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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속좌담 '창작, 노동' 3차 〈문학 강연 시장〉

  • 작성일 2024-01-01
  • 조회수 731

연속좌담 '창작, 노동' 3차 〈문학 강연 시장〉


기획 연속좌담 ‘창작, 노동’ 3차

문학 강연 시장

2023년 11월호부터 2024년 2월호 사이에 총 4회의 좌담회 내용이 순차적으로 발표될 예정이다.


ㅇ 회차별 구성

- 1차 : 부업이 있는 작가, 본업이 있는 작가

- 2차 : (비)정규직 교육노동자로서의 작가

- 3차 : 문학 강연 시장

- 4차 : 대학(원)생 작가들의 미래설계

 

ㅇ 회의명 : 《문장 웹진》 2023년 기획 연속좌담 ‘창작, 노동’ - 3차

- 문학 강연 시장

ㅇ 일 시 : 2023년 12월 8일(금) 14:00~16:00

ㅇ 장 소 : 예술가의 집 라운지 룸

ㅇ 참여자 : 유인혁(문학평론가), 김수희(용두어린이영어도서관장), 김승일(시인), 오한기(소설가), 이현진(와우북페스티벌 담당자)

 

〈개회〉



# Part 1 : 개회 및 자기소개


유인혁 : 안녕하세요. 저는 오늘 사회를 맡은 유인혁입니다. 간단하게 오늘 모임에 대해 말씀드리자면 2023년도 《문장 웹진》 기획좌담 ‘창작, 노동’ 4번째 시간입니다. 요즘 창작자들을 크리에이터라고 하잖아요. 우리가 아는 창작자와 크리에이터라는 단어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크리에이터라는 말을 쓰면 전문가, 나아가 생산자로서의 정체성이 드러난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기획좌담은 이렇게 생산자이자 노동자로서의 작가를 되짚어 보기 위한 의도로 구성되었습니다. 오늘의 주제는 강연 시장입니다. 현재 강연이라고 하는 것은 작가에게도 독자에게도 그리고 그 사이를 잇고 있는 여러 사람한테도 굉장히 중요한 이벤트이자 산업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오늘은 그래서 강연 시장의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두 작가님 그리고 숨은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기획자분들을 모시고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우선 제 소개를 다시 드리자면 저는 대학교에서 비정규직 교원으로 일하고, 특히 국책사업인 인문학 관련 연구 지원 프로그램을 수행하고 있어요. 그중에서도 인문학 대중화 부분을 담당하고 있어요. 요 몇 년간 작가나 영화감독 혹은 피디, 유튜버 등 다양한, 이른바 크리에이터들의 특강을 기획하고 운영을 해왔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경험을 바탕 삼아 오늘 사회를 맡게 되었습니다. 각자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김승일 : 네, 저는 김승일 시인입니다.


김수희 : 반갑습니다. 저는 서울시 동대문구에 위치한 동대문문화재단 용두어린이영어도서관 관장 김수희입니다. 다양한 강연에 관심이 많습니다.

 

오한기 : 안녕하세요, 저는 소설가 오한기입니다.

 

이현진 : 안녕하세요. 저는 와우컬처렉 대표 이현진입니다. 저희 회사는 서울 와우북페스티벌을 주최, 주관하고, 올해로 19회가 되었습니다. 북페스티벌은 매년 10월경에 열리고 토크나 강연 프로그램 30개에서 40개 정도 진행된다고 보시면 됩니다. 올해 저희가 한 사업은 서울국제작가축제, 청소년인문교실사업 등으로 인문학과 문학 사업 위주로 하고 있습니다. 아마 그런 이유로 강연 시장 좌담에 초대받게 된 것 같습니다. 불러 주셔서 감사합니다. 

 

김승일 : 19년이나 됐어요? 진짜 오래됐네요.


# Part 2 : 문학의 얼굴과 목소리


유인혁 : 첫 번째 화제로 넘어가겠습니다. 일단 현재 독자들이 책이 아니라 작가와 직접 만나는 것이 어떤 의미인가에 대해서 함께 이야기를 나눠 보고 싶고, 또 그것이 왜 중요한가에 대해서도 얘기해 보고 싶습니다. 최근에는 점점 더 독자들이 책만큼이나 작가와 직접 만나고 싶어 한다는 것을 느낍니다. 심지어 책을 읽지 않아도 작가를 만나러 가는 자리를 소중히 여깁니다. 현장에 계시는 여러분들이 생각하는 바가 궁금합니다. 먼저 김승일 작가님부터.

 

김승일 : 나를 좋아하는 사람이 세상에 그렇게 많진 않거든요. 그런데 강연을 가면 팬들이 오니까 되게 기분이 좋아요. 아, 이 사람들이 안목이 있는 사람들이구나. (웃음) 옛날에는 책을 더 팔려고 강연을 한다든지 낭독회를 한다든지 행사를 가는 경우가 많았는데, 지금은 많이 달라진 것 같아요. 작가가 콘텐츠 크리에이터로서 강연을 하나의 매체로 활용하게 된 것 같습니다. 책이라는 매체만 이용해서는 경제 활동을 하거나 자신을 알리는 데 한계가 있으니까요.

 

유인혁 : 독자와 더 연결된 느낌을 그 장소에서 받게 되나요?


김승일 : 네, 연결된 느낌을 받는 것 같아요. 독자들을 직접 만날 수 있으니까요. 제가 오늘 여기 한 시간 반 일찍 와서 앉아 있었는데, 어떤 청소년이 갑자기 오더니 혹시 김승일 시인 아니냐고 해서 사인해 줬거든요. 근데 진짜 이런 경험 너무 오랜만이었어요. (웃음) 왜냐면 집에서 안 나오기 때문에, 게다가 제가 엄청 유명한 것도 아니기 때문에. 이런 경험을 하면 아, 진짜 행복하다. (웃음) 강연 가면 그런 만족감이 확실히 있는 것 같아요.

 

유인혁 : 네, 알겠습니다. 다음으로 김수희 관장님.


 

김수희 : 모든 도서관이 진행하는 행사 중 하나가 작가와의 만남입니다. 작가를 만나서 작가의 생생한 경험을 들을 수 있고, 그림책 작가의 경우 그림책을 출간하기까지 과정 등 다양한 이야기들이 나오는, 다양한 이야기가 오가는 작가와의 만남 프로그램은 정말 인기가 너무 많아요. 어떤 작가님이 우리 도서관에 오신다고 하면 홈페이지를 통해서 보시고 정말 많은 분이 전화 문의도 하고 홈페이지로 접수해요. 도서관이 작가와의 만남을 하는 이유는, 작가와 참여자 모두에게 이점이 있기 때문인 것 같아요. 작가는 자신이 쓴 책을 홍보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되고 무엇보다 자기가 쓴 책을 사랑해 주는 독자를 직접 만나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성취감을 느끼신다는, 모 작가님의 이야기를 들었어요. 독자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작가를 직접 만나 책에 대한 이야기를 생생하게 듣고 책에서 알 수 없었던 이야기들을, 궁금했던 내용이라든지 작가에 대한 궁금함 혹은 작가가 이 책을, 이런 표현을 왜 했는가, 이런 다양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기 생각과 비교해 보는, 작가와 독자 간의 소통이 가능한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오한기 : 김승일 작가님과 비슷한 것 같은데요. 저도 외부에 잘 안 나가다 보니까 책을 내고 작가와의 만남 같은 행사를 하면 개인적으로는 기념할 수 있는 계기가 되는 것 같아요. 독자들이 모인 자리에 가면 신나기도 하고요. 그리고 독자분들에게 제가 생각지도 못했던 질문을 받거나 소설을 다른 시각에서 바라보는 질문을 들어 보면 앞으로 어떻게 써야 하는지 생각도 하게 되고. 그런 면이 유익한 것 같고 앞으로 좀 더 소설을 써도 되겠구나, 라는 생각도 많이 들어요.

  

이현진 : 지금은 독자들이 읽는 경험 못지않게 작가와 대면하는 경험을 굉장히 중요시하고 또 그런 만남을 통해서 작가에 대한 애정이 더 깊어진다고 생각합니다. 아까 말씀하신 것처럼 아예 강연을 본 후 그 작가를 좋아하게 되어 독자가 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저희는 와우북페스티벌뿐만 아니라 여러 작가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이런 부분까지 확장시켜서 생각하고 있어요. 예를 들면 올해 조던 스콧 작가님을 초청했습니다. 그 작가님은 한국에는 그림책 작가로 알려져 있는데, 사실 이분은 시인이에요. 저는 이분의 시를 좋아하는데 한국에서는 출간이 되지 않았습니다. 이분의 시를 한국에 알리고 싶어서 강연 기획을 했고 패널로 참여할 시인을 섭외하기 위해 연락했을 때 상당히 많은 시인들이 조던 스콧 작가님을 아시더라고요. 그만큼 그림책을 통해서도 충분히 울림을 주셨던 분이죠. 시낭독과 토크 프로그램을 했는데 정말 구름떼처럼 많이 오셨어요. 그 모습이 정말 감동적이었고 외국 시인과 한국 시인들 사이에 서로 교감하는 모습이 정말 좋았습니다. 조던 스콧 작가님의 시는 한국어로, 이제니 시인의 시는 영어로 번역해 서로의 시를 읽고 교감할 수 있게 되어 무척 기뻤습니다. 독자들과의 만남뿐만 아니라 해외 작가님과의 교류를 경험함으로써 서로의 작품에도 조금은 영향을 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김승일 : 저도 조던 스콧이 유명해서 구름떼처럼 온 것 같기도 한데. (웃음) 〈강물처럼 말해요〉가 너무 유명해져 가지고.

 

이현진 : 맞아요. 근데 실은 〈강물처럼 말해요〉 프로그램은 오전에 했어요.

 

김승일 : 아침에 많이 오셨군요.

 

이현진 : 오전 첫 프로그램은 이미 만석이었고 세 시간 후에 프로그램을 하나 더 했죠.

 

김승일 : 와, 진짜 대단하다.


# Part 3 : 일의 기쁨과 슬픔


유인혁 : 확실히 교감의 순간이 있는 것 같아요. 그러면 본격적인 이야기를 해봐야 할 것 같아요. (웃음) 강연 노동, 저는 노동이라는 말을 붙이고 싶은데, 강연이 사실 노동이잖아요. 우리의 시간과 아이디어에 에너지를 투여하는 일이니까요. 이 일을 하면서 느낀 특별한 보람이 무엇인지 여쭤 보고 싶습니다.

 

이현진 : 예전의 사례로 말씀드리자면 몇 년 전에 아르코의 문학활성화 프로그램인 “문학하는 하루”의 마지막 프로그램으로 AI에 관한 프로그램을 기획했습니다. 당시 AI로 번역가라는 직업이 없어질 것이라는 이야기들이 많이 오갔고 관련해서 포럼이 열렸어요. 그 시기 마침 일본에서는 AI가 쓴 작품이 한 문학상의 본선에 올랐다는 기사가 나와서 화제가 되기도 했어요. 물론 나중에 AI가 혼자 쓴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지긴 했지만요. 그 당시 번역가, 소설가, 뇌과학자 이렇게 세 사람의 토크를 만들어 보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문학, 인간만의 영역일까?”라는 제목으로 토크를 진행했는데, 세 분 모두에게 준비가 많이 필요했어요. 가능한 많은 자료를 찾아서 보내 드리고 사전 모임에서 길게 생각을 나누기도 했습니다. 그때 참여한 분들이 이렇게까지 공부하며 토크 프로그램을 해보긴 처음이라며 힘들었지만 생각이 넓어져서 좋았다고 하시더라고요. 저 역시 준비는 어려웠지만 참여한 작가님들, 청중들 모두에게 좋은 시간이 되었다는 생각에 보람 있었습니다.

 

유인혁 : 확실히 청중들이 AI를 보러 가진 않을 것 같아요. 정말 인공지능이 대체할 수 없는 부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오한기 : 저는 강연 요청 들어오면 보통 거절하는 편이라 저한테 왜 간담회 청탁이 들어왔는지 의문이었는데 상주 작가 경력 때문에 요청했다고 하셔서 이해가 되더라고요. 저는 답십리도서관 상주 작가로 일했는데요. 특별히 보람을 느꼈던 걸 꼽자면, 어르신들 자서전 쓰기 특강을 진행한 게 기억에 남아요. 어르신들 스무 분 정도 신청을 하셨는데, 처음에는 그렇게 기대 안 했거든요. 그냥 잘 넘겨야지 정도의 마음가짐으로 시작했는데 막상 강의를 하니까 어르신들이 너무 열심히 하시는 거예요. 살아온 세월을 말씀하시면서 흐느끼기도 하시고 숙제도 너무 잘 해오시고. 마지막에는 직접 소책자 제작해서 나눠드리고 케이크 준비해서 출간 파티도 했어요. 이 책이 나의 평생 숙원 평생 꿈이었다고 말씀하시는데, 소설 쓰면서 그렇게 보람을 느낀 적은 처음이었던 것 같은 느낌? (웃음)

 

유인혁 : 그 뒤로 강연을 거절하셨던 이유를 물어 봐도 될까요?

 

오한기 : 사실 제가 사람들 앞에서 말을 잘 못하는 것도 있고요. 제 소설이나 책이 주제인 작가와의 만남 같은 건 하겠는데, 강연이라는 건 제가 쓴 소설 외 주제일 수도 있잖아요. 다른 주제 공부하기도 귀찮아서 거절하는 편이에요. 

 

이현진 : 오한기 작가님께는 부탁을 못 드리겠네요. (웃음)


김수희 : 아무래도 근무하는 곳이 도서관이다 보니까 도서관 입장에서, 사서 입장에서 이야기하게 되는 것 같아요. 저희는 작가와의 만남 진행 전에 사전 조사를 해요. 어린이, 청소년, 성인 대상으로 사전 조사를 해서 선정된 작가님들 대상으로 섭외 진행 후 작가와의 만남을 기획해요. 올해 동대문구 북페스티벌에 아동문학 작가님을 섭외했어요. 아이들이 정말 구름떼처럼 와서. (웃음) 정말 작가님을 바라보는 시선이 아이돌을 보는 것같이, 이렇게 계속 보면서 떨리는 목소리로 부모님을 바라보며 나 여기 앉고 싶다, 등등의 이야기가 들리더라구요. 작가와의 만남 종료 후 사인회 마무리를 아이들이 끝까지 함께했어요. 행사의 성공은 참 기쁘죠. 작가와의 만남 작가 섭외가 완료되면 기뻐요, 이 작가님이 오시면 지역 어린이들이 좋아하겠다, 혹은 특정연령대의 어른들이 좋아하시겠다 생각해서. 작가와의 만남이 진행되는 날 참석자와 작가님의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저희에게도 소중해요. 보람 있다고 할까요? 얼마 전 저희 도서관에서 아동문학 작가와의 만남을 진행했어요. 참여 가능한 학년과 인원이 정해져 있었거든요. 함께 온 형제들이 나도 이 작가님 너무 좋아하는데 해서 현장에서 회의를 거쳐 책상을 빼고 바닥에 방석을 깔아 더 많은 어린이가 강연을 듣게 되었어요. 양질의 콘텐츠를 가진 작가님을 모셔서 아이들, 성인, 이런 분들의 기쁜 모습을 볼 때, 저희는 굉장히 기뻐요. 정말 보람된다, 아, 오늘은 정말, 오늘 할일은 다 했다, 이런 마음으로 집에 갈 수 있는 것 같아요. 너무나 보람되고 작가와의 만남 만족도 조사를 진행할 때 작가님 모셔서 너무 좋았다, 연필로 꾹꾹 눌러 쓴 아이들의 글씨라든지 이런 부분들이 작가와의 만남을 진행하게 되는 원동력 같아요. 올해 서울시립대학교 도시인문학 연구소와 함께 강의를 진행했는데 작가님과 함께 토론하는 프로그램을 했어요. 마지막까지 한 명도 빠짐없이 다 오셔서 작가님 책에 사인 받고 작가님을 또 불러 달라, 이런 요청도 많이 있었어요.



김승일 : 저는 강연을 엔사분기라고 해서 분기마다 한 번씩 하는 게 주기적으로 있거든요. 재미공작소라는 공간에서. 그 행사의 주제도 항상 제가 직접 정해요. 언젠가부터 주제를 특별하게 정해야겠다고 결심했어요. 강연이 단순히 독자와의 만남이 되어서는 지속성이 많이 떨어지거든요. 독자 입장에서는 작가가 저번 만남에서도 했던 말을 그대로 반복하는 걸 보게 되잖아요. 어떤 강연은 유료로 진행하는데, 똑같은 말을 들으려고 계속 돈을 지불할 사람이 어딨겠어요. 그래서 저는 지금까지 썼던 작품을 직접 한 줄 한 줄 읽어 가면서 왜, 무슨 생각으로 썼는지 직접 설명하거나…… 시집의 시를 각각 한 줄로 요약해서 낭독하는 행사도 했고요. 가장 좋아하는 강연 방식은 제가 사람들 앞에서 직접 시를 쓰는 건데요. 말로 설명하면서, 지금부터 뭘 할 것이고, 요즘 기분이 어떻고, 어떤 소재를 선택할 것이고, 어떤 형식으로 됐으면 좋은지, 화자는 누구이고, 제목은 무엇으로 할 것인지 사람들 앞에서 실시간으로 직접 발표하는 강연이에요. 말 그대로 퍼포먼스 공연 같은 건데요. 단순히 낭독회를 여는 것도, 사람들에게 시집 출간에 대한 축하를 받는 것도 의미 있지만 매체를 최대한 활용해서 공연을 했다는 판단이 들 때 가장 만족스러운 것 같아요. 예술적 가치가 있는 일을 한 것 같아서요.


이현진 : 그 말씀을 들으니까 무척 관심이 갑니다. 2년 전인가 3년 전에 장정일 선생님의 시집 『눈 속의 구조대』가 26년 만에 출간되어, 장정일 선생님하고 전시 해설 프로그램을 한 번 했거든요. 반응이 좋아서 다른 시인님과도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김승일 : 그런데 솔직히 제가 볼 때는 그런 흥미로운 주제의 강연에 초대 되는 작가들이 늘 편중되어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조금 더 다양한 사람이 강연자로 섰으면 좋겠는데, 안전한 선택을 하기 위해서 너무 관성적으로 몇 안 되는 유명한 작가들에게만 기회가 돌아가는 것 같아서 안타까워요. 사실 강연을 준비하고 열어 주시는 분들의 노력도 잘 알지만, 작가들이 자율적으로 자기가 하고 싶은 강연을 좀 더 자유롭게 열 수 있으면 좋겠다는 아쉬움이 있어요. 오늘 좌담을 하는 여기 대학로에도 남는 공간, 시간이 많을 것 같은데 거기서 더 많은 작가들이 스스로 기획해서 자주 강연을 열 수 있도록 공간을 대여해 주면 좋겠어요.


유인혁 : 새로운 주제로 넘어가 볼까요. 아마 방금까지의 이야기와 연결된 부분일 것 같아요. 강연 노동에 참여하면서 어려웠던 점에 대해서 좀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 보고 싶습니다.

 

김승일 : 공간과 비용 문제가 가장 골치인 것 같아요. 입장료가 있는 강연에서는 무료 강연에 비해서 많은 대중을 만나기가 쉽지 않아요. 재밌는 강연을 기획해서 무료로 더 많은 독자들과 만나고 싶어도 공간 대여 문제를 생각하면 무리가 있으니까요. 저는 강연을 하는 목적을 지금 당장의 돈벌이로 두지 않고 더 많은 사람에게 문학을 친숙하게 만드는 기회로 삼고 싶은데 그러려면 일회성 행사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더 자주 독자를 만날 수 있는 연속 강연도 시도해 보고 싶어요. 공간이나 비용 문제가 쉽게 해결될 일이 아니라면 온라인에 참신한 문학 강연 영상을 올릴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요. 그런데 강의를 촬영하는 데도 비용이 드니까요. 저는 문학 강연이 더 많은 사람에게 닿을 수 있도록 지속성과 접근성이 높아져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기획자나 강연자들이 쉽게 공유할 수 있는 시설이나 기자재가 마련되기를 바라고 있어요.

 

유인혁 : 일종의 플랫폼을 만드는 이야기이기도 한 것 같네요. 지속 가능한 플랫폼이 있어야 이런 식의 선순환이 일어날 수 있다는 이야기인 것 같습니다. 공공기관 쪽에 계신 분들은 어떠신지 궁금합니다.

 

김수희 : 한정된 예산에서 말씀을 드려야 되는 죄송함. 사실은 이게 가장 어려운 점 같아요. 그리고 참여자분들이 당일 취소, 노쇼. (웃음) 도서관은 사실 돈을 안 받다 보니까 이런 노쇼 부분이 너무 커요. 급한 일이 생기신 분들도 있고 부모님들 같은 경우는 코로나19나 독감, 그런 다양한 질병으로 생기는 노쇼, 이런 부분이 제일 속상하긴 해요. 제일 어려운 점은 사실 저희는 당일 취소, 노쇼입니다. 비용을 받아야 하나 고민도 많이 해요. 단돈 천 원이라도 받으면 이 사람들이 그 돈이 아까워서라도 오지 않을까, 무료로 하니까 안 오는 게 아닌가, 그런 고민을 많이 하고요.

 

유인혁 : 사실 그 점이 기획자로서 언제나 걱정되는 부분일 것 같아요.

 

김수희 : 맞아요, 슬퍼요. 오늘 못 오신다는 전화가 오면, 전화벨이 울리면 가슴이 두근두근하면서 받죠. (웃음)

 

유인혁 : 그 빈자리가 되게 마음이 아픈 거잖아요. 이런 부분이 우리를 신경 쓰이게 하는 것 같습니다.

 

이현진 : 저희도 정부사업을 많이 하는데 아시다시피 정부사업으로 하는 강연은 비용을 받을 수 없어서 노쇼가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 저희는 노쇼를 대비해서 좌석 수의 1.5배에서 2배까지 강연 신청을 받습니다. 최근에는 자신의 관심사에 맞는 좋은 프로그램들이 정말 많기 때문에 좌석이 100~200석 정도 되는 경우 기본적으로 50% 이상이 노쇼이고 때로는 80%까지 나오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조금 무리가 되더라도 1.5배 이상 신청을 받고 대신 강연 신청 페이지에 노쇼를 고려해 1.5배 신청을 받아 오셨을 때 다소 혼잡할 수 있습니다, 이런 문구를 넣기도 합니다.

 

김수희 : 저희도 1.5배까지는 아니더라도 노쇼를 대비한 예비자를 받기는 받아요. 그런데 예비자분한테 전화를 해서 갈게요, 너무 감사해요, 라고 끊었는데, 다음날 안 될 것 같아요, 이런 분들이 늘어나는 거예요. 그러다 보니 1.5배까지 받아야 하나, 고민을 하게 되네요.

 

이현진 : 1.5배까지 받아도 괜찮으실 거예요.

 

유인혁 : 좋은 팁을 얻은 것 같네요.

 

김수희 : 네, 너무 좋아요.

 

유인혁 : 다음으로 오한기 작가님.


 

오한기 : 저도 도서관 상주 작가로 일하면서 강연보다는 기획 쪽으로 어려웠던 것 같아요. 아무래도 기획이 처음이라 적응 기간이 필요했던 것도 있고요. 앞서 말씀하신 비용 문제도 공감이 됩니다. 작가들을 초청하고 섭외할 때 쓰는 비용이 한정되어 있으니까 왠지 죄송스럽기도 하고요. 노쇼도 생각보다 많더라고요. 특히 주민분들 오신다고 하고 안 오시고 작가분들 초청하면 텅 비어 있어서 민망하고 당황스럽고요. 또 제 전공은 소설인데 소설 창작은 인기가 그리 많지 않더라구요. 이유는 모르겠는데 소설보다는 시가 인기가 많았어요. 제 전공 외에 다른 부분을 기획하다 보니까 고민이 많이 되더라구요. 초등학교 저학년 대상 어린이 동시 쓰기, 방학 특강 같은 거 기획하기도 하고. 또, 에세이 특강, 노벨상 수상작 독서 토론회 클래스도 기획했는데 금방 마감되더라구요.

 

김수희 : 맞아요, 정말 많이들 하세요.

 

오한기 : 나는 소설을 가르치고 싶었는데 그게 아니니까. (웃음)

 

김수희 : 원치 않는 방향으로. (웃음)

 

오한기 : 네, 원치 않는 방향을 기획하고 공부를 해야 하잖아요, 커리큘럼을 짜고 강연 준비를 하는 과정에서 이거 예상보다 어려운데, 괜히 상주 작가 한다고 했나, 라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이현진 : 앞에서 와우북페스티벌의 프로그램을 왜 강연이 아니라 토크로 하는지와도 연결되는데요. 매년 축제의 주제가 있고 그 안에서 다루고 싶은 소주제에 대해 강연을 요청 드리곤 했는데 어떤 작가님은 저희가 요청 드린 주제가 아닌 다른 주제를 이야기하는 경우도 있고, 어떤 때는 축제의 전체 주제 안의 부분인 소주제를 요청 드렸는데도 작가님이 전체 주체를 모두 다루어 내용이 너무 광범위하고 가볍게 다룰 수밖에 없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정확하게 역할을 드리는 방식의 토크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있습니다. 작가님 입장에서 난처할 경우도 생각이 나네요. 강연을 요청하는 기관이나 회사에서 정확한 요청 없이 알아서 해달라거나 작가님이 하고 싶은 이야기 뭐든 좋다고 말하는 경우도 있는 듯합니다.

 

김승일 : 저도 종종 주최 측에서 준비한 것이 하나도 없어서 당황스러울 때가 있었어요.

 

유인혁 : 강연 주제에 대해서 아무런 언질 없이.

 

이현진 : 그냥 뭐든. (웃음)

 

김승일 : 웃기는 얘기가 하나 있어요. 제가 고등학생이었을 때 교보문고에서 시인과의 대화를 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참석했는데, 시인 여섯 명에 관객 여섯 명이 있었거든요. 시인분들이 강연을 시작하고 한참 지났는데, 갑자기 어느 아주머니가 손을 들더니 이게 무슨 대화냐고, 시인과의 대화라고 해서 왔는데 자기들끼리만 이야기를 하냐고 막 화를 내시는 거예요. (웃음) 그 순간이 요즘도 자꾸 기억이 나요. 너무 웃겼거든요.

 

유인혁 : 기묘하게 통쾌한 순간이네요.

 

김승일 : 네, 강연이 좀 지루하게 이어지고 있었는데. 잊지 못할 순간이었죠.

 

유인혁 : 시인과의 대화를 기대했는데 시인들의 대화였다.

 

김수희 : 아, 시인이랑 이렇게 주고받는 대화였다.

 

이현진 : 네, 주고받는. 저도 작가님들이 제가 제안한 내용에서 조금 더 발전시켜서 ‘이것까지 해보면 어떨까요?’라고 말씀해 주시는 경우가 더 좋더라고요.

 

김수희 : 저희도 만약에 작가님을 섭외하면 그 작가님의 책 내용의 한 구절이라든지 이런 부분 몇 개 뽑아서 드리거든요. 책을 먼저 다 읽고 그렇게 말씀을 드렸을 때 조금 더 풍성하게 이야기도 많이 나오고 만족도가 훨씬 더 높았던 것 같아요.


# Part 4 : 시장 속의, 그러나 상품은 아닌


유인혁 : 제가 실무를 하면서 느낀 건데 작가하고 연락했을 때 연락이 되지 않고 에이전시를 통해야만 연락이 되는 시대가 되었더라고요. 왜냐하면 작가에게 직접 메일이나 전화 통화를 시도할 수가 없고 에이전시가 이러저러한 제한 상황들, 일정, 금액, 교통비라든지 모든 것을 조율하는, 그래서 한편으로는 이게 자리 잡힌 산업이 되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한편으로는 굉장히 낯설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드리고 싶은 질문은 작가가 에이전시와 계약해서 한 명의 플레이어로 활동하는 시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여쭤 보고 싶습니다.

 

오한기 : 저도 에이전시는 사실 잘 모르는데 보통 잘 팔리는 작가들, 블러썸 이런 데서 계약을 하는 걸로 알고 있어요. 근데 할 수만 있다면 저는 작가로서 괜찮은 것 같아요. 강연도 많이 잡을 수 있고. 어쨌든 돈을 벌어야 하는데 문학과 관련된 커리어를 이어 가면 좋으니까. 문제는 좀 애매한 작가들 있잖아요, 저처럼. 애매한 작가들은. (웃음) 그런 기회도 없고 작가 커리어를 유지해 가며 어떻게 살고 어떻게 돈을 벌 수 있는지도 잘 모르기 때문에 다른 일을 해야 하는데요. 아무튼 그래서 저는 사실 작가 에이전시라는 주제가 일단 공감이 잘 안 간다고 해야 할까?

 

김수희 : 작가 에이전시를 열심히 검색해 봤어요. 연예인처럼 에이전시가 있다는 건가 검색을 해봤는데 16년도부터 블러썸크리에이티브가 시작되면서 유명하신 분들이 소속돼 있는가 봐요. 그러니까 홍보부터 시작해서 자, 너희는 글만 써라 그 이외의 일은 전부 우리가 해준다, 약간 이런 느낌을 받았어요. 작가님들이 사실 도서관에, 굉장히 감사하게도, 그러니까 도서관은 적은 예산으로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기관이어서 합리적인 가격으로 섭외 시 허락해 주세요. 저는 제 책을 도서관에서 봤을 때 기분이 너무 좋다, 혹은 봉사하는 마음으로 오신다. (웃음) 플랫폼을 이용해서 섭외를 해본 적은 없어요. 이 플랫폼이 활성화되어서 도서관들도 만약에 작가님을 그렇게 섭외하게 된다면 우리는 작가와의 만남을 못 하게 되지 않을까, 라는 걱정을 많이 하게 됐어요.

 

김승일 : 제 생각엔 에이전시가 다양하지 않아서 생기는 문제 같기도 하고. 제가 만약 에이전시 소속이라면, 분교나 도서관 같은 데서 열리는 강연에는 가격 제한을 두지 말라고 일러두었을 것 같거든요. 실제로 저는 어디서 강연을 하느냐에 따라 가격을 보지 않을 때가 더 많아요.

 

김수희 : 그런 분들이 사실 없어요. (웃음) 어디에서 섭외가 들어갔느냐에 따라서 가격이 달라진다고 들은 기억이 납니다.

 

김승일 : 안타까운 일이네요. 작가가 에이전시에 소속되는 건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작가들에겐 저작권 관리도 필요하고, 돈을 벌기 위한 강연도 필요하니까요. 하지만 저의 경우는 문학의 저변을 확대하기 위해서라면 더 싸고, 더 지속 가능하게, 더 접근성 높게 강연을 다녀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게 더 좋은 기회로 돌아올 거라고 믿거든요. 그래서 분교, 도서관에서 행사가 열리면 비용을 생각하지 않고 움직일 때가 많고요. 네, 실제로 그래요. 왜냐면 저 출판사에서 연락 왔을 때 가격 더 낮춰도 된다고도 전화하거든요. 분교 같은 데서 오면. 제 친구의 경우 그 돈이면 절대 안 가는 유명한 작가인데도 사회봉사 목적이면 돈을 안 받고 많이 가요. 근데 지금은 출판사랑 통화해서 한 거지 에이전시는 없거든요. 에이전시가 있다면 더 유연하게 할 수 있지요. 에이전시가 생기면 시장이 너무 상품화되지 않느냐, 라고 걱정하는 것 같은데, 제가 봤을 때는 상품화가 돼야 하는 곳에서는 상품화가 돼야 하고, 오히려 더 예술성이나 문학의 가치를 증진하기 위해서, 인문학을 홍보하기 위해서라든지 대중화하기 위해서 한다면 더 싸고 더 지속 가능하게 더 접근성 높게, 이렇게 해야 우리 미래에도 좋을 것 같아요.

 

김수희 : 오히려 더 긍정적인 효과가 있을 것이다.

 


이현진 : 이야기 들으니 떠오르는 일이 있는데요. 모 에이전시 소속의 어떤 작가님이 사석에서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에이전시에 수수료가 나가기는 하지만 비용을 많이 높여 주기에 오히려 더 편하다고요. 저 역시 작가 에이전시는 필요한 영역이라는 생각이에요. 이미 해외 작가들은 대부분 에이전시와 계약해서 일을 하고 있어요. 한국 에이전시와 조금 다르긴 한데 해외 에이전시는 출판기획, 강연, 저작권에 이르기까지 모든 부분을 관리해 주고 있어요. 에이전시에서 작가의 작품세계와 앞으로 나갈 방향까지 모두 의논을 할 수 있는 거죠. 편집자가 하는 기획 역할까지 에이전시에서 해주기에 에이전시에 소속될 필요가 있죠. 한국에는 강연 전문 매니지먼트 회사가 굉장히 많아요. 물론 여기에 소속된 문학 작가가 많지는 않지만요. 아무래도 대중이 관심을 많이 가지는 분야인 자기계발이나 심리학 쪽 작가들이 많아요. 문학 쪽에서도 앞서 말씀하신 블러썸크리에이티브 외에도 에이전시가 만들어지는 추세입니다. 예를 들어 그린북 에이전시가 있는데 여기는 원래 SF 전문 출판 저작권 에이전시인데 SF 전문 작가 에이전시로 바뀌었습니다. 여기 소속된 작가로 정보라, 김보영, 듀나 등 유명한 작가들이 많습니다. 그린북 에이전시는 해외 에이전시와 가장 유사한 방식으로 운영을 하고 있어요. 블러썸크리에이티브와 같은 작가 에이전시는 아무래도 수수료로 운영이 되기에 유명 작가 위주일 수밖에 없어요. 이외에도 얼마 전 편혜영, 이홍, 윤고은 작가님이 에이전시 ‘소설’을 만들어서 저작권을 직접 관리하기도 하세요. 또 다른 경우를 소개하자면 장르 전문 스토리 프로덕션인 안전가옥이 있습니다. 지금은 조금 달라졌지만 편집자가 아닌 PD가 있어서 트리트먼트를 만드는 방식으로 기획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여기는 OTT와 2차 저작권에 집중하는 듯하고요.

 

유인혁 : 방금 이야기 들어 보니까 이 에이전시가 단순히 강연, 어떤 그걸 수행, 대행 정도가 아니라 사실은 작가라고 하는, 사실은 자기 고용 사업가라고 해야 하나요, 이 사람의 모든 수익과 운영에 관련한다는 생각이 드네요. 한편으로는 협동조합처럼 작가들의 다양한 일을 서로 품앗이할 수 있는 조직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음 질문입니다. 조금 조심스러운데요, 좀 적나라한 질문일 수 있을 것 같은데. 자신의 일 영역에서 강연이 차지하는 경제적 비중에 대해서 직접적으로 질문을 드리고 싶어요.

 

김승일 : 저는 강연이 경제적 비중을 많이 차지하지 않아요. 페이가 적기도 하고, 자주 섭외가 오는 편도 아니어서요. 대신에 저는 아카데미에서 강의를 하거든요. 강의가 경제적 비중을 많이 차지하죠. 하지만 낭독회나 대중 강연이 지금 당장 돈이 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더 많이 참여하고 싶어요. 지금 더 많은 독자를 만나려는 시도를 하지 않으면 미래가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요. 강연을 더 많이 하고, 그걸 기록해서 유튜브 같은 곳에 업로드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김수희 : 유튜브로 올리면? 사람들의 얼굴을 모자이크 처리를 해서요?

 

김승일 : 관객석이 아니라 강연자를 비추면 되지 않을까요?

 

김수희 : 아, 본인만 나오게. 강의하시면 보통 어떤 강의를?

 

김승일 : 시 창작 강의를 주로 합니다.

 

김수희 : 아, 시 창작.

 

김승일 : 네. 저는 시 창작 강의 17년 정도 했어요.

 

김수희 : 도서관이나 공공기관에서도요?

 

김승일 : 해봤습니다!

 

김수희 : 아, 하셨군요.

 

김승일 : 외부 강의까지 포함한다면 얘기가 좀 다른데요. 제 경우는 경제적 비중의 대부분을 강의가 도맡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오한기 : 저는 거의 제로에 가까워요. 일 년에 한 번 정도 하나, 보통 책 나올 때. 그때도 보통 삼십 만 원 사십 만 원 받으니까 사실 큰돈은 아니고요. 대학교나 고등학교 강의 해달라는 요청도 몇 번 왔는데 고사했어요. 그쪽으로 커리어를 쌓았으면 지금쯤은 괜찮았을 것 같아 약간 후회가 되기도 하고요.

 

유인혁 : 최근에 이런 강연의 경제적 비중이라고 할까요. 소설가와 시인 집단에서 어떠한 변화들이 있는지, 분위기를 한번 여쭤 보고 싶네요.

 

김승일 : 강연으로 경제 활동을 하는 사람들은 굉장히 소수인 것 같아요.

 

오한기 : 저도 비슷한 것 같아요. 강연 많이 하는 분들은 소설 강연뿐만 아니라 미술, 인문학 등 다른 분야를 소설과 접목시킬 수 있는 방향에서 행사를 많이 하더라구요.

 

김승일 : 영화도 같이.

 

오한기 : 맞아요, 영화. 극장에서 영화를 본 뒤 토크하는 패널로 섭외된다든가.

 

이현진 : 요즘은 작가의 브랜드가 중요한 시대가 되었어요. 작가님들 스스로를 홍보해야 책도 판매되고 강의 요청도 많이 들어오는 것 같습니다. 


김수희 : 사실 청소년 상대로 강의를 하다 보면 청소년 그 질풍노도의 시기에 이 사람이, 이 작가님이 너무 좋아졌어요 그러면 거의 찐팬처럼 계속, 계속 가고. 내 친구의 친구도 이 작가님을 좋아하게 돼요. 그래서 정말 강연의 선순환. 이렇게 유명해진 작가분들을 사실 도서관에서는 그런 분들을 (웃음) 섭외를 하기 때문에 다양하게 점점 더 커지는 거예요.

 

유인혁 : 한편으로 우리가 언제 문학을 만나느냐와 연결되는 문제인 것 같아요. 사실은 책이 위로가 되기도 하지만 사람에게 위로를 받기도 하는데 그런 접촉이 만들어지는 건 분명히 의미 있을 것 같습니다. 김수희 선생님은 어떠신가요?

 

김수희 : 어린이영어도서관이다 보니 강의 쪽으로 조금 더 많이 예산이 편중되어 있어요.


유인혁 : 이 부분은 좀 궁금해지네요. 사실 저는 강연 시장의 굉장히 큰 행위자 중의 하나가 정부라는 생각을 하고 있거든요. 왜냐면 지자체라든지 교육부가 강연에 들어갈 예산을 편성하고 집행하니까요. 어때요? 공공기관 쪽에서 바라보기에는 이런 사업들이 앞으로 축소될 거라고 생각하나요?

 

김수희 : 먹고살기 힘들어지면 가장 빨리 없어지는 부분이 문학, 예술 쪽이라고 듣기도 했고. 지자체별로 예산이 많이 줄었다고 들었어요. 최대한 다른 공모 사업을 통해서 내년에도 우리는 지역의 다양한 이용자분들을 위해서 좀 더 많이 노력을 하겠다, 이런 마음으로 다가가고 있어요.

 

이현진 : 최근 피부로 느끼는 것은 문화예술 쪽 예산이 많이 줄었습니다. 특히 독서와 문학 관련 예산이 많이 줄었어요.

 

김수희 : 실질적으로 작은 도서관, 문화가 있는 날이라는 공모사업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내년부터 예산이 없어져서 할 수 없다고 해요. 너무 슬프더라고요.

 

유인혁 : 현장의 반응과 호응과는 무관하게 예산이 축소되는 현상이 분명히 있는 것 같네요.

 

김수희 : 강연을 할 수 있는 공간이 도서관의 규모에 따라 다르잖아요. 열 명이 들어갈 수 있는 강의실이 있고, 스무 명이 들어갈 수 있는 강의실이 있고, 삼십 명이 들어갈 수 있는 강의실이 있어요. 그런데 저희가 가진 강의실은 그렇게 많은 인원이 들어가는 강의실이 아니다 보니 공모사업 신청에 한계가 있어요. 최소 참석 인원이 정해져 있거든요.

 

유인혁 : 다음 질문을 드리고 싶은데요. 강연 시장의 순기능과 부작용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고 싶습니다.

 

이현진 : 정말 조심스러운 문제예요. 사실 시장이라고 표현하는 것도 불편하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야기를 하자면 강연 단가가 올라가는 점이 순기능이기도 하면서 부작용이기도 한 듯합니다. 앞에서도 계속 언급된 부익부 빈익빈 문제가 더 커진다는 점에서 말이죠. 유명 작가의 경우 사례비가 천만 원을 상회하기도 하거든요.

 

오한기 : 진짜요?

 

이현진 : 너무 놀라셨죠. (웃음) 유명 작가님들 특히 문학이 아닌 다른 분야의 작가님들은 높은 사례비를 받는 분들이 더러 계시는 듯해요. 상대적으로 인지도가 낮은 작가들은 매우 낮은 사례비를 받지만요. 그래서 앞서 이야기한 강연 전문 에이전시가 많아지는 거죠.

 

오한기 : 작가로서 순기능은 원고료 외 다른 돈벌이 수단을 마련해 준다는 점인 것 같고. 또 예전에는 학교 강의나 문학 과외 정도였다면 강연 시장이라는 수단이 생겼으니까 좋은 것 같아요. 그건 좋은 기회 같지만 부작용으로는 하는 사람들만 계속하게 된다는 거죠. 제가 기획자라도 경력자를 쓰는 게 안전한 선택인 것 같기는 해요. 그래도 기획적인 측면부터 의식적인 노력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듭니다.

 

김수희 : 저희 관의 입장에서는 어떻게 보면 순기능은 강연을 통해서 새로운 작가를 발굴할 수 있어요. 이 작가님 몰랐는데 정말 너무나 좋아, 책을 통해서 이 작가님을 알게 됐는데 실제로 만나 보니 너무 괜찮아 하고 소개시켜 드리게 되잖아요. 근데 부작용은 이제 아무리 좋은 강연이라도 참여자의 수준이나 판단으로 이어져서 저평가되는 부분들이 많이 아쉽고. 이제 책을 읽고 팬이 됐는데 작가와의 만남 후 더 이상 이 작가의 책을 읽지 않는다, 이런 이야기도 들리는 분들이 있어요. 아동문학 작가인데, 그 작가님이 강연을 하신 곳이 초등학교였어요. 엄마와 아빠가 떨어져서 사는, 또는 엄마 아빠가 없는 아이들이 있는 곳이었는데, 거기서 “나는 내 부모님이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작가가 되었다.”라고 말해서 아이들이 상처받는 모습을 뒤에서 계속 보게 돼 아, 저분은 앞으로 함께 작업할 수 없겠다, 이런 부분도 있고. 많은 대중이 아닌 소규모 모임에 적합한 강사분들이 있어요. 그런 걸 원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거기서 명수라든지 장소를 어떻게 섭외해야 하는가 이런 점이 역기능이라고 생각해요.


김승일 : 저는 순기능이 훨씬 많다고 생각해요. 이야기했다시피 경제 활동도 되고 독자를 만날 수도 있고 여러 매체로 활용되기도 하고요. 부작용은, 예를 들면 제가 요즘 접했던 것 중 가장 놀랐던 게 책 요약 서비스거든요. 문학의 경우는 화자가 처음부터 끝까지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는 것을 지난하게 따라가 보는 경험을 포함하니까요. 그게 등한시되는 것 같아 안타까웠어요. 강연도 책 대신 접할 수 있는 요약 서비스처럼 취급될까 봐 조금 두려운 것 같습니다. 사실 이건 사회자님의 질문을 듣고 제가 갑자기 지어낸 부작용이나 다름없는데요. 사실 저는 문학 강연을 찾아오시는 분들은 강연을 통해서 문학에 대한 관심이나 사랑이 더 깊어질 거라고 낙관적으로 생각하는 편입니다. 그래서 문학 강연의 순기능이 훨씬 더 확고하다고 판단하고 있어요.


# Part 5 : 더 나은 강연 문화를 위하여



유인혁 : 많은 생각이 드네요. 순기능이라면 역시 우리의 경제적 도구가 늘어나는 것은 확실하고. 근데 그에 반해서 빈부 격차, 문화예술 분야에서 빈부 격차와 수입 격차가 극명하게 발생할 수 있다는 것들이 문제라는 생각이 듭니다. 한편으로 김승일 작가님이 말씀해 주셨는데 사실은 드라마나 영화도 축약해서 보는 시대잖아요. 그러니까 사람들이 두 시간 넘게 영화를 보는 것, 열여섯 시간 넘게 미니시리즈를 보는 것을 하지 못하고 오 분 내로 요약해서 보는 시대인데 한 자리에 앉아서 두 시간 독서를 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시대인가. 그런 시대에서 작가와 만난다는 것은 어쩌면 책과 나를 연결시켜 주는 몇 안 되는 기회일 수도 있죠. 강연 문화, 그리고 강연 시장을 위해 제안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들어 보고 싶습니다. 김승일 작가님부터 들어 보겠습니다.

 

김승일 : 오늘 많이 언급했던 것처럼 문학주간 같은 행사가 더 자주 열리면 좋겠어요. 물론 작가들에게 지원할 수 있는 비용의 한계도 존재할 것이고, 작가들이 지금보다 더 자발적으로 행동해야 가능한 일이겠지만요. 하지만 작가들에 대한 직접적인 지원을 조금 줄이더라도, 예술 지원 시스템이 강연 공간을 작가들에게 지속적으로 확보해 줄 수 있다면, 그래서 강연이 더 빈번하게 열릴 수 있다면 어떨까요? 작가들과 관객, 문학과 대중의 관계가 분명히 더 친밀해질 수 있을 거라고 봅니다.

 

유인혁 : 그러니까 수익성을 제한하더라도 더 많은 사람과 만날 수 있는 장소나 기회가 생기면 좋겠다는 의미죠?


이현진 : 사실 저는 조금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어요. 이건 강연 문화에 제안하고 싶은 것과 맥락이 같은데요. 정부에서 하는 행사들 역시 부족한 예산이라 거기에 맞추지 않을 수 없지만 저희는 그 경우에도 작가 사례비를 높일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제안하고 책 축제 역시 적은 지원금을 받지만 작가 사례비를 높이기 위해 노력하는데요. 인식 변화와 제도적 변화가 뒷받침되어 이어지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김승일 : 입장료를 조금 싸게 받더라도 나눠줄 순 없나요?

 

이현진 : 정부에서 하는 행사는 세금으로 운영되기에 입장료를 받는 것은 어렵다고 봐요.   

 

김수희 : 도서관의 경우 대관을 하고 있어요. 대관비가 무료인 곳도 있고 무료가 아닌 곳도 있는데 대관할 때 처음에는 독서 모임으로 신청해서 대관해 드렸는데 실제 사용은 종친회, 정치적인 모임 등 신청한 것과 달라요. 근데 확실하게 작가님과 같이 강연을 할 사람들이 같이 온다, 이렇게 된다면 강연의 대중화를 위해서 명확하게 투명하게 된다면 무료 대관 제안도 한번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김승일 : 자율성에 모든 걸 맡기면 안 되는구나.


김수희 : 맞아요. 자율성에 맡기면.


오한기 : 강연 문화라는 게 콘텐츠를 만드는 건데, 오프라인에 집중되었다고 생각하거든요. 코로나 때 줌 독서 토론회나 인스타그램, 유튜브 작가와의 만남을 몇 차례 해봤는데 생각보다 괜찮더라구요. 장소나 거리에 제약을 받지 않으니까요. 나름 피드백도 느낄 수 있고요. 그런데 코로나 끝나고 오프라인으로 확 넘어가 버리는 것 같아서 아쉽더라구요. 그래서 강연 콘텐츠를 담을 수 있는 플랫폼을 좀 더 다양화하는 게 어떨까 합니다.

 

김승일 : 오한기 작가님 말씀이 맞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사람들이 좀 웃어 주고, 앞에서 반응이 있어야 저도 신나서 강연을 할 수 있을 텐데 줌으로 진행하면 혼자 떠드는 것 같아서 뻘쭘해질 때가 있어요.

 

오한기 : 성격에 따라서 다르니까.

 

김승일 : 오프라인도 성격이 있다.

 

오한기 : 네, 맞아요.

 

이현진 : 온오프를 같이하면 오프로 사람들이 오지 않아요.

 

오한기 : 그렇죠, 안 오죠.


이현진 : 오프라인 강연은 확실히 작가와 청중의 교감이 더 느껴져요. 그렇기에 오프라인을 포기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에요.

 

김수희 : 코로나로 온라인 콘텐츠로 줌을 굉장히 많이 했어요. 독서 동아리, 작가와의 만남, 강연 등 정말 많이 했는데, 이 부분의 노쇼는 사실 50프로예요. 이 부분이 정말 너무 커요. 그러니까 반응이 너무 직관적이에요. 이 작가님 너무 괜찮은 것 같아서 들었는데 아 별로네, 하고 나가버려요. 갑자기, 너무 예의 없게 그런 행동들을 하세요.

 

김승일 : 근데 그게 보여요, 그렇죠? 줌으로 하면 한 명 나가면 보이잖아요. (웃음)

 

김수희 : 그러니까요. 빈자리가 보이잖아요. 하지만 도서관 같은 경우는 코로나 시즌이 끝났지만 온라인 플랫폼을 계속 구매하고 있어요. 그래서 그 플랫폼 사용에 관한 부분을 도서관에 함께 제안해도 좋을 것 같아요.

 

김승일 : 나 혼자 쓸쓸한 줄 알았는데 세상이 준비된 곳들이 있군요. (웃음)

 

유인혁 : 다음으로 김수희 관장님.

 

김수희 : 저희는 더 나은 강연 문화를 위해서 제안하고 싶은 게 무엇일까, 이 질문에 대해서 정말 고민을 많이 했어요. 수준 높은 문화 시민을 참여자로 모시는 것도 중요하고 양질의 콘텐츠를 가지신 작가님을 섭외하는 것도 중요한데 사실 관의 입장에서는 시설 부분이 큰 것 같아요. 그러니까 아무래도 조금 더 안락하고 편안하고 준비한 강연을 준비하는데 갑자기 빔이 꺼진다거나 (웃음) 노트북이 안 된다거나 이런 일이 없도록 틈틈이 시설 부분에 투자를 더 해야 하지 않을까 이런 고민을 하게 되고, 어떻게 해서든지 예산을 확보해야겠구나,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유인혁 : 중요하면서도 무거운 문제네요.

 

김수희 : 현실적인 부분인데, 그래도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유인혁 : 또 한편으로는 기획자가 강연의 중요한 참여자잖아요. 강연자와 기획자가 이러한 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것도 강연 문화의 발전을 위해서 도움이 된다는 생각이 들어서 뿌듯합니다. 시간이 많이 흘렀는데 마지막으로 간단하게 소감 말씀해 주시고 마무리하겠습니다.


김승일 :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제가 찾아보지 않았을 뿐 이미 실무자분들이 많이 노력하시고, 준비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어요. 정말 재밌는 시간이었습니다.

 

김수희 : 플랫폼이라든지 몰랐던 부분을 알게 된 소중한 시간이었고 작가님들의 고민은 사실은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저희 자신만의, 도서관만의 고민을 하기에도 힘들어서 작가님들이 어떤 생각을 하시는지, 다른 기획자분들이 어떤 생각을 하시는지 몰랐는데 오늘 조금 더 시야가 넓어진 느낌이고, 그리고 앞으로 강연 준비를 할 때는 이런 점을 조금 더 세밀하게 살펴야겠다, 이런 걸 느낄 수 있는 유익한 자리였습니다.

 

오한기 : 저와 다른 차원에서 강연 문화에 대해서 고민하시는 의견을 듣고 또 같은 글을 쓰는 입장에서도 저보다 풍부한 생각을 하셔서 많이 배우고 생각도 많이 바뀌는 자리였습니다.

 

이현진 : 작가님들은 당사자지만 저는 작가님들께 강연을 요청하는 쪽이에요. 어떤 면에서 보면 입장이 다를 수도 있어서 좌담회에 참여하기로 한 후 걱정이 앞섰어요. 궁극적으로 작가님들이 안정적인 상황에서 좋은 작품을 쓰고 더 많은 독자들을 만날 수 있기를 응원한다는 점에서는 같은 생각을 가졌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유인혁 : 네, 감사합니다. 모두 수고 많으셨습니다. 오늘 좌담은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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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책쾌의 여정 우당탕탕 독립출판 북페어 기획자 도전기 임주아 뜻밖의 부재중 이름이 폰에 떠 있었다. 도서관에서 근무하는 S 팀장이었다. ‘이 시간에 무슨 일이지?’ 일로 만난 공무원이 퇴근 시간을 넘어 전화 문자 콤보로 연락했다는 건 모종의 긴급 상황 아닌가 싶었다. 아니나 다를까 어딘가 다급해보이는 목소리였다. “헉 제가요?” 요지는 전주에서 처음 독립출판박람회를 여는데 내가 총괄 기획을 맡아줬으면 한다는 것이었다. 시기는 6~7월이라 했다. “오늘이 벌써 3월 7일인······” 기간도 기간이지만 독립출판 전문가도 아닌 내가 총대를 메는 게 맞는지 주제 파악에 나섰다. 그러자 팀장은 전주에서 책방을 운영하는 동료와 팀을 꾸리면 어떻겠냐며 인건비도 한번 생각해보라고 했다. 당황스러우면서도 눈에 광이 돌았다. 단기간에 아이디어를 짜고 사람 모으고 경주마처럼 내달리는 일은 내 주특기 아니던가. 그렇게 살아온 임시변통스러운 삶에 드디어 어떤 보상이 따르려나. 함께할 내 기쁜 동료는 누구인가. 기획자 동료 구하기 첫 타깃은 전주에서 10년 가까이 독립출판 전문책방을 운영중인 뚝심의 M이었다. 그의 책방 인스타그램 프로필에는 ‘기성으로 출간된 도서는 입고를 받지 않습니다’라는 문구가 단호하게 적혀 있다. 설사 혈육이 역사에 남을 명저를 썼다 하더라도 독립출판이 아니면 가차 없이 거절 메일을 전송하고야 말 꼿꼿함이었다. 그런 M의 책방에는 개인이 스스로 쓰고 만든 각양각색의 독립출판물이 대거 진열되어 있는데 그 큐레이션된 목록에는 웰메이드 작품인 ‘책방을 꾸리는 중입니다’라는 에세이도 있다. 화학공학과를 나온 공대생이 어쩌다 모교 대학로의 한 건물 지하에서 책방을 시작해 지금 모습에 이르게 됐다는 애환 서사가 담긴 책이다. 그는 그 책을 들고 전국을 쏘다니며 독자를 만났다. 주6일 책방 문을 여는 그가 문 닫는 날엔 어김없이 북페어 현장에 가 있었으니까. 캐리어를 끌고 고속버스를 타고 기꺼이 책 보부상으로 분해온 그는 힘들다 힘들다 해도 매년 매회 출전을 멈추지 않았다. 전주에서 오로지 독립출판만을 다루는 책방 주인은 M이 유일해서 대표성도 남다른 터다. 때문에 함께 하자는 내 제안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 그의 눈높이도 짐작이 간다. 일찍이 S 팀장이 독립출판박람회 관련 자문을 구하고 싶다고 여러 번 M의 책방을 찾았으나 그는 ‘박람회’라는 명칭부터 맞지 않다고 생각해 소통에 소극적이었던 것이다. 특히 독립출판 행사는 스스로 책을 낸 제작자나 책방 운영자들이 자발적으로 시작해 열리는데 전주에선 도서‘관’ 주도로 만들어질 행사라 생각하니 최대한 피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럴수록 나는 M이 적극적으로 합류해 의견을 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잘되면 그가 책방 꾸리는 일에도 전환점이 올 거라

  • 관리자
  • 2024-05-01
도깨비 이야기

[에세이] 도깨비 이야기 한정현 최근 친구의 부탁으로 점집에 동행한 적이 있었다. 사실 무속에 대해선 알면 알수록 이건 민속 문화의 하나이지, 미래를 알려주는 예언과는 거리가 멀다는 생각이 든다. 주변에서 무속 때문에 큰 피해를 본 경우도 있어서 나같은 경우는 사실 이제 거의 점괘를 안 믿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번 경우는 친구가 갓 신내림 받은 애동이라기에 나 또한 어디 구경이나 한 번 해보자 하는 생각에 따라가겠다고 했다. 문화로서의 무속은 여전히 관심거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상 옆에서 들어보니 그 영검하다던 무속인의 점사는 무척 일반적인 내용이었다. ‘어깨가 아프지 않느냐’ ‘밤에 늦게 자지 않느냐’ ‘두통이 가끔 오지 않느냐’ 오랜 시간 책상에 앉아 있는 친구의 직업상 대부분 추측 가능한 증상이었다. 게다가 친구는 불면증도 없고 두통도 없다는 거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순간 친구는 자신이 혹시 두통이 있는 걸까? 이런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마치 도깨비에 홀린 것처럼 그 말에 순간 따라가고 있더란다. 하긴 나도 그 당사자가 되면 순간 나도 모르게 내가 그런 건 아닐까? 싶기도 할 것 같다. 말 그대로 이런 걸 보고 도깨비에 홀린다고 하나 보다. 다행히 친구는 도깨비에 홀려 도깨비가 되기 전에 그곳을 빠져나왔다. 그런데 이후 나는 왜인지 내내 도깨비 생각을 하게 되었다. 살면서 도깨비 만나기 사실 어렵지 않군, 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말이다. 사실 어릴 땐 도깨비 이야기를 많이 들었던 것 같다. 아무래도 큰 산을 끼고 있는 작은 시골마을에서 나고 자라다 보니 자연스레 온갖 민간 신들의 이야기를 듣게 되면서인 것 같다. 흔히 도깨비와 저승사자는 이길 수 없고 오로지 속일 수만 있다고들 한다. 그들이 그만큼 무서운 존재라는 것인데 특히 도깨비에 대해서는······. 얼마 전 영화 〈파묘〉에서도 나왔지만, 도깨비들은 주로 안 쓰는 물건에 혼이 깃들어 만들어지는 귀신이다. 이후엔 도깨비가 그 사물을 대신하여 그 자체가 되어버리기 때문에 일반적인 혼령하고는 아주 다른 무시무시한 존재가 되어버린다고 한다. 한데 찾아보니 이 험상궂은 도깨비는 사실 일제강점기 이후 도입된 ‘일본식 도깨비’ 이야기가 일부 섞여 있다고 한다. 대표적으로 혹부리 영감이 그러한데, 우리가 알고 있는 혹부리 영감에서는 영감이 부러 도깨비를 속여 혹을 떼지만 이것은 일제강점기 때 일본이 만들어낸 이야기라고 한다. 원래 한국 전래동화에서는 도깨비가 그리 나쁜 존재로 나오지 않는다고 한다. 영감과 같이 어울려 놀던 도깨비들이 서로의 교감을 통해 친밀해진 후 먼저 나서서 영감의 혹을 떼준다는 이야기라고 한다. 생각해 보면 혼령이 물건에 깃들어 만들어진 것이 도깨비라고 한다면 무슨 혼령이냐에 따라 좋은 도깨비가 될 수도 있고 나쁜 도깨비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내가 이십 년 가까이 이고지고 다니

  • 관리자
  • 2024-05-01
어떤 기준

[에세이] 어떤 기준 전석순 “그래도 꽃은 잊지도 않고 제때제때 피네.” 예년보다 개화가 늦어지던 해였다. 어머니는 작년 봄 집 근처 공원에서 찍은 사진을 살펴보며 분명 이번 주쯤에는 피었어야 했다고 중얼거렸다. 이어서 괜히 달력을 들춰 보며 오늘 날짜를 확인했다. 사진 속 날짜와 일치했지만 어째선지 올해는 아직 봉오리조차 불거지지 않았다. 왠지 노크라도 해봐야 하는 게 아닌가 싶었다. 뭐 잊은 거 없냐고. 어디선가 계절을 알려주는 나무는 계절관측목이라고 부른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개나리, 진달래, 매화, 벚꽃 같은. 이 기준에 따르면 아직 봄이 오지 않은 셈이었다. 옆에서 발톱을 깎던 아버지는 아마 까먹은 거 같다고 말하며 히죽였다. 사람도 깜빡깜빡하는데 꽃이라고 다를 게 있겠냐면서. 심드렁하게 이어지는 목소리에 어머니는 아버지를 슬쩍 흘겨봤다. 안 그래도 요새 외출하고 집에 들어올 때 수선 맡긴 바지를 찾아와야 한다거나 식초와 긴장이 떨어졌다는 사실을 더러 잊었던 일이 떠올랐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대수롭지 않게 넘길 수도 있는 일이었지만 어머니는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게 아닌 눈치였다. 몇 번쯤 길을 걷다가도 순간순간 또 뭔갈 잊고 지나쳐 버린 건 없는지 따져 보는 것 같았다. 한참 골몰하다가 겨우 친목회 회비 날짜를 기억해 낼 때도 있었다. 그때부터 사소한 거라도 핸드폰에 따로 메모를 해두고 수시로 빠뜨린 건 없는지 살펴봤다. 요가 교실 수업 신청 날짜나 관리비 납부 마감일과 함께 수리기사 방문 일정까지. 고개를 들다 어머니와 눈이 마주친 아버지는 돌아앉으며 우물댔다. “한 해쯤 그냥 지나가면 뭐 어때서.” 아버지의 생각과는 달리 뉴스에서는 연일 전국 봄꽃 개화 예상 일정을 내보내며 전문가까지 나와 늦어진 원인을 분석했다. 동네 사람들은 환경오염을 들먹이며 사나워진 날씨 탓에 종잡을 수 없는 계절 때문일 거라고 입을 모았다. 꽃도 계절을 헷갈리는 거라고. 개중에는 진짜 꽃이 피지도 않고 봄이 지나가는 게 아닐지 염려하는 이도 많았다. 어머니도 그중 하나였다. 나중에는 꽃을 향해 잊을 것 같으면 알람을 맞춰 두거나 메모하는 습관을 기르라고 조언해 줄 기세였다. 어머니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앞산을 내다보고 매일 지나다니던 화단과 공원을 천천히 돌아봤다. 더러 까치발까지 하고선 주변을 휘둘러보기도 했다. 혹시 진즉 만개한 꽃을 놓친 게 아닌가 싶은 듯했다. 처음에는 조금 서운한 기색이더니 나중에는 아예 울상이 되었다. 어느새 나도 거리를 돌아다니면서 꽃이 필 기미가 보이는지 기웃거렸다. 언뜻 봉오리라도 보이면 사진을 찍어 바로 보내드리려 했지만 좀처럼 찾아볼 수 없었다. 바람까지 서늘하니 날짜와는 상관없이 정말 봄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이러다가 봄을 건너뛰고 곧바로 여름이 되는 게 아닐까,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그즈음 제법 많은 양의 봄비가 내리더니 하루 사이에 기온이 크게 올랐다. 곧 지천으로 사방이 꽃이었다. 지난해 유난히 다닥다닥 모여 있

  • 관리자
  • 2024-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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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크헤라
    감동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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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1-05 15:08:04
    크헤라
    감동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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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크헤라

      댓글이 삭제 되었습니다.

      • 2024-01-05 15:20:21
      크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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