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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속좌담 ‘창작, 노동’ 1차 〈부업이 있는 작가, 본업이 있는 작가〉

  • 작성일 2023-11-01
  • 조회수 1,199

기획 연속좌담 ‘창작, 노동’ 1차

부업이 있는 작가, 본업이 있는 작가


2023년 11월호부터 2024년 2월호 사이에 총 4회의 좌담회 내용이 순차적으로 발표될 예정이다.


ㅇ 회차별 구성

  - 1차 : 부업이 있는 작가, 본업이 있는 작가

  - 2차 : (비)정규직 교육노동자로서의 작가

  - 3차 : 문학 강연 시장

  - 4차 : 대학(원)생 작가들의 미래설계


ㅇ 회의명 : 《문장 웹진》 2023년 기획 연속좌담 ‘창작, 노동’

           - 1차 부업이 있는 작가, 본업이 있는 작가

ㅇ 일  시 : 2023년 9월 7일(목) 14:00~16:00

ㅇ 장  소 : 예술가의 집 세미나1실

ㅇ 참  여

  - 사회자 : 한설(문학평론가)

  - 참여자 : 김희선(소설가), 신이인(시인), 윤치규(소설가), 이미경(극작가)

 

〈개회〉

 

한설 : 안녕하세요, 저는 평론가로 활동 중인 한설이라고 합니다. 《문장 웹진》에서 ‘창작’과 ‘노동’이라는 주제로 네 차례의 좌담을 기획했는데, 1회차인 이번 좌담은 작가라는 직업 외에도 문학과 어느 정도 거리가 있는 다른 직업을 가진 분들을 모시고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저는 ‘우리, 다른 일도 해요’ 정도의 소소한 대화를 예상하고 진행을 맡았는데, 《문장 웹진》의 역대 좌담을 살펴보니 등단제도를 비롯해 무거운 내용이 많더라고요. 진중함과 어느 정도 거리가 있는 제가 좌담을 잘 진행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웃음) 간단하게 자기소개를 나누고 좌담을 시작하면 좋을 듯합니다. ‘주업’과 ‘부업’이라는 이번 좌담의 주제를 생각해 다시 저부터 소개를 드리자면, 저는 치과대학병원에서 구강병리학이라는 생소한 학문을 공부 중인 수련의입니다. 이런 자리에 오려면 연차를 써야 하는 직장인이기도 하고요. 반시계 방향으로 다른 분들도 말씀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신이인 : 어쩐지 늦게까지 이 자리가 비어 있어서 여기 위험한 자리인가 했는데 첫 번째 발화자의 자리였군요. 네, 안녕하세요. 저는 시를 쓰고, 시를 쓰면서 활동하는 신이인이라고 합니다. 문학 쪽 활동을 말씀드리면 2021년 《한국일보》를 통해서 작품을 발표하기 시작했고 아직 신인이다 보니 발표할 지면을 받는 편이어서 2년 동안은 열심히 활동을 했습니다. 올해 초에는 『검은 머리 짐승 사전』이라는 시집도 한 권 냈습니다. 2년 동안 글만 쓴 건 아니고요. 문학 외적인 활동으로는 LUSH 알바생이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굉장히 밝은 사람들이 웃고 떠들면서 물건을 세일즈하는 그런 이미지를 많이들 갖고 계신데, LUSH라는 브랜드에 대해서. 거기서 2년 동안 세일즈 파트타이머를 했고요. 직원을 할까 말까 고민을 많이 했지만 계속 파트타이머로 있고 싶어서. 최근에는 아디다스 코리아 판매직으로 이직했습니다. 이상입니다.

 

김희선 : 안녕하세요. 저는 소설가 김희선입니다. 원래는 약사로 일을 해왔고, 2011년 마흔 살일 때 우연히 등단하여 지금까지 쭉 소설도 같이 쓰고 있고. 등단한 지 오래됐기 때문에 작품집이나 이런 것도 예닐곱 권 나와 있고요. 둘 다 그냥 편안하게 같이 해나가는 중이에요.

 

윤치규 : 선생님 약사인 건 다들 모르지 않아요? 저는 진짜 몰랐거든요. 이번에 알았어요. 다들 모르지 않아요? 유명한가요?

 

김희선 : 모르시는 분들도 많으세요. 제가 등단 전에 책을 많이 볼 때 작가 프로필을 많이 본 적이 없어서. 아마 그런 분들은 거의 모르실 것 같고요. 예전엔 약국 운영도 했지만 지금은 병원에서 일하고 있어요. 그런데 제가 다니는 병원에선 제가 소설을 쓴다는 걸 대부분 모르세요. (웃음) 굳이 제가 얘기하기도 뭣 하고.


윤치규 : 저는 소설 쓰는 윤치규고요. 2021년도에 등단해서 소설을 쓰고 있습니다. 그리고 은행원으로 영업점에서 전세 계약대금 대출, 주택담보대출, 가계대출을 담당하고 있어요. 요즘 이사철이라서 이사를 많이 다니셔서 업무가 많지만 일과 병행해서 소설도 열심히 쓰고 있습니다. 반갑습니다.


이미경 : 저는 극작가로 활동하는 이미경이고요. 2013년에 《조선일보》로 등단하고 작가로 활동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교직에 20년 넘게 있었고요. 교직에 몸담고 3년 후부터 이제 3년만 하고 그만둔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다가 20년이 넘었어요. 요즘 서이초 교사 사건 때문에 토요집회가 이어지면서 카톡 프사 사진이 검정 리본으로 바뀌어서 본의 아니게 주변분들에게 직업 커밍아웃을 하게 됐어요.



〈글을 쓰는 직업, 글을 쓰기 위한 직업, 글을 쓰다 생긴 직업, 그리고 어쩌다 글을 쓰는 직업〉


한설 : 간단하게 자신의 주업과 부업 소개를 해주셨는데요. 어쩌다 작가라는 직업 말고도 다른 직업을 가지게 되었는지 질문을 드리지 않을 수 없을 듯합니다. 저는 치과대학을 다니던 중에 덜컥 문학상을 받으며 평론가로 활동하다 자연스럽게 치과 의사가 되어버린······ 그러니까, 작가라는 직업과 치과 의사라는 직업이 독립된 사건으로 벌어진 경우거든요. 다른 분들은 어떠신가요? 글을 쓰던 중에 생계 등의 이유로 다른 일을 알아보게 되셨나요, 아니면 다른 일을 하던 중에 문학에 대한 열정이 생기면서 글을 쓰게 되셨나요? 혹은 저처럼 별개의 과정을 통해 두 개의 직업을 가지게 되셨나요? 


신이인 : 저는 계속 꿈이 시인이었어요. 백일장 키드라고 있는데, 고등학교 때부터 작가를 꿈꾸는 아이들은 백일장을 다녀서 수상 실적을 모아 문예창작학과나 국어국문학과에 특기자 전형 입학을 하게 되거든요. 저는 백일장 키드였고 글 쓰는 사람이 아주 많지는 않은 국문과에 들어갔어요, 교수님이나 학생들은 저를 보며 쟤는 작가가 될 얘다, 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그런 자아를 굉장히 오랫동안 길러 왔는데. 대학교 내내 서비스직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어, 내가 서비스에 흥미를 느끼네, 사람들을 대면하고 응대하고 접객하는 일을 내가 좋아하네, 하는 생각도 있어서 두 가지를 꾸준히 같이해 왔습니다. 그러다가 제도권 문학 안에서 등단제도를 거쳐서 작가로 활동하게 된 다음부터는 제가 하는 아르바이트나 그런 성향의 일들이 그러니까 서비스직 이런 것들이 작가 활동을 하시는 분들이 보기에는 조금 낯설었나 봐요. 작가 하면 방에서 글을 쓰고 사람들을 잘 안 만나고 싶어 하는 이미지가 있으니까. 그런데 저는 사람들 만나는 거 좋거든요. 정확히 말하면 낯선 사람들 만나는 거 좋아해요. 대화하면서 에너지를 얻는 편이고. 그래서 저는 이 두 가지 일을 같이하는 게 이상하거나 특별한 계기가 필요하거나 그러진 않았던 것 같습니다. 저의 루틴이었던 것 같아요. 바깥에서 사람들을 만나서 외면의 에너지를 조금 얻고 시를 쓰면서 내면의 에너지를 배출하고. 여태까지 그랬으니 앞으로도 그렇게 살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예상도 하고요. 

 

김희선 : 저는 작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은 없었어요. 책은 좋아했지만 소설만 좋아한 것도 아니고. 활자중독증급으로 이 책 저 책 닥치는 대로 읽었지요. 등단제도도 잘 몰랐어요. 약대 1학년 때 우연히 신춘문예 당선작을 읽었는데, 제가 좋아하던 소설 느낌과 많이 달라서 역시 이런 거는 나와 다른 사람이 가는 길이구나, 아예 생각을 안 하고 지냈죠. 그러다가 약국을 접고 쉴 때 방송통신대 국문과에 편입해서 평소 소망했던 국어 공부를 했는데 너무 재밌는 거예요. 그래서 더 공부하려고 국문과 대학원에 가야지 이런 생각까지 하게 됐는데, 누가 그러더라고요. 국문과 대학원에 다니다가 등단하면 장학금을 준다고. 그래서 그러면 문창 전공을 해야지 하고 동국대 문창 전공하고 동국대 대학원에 들어갔는데 문예지로 등단하는 방법도 있다는 걸 그때 알게 됐지요. 그해 가을이던가, 같이 대학원 다니던 친구가, 언니 한번 내보라고 해서 등단하게 됐지요. 사실 저는 등단이 일회성 사건으로 끝날 줄 알았는데 계속 청탁이 오더라고요. 그래서 계속 썼더니, 결국 두 개의 직업을 가지고 살게 됐다고나 할까요. 지금도 저는 약사로 일한 시간이 훨씬 길기 때문에, 왜냐하면 제가 마흔에 등단했으니까, 왠지 본업은 약사라는 생각을 하는데 최근 들어서 계속 연재를 하고 꾸준히 글을 쓰다 보니 작가 쪽으로 많이 비중이 기운 생각이 들기도 하거든요. 굳이 나누자면 정신적으로는 작가 쪽으로 기울고 몸은 약사 쪽으로. 결론은, 뭐가 꼭 되어야지 같은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거는 아니고 어쩌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흘러간 것 같습니다. 지나고 보니까 사람 일은 아무도 모르는 건가, 이런 생각이 많이 들더라고요. 그렇게 해서 두 개를 같이, 동시에 일하게 되었습니다.


윤치규 : 저 같은 경우는 살면서 늘 하고 싶은 일은 글을 쓰는 것이었고 그리고 해야 하는 일은 돈을 버는 것이었고.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하는 일이 나뉘어 있었어요. 저는 원래 군인이었는데 29살에 부모님이 다 일찍 돌아가시면서 삶에 대해서 덧없음이 느껴지더라고요. 그래서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 고민하다가 글을 쓰기 위해서 군대를 전역했거든요. 물리적인 시간을 갖고 글을 쓰는 삶을 살아야겠다. 그런데 글을 쓰는 삶을 살아야겠다 생각하고 전역했을 때 전업 작가를 선택하지 않고 다른 직업을 선택한 이유는 문창과 출신분들은 등단하면 그걸 취업으로 보잖아요. 대학교 취업률에도 반영이 되는······.

 

신이인 : 아, 그게 취업률로 된다는 것은 조금 큰 오해가 있는······. (웃음)

 

윤치규 : 그래서 글을 쓰기 위해서 직장을 그만뒀지만, 글이 직업이 될 수는 없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때 당시에는. 그래서 글을 쓰는 건 하고 싶은 일의 영역인데 이걸 생계나 돈과 연결하면 하고 싶은 일이 안 되고 해야 하는 일이 될 것 같아서, 언제까지나 직업, 평생 글을 쓰면서 살려면 직업으로 가지면 안 되겠다 싶어서 저는 안정적인 직업을 선택해야겠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퇴근하고 글 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요즘은 글쓰기에 대한 노동, 이런 것들도 많이 담화가 나오고 이슈가 되고 있잖아요. 근데 저한테는 글이라는 영역은 아마추어리즘적인 분야고 하고 싶은 분야 취미 분야였던 것 같아요. 그리고 지금까지도 그렇게 놓여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직업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아요. 지금 와서는 돈도 벌고 있지만.


이미경 : 비슷한 측면이 많은데요. 저도 중고등학교 때 글에 소질을 보이면서 이쪽에 재주가 있다는 것을 감지하고 있었는데 글 쓰는 게 직업이 된다는 생각을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어요. 20대는 정말 질풍노도의 시기여서 뉴욕에서도 살고 뉴욕에서 살 방법을 강구하느라고 왔다 갔다 하다가 결국엔 안 되겠다, 돈을 벌어야겠다, 해서 교직을 선택하게 됐어요. 당시에 교직을 선택하는 주변 친구들이 많았거든요. 부모님도 원하시고 저도 안정적인 직장을 찾다 보니 선택하게 된 것 같아요. 교직을 얻고 나서는 글을 써야지 생각했고, 글을 쓰는 방법을 찾아보는데 어떤 장르를 쓸까부터 어떻게 써야 할지 너무 난감하더라고요. 사생대회 같은 게 아니니까. 그러다가 한예종 학교를 알게 되어 한예종에 들어갔어요. 당시에는 한예종에 서사 창작학과가 없어서 선택의 폭이 극작밖에 없어서 자연스럽게 극작으로 가게 됐죠. 제가 레지던스에서 작가들을 만나면 왜 소설이나 시 안 쓰고 희곡을 쓰게 됐어, 란 질문을 종종 받거든요. 근데 저한테는 선택의 폭이 없었던 것 같아요. 한예종 다닐 때 학교생활이 너무 재밌었어요. 얘들이 끼도 많고 자유롭고 게으르고 술도 많이 마시고 다양했는데 그런 모습을 처음 봤거든요. 교직에 있는 사람들은 부지런하고 정확하고 비슷하고 평이한데, 이런 사람들만 보다가 너무 다른 사람들을 보니까. 저는 그 학교 3년 다니는 동안 정체성의 혼란이 오더라고요. 같은 지구에 사는 사람들이 맞나, 너무 다른 사람들인데. 저는 어떤 정보도 없이 시작했기 때문에 등단도 신춘문예로 해야 하는 줄 알았어요. 사실 극작은 공연을 올리면 등단이거든요. 근데 저는 문학을 해야 한다는 강박도 있어서 공들여서 신춘문예로 등단한 케이스예요. 등단 이후 극작을 해오고 있는데 중간에 뮤지컬이랑 드라마도 한다고 왔다 갔다 했어요.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3년 하고 그만둔다는 게 지금 20년 넘게 (웃음) 제가 왜 아직도 안 그만뒀느냐면, 친구들이 항상 너는 방학이 있잖아, 이러니까. 또 맞는 말 같기도 해서. (웃음)

 

한설 : 네, 이렇게 작가라는 직업과 그 외의 직업을 어떻게 가지게 되었는지 이야기를 나누어 주셨는데요, 글을 쓰다 다른 일을 하시게 된 분도 계시고, 다른 일을 하다 글을 쓰게 된 분도 계시네요. 그렇다면 어떠한 일을 보다 중요하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해집니다. 저는 제 정체성이 평론가라는 직업에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물론 평론가로서의 수익과 치과 의사로서의 수익은 비교 불가한 수준이고, 청탁이 있을 때만 읽고 쓰는 평론가로서의 작업량과 주5일 근무가 원칙인 치과 의사의 작업량도 비교 불가한 수준이지만······. 그래도 저는 여전히 치과 의사보다는 평론가로 살아간다고 생각합니다. 

 

이미경 : 시 평론 하세요 소설 평론 하세요?

 

한설 : 시로 시작하긴 했는데 소설로 넘어오게 되었습니다. (웃음) 원래도 소설만 읽는 사람이라 소설이 맞는 것 같더라고요.

 

신이인 : 시도 읽어 주십시오. (웃음)

 

윤치규 : 글을 쓰는 평론가적 자의식도 있지만 의사로 일할 때는, 의사로 일하면서도 평론가의 자의식을 갖고 일을 하세요?

 

한설 : 약간 있어요.

 

윤치규 : 그럼 약간 노동 현장이나 이런 걸 보면서 문제의식도 느끼시나요?

 

한설 : 두 가지 측면에서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우선 ‘정치성’ 혹은’ 윤리성’ 측면에서 이야기하자면, 제가 경험한 의료 현장은 대체로 보수적이었습니다. 장애와 퀴어를 각각 불구와 이상으로 등치시켜 해석하는 상황이 굉장히 많았고, 여성을 동료로서 인정하지 못하겠다는 분들도 의외로 많았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이러한 차별이 엄정한 학문적 차원에서 온당치 않을 뿐만 아니라 보편적으로 여겨지는 인간상 이외의 특질을 의료 대상에서 제외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료 발전을 심각하게 저해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약소하게나마 이러한 상황을 바꿔 보고자 ‘보건과 의료의 바깥들’이라는 주제로 몇몇 학생과 정기 세미나를 진행하고 있는데, 제가 평론가로 활동하며 배운 것이 없었더라면 이러한 생각을 가지지도, 이러한 모임을 만들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또 ‘미학성’ 측면에서 이야기하자면, 저의 주된 업무는 수술에서 나오는 검체를 진단하는 것입니다. 환자가 어떠한 질병을 가지고 있었는지, 또 의사가 얼마나 수술을 잘했는지 등등을 확정하지요. 그런데 사실 제가 보는 것은 어떤 순간과 부분에 지나지 않습니다. 과거의 병력과 미래의 예후, 그리고 현재의 양상에 대하여 제가 남기는 기록은 그 순간과 부분만 가지고 하는 추론일 뿐이죠. 저는 이런 것이 작품을 읽으면서 계보도와 지형도를 구축하는 평론가의 작업과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어려운 진단을 해냈을 때와 어려운 작품을 읽어냈을 때의 성취감도 비슷하다고 생각하고요. 어쩌면 제가 병리학을 전공하게 된 것은 평론가였기 때문이 아닐까 싶네요.

 

윤치규 : 어떤 자의식이 더 강한지 저도 고민 많이 해봤는데 저는 자의식이 완전 분리되어 있는 것 같아요. 저는 은행에 출근할 때 세 번 마음속으로 외치고 일하러 가거든요. (웃음) 나는 atm이다. 나는 atm이다. 나는 atm이다. 나는 돈을 벌러 왔다, 이렇게. 이게 진짜 오래된 습관인데 은행 일을 할 때 기계적으로 일하고 되게 아무 생각도 안 하고 되게 철학적인 사유나 고민 없이 하려고 노력해요. 시스템적으로 하려 하고 순서대로 하려 하고. 그래서 너의 직업이 뭐냐고 물어 보면 은행원이라고 이야기하지만 어떤 사람이냐고 물어 보면 글을 쓰는 사람이라고 이야기하거든요. 그래서 저는 자의식이 어떤 게 더 강한지 이런 문제가 아니라 아예 완벽하게 분리되어 있구나 싶어요. 은행원적인 자아와 소설가적인 자아가 완전 분리되어 있는 것 같아요.


한설 : 그렇다면 은행원적인 자아를 포기할 생각이 있으신가요?


윤치규 : 제가 돈 걱정 없이 소설을 쓸 수 있게 해주는 아주 소중한 직장이라 생각해요. 그리고 이렇게 생각해서 일희일비하지 않고 내가 원하는 작품을 원하는 시간에 맞춰서 원하는 속도로 쓸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렇지 않고 이게 주된 생계라면, 출판사나 뭐 평가나 이런 거에 일희일비하게 될 것 같고 계약에 매달리게 될 것 같은데, 그런 걸로부터 저를 독립시켜 줘서 완벽하게 자유롭게 내가 원하는 대로 추구할 수 있게 해주는 소중한 직장이라고 생각해요.

 

김희선 : 윤치규 소설가님 말씀에 저도 동감하는 부분이 있거든요. 저에게는 두 일이 분리가 되어 있지 않고 오히려 하나로 합쳐져 있기는 한데, 그거보다도 어떤 고정된 직업을, 약사라는 직업을 가진 채로 쓰니까 여러 외적 반응에 일희일비 안 하고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을 내 페이스대로 갈 수 있는 바탕이 돼주는 것 같아요. 전에 대학원 다닐 때 보면, 물론 안 그런 분도 있지만, 전업으로 소설 쓰시는 분들 보면 뭔가 쫓기는 듯한 게 있더라고요. 또 평이나 이런 거에도 굉장히 민감해하는 부분이 있다고 하고······. 그에 비해서 나는 그런 데선 자유롭고. 소설 쓰는 것을 노동이라고 생각해 본 적은 한 번도 없거든요. 연재하느라 매일 쓸 때도. 윤치규 작가님 말씀대로 재밌다? 즐긴다? 이런 느낌이 굉장히 강하거든요. 뭔가 숭고한 작업이라는 느낌도 크고요. 윤치규 작가님과 다른 점이 있다면 약사로서의 자아랑 소설가로서의 자아가 분리된 것이 아니라 그냥 약사이면서 동시에 소설가? 소설 쓰면서 동시에 약사, 이런 생각을 항상 하는데 그게 약사라는 직업의 특수성 때문인지도 몰라요. 왜냐하면 약사 일이 인간을 가까이서 관찰하고 그 사람들에 대해서 뭔가 느끼니까, 결국 소설도 인간을 다루는, 인간에 대해서 말하는 거다 보니까 외적으론 일의 방식이나 이런 거는 당연히 분리가 되겠지만, 정신적으로는 하나로 통합되어 있는 기분? 같아요. 어려서부터 소설가가 되고 싶어서 노력했다면 다른 느낌일 것 같은데 소설 쓰기라는 게 그냥 흘러 들어오듯이 다가온 일이거든요. 그래서 더더욱 마음속에서 특별히 분리되지 않는 거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어요.

 

이미경 : 소설이라는 장르도 물리적으로 시간을 많이 소요해야 하는 작업이잖아요. 시간 할애가 가능하세요?

 

김희선 : 그래서 저는 풀타임 근무를 안 하고 주 3일 정도만 일해서 더더욱 부담이 없죠. 나머지 시간은 소설 쓰는 데 충분히 할애할 수 있어요.


윤치규 : 직장인들이 연봉협상 하듯이 소설가들은 자기가 발표한 작품이나 평가로 그다음 연봉협상을 하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올해 잘 쓰면 내년에 청탁도 더 많이 들어오고 책이 많이 팔리면 다음 게 더 좋아지고. 그러니까 연봉협상 하듯이 그렇게 평가가 매겨지고 연봉이 정해지는데, 저는 그게 엄청 부담스러울 것 같아요. 그리고 힘든 일일 것 같아요. 그러니까 전업 작가가 훨씬 더 힘든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신이인 : 전업이랑 비전업을 나누는 게 다른 장르에서 의미가 있을지는 모르지만, 시라는 장르 안에서는 사실은 전업 시인이 존재하기는 하나, 하는 생각이 들기는 하거든요. 여태껏 전업으로 시를 써요, 하는 분을 만나 본 적은 없었고, 대부분 대학원을 다니시거나 시 관련 창작 수업을 한다든지 해서 시라는 바운더리 안에서 생업도 하고 창작활동도 하고 이렇게 하시는 분들은 있었던 것 같아요. 저 같은 경우는 그 바운더리 바깥으로 나가려는 케이스거든요. 이게 저의 의지가 조금 담겨져 있기도 한데. 시 그러니까 처음 이야기로 돌아와서 어떤 자아가 더 우세하냐 하냐면, 저는 무조건 작가 자아라서요. 보시면 뭔가 하나의 사고 기제 바탕으로 두 가지 일, 예를 들면 치과 의사와 평론가를, 하나의 툴로 하시는 분들도 계시고 아예 다른 성향의 일을 하셔서 두 자아를 동시에 끌고 가시는 분도 계시잖아요. 근데 저 같은 경우는 작가 자아 하나만 있어서 이것이 모든 것을 컨펌합니다. 생업이라는 것도 작가 자아가 컨펌을 하고 있어서 나 이 일 하고 싶은데 해도 될까요? 하고 제 안에서 허락을 받는 거예요. 작가 자아가 ‘그것은 제가 쓰는 데 도움도 안 될 거고 시간도 뺏길 것 같습니다’, 이러면 하지 않아요. 그래서 서비스직이나 판매직 이런 것도, 매장에서 파트타이머를 하는 것도 그 일이 적절하게 느껴져서 좋기 때문이거든요. 저에게 많은 정신력을 요하지 않고 어느 정도 책임에서 자유롭고. 제가 만약에 매장 직원이다, 세일즈 스태프가 아니라 관리자라면 막중한 체력과 정신력이 필요할 것 같은데, 파트타이머는 자유롭거든요. 그래서 저는 어떤 일을 하느냐에 대해서는 자아 의탁을 덜 하는 편입니다. 다른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근데 글은 계속 쓸 것 같아요. 말하자면 내가 어떤 일을 하는가는 어떤 글을 쓰느냐를 위한 거지 그 자체에 의미가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 편입니다. 저는 그렇습니다.


이미경 : 작가 레지던스를 다니면서 전업 작가를 많이 알게 됐어요. 부러움의 대상들이 도처에 깔려 있으니까 나 혼자 돈 벌러 나가는 것 같고, 나 혼자 많이 집필하지 못하는 것 같고 이런 생각들을 하게 됐어요. 정말 치열하게 글만 쓰는 사람도 있는데 나같이 이렇게 직장 다니고 짬 내서 글을 쓴다는 게 가능하기나 한 일인가? 그동안 전업 작가가 되고 싶은 게 저의 가장 큰 동경이었던 것 같아요. 근데 오늘 이 좌담회에서 그동안 나의 게으름을 정당화시키고 있었구나, 이런 반성을 하게 되네요. 그리고 직장에 대한 보람을 느끼게 된 건 나이 들고 나서부터인 것 같아요. 그전엔 직장을 벗어나야지, 내가 꼭 글로 대박을 치면 직장을 벗어나야지, 이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래서 드라마 회사에서 컨택이 왔을 때 와, 내가 이제 드라마로 성공을 하면 오징어 게임 같은 걸 하나 내고 직장을 그만두게 되나 했는데. 어우, 그곳도 만만치 않고 직장은 거의 다닐 수 없더라고요. 기획의도부터 1부, 2부를 삼십 몇 번을 고치는 거예요. 그래도 편성이 쉽지 않고······ 그래서 하루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직장에 마음을 더 붙이려고 노력하죠. 아침에 출근하면서 애국하러 간다, 이 나라 미래를 위해서 애국자로 일하러 간다, 만날 이 생각도 하고. 가서 애들이랑 잘 지내고. 이 일이 나한테 밥도 주고 방학도 주니 사랑해야지 하면서 하긴 하지만, 가능하다면 전업 작가만 하고 싶다, 이게 저의 끝없는 동경인 것 같아요.

 

〈직업 사이의 영향 관계〉


이미경 : 하시는 일이 창작하시는 데 도움이 돼요?

 

신이인 : 네. 저 같은 경우는 오히려 시 관련 일을 하면 그게 조금 어렵고요. 왜냐하면 내가 시에 신경 써야 할 집중력을 남의 시, 다른 시에 뺏기고 싶지 않은 거예요. 시 창작 강의를 열면 금전적으로는 저에게 도움이 되니까 하고는 있지만 거기에 정신력을 너무 뺏기면 시 창작에 너무 안 좋고. 

 

한설 : 금전적인 부분 외에도 다른 활동이 창작에 도움을 주는 것이 있을까요? 

 

신이인 : LUSH 일할 때 LUSH에서 배쓰밤 같은 걸 파니까 시나 작품에 배쓰밤 이야기를 넣을 때도 있었어요. 향수 이야기를 넣을 때도 있었고.

 

김희선 : 저 같은 경우엔 약사 일이 특별히 도움이 된다기보다는 그 자체가 작품 스타일에 영향을 주는 것 같다는 생각을 많이 하거든요. 굉장히 정확성을 요구하는 일이다 보니까. 사실 조제할 때 절대 딴생각을 하면 안 되거든요. 조금이라도 틀리면 큰 사단이 나니까 정확하게 해야 하고······ 일할 때만은. 그렇다 보니까 소설 쓸 때 구성이라든가 자료를 찾아본다든가 앞뒤를 맞춰 본다든가, 이런 부분의 정확성에 집착하게 되더라고요. 이런 전반적인 것들이 작품 스타일에 영향을 주는 게 확실히 있고, 그다음에 약국에 있으면 사람들이······ 한설 작가님도 직접 환자들 보셔서 잘 아실 것 같은데.


한설 : 힘에 부치는 상황이 간간이 생기죠. 

 

김희선 : 약국은 무척 특이한 게, 환자분들의 특성이 병원에서 의사 선생님 앞에서는 절대 못 하던 말도 (웃음) 분노도, 슬픔도 약국에 와서 다 쏟아낸다고 할까요······. 그러다 보면 사람을 진짜 360도 다각도로 보게 돼요. 어떤 인간에 대해 우리는 스테레오 타입으로 전형화해서 보려는 경향이 있잖아요. 이러이러한 사람들은 이러이러한 성격, 내면 등등을 가질 거다, 이런 식으로요. 약국에서 일하면 그게 항상 뒤집히고. 사람에 대해서 충격도 받고 따뜻해지기도 하고. 인간을 속속들이······. 은행도 그렇죠?

 

윤치규 : 약간 비슷하네요.

 

김희선 : 그러면서 동시에 사람들의 어둡고 슬픈 내면도 많이 보다 보니까. 그런 얘기를 또 환자분들이 약국에선 서슴지 않고 잘하시거든요. 물론 저는 환자와 관련된 이야기를 소설 소재로 쓰지 않는다는 원칙을 갖고 있지만, 그 느낌 있잖아요, 인간에 대한 어떤 느낌. 그런 것들이 글 쓸 때 어떤 사람을 말하거나 묘사할 때 묻어나는 것 같고, 도움이 된다고 볼 수도 있거든요. 

 

윤치규 : 제 등단 작품이 은행원이 나오는 소설이어서 사실은 큰 도움을 받았고 창작할 때도 많이 얻는 것 같아요, 저는 의외로. 은행원이나 은행에서의 어떤 갈등을 많이 가져오기도 하고. 저는 원래 사무직으로 본점에서 고객을 상대하지 않는 업무로 시작했거든요. 근데 소설 쓰면서 제일 많이 받은 지적이 너는 왜 이렇게 연민을 느끼지 못하냐. (웃음) 연민을 느껴라. 이런 식의 말들을 너무 많이 듣다 보니까 제가 3년차에 영업점에 나가겠다고 손을 들고 나왔거든요. 그래서 영업점에서 3금융 같은 것을 하면서 내가 연민을 한번 느껴 보겠다는 마음으로. 사람을 만나고 싶어서 영업점에 나갔는데 인간에 대한 환멸만 느껴지고, (웃음) 연민을 느끼기는 어려웠지만, 사실 소설적으로는 굉장히 큰 도움이 된 것 같아요. 거기서 사람들을 만나고 정말 나이브한 사람들, 물론 LUSH에 오는 분들이나 약국에 오시는 분들보다는, 그래도 돈을 필요로 하시는 분들이 오다 보니까 엄청 나쁘신 분들은 없지만, 그런 나이브한 사람들과 마주하면서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되고 그런 것들이 작품에 녹아들어서 사실은 불리했다고 생각했는데 작품에도 영향을 주고 내 삶에도, 내 인식에도 영향을 주는구나,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이미경 : 저도 작품에 직장에서 만난 사람들을 쓰진 않았거든요. 간혹 제가 드라마, 예를 들면 여왕의 교실이나 일본 드라마 마더 같은 걸 보면, 아니, 왜 난 저걸 생각 못 했지? 직장에서 일어난 일이잖아요. 권력 구조나 이런 게 진짜 어른의 축소판이거든요. 얘들은 많이 변하지 않고 성격도 엄마 아빠를 너무 닮아서 와요. 아이들을 가만 들여다보면. 와, 여기 캐릭터가 있는데 난 어디서 헤매고 있었나, 이런 생각을 하는데. 단 한 번도 그거를 변조하거나 바꿔서 제 캐릭터에 넣는다, 이런 생각을 안 해봤는데 이제는 아까 말씀하신 것처럼 좀 더 관찰하고 사람을 연구하는 데 활용해야 하지 않나, 사람을 알아 가는 데 정말 좋은 곳에 있구나, 이런 생각으로 전환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드네요.

 

한설 : 제가 좌담을 준비하면서 여기 계신 분들의 모든 작품을 읽었는데, 김희선 작가님과 이미경 작가님은 정말로 다른 직업을 꽁꽁 숨기시더라고요. 신이인 작가님과 윤치규 작가님은 다른 직업을 은연하게 드러내시는데 말이죠. 조심스럽지만 세대 차이 같은 것이 있지 않은가 싶기도 합니다.

 

이미경 : 윤치규 작가님, 만약에 은행원이나 직업군인에 대한 이야기를 쓰면, 거기서 경험한 것들이 완전히 다른 형태로 바뀌어서 작품에 나오나요?

 

윤치규 : 재현의 윤리가 있으니까 그런 것들을 많이 고민하긴 하죠. 그리고 다른 사람 이야기는 거의 쓰지 않고 제 이야기를 많이 쓰는데······ 그런데 꼭 읽고 나서 이거 혹시 내 얘기니? 물어요. 그런데 아니거든요. 진짜 아닌 사람들이 꼭 묻더라고요.

 

신이인 : 맞아요. 근데 저는 진짜 난감한 게 소설은 뭔가 인물의 외향이라든지 직업이라든지 성격 같은 것에서 누군가가 찔려서 이거 나야? 이러면 하하, 이런 점이 비슷하기 때문에 네가 그렇게 느꼈구나? 하고 특정당한 것에 대해 해명할 수 있는데, 시는 막연한 느낌을 다루다 보니까. 너 이거 나랑 싸웠을 때 쓴 거 아니니? 이러면 아닌데 뭐라고 해명해야 해명이 될지 조금 어렵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재현에 관해서는 어떤 창작 트렌드가 있지 않았나, 라는 생각도 했어요. 자신의 삶을 그려 넣는 게. 뭔가 바로 근 몇 년 전에 자기 이야기를 그대로, 특히 소설 장르에서 그대로 옮겨 오는 것이 잠깐 유행했고요. 남의 일기장을 보는 느낌이 살짝 들잖아요. 재밌기도 하고. 그러다 보니까 저도 일기장을 공개하는 느낌도 들고. 안 그래도 고민하던 부분이 있었어요. 왜 어떤 분들은 자신의 삶과 글에 셔터를 내려놓은 것처럼 정말 한 치의 틈도 없이 분리할 수 있을까? 그게 어떻게 가능할까 궁금했습니다.

 

김희선 : 어떤 걸 쓰느냐에 따라 다르지 않을까요? 제 경우엔 SF나 스릴러 분위기를 띠는 작품이 많은데, 그럴 땐 백 퍼센트 어떤 스토리랑 이야기를 상상해서 쓰다 보니 제 개인적 얘기나 주변 사람들 얘기가 들어갈 틈이······ 지금 말씀 듣고 생각해 보니까 제가 등단한 지 십 년 넘어서 책도 한 여섯 권 나왔지만, 주변에서 읽고 이거 내 얘기야? 라고 물은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네요. 


한설 : 작품 경향을 생각하면 그럴 것도 같아요.

 

김희선 : 또 생각해 보면, 소설은 모르지만 시는 분명히 어떤 게 들어갈 것 같거든요. 왜냐하면 시는 허구가 아니고, 소설은 픽션이니까. 저는 저와 아예 상관없는 이야기를 주로 상상해서 쓰니까 제 얘기가 들어갈 일이 없고. 그동안 쓴 것 중에 약국이 배경인 단편이 딱 한 개 있는데, 약국 직원이 향정신성 의약품을 훔치는 내용이거든요. 뭐랄까, 정신적 문제가 있는 사람이 그것도 실제 직원이 그런 게 아니라 상상한 거였는데, 나중에 보니까 그러다 진짜 잡혀간 사람이 있더라고요.  


윤치규 : 제가 아는 어떤 작가님은 직업이 있고 그, 명확하게 특정적인 직업이 있는데 안 밝히시더라고요. 그걸 밝히면 손해를 볼까 봐, 자기 작품 평가에 영향을 줄까 봐. 실제 선생님인데, 선생님인 거를 안 밝히고 회사원이라고 계속 이야기하고 다니더라고요. 그래서 왜 그러느냐고 물어 보니까 그런 평가를 받을까 봐 무섭대요. 어떤 소설을 썼을 때 선생님이니까 이렇게 썼지, 그런 평가를 받을까 봐. 그렇게 이야기하더라고요. 아,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한설 : 평론가로서 좀 양심에 찔리는 이야기네요. 문예창작과나 국어국문학과 출신이 아닌 작가를 두고 ‘이러한 배경을 가지고 있었기에 이러한 작품을 쓰게 되었을 것’이라 단정 짓는 평론적 접근이 꽤나 많은지라······. 이번 좌담이 발표되면 윤치규 작가님의 작품에서 군사적인 무언가나 자본적인 무언가를 발견하고 언급하는 평론이 많을지도 모르겠어요. (웃음) 

 

윤치규 : 언급이라도. (웃음)

 

신이인 : 직업 관련해서 주제가 있으니까 이런 얘기를 잠깐 드리자면, 작가의 직업을 독자 입장에서 알면 흥미로운 지점도 있는 것 같아요. 어, 이분은 이런 일을 하시는데? 이런 글을 썼네? 하는 게 있으면 글이 새롭게 보이기도 하고 다른 관점에서 보이기도 하고. 그 재미가 배가되면 배가됐지 반감되진 않았던 것 같은 느낌은 있거든요. 다른 분들은 혹시 그런 걸 느끼시나요? 이 사람 이런 일 하는데 이런 글 쓴대. 본인을 떠나서 타인을 볼 때.

 

한설 : 저도 작가 소개에 문예창작과나 국어국문학과가 아닌 다른 것이 적혀 있으면 굉장히 흥미를 가져요. 문예창작과나 국어국문학과를 경유한 작가가 싫다기보다는 그런 이중적 존재가 반갑달까요? 저는 제도권 문학장의 특성상 필연적으로 창작자의 다수가 문예창작과 출신이고 평론가의 다수가 국어국문학과 출신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그런 존재는 조금 다른 경험을 가지고 있는 거잖아요. 동족을 만난 듯한 기분도 들어서······.

 

김희선 : 저는 약학을 전공했고 어쩌다 소설도 쓰고 있어서 그런지 다른 직업을 가진 분이 소설 쓰는 것에 대해 별다른 생각이 아예 없거든요. 없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등단 초기에는, 이렇게 어쩌다 이런 분들을 뵈면 제 작품 이야기 안 하고 무슨 영양제 먹어야 하나요, 이런 질문만. (웃음) 저는 그런 질문이 재미있었어요. 사실 약이나 질병 관련해선 남녀노소 계층을 불문하고 궁금한 게 많잖아요. 그래서 최대한 잘 대답해 주는데, 어떨 땐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차라리 직업을 밝히지 않고 이름도 가명을 썼으면 달라 보였을까? 이런 생각을 초반에 많이 했어요, 등단 3, 4년까지. 그런데 이제 첫 책이 나오면서 점차 바뀌더라고요. 제 생각도 그렇고 보는 시선도 달라졌어요. 그래서 저는 다른 분들 볼 때도 어떤 직업이 있는데 소설을 쓴다거나 시를 쓴다고 할 때, 별생각은 없거든요. 작품에만 집중하는 편이라고 보면 될 것 같아요.

 

윤치규 : 전업 작가랑 전업 작가가 아닌, 그런데도 또 물론 조금 다 전업 작가라고 해서 진짜 다 전업이 아니지만. 그러니까 예술가적 자아가 더 강한, 더 강해서 상대적으로 일하지 않는 작가님들과 상대적으로 일하는 작가들 사이에 서로가 서로에 대한 선망과 혐오가 동시에 존재하는 것 같아요. 그런 게 모순적이면서도 양가적으로 갖고 있지 않나 해요.

 

신이인 : 원래 자기가 하지 않는 것을 하는 사람을 부러워하면서도 자기 선택에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기가 선택하지 않은 걸 선택한 사람을 보면 흐음, 이런 느낌도 조금은 있는 것 같습니다.



〈전업이라는 이상과 두 개의 직업이라는 현실〉

 

한설 : 말씀 나온 김에 전업 작가로 사는 것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도 괜찮지 않을까 싶습니다. 사실 저는 전업 작가의 기회가 있어도 다른 일을 하면서 살 것 같거든요. 앞서 비슷한 맥락의 이야기가 나왔는데, 저도 작가는 작품을 발표할 때마다 일종의 연봉 협상을 겪는다고 생각해요. 등단제도 관련해 이런저런 논의들이 오간 덕에 ‘첫 책’까지는 신인에게 기회를 줘야 한다는 분위기가 전반적으로 자리 잡았지만, 그 이후는 정말로 아무도 모르잖아요? 제가 원체 일희일비하는 성격인지라 전업 작가로 사는데 청탁이 없으면 스스로를 갉아먹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래도 다른 일을 하고 있다면 태평한 태도를 유지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말이죠. 저는 과욕이지만, 뛰어난 병리학자면서 뛰어난 평론가이고 싶은데 둘 다 이룰 수는 없을 거라 생각하지만······. 다른 분들은 전업 작가가 되실 기회가 있다면 기꺼이 그렇게 하실 건가요?

 

김희선 : 저는 전업 작가를 할 기회가 있어도 안 할 것 같은 이유가 하루 종일 글만 쓰면 엄청 답답할 것 같다는 생각을 많이 하거든요. 그래서 저 같은 경우에는 원주에 살다 보니까 토지문학관인가요? 다른 작가분들은 거기 많이 오시더라고요. 그러면서 저보고 왜 신청하지 않느냐고 묻는데, 저는 어딘가에서 혼자 뭔가 계속 쓰는 게 성향이랑 안 맞고 글을 쓰더라도 저녁에 두 시간 정도 몰아서 시간을 내서 쓰기 때문에. 안으로 파고들면서 한 가지만 하면 제가 점점 좁아질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그리고 만약에 직업이라면, 늙을 때까지 하나만 남기라면 저는 약사 일을 하지 않는다는 게 상상이 안 되거든요. 약사라는 게 제겐 일종의 천직같이 느껴져요. 그에 비해서 소설은 굉장히 재미있게 쓰고 있고요. 만약 더 이상 못 쓰게 되면 슬프겠지만, 그래도 언젠가는 못 쓸 수도 혹은 안 쓸 수도 있지 않을까. 더는 청탁이 없을 수도 있고 출판해 주겠다는 출판사가 없을 수도 있고, 또는 저의 능력이 다할 수도 있겠죠. 상상하긴 싫지만요. 아, 그리고 소설 쓰면서 안 좋은 게 하나 있네요. 뭐랄까, 예전만큼 즐거운 독서를 하기 힘들다는 거. 벌써 십 몇 년째 아무 목적 없이 재밌게 읽기만 하는 독서와 거리가 먼 삶을 살고 있어요. 특히 소설 부문에 관해서는. 전 소설가지만 그전에 먼저 독자였으니까요. 그래서 저는 전업 작가를 할 기회가 있어도 ······ 그런데 과연 그게 가능할까요? 전업으로 소설만 써서 먹고살 수 있는 것이? 어쨌든 안 될 것 같아요. (웃음) 늙으면 동해안에서 약국을 하면서 환자들이랑 이런저런 얘기 해보고 싶다, 이런 로망도 있어요.

 

윤치규 : 저는 등산에 비유하고 싶은데, 전업 작가냐 전업 작가가 아니냐 하는 것보다도, 사람이 성향이 있는 것 같아요. 우리가 등산을 할 때 어떤 사람은 산꼭대기에 올라가야 하고 꼭대기에 올라가지 않으면 중간에 포기하는 건 낙오고. 그래서 꼭대기까지 올라가는 길을 정해 놓고 열심히 꼭대기까지 올라가는 것을 등산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고. 요즘 둘레길을 걷는 사람들도 많아요. 둘레길을 걸으면서 힘들면 앉았다 가고 기타도 치고 좋은 낙엽도 보고 돗자리 있으면 깔고 술도 한 잔 마시고. 그렇게 둘레길을 걸으면서 얼마나 높이 올라가는가보다 얼마나 많은 풍경을 보았느냐가 더 가치인 사람들도 있거든요. 그런데 저는 둘레길을 걷는 사람이고, 오래 쓰고 싶고, 건강히 쓰고 싶고, 무릎 아프지 않으면서 등산을 하고 싶어서. 저는 전업 작가가 되지 않을 것 같은 이유가 제 성향이 그런 것 같아요. 그러니까 그런 게 살면서 얼마나 역량을 수행할 수 있는지. 은행원으로서도 잘살고 작가로서도 잘하고 독서모임 리더, 사회 일원으로서 다양한 역량을 잘하고 싶고. 이걸 다 잘하면 작품도 좋아질 거라고 믿거든요. 그래서 전업으로 하고 싶지는 않아요.

 

이미경 : 저는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전업 작가가 꿈이고. 그리고 선생님이 십 년 넘으니까, 독서의······. 저는 책 읽고 특히 공연 분야니까 공연도 많이 보거든요. 뮤지컬도 많이 보고 영화도 많이 보고 드라마도 많이 보고 그러니까 볼 게 너무 많은 거예요. 책도 읽어야 하고 할 게 너무 많고. 그래서 저는 계속 책 읽고 공연 보고 글 쓰고 이렇게만 살았으면 좋겠다. 사실 나이가 드니까, 옛날에는 4시 반에 끝나요, 상당히 좋은 직업이긴 하죠. 4시 반에 끝나면 바로 카페 갔어요. 왜냐하면 바로 집에 가면 늘어져서 카페 가서 스콘 같은 거 먹으면서 10시까지 작업하고 오고 정말 치열하게 살았다 생각하는데. 요즘은 아, 그래 내일 쓰자, 그러고. (웃음) 그게 에너지 모드 전환이 잘 안 되는 거예요. 너무 소모를 많이 하고 몸이 점점 늙어 가니까 더 안 되더라고요. 에너지를 풀로 쓰는 게 잘 되지 않으니까. 그럴수록 무릎을 찍으면서 아, 누가 나를 위해서 돈 좀 대주면 좋겠다, 이러면서. (웃음)


신이인 : 저는 전업 작가로 살진 않을 것 같습니다. 아까 윤치규 작가님이 산에 대한 비유를 해주셨는데 저는 정상에 올라가고 싶거든요. 저는 정상에 올라가고 싶어요. 말하자면 좋은 작가가 되고 싶은데. 다른 분들은 아마 쓰는 일에 있어서, 소설 같은 경우 엉덩이 싸움이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거든요. 많은 시간이 필요한 일이라고, 제가 잘 알지는 못하지만 그렇게 추측하고 있어요. 시는 사실 이것도 시인마다 다르지만 저는 쓰면 한 번에 쓰고 그렇게 오래 시간을 들이지 않아요.

 

김희선 : 한 번에 쓴다는 게 몇 편을 한 번에 쓰시나요?

 

신이인 : 빨리 쓰면 한 시간? 정도 초고 훅 쓰고, 나중에 다시 보고 이상이 없으면 이대로 픽스하거든요. 이상이 있어? 그러면 고치지만. 흐름 자체를 아예 뜯어고치기보다는 사소한 표현들이나 더 나은 표현들을 찾아서 2차 수정하는 데 시간을 쓰는 편이라. 사실은 전업 시인을 한다는 것은, 저는 시간이 문제가 아닌 장르를 쓰고 있기 때문에 남는 시간이 너무 많을 것 같은 거예요. 그렇다고 해서 시간 단위로, 네가 한 시간에 한 편을 써? 하면 전업으로 네가 하루에 8편 쓸 수 있어? 그거 절대 아니거든요. 어차피 하루에 최대한으로 쓸 수 있는 건 2.5편 정도라고 생각해요. 내가 그동안 못 쓴 글이 밀려 있고 내 안에 쓰고 싶은 게 너무 많았어, 그러면 두 편까지는 쓸 수 있어요. 그리고 세 번째도 시도는 할 수 있지만 저는 아직 완성감 있는 초고를 하루에 세 편 이상 써본 적이 없어요. 한때는 전업으로 하면 나아질까 싶어서 이번 달은 일주일에 한 번만 출근하고 연희문학창작촌에 들어가서 글을 쓰려고 한다, 양해를 구하고 아르바이트를 띄엄띄엄 나가 본 적도 있지만 오히려 좋지 않았습니다. 노는 시간이 너무 많아 딴생각이 들었고 이 시간에 차라리 돈이라도 벌지, 라는 느낌으로 주변을 배회했어요. 물론 그때의 경험이 나중에 창작에 도움이 됐는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저는 그렇게 확신할 수 없는 불안한 나날을 보내는 것보다는 노는 시간을 돈 버는 데 쓰는 게 좋은 것 같아요. 그리고 앉아서 쓰자 주의가 아니라 지하철에 앉아 있다가 그냥 헙, 쓰자 주의거든요. 그래서 전업이라는 것이 제가 쓰는 활동 규칙에 맞지 않는 수식이라고 느껴졌어요.

 

윤치규 : 직업이 시인이 아니라 삶이 시인이신 거네요.

 

신이인 : 아, 이거 너무 좋은 (웃음) 너무 좋은 이야기인 것 같습니다. 맞아요, 저는 그렇게 살고 싶어요. 그래서 일을 하는 저도, 시인인 저의 한 부분이기 때문에 어떤 일을 하는지와 관계없이 일은 하고 싶습니다. 설령 로또가 당첨돼도 일을 하고 싶듯이. 그런 것 같아요.

 

한설 : 저도 들으면서 생각났는데, 어디선가 그러더라고요. 사람이 가장 많이 일할 때는 가장 바쁠 때라고. 실제로 오랫동안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선 은퇴를 최대한 늦게 하라는 지침을 권위 있는 단체에서 발표하기도 했다는데, 루틴은 반드시 필요하지 않나 싶어요. 제가 학생들 강의를 간간이 맡으면서도 느끼지만, 밤새 시험공부를 한다고 절대적인 공부량이 많은 것은 아니거든요. 딱 11시까지 공부하고 자겠다 하면 타이트하게 효율적으로 공부할 텐데, 새벽 5시까지 공부하고 자겠다 하면 갑자기 6시간이나 여유가 생긴 느낌이 들면서 게임도 하고 영화도 보게 되는······. 그렇다면 전업이 아니라서, 다시 말해 이중 직업을 가지고 있어서 불편한 점은 없을까요? 평론가로서 저는 제 글을 읽어 줄 사람이 주변에 없어서 힘들거든요. 애당초 평론이라는 장르 자체가 합평이 어려운 장르지만(예전에 평론을 합평에 내봤더니 ‘나는 이 작품을 읽지 않아서 뭐라고 덧붙이기 그렇다’는 반응과 ‘솔직히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반응만 겪었습니다), 동료 대부분 마지막으로 책을 읽은 시기가 고등학교 때인지라······.

 

신이인 : 그런데 어떻게 보면 문학장 안에서 내가 생업을 찾지 않는다는 것이 어떤 커뮤니티에서 배제되어 있다는 생각으로 이어질 때는 있어요. 말하자면, 시를 쓰는 친구들은 대부분 대학원에 진학을 많이 해 거기에서 시를 배우고 또는 어떤 창작 공동체를 갖고, 루트가 약간 정해져 있다는 느낌은 있거든요. 왜냐하면 시를 써서 시 관련 일을 한다면 사실은 강사밖에는 큰 답이 없기 때문에. 강사, 교수. 어쨌든 가르치는 일. 그것을 위해서 대학원에 진학하고. 국어국문학과나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해서 시를 쓰는 사람들은 동 대학원에 진학하게 되고. 또 자신을 가르쳐준 선생님 밑에 계속 있게 되고. 뭔가 선생님이 있고 제자가 있고 그리고 본인도 선생님이 되고 제자를 두고. 이 루트가 정해져 있다고 저는 느껴요. 그것이 저랑 맞지 않았고 학부 때부터 학교와 거리를 두려고 노력하다 보니 내가 시를 쓸 때 또는 시 관련 일을 하거나 행사에 초청을 받는다든지 이런 면에서 커뮤니티가 부족하다는 생각은 조금 했던 것 같아요. 같이 뭔가를 하자, 라고 말해 줄 시, 문학 쪽에 동료들이 별로 없다는 느낌. 그러다 보니까 나의 글이 미래에 동료들 기억에 남기에 어려운 부분도 있지 않을까, 이런 고민도 하게 되고요. 그러기 위해서는 정말 잘 써야지, 하는 생각으로, 결국에는 작품에 대한 고민으로 귀결되는데. 그게 그 두 가지를 가졌을 때의 단점, 생각이 많아진다, 그리고 나의 미래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저는 그렇게 이야기하겠습니다.

 

윤치규 : 근데 이게 똑같이 전업 작가가 아니어도 문단 내부에서 대학원생 또는 편집자, 그러니까 출판계 내부 안에서 돈을 벌고 있는 그룹과 이렇게 LUSH 판매업이라든지······.

 

신이인 : 맞아요, 맞아요.

 

윤치규 : 완전 내부에서 전혀 문학과 상관없는 일을 하는 사람과 조금 다른 것 같아요.

 

신이인 : 정확히 이야기하면 그게 맞을 것 같습니다. 문학장 안에서의 공부나 어떤 업을 갖지 않는 문학인. (웃음) 그게 맞는 것 같습니다.

 

이미경 : 저도 강의를 한 6년 넘게 계속해 오는데 제가 하는 강의들은 연극영화과 아니면 문예창작학과, 국어국문과인데 어떤 대학은 국어국문과, 문예창작과가 합쳐지고 어떤 대학 문예창작과는 정원이 줄었어요. 그러면서 제가 잘리기도 하고 옮기기도 했는데. 그들이 하는 고민들 중 큰 부분의 하나가 경제력이에요. 그리고 이 문예창작학과들이 축소되거나 없어지는 건 거의 다 졸업생들의 취업률예요. 대학마다 다르지만 등단은 사실 취업에 속하지 않는 측면이 있기 때문에 상당히 불리한 거예요. 왜냐하면 글을 쓰고 싶은 친구들은 그게 자기의 시작인데, 회사에 들어가야지만 결과물로 쳐주니까. 대학들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문예창작학과를 없애는 분위기, 축소시키는 분위기거든요. 요즘은 초창기 강의할 때보다 희곡 쓰는 친구들이 거의 없어요. 다 드라마, OTT 아니면 웹소설. 요즘은 웹소설 시작하는 친구들도 많죠. 웹소설, 웹툰도 작화를 하는 사람이 있고 스토리 짜는 사람이 있는데 스토리 짜는 거 이 친구들이 조금 결이 달라진 게 글을 쓸 때 내 색깔의 작품을 내고 싶다, 이런 것보다 내가 글도 잘 쓰고 돈도 벌고 싶다, 이런 개념으로 많이 바뀌었기 때문에. 옛날에는 얘들아, 등단 늦게 해도 돼. 너넨 총알을 다 장전시켜 놓고 기회가 되면 따발총처럼 날릴 수 있는 거야. 지금 한 발 쏘면 다시 장전하는 데 시간 많이 걸려, 이렇게 하면서 걔네들한테 편안함을 주려고 애썼는데 요즘 그게 의미가 없는 거예요. 돈이 되느냐 안 되느냐, 그게 중요한 포인트거든요. 그래서 저도 너네 색깔을 가져야 해, 어떤 독서를 해야 해, 이런 게 조언이 안 되는 세상이 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고. 또 주변 친구들을 보면 독서토론이나 영화관람 같은 동호회보다 주식 공부나 부동산 공부, 자기계발서 동호회를 많이 하기 때문에 영향을 받기도 하고. 경제력 분야가 아무래도 글 쓰는 데 많이 들어왔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신이인 : 맞아요, 옛날에는 그런 것들이 소위 말하는 멋, 간지 이런 게 있었는데. 저는 돈을 벌지 않고 꿈을 좇습니다, 이런 게 멋이었던. 그런 담론, 세대 담론도 있었는데. 요즘은 사실 진짜 멋은 꿈도 이루고 돈도 벌고. 나는 돈도 잘 벌어, 요런 느낌으로 가면서. 작가들이 고민이 많아지고 가치를 두는 장르, 문예 장르도 조금씩 변하는 것 같습니다.

 

한설 : 저도 덧붙이고 싶은 내용이 있는데요. 최근에 노동 담론이 제도권 문학장을 휩쓴 것과 관련 있을 수도 있는데, 글쓰기가 특권적인 지위를 누렸던 시기에는 금전적인 측면에서 별다른 보상이 없어도 작가들이 크게 불만을 가지지는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고료가 얼만지 알려달라는 당연한 요구마저 속물적인 것으로 취급하는 어르신을 마주하다 보면 꼭 그런 이유 때문에 불만이 없었던 것은 아니라는 생각도 들지만요. 아무튼 개인적으로 투병기에 관심이 많은 자로서, 최근에 자기서사의 유행과 맞물려 투병기가 폭발적으로 출간되는 것을 보면 ‘누구나 작가가 되는 것’이 가능해지면서 ‘누구도 작가라는 직업에서 자신은 특별하다는 자의식을 만족하지 못하게 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맥락에서 많이 벗어난 이야긴데, 혹시 다른 분들은 작가 외의 직업이 있어서 불편하신 점이 있었을까요?

 

김희선 : 불편한 건 모르겠고, 제가 등단할 때만 해도 문창, 국문 쪽 아닌 분들이 거의 없었거든요. 그리고 저는 동국대 대학원을 다니긴 했지만 꾸준히 이어서 다닌 건 아니거든요. 여기 치과 의사 선생님도 계시지만 (웃음) 사실은 제가 중간에 이가 부러져서 임플란트를 하느라, 이를 뽑고 나니 너무 힘든 거예요. 밥을 못 먹으니까. 결국 휴학을 하게 되고, 그렇게 띄엄띄엄 다녀서 졸업을 했지요. 그래서 등단한 다음에 어떤 출판사에서 모임이 있다고 해서 가면, 아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죠. 저는 누가 누구인지 모르는데 다른 사람들은 서로 알더라고요. 다른 학교 출신이라도 건너건너로 다 아는 것 같았어요. 그러면서 저한테 저분은 무슨 무슨 평론가다 이렇게 말해 주는데, 저는 다 처음 듣는 분들이니 알 수가 없는 거예요. 그리고 문단이라고 해야 하나, 하여간 그쪽에 계신 분들이 말소리가 나지막하고 부드러워요. 저한텐 잘 안 들리는 거죠. 그래서 네? 하고 되묻지만, 아무리 해도 알아들을 수 없는 이름이고······ 소개해 주는 분이나 소개받는 분이나 당연히 제가 알고 있을 거라 여기는데······ 그러면 저는 뭔가 들었는데 아무것도 모르니까 꿔다놓은 보릿자루 같은 기분으로 있다가 돌아오는 거죠. 게다가 원주에 사니까, 주로 모임은 서울에 있어서 아예 참석도 안 하게 되고, 합평 같은 것도 안 하고, 동료도 없고. 지금도 가까운 동료가 누구냐 많이 물어 보는데, 없거든요. (웃음) 왜냐하면 뭘 알아야 사귀든가 말든가 하니까.


윤치규 : 저랑 친하게 지내요. (웃음)

 

김희선 : 그러게요. 친하게 지내야겠어요. (웃음) 어쨌든 그래서 저는 진짜 그냥 원주에서 글만 썼는데 생각해 보면 예전에는 뭔가 찜찜했어요, 초기에는. 약간 이런 거 있잖아요. 문단에 가까이 속해 있지 않으면 청탁이 잘 안 올 거다, 이런 불안감? 주변에서 그런 이야기들을 들어서. 그런데 또 겪어 보니까 꼭 그런 거는 아니었거든요. 그런 건 전혀 없는데, 그냥 오프에서 모임이 있다고 꼭 가야 하는 자리라고 그러면 저는 그 자리가 너무 싫었던 거죠. 왜냐하면 또 보릿자루같이 있을 생각을 하니까. 요샌 코로나랑 여러 이유로 그런 자리들이 거의 없어졌다던데······. 하여간 결론적으로 말하면, 특별히 불편한 점은 없었던 것 같아요. 작가 외의 다른 직업이 있어서 느낀 불편함은 없었다는 거죠. 아마 약국에서 제가 풀타임으로 일하면 시간에 쫓기거나 바쁘거나 힘에 부쳤을 수도 있겠지만, 그런 것도 아니었고. 단지 초기에 그런 껄끄러움이 있었다는 거죠. 불편함이라기보다는.


윤치규 : 저는 전업 작가도 아니지만 전업 회사원도 아니잖아요. 작가들에 대한 동경이 있으니까 등단하고 나서 작가분들 동료 많이 만들고 싶고, 그래서 많이 만나면 그분들은 저한테 금리와 환율을 물어 보고. (웃음) 회사에 출근해서 은행원 자아로 은행원으로서 열심히 일해야지, 라고 생각하면 그들은 저한테 굉장히 홍대병 걸린 예술가병 걸린 사람으로 취급하고. 그래서 나는 둘 다 진심이고 둘 다 잘하고 싶은데 생각보다 두 부류 다 받아들여 주지 않는다는 느낌이 확실히 들더라고요. 그게 조금 제일 불편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나도 지금 작가로 왔는데 아무도 나에게는 작품이나 이런 거 묻지도 않고. 그냥 그렇게 소비되는 것 같기도 하고. 또 직장 내에서는 이상한 아이, 예술가병 걸린 아이, 이렇게 소비되는 것 같고, 그게 불편한 것 같아요.

 

김희선 : 그럼 아, 작가구나, 느끼는 순간은 언제인가요?

 

윤치규 : 저는 글 쓸 때마다 느껴요, 글 쓸 때마다, 늘. 내가 작가라고 생각하죠.

 

한설 : 윤치규 작가님처럼 저도 연락이 많이 오거든요. 치과 치료 관련해서. (웃음) 과잉 진료에 대한 두려움 때문인지 엑스레이 같은 것을 찍어서 많이들 보내 주세요. 예전에 누군가는 저한테 그러더라고요. 나중에 북토크를 하게 되면 사인을 하지 말고 구강 검진을 하라고. 제가 알기로 작가면서 의사인 분이 있는데, 그분도 검진 업무를 주로 맡는 직업건강의학과를 전공하신 걸로 알고 있거든요. 나중에 둘이서 창작자와 평론가로 북토크를 하게 되면 구강 검진을 중간에 해도 되지 않을까 상상도 해봅니다.

 

신이인 : 저는 조금 즐기기도 했어요. 왜냐면 작가들 만나서 글 이야기 안 하는 게 더 좋더라고요. 시 이야기보다 삶 이야기 하고요. 근데 가끔 작가 친구들도 나름 다른데. 꼭 전업 작가가 어떻다, 다른 직업이, 부업이 있는 작가가 어떻다 이게 아니라 자신의 모든 생활과 집중이 시에 꽂혀 있는 시인분들을 만나면 시 이야기만 한 3시간을 해요. 요즘 시가 안 써진다, 부터 시작해서 나는 시를 쓸 때 요러 요렇게 해서 이런 과정을 거쳐서 쓰는데, 이인 씨는 어떠세요? 뭐 이런 질문도 있고. 언니는 어디서 가장 시를 많이 채취해 오세요? 언니는 요즘 어떤 작가를 읽으세요? 이런 시 이야기를 한 3시간 하는 거예요. 그 이야기도 재밌지만, 저는 시를 최대한 키핑 해두고 싶은 마음이 있어서. 킵. 뇌 어딘가에서, 시는 나만의 것, 이 에너지를 밖으로 보내지 말자, 이 느낌이 좋더라고요. 그래서 작가들 만났을 때 문학 이야기 외의 이야기 하면 저도 그 사람의 팬으로서 몰랐던 것을 알아 갈 수 있어서 좋고. 사실 작품은 내가 보니까 알잖아요. 이 사람 이런 글 쓰고 이런 생각 많이 하겠군, 이런 느낌이 있는데 진단하시는 것처럼? 아, 나 저번에 그 소개팅 했는데, 라든지. 야, 이번에 우리 언니 결혼하는데, 이런 이야기 들으면 저는 그게 더 재밌었어요. 일상 이야기 할 수 있어서 더 친구 된 거 같고 좋아서.


한설 : 이제 슬슬 마무리할까요. 약간 시간이 남은 관계로 추가로 말씀하고픈 이야기가 있으면 자유롭게 해주셔도 좋을 듯합니다. 이번 좌담의 주제를 생각해서 ‘창작’과 ‘노동’ 사이의 관계를 정리해 주셔도 좋고요. 그러고 보면 다들 주업으로서의 문학은 가능해도 전업으로서의 문학은 불가능하다는 뉘앙스의 이야기를 많이 해주셨는데, 끝내 창작은 노동이 되기 어려운 걸까요.

 

윤치규 : 노동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하면 문학의 가치가 낮아서 노동이 될 수 없다고 오해하는. (웃음) 저는 문학의 가치가 너무 높아서 노동이 될 수 없다는 거거든요. 문학이 나의 삶이고 나의 전부이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해요.

 

신이인 : 저 같은 경우는 사실 아이돌 가수들을 되게 좋아하거든요. (웃음) 아이돌 가수들을 보면, 아, 이게 뭔가, 아이돌을 좋아하면 회사마다 그게 있어요. 회사에서 추구하는 미학이 있는데, 외모뿐만 아니라 노래부터 안무 콘셉트, 소속사가 추구하는 미학이 있는데, 맛있는 음식집이라도 하나의 요리로만 승부를 보지 않듯이 여러 가지를 하거든요. 근데 SM엔터테인먼트 같은 경우는 완전 전통적. H.O.T부터 소녀시대, 동방신기. 요때쯤의 전통적인 미학을 가지고 신인 남자 아이돌을 냈길래 관심 있게 보고는 있습니다. 근데 이야기가 빠졌는데, 아무튼 가수들을 좋아하는데 사실 무대에서 그 친구들이 보여주는 거는 3분 정도잖아요. 근데 연습을 굉장히, 굉장히 많이 할 거 아니에요. 몇 년 연습하고 데뷔하고 나서도 방송에서 그 친구들을 보는 거는 1년에 몇 번, 3분 동안 무대를 보는 거지만 그 나머지 시간을 그 친구들은 연습에 쏟아 붓고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문학이라는 것이 노동으로서의 문학을 생각해 보면, 저는 제가 글을 쓰는 건 무대에 올라가 있는 3분 같은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내 삶이, 내가 일 년에 몇 번 발표를 하고 몇 편을 쓰고, 이게 그 3분에 불과하고 나머지 시간은 다 그 작품을 만들기 위한 저의 노력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근데 그게 엉덩이로 계속 앉아서 노력을 한다기보다도 이렇게 생에서 스미는 재료들이 지금도 저한테 계속 들어오고 있다고 믿어서 내가 돈 버느라 조금 쓰는데 이걸 직업이라고 볼 수 있을까, 그걸 생각해 보면. 그 친구들도 가수라고 하잖아요. 연습하는 사람입니다, 이렇게 이야기 안 하고 준비하는 사람입니다, 이렇게 이야기 안 하고 저는 가수입니다, 라고 하니까. 저는 시인입니다, 라고 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항상 시를 쓰느냐, 그건 당연히 아니죠, 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당연히 저는 시를 쓰기 위해 노력하고 그 노력에는 노동도 들어갈 수 있고 노동이 아닌 취미 생활도 들어갈 수 있고, 밥 먹고 잠자고 친구 만나고 이런 것도 들어갈 수 있고. 그래서 저한테 문학은 그런 것 같아요. 내가 하고 있는 노동과 동일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것보다 더 큰 것, 다 포괄하는 것, (웃음) 그렇게 생각합니다.


한설 : 삶이 시인이신 셈이네요. (웃음) 삶이 힙합인 사람이 있듯이.

 

신이인 : 그런 것치고는 조금 영세한 장르지만. 그래서 괜히 이렇게 말해 놓으면 조금, 조금 더 의미가 분명해지는 것 같기도 해요. 너무 영세한 장르기 때문에, 이렇게 말이라도 해서 리마인드하고 살자, 그런 느낌입니다.

 

김희선 : 저는 그전에 정말 궁금한 게 우리나라에서 전업 작가라는 게 과연 존재하는가라는 게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왜냐하면 실제로 전업 작가라는 소설가도 결국에는 소설로 돈을 버는 게 아니거든요. 학생들 가르치거나 출판사에 적을 두거나. 거기서 편집을 하기도 하고. 진짜 글쓰기만으로, 왜냐하면 직업이라는 것의 정의가 그런 거잖아요. 자기 생계를 이어 나갈 수 있는 어떤 경제적 수단이 되어야 하는데, 그런 전업 작가는 거의 A작가라든가, 아니면 저는 지금까지 한 번도 못 봤거든요. 아, B작가도 그런가?


한설 : B작가도 예전에 쓴 소설에서 강사료가 많다고 적긴 했어요.

 

김희선 : 그렇죠, 강사료가 더 많지 글쓰기로만 생계를 해결하기 어렵죠. 그래서 저는 전업 작가와 그렇지 않은 작가를 구분하는 거 자체가 솔직히 의미가 없다고 봐요. 다만 글과 관련된 직업을 가지는지 다른 직업을 가지는지 차이만 있는 것 같고요. 그리고 문학이 저에게 뭐냐, 예전부터 그런 질문을 많이 받았는데, 저는 어떤 원대한 목표나 이런 걸 가지고 글을 쓰지는 않았고요. 다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는데 그걸 쓸 수 있는 기회가 우연찮게 생겼고 그게 계속 생기니까 쓰는 거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이런 불안감은 있죠. 이 이야기를 다른 사람이 먼저 쓰면 어떡하지? 그런 불안감이 항상 있어요. 대학이나 이런 데서 어쩌다 강의 요청 들어오면 고사했던 것도 괜히 어떤 학생의 습작을 읽었는데 그게 내가 구상하던 것과 비슷하면 어떡하나, 그러면 결국 제 생각을 접어야 할 수도 있으니까 그런 불행한 사태에 직면하게 될까 봐 강의 같은 걸 피했던 것도 있죠. 어쨌든 저는 쓰고 싶은 이야기가 생각나면 그냥 쓰기 때문에 쓸 때 진짜 재밌어요. 재밌어서 저한테는 글쓰기가 정말 즐겁고, 뭔가 할 수 있는 한 계속하고 싶은 즐거운 일이거든요. 즐거운 취미는 아니고, 왜냐하면 취미라고 하면 부차적인 느낌이 드니까. 그냥 참 즐겁고, 이 이야기를 꼭 하고 싶다, 해야만 한다, 이런 느낌이 들어서 쓰는 것 같아요. 왜인지는 모르지만 이 이야기를 반드시 써야 한다, 그런 것. 그래서 제게 쓸 이야기가 있는 한, 그리고 지면이 있는 한, 계속 쓰게 될, 일종의 운명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요. 


이미경 : 저는 문학을 하게 된 제 자신이 너무 좋고요. 문학 그 안에서 살고 싶은 사람입니다. 아까 말씀하신 것처럼 하늘 아래 새 글이 없다고 누가 먼저 선점을 하느냐가 중요한데, 저도 드라마에서 일 년 반을 다니면서 저희가 일 년 반 동안 준비했던 것이, 어떤 드라마가 나오면서 표절 시비에 휘말릴 수 있겠다, 우리가 준비한 것과 너무 흡사하다, 그래서 엎어진 케이스가 있었거든요. 그래서 그런 것도 중요한 지점이고. 저는 개인적으로 정치에 관심이 많아요. 그래서 아침 뉴스부터 밤 뉴스까지 보면서 하루를 마감하는 사람이고. 시사 관련 집회도 많이 참여하는 스타일이라서 그런 걸 풍자하는 이야기들을 쓰고 싶어요. 제가 블랙코미디를 많이 썼고. 그리고 요즘도 할 이야기가 많아서. 개인적으로 카프카나 조지 오웰 되게 좋아하거든요. 아무래도 세상이 평화롭지 않는 한 계속 글을 쓰게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윤치규 : 저는 다른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전업 작가는, 전업 작가보다 전업 작가 지망생들한테, 전업 작가 지망생이 있잖아요. 그러니까 풀타임 작가 지망생한테 더 이야기하고 싶은 게, 전업 작가는 오히려 없다고 생각하고 전업 작가 지망생은 있을 수 있다 생각하거든요. 그리고 그 시간들이 정말 자기 인생에서 중요한 시기일 거고. 그래서 저는 의외로 그런 질문을 많이 받아요. 직장이랑 병행해서 하니까, 북토크 같은 데 가면 자기가 취업을 할까 대학원으로 진학할까, 아니면 일이 년 정도 전업을 준비할까, 아니면 작가님처럼 직장 다니면서 소설을 쓸까, 이렇게 물어 보면, 저는 무조건 그냥 일하지 말고 소설 써보라고 말씀드리거든요. 갈 수 있으면 대학원 가거나. 근데 저는 평생 전업 작가로 산다는 건 정말 생계가 백 프로 유지되지 않는, 그러니까 말씀하신 그 정도 급이 아닌 이상 그것도 조금 이상한 일이란 생각이 들어서.



〈비슷한 고민에게〉

 

한설 : 이제 정말로 마무리하면 좋을 듯한데요. 자기처럼 글을 쓰면서 다른 직업을 찾는 분들, 아니면 다른 직업을 하다가 글을 쓰는 분들한테 경험에 비추어 도움이 될 만한 이야기를 해주시면 어떨까 싶습니다. 

 

김희선 : 그 말은 꼭 하고 싶어요. 주변에 글 쓰고 싶어 하시는 분들이 문창과를 가야만 한다거나 문창과나 그쪽을 전공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거요. 어렸을 때부터 이 길이 아니면 안 된다 여기는 생각들 말이에요. 그런 분들께 이 말을 꼭 드리고 싶어요. 그러지 않아도 쓸 수 있다, 다른 길을 가도 쓸 사람은 결국 반드시 쓰게 된다고요. 실제로 많은 작가들이 그렇고요. 처음부터 무슨 일이 있어도 이쪽을 전공해야 한다고 여기며 길을 좁게 한정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전하고 싶습니다. 어딘가에 도달하는 길이 하나만 있는 건 아니니까요.


신이인 : 맞아요. 저도 비슷한 맥락에서 전하자면, 문예창작과나 이런 곳에서 시를 쓰는 사람으로 살아가기를 원하는 분들이 계시다면 꼭, 다 전공이나 이중 전공을 하시기를 권해 드리고 싶거든요. 왜냐하면 내가 쓰는 일을 꿈꾸면서 쓰는 세계 안에 갇혀 있으면 그 안에 고일 수밖에 없는데, 저는 바깥에 더 많은 게 있다고 느꼈던 것 같아요. 쓰는 사람들끼리 쓰는 것을 연구하고 읽고 쓰고 읽고 쓰는 것보다 바깥에, 책 바깥에 내가 건져 올 수 있는 것이 분명히 있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다리를 걸치자, 추천, 조언해 드리고 싶어요. 다리를 걸치시는 것이 꼭 시 안 쓰고 다른 곳으로 도망갈 구멍을 만들어라가 아니라 시를 쓰기 위해서 걸치시는 것도 좋은 것 같아요.

 

이미경 : 저는 친구들이 글을 더 쓰고 싶다거나 공부 더 하고 싶다고 하면 문학이나 예술 관련 대학원을 가라고 적극 추천했어요. 저는 거기서 갖는 친구들에 대한 상호작용과, 비록 연극원에 있지만 미술원, 다른 친구들을 만나니까 도움이 많이 됐거든요, 그리고 아 이렇게 공부가 재밌는 거구나, 처음 알았어요. 그래서 적극 추천하는 케이스였고. 물론 토목공학과나 건축학과나 이런 데서 자기만의 무기를 갖고, 또 SF가 범람했을 때는 그들이 많이 치고 올라오는 것도 있었잖아요. 그런 것도 상당히 좋은데. 또 한창 예술에 관련한 사람들 안에만 있을 때 갖는 시너지도 좋은 게 분명 있거든요. 그들의 창의성과 톡톡 튀는 아이디어와 이런 것들에 자극받는 게 커서. 그리고 또 레지던스 가면 좋은 게, 다른 장르 문학도 있고, 다양한 장르를 만나면 장르의 특성도 있지만, 실컷 문학 이야기를 한다는 게 너무 좋아요. 학교에서 문학 이야기를 할 순 없잖아요. 우리 반 얘가 누구랑 싸웠는데, 학부모가 전화 왔는데, 이런 이야기만 하다가 실컷 문학 이야기를 하는 게 재밌는 거예요. 그것도 이점이 있더라고요. 그래서 전 친구들한테 항상 독서모임 하라고 권해요. 독서모임을 만들어서 작가를 정하면 그 작가의 작품을 다 읽어 보세요. 누굴 정하든. 필립 로스 정하면 필립 로스 다 읽고. 항상 독서모임을 통해서 같이 책을 많이 읽으세요. 진짜 도움이 많이 돼요. 저는 항상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윤치규 : 저는 그렇게 말하고 싶어요. 글을 쓰는 사람과, 그러니까 글을 쓰고 싶은 사람이 되고 싶은지, 작가가 되고 싶은지 고민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내가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면 언젠가는 쓰게 되고, 직업을 안 가져도 언젠가는 돌아와서 쓰게 되니까. 직업을 갖는다고 지금 당장 내 꿈을 포기한다거나 그런 느낌을 가지지 않아도 되고. 지금 타이밍을 놓쳐서 아, 지금 시기를 놓치는 것은 아닐까, 그런 고민도 할 필요 없을 것 같고. 그러니까 내가 작가가 되고 싶다면, 유퀴즈 나가서 인터뷰도 하고, (웃음) 토크를 하고, 그런 걸 원하는 거라면. 글을 쓰는 사람과 그런 것은 다른 것 같다고 생각해서. 그런 것들을 고민해 보면 좋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설 : 저희도 다른 직업을 하면서 글을 쓰니까. (웃음) 이제 원고지 분량은 채울 만큼 채운 듯해서 여기서 마무리하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귀중한 말씀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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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쾌의 여정

[에세이] 책쾌의 여정 우당탕탕 독립출판 북페어 기획자 도전기 임주아 뜻밖의 부재중 이름이 폰에 떠 있었다. 도서관에서 근무하는 S 팀장이었다. ‘이 시간에 무슨 일이지?’ 일로 만난 공무원이 퇴근 시간을 넘어 전화 문자 콤보로 연락했다는 건 모종의 긴급 상황 아닌가 싶었다. 아니나 다를까 어딘가 다급해보이는 목소리였다. “헉 제가요?” 요지는 전주에서 처음 독립출판박람회를 여는데 내가 총괄 기획을 맡아줬으면 한다는 것이었다. 시기는 6~7월이라 했다. “오늘이 벌써 3월 7일인······” 기간도 기간이지만 독립출판 전문가도 아닌 내가 총대를 메는 게 맞는지 주제 파악에 나섰다. 그러자 팀장은 전주에서 책방을 운영하는 동료와 팀을 꾸리면 어떻겠냐며 인건비도 한번 생각해보라고 했다. 당황스러우면서도 눈에 광이 돌았다. 단기간에 아이디어를 짜고 사람 모으고 경주마처럼 내달리는 일은 내 주특기 아니던가. 그렇게 살아온 임시변통스러운 삶에 드디어 어떤 보상이 따르려나. 함께할 내 기쁜 동료는 누구인가. 기획자 동료 구하기 첫 타깃은 전주에서 10년 가까이 독립출판 전문책방을 운영중인 뚝심의 M이었다. 그의 책방 인스타그램 프로필에는 ‘기성으로 출간된 도서는 입고를 받지 않습니다’라는 문구가 단호하게 적혀 있다. 설사 혈육이 역사에 남을 명저를 썼다 하더라도 독립출판이 아니면 가차 없이 거절 메일을 전송하고야 말 꼿꼿함이었다. 그런 M의 책방에는 개인이 스스로 쓰고 만든 각양각색의 독립출판물이 대거 진열되어 있는데 그 큐레이션된 목록에는 웰메이드 작품인 ‘책방을 꾸리는 중입니다’라는 에세이도 있다. 화학공학과를 나온 공대생이 어쩌다 모교 대학로의 한 건물 지하에서 책방을 시작해 지금 모습에 이르게 됐다는 애환 서사가 담긴 책이다. 그는 그 책을 들고 전국을 쏘다니며 독자를 만났다. 주6일 책방 문을 여는 그가 문 닫는 날엔 어김없이 북페어 현장에 가 있었으니까. 캐리어를 끌고 고속버스를 타고 기꺼이 책 보부상으로 분해온 그는 힘들다 힘들다 해도 매년 매회 출전을 멈추지 않았다. 전주에서 오로지 독립출판만을 다루는 책방 주인은 M이 유일해서 대표성도 남다른 터다. 때문에 함께 하자는 내 제안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 그의 눈높이도 짐작이 간다. 일찍이 S 팀장이 독립출판박람회 관련 자문을 구하고 싶다고 여러 번 M의 책방을 찾았으나 그는 ‘박람회’라는 명칭부터 맞지 않다고 생각해 소통에 소극적이었던 것이다. 특히 독립출판 행사는 스스로 책을 낸 제작자나 책방 운영자들이 자발적으로 시작해 열리는데 전주에선 도서‘관’ 주도로 만들어질 행사라 생각하니 최대한 피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럴수록 나는 M이 적극적으로 합류해 의견을 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잘되면 그가 책방 꾸리는 일에도 전환점이 올 거라

  • 관리자
  • 2024-05-01
도깨비 이야기

[에세이] 도깨비 이야기 한정현 최근 친구의 부탁으로 점집에 동행한 적이 있었다. 사실 무속에 대해선 알면 알수록 이건 민속 문화의 하나이지, 미래를 알려주는 예언과는 거리가 멀다는 생각이 든다. 주변에서 무속 때문에 큰 피해를 본 경우도 있어서 나같은 경우는 사실 이제 거의 점괘를 안 믿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번 경우는 친구가 갓 신내림 받은 애동이라기에 나 또한 어디 구경이나 한 번 해보자 하는 생각에 따라가겠다고 했다. 문화로서의 무속은 여전히 관심거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상 옆에서 들어보니 그 영검하다던 무속인의 점사는 무척 일반적인 내용이었다. ‘어깨가 아프지 않느냐’ ‘밤에 늦게 자지 않느냐’ ‘두통이 가끔 오지 않느냐’ 오랜 시간 책상에 앉아 있는 친구의 직업상 대부분 추측 가능한 증상이었다. 게다가 친구는 불면증도 없고 두통도 없다는 거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순간 친구는 자신이 혹시 두통이 있는 걸까? 이런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마치 도깨비에 홀린 것처럼 그 말에 순간 따라가고 있더란다. 하긴 나도 그 당사자가 되면 순간 나도 모르게 내가 그런 건 아닐까? 싶기도 할 것 같다. 말 그대로 이런 걸 보고 도깨비에 홀린다고 하나 보다. 다행히 친구는 도깨비에 홀려 도깨비가 되기 전에 그곳을 빠져나왔다. 그런데 이후 나는 왜인지 내내 도깨비 생각을 하게 되었다. 살면서 도깨비 만나기 사실 어렵지 않군, 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말이다. 사실 어릴 땐 도깨비 이야기를 많이 들었던 것 같다. 아무래도 큰 산을 끼고 있는 작은 시골마을에서 나고 자라다 보니 자연스레 온갖 민간 신들의 이야기를 듣게 되면서인 것 같다. 흔히 도깨비와 저승사자는 이길 수 없고 오로지 속일 수만 있다고들 한다. 그들이 그만큼 무서운 존재라는 것인데 특히 도깨비에 대해서는······. 얼마 전 영화 〈파묘〉에서도 나왔지만, 도깨비들은 주로 안 쓰는 물건에 혼이 깃들어 만들어지는 귀신이다. 이후엔 도깨비가 그 사물을 대신하여 그 자체가 되어버리기 때문에 일반적인 혼령하고는 아주 다른 무시무시한 존재가 되어버린다고 한다. 한데 찾아보니 이 험상궂은 도깨비는 사실 일제강점기 이후 도입된 ‘일본식 도깨비’ 이야기가 일부 섞여 있다고 한다. 대표적으로 혹부리 영감이 그러한데, 우리가 알고 있는 혹부리 영감에서는 영감이 부러 도깨비를 속여 혹을 떼지만 이것은 일제강점기 때 일본이 만들어낸 이야기라고 한다. 원래 한국 전래동화에서는 도깨비가 그리 나쁜 존재로 나오지 않는다고 한다. 영감과 같이 어울려 놀던 도깨비들이 서로의 교감을 통해 친밀해진 후 먼저 나서서 영감의 혹을 떼준다는 이야기라고 한다. 생각해 보면 혼령이 물건에 깃들어 만들어진 것이 도깨비라고 한다면 무슨 혼령이냐에 따라 좋은 도깨비가 될 수도 있고 나쁜 도깨비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내가 이십 년 가까이 이고지고 다니

  • 관리자
  • 2024-05-01
어떤 기준

[에세이] 어떤 기준 전석순 “그래도 꽃은 잊지도 않고 제때제때 피네.” 예년보다 개화가 늦어지던 해였다. 어머니는 작년 봄 집 근처 공원에서 찍은 사진을 살펴보며 분명 이번 주쯤에는 피었어야 했다고 중얼거렸다. 이어서 괜히 달력을 들춰 보며 오늘 날짜를 확인했다. 사진 속 날짜와 일치했지만 어째선지 올해는 아직 봉오리조차 불거지지 않았다. 왠지 노크라도 해봐야 하는 게 아닌가 싶었다. 뭐 잊은 거 없냐고. 어디선가 계절을 알려주는 나무는 계절관측목이라고 부른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개나리, 진달래, 매화, 벚꽃 같은. 이 기준에 따르면 아직 봄이 오지 않은 셈이었다. 옆에서 발톱을 깎던 아버지는 아마 까먹은 거 같다고 말하며 히죽였다. 사람도 깜빡깜빡하는데 꽃이라고 다를 게 있겠냐면서. 심드렁하게 이어지는 목소리에 어머니는 아버지를 슬쩍 흘겨봤다. 안 그래도 요새 외출하고 집에 들어올 때 수선 맡긴 바지를 찾아와야 한다거나 식초와 긴장이 떨어졌다는 사실을 더러 잊었던 일이 떠올랐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대수롭지 않게 넘길 수도 있는 일이었지만 어머니는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게 아닌 눈치였다. 몇 번쯤 길을 걷다가도 순간순간 또 뭔갈 잊고 지나쳐 버린 건 없는지 따져 보는 것 같았다. 한참 골몰하다가 겨우 친목회 회비 날짜를 기억해 낼 때도 있었다. 그때부터 사소한 거라도 핸드폰에 따로 메모를 해두고 수시로 빠뜨린 건 없는지 살펴봤다. 요가 교실 수업 신청 날짜나 관리비 납부 마감일과 함께 수리기사 방문 일정까지. 고개를 들다 어머니와 눈이 마주친 아버지는 돌아앉으며 우물댔다. “한 해쯤 그냥 지나가면 뭐 어때서.” 아버지의 생각과는 달리 뉴스에서는 연일 전국 봄꽃 개화 예상 일정을 내보내며 전문가까지 나와 늦어진 원인을 분석했다. 동네 사람들은 환경오염을 들먹이며 사나워진 날씨 탓에 종잡을 수 없는 계절 때문일 거라고 입을 모았다. 꽃도 계절을 헷갈리는 거라고. 개중에는 진짜 꽃이 피지도 않고 봄이 지나가는 게 아닐지 염려하는 이도 많았다. 어머니도 그중 하나였다. 나중에는 꽃을 향해 잊을 것 같으면 알람을 맞춰 두거나 메모하는 습관을 기르라고 조언해 줄 기세였다. 어머니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앞산을 내다보고 매일 지나다니던 화단과 공원을 천천히 돌아봤다. 더러 까치발까지 하고선 주변을 휘둘러보기도 했다. 혹시 진즉 만개한 꽃을 놓친 게 아닌가 싶은 듯했다. 처음에는 조금 서운한 기색이더니 나중에는 아예 울상이 되었다. 어느새 나도 거리를 돌아다니면서 꽃이 필 기미가 보이는지 기웃거렸다. 언뜻 봉오리라도 보이면 사진을 찍어 바로 보내드리려 했지만 좀처럼 찾아볼 수 없었다. 바람까지 서늘하니 날짜와는 상관없이 정말 봄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이러다가 봄을 건너뛰고 곧바로 여름이 되는 게 아닐까,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그즈음 제법 많은 양의 봄비가 내리더니 하루 사이에 기온이 크게 올랐다. 곧 지천으로 사방이 꽃이었다. 지난해 유난히 다닥다닥 모여 있

  • 관리자
  • 2024-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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