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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곡곡] 전주 살림책방(제2회)

  • 작성일 2023-06-01
  • 조회수 1,246

《문장 웹진》 책방곡곡 전주 살림책방(제2회)

사회, 원고정리 : 살림
참여자 : 재재, 아리엘, 모아
책 : 김복희, 『시를 쓰고 싶으시다고요』(달, 2023)


창밖 독서모임 2회, 2023년 5월 4일, 지향집



살림 :

오늘은 두 번째 시간으로 ‘시’라는 문학의 창문을 열겠습니다. 시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 어떤 책을 나눌까 하다가 김복희 시인의 ‘시를 쓰고 싶으시다고요’를 정했어요. 읽어 보니 어떠셨어요?

아리엘 :

얼마 전에 글쓰기 모임을 여기서 했어요. 글쓰기 모임을 한 번도 한 적이 없는데, 이 책을 읽고 나면 시를 써 보고 싶지 않을까? 개인적으로 SNS에 글을 올릴 때도 너무 진지하게 써서 시 같다는 생각을 해서 이 책이 더 궁금했어요. 시는 어떻게 쓰는 것일까.

재재 :

저는 중학교 때쯤 운문과 산문에 대한 구분을 배웠어요. (웃음)

아리엘 :

학창 시절에는 시험을 보기 위해 배우다 보니 시를 느껴 보지 못하고 공부만 한 것 같아요. 그래서 그때 본 시는 감흥이 없었어요.

모아 :

요즘 블로그에 글을 올리고 있는데 기록만 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거든요. 그래서 책을 보면서 글쓰기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 거 같아요. 책에서 절대독자 이야기를 하잖아요. 누가 반응하지 않더라도 누군가는 좋아하겠지, 라는 마음으로 저도 모르게 절대독자를 믿고 있지 않았나, 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재재 :

저도 그 부분에 밑줄 쳤는데, 대신 저는 글쓰기보다는 절대독자라는 말이 내가 마음을 붙잡을 수 있는 어떤 존재, 내가 살아갈 때 흔들리지 않게 잡아 주는 힘 같은 존재가 있다고 믿으면 조금 더 단단하게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작가님이 “모든 독자들에게 사랑받으려는 마음을 버리세요.”라고 말하잖아요. 그처럼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으려는 마음을 버려야겠다.

아리엘 :

저는 책을 볼 때 머리말, 맺음말을 보는 편인데, 이 책에는 머리말, 맺음말이 없고, 순서대로 쓴 것도 아니고 시를 쓰는 수업을 받는 모험가들에게 남긴 답변을 위한 글들을 모아 둔 느낌이 들어서 작가에 대한 궁금증이 컸어요.

모아, 재재 : MBTI에서 N이다.

아리엘 :

상상력이 뛰어난 사람인 것 같다, 아주 작은 돌멩이 하나만 줘도 이야기를 쓸 수 있는 사람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재재 :

그렇게 넓은 상상력을 시에 함축해서 담으려면 얼마나 그 시간이 길고 고통스러울까? 그래서 퇴고의 시간이 길다고 하잖아요.

아리엘 :

퇴고의 시간이 자신에게 기회라고 했으니까 그렇게 괴롭고 고통스러운 시간만은 아닐 것 같아요.

모아 :

퇴고라고 하는 것도 신기했어요. 저는 글을 쓰고 한 번도 돌아본 적이 없거든요.

재재 :

그대는 MBTI에서 E라서 그래요. (웃음)

아리엘 :

오늘은 제가 여러분에게 드릴 질문을 몇 가지 준비해 왔는데요. 103쪽에 ‘시는 무엇일까요?’라고 하면서 106쪽에 “시를 용의자에 빗대어 말해 보세요.”라는 말이 너무 재밌었어요. 예전에 제가 아로마 클래스를 할 때 캐모마일 향을 제가 ‘느끼한 금발 남자’라고 한 게 기억났어요. 각자 시를 뭐라고 생각할지 궁금하네요.

모아 :

저에게 시는 재미없다? 지루하고 재미없다고 느껴져서, 사람이라면 소개팅이나 데이트를 할 때 그런 이성일 것 같아요. 모악산의 아침 ‘시인의 방’에 시집이 200권 정도 있는데 한 권도 안 봤어요. (웃음)

살림 :

그럼 그 방을 왜 만든 거예요?

모아 :

집에 있어서 모아 놨는데, 손님들을 위해 만들었지 전 볼 생각이 안 들어요. 왜 그런가 생각해 봤는데, 아까도 말했지만 시는 뭔가 분석하고 해석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어요. 그래서 솔직히 이 책을 처음 마주할 때도 부담이 없진 않았어요.

재재 :

저도 예전에는 비슷하게 생각했어요. 어렵고 함축된 의미를 찾아야 할 것 같고 난해하다는 생각이 강했는데, 학산시집도서관에 가서 수많은 시집 중에 한 문장이 저에게 울림이 있는 걸 경험한 뒤 시라는 건 굳이 해석해야 하는 게 아니고 내 마음에 와 닿는 게 있구나 깨닫고 조금 바뀌었어요.

아리엘 :

이래서 우리나라 국어교육이 참 아쉽다는 생각이 들어요. 내가 쓰는 글이 시인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는 이유가, 그 글을 쓸 때는 쓰지 않고는 못 배기는 마음이 들어서이기 때문이에요. 시를 쓰는 사람도 그렇겠죠. 시를 누군가 읽고 안 읽고가 중요한 게 아니라 또는 그 시를 누군가 읽으면서 의미를 찾는 것보다 그 시를 쓸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해봤어요.

모아 :

알겠어요. 시인의 방에 다시 들어가 볼게요. (웃음) 재재가 한 말도 이해가 돼요. 예전에 어떤 아이가 쓴 시를 봤는데 참 좋았어요.

재재 :

어린이 얘기를 하니까, 요즘 그림책을 좋아하게 됐는데, 그림책이 시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답을 내지 않고 겉으로 드러나진 않지만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어요. 간단한 듯해도 가볍지 않아요.

아리엘 :

책에서 작가님도 그걸 말하는 것 같아요. ‘나 말고 내 시를 믿자’라는 챕터를 보면, “시를 쓸 때는 제게는 선행하는 ‘자기’랄 게 없다.”라고 했는데, 한 줄이 다음 줄을 데려오고, 나올 수밖에 없고, 더 이상 눌러 담을 수 없는 글이 있으면 시로 표현된다는 말이 와 닿아요.

재재 :

문학을 하는 사람들의 시, 시인의 시는 정해진 형식이 있다고 하지만, 우리 일상 에서도 충분히 시를 쓸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살림 :

82페이지에 ‘시는 술처럼 산문은 물처럼’에서 시와 산문의 차이를 말하는데, 글에서 ‘자신을 의식’하는 것에 따라 시와 산문을 구분하는 정의가 저에게는 새로웠어요. 그런 생각은 해본 적이 없거든요. 저는 사실 시인들이 말하는 세계가 경이로울 때가 있어요. 남들이 볼 수 없는 세계를 보고, 그 세계를 보이지 않는 언어로 표현한다는 것 자체가 대단해 보여요. 보이지 않는 언어로 보이는 세계를 담아낸다는 것이 매력적이에요.

아리엘 :

가끔 외국 시인의 번역된 시를 읽으며 좋다는 생각은 들지만, 원어를 이해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시인이 시를 썼을 때, 단어의 힘이 있잖아요. 시인들에게는 단어가 무기일 텐데 번역되는 순간 다른 것이 되어버린 느낌?

살림 :

지난 시간 신유진 작가님의 남편 분이 프랑스인이라고 말씀 드렸잖아요. 예전에 이야기를 나누다가 한국어를 열심히 배우는 이유가 아내의 글을 한국어로 읽고 싶어서였다는 말이 떠오르네요. 단순히 한국에서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아내의 글을 한국어로 읽어 보고 싶다는 꿈이 너무 멋졌어요.

아리엘 :

이쯤해서 두 번째 질문을 드리고 싶은데요. 여러분들은 시를 배워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 있나요? 117쪽을 보면 시 쓰기에 대한 실전이 담겨 있는데, 어떻게 쓸 것인가 했을 때 작가님은 “탐정처럼 관찰하고 진실을 수집한다.”라고 말해요. 이 부분을 이야기할 때 여름의 발 챕터에서 발마사지 해준 친구의 이야기가 떠올랐는데, 이미지라고 하는 것이 어디까지 다가갈 수 있고, 어디까지 멀어질 수 있는가,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재재 :

180페이지 보면, 시인으로서 시간을 보내는 법을 가르친다면서, ‘뜬구름 채집’에 대해 설명해요. “빡빡하게 채운 필사 노트, 수십 번 읽어 너덜너덜해진 책장, 썼다 지우느라 책상 위에 수북해진 지우개 가루 등등. 하지만 어떤 노력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세간에서는 그것을 헛된 노력, 헛수고 등으로 표현하지만 나는 ‘뜬구름 채집’이라는 이름으로 지어 부르고 있다”, 이 부분에 밑줄을 그으며 꼭 무언가 쓰는 것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관찰하는 시간, 탐정처럼 그것을 찾는 시간, 수집하는 시간 등 말 그대로 ‘채집’의 시간이 필요한 것 같아요.

모아 :

어쩌면 우리는 그런 과정 없이 결과물로 시를 바라봤기 때문에 어렵게만 느끼지 않았나 싶네요. 단순히 꽃을 바라보는 것이나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를 듣는 것은 하나도 어렵지 않잖아요. 전 어릴 때 동시로 상도 많이 받았는데, 재미가 없어진 게 평가받기 시작한 때부터인 것 같아요. 잘 써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재미가 사라진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부터요.

아리엘 :

맞아요. 글을 쓴다는 것, 특히 시를 쓴다는 것의 진입장벽이 너무 높은 것 같아요. 내가 시를 쓴다고? 그런 말을 차마 할 수 없을 것 같고요.

모아 :

시인만 시를 써야 할 것 같고, 재재는 시 써본 적 있어요?

재재 :

내 기억에는 없지만, 있겠죠? (웃음)

살림 :

작가님도 책에서 어디 가서 직업을 물을 때, 시인이라고 말하는 게 꺼려진다고 하잖아요. 그러고 보면 시인들 자신도 부담을 느끼는 것 같아요.

모아 :

안도현 시인이 부모님 친구여서 가끔 뵀는데, 어린 마음에도 어려운 분이라는 기억이 남아 있거든요. 나중에 커서 보니 정말 유명하시더라고요.

살림 :

저도 책방을 운영하지만 글을 쓴다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없는? 그런 막연함이 있었어요. 누군가 나의 글을 본다는 사실 때문에 나의 글쓰기 능력이라든지 책을 얼마나 읽었냐 하는 것들이 드러나는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책을 낸다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없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에요.

모아 :

저 어제도 누가 저에게 책 내라는 말을 들었는데.

아리엘 :

요즘은 독립출판물이라고 해서 등단하지 않아도 책을 내잖아요. 책방을 운영하는 입장에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살림 :

솔직히 말해 가끔은 화가 날 때도 있어요. 책이라고 말하기 어려울 정도의 가벼운 일기의 글을 판매해 달라고 입고 문의를 하는 분들이 계시거든요. 그러면 애서가로서 과연 이걸 구입해서 서가에 둘 사람이 누가 있을까, 라는 생각부터 해요. 물론 만드신 분은 대충 만들지 않으셨겠지만 다른 책에 조금 미안한 느낌이랄까? 특히 시집을 보면 여전히 너무 저렴하게 판매되고 있는데, 안에 담긴 글을 보면 저 시집을 내기 위해 얼마나 고뇌하고, 얼마나 많은 퇴고의 시간을 보냈을까, 라는 생각이 들어요. 아무래도 그런 식으로 비교를 해서 그런가 봐요.

모아 :

그럴 수도 있겠네요. 가끔 보면 이게 왜 인기 있지, 라는 생각이 드는 책들이 있어요. 글 쓰는 세대가 달라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요. 감성적인 사진을 넣은 일기 형태의 에세이들이 인기가 많잖아요.

재재 :

이제는 책을 낸다는 게 나를 표현하는 수단으로 쓰이기도 하고, 취미로도 쓰고, 그것과 별개로 작가는 다른 분야의 느낌. 꼭 작가라고 해서 직업을 가진 사람만 글을 쓰는 게 아니라 그림이나 음악을 취미로 하는 사람들이 있고, 예술로서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조금 다양해진 것 같아요.

살림 :

‘시’라는 문학 장르만 보면 사람들과 조금 더 소통하기 위해서는 다양할 필요도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깊이 있는 시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것이 거부감이 들 정도로 어려움이 있다면 다양함으로 풀어 봐도 좋을 것 같아요.

아리엘 :

아무리 좋은 글도 아무도 읽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사라지니까요. 저도 다양화 되는 것을 좋다고 생각해요. 개인이 자신을 표현하는 하나의 방식이잖아요. 시는 고전적이라는 편견이 있어요.

재재 :

어렵게 쓴 시가 꼭 멋있는 것은 아니잖아요. 그래서 누구나 시를 써도 되지 않나?

살림 :

떠오르는 시인? 내가 좋아하는 시인이 있나요?

아리엘 :

저번 모임 때도 말했지만 독서모임 중에 발표를 위해 백석 시인의 <사슴>을 읽으며 좋아하게 되었고, 외국 시인 중에는 올라브 하우게를 좋아하는데, <어린 나무의 눈을 털어주다>라는 시집을 보면서 그의 시에 매료되었어요.

재재 :

전 미야자와 겐지의 <비에도 지지 않고>요. 잘 몰랐던 작가인데, 책을 보고는 위로도 되고 어딘가 편안함을 느꼈어요.

살림 :

저는 의외로 고 이어령 선생님이 쓰신 <어느 무신론자의 기도>라는 시집이 있는데, 여느 시인들이 쓴 시와 달리 좀 더 일반적인 언어로 쓰셨고, 일상의 것들에 대한 통찰과 시선이 너무 좋았어요. 책 123페이지에 ‘호기심’을 품는 것으로 시를 시작한다고 하잖아요. 앞에서 탐정, 관찰, 채집, 이런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모든 것이 호기심이 없으면 결국 시를 쓰기 위한 또 하나의 숙제가 되어버릴 것 같아요. 우리 주위에 당연하게 있는 것들을 당연하지 않게 보는 것이 호기심으로 연결될 것 같아요.

아리엘 :

저는 그 옆 페이지에 밑줄을 그었는데요. “횡단보도란 공간에 무엇도 머물러서는 안 되는 이유를 알면서도 횡단보도에서 머무를 수는 없을까 돌연 솟구쳐오는 다른 시공간의 가능성에 대해, 궁금해 하는 사람일 것입니다. 이렇게 사는 것이 일상을 두 배로 누리는 것인지, 일상을 반도 못 누리는 것인지……” 이 말이 참 흥미로웠어요. 예를 들어 이 찻잔을 가지고 글을 써내고 상상하는 게 정말 두 배로 사는 건지, 쓸데없는 생각까지 하며 사는 건지 판단이 안 서요.

살림 :

아이들의 시에 감동을 받는 게 그런 여과나 판단 없이 순수하기 때문에 그런 것 같아요. 우리는 교육받은 대로 스스로 제한을 두지만, 아이들은 그렇지 않잖아요. 우리가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 우리가 꺼내지 못했던 생각들을 제한 없이 말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재재 :

시를 쓰려면 진실을 찾아야 한다고 작가님이 말하잖아요. 어쩌면 아이들은 진실에 훨씬 더 가까운 것 같아요. 어떤 책에서 봤는데, 사람은 태어날 때보다 자라면서 오히려 잃는 게 더 많다고 했던 게 기억나요.

살림 :

저도 철학이나 종교에서 결국 아이의 상태로 돌아가야 한다는 말을 많이 들은 것 같아요.

아리엘 :

요가도 마찬가지예요. 힌두교 경전 같은 데서도 불편함이 없는 상태에 이르러야 한다고 하는데, 아이들은 눈치를 보거나 평가로부터 자유로워서 그럴 수 있는 것 같아요.

모아 :

그래서 가끔 어릴 때가 그립거나 아이들이 부럽기도 해요.

살림 :

오늘은 우리가 시라는 문학의 창을 열어 보이는 것들에 대해 함께 나누었습니다. 다들 어떠셨나요?

재재 :

잘 모르는 시에 대해 나눠야 해서 부담스러웠는데, 나누고 나니 너무 어렵게만 생각했던 것 같아요.

모아 :

저도 학창 시절 공부해야 하는 대상으로만 시를 배워서 재미없고 지루한 것으로 생각했는데, 조금 더 시에 다가갈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아리엘 :

요즘 글쓰기에 관심이 많았는데, 시인만 시를 쓰는 게 아니라 저도 충분히 도전해 보고, 저만의 시를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살림 :

다음 시간은 세 번째 시간으로 정은 작가님의 <기내식 먹는 기분>이라는 책으로 여행이라는 창문을 열 예정이에요. 여행하는 기분으로 읽으시고 다음 모임에서 만나요.

<참여자>

살림(사회, 원고정리)
전주한옥마을에서 책방을 운영하며 지역과 소통하고 있다.

재재
마음의 평화와 지속가능한 삶을 고민하며 자연(스러운 것)을 좇아서 살
아가고 있다. 탈서울 후 전주에서 적게 일하고 많이 노는 재미에 빠진
한량이 되고 싶은 방랑객.

아리엘
독서, 요가, 가족을 사랑하는 일상을 삽니다.
익숙해져서 편안해진 것들을 소중하게 여기는 삶을 살고 싶어요.

모아
전주에서 공간 두 개를 운영하며 재미지게 살고 있어요.
요즘 정원 가꾸기에 푹 빠진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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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5-01
어떤 기준

[에세이] 어떤 기준 전석순 “그래도 꽃은 잊지도 않고 제때제때 피네.” 예년보다 개화가 늦어지던 해였다. 어머니는 작년 봄 집 근처 공원에서 찍은 사진을 살펴보며 분명 이번 주쯤에는 피었어야 했다고 중얼거렸다. 이어서 괜히 달력을 들춰 보며 오늘 날짜를 확인했다. 사진 속 날짜와 일치했지만 어째선지 올해는 아직 봉오리조차 불거지지 않았다. 왠지 노크라도 해봐야 하는 게 아닌가 싶었다. 뭐 잊은 거 없냐고. 어디선가 계절을 알려주는 나무는 계절관측목이라고 부른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개나리, 진달래, 매화, 벚꽃 같은. 이 기준에 따르면 아직 봄이 오지 않은 셈이었다. 옆에서 발톱을 깎던 아버지는 아마 까먹은 거 같다고 말하며 히죽였다. 사람도 깜빡깜빡하는데 꽃이라고 다를 게 있겠냐면서. 심드렁하게 이어지는 목소리에 어머니는 아버지를 슬쩍 흘겨봤다. 안 그래도 요새 외출하고 집에 들어올 때 수선 맡긴 바지를 찾아와야 한다거나 식초와 긴장이 떨어졌다는 사실을 더러 잊었던 일이 떠올랐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대수롭지 않게 넘길 수도 있는 일이었지만 어머니는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게 아닌 눈치였다. 몇 번쯤 길을 걷다가도 순간순간 또 뭔갈 잊고 지나쳐 버린 건 없는지 따져 보는 것 같았다. 한참 골몰하다가 겨우 친목회 회비 날짜를 기억해 낼 때도 있었다. 그때부터 사소한 거라도 핸드폰에 따로 메모를 해두고 수시로 빠뜨린 건 없는지 살펴봤다. 요가 교실 수업 신청 날짜나 관리비 납부 마감일과 함께 수리기사 방문 일정까지. 고개를 들다 어머니와 눈이 마주친 아버지는 돌아앉으며 우물댔다. “한 해쯤 그냥 지나가면 뭐 어때서.” 아버지의 생각과는 달리 뉴스에서는 연일 전국 봄꽃 개화 예상 일정을 내보내며 전문가까지 나와 늦어진 원인을 분석했다. 동네 사람들은 환경오염을 들먹이며 사나워진 날씨 탓에 종잡을 수 없는 계절 때문일 거라고 입을 모았다. 꽃도 계절을 헷갈리는 거라고. 개중에는 진짜 꽃이 피지도 않고 봄이 지나가는 게 아닐지 염려하는 이도 많았다. 어머니도 그중 하나였다. 나중에는 꽃을 향해 잊을 것 같으면 알람을 맞춰 두거나 메모하는 습관을 기르라고 조언해 줄 기세였다. 어머니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앞산을 내다보고 매일 지나다니던 화단과 공원을 천천히 돌아봤다. 더러 까치발까지 하고선 주변을 휘둘러보기도 했다. 혹시 진즉 만개한 꽃을 놓친 게 아닌가 싶은 듯했다. 처음에는 조금 서운한 기색이더니 나중에는 아예 울상이 되었다. 어느새 나도 거리를 돌아다니면서 꽃이 필 기미가 보이는지 기웃거렸다. 언뜻 봉오리라도 보이면 사진을 찍어 바로 보내드리려 했지만 좀처럼 찾아볼 수 없었다. 바람까지 서늘하니 날짜와는 상관없이 정말 봄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이러다가 봄을 건너뛰고 곧바로 여름이 되는 게 아닐까,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그즈음 제법 많은 양의 봄비가 내리더니 하루 사이에 기온이 크게 올랐다. 곧 지천으로 사방이 꽃이었다. 지난해 유난히 다닥다닥 모여 있

  • 관리자
  • 2024-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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