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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속좌담 '창작, 노동' 2차 〈(비)정규직 교육노동자로서의 작가〉

  • 작성일 2023-12-01
  • 조회수 952

연속좌담 '창작, 노동' 2차 〈(비)정규직 교육노동자로서의 작가〉


기획 연속좌담 ‘창작, 노동’ 2차

(비)정규직 교육노동자로서의 작가


2023년 11월호부터 2024년 2월호 사이에 총 4회의 좌담회 내용이 순차적으로 발표될 예정이다.


ㅇ 회차별 구성

- 1차 : 부업이 있는 작가, 본업이 있는 작가

- 2차 : (비)정규직 교육노동자로서의 작가

- 3차 : 문학 강연 시장

- 4차 : 대학(원)생 작가들의 미래설계

 

ㅇ 회의명 : 《문장 웹진》 2023년 기획 연속좌담 ‘창작, 노동’ - 2차

          - (비)정규직 교육노동자로서의 작가

ㅇ 일 시 : 2023년 10월 13일(금) 14:00~16:00

ㅇ 장 소 : 예술가의 집 세미나1실

ㅇ 참 여

 - 사회자 : 이병철(시인/문학평론가)

 - 참여자 : 민선(웹소설가), 이은선(소설가), 조대한(문학평론가), 황종권(시인)

 

〈개회〉

 


이병철 : 어려운 시간 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기획좌담은 총 4회로 계획되어 있는데 다 학교에 계시는 분들이라서 어쩌면 이번 주제가 제일 민감할 수도 있거든요. 어떻게 보면 학교의 구조적인 내용까지도 짚어야 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귀한 시간 내어 좌담에 참여해 주신 작가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서로 인사는 하셨나요? 여기 구면도 계시고, 이은선 작가님하고 황종권 작가님은 예전에 같이 근무하셨죠? 그리고 민선 작가님과 저는 지난 학기에 명지전문대에서 수업했고요. 그리고 조대한 작가님도 명지전문대 심화 과정 지금도 나오고 계시고. 그리고 또 이렇게는 한양대 국문과 대학원.

 

이은선 : 이렇게 다 학연과 지연인가요. 너무 좋다. (웃음)

 

민선 : 혹시 혈연은 없나요. (웃음)

 

이병철 : 저랑 조대한 작가님이 다닐 때는 민선 작가님이 안 계셨고요.

 

민선 : 지금 재학 중이라서요.

 

이병철 : 한신대 강의 나가시지 않나요? 

 

조대한 : 아 거긴 아니에요. 서울예대에 나가고 있습니다.

 

이병철 : 그렇군요. 첫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을 제가 지금 한 것 같은데, 그래도 지금 하시는 일이랑 간략하게 근황이라든가 자기소개 좀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조대한 : 저는 문학 평론을 쓰는 조대한이라고 합니다. 문학 평론은 2018년부터 쓰기 시작했고, 오늘 주제와 관련하여 대학 강의는 2020년부터 사이버 강사로 시작해서 대면으로 바뀐 지금까지 두 개 정도 대학의 문창과 강의를 하고 있습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민선 : 저는 글 쓰는 민선이라고 합니다. 제가 꼭 외자라고 이름을 말하는데요. 안 하면 못 알아들으시는 분들이 많아서요. (웃음) 저는 2019년에 처음으로 웹소설을 냈고요. 최근까지 3종 나왔고, 연말에 연재 오픈을 앞두고 있습니다. 대학 강의는 올해부터 시작했습니다.


이은선 : 저는 2010년에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했고요. 안양예고에서 7년, 노작홍사용문학관에서 3년, 한신대 문예창작과에서 7년. 고등학교, 문학관, 대학 문예창작과에서 소설 창작이랑 읽기를······ 이렇게 말하니까 원로 같은 느낌이 드네요. (웃음) 마음은 아직 신인이에요. (웃음) 잘 부탁드립니다.


황종권 : 저는 시 쓰는 황종권입니다. 2012년부터 예술고등학교 수업을 맡았고, 안양예고를 거쳐서 고양예고에서 수업을 하고 있어요. 지금 대학에서 수업하시는 분들의 제자들을 제가 보내고 있습니다. (웃음)


이병철 : 저는 시와 문학 평론을 쓰고 있는 이병철이고 대학 강의는 2016년부터 시작해서 명지전문대 한양여대 단국대, 3개 학교 출강하고 있습니다. 제 소개는 이렇게 갈음하고요. 지금 2번 질문까지 자연스럽게 이야기해 주신 것 같아서 본격적인 이야기를 나눠 보겠습니다.



1. 강의 노동자의 삶에서 느끼는 기쁨과 애환


이병철 : 강의 노동자 삶에서 느끼는 보람과 기쁨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라는 질문에 대해서 황종권 작가님부터 말씀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황종권 : 저는 고등학생들을 오래 가르쳤습니다. 예고 중 문예창작학과 교육 과정이 안양예고, 고양예고 두 군데밖에 없거든요. 제가 두 군데에서 모두 가르쳤습니다. 학생들은 아주 어릴 때부터 지방이나 아주 먼 곳에서 문학을 하고 싶어서 엄마를 이기고 올라옵니다. 쉽지 않은 선택을 하는 것이죠. 그래서 뭔가 뜨겁습니다. 문학을 처음 사랑하는 마음을 만나서 그렇게 느끼겠지요. 문학의 첫 마음을 만날 때 큰 보람을 얻습니다. 그리고 시인이나 작가가 돼서 동료처럼 인사를 나누기도 하는데 그때도 큰 보람을 얻습니다.

 

이병철 : 지금 이야기해 주신 거 들으니까 대학에서 학생들을 만나는 거는 이 친구들도 하나의 어떤 성장한 독립된 주체로 대하는 건데, 확실히 중고등학생들 특히 이제 부모를 거스르고 문학을 하겠다고 온 친구들한테는 선생님들이, 교사들이 부모 역할도 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드네요. 이은선 작가님도 고등학교, 대학교 다 경험하셨는데 어떤 기쁨을 느끼셨는지.

 

이은선 : 저 같은 경우는 안양예고 그리고 문학관 그리고 대학 문창과에 일주일에 월, 화, 수, 목, 4일을 한꺼번에 나갈 때가 있었어요. 이렇게 생각하니까 굉장히 재벌, 강의 재벌처럼 느껴지지만. (웃음) 어쩌다 보니 그럴 때가 있었는데요. 10대부터 80대까지 일주일에 모두 만나는 거예요. 왜냐면 문학관 강의는 연령과 상관없이 신청해서 오시니까. 그래서 그때 배운 사실은 책을 읽고 글을 쓰고자 하는 마음은 사실 사람들이 외형이나 재력 혹은 현실을 떠나서 똑같다는 거예요. 그런데 고등학교는 달라요. 왜냐하면 입시가 직결되고 입시를 통과해야 하는 친구들이라서 문창과 프로그램 자체가 달랐어요. 그래도 좋은 글을 읽고 좋은 책을 함께 나누고 조금 더 나은 문장을 쓰겠다는 마음은 똑같아요. 그래서 소설을 쓰지 않았더라면 만날 수 없는 10대부터 80대까지 인연을 소설가가 되어서 소설을 함께 읽으면서 만나는 특별한 경험을 하고 있지 않나, 그분들이 강의를 통해서 작가를 만나는 경험을 했다고 하지만 특별한 사람들을 다양하게 만나 저의 스펙트럼이 넓어지는 경험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이병철 : 네, 감사합니다. 그러고 보니까 오늘 같이 지금, 이 질문지 구성하면서 살짝 제가 간과했던 부분이 있는데. 학교라는 제도 바깥의 문학 교육에 대한 이야기를 지금 문학관에서 만난 어르신들하고 수업하셨던 내용을 말씀해 주셨는데, 그 이야기도 오늘 많이 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민선 작가님은 지난 학기 강의하시니까 어떤 보람, 기쁨이 있었는지 말씀 부탁드립니다.

 

민선 : 앞서 작가님들이 말씀해 주신 거랑 조금 다를 것 같아요. 왜냐면 제가 만난 문창과 학생들은, 제 동기들도 마찬가지고 웹소설이랑 장르 소설에 생각보다 크게 관심이 많지 않았어요. 문창과 동기들 경우 웹소설이랑 장르 하는 사람이 저밖에 없거든요. 외부 사람들은 정말 많은데 순문학 전공한 사람들은 접근하기 어려워한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거든요. 제가 이번에 강의를 하면서 제일 먼저 했던 질문이 혹시 장르 소설이나 웹소설 읽어 보신 분 있느냐고 물어 봤어요. 처음 접하시는 분들도 있을 수 있으니까. 근데 의외로 3분의 1 정도만 읽거나 접했고 나머지는 안 보신 거예요, 한 번도. 그러다 보니 저도 거기에 맞춰서 교육해야 하잖아요. 정말 아예 모르시는 분들을 가르치는 느낌이어서 어떻게 보면 재미있기도 하고. 문창과 학생들은 기본적으로 문장을 다 잘 쓰시는 분들이니까 굉장히 빨리 늘어요. 그래서 그 부분은 장단점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도움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병철 : 다음 질문에서 다시 이야기할 수 있는 내용이네요. 내가 주력으로 하는 장르라든가 전문 분야가 현장과 어긋날 때, 현장의 커리큘럼이나 학생들의 요구나 수요하고 맞지 않을 때 거기서 오는 비틀림이 있을 것 같은데요. 조대한 작가님은 어떤 보람과 기쁨을 많이 느끼셨나요?

 

조대한 : 장르 문학을 처음 접하시는 분들, 글쓰기를 처음 배우는 10대 학생들부터 80대 어르신들에 이르기까지 많은 분과 문학에 대한 대화를 나누고 가르침을 주셨다고 말씀해 주셨는데요. 저는 주로 20대 대학생들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었던 것 같아요. 아무래도 가장 큰 기쁨은 무언가를 상대방에게 가르칠 때 그것을 신기해하고 재밌어하고 수업에서 얻어 가는 게 많다는 그런 피드백을 보이는 순간의 순수한 기쁨이라고 해야 할까요. 그걸 처음 느꼈을 때 보람이 제일 컸던 것 같아요. 이런 개인적인 것보다 조금 더 확장된 보람과 기쁨이라면 학교에서 무언가를 가르치는 일에 대해 아직 남아 있는 사회적인 존중이라고 해야 할까요. 그런 느낌이 개인적으로는 있다고 생각해요. 어머님께서 늘 그러시거든요. 그래도 학교 선생님으로 강의를 하러 가는데 옷도 좀 더 차려입고 단정하게 하고 가라고. (웃음) 일의 현실적인 어려움과는 별개로 주변에서 다독여 주는 느낌이 들어서······.

 

이은선 : 월급과는 상관없이, 존경심과······.

 

조대한 : 네, 맞습니다. (웃음) 서로 상쇄되는 것 같기는 하지만요. 현실적인 이야기도 곧 나오겠지만 어쨌든 그런 무형의 사회적인 보람도 있는 것 같습니다.

 


이병철 : 감사합니다. 이어서 바로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죠. 강의 노동에서 느끼는 애환과 절망이라고 이렇게까지 표현했는데 글쎄요, 뭐, 뒤에 이어지는 다른 질문들하고도 서로 상호되는 내용일 것 같긴 한데요. 저한테 이런 좀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순간이 언제냐고 하면, 저 같은 경우에는 문학을 가르친다는 거는 굉장히 감수성에 호소하는 일이기도 하고 이성보다는 감성에 기울어진 일인데, 학교라는 곳은 행정이라든가 여러 가지 시스템적인 부분이 있다 보니까 행정하고 교육하고 충돌할 때 안타까움을 많이 느끼는 것 같고요. 또 다른 건 대학교에서 보내는 2, 3, 4년의 시간들 이후에 이 친구들은 경험이 무한하게 확장되고, 굉장히 많고 다양하고 빠른, 어떤 변하는 것들 속에 금방금방 던져지잖아요. 그래서 학교에서 보낸 시간들을 너무 빨리 잊어버리는 것 같은 거. 그러니까 같이 수업하면서 인간적인 관계를 맺고 이 친구들이 어떻게 더 성장해 나가는지 계속 지켜보고 싶은데 먼저 연락을 해오지 않으면 알 수 없거든요, 선생님들은. 지속적으로 연락을 주고받는 친구들도 있지만 학교 다닐 때 정말 열심히 했던 친구들이 그 이후에 계속 글을 쓰느냐, 아니면 어떻게 살고 있느냐, 이런 소식이 잘 닿지 않을 때, 안타까움을 느끼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은 어떠신지. 이번에는 조대한 작가님부터.

 

조대한 : 사실 저는 짧은 경력 때문인지 몰라도 애환과 절망까지는 미처 못 느껴 본 것 같고요. 아까의 기쁨과 반대의 감정이라고 한다면 그런 거겠죠. 아무래도 강의를 처음 시작하면 열정이 넘쳐서 준비도 잔뜩 하고, 어떻게 하면 듣는 사람들이 좀 더 내용을 재밌게 받아들일까 고민도 하고, 여러 가지 문화 텍스트도 넣으면서 노력을 많이 하는데 모든 수강생들이 다 적극적으로 받아 주지는 않잖아요. 어떤 분들은 열심히 그리고 재밌게 집중해 들어 주시는데 또 어떤 분들은 심드렁하게 듣고 있을 때 처음엔 그게 좀 상처긴 했어요. 모든 이들에게 사랑받고 싶었던 초심자의 마음이 응답받지 못했을 때 오는 아픔이라고 할까요. 소통되지 않을 때 오는 슬픔이라고 해야 할까요. 여튼 그런 게 있었는데 지금은 마인드가 바뀌어서 너무 멀지도 가깝지도 않게 적당히 거리를 두면서 하는 법을 조금씩 배워 가고 있습니다.

 

황종권 : 저는 강의에서 얻는 기쁨, 친구들 만나 얻는 기쁨 그런 것도 좋은데 생활이 잘 안 되니까 회의적이긴 합니다. 그리고 예고 같은 경우는 두 번 수업해서 하루 가서 일곱 시간씩 수업을 하는데 말이 14시간 수업이지, 사실상 5일 수업이 아니라 일주일 내내 연락이 온단 말이에요. 그러면 거의 일주일 동안 지도하는 건데. 입시이기 때문에 또 연락이 오면 받아 줘야 해요. 그런데 이렇게 열심히 지도해 봤자 어떠한 사유로든 그만두면 사후 복지 같은 게 없어서 알바생보다 못합니다. 그것도 꽤 오래 5년 6년, 거의 10년 이렇게 일하시는 분들도 있는데 그렇게 일하고 나서도 실업급여라든가 어떤 처우가 없죠. 그냥 밥 한 끼 먹고 헤어지면 잘 헤어진 거고. 그냥 알지도 못하고 사라지는 경우도 더러 있고요. 그런 게 많이 안타깝습니다.


이은선 : 아무래도 저는 소설가다 보니까 창작하는 시간과 강의하는 시간의 균형을 어떻게 맞춰야 하는가. 꼭 밤새 안 되다가 30분 있으면 머리 감고 나가야 하는데 그때 갑자기 집중될 때 진짜 환장하는 거죠. 왜 하필 지금 풀릴까. 이거 조금 더 쓰면······. 나중에는 운전을 해서 학교에 가면서 녹음기를 켜놓고 말하면서, 미친 사람처럼 이상한 문장들을 말하면서 간 적도 있었는데 가서도 얘들 얼굴이 보이는 게 아니라 문장으로 보였을 때 혹시 내가, 뒤늦게 이 수업에 집중하지 못하고 마감에 빠져 있지 않았나. 혹은 사람이, 문학 하시는 분들이라 다 이해하실 텐데, 현실이 아무 일 없이 잘 풀려도 문장이 안 풀리면 세상 나만 불행한 것 같잖아요. 근데 또 문장은 잘 풀리는데 현실은 카드값이니 뭐니 압박 들어오고 인간관계 다 꼬이고 이러면 너무 화나잖아요. 근데 문장만 잘 풀리면 갑자기 또 미친 사람처럼 행복해지는 이상한 현상에 빠지는 경우가 있잖아요. 그 매일 매일이 그런 순간의 연속인 것 같아요. 특히 마감 있을 때는 거의 미친 사람처럼 지내는 느낌이에요. 균형 같은 건 애초에 없었습니다. (웃음)

 

이병철 : 아무래도 다음 질문하고 이어지는 내용 같은데요. 이게 진짜 어려운 것 같아요. 내 시간, 온전히 내가 쓸 수 있는 시간,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생기기 힘들다는 게 강의 노동에서 느끼는 가장 큰 어려움 중 하나인 것 같습니다. 민선 작가님은?

 

민선 : 저는 애환과 절망이라고 하기는 대학 강의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어서 절망이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지금 작가님이 말씀해 주신 것과 같이 저희가 이성과 감성을 계속 다루면서 일하잖아요. 근데 오히려 제가 하는 장르는 감성보다는 이성적인 부분을 많이 강조해야 해요. 왜냐하면 저희는 마감을 주 5일 해야 하기 때문에 감성적이면 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최대한 직장인처럼 쓰게끔 해주는 게 맞거든요. 하루에 어느 정도 쓸 수 있는지. 그다음에 자기감정이든 시간 배분과 확보를 어떻게 하는지, 이런 것도 정말 잘 알려줘요. 제가 시행착오를 겪었기 때문에 감성적인 것보다는 오히려 반대의 일인 거죠. 기존의 문창과라든지 예고에서 가르쳤던 부분들에 오히려 반하는. 지금 이상적으로 마감을 이렇게 해야 하고, 한 번에 분량을 이 정도 써야 되기 때문에 이 정도를 해야 된다, 아예 수치로 확정을 지어서 얘기를 해주는 편이에요.

 

이은선 : 좋은 말씀인 게 현장 작가가 제일 좋은 게 자신의 노하우를 직접 알려줄 수 있는 거잖아요. 어디 가서 뜬구름 잡는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라 이렇게 해야 한다는 걸, 직접적인 글쓰기 테크닉 같은 걸 배우러 오는 애들한테 그걸 직접 가르칠 수 있는 부분이 아닌가. 여기서 글쓰기 테크닉은 어떻게 하면 효율적으로 문장을 쓸 수 있는가, 무슨 방식이 더 효율적인 것일까 함께 고민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민선 : 오히려 그게 제 장점이라고 생각해서 최대한 알려주려고 노력을 많이 하기는 했어요. 근데 조대한 작가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어떤 학생들은 관심이 없어요. 장르 소설이든 웹소설이든 나는 몰라, 나는 순문학 할 거야, 이런 식이죠. 근데 저는 모든 분야에서든 7대 3 정도를 예상해요. 관심 있는 사람이 7이면 관심 없는 사람은 3 정도 늘 있어요. 연재하는 작품에서도 독자들이 좋아해 주시는 비율이 7 정도, 아닌 사람은 3 정도로 늘 그냥 탈락해요. 그러다 보니까 좋아하시는 분들 중에는 수업 전후로 연락하고 메일도 따로 보내고 과제까지 따로 해가지고 물어 볼 정도로 열정을 가진 학생도 있는 반면에 과제 해온 거 보면 이 친구가 성의 있다, 없다 너무 잘 보여서 상처보다는 뭐, 그럴 수 있지, 하고 빨리 받아들이는 편이에요. 균형 이야기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 소설 쓰는 분이 계셔서 아마 아실 텐데 소설은 무조건 물리적인 시간이 오래 들어가요. 근데 저도 보통 주 5일 연재하기 때문에 하루에 하나 써서는 도저히 맞출 수가 없어요. 그래서 무조건 양으로 할 수밖에 없거든요. 저 같은 경우는 학교 강의하는 날, 외부 일정은 한꺼번에 그날 보는 거예요. 예를 들어 저녁 강의면 낮에 다른 일정을 보는 식으로 시간을 확보하려고 노력했어요. 저는 그런 식으로 했는데 다른 분들은 어떻게 하시는지. (웃음)

 

이은선 : 저는 창작, 교육, 플러스 육아까지, 황종권 작가님도 그렇지만 육아도 하고 있고요. 저 사실 간만에 서울 올라오면서 여행하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옛날 느낌도 나고. 사실 육아를 하다 보면 아이라는 말 대신 애새끼라고 (웃음) 말할 정도로 울화가 많거든요. 그래서 뭐랄까, 요즘 하루하루가 전투적으로 변해 가고 있거든요. 창작할 시간이 거의 없어요. 애가 옆에서 질질 짜고 있는데. 공부, 타이핑 치고 있으면 엄마 하지 마, 하고 노트북을 막, 우다다다 하는데. 요즘은 일상이 전투고 육아인데, 또 한편으로는 그렇게 생각해요. 이 마음을 배우려고, 나중에 소설로 쓰면 되니까. 참자. 참자. 이런 마음으로 육아도 소설에 도움이 되려니 하면서. 또 그러면서 창작하는 친구들을 보면 이 친구들도 집에서는 소중한 아이겠지 하면서 다른 면을 보게 되더라고요. 강의 시간에 잘 수도 있지. 그래, 피곤했구나, 하면서. 밥은 챙겨 먹고 다니니. 약간 따뜻한 시선으로 보면서 다른 방식으로 삶과 창작을 독려하는 측면도 있는 것 같아요.

 

이병철 : 애환이라고 표현했는데 이런 게 애환 같거든요. 육아를 병행하시면서 강의 노동을 하는 것도 어떻게 보면 애환이기도 하고. 저는 애환이라고 명명할 만한, 그런 마음의 어려움을 언제 주로 느끼느냐면, 학교가 시스템이나 인프라 같은 게 전부 전임 교원 위주로 만들어져 있다 보니까 중간에 공강 시간이나 이럴 때 있을 공간이 없잖아요. 비정규 교원들은 가 있을 데가 없으니까. 주로 주차장에서 차 안에서 시간을 보내죠. 교강사 휴게실이 따로 있긴 한데 공용으로 쓰는 공간이라 학생회 친구들이 식사를 한다거나 이런 용도로 써서 그럴 때 교강사가 눈치가 보여서 자리를 비워 줘야 하는 경우도 있고. 저는 지난 학기 명지전문대에서 오후 수업 끝나고 야간 심화 수업 전까지 한 4시간 정도 비어서 응암동에 있는 삼부 보석 사우나라는 찜질방에 가서 시간을 보냈거든요. 이런 이야기를 하면 다들 이런 경험이 있더라고요, 비전임 교원 분들이. 얼마 전에 모 선배는 강의 나가서 중간에 한 세 시간 정도 빌 때마다 학교 앞 모텔을 대실해서 한잠 잤다고 해요. 그렇게 하지 않으면 몸이 견뎌내질 못했다고 이야기했는데, 즉물적인 애환이긴 한데, 이런 모든 시스템과 인프라 같은 것이 사실 전임 교원 위주로 돌아가지만 막상 강의를 주로 담당하는 것은 비전임 교원이라는 어긋남 같은 데서 서러움을 느끼는 경우가 (웃음) 있었던 것 같아요. 



2. 강의와 창작 사이의 균형


이병철 : 각설하고, 자, 이번에는 창작과 교육의 균형, 아까 이은선 작가님이 이야기해 주셨는데 어떻게 맞춰 나가시는지, 저 이거 진짜 궁금하거든요. 글 쓸 시간이 너무 없는 것 같아요. 제 창작을 거의 못 하게 되는 것 같아서. 심지어 학생들 글 쓴 걸 피드백해 주다 보면, 어떤 좋은,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피드백을 해주다가 떠오를 때 있잖아요. 근데 해주고 나면 아, 씨, 이거 내 건데 그럴 때 있거든요. (웃음)

 

이은선 : 왜 내 거에는 이렇게 안 써지고. (웃음)

 

이병철 : 이거 내가 가져가야 하는데 (웃음) 그런 순간도 있고 그래서 어떻게 맞춰 가는지 궁금합니다. 먼저 생각 떠오르신 분이 자유롭게 이야기해 주세요. 조대한 작가님께 궁금한 게, 비평도 창작이지만 철저하게 주문 제작이라서. 늘 일이 주어지고, 항상 어쩔 수 없이 시간을 억지로 만들어서라도 하셔야 하잖아요. 어떻게 집필 시간을 만드는지.

 

조대한 : 물리적인 시간은 다들 부족하실 텐데 그래도 저는 비평이라서 이득을 보는 점이 많아요. 왜냐하면 제가 가르치는 내용이 일단 비평과 관련된 이론이나 텍스트 분석이다 보니 현장에서 저에게 주어지는 재량권이 많아요. 그러다 보니까 애초에 문학 작품도 관심 있는 작품들로 가르치고 분석 내용도 최근에 공부했던 것들로 가르쳐도 사실 크게 이질감이 없거든요. 그런 부분에서 시와 소설을 창작하시는 분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수월해요. 다만 이런 일로 시간 부족을 겪은 적은 있어요. 한 반에 60명, 두 반 120명의 수업을 처음 진행해야 하는데 치기 어린 열의에 차서 중간 과제를 제출한 모든 분들에게 세부 피드백을 해주려 했어요. 한 학기 해보니까 도저히 (웃음) 안 되겠는 거예요. 그래서 다음 학기부터는 포기하고 다른 방법으로 바꾸었어요. 사실 처음에 주변 선배 분들이 말렸거든요. 너 지금 의욕에 차서 헛짓을 하고 있는 거다, 이렇게 말씀해 주셨는데 그럼에도 나는 할 수 있다는 마음으로 했다가 개인적인 일과 강의 사이의 균형을 깨뜨리고 말았어요. 경험하면서 이렇게 양쪽의 밸런스를 배우는 것 같습니다.

 

민선 : 저는 되게 공감했던 게 처음에 하니까 너무 열정이······ 수업 준비도 엄청 열심히 해서 PPT 만들고 했는데 힘들더라고요.

 

이은선 : 힘들 때 학생들과 합일이 되는 강의가 있고, 뭔가 계속 어긋날 때가 있어요. 매 학기 다른 문제들이 복합적으로 달라지기 때문에 입체적으로 경험치가 쌓이는 기분이에요.  


민선 : 저는 어쨌든 한 학기 마치면 포트폴리오를 만들어서, 혹시 웹소설 관련된······ 요즘 회사들이 정말 많거든요. 웹소설이나 웹툰이나. 미디어 쪽에 포폴을 원하면 그걸 낼 수 있게 해주고 싶어서 다 설명해 줬어요. 이거 나중에 여러분들이 이렇게 해서 자소서 쓸 때 해도 되고 나중에 더 준비해서 공모전이나 출판사 투고로 내도 된다. 실제로 웹툰 회사에서 사용 중인 기획안 폼이 있어서 그것도 다 빌려왔어요. 회사에 요청해서 학생들이 직접 작성해 볼 수 있게 해줬는데 문제는 제가 다 피드백을 해줘야 하는 거예요. 인원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할일이 계속 늘어나고. 수업이 끝나도 메일이 오거나 피드백을 요청하면 해줘야 하니까 확실히 양쪽 시간 분배를 해야 하더라고요.

 

이병철 : 그 데일리 글쓰기를 계속하셔야 하잖아요, 작가님은. 지난 학기 한 학기 수업 해보셨으니까 앞으로 강의가 더 늘어나면 어떻게 해야겠다는 그런 생각은······.

 

민선 : 방학. (웃음) 방학이 있으니까 방학 때 몰아서 해야 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하고. 주에 무조건 아무것도 안 하는 날을 만들어요. 그다음에 사실, 저는 지금 주말이 아예 없거든요. 다른 사람들은 주 5일 하고 주말에 쉬지만 저는 일이 있으면 주말에도 일하는 경우가 많아서. 그다음에 다른 작가님들은 어떠신지 모르지만, 저는 운동을 일부러 하는 편이거든요. 앉아 있으면 허리도 아프고 요통이 생겨서 일부러 운동을 해서 체력을 만들고 일하려고 해요.

 

이병철 : 장르가 다양하셔서 지금, 다섯 번째 질문 이야기하기 좋을 것 같은데요. 황종권 작가님은 어떻게?

 

황종권 : 저도 집에서 창작을 따로 하는 게 불가능합니다. 얘가 둘 연년생이니까. 그래서 보통은 재워 놓고 10시 반부터 앉아서 하는데 이제 방법을 바꿨어요. 저는 이메일링 서비스를 하고 있습니다. 저도 주일마다 시 한 편, 산문 한 편 보내야 해요, 잘 쓰든 못 쓰든 그 일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찾은 방법은? 예고 수업할 때 7시간을 하거든요. 그러니까 한 시간은 이론이나 텍스트를 읽고 두 시간 창작해요. 서울예대 기준으로 한 시간 반 연습할 때도 있고. 보통 두 시간 글쓰기를 줘요. 학생들한테 주제를 주고 저도 써요. 그때 쓰고 끝내요, 같이. 그래서 좋은 게 뭐냐면 얘들도 쓰라 했는데 나도 쓸 수 있다, 나도 한 편 썼다, 같이 읽어 보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총각 때나 시간이 있을 때는 시를 쓴다는 낭만적인 허세가 있었는데 그게 다 빠지고 약 10분의 시간을 어떻게 잘 활용할 것인가 이런 시간을 정해 놓고 직업적으로 창작을 합니다. 가령 월, 수는 수업 나가니까 그때 두 편. 한 시간은 시, 한 시간은 산문, 이렇게 쓰고. 마지막 토요일은 얘들 잘 때, 낮잠 시간에 퇴고해서 원고 업로드하고. 아주 강제로 하고 있습니다.

 

이병철 : 이렇게 메일링 서비스같이 스스로 강제성을 부여하는 것도 좋은 방법 같아요, 균형을 맞춰 나가기 위해서. 이은선 작가님 아까 하신 말씀에 첨언하실······.

 

이은선 : 생각해 보면 임신 초기부터 서울신문 문화면에 특집 연재를 하고 있었어요. 한 달에 한 번씩. 전국 문학관을 찾아다니면서 취재를 해서 연재했는데 임신인 줄 모르고 시작해서 어느덧 3년을 채웠더라고요. 아이랑 같이 다녔어요. 그리고 조리원에서도 마감하고. 기형도 문학관에 취재를 갔는데, 배가 많이 불러 있으니까 과장님께서 도대체 산달이 언제냐고 물어서 내일이요, 그랬더니 놀라셔서 왜 이러고 다니느냐고. 그래서 지금 마감이 급해서 이러고 다닌다고. 사무국 분들이 갑자기 막 길을 터주시더라고요. 빨리 집에 가라고 빨리 가서 아기 낳으라고. 그래서 출산 전날까지 취재하고 조리원에서 기사 쓰고 그리고 또 아이 안고 다니면서 쓰고, 지금은 주로 아이가 잠든 새벽에 잠을 줄여 가면서 쓰는데 일단 수명이 줄어드는 느낌을 매일 받아요. 저는 또 그렇게 생각해요. 지금까지 우리가, 우리의 말하는 톤을 우리 5명이서 톤을 짚어 보면 살짝 부정적이에요. 근데 우리는, 우리가 모두 선택했고 어떤 면에서는 사실, 이런 말이 어떻게 들리실지 모르지만 굉장히 선택받은 사람들이에요. 그리고 특출 나고 자신의 실력과 이름으로 빛나는 사람들이 이 자리에 있어서 솔직히 말해서 희망적이고 재미있는 얘기도 하고 싶어요. 당연히 힘들죠. 근데 누가 시켜서 했어 봐, 나한테 이거 하라고 한 거 아닌 이상 우리는 솔직히 어디 가서, 이병철 작가님, 황종권 작가님, 조대한 작가님, 민선 작가님······.

 

민선 : 저는 필명이 따로 있습니다. (웃음)


 

이은선 : 당신들의 이름으로 오롯이 선 사람들의 어떤 성취를, 아마 독자들은 보고 싶은 게 아닐까요. 강의 노동자의 현실을 뛰어넘는 어떤 명예나 기쁨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여기 있는 거거든요. 사실 육아나 현실이나 창작이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문장 하나 예쁘게 잘 써진 거 나오면 이건 나니까 할 수 있는 일 아닌가. 나만이 할 수 있는 성취, 자아도취일지언정, 남들이 알아주지 않을지언정, 나만의 성취로 하루하루 나아가는 인생들이어서 우리는 강의 노동자이기 이전에 선생님들입니다. 우리 뒤에 머리카락 한 올까지도 닮고자 하는 학생들이 있어요. 우리 뒤에는 우리의 말이나 문장 때문에 인생이 바뀌어야 되는 친구들이 있기 때문에. 노동의 현실이 힘들다, 사실 어떻게 보면 부끄러운 말일 수 있는 게, 훨씬 더 열악한 환경에서 우리보다 훨씬 더 주목받지 못한 상황에도 막노동을 하면서 글 쓰시는 분들이 너무너무 많거든요. 저는 사실은 균형 같은 건 어차피 제 생에 없었어요. 마감 있으면 24시간 중에, 사실은 제가 서른, 서른두 살 때 디스크가 터져서 수술을 했는데 그때 제가 한 달에 한 편씩 단편소설 마감을 할 때였어요. 그래서 거의 한 달을 안 자고 계속 앉아만 있다가 왜 몸이 안 움직이나, 하면서 수술하러 갔는데도 이 일이 좋으니까 하는 거거든요. 우리는 어쨌든 어제보다 조금 더 나은 글을 쓰고 싶으니까 사는 사람들인데. 저는 사실 이 자리에 오는 것도 행복했어요. 내가 이거 안 했으면 어떻게 이런 멋진 사람들을 볼 수 있을까. SNS나 혹은 이런 걸로 우리가 이 사람들을 동경할 수 있지만 같은 자리에서 볼 수 있는 건 아무나 할 수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혹시 이 좌담을 듣거나 볼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학생들이라고, 그들은 분명히 이 자리에 오고 싶을 거거든요. 누군가의 워너비일 수 있어요. 우리는, 우리의 기준과는, 어쩌면 우리의 삶은 우리가 생각했던 기준보다는 약간 낮게 우리를 후려치고 있을지 모르나 우리의 현실은 아니까. 그래서 사실 이 좌담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는 말을 하고 싶어요. 나는, 우리 행복하잖아요, 사실. 이거 싫었어 봐요, 여기 왔겠어요?

 

민선 : 저도 공감했던 게 어느 날 마감을 하는데 허리가 너무 아파서 앉아도 아프고 누워도 아프고 어떻게 할 수가 없는 거예요. 근데 마감은 해야 하니까, 어떻게든 마치고 한의원을 갔더니 처방이 뭐냐 하면 걷는 거였어요. 너무 앉아 있으니까, 허리랑 엉덩이 근육이 경직되어 아픈 거더라고요. 그래서 하루에 1시간씩 걷기 처방 받고 사혈하고 피 뽑고 침 맞았는데. 앞서 이은선 작가님 말씀에 공감했던 게, 결국에는 누가 시켜서 한 것도 아니고 제가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이잖아요. 제가 이번 추석 때도 마감이 있었거든요. 피드백이 오면 제가 고쳐야 되는데, 연휴 전에 받은 양이 많았어요. 25화 분량을 해야 되는데, 회당 보통 4천 자거든요. 제 자신을 너무 믿은 거죠. 한 이틀이면 하지 않을까, 했는데 이틀은커녕 나흘 걸렸어요. 이번 추석에 놀러 가는 사람들 많았잖아요. 근데 연휴 내내 그것만 붙잡고 있었어요. 연휴 시작되는 목요일에 시작해서 끝난 게 일요일이었어요. 일요일 밤에, 실은 새벽이죠, 일요일에서 월요일로 넘어가는 새벽에 누웠는데 그 와중에 뿌듯한 거예요. 또 해냈네, 하면서. 내일은 놀아야지, 하면서. 그다음 날 일어나서 놀았죠. 남은 연휴 열심히 놀았어요. 그런 것 때문에 이 일을 계속하고 있지 않나. 그리고 저는 독자들이랑 바로바로 다이렉트로 만나니까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든지 이런 부분을 직접 보는 것도 계속 이 일을 하는 원동력이 아닌가 싶어요.

 


3. 교육 현장의 구조적 문제


이병철 : 다음으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희망적인 이야기들, 아마 뒤로 가면 갈수록 우리가 할 수 있는 내용이 많을 것 같은데요. 아까 작가님 말씀해 주신 것처럼 저희가 어떤 한 일군을 대표하는 사람들은 아니지만 적어도 이 좌담에서만큼은 아까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보다 더 힘들게, 좀 어렵게 이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대표해서 온 거라 오늘 나누는 이야기들이 말하자면 혹시 구조가 조금 잘못된 게 있다, 혹은 개선될 어떤 여지가 있는 지점들이 있다, 그런 부분이 있으면 우리가 어떤 자극을 주고 도전을 줄 수도 있는 내용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래서 다음으로 넘어가 볼게요. 일단 6번, 이거는 물어 보나 마나. 물어 보나 마나, 뭐. (웃음) 근데 물어 보나 마나라서, 강의만으로는 사실 생계유지가 어렵죠. 근데 저희 강의뿐만 아니라 직장 다니시는 분들이나 다른 일에 종사하시는 분들도 고정 급여만으로는 살기 쉽지 않은, 특히 가정이 있고 육아를 하다 보면 부하도 더 많이 걸릴 텐데 이 부분은 뒤에 자연스럽게 이야기가 전개될 것 같아 넘어가고요. 고용된 강의 노동자로서 고용 형태, 즉 구조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까, 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제가 먼저 살짝 말씀드리면 강사법이 바뀐 이후에 시간 강사를 고용하는 방식, 대학에 한정한 이야기입니다, 이게 많이 달라졌잖아요. 달라지고 나서 과거에는 학위가 없어도 해당 분야에 굉장히 전문가이고 경력이 있으신 분들이 학생들한테 좋은 것들을 많이 줄 수 있었는데 지금은 학위가 있어야 되고 교육 경력이 필요하다 보니까 오히려 대학이 학생들한테 줄 수 있는 가능성을 제한한다는 느낌도 들고. 그리고 바뀐 강사법이 사실 굉장히 부당한 부분들도 없지 않아 있는데 교육부에서는 오히려 시간강사의 고용을 보장하기 위해 강사법을 개정했지만, 그럴 경우에 교육부가 내세우는 선한 취지에 맞게끔 대학이 같이 발맞춰야 되는데 대학이 제도가 바뀌면 오히려 꼼수들을 더 찾아내 가지고. 그러니까 제대로 된 고용이 아니더라도 초빙 교원이라든가 겸임 교원이라든가 하는 식으로 우회해서 채용하는 식으로 강사도 아니고 전임도 아닌 형태로 고용하는 일들이 너무 많아요. 강의 시장이라는 말 자체가 어폐가 있지만, 강의 시장에 뛰어든 교원들이 사업자 등록을, 개인사업자 등록을 하거나 타 사업장에 4대 보험에 가입해 달라고 부탁해서 거기에다가 매달 자기가 보험료를 내야만 겸임이 될 수 있으니까 그런 것들이 좀 그렇거든요. 만약에 조금 부당한 게 있다면 대학이 오히려 앞장서서 그걸 거스르는, 제도를 거스르는 용기를 내줘야 되는데 오히려 꼼수를 찾는 부분들이 저 같은 경우에는 굉장히 안타깝습니다. 그래서 다들 고용된 강의 노동자로서의 고용 형태, 구조에 대해서 작가님들 본인에게 직접 와 닿았던 경험을 이야기해 주셔도 좋고요. 저도 계속 학교에 있지만 사실 언제 그만둘지 모르고 또 미래가 없는 몰입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작가님들은 어떠신지. 이거는 또 고등학교하고 다를 것 같아서 고등학교 이야기도 들어 보고 싶고. 황종권 작가님은 어떠신가요?

 


황종권 : 저희 고용 형태는 고용보험 하나만 들어 준단 말이에요. 우리나라에서 4대 보험이 안 되면 사실 개인사업자 아니고서는 대출도 쉽지 않죠. 그 작은 대출도 잘 되지 않아서 제가 회사를 하면서 4대 보험을 넣었습니다. 왜 학교에서 고용보험이라는 걸 들어 주는지는 모르겠는데 4대 보험은 아니니까. 엄청나게 오래 10년 근무했는데도 나갈 때 그냥 고생하셨습니다, 가 다입니다. 아무런 노동의 대가가 없죠. 그래서 그게 가장 큰 문제고. 또 학교의 특수성인데 저희는 대학을 가려면 공부도 해야 되고 창작도 해야 합니다. 학생들은 실기 선생님은 완전히 다른 객체로 생각을 합니다. 공부가 따라오지 못하니까 창작으로 입시 승부를 보려고 하거든요. 어쩌면 일반 교과 선생님보다 더 큰 노력을 하고 있음에도 처우는 그렇지 않습니다. 

 

조대한 : 실기 선생님이라고 따로 명시가 되어 있나요?

 

황종권 : 네, 있어요. 대학처럼 과가 있습니다. 무용과, 연기과, 음악과 이렇게 있습니다. 예고의 존립이 사실상 실기 선생님에서 이루어지는데 처우는 교생보다 훨씬 나쁩니다. 저희보다 더 문제인 건 저희 강사보다 전일제 선생님입니다. 5일 근무하는 선생님들이 강사와 월급 차이가 20만~30만 원밖에 안 나요. 4대 보험은 들어가지만. 

 

이병철 : 전일 근무하는데도 불구하고.

 

황종권 : 전일 근무하는데도, 그저 안타깝습니다. 만들 때 기준을 교생 정도도 안 되게끔 만들어 놓은 것 같아요. 그것 때문에 3명의 젊은 선생님들이 단체 사표를 내고 그만두었습니다. 물론 독특한 부장 선생님이 있어서 그런 것도 있지만 많이 안타까웠습니다. 혹시 문광 선생님은 아시죠? 문광 선생님을 비롯해 다른 선생님도 다 능력 있는 분들이었는데. 의욕도 있고 보람도 있고, 아이들 가르친다는 거에 대한 교육관도 서 있는 분들이었는데 다 단체 사표, 미래가 없다고 느낀 겁니다.

 

이병철 : 그러니까 그런 것 같아요. 그렇게 단체 사표를 냈는데도 그 자리에 가고 싶어서 계속 노리고 있던, 선망하고 있던 사람들로 금방 채워지니까. 이게 TO가 적은 게 문제가 아닌가. 능력 있는 분들 되게 많은데 사실 TO가 적다는 게.

 

황종권 : 전일제 제안이 들어왔을 때 저는 안 한다고 했거든요. 업무는 많고 시간은 더 못 쓰고 월급은 빤히 알고 있으니까 안 한다고 했습니다. 사실 예고 지원하는 선생님들 경쟁률 엄청나요. 이름 있는 문학가, 굉장히 실력 있는 분들, 학위 있는 분들도 오는데. 결정적인 것은······ 급여라든가 대우는 그렇지 않죠. 타과는 가능해요. 음악과라든가 연기과 같은 경우는 연계성이 있어서. 그래서 편법을 엄청 많이 쓰거든요. 강의 외에 또 강의하는 식으로. 문창과는 많이 답답한 구조입니다. 

 

이병철 : 지금 7번 문항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요. 7번 그리고 8번까지 포함해서. 여기까지 살짝 부정적인 내용이고. (웃음) 희망을 이야기할 수 있는 내용이 있어서 7번 8번을 묶어서 지금 나오지 않은 이야기가 있으면 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조대한 : 아까 말씀해 주신 대로 누군가의 꿈이 될 수 있는 것들을 가르치다 보니 보람을 느끼고, 많이 힘들고 페이가 상대적으로 넉넉지 않아도 감사하는 마음으로 해왔던 것 같아요. 그럼에도 이 대담을 기획하신 분들이 굳이 ‘강의 노동자’라는 명명을 하신 이유가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우리가 그런 무형의 소중한 가치에 주로 초점을 맞춰 왔기 때문에 학교에서 강의하는 일을 노동으로 바라보지 못한 부분들이 분명히 있겠지요. 저도 그랬던 적이 있어요. 강사법이 시작된 이후 고용이 되어 연 단위 계약을 하면 3년 보장되잖아요. 처음 경험하는 거라 잘 몰랐는데 3년 지나면 퇴직이 되고, 다시 강의를 하려면 신규 임용 신청을 해야 하더라고요. 저도 그런 과정을 거쳤는데 그사이에 학교에서 퇴직금을 챙겨 준다는 거예요. 사실 개인 입장에선 고맙잖아요. 절차 외적으로 보면 연속해서 강의를 하고 있을 뿐인데 추가 금액을 퇴직금 명목으로 더 받는 거니까 이런 것까지 준단 말이야? 이런 순진한 생각을 했어요. 이제와 돌이켜보니 한 명의 노동자로서 퇴직금을 받고 법에서 정한 권리를 누리는 것은 당연한데 앞서 말한 교육은 가치 있는 일이라는 인식 탓에 나부터가 그 대상을 노동으로 간주하지 못하고 있구나 반성했습니다. 비교적 최근 <저주 토끼>를 쓰신 정보라 작가님께서 10년 가까이 일해 온 학교에 퇴직금, 주휴수당 등을 요청하며 소송을 걸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어요. 어떻게 보면 당연한 자기 권리를 주장한 건데 우리가 다른 가치의 미명 아래 간과했던 부분들이 분명히 있지 않나, 당장 무언가 혜택이 돌아오지 않더라도 우리가 가르치는 다음 세대 분들이나 문학에 꿈이 있는 분들을 위해서라도 이런 문제들은 계속 목소리를 내고 바뀌어 가야 하지 않나, 생각했습니다.

 

이병철 : 정보라 작가님이 공방 벌이고 있는 것 중의 제일 핵심은 그거잖아요. 강의 일수, 강의 시간, 그러니까 노동 시간이, 근로 시간이 어느 정도 이상이어야 퇴직금이랑 이런 수당을 지급할 수 있게 돼 있는데.

 

조대한 : 네, 1주일에 5시수 이상.

 

이병철 : 5시수 이상. 근데 학교에서는 철저하게 강의 시수만 근로 시간에 포함하고. 정보라 작가님 입장은 이 강의 시수를 하기 위해서 준비하는 시간이며, 학생들 피드백이며, 이런 것까지도 노동에 근로에 포함해야 한다는 이야기인데, 아직 결론이 제대로 안 난 부분이죠.

 

조대한 : 네, 대학의 재량권에 맡기는 부분도 크고요.

 

이은선 : 사립대라서.

 

조대한 : 예, 맞습니다. 그리고 말씀대로 주당 5시수 이상 강의를 해야만 퇴직금을 제공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보니까 일부 대학에선 편법으로 그 항목을 이용하는 경우도 더러 있다고 하더라고요.

 

황종권 : 예고도 마찬가지예요. 13시간, 16시간인가, 17시간이 넘으면 퇴직금을 줘야 해요. 그래서 선생님들은 14시간 이상 못 하게끔 꼼수를 쓰는 거죠.

 

조대한 : 저는 퇴직금을 받아서 무척 감사한 일인데 여기서의 요점은 그게 아니지요. 저희가 무슨 좋은 학교, 나쁜 학교를 가르자는 것이 아니잖아요.

 

이은선 : 당연히 줘야 하는 것을.

 

조대한 : 맞습니다, 당연히 줘야 하고 받아야 하는데 개별적이고 우연적인 학교의 좋고 나쁨에 따라서 당연한 권리 유무가 선택되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는 거죠. 제도적으로 모두가 보장받고 누려야 하는 권리이기 때문에.

 

이은선 : 이 강사법의 장점은 진짜 우리가, 조대한 작가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를 찾는 건데, 이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라는 미명 아래 여러 학교들의 꼼수는 곁가지들을 다 쳐내고 가장 돈을 아낄 수 있는······ 그렇게 몇몇만 추려내서 하라는 대로 다 해줬다, 줬으니 아무 말 하지 말고 너희들은 이걸 해라, 라는 어떻게 보면 자본가와 노동시장을 대변하는 일들이 대학에서 충분히 벌어지고 있죠. 사실은 왜 슬펐냐면 강사법이 시행되고 나서 강사 하나에게 시수를 줘야 하기 때문에 주변 강사들이 다 정리되는 상황이 굉장히 많이 벌어졌습니다. 학위와 상관없이, 또. 근데 이거는 대학의 문제가 아니라 교육부 시스템의 문제였기 때문에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었습니다.

 

이병철 : 예전에는 대학교가 사실 강의 그리고 수업, 학교에서 같이 공부하는 거, 이게 대학의 전부라고 생각했는데 계속 있다 보니까 이거는 지극히 일부고 산학, 연구, 지원 사업 그리고 보직, 행정, 이런 게 대학의 상당부분을 차지해요. 그래서 이런 것들은 기업화되어 있는 시스템이라 거기에서 오는 괴리도 있는 것 같고. 그러니까 문예창작과에서 산학 협력을 요구하고, 캡스톤 디자인 같은 거를 시키는······ 저는 이게 너무 불필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이것도 교육부 문제죠. 어떻게 보면 NCS, 특성화 교육, 이런 것 때문에 너무 생경한 그런 용어, 직무, 역량 같은 거에 기준을 둔 새로운 신규 과목들이 생겨나고. 문학 커리큘럼하고는 별로 연관성 없어 보이는 과목도 학생들이 배워야 해서 선택과 집중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작가님들의 경우 교육 시스템에서 느낀 안타까움은 어떤 게 있었는지.

 

민선 : 또 돈 문제를 얘기할 수밖에 없는데. 말씀하신 것처럼, 아카데믹한 부분이 있고 저처럼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이 있으면 선택적으로 할 수 있잖아요. 선생님을 고용할 때, 교수들이 고용할 때. 제가 알기로는 교육 쪽 강사료가 오랫동안 크게 변동이 없는 걸로 알고 있거든요. 지금 물가는 이렇게 오르고 있는데. (웃음)

 

이병철 : 심지어 삭감한 학교도 있어요.

 

민선 : 대학 강의를 나가려면 박사 학위가 있어야 하잖아요. 시간을 굉장히 많이 투자한 거예요. 제가 다른 분한테 들은 거지만. 일반 사교육에서 하는 게, 시급은 더 낫더라구요. 페이 차이가 너무 많이 나는 거예요. 현실적인 부분을 생각했을 때는, 사실은 입시라든지 그런 쪽에, 예를 들어 특목고 학생 가르치거나 박사들이 나가서 그렇게 하는 게, 잠깐 주말에만 일해도 페이가 비교가 안 되더라구요. 대학에서 양질의 교육을 하려면 좋은 선생님이 필요하고 강사가 필요한데, 열정만으로 요구하기엔 너무 어렵지 않은가, 라는 생각이 들어요.

 

이병철 : 민선 작가님 말씀 들어 보니까 이러다가 대학도, 지금 중고등학교가 그렇잖아요, 학생들이 교과서, 교과목 수업을 잘 듣고 거기에 집중하는 게 아니라 대부분 사교육을 통해 교육을 대체하니까 공교육에 대한 권위가 아예 없잖아요. 그러니까 대학도 그렇게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은선 : 이미 그렇지 않나요? 그런 면에서는.

 

이병철 : 그렇죠. 요즘 여러 아카데미 같은 것도 많이 생기고. 책방이라든가 이런 데서 작가하고 독자가 직접 만나는, 그런 게 좋지만, 거기에서도 어떤 특화된 형태, 클래스 같은 게 많이 생기면서 학생들이 오히려 그런 곳에서 열정을 쏟아 부어 더 열심히 배우는 건 대학이 반성해야 할 것 같아요.

 

이은선 : 논외로 해야 하는 게 사실 대학이 전부가 아닐 수 있죠.

 

이병철 : 그렇죠 그러니까 대학도 이제 수강하는 사람도 그리고 그 강의를 하는 사람도 서로 만족할 수 있는 환경이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네요.

 


4.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학

 

이병철 : 문학을 공부하는 의미와 가치를 학생들에게 어떻게 이야기하느냐, 그리고 또 그렇잖아요. 이 앞에서 학생들한테 문학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어떻게든 무언가를 뚫고서 자기 이름을 얻게 된 사람들인데 30~40명, 40~50명, 강의실에 앉아 있는 친구들 중에서 그렇게 뚫고 나갈 수 있는 친구들은 지극히 일부일 텐데, 그 전체를 상대로 문학의 효용과 가치에 대해 이야기할 때 어떤 걸 강조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이은선 작가님.

 

이은선 : 제가 너무 희망을 이야기한 것 같은데요. 저는 사실 17살 때부터 시를 써서 전국 백일장을 다녔고 고등학교 3학년 졸업할 때 보니까 백일장에서 수상한 상장이 장원을 비롯해서 대상 여러 가지가 40개가 넘더라고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여러 대학 중에 제가 좋아하는 교수님이 계신 문창과를 선택해서 장학금도 받으면서 가고, 조기 졸업도 해서 문창 대학원 갔다가 신춘문예에 갔다가 소설가가 돼서 다시 모교에 강의도 하니까, 제가 지금 사십 살, 마흔 살인데요.

 

황종권 : 그냥 나이로 하신 것 같은데. (웃음)

 

이은선 : 마흔을 2번 살고 있는데요. 삶의 절반이 문학과 관련되어 있어요. 근데 전 한 번도 정규직이었던 적이 없거든요. 그리고 한 번도 취직을 제대로 해본 적이 없어요. 4대 보험이 들어간 취직을 해본 적이 없는데 잘 먹고 잘살았어요. 글 열심히 썼고요. 여러 가지 일을 경험했고 전전했어요. 정말 엿같은 일들도 많았지만, 진짜 기쁜 일도 많았어요. 소설을 쓰겠다는 목표와 일념 하나로······ 낮은 대우와 처우를 견딜 수 있었어요. 나는 목표가 다른 사람이니까 이런 경험을 해볼 수도 있다, 괜찮아, 괜찮아, 라는 마음으로. 등록금을 모아서 대학원에도 갔고. 그래서 저는 사실 문학이 돈이 된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라고 생각해요. 누구나 다 힘들게 일하면서 글을 썼고요. 문학 하시는 작가님들 아무나 잡고 물어 봐도 편하게 글 썼다는 사람 단 한 명도 없어요. 그래서 저는 문학판에 뛰어들겠다고 말하는 친구들에게 겸업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와라. 그리고 인생 100세 시대인데 문학만 하고 살면 인생이 너무 재미없다. 왜냐하면 생각해 보니까 소설가가 되고 나서 재미가 없어지는 순간들이 너무나 많다. 왜? 취미가 업이 되는 순간이 소설가라는 타이틀 다는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업이 되는 순간 책임감 때문에 더, 물론 잘 풀리면 좋겠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이 등단하고 나서도 살아남지도 못한다. 책도 못 낸다. 글을 썼다는 경험만으로 끝나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마저도 견뎌야 되는 게 이 삶인데. 그 밖의 여러 가지 직업을 견딜 수 있는 마음가짐이, 돈을, 어떤 나쁜 짓을 해서가 아니라, 돈을 벌려는 뭐랄까, 모래가 줄줄 새는 샌드백을 짊어지고 인생을 뛰어드는 일 아닌가, 저는 생각해요. 그리고 어떻게 희생 없이 즐기겠어요. 우리가 성취하겠다고 마음먹으면 청소를 하는 한이 있어도 돈을 벌어서 내 시간 쪼개서 쓸 수 있는 마음가짐 정도는 기본으로 탑재해야 글 쓰고 먹고살 수 있는 거 아닌가 싶습니다. 나, 너무 갑자기······ 부정적으로 단호했나?

 

이병철 : 아니요, 아니요. 좋은 말씀.

 

황종권 : 선생님 같았어요. (웃음)

 

이병철 : 근데 이은선 작가님 말씀 들어 보니까 사실 문학을 하겠다고 예고에 가거나 문예창작과 대학까지 온 친구들은 그런 각오가 이미 돼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 사실 이 부분을 심각하게 고민하지는 않을 것 같네요. 혹시 첨언하실 내용 있으면.

 

민선 : 저는 아무래도 장르 쪽을 하다 보니까 돈이 된다고 얘기를 하거든요.

 

이은선 : 맞아요.


 

민선 : 돈 얘기를 일부러 학생들한테 해주려고 해요. 왜냐면 다 문학은 돈이 안 된다고 생각해서. 오히려 저는 돈이 되는 방향이 있다. 근데 자칫하면 기존 문창과 학생들이 잘못 생각할 수 있잖아요. 그럼 순문학이 잘못된 거냐, 아니면 이제까지 배운 걸 버리고 이렇게 가야 하느냐, 라고 착각할 수도 있으니까. 그래서 반드시 얘기해 주는 게 순문학을 배운 게 도움이 된다고 해요. 저도 어렸을 때 중고등학교 때 책을 많이 읽었거든요. 소설 만화 다 좋아했어요. 저는 제가 쓰고 있는 웹소설의 문장이든 장르 소설의 문장이든 그쪽에서 비롯됐다고 생각하거든요. 어쨌든 인풋이 있어야 아웃풋이 있는데 독서가 없으면 한계가 금방 와요. 문장이 없어요. 만들 수가 없어요.

 

이은선 : 기본기라는 것이 분명 존재하니까.

 

민선 : 문창과 학생들 같은 경우 이미 기본기가 충분하고, 예고 학생들도 내재되어 있는데 그걸 어떻게 활용할지 잘 모르는 거죠. 관심도 그렇고. 그래서 그 부분을 꼭 이야기해 줘요. 여러분들 이미 다 준비되어 있다, 이쪽에 관심이 있다면 내가 충분히 가르쳐줄 수 있다고. 일부러 돈 얘기를 많이 했어요. 지금 웹소설이나 이런 쪽 미디어 시장이 이만큼, 작년 매출이 조 단위로 넘어가는데.

 

이은선 : 네, 맞아요.


민선 : 이쪽 시장 크기를 잘 몰라요, 학생들은.

 

이은선 : 저도 학생들한테 웹소설이라는 블루오션이 있다. 이 와글와글한 순문학 갖고 계속 좌절하지 말고 왔다 갔다 할 수 있다. 뭐라고 얘기를 해야 되지. 왜 이거 아니면 이거라고 생각하느냐.

 

민선 : 발을 걸쳐도 되는데. 학생들이 경직되게 생각하는 게 순문학을 하는데 웹소설이나 장르에 가면······ 나는 뭔가, 하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더라고요.

 

황종권 : 그래서 독특한 케이스들이 한 명씩 생기는데. 예고는 사실 거의 대부분 순문학을 하기 위해서 와요. 이게 10번 문항도 연결되는 부분인데. 작년에 웹소설을 하고 싶은 친구가 있었어요. 그런데 이 친구는 웹소설을 제대로 하고 싶은 거예요. 그래서 아예 정통적인 걸 배우러 예고에 온 겁니다. 재미있는 게 뭐냐면 서울예대랑 동국대를 합격하면 문창과로 갈 수 있는 최대의 학교를 간 거예요. 그런데 이 친구는 동아방송대학교 웹소설과를 갔습니다. 고민을 안 하더라고요. 우리는 당연히 이제. 

 

민선 : 동국대나 예대.

 

이은선 : 붙고 안 간 거랑 떨어지고 안 간 거는 차원이 다르니까.

 

민선 : 근데  액수가 몇 천 단위가 아니에요. 학생들은 사실 돈, 문학에 대한 문제라기보다는. 제가 이걸 다른 분한테도 외부에 있는 분한테 들은 건데, 그분은 컨설팅하시는 분이었는데, 문학이라든지 예술가 쪽이랑 일을 해보면 돈 얘기를 안 하려고 한대요.

 

이은선 : 저는 돈 얘기 때문에 솔직히 이를 갈고 온 게 있어요. 문학 입시, 문창과 예고 시스템 이것 때문에 제가 사실은, 여기 사실, 질문지 보고 그 질문에 답변이 이만큼 있거든요. 왜냐면 돈에 대해서 어떻게 보면, 사실 가장 돈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우리 또 문학 하는 사람, 사람 살아가는 데 가장 필요로 하는데, 가장 또 어떻게 보면 순수해야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때문에 벌어진 일인데. 전 요즘 애들한테 그 얘기를 하거든요. 순수 문학을 배우고 쓴 웹소설 작가들이랑. 어떤 장르든 오래가려면 기본기를 탄탄하게 다져서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문어발 같은 사람이 돼야 된다. 저는 요즘 SF랑 웹소설이랑 웹툰을 일부러 커리큘럼에 넣어요.

 

민선 : 웹소설인데도 잘 쓴 작가들 같은 경우에는 문장이 달라요. 굉장히, 이 사람 뭔가, 이쪽 냄새 나는데, 하는 작가들이 있어요.

 

이은선 : 광주대 문예창과 같은 경우는 웹소설을 특화시켜서 시스템화해서 잘하고 있잖아요. 저는 그게 어떻게 보면 문창과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이 아닌가 싶어요. 순수 문학을 할 사람은 다 해요, 밖에서도 안에서도. 근데 그건 기본기로 깔고 가고 어떻게든 사람들한테 길을, 학생들한테 길을 터줘야 되는 거 아닙니까.

 

민선 : 저도 공감했던 게 순수 문학을 버리라는 게 절대 아니라.

 

이은선 : 그럼요.

 

민선 : 문장을 배우고 쓰고, 문학 이론이나 철학이든 뭐든 그대로 커리큘럼을 가는데 이쪽도 조금 더 같이 가면 좋지 않을까?

 

황종권 : 저는 느끼는 게 뭐냐면 다 돈 하는데······ 사실상 문학 하는 사람들이 가난이나 어려운 문제들에 대해 굉장히 형상화를 잘 시켜서 그런 이미지가 잠식되어 있지 사실상.

 

이은선 : 어른들이 옛날에 노동자고 맨땅에, 그러니까 배우기 어려웠던 시절의, 그나마 희망으로 책을 읽었던 분들이 문학을 시작할 때의 생각이 많아서 문학은 가난해야 하고, 그러니까 가난과 이건 별개여야 된다는 주의가 있어서 그럴 수도 있는 거 아닐까요?

 

민선 : 옛날 문학이나 소설가 묘사가 다 폐병 걸려서 콜록 콜록 하잖아요.

 

이은선 : 근데 민선 작가님, 이상도 폐병 걸렸지만, 다방 3개를 거느리던 종로의 부자 모던 보이였잖아.

 

이병철 : 공무원이었는데요, 뭐.


황종권 : 건강한, 건강한 시인, 작가들이 오히려 손해 보는 역할도 한다고 봐요, 오히려 건강함 때문에.

 

이은선 : 맞아요. 사실 조금 넘어가 보자면 돈에 대해 이야기를 할 때 예고 학생들, 사실 이건 예고에 재직하는 선생님이 하기 어려운 이야기라 제가 하려고 이야기를 가지고 왔어요. 저는 작가님들의 아량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은 게, 왜 우리나라는, 저는 안양예술고등학교에 7년 재직했고 예고와는 상관없는 사람입니다마는, 왜 이렇게 예고 애들에 대한 편견이 있는지 모르겠어요. 예고 시스템, 예고 애들은 테크닉만 배운다, 아니, 테크닉 배우러 가지, 당연히. 근데 저는 이해할 수 없는 게 체육 무용 음악 연극 또 뭐가 있을까요? 예체능에서는.

 

민선 : 미술.

 

이은선 : 체육, 무용, 예술, 연극, 미술, 이런 친구들이 예고에 왔을 때는 예체능계 인재라고 북돋아 주면서 왜 애들이 문창과에 갔다면, 왜 문학을 배우러 비싼 사립 고등학교에 가요, 라고 이야기하고. 왜 부자, 그들의 인식은 예고가 비싼 학교, 비싼 사립 고등학교라는 인식 때문에 뭐랄까, 부잣집 애들이 할일, 이렇게 문학을 돈으로 선택했다는 인식을 왜 씌우는지 솔직히 잘 모르겠어요. 사실, 일반 고등학교에서 과외를 받아서 진짜 비싼 과외 받아 백일장 휩쓰는 애들이 더 많거든요.

 

황종권 : 저도 늘 말하는 게 예고랑 일반 학생이 올라오면 대상에······.

 

이은선 : 예고가 떨어져요.

 

황종권 : 예고가 떨어져요.

 

이병철 : 역차별을 당하죠. 백일장이나 공모전에서.

 

황종권 : 그런데 그건 말도 안 되는 소리. 수상한 학생은 더 나쁜 방식으로 공부를 해 갖고 오네. 딱 그러면.

 

이은선 : 예, 맞아요.

 

황종권 : 나쁜 방식은 아니죠. 자기만의 어떤 그······.

 

이은선 : 아니죠, 기존의 작가 선생님들이 모르는 방식이죠. 나쁜 게 아니라.

 

민선 : 과외 선생님께 부탁하면 첨삭도 해줘요.

 

이은선 : 그렇죠. 그 과외는 우리가 알고 있는 예고 등록금보다 최소 5배 비쌉니다.

 

황종권 : 아니, 목동 문예교습소가 애들 사이에 핫한데 154만 원이에요, 8번 가는데.

 

조대한 : 8번에 154만 원이요?

 

이은선 : 예고 애들이 측은한 게, 얘들은 10대 때부터 방향성을 정한 정말 순수한 문학 꿈나무예요.

 

황종권 : 그러니까. 그리고 시집도 가장 많이 사죠.

 

이은선 : 누구보다 신간을 많이 사고요. 누구보다 순수하게 작가 좋아해요.

 

조대한 : 맞아요. 열정적으로 읽고 독자의 최전선에 있는 분들이죠. 

 

황종권 : 그러니까 바보들인 게 뭐냐면 자기 책을 사주고 있는······.

 

이은선 : 내 말이.

 

황종권 : 최초의 독자들을.

 

이은선 : 그래서 제가 선생님들한테 화가 나서 하는 말이 예고에 특강을 요청하면 단 한 번도 거절하지 않는 분들이 왜 예고 애들이 심사에만 올라오면 얘네들이 스타일이 어떻고 겉멋이 어떻고 하면서 부정적인 인식부터 꺼내십니까, 하는 거예요. 만약 학생들에게 스타일이 있다면, 그것은 신작과 기존 명작들을 너무 많이 읽은 탓일 겁니다. 작가님들의 작품이 그들을 그리 꿈꾸게 만들었으니까요. 

 

이병철 : 그런 경우들 있죠.


조대한 : 말씀하신 것과 관련하여 제가 최근 대학에서 백일장 심사나 고등학생 대상으로 한 수상 작품 심사를 요청받아 진행했던 것을 떠올려 보면 거의 대부분 블라인드식이긴 했어요.

 

이은선 : 네.

 

조대한 : 아마도 언급해 주신 그런 편견들 탓에 일반 고등학교와 예술 고등학교를 심사위원들이 사전에 인지하지 못하게 하려는 제도 같아요. 한데 심사나 수상 선정이 끝난 뒤에 발표된 이들의 출신 학교를 보면 어쩔 수 없이 예고에 재학 중인 친구들이 많더라고요. 당연한 게 이 학생들은 몇 년 동안 문학과 글쓰기를 집중적으로 계속 공부한 친구들이거든요.

 

이은선 : 네.

 

조대한 : 다만 말씀대로 일부 선생님들 중에는 문학은 세련된 글쓰기 연습보다는 뭐랄까 서툴더라도 진실 된 삶과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고 여기는 분들도 있는 것 같아요. 그 선호가 결과에 영향을 미치거나······.

 

이병철 : 올라가서 뒤집어지기도 하고.

 

조대한 : (웃음) 문학은 기술이 아닌 삶이어야 한다는 마음을 분명 존중은 합니다만, 양쪽은 모두 치우침 없이 중요한 것이고 무엇보다 그 삶의 진정성을 응모자들의 작품에서 구분해 낼 수 있는지 의문이 들어요.

 

이은선 : 아니, 10대 애들이 살면 무슨 삶을······ 걔네들이, 그 귀염둥이 얘들이.

 

조대한 : 그러게요.

 

이은선 : 부모님 품에 있는 10대 애들이 삶을 알면······. 근데 이 순수한 문학 꿈나무들을 왜 그렇게 폄하하는지. 그리고 솔직히 이건 적어 줬으면 좋겠어요. 저는 인간의 삶과 사랑을 대하소설과 시로 담는다는 작가들이 문학 꿈나무 하나 포용하지 못하는 이 시대에 무슨 문학을 이야기하실 수 있겠습니까? 선생님들, 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미디어 범람 시대에도 불구하고 순수 문학을 하겠다고 10대부터 본인 인생을 투사한 친구들을 우리는 소중하게 다뤄 줘야 돼요.

 

조대한 : 누구보다 문학에 열심인 친구들이니까요.

 

이은선 : 기숙학교에 몰아 가지고 글쓰기만 시키지 않을 거면 스스로 선택한 친구들이 있다는 거는 아직 문학 꿈나무들이 아직도 있다는 얘기잖아요. 그리고 솔직히 이 강의 노동자들이 먹고살 만한 토대와 문학 전반의 바탕을 마련해 준다는데 왜 예고의 시스템과 학생들을 폄하하는 시스템으로 이상하게 변질된 건지. 이 이야기를 들으시거나 보시는 선생님들 단 한 번만 생각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당신들의 제1차 독자들은 말입니다. 나, 너무 이상한가.

 

황종권 : 아니, 그런데 대학도 그래요. 대학별로 백일장을 합니다. 자기들 대회를 열고 거기서 1등을 하면 수상한 학생이 입학할 때 가산점을 주는 제도가 있습니다. 그런데 예고라는 이유로 역차별 당할 때가 많습니다. 그 학교만 보고 대회를 준비하는 친구들이 대부분인데도요. 1등을 했어요. 근데 1등을 준 학교가 합격시켜 주지 않습니다. 더러 있어요. 그런 경우도 있고 대학들이 매번 기준이 달라지는 것도 입시에 큰 영향입니다. 그리고 대학 문창과는 계속 작아지고 있습니다. 예고의 문학 시스템도 무너질 수밖에 없는 게 많은 대학들이 문창과도 폐과하고 있는데, 그 문창과들도······.

 

이은선 : 융복합.

 

황종권 : 이제는 순문학 하는 친구 안 뽑고 그냥 성적 되는 친구 뽑을게. 아니면 다 되는 친구 뽑을게. 하나만 잘하는 친구는 안 한다.

 

이은선 : 실기를 하는, 실기를 뽑는 정시에서 실기를 뽑는 문창과가 줄어들고 있죠.

 

황종권 : 비율도 낮고.

 

이병철 : 그게 제일 고쳐야 될 편견 같은데요. 이런 거 심사하시는 분들, 어떤 결정권 갖고 계신 분들이 그러니까 예고 하면 예고 학생들이 쓴 작품들은 누가 달라붙어서 옆에서 만들어 줬다는 인식을 갖고 계신 것 같아요. 그러니까 그런 게 나타나지 않는, 학생다움, 미숙함, 풋풋함, 그런 걸 너무 기대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약간 능숙하거나 원숙함이 느껴지면, 이건 학생이 한 게 아닐 거야, 하시는 거죠.

 

이은선 : 당신들이 10대 때 능숙했으면 천재고, 애들이 하면 입시 선생들이 고쳐 준 건가?

 

이병철 : 그렇게 생각해서 약간 좀 일부러 역차별하고 배제하는 게 아닌가.

 

이은선 : 근데 예고 친구들이 잘 노는 친구들이다, 라는 인식이 있어서 그럴 수도 있는데. 그거 하나 못 받아 줍니까, 어른들이. 저는 사실은 어른들의 아량의 깊이와 넓이를 한번은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이병철 : 뒤에 질문 몇 개는 지금 얘기 나오는 것들하고 겹치는 것들은 생략하고 넘어갈게요. 일단 10번, 이 질문 짧게 한 번 이야기하고 넘어갈 텐데요. 과거와 비교해서, 저희가 학교에서 공부했을 때랑 비교해서 요즘 학생들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변화가 있다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저는 요즘 놀라는 게 학생들의 문학에 대한 열의, 열정이 높아요. 옛날보다 훨씬 높거든요. 열의와 열정은 높은데 그걸 위해서 쏟아 붓는 노력은 열정에 비례하는 것 같지 않아요.

 

이은선 : 그 마음은 약간 꼰대적인 마인드일 수 있어요. 나름대로 그들은 최선을 다해요.

 

이병철 : 그렇죠, 그렇죠. 그러니까 제가 느끼는 것 중에 제일 달라진 것 같은 게 뭐냐면, 저는 그런 것 같아요, 저희가 학교 다닐 때만 해도 대학이, 그래도 대학으로서 권위가 있고 도도함이 있었는데 대학이 언젠가부터 이제, 속된 말이지만 장사······.

 

이은선 : 취업사관학교.

 

이병철 : 장사, 취업사관학교가 되면서 학생들을 유치해야 되기 때문에 학생들 눈치를 많이 보죠. 그래서 학생들이 다니기 편안한 환경을 제공해 줘야 하다 보니까 과제를 내주는 것도 학교에서 제동을 거는 거죠. 과제 너무 많이······.

 

이은선 : 맞아요. 맞아.

 

이병철 : 내면 안 된다. 과제 조절을 해야 된다.

 

이은선 : 강의 평가.

 

황종권 : 근데 강의 평가를 학생들이 해버리는데, 뭐.

 

이병철 : 우리 때도 강의 평가가 있었는데. 그러니까 강의 평가 말고도 사실 무언가 이 교강사가 압박을 느낄 만한 또 다른 요소도 많죠. 이런 얘기 하면 깜짝 놀라거든요. 저 학부 때 우리는 격주에, 이건 라떼 이야기라서 조심스럽지만, 격주에 단편소설 한 편씩 써냈다, 그러면 한 학기에 보통 단편을 8개씩 쓴다, 그 소설 수업 하나에서만.

 

조대한 : 와, 거의 소설집이 하나 나오네요.

 

이병철 : 다른 장르 또 희곡도 써야 되고 시도 쓰면서 그렇게 했다고 하면, 지금 한 학기에 한 편 쓰는 것도 힘들어하는.

 

조대한 : 아무래도 그렇게 많이 쓰는 것은 어려워하니까.

 

이병철 : 친구들한테는 너무 까마득한 옛날이야기처럼 들리는 거예요. 그런데 사실 문학을 쓰는 환경을 강제로라도 만들어 줄 필요도 있는데.

 

조대한 : 네네.

 

이병철 : 문학적 체력이랄까, 어떤. 창작의 체력이 조금은 약하다는 느낌도 들어요. 아 이 친구 더 잘할 수 있는데.

 

이은선 : 맞아요.

 

이병철 : 약간 좀 막 굴려야 될 것 같다는 생각이. (웃음)

 

조대한 : (웃음) 열심히 하는 친구들에게 그런 여건과 환경이 부족해서 많이 안타까우셨나 봅니다.

 

이병철 : 좀 들기도 해요, 저는. 어떻게 느끼시는지.

 

조대한 : 말씀하신 대로 저도 문학에 대한 열의나 낭만 같은 것이 옅어졌다고는 생각 안 해요. 정확히 계량화할 수는 없는 부분이지만 개인적으로 느끼기에도 열과 성을 다해 질문을 하고 하나라도 더 가져가고 배워 가려는 학생들은 여전히 적지 않은 것 같아요. 다만 문학을 배우는 풍경이나 방식이 조금 달라졌다면 달라졌을까요. 음, 강의실에 들어가면 이제는 책 대신 다들 노트북이나 전자 패드를 펴고 있어요.

 

황종권 : 과제를 열심히 적으면 이제 찍지. (웃음)

 

조대한 : (웃음) 맞아요. 찍거나 녹음하거나. 백묵과 판서는 주변에서 보기 힘들더라고요. 저 역시 그런 환경에 맞춰 학습 자료도 PDF로 모두 만들게 되고.

 

이병철 : 말만 하면 학생들한테 잘 전달이 안 될까 봐 PPT로 강의 내용을, 또 이제 강의록을 같이 올려 주거든요. 그건 필기를 하라고 올리는 게 아니라 말할 때 보조 수단으로 학생들이 이해하는 데 도움 되라고 해놓은 건데 강의 평가에 필기할 내용이 너무 많아서 힘들어요. 아니, 어차피 필기도 안 하고 사진으로 다 찍는 애들이 필기하는 게 너무 많다고. (웃음)

 

조대한 : 재미있네요. 그렇게 풍경은 조금 달라진 것이 있고 아무래도 아까 말씀하신, 소위 문학을 향한 낭만이라고 해야 할까요? 그런 것들은 확실히 옅어진 느낌이 없지 않아 있어요. 글을 쓰려면 당연히 이렇게 해야 돼 혹은 문학을 하는 사람들은 이런 건 신경 안 써도 돼, 하는 묘한 인식 같은 것이 있었잖아요.

 

이은선 : 허세들이 있죠.

 

조대한 : (웃음) 맞아요. 요새 말로 -뽕이라는 접미사를 달던데. 아니다. 여기서 이런 표현은 함부로 쓰면 안 되겠네요.

 

이은선 : 해도 돼요.

 

조대한 : 해도 되나요? 여하튼 그런 것도 줄어들었고.

 

황종권 : 뽕기 같은 게 많이 빠지긴 했어.

 

조대한 : 하나 덧붙이자면 자기가 읽고 공부하는 지금의 문학이 본인의 정체성이나 삶과 어떤 식으로 직접 연관되는지 고민하는 친구들이 좀 더 늘어난 것 같습니다.

 

이은선 : 언제나 20대는 어려워요.

 

황종권 : 저도 예고에서 거의 10년 있고 가르친 지 꽤 오래됐는데 줄어든 것은 전혀 느껴지지 않고. 시를 쓰는 친구들은 또 어떻게든 쓰고 있고.

 

이병철 : 그렇죠.

 

황종권 : 그러니까 거기에 대해서는, 저희는 말했잖아요. 자기들이 보통 선택해서 와서 더 단단해져요. 문학을 하고 싶어 하는 마음들이. 그래서 거기에 대해서는 100% 제가 신뢰도 하는데 달라진 건 뭐냐면, 이렇게 표현해야 되나요. 그러니까 시류에 더 빨리 휩쓸리는 것 같아요.

 

이은선 :미디어 시대니까.

 

황종권 : 아니, 그 시류라는 게 뭐냐면, 저는 이제 고등학교 때 교육을 하고 싶은 거는 뭐냐면, 큰 시인들이 있어요. 우리 대한민국은 이렇게 지금 연예인 같은 시인들, 잘 팔리는 시인들, 잘 읽히는 시인들, 이런 시인들이 아니라.

 

민선 : 김수영.

 

황종권 : 김수영부터 시작해서 사실 서정주 시인도 다 읽어야 돼요. 문창과적인 접근이 아니라 국문학. 그러니까 이미 평가된, 문학사적으로. 사조를 다뤄야 하는데 예고인데, 백일장이 워낙 많고. 입시가 걸려 있으니까. 지금 유행하는 책들만 읽지요. 책 편식도 심해요. 문지, 창비 책 아니면 안 읽겠다는 식입니다. 그래서 한번은 젊은 시인들, 한 30명을 선발해 애들 시랑 섞어 가지고 냈어요. 아무도 학생 시와 기존 시인들의 시를 구분하지 못했어요. 오히려 거기서 제일 잘 쓴 시는 기존 시인들이 아니라 학생 시였습니다. 그래서 조금 아쉬운 게 예전에는 그래도 정통성이라는 부분에서 시작을 했고 기본이 엄청 탄탄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감각은 굉장히 화려해지고 외형은 더 멋있어졌는데, 뭐랄까, 문학이라는 것을 감각이라든가 자기가 사랑하는 것, 이 정도로 생각을, 감정에 호소하는 경우도 많고. 어쨌든 문학은 공부이기도 하거든요. 그러면 사적으로도, 문화예술사적으로 이해를 하고 와야 되는데. 그게 고등학교 때 이루어지면 더 좋은데. 이게 다뤄도 시문학사 정도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으니까 조금 아쉬워요.

 

이병철 : 이따가 마지막에 자유 발언할 수 있는 기회 드릴 테니까요. 혹시 그 질문에서 답변하실 수 있는 기회 지금 넘어가고 생략되더라도 마지막에 좀 더 이야기해 주시면 됩니다. 지금 황종권 작가님 이야기해 주신 내용에 덧붙여서 이은선 작가님하고 황종권 작가님 두 분이서 예고 교육 시스템에 대해 알려주시면 좋겠는데요. 이게 궁금해 하는 사람들이 많거든요. 아까 일반 교과가 있고 실기가 있고 그리고 공모전하고 입시 준비할 때 뭔가 집중되는 게 있을 테고. 그런 시스템 알려주시면······.

 

황종권 : 예고 애들은 굉장히 많은 걸 해내고 있어요. 이게 정규, 교과 교과목 우리가 반드시 고등학생 때 배워야 되는.

 

이은선 : 내신.

 

황종권: 예, 교과목은 다 하고. 내신 있는 공부는 따로 하고. 실기를 따로 하고. 주말에는 백일장을 뛰어요. 전국 백일장을 뛰어요.

 

이은선 : 주중에도 백일장을.

 

황종권 : 예, 주중에도 백일장이 있으면 나가고.

 

이은선 : 주중에는 공모전, 주말에는 참여하는 백일장.

 

황종권 : 백일장에 나가려면 학교에서 차를 대절해 주긴 하거든요. 그것도 새벽에. 그러면 2시에 일어나 지방까지 가야 돼요. 

 

이은선 : 고성 백일장.

 

황종권 : 진주. 그러니까 투 트랙으로 다 하는데. 그 위의 업무가, 어쨌든 공모전에서 성과를 내야 되고 백일장에서 성과를 내야 되니까 주말이 없죠.

 

이은선 : 그러니까 되게 고생하는 친구들이거든요. 근데 그런 친구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설 쓰고 시 쓰고 희곡 쓰겠다면 고마운 거예요. 그리고 백일장을 그냥 가나요, 돈 들여서 가요.

 

황종권 : 차 대절도 해야 되고.

 

이은선 : 되게 비싸요. 밥 먹어야 되지. 그냥 가나요. 옷 입어야 되지. 부모님이 진짜 열성적으로 뒷바라지해서 가는 거거든요.

 

황종권 : 실기는 하루를 통틀어 해요. 오전에 정규 교과를 하고 내신 공부를 하고. 오후 1시부터 시작해서 저녁 8시 10분인데 수업에 빠지면 9시까지 할 때도 있거든요.

 

이은선 : 왜 이런 부정적인 시각이 나왔나 가만히 생각해 보면 우리가 문학이라고 알고 있는 이 특수한, 순수한 어떤 가치가 교육의 시스템화로 들어와 버렸기 때문에 일견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것도 특히, 사립 고등학교에 문창과라는 어떤, 대학도 아니고 고등학교에서 문창을 한다는 인식 때문인데 사실은 이거는 교육, 백년지대계라는 입시와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특히나 어떤, 사람들의 시선을 받고 있지 않나.

 

황종권 : 그게 예고가 갖고 있는 딜레마. 큰 딜레마.

 

이은선 : 그럼 문창과를 만들지 말았어야 해, 대학에.

 

황종권 : 큰 딜레마인데. 어쨌든 상을 받기 위해서 시를 배우고 시로 상을 받아야 해요. 그건 어쩔 수 없는 거예요.

 

이은선 : 문학 특기자라는 시스템이 있으니까요,

 

황종권 : 저는 학생들한테 능소능대라는 말을 잘 쓰거든요. 작은 데서는 작게 쓸 수 있어야 하고 큰 데 가서는 크게 쓸 수 있어야 한다. 백일장이나 문학상 심사는 대략 두 가지 심사 기준으로 나뉘어요. 굉장히 모던하고 감각적인 것을 좋아하시는 선생님들이 심사하시는 대회가 있고, 개성을 읽어 주시는 분들이 있고. 개성이고 이런 건 모르겠고 진짜의 문학을 좋아하는 대회가 있습니다. 각 대회에 맞춰서 쓸 줄 알아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능소능대하게 

 

이은선 : 그래서 예고가 테크닉을 가르친다는 소리가 나오는 거예요.

 

황종권 : 그래서 저는 이렇게 문학을, 저는 그게 더······ 폭 넓은 문학을 하고 있다고 생각이 들거든요. 그리고 하다 보면 애들이 그렇게 하지도 않아요. 선생님, 저는 이걸로 그냥 승부 보겠습니다.

 

이은선 : 맞아요.

 

황종권 : 그러면 그걸로 가요. 선생님, 저는 어차피 이런 친구들한테 상대도 안 되니까 공부해서 정통성으로 한번 해보겠습니다, 이런 식으로 가게 되거든요.

 

이은선 : 사람들이 착각하는 게 예고는 굉장히 특별하게 만날 문학만 한다, 아니에요. 얘네 공부 진짜 빡세게 해요. 학원도 다닐 거 다 다니는데. 단순히 학제 개편안 속에 문창과가 들어가 있어서 굉장히 특별해 보인다는 것인데. 제가 생각했을 때 가장 순수할 정도로 바보 같은 친구들이에요. 문학만 바라보는 친구들이에요. 너무 이른 나이에 문학만 바라봐서 어떤 면에서는 쉽게 지쳐 있는 아이들이기도 해요.

 

조대한 : 말씀을 들으니까 12번 질문과도 바로 이어질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저 역시 주변에서 예고 출신 친구들이든 대학에서 문창과나 국문과를 나온 친구들이든 많은 이들을 사귀고 접하는데 10대 때부터 열과 성을 다해서 문학에 많은 시간을 할애해 온 사람들이 그 분야를 떠나거나 자기가 해온 것들을 포기하는 경우를 많이 보게 돼요.

 

이은선 : 다 포기하죠.

 

조대한 : 이유가 뭘까 고민이 되더라고요. 말씀대로 지쳐서일 수도 있고 단순히 문학이 더 이상 재미가 없어진 것일 수도 있고, 아니면 백일장이나 등단 제도 같은 평가 방식에 조금 더 일찍 마음이 마모되기 시작해서 그런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황종권 : 그런데 생각이 다른 게 뭐냐면 다들 이렇게 말해요. 일찍 시작하면 일찍 지치고 이렇게 마모가 된다, 근데 우리가, 일반 그, 다른 대학에 다른 과 학생들도 자기 전공을 살려서 취직하는 경우가 그렇게 많지는 않아요.

 

이은선 : 맞아요.

 

조대한 : 그것도 맞죠.

 

황종권 : 근데 저희들은 어쨌든 간에 예고 출신 작가들이 계속 나오고 있습니다. 지금도 활발하게 활동하는 시인들도 있고. 계속 나오고 있어요. 안 나오는 게 아니라 끊임없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요즘에는 그 제도권을 다 누리고 나오는 경우가 많죠. 사실 예고 나와서 대학 4년 나와서 대학 석사 박사까지 해 가지고 나오죠. 어쨌든 간에 이게 지쳤다기보다는 전부 다 시인 작가가 될 수는 없잖아요.

 

이병철 : 그렇죠. 숫자가 워낙 많다 보니까.

 

황종권 : 워낙 많으니까. 근데 그러면서도 다 책 언저리에서 일들을 다 해요.

 

이은선 : 그럼요, 맞습니다.

 

황종권 : 예고에서는 다 이렇게 문학 언저리에서 일하고. 출판 학교를 다녀 편집을 하는 분들도 있고 마케팅 하는 분들도 있고.

 

이은선 : 요즘은 특히 서점 많이 차리고. 테마, 시스템화 돼 있는 것들을 보면 대부분 문창과 친구들이 많이.

 

민선 : 광고 쪽으로.

 

이은선 : 스토리텔링, 예.

 

조대한 : 네네.

 

황종권 : 그렇기 때문에 문학을 안 한다가 아니라 아직도 끝까지 하는 친구들이 있다는 것이······.

 

이은선 : 음대 가서 왜 전공을 살려서 끝까지 하지 않느냐, 라고 물어 보지 않거든요. 음악 하는 친구들 음대 나와서 딴 거 하는 게 부지기수라.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근데 저는 사실은, 친구들한테 그렇게 얘기하고 떠나라, 근데 너희들은 어쩔 수 없이 돌아오게 돼 있다. 우리는 모천회귀 동물이다. 한번 이렇게 문장의 맛을, 10대든 20대든, 우리 몸에 있는 나이테에 문장을 새겼는데 내 마음과 몸을 풀어내는 법을 문장으로 익힌 사람들은 어떻게든 돌아올 수밖에 없는데 왜 우리가 다 떠났다고 생각하는지 아세요? 우리가 20대 초반의 대학생들만 보기 때문이에요. 제가 02학번인데 저희 친구들, 이제 40살이 된 02학번들이 이제 글쓰기 해서 그들이 써온 걸 출간하기 시작해요. 모 쳐내기예요. 저는 그렇게 이야기하거든요. 꼭 20대 안에 등단해서 이름을 낼 필요는 없다. 누구나 베스트셀러 작가가 될 수는 없다. 문학의 시기는 다르니 여러 경험을 할 수 있을 때 해라. 어차피 돌아올 거 빨리 돌아오면 좋고 늦게 돌아오면 각자 알아서 각자의 문학으로 사는 거다, 라고 저는 이야기해요.

 

조대한 : 말씀하신 대로 예체능이란 분야가 소수 엘리트만 살아남는 방식으로 제도화되어 있고 직접 그것으로 밥을 벌어 먹고살 수 있는 사람들의 자원이 한정되어 있다 보니까 겉으로는 그렇게 보이는데, 문학을 경험한 사람들이 어떤 방식으로든 그것을 삶에서 풀어내며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따뜻해지네요.

 

황종권 : 잊지 않고 있어요.

 

이은선 : 인생 100년에서 한 번도 만날 수 없었던 사람들일 수도 있는데 그래도 몇 년이라도 문학, 문장, 책, 시, 소설, 웹소설, 드라마를 만날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행운 아닌가요?

 

황종권 : 그렇죠.

 

이은선 : 전 그렇게 생각해요.

 

이병철 : 예고나 고등학교에서 문학 입시를 한 친구들 같은 경우에는 목표 설정이 되어 있고 또 그거를 옆에서 도와주고 북돋아 주는 그런 동기부여를 해주는 분들도 계시고. 말하자면 치열한 환경에 있다가 대학에 와서는, 사실 제가 이 질문 준비하면서 든 생각은 뭐였냐면 대학이 학생들한테, 물론 이제는 성인이고 주체가 됐으니까 자기가 목표를 찾고 스스로에게 동기부여 해야 하는 건 맞지만 대학이 목표 설정이나 동기부여 측면에서 소홀하게 하는 건 아닌가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던 것 같아요. 일단 들어왔으니까 너희가 알아서 해라,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사실은 교수님들도 많이 바쁘시고 선생님들도 많이 바쁘시니까 교육 과정 커리큘럼 말고도 밀착해서 공부할 수 있는 스터디라든가 사적인 소모임 같은 것이 활성화된 학교도 물론 있는데.

 

이은선 : 맞아요.

 

이병철 : 그건 일부 학교 이야기고. 사실 강의실에서 잠깐 기계적으로 만나는 것 외에는 동기를 부여받을 만한 활동이 대학에 많이 없지 않나, 라는 생각이 들어요..

 

이은선 : 어떤 선생님이 있느냐에 따라서 너무 달라지니까.

 

황종권 : 너무 달라지니까.

 

민선 : 저게 또 문제가 될 수 있는 게 시스템 때문에 그런 것 같아요. 왜냐면 교수님들이 하는 일이 너무 많아요. 페이퍼 작업이나 교육 들어야 될 거 너무 많으니까 이런 사적인, 아이들 모아서 스터디를 해준다거나 피드백을 해줄 수 있는 시간이 없더라고요.

 

이은선 : 그렇다고 강사가, 자기 강의 시간 외에 그걸 하기는 어불성설이죠.

 

민선 : 그렇죠. 말이 안 되고. 페이 보장도 너무 안 되어 있고. 저도 문창과를 나왔지만 진짜 과제도 제가 학교 다닐 때 그 정도는 아니었어요······. 작가님 말씀 들어 보면 그 정도로 많지 않았던 거 같아요.

 

이병철 : 근데 제가 이 얘기 하면 이병일 시인이 옆에서 듣고 있다가 자기 때는 매주 한 편씩 썼다고, 단편을, 그때는.

 

황종권 : 호랑이가 있어요. (웃음)

 

민선 : 그렇게 보면 이때에 비하면 아니기는 한데 따로 봐줄 수 있는 선생님도 없는 것 같아요.

 

이은선 : 선생님 돼보니까 선생님이 너무 바빠요.

 

조대한 : 맞아요. 선생님도 자기 삶이 있으니까.

 

이은선 : 나는 정교수가 아닌데도 너무 바빠요.

 

이병철 : 맞아요.

 

민선 : 수업 시간.

 

이은선 : 뭘 들으라고, 뭘 자꾸 내래요.

 

이병철 : 아동학대.

 

황종권 : 그것도 해야 되고, 성교육.

 

이병철 : 장애 인식.

 

황종권 : 다 필요한데 한 번만 했으면 좋겠어.

 

이병철 : 학교마다 다 들어야 하니까.

 

조대한 : 십분 공감합니다.

 

이병철 : 진짜 답답하죠. 

 

이은선 : 그것만 아니라 뜬금없이 밤낮 새벽을 가리지 않고 학생들로부터 걸려 오는 카톡과 이메일.

 

조대한 : 아, 그렇죠. 상담.

 

이은선 : 조교한테 물어 봐도 되는 걸.

 

이병철 : 조교한테 물어 봐도 되는 것들 그리고 유고결석 처리 같은 거를 DM으로 보내니까.

 

민선 : 그래서 핸드폰 번호를 안 밝혔어요. 왜냐하면, 저도.

 

이은선 : 어떻게든 알아내더라고요.

 

민선 : 맞아요. 교과에 등록된 걸 봐가지고 등록했더라고요. 최대한 메일로 소통할 수 있게 일부러 그랬어요.

 

황종권 : 옛날 교수님들한테는 다 메일로 했던 것 같은데.

 

이병철 : 그것도 굉장히 조심스럽게 물어 봤잖아요.

 

이은선 : 인사 생략하고 내용만 오잖아.

 

이병철 : 어떻게 이거를 보내야 될까. 이거 안녕하십니까 아니면 안녕하세요, 뭐라고 보내야 될까.

 

이은선 : 다 누구라고 밝혔는데 요즘엔 안 해.

 

황종권 : 오늘 아침에 오면서 그렇게 3개가 뜨던데······ 선생님 현대시 3편이요.

 

이병철 : 근데 그거는 뭐랄까 그 시대의 분위기, 시대적 모드인 것 같아요, 그런 것들은. 민선 작가님께 특화된 질문 드리고 저희가 공통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내용 하고 마무리하면 될 것 같은데요.



5. 더 나은 문학 교육을 위해


이병철 : 장르 문학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까 얘기 들어 보니까 한 삼분의 일 30% 정도만 읽어 본 적이 있다고······ 이건 학교마다 다를 거예요. 학생들의 장르 문학에 대한 관심이 어느 정도로 체감되시는지, 그리고 장르 문학을 먼저 시작하신 분으로서 어떤 것들이 대학에서 장르 문학하는 데 필요한지 이야기해 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민선 : 지금 문창과나 국문학과나 요구는 계속 있는 것 같은데 시스템이 바로 도입이 안 되잖아요, 교육부에 넣어서 몇 년 걸리고 또 새로운 과를 개설하는 데 몇 년 걸리다 보니까. 지금 계속 변화가 있는 것 같기는 해요. 아직은 제가 만난 문창과 학생들 같은 경우는 순수 문학에 대한 게 되게 커요.

 

황종권 : 관념이.

 

민선 : 네, 그래서 아무래도 문창과 학생들이고 또 국문학과 학생들 같은 경우는 확실히 조금 더 그렇더라고요. 제가 강의했을 때 제일 먼저 웹소설 읽어 봤는지 물었던 게 문창과는 문학 자체를 좋아하고, 하겠다고 온 거잖아요. 영상화 된 웹소설이나 웹툰이 원작인 경우가 정말 많거든요. 드라마나 영화 예시도 꼭 들어 줘요. 이런 방향도 있다. 제가 만난 교수님들 같은 경우도 오히려 저한테 물어 보세요. 그쪽은 어떻게 되고 있냐, 시스템이 어떻게 돌아가냐, 정말 모르시는 거예요. 아이들 같은 경우는 아직은 제가 볼 때 순문학에 대한 관심이 더 큰 것 같은데 그중에 이쪽에 관심이 큰 학생들이 있어요.

 

황종권 : 있어요. 있어요.

 

민선 : 1, 2학년들보다는 취업을 앞둔, 3, 4학년쯤 되면 웹툰이나 웹소설 회사들도 있구나, 피디라든지 편집자라든지 이쪽 관련된 출판사들이 워낙 많으니까. 조금 알기 시작하는 거예요. 조금 더 관심을 가지는 것 같기는 한데. 올해 다르고 내년에 달라질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이병철 : 그렇죠.

 

민선 : 내년, 후년까지 봤을 때 앞으로 더 많아질 것 같은데 지금 당장은 타과 학생들이 관심이 더 많은 것 같아요. 국문학과나 문창과보다 아예 관련 없는 학생들이 더 관심이 많아요.

 

황종권 : 그게 더 맞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문학을 했다가 이렇게 하면 더 그럴 것 같은데 그러지 않고 웹소설은 전혀 다른 데서 툭 튀어나와요. 그냥 전혀 다른 과, 나는 의사인데 갑자기 이걸 하겠다.

 

민선 : 유명하신 분이 계시기도 하고 웹소설 쓰는 사람들 중에 직업이 있는 분들 정말 많거든요. 그 직업을 살려서 하시면 더 좋아요. 예를 들어 건설 노동자라면 그거 관련해서 쓰면 돼요.

 

조대한 : 그렇죠, 아무래도 디테일이 다르니까.

 

민선 : 영업사원이면 그냥 그걸 쓰면 되고. 의사 분들 중에 웹소설 하시는 분도 있는데. 그분도 의학 전문가다 보니까 정보 전달도 확실하고 훨씬 현장감이 있어요. 제가 문창과 강의를 하면서 느낀 건 분명 관심이 있지만 이쪽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아직은 잘 모르는 학생들이 사실은 많아요.

 

황종권 : 그러니까 문창과가 재미있는 게 시, 소설, 희곡밖에 없단 말이에요. 사실 아동문학은 요즘 굉장히 저변이 넓어지고 깊어졌는데. 예전에는, 저희, 저도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에 다닐 때는 아동문학만 해도 웹소설 느낌으로 봤어요.

 

민선 : 그렇구나.

 

황종권 : 정말 초반에는 그랬어요.

 

이은선 : 웬, 동화? 약간.

 

황종권 : 뭔, 동화를, 무슨.

 

민 선 : 지금 다 있잖아요.

 

황종권 : 네, 그리고 시인들도 다 쓰고 싶어 해요.

 

이은선 : 왜냐하면 시장이 넓어요.

 

황종권 : 넓으니까.

 

민 선 : 어른들도 동화를 읽다 보니까.

 

황종권 : 그리고 시는 동화랑 연결되는 부분도 있어서 그런 게 아닌가 싶어요, 지금. 웹소설도 동화가 처음 왔을 때, 사람들이.

 

이은선 : 과도기.

 

황종권 : 약간 문학이, 이것도 문학이라고 해야 돼? 이런 느낌이었거든요.

 

민선 : 근데 시장이 사실 지금 너무 커져서.

 

이은선 : 맞아요.

 

민선 : 정통으로 배우는 학생들이 꼭 갔으면 좋겠는데. 제가 동기들한테 늘 얘기해요. 좀 써라. 아무도 안 써요. 제가 학교 다닐 때부터 계속 얘기했거든요. 너네 쓰면 잘할 수 있다. 저한테 물어는 보는데 적극적으로 제 말 듣고 정말 한 친구들은 사실 없어 가지고.

 

조대한 : 음, 그런데 말씀대로 기본기를 충족하더라도 웹소설을 쓰려면 그곳에 대해 어느 정도의 지식과 공부는 필요하지 않나요.

 

민선 : 맞아요.

 

조대한 : 특히 글을 쓰려면 그 장르의 패턴과 문법을 본인이 알아야 되잖아요.

 

민선 : 아, 그것도 맞아요.

 

조대한 : 글을 쓴다는 점에서는 같지만 완전히 서로 다르기 때문에.

 

이은선 : 많이 달라요.

 

민선 : 많이 달라요. 쓸라고 치면.

 

조대한 : 맞습니다. 당연히 시간 들여 따로 읽고 배우고 공부해야 되니까 어려운 것도 있지 않을까.

 

민선 : 조금 많이 내려놓기는 해야 하거든요. 기존의 문법이라든지 문학에서 사용했던 것들을 많이 내려놓아야 하는데. 저는 단순하게 제 직업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조대한 : 그렇죠.

 

민선 : 일이고 직업인데. 웹소설 작가면 회사원처럼 써야 한다는 입장이에요. 그러니까 오늘 느낌이 왔으니까 써봐야지, 이게 아니라 오늘 두 편 쓴다면 그냥 두 편 쓰는 거예요. 몇 시간이 걸리든. 그런 단순하고 집요한 마음가짐을 가졌으면 좋겠는데. 문학 하는 친구들이 이 부분이 안 되더라고요. 문학은 조금 더 순수성에 기반을 둬서 그런지.

 

이은선 : 예술에 기반을 두고 있어서 그런 것 같아요. 순수라는 것은 어떻게 보면 아트잖아요. 문예잖아요. 기예를 우리는 문장으로 다루는 사람들인데. 웹으로 넘어가다 보면 가볍다 혹은 코믹스럽다 혹은 로맨틱하다. 그러니까 이른바 예술에서 크게 다루지 않던 장르들이 커지고 그게 또 돈을 불러오는 것. 모르는 장르, 그러니까 거의 다른, 이질적인 장르라고 생각하기 때문인데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

 

황종권 : 유사문학, 그런 느낌으로 가는.

 

민선 : 그렇죠, 아주 하위문학으로 보는 시각이 있는데.

 

이은선 : 그러니까 유튜브도 이렇게 성장할 거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어요. 마찬가지로 판이 바뀌고 있는 지각변동의 시대가 아닐까.

 

이병철 : 두 작가님들 이야기하시는데 기대서 14번······ 생각해 보니까 그런 것 같아요. 대학에서 웹소설이나 장르 문학 관련 수업을 만들기도 하는데. 이런 거 한번 해볼까 수준에서 이벤트성으로 한두 학기 해보는 정도라서. 광주대처럼 공식화시켜 만들어 놓으면 자연스럽게 학생들의 수요가 생겨날 수밖에 없을 거예요. 학교에서 인식을 바꾸는 게 가장 선행되어야 할 것 같아요. 공식적으로 웹소설을 문학 수업의 일환으로 정확하게 명시를 해놔야 커리큘럼 개발이나 이런 것도 자연스럽게 따라오지 않을까.

 

민선 : 근데 문창과나 국문학과는 지금 커리큘럼이 적은데. 오히려 미디어 쪽은 있어요. 스토리텔링은 따로 있어요. 그쪽은 오히려 확실하게 되어 있는데. 아직은 국문학과나······.

 

이은선 : 스토리텔링 공모전에 훨씬 더 웹소설들을 많이 투고하더라고요.

 

민선 : 많고 상금도 비싸요.



조대한 : 말씀하신 대로 인식을 바꿔야 한다는 부분이 굉장히 중요한 것 같아요. 저 역시 문학 비평을 하고 학교에도 발을 걸치고 있지만 우리가 몰두하는 글쓰기와 문학이 누구에게나 문학의 기본 값이 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거든요. 이 또한 문예지, 출판사, 아카데미 등의 제도가 엮이고 누적되어 만들어진 일종의 순문학 장르이기 때문에 매체와 소비, 출간 방식이 상이한 웹소설은 또 다른 문학 장르가 아닐까 싶어요. 국문학 대학원 동기 중에 웹소설 쪽으로 진출해 활동하는 친구가 한 명 있는데 그 친구 말을 들어 보면 가끔 웹소설을 문학의 하위 장르, 혹은 문학의 새로운 부분 집합 정도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어서 난감하다는 이야길 한 적이 있어요. 다른 문법과 쾌락을 지닌 독서 장르임에도 말이지요.

 

민선 : 이해가 돼야 해요.

 

이은선 : 왜 자꾸 선민의식들을 갖고 그래.

 

조대한 : (웃음) 자기를 주변화 시키는 것이 제일 어려운 것 같아요. 저도 그렇고. 



이병철 : 두 가지 정도만 질문하고 마치겠습니다. 대학 혹은 고등학교에 요구하고 싶으신 게 있다면, 본인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문학 교육하고 같이 연계해서 한 번에 이야기해 주시면 될 것 같은데. 먼저 서울예대에서 최우수, 교강사 상을 받은 조대한 작가님께서 이야기해 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조대한 : 네? 갑자기 (웃음) 아이고, 그건 운이 좋아서 한번 그랬던 것 같고요. 선생님들의 대화를 듣는 와중에 그런 표현이 잠시 지나갔어요. 장사, 라는 표현. 여러 번 말씀해 주신 대로 노동자로서 물질적으로 다소 풍족하지 못한 환경에 처해 있는데도 이런 일을 하는 것은 여러 이유가 있지만 분명 보이지 않는 무형의 가치가 존재하기 때문이기도 할 거예요. 동시에 학교와 재단들도 그런 것들 때문에 사회적으로 혜택을 받고 여러 지원을 받는 부분들이 있거든요. 그렇다면 함께 속한 내부의 구성원들, 교직원들에게도 조금 더 존중과 신뢰의 태도를 보여줘야 하지 않나, 오늘 이야기 나온 것처럼 요새는 다소 차가운 장사치의 시선과 자본의 논리대로 행해지는 것들이 더러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그 대부분은 예산 문제겠지요. 정원도 줄고 TO도 줄어드니 학교에서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다면 중앙 정부 차원에서 이런 부분들을 채우기 위해 제도적으로 함께 노력해야 될 것 같아요. 

 

이은선 : 그래서 예술위원회가 존재하는데. 정권이······.

 

조대한 : 이런 이야기해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다들 아시다시피 과학 분야나 순수 연구 분야에서 예산이 급격히 줄어들고 특히나 인문학은······. (웃음) 

 

이병철 : 또, 이어서······.

 

황종권 : 저는 대학에 요구하고 싶은 게 (웃음) 뭐라고 해야 할까요. 아까 말했던 목표 설정······ 굉장히 뜨겁거든요. 고등학교의 열망. 얘가 시가 안 되면, 너는 일일일시 해라, 하는 게 있어요. 하루에 한 편씩 쓰는 일일일시의 지옥이 있습니다, 저희는. 저희 반에는.

 

이은선 : 선생님이 애들을 힘들게 하는 건 아닌지······.

 

황종권 : 저도 사람인데······. (웃음) 근데 뜨거운데. 아까 학교 가면, 목표 설정이라고 했는데······ 그런 간절함을 잘 못 만나는 게 아쉬워요.

 

조대한 : 대학에서.

 

황종권 : 대학에서 분명히 거기 있는 건데. 물론, 등단으로도 그렇게 만들 수 있고. 근데 이상하게 문학은 목표를 설정하면 간절해지는데 뭔가 순수성에 위배된······. 목적성은 다들 응원하면서 목표를 가지게 되면······. 등단이 당연히 목표일 수 있잖아요. 예전에 보면 문창과끼리 등단 준비반이다, 우리. 이렇게, 아니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애들로 생각하고 그랬던 것 같은데. 차라리 그런 것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학생들에게 문학으로서 어떤 비전은 제시 못 하더라도 목표를 정확하게 설정해 주는 거는 중요한 것 같아요.

 

민선 : 사실 저는 학교 다닐 때부터 웹소설을 쓰고 출판도 했는데 지금처럼 웹소설 시장이 크거나 관심을 받지 않았거든요. 어떻게 하다 보니까 시대에 올라타게 돼서 빨리 된 편인데. 제가 문창과를 나오고 국문학과에서 대학원을 다니다 보니까 아카데믹하고 순수성을 지키는 문학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저는 물론 장르를 하고 있지만. 대학에서 전공 활용을 잘하게끔 만들고, 취업에 도움이 되게 해주는 부분은 없어요. 대학이 그렇다면 거기까지 해줘야 하느냐고, 만약에 하게 된다면, 어려운 문제이긴 한 것 같아요. 지금 교육이 요상, 말이 이상할 수 있는데 취업률이라든지 그런 걸 계속 체크하잖아요.

 

황종권 : 네, 체계가 좀 다르죠.

 

민선 : 그러니까 너무 간극이 있는 거예요. 교육 문제랑 교육부에서 요청하는 그 사이에서 학생들 스스로 조율하기는 사실 어렵고. 그다음에 학생들 대학생활도 대외 활동이다 뭐다 정말 많잖아요.

 

이병철 : 너무 많죠.

 

민선 : 학생 입장에선 학교 공부도 해야 하고 대외 활동도 하면서 내가 원하는 것까지 하기는 정말 많이 힘들더라고요. 어쨌든 교육을 하는 입장에서 말해 보자면, 순수 문학과 아카데믹한 부분은 반드시 필요하지만 학생들이 선택할 수 있게 과목을 조금 더 신설을 해주면 좋지 않을까. 이거는 제 입장이고, 사실 제가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기 때문에. 지금 미디어의 요구도 있고 사회적인 요구가 분명히 있잖아요. 문창과 학생이나 국문학과 학생이 할 수 있는 부분이 반드시 있는데 그 부분을 잘 살려 주지 못하고 있어요. 학생들한테 이런 부분이 있어, 이거 정말 좋아, 너희가 잘할 수 있어, 라는 방향을 학교에서는 잘 알려주지 못하고 있지 않나. 그래서 국문학과나 문창과 학생들이 좌절하는 부분들이 그런 부분인 거예요. 우리가 인문학을 하는데, 문학을 하는데, 사회에 나가서 먹고살 수 있느냐에 대한.

 

황종권 : 응용이나 이런 게 안 되면 뭐냐, 안 가르치죠. 사실은.

 

민선 : 순수하게 아카데믹한 부분을 공부했다고 해서 안 되는 건 아니잖아요. 그걸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이 분명히 있는데. 아무래도 지금 시스템이 못 따라가고 있지 않나, 사회 변화에 맞춰서. 현실적으로 안타까운 부분도 있어요.

 

황종권 : 그러니까 대학이 뭐랄까 성격이 있어야 하거든요. 취업이면 취업. 우리는 폴리텍 대학입니다. 그냥 우리는 무조건 취업입니다. 입학이 취업입니다. 그렇게 이야기하잖아요. 근데 우리는 대학은 어쨌든, 우리는 지성에 대한 탐구입니다. 그러면 더 그렇게 순수성 있는 학교로 가고. 저희들은 문학을 가지고 응용하는, 조금 뭔가 다른 거랑 융합하고. 또 문학의 효용 가치에 대해서 조금 더 그쪽에 조금, 더 이제 전통적인 공부를 하지만 거기도 신경 쓰는 학과입니다, 이렇게 돼야 하는데. 입시라는 게 성적에 맞춰서 가야 해서 어려움이 있지만 어쨌든 그런 점이 있네요. 성격이 있었으면 좋겠다.

 

조대한 : 말씀하신 대로 학생들은 어떤 실무 분야가 있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잖아요. 그런 거 자체를 경험하지 못해서요. 그래서 선생님이 어떠한 길을 제시하면 내가 배운 걸 활용해서 이런 식의 진로로 나아갈 수도 있구나, 라는 걸 그제야 깨닫게 되더라고요. 그러려면 사실 대학 강의의 전반적인 시스템이 좀 더 열려 있어야 해요. 지금은 정해진 커리큘럼 내에서 인원이 제한된 교강사들이 강의를 전담할 수밖에 없잖아요. 늘 수요자들에게 이야기가 나오는 강의 선택의 폭도 넓어질 수 있고.

 

황종권 : 근데 웹소설도 실무 능력을 존중해야죠. 예전에는 대학도 제대로 안 나왔는데 다 교수 했어요. 대학에서 가르쳤단 말이에요. 이렇게 웹소설 있는 분들은 어쨌든 작품이 굉장히 인정을 받고 있는데도 학위가 없으면 또 안 된다면서요? 이게.

 

민선 : 근데 이게 들어갈지 모르지만. 본인이 아카데믹한 거 없이 다른 과에서 하거나 학교를 안 나와도 사실 쓸 수 있잖아요.

 

황종권 : 그렇죠. 상관없죠.

 

민선 : 가르치는 건 또 달라요.

 

황종권 : 안 되죠.

 

민선 : 가르치는 게 안 돼요.

 

황종권 : 그러니까 저는 이 선생님한테 배우고 싶은데 이 선생님 학위가 없어서 저를 가르칠 수 없는 경우도 있을 것 같아요.

 

조대한 : 이병철 작가님.

 

이은선 : 다 말씀하셔야 돼요.

 

이병철 : 그런가요. 저는 학교에 요구하고 싶은 것 그리고 이상적인 문학 교육 시스템. 글쎄요, 이상적인 교육 시스템이란 학교에 요구할 수 있는 건 아닌 것 같고 우리가 만들어 가야 되는 것 같은데 우리가 만들어 나가는 걸 옆에서 환경적으로 서포트해 줬으면 좋겠는 게 뭐냐면, 이건 완전 물리적인 환경을 얘기하는데요. 일단 강의실이나 복도에 빛이 잘 들어왔으면 좋겠고. 그리고 냉난방이 좋았으면 좋겠고. 그 냉난방기 알죠? 원스톱으로 통합한. 그 이상한 냉난방기.

 

민선 : 밤에는 꺼지고, 시간 되면 꺼져요. 추워요. 끝내야 돼요. 집에 가야죠.

 

이병철 : 제가 이번에 처음으로 지방에 있는 꽤 넓은 캠퍼스를 갖고 있는 학교에 강의를 나가 보니까 호수도 있고 녹지도 있고 정말 좋더라고요. 학생들도 더 활기찬 느낌이고. 그게 저는 분명히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거든요. 서울에 그런 넓은 캠퍼스가 있는 학교도 있지만, 사실······.

 

이은선 : 힘들죠.

 

이병철 : 뭔가 협소하고 답답한 환경이잖아요. 근데 그게 학생들한테도 분명 작용하는 부분이 있어서 인공 녹지, 인공자연이라도 학교에서 많이 만들어 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자, 마지막으로 19, 20, 21까지 한꺼번에 통합해서 어떤 교육을 하고 싶으신지. 그리고 《문장 웹진》은 학생들도 많이 보거든요. 그래서 학생들한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그리고 거기 덧붙여서 오늘 하지 못하신 이야기가 있으면 자유롭게 하시면 좋겠습니다.

 

이은선 : 글쎄요, 저는 앞으로도 문예창작학과 언저리 혹은 문학 언저리에 계속 있겠죠. 근데 저는 지금도 처음 교육을 시작하면서 그리고 지금도 그래 왔고 앞으로도 그럴 거지만 끝까지 같이 쓰고 있는 작가이자 선생이 되고 싶어요. 언제까지 강단이나 교단에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언젠가는 본업만 할 수 있는 사람으로 돌아가겠지만 현장 작가로서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모든 노하우를  제자들에게 주고 힘이 있을 때 강단에서 강의를 그만하고 싶은 마음도 있는데요. 우리가 문학을 선택하지 않았으면 글을 쓰지 않았으면 만날 수 없었을 인연에 참 감사하고요. 교육이라는 건 어떻게 보면 뜬구름 잡는 이야기였다가 어떻게 보면 가장 현실적일 수밖에 없는 이야기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연이 있어서 우리가 강의실에서 만나고 있는 거거든요. 그래서 사실 최대한 서로 나쁜 일 당하지 않고 안전하게 강의실에서 좋은 책 읽으면서. 저는 사실 좋은 문장을 읽으면 눈빛이 변한다고 믿고 살아온 사람이어서 저 스스로 만날 미녀 소설가라고 얘기하고 산 적도 있어요. 친구들한테도 그렇게 이야기해요. 좋은 작품을 읽으면 얼굴이 달라진다, 근데 정말로 달라지거든요. 그래서 문학이 삶을 절대로 구원할 수는 없지만, 그 책과 문장을 읽는 순간만큼은 달라지는 것은 분명하니까 그 순간, 순간의 기쁨만으로도 우리는 문학 하는 이유가 충분하니 너무 먼 미래의 걱정보다는 지금 이 순간의 기쁨으로 캠퍼스 생활을 같이 즐겼으면 한다는 바람을 남기고 육아와 마감을 하러 가보겠습니다.

 

이병철 : 감사합니다. 고생하셨습니다.

 

민선 : 저 같은 경우는 웹소설 작가가 됐을 때 누군가를 보고 배운다거나 뭐가 없었거든요. 제가 겪었던 시행착오들이 있고. 계속 쓰는 일을 하면서 이렇게 했으면 좋았을 텐데, 먼저 알았으면 좋았을 텐데 이런 것들이 많았어요. 강의할 때 늘 제 얘기를 해주는 편이거든요. 나는 이런 일을 겪었으니까, 학생들은 조금 더 쉽게 갈 수 있는 길이 분명 있기 때문에. 정말 다 알려줘요. 제가 실수했던 거, 이렇게 하지 마라, 이렇게 하면 더 좋다, 다 알려드리면서 저도 공부가 많이 돼요. 알려주면서 스스로 다잡을 수 있다 보니까 최대한 실무에 가깝게 알려드리려고 노력하는 편이고 저도 동시에 공부를 하고 있어요. 그렇게 균형을 맞춰 가면서 앞으로도 강의하지 않을까 싶어요. 저는 가르치는 것도 되게 재밌거든요. 학생들을 만나면 눈이 초롱초롱하잖아요. 저도 힘을 얻는 게 있어서. 일단 지금은 일이랑 강의랑 병행하는 것 자체는 재미있어요.

이은선 : 능력 있으신 거예요, 작가님. 진짜로 그건 능력이에요.

 

민선 : 도움이 되면 제일 좋고, 알려드릴 수 있는 부분이 있다는 것도 고마운 일이라고 생각해요. 왜냐면 소설가의 일이라는 게 늘 혼자 써야 하는데 학생들을 만나서 힘을 얻고 또 줄 수도 있고. 작가님이 말씀하셨던 것처럼, 제가 하는 일이 누군가에게는 꿈일 수 있잖아요. 웹소설 작가나 지망생들이 엄청 많다는 뉴스를 본 적 있어요. 어쨌든 저는 그 일을 하는 사람이니까. 웹소설을 쓰지만 순문학과 아카데믹한 부분도 배운 사람이잖아요. 웹소설과 순문학의 간극은 분명히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제가 할일이 있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문학에서 배운 부분을 잘 끌어올 수 있게 해주고 싶어요. 실무를 최대한 잘 알려주고 덜 헤매게 도와주는 선생님으로 남았으면 좋겠습니다.

 

황종권 : 저는 예고에 있으면서 특별한 교육관을 가져야 하는 줄 알고 예전에 생각을 많이 했는데. 근사해 보이고 싶기도 했고요. 근데 해보니까, 요즘도 다 똑같은 말을 해요. 그냥 네가 옳다. 그러니까 네가 쓰고 싶은 거를 네가 딛고 싶어 하는 지점을 나는 끝까지 따라가 줄 테다. 그러니까 네가 나중에 어떤 글을 쓸 때도 나는 그 자리에서 네 생각이 옳다고 끝까지 응원할 거다. 그래서 예고 선생님은 학생들이 완전히 다른 스타일을 가지고 있더라도 다 따라갈 수 있어서 좋아요. 오늘 캠핑 간다고 마음이 엄청 떴는데 이런 이야기 들으니까 내려가면서 생각이 깊어질 것 같아요. 너무 감사했습니다.

 

이은선 : 지금 깊게 이야기해야지 혼자 내려가서 깊으면 뭐 하냐고요.

 

황종권 : 너무 좋았어. (웃음)

 

이병철 : 마지막으로 조대한 작가님.

 

조대한 : 제가 대학이나 대학원에서 공부하며 선생님들께 제일 감화되었던 것이 함께 책을 펼쳐 놓고 같이 한 줄 한 줄, 공부를 해나가는 것이었어요. 묘하게도 그런 순간들이 무척 좋았어요. 뭐랄까 저 나이와 위치에 있는 분들이라면 저렇게 함께 공부를 하지 않아도 별 문제가 없을 텐데, 이미 다 익숙하신 것일 텐데 같이 질문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보면서 많은 것을 느끼고 용기도 얻었어요. 그래서 저 역시 항상 그런 부분을 놓치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매너리즘에 빠지지 말아야지, 정신적인 관성에 빠지지 말아야지, 읽고 쓰고 배우는 일에 꼰대가 되지 말아야지, 라는 생각을 매번 하고 있어요. 강의 또한 그렇게 교학상장의 마음으로······.

 

이병철 : 교학상장. (웃음) 어려운 말이.

 

이은선 : 평어가 나오는.

 

조대한 : 그런 마음으로 하고 있습니다. (웃음) 음, 학생 분들에게는 무슨 말을 남겨야 할까요. 여러 가지 일로 힘들고 현실이 어렵고 주변 환경이 늘 우리를 흔들어대지만, 바깥에는 항시 귀를 열고 있더라도 꿋꿋이 자기중심을 잃지 않고 주어진 일을 꾸준히 계속해 나가시면 좋겠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네요. 그런 의미에서 얼마 전 중간고사 잘 끝냈으니까 남은 리포트 열심히 준비해서 제출하시길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은선 : 리포트. 역시 최고의 강사님다운.

 

이병철 : 작가님들 이야기를 들어 보니까 100년 대계가 발달하고. (웃음)

 

황종권 : 일단 다 취합하죠.


이병철 : 어려운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12월 후에 《문장 웹진》에서 확인하실 수 있으니까 많은 관심 부탁드릴게요. 그럼 박수 치고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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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리자
  • 2024-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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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리자
  • 2024-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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