. 여긴 마트가 없다. 없진 않지만 차를 타고 나가야 드물게 나온다. 그리고 물건이 없다. 있긴 한데 가짓수가 적을뿐더러 사고 싶은 상품은 거의 없다. 일례로 나는 이곳 가정집에서 ‘책상’을 본 적이 없다. 가구도 귀하고 케첩도 귀하고 모든 물자가 다 귀하다. 미국의 경제봉쇄 때문이지만 배급으로 생존은 가능하기 때문에 상업이 발달하지 않는 탓도 있으리라. 돈 쓸 일도 없고, 인터넷도 없고, 핸드폰(하나 만들었다)에 걸려오는 전화도 거의 없으니 달리 ‘욕망’할 무언가가 없다. 이국에서의 망망대해 같은 하루하루는 금세 일상이 된다. 1. 먹는 일 ‘꼬히마르’는 「노인과 바다」의 배경이 되는 멋진 바닷가다. 전 세계에서 수많은 방문자들이 소설의 무대를 둘러보기 위해 온다. 그러나 내게는 이 해변이 ‘세계에서 삼겹살 구워먹기에 가장 좋은 곳’쯤으로 입력되고 말았다. 첫 주 주말에 나는 한국 교민의 초대를 받았다. 코트라 부관장 내외와 쿠바에서 7년간 지내 온 경화 언니네 부부다. 마을 건너편 해변에 차를 대고 숯을 피워 삼겹살을 굽고 소주를 마셨다. 소주와 삼겹살은 한국에 있을 때 내가 거들떠도 보지 않는 것들이다. 그러나 꼬히마르에 온 나는, 헤밍웨이고 뭐고 바다를 등지고 앉아 고기와 김치와 파채(채소는 경화 언니가 직접 농사지은 것이다. 언니는 심지어 동치미까지 담갔다)를 정신없이 먹었다. 쿠바에 온 첫 일주일은 굶주림의 시간이었다. 숙소에서 주는 아침은 먹자마자 배가 꺼지는 거친 빵에 과일 약간이 전부. 심지어 달걀도 없다. 달걀은 한 달에 성인 한 명당 열 개씩 배급받는데, 그나마 태풍 샌디의 영향으로 피해지역으로 모두 보내졌다고 한다. 쿠바 사람들의 한 달 월급은 40만 원 수준인데 이 돈으로 모자라는 달걀도

  • 웹관리자
  • 2012-12-26
바벨의 침묵

사유의 드로잉_제5회 바벨의 침묵 강수미 (미학, 한국예술종합학교 학술연구 교수) “신이 듣기를 원하는 유일한 인간의 언어, 라틴어를 상실한 비극적인 양들의 무리인 우리는 메에 하고 우는 것 외에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1) 논쟁과 관련해서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잊히지 않는 기억이 내게는 몇 있다. 그중에 특히 내가 사회적으로 발언할 권리가 더 많아지고, 내 주장에 힘이 더 실리면 실릴수록 더 씁쓸하게 되살아나고 스스로를 반성하게 되는 기억이 있다. 그것은 요컨대 논쟁 당시에는 꽤 유창한 언변과 분명한 논리를 펴 논쟁 상대로부터 동의 내지는 항복을 받아냈으나, 결국 그 사람과 관계가 소원해지거나 나중에 예상치 못하게 비판의 부메랑을 맞은 기억이다. 대체로 그런 기억 속에서 상대방은 내 의견에 반박하거나 항변하지 않았다. 다만 조용히 듣고 있다가 자신의 입장이나 생각을 드러내지 않은 채 자리를 마무리했을 뿐이다. 그래서 당시 나는 안일하게도 내 주장이 설득력 있게 그 사람에게 전달됐거니 생각했고, 나아가 어리석게도 서로 잠깐 불편하기는 했지만 결국에는 더 좋은 쪽으로 우리가 함께 가게 됐다고 기뻐했던 것 같다. 그것이 착각이자 오만이었음을 깨닫는 데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실제로 그 사람은 논쟁의 순간 정작 침묵함으로써 나를 공박했을 뿐만 아니라 아마도 가장 실리적인 방식으로 자신의 입장을 관철한 것이라는 사실을 인생 굽이굽이에서 깨달았다. 이를테면 침묵은 논쟁의 기술 중 매우 은밀한 힘을 가진 공격 무기였던 것이다. 제18대 대통령 선거가 끝나고 며칠이 지난 2012년 12월 말 현재, 대한민국의 대중 미디어는 물론 개인 사용자를 기반으로 한 SNS에서 말들이 넘쳐난다. 그 말들의 양은 선거를 치르기 전 상태를 압도하지만, 내용은 그보다는 훨씬 단조롭다. 예컨대 당선자가 된 후보의 소감에서 시작해 당선 후 국민에게 보내는 첫 ‘메시지’, 유력 인사들의 축하 인사말과 당선자의 답사 등이 속속들이 전달되고 있다. 또 그녀의 파란만장한 인생역정과 선거 성공담이 거듭거듭 매체를 통해 회자되고, 대한민국의 새 통치권자가 될 당선자에 대한 각계의 바람과 조언이 줄을 잇고 있다. 동시에 대통령 당선자를 둘러싼 그런 정치적인 말들과 비등한 양을 차지하는 말은 이번 대선 결과에 대한 사회학적 분석 담론이다. 최종 투표율 75.8%로 1987년 직선제 시행 이후 계속 하락 추세를 보였던 투표율이 처음 반등했다는 사실에서부터, 투표율이 70%가 넘으면 야당에 유리할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관성적 예측을 깨고 어떻게 여당 후보가 당선될 수 있었는가에 대한 분석에 이르기까지 범주상 비슷한 말들이 넘쳐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 담론 중 특히 의미심장하고 주목할 자료가 있다. ‘방송 3사 출구조사’를 기초로 전체 유권자 중 투표에 참여한 75.8%를 지역·세대·직업·학력·소득 등

  • 웹관리자
  • 2012-12-26

댓글 남기기

로그인후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을 남겨 주세요!

댓글남기기 작성 가이드

  • 타인에게 불쾌감을 주는 욕설, 비방 등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주제와 관련 없거나 부적절한 홍보 내용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기타 운영 정책에 어긋나는 내용이 포함될 경우, 사전 고지 없이 노출 제한될 수 있습니다.
0 / 1500

댓글0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