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좌담 '창작, 노동' 4차 〈대학(원)생 작가들의 미래설계〉
- 작성일 2024-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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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속좌담 '창작, 노동' 4차 〈대학(원)생 작가들의 미래설계〉
기획 연속좌담 ‘창작, 노동’ 4차
대학(원)생 작가들의 미래 설계
2023년 11월호부터 2024년 2월호 사이에 총 4회의 좌담회 내용이 순차적으로 발표될 예정이다.
ㅇ 회차별 구성
- 1차 : 부업이 있는 작가, 본업이 있는 작가
- 2차 : (비)정규직 교육노동자로서의 작가
- 3차 : 문학 강연 시장
- 4차 : 대학(원)생 작가들의 미래 설계
ㅇ 회의명 : 《문장 웹진》 2023년 기획 연속좌담 ‘창작, 노동’ - 4차
- 대학(원)생 작가들의 미래 설계
ㅇ 일 시 : 2023년 12월 5일(금) 14:00~16:00
ㅇ 장 소 : 예술가의 집 라운지 룸
ㅇ 참여자 : 서재진(시인), 정성우(소설가), 양기연(소설가), 임호균(미등단자), 채윤희(시인)
〈개회〉
서재진 : 저는 이번 기획 좌담에서 사회를 맡은 서재진입니다. 2017년도 대산대학문학상으로 시 쓰기 시작했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정성우 : 저도 이번에 사회를 맡게 된 소설가 정성우입니다. 2019년 무등일보 신춘문예에 등단해서 현재 소설가로 활동 중입니다.
채윤희 : 채윤희입니다. 시를 쓰고 2022년에 동아일보로 등단했습니다. 현재는 부산에 거주하고 있어서 기차 타고 왔습니다. (웃음)
양기연 : 저는 소설 쓰는 양기연입니다. 2022년도에 부산일보에서 등단했고 천안에 살고 있습니다.
임호균 : 저는 시 쓰는 임호균입니다. 등단은 아직 안 했고 2021년에 ‘같이 가는 기분’이라는 웹진에서 발표했습니다. 그때부터 작품 발표하기 시작했습니다.
서재진 : 거주지는 어딘가요?
임호균 : 진천 살고 있습니다. 충북 진천.
정성우 : 다들 먼 데서 오셨네요.
서재진 : 성함이랑 거주 지역 간단하게 들어 봤고요. 최근 작품 활동 관련해서 질문을 드리고 싶은데요. 채윤희 작가님은 최근 쓰고 계시거나 관심 가진 소재 있으신가요?
채윤희 : 질문지를 공유 받은 뒤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모르겠는 거예요. 그래서 최근 쓴 것들을 보면서 반대로 내가 뭐에 관심이 있었지, 하고 유추를 해봤습니다. 밑에서는 전공한 사람도 적은 편이고 이렇게 모이려는 분들도 적고 직장을 병행하면서 쓰시는 분들이 많아서 모임을 가져도 지속이 잘 안 되더라고요. 그래서 저 혼자 쓰는 게 더 많은 것 같고. 주로 시선과 경계? 반복되는 표현들이 있더라고요. 마치와 것처럼. 그런 것들을 제가 자주 즐겨 쓰고 있다는 것을 뒤에서 알게 됐죠. 그리고 섹슈얼리티에 대한 것도 써봐야겠다고 생각은 하고 있습니다.
양기연 : 저는 가장 최근에 디지털 소외 계층의 교통권 문제에 대한 소설을 썼습니다. 주인공들이 다 노인인데, 제가 노인에게 굉장히 관심이 많아서 이번에도 노인 이야기를 소설로 썼습니다.
임호균 : 저는 최근 작품을 보니까 약간 기독교 색채가 들어간 작품을 많이 썼더라고요. 제가 기독교인이라 삶의 일정 부분을 반절 이상 차지해서 쓰다 보니까 그런 것 같고. 지금 악마에 관한 작품을 쓰고 있고. 제가 우주에 관심이 많아서 유튜브에 행성 같은 것을 검색해 보는데 그걸 한번 써봐야겠다고 계획 중입니다.
정성우 : 세계관이 넓으시네요.
임호균 : 아, 네.
정성우 : 이건 제가 궁금했는데 문학을 하는 데 여러 가지 제약이 있잖아요. 작가가 되더라도 경제적 여건이라든가 여러 가지 문제가 많은데도 불구하고 왜 문학을 골랐는지. 시나리오라든가 극작 등 여러 분야가 있는데 굳이 문학의 길을 걷게 되었는지 이야기해 주실 수 있나요? 호균 님부터.
임호균 : 고등학교 때 학교 게시판에 공모전이 붙어 있더라고요. 보통 그냥 지나치는데 그때는 관심이 가더라고요. 그래서 그때 간단하게, 소설은 너무 기니까 시로 한번 짧게 써보자 하고 한 일주일 동안 열심히 써서 냈는데 운 좋게 상을 받게 된 거예요. 그때 재미가 들린 것 같아요. 살면서 그렇게 몰두했던 적도 처음이고. 내가 잘만 하면 잘할 수 있겠다, 열심히 하면 잘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골랐던 것 같습니다. 재밌어서 골랐던 것 같아요.
양기연 : 저도 같은 이유인데 재밌어서 고른 게 결정적이지만. 저는 사실 시나리오 작가하고 순문학 작가 중 진로를 선택할 때 고민했거든요. 왜냐면 입시를 준비할 때는 다르니까요. 또 영화를 고민했던 이유는 제가 영화를 좋아하기도 하고 주변에 영화 전공한 지인들이 많아 영향을 받아서 고민했지만 그래도 문학을 택했던 이유는 문학에서 문장으로 인물을 보여줄 수 있어서 재밌었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이라고 생각해서 문학을 선택했던 것 같습니다.
정성우 : 네, 좋습니다. 문장. 그다음에 채윤희 작가님.
채윤희 : 굉장히 뻔한 답변이 될 것 같네요. 쓸 때 재미가 있는 게 우선이죠. 저도 마찬가지로 영화나 이런 것에 관심이 있었고 소설도 쓰려고 하는데. 어쨌든 문장이 일단 중요한 것 같아요. 그리고 영화는 다른 방향으로 제시되는 것도 워낙 많고. 글을 쓴다는 건 어떻게 말하면 독선적으로 내가 더 장악할 수 있는 세계를 문장으로 풀어내는 거잖아요? 그게 굉장히 매력적이지 않나 싶어요.
정성우 : 좋습니다. 문학의 길을 걷게 된 이후 생계를 어떻게 유지하고 있는지요? 일테면 가족이나 동거인의 도움을 받는지, 혹은 자립하셨는지. 채윤희 작가님부터.
채윤희 : 저는 가족들이랑 살며 부산 본가에서 지내고 있어요. 문창과 졸업하면 취직이 잘 안 되잖아요. 그래서 자격증 공부도 해봤는데 워낙 공부에 도가 트신 분들과 달라 자꾸 한눈팔게 되고 독서 모임도 가서 될 리가 없죠. 재미는 있는데 앉기가 안 되더라고요. (웃음)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지만, 내 밑이 많이 빠져 있구나 하고 등단하면서 슬슬 접게 되는 거죠. 이제 취직해서 학원에서 일하는데 생활비는 따로 들지 않고 저축한다면서 펑펑 놀고 있습니다.
서재진 : 혹시 어떤 학원인지 여쭤 봐도 될까요?
채윤희 : 예전에는 자그마한 데서 알바를 했는데 문창과 과외도 해봤고. 그리고 어린아이들 독서지도 하다가 최근에는 문예 창작 입시 학원에서 가르치고 있어요.
양기연 : 저는 혼자 살고요. 등단하기 전에는 주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생활비 충당하고 용돈도 받으면서 살았는데, 등단하고 나서 바로 휴학을 했거든요. 그때 또 아르바이트해서 돈을 바짝 모으고요. 이제 마지막 학년인데 학원에서 글 쓰는 법을 가르치고 있어요. 아르바이트도 병행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서재진 : 호균 님은 학부생으로 알고 있는데, 어떻게 생활하시나요?
임호균 : 저는 대학 다니면서 자취하고 있고 자취 비용은 부모님의 도움을 받고 있어요. 알바는 따로 안 하고. 글쓰기에 집중을 해보고 싶어서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이제 2학년이라 슬슬 직업도 고민 중이에요. 저도 앞선 분들같이 첨삭이나 그런 걸 해보고 싶은데 아는 게 없어서. 나중에 상담 쪽을 해보고 싶어요. 군대 있을 때 상담 센터에서 근무해서 그쪽으로 일해 보고 싶고. 아니면 아버지 일을 물려받을까, 고민 중이에요. 얼른 직업을 정해야 자격증도 따니까.
정성우 : 실례가 안 된다면 아버지 직업이?
임호균 : 아버지 직업이요? 아, 저희 부모님께서 맞벌이로 휴대폰 장사 하시고 계시는데, 그거는 최후로 두고 있어요. 장사다 보니까.
양기연 : 저도 학부생입니다.
정성우 : 저는 알고 있었는데. 어떤 학원인가요?
양기연 : 처음 글 쓰시는 분들 대상으로 피드백과 함께 작법 가르쳐 드리면서 프로젝트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정성우 : 처음부터 너무 많은. (웃음)
서재진 : 사회자인 제 경우도 아직까지는 부모님 지원받아서 학비나 생활비를 충당하고 가끔 들어오는 원고료로 생활비에 보태는 것 같아요. 정성우 작가님은 어떠신가요?
정성우 : 저는 지금까지 여러 일 하면서 모아 놓은 돈, 그리고 예전에 일하던 곳에서 나온 지원금을 까먹고 있습니다. (웃음) 그러면서 글 쓰고 있어요.
〈일상과 이상〉
서재진 : 두 번째 꼭지로 넘어갈 텐데, 일상과 이상이라는 제목으로 진행할 거예요. 일상을 유지하는 것과 내가 생각하는 이상의 괴리에 관한 이야기가 굉장히 많이 나올 걸로 예상합니다. 요새 문단에 청탁이나 원고료에 대해서 재밌는 에피소드가 많잖아요. 저 같은 경우에는 페이가 없는 청탁을 받은 적이 여러 번 있었고. 혹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 말씀해 주시겠어요?
채윤희 : 청탁은 초반에 전화가 걸려 오잖아요. 그때만 하더라도 제가 독서실에 박혀서 공부하고 있어서 언제 올까, 공부하면서도 그런 기대감이 들었어요. 그런데 스팸전화가 자주 오잖아요. 요즘은 010 형태로도 많아서 계속 받았죠. 그러다 알아서 연락 주겠지 하다 보면 문자로 보게 되더라고요. 전화를 받으면 처음엔 선생님, 이러셔서 아니요, 아니요, 이랬어요. 호칭이 너무 격식을 차려서 당황했고. 원고 보낼 때는 일종의 업무 메일 형식이잖아요. 사회생활 안 해봤으니까 굉장히 긴장돼서 부모님께도 물어 보고. 메일 보내고 따로 문자를 드려야 하나? 이런 거 많이 물어 본 것 같고. 원고료 같은 경우에는 초반에 연락 온 곳은 생각보다 페이가 괜찮아서 놀랐는데 갈수록 적어지더라고요. 그때는 갓 등단했고 발표 지면이 필요해서 다 보내긴 했는데. 서재진 작가님이 말씀해 주신 것처럼 거의 페이가 없다시피 한 곳도 있고. 그래서 가끔 두근두근 에피소드 같아요. 청탁서의 원고료가 기재되어 있지 않은데 준다는 건가, 소정을 준다는 걸까, 까먹은 걸까, 얼마일까, 굉장히 두근거리죠.
정성우 : 아, 그러면 청탁서에 애매하게 기재되어 있거나 안 적혀 있거나.
채윤희 : 그런 것도 좀 있었던 것 같아요. 소정의 금액이라든가. 아니면 아예 명시되어 있지 않은데 주시는 경우도 가끔 있고요.
정성우 : 좋습니다. 양기연 작가님.
양기연 : 제가 지금까지 받아 본 청탁은 다 원고 매수로 돈을 줬거든요. 100매 제한이었는데. 제가 단편소설을 쓸 때 보통 호흡이 70매 이전에서 완결이 나요. 근데 100만 원 받고 싶은 욕심이 나는 거예요. 100매 다 써서 100만 원 받고 싶어서. 제가 처음 받았을 때 어떻게든 분량을 늘리려고 이것저것 고민을 해봤는데 제 호흡이 그래도 70매였고 어쨌든 늘려서 80매까지는 썼거든요. 아쉬워서 어떻게 더 늘릴까 고민했지만 (웃음) 그렇다고 쓸데없는 말을 쓸 수는 없으니까, 작품인데. 그래, 이걸로 만족하자, 하고 청탁을 냈던 게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 같아요.
서재진 : 정말 일상과 이상 사이. (웃음) 호균 님은 어떠신가요?
임호균 : 네, 일단 비등단자다 보니까 청탁은 없었고 원고료를 두 번 정도 받았어요. 작년에 한 번 받고 이번 연도에 한 번 받았는데. 사실 제가 받은 것도 없어서 에피소드랄 게 없거든요. 그냥 받고 나서 이걸 어떻게 할까. 큰돈이 아니니까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동생들 카톡 위시리스트에 동생들이 올려놓은 것을 선물했던 기억이 납니다. 다 부모님께 드리려다가 너무 작은 돈이기도 하고. 부모님이 동생 주라고 하셔서 동생 줬던 것 같습니다.
서재진 : 최근 원고료에 관한 이야기가 트위터에서 굉장히 화두였죠. 청탁서에 원고료를 기재해 놓지 않고 청탁서를 보낸 뒤에 원고료에 관해 묻자 굉장히 불쾌해하는 지면이 있었다는 이야기도 들었고. 예전 같은 경우엔 원고료 대신 쌀을 주겠다는 곳도 있고 저희 잡지에 1년 구독권을 주겠다 하는 곳도 있었다고 들었거든요. 지금은 많이 줄어들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생활을 영위해야 하기 때문에. 다음 질문은 정성우 작가님이 해주실 겁니다.
정성우 : 일단 청탁을 받더라도 애매한 부분도 많고 금액이 적혀 있지 않을 때도 있고 청탁이 오지 않을 때도 있는데 그러면 불규칙한 생활이 이어지잖아요. 그러면 창작을 계속 이어 나가기 위한 계획도 필요할 거 아니에요. 그런 계획을 세워 보려 한 적이 있거나 계획을 세웠다면 어떤 건지 이야기해 주실 수 있을까요? 호균 님부터.
임호균 : 저는 비등단자니까 등단 계획을 세워 봤을 때, 저를 자기 객관화해 봤을 때 언제쯤 등단을 할까 이야기도 많이 하거든요. 문창과 다니다 보니까. 저는 일단은 10년 정도 생각하고 있어요. 저는 만날 서른 넘어서 할 것 같다 생각을 하고 있어서 일단 이거를 영위하기 위해서는 무조건 직장을 잡아야 해서, 직장을 잡은 뒤엔 또 글을 쓸 수 있는 시간이 많이 없잖아요. 그래서 체력 관리도 생각하고. 먼저 돈에 대한 계획을 계속 세우는 것 같아요. 그래서 지금 어떻게 하면 직업을 잡고, 어떤 직업을 잡느냐에 따라 글 쓰는 시간도 나뉘다 보니까 그걸 계획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정성우 : 좋습니다. 그다음 양기연 작가님.
양기연 : 말씀하신 대로 글 쓰는 것만으로는 생활을 영위하기가 너무 힘들잖아요. 그래서 등단하기 전부터 친구들이랑 이야기할 때, 내가 글 쓰는 것만으로는 돈을 못 벌 테니까 기숙사 있는 공장 같은 델 가서 글을 쓰겠다, 그래도 괜찮지 않아? 이런 말 했는데. 왜냐면 저는 하루에 읽고 쓸 수 있는 양이 정해져 있다고 생각해요. 지금은 어쩔 수 없이 가르치는 일을 하지만, 오래갈 거라는 생각은 못 하거든요. 제가 글에 더 욕심이 난다면 차라리 노동, 가르치는 교육이 아니라 노동을 하고 싶어서 그렇게 생각했는데. 제가 휴학을 하고 워터파크에 가서 라이프가드 아르바이트를 했어요. 하루에 10시간 넘게 서서 일했는데, 그때 느꼈습니다. 아, 이것도 쉽지 않구나. (웃음) 단순노동 하고 글 쓴다는 것도 정말 쉽지 않구나. 졸업을 앞두고 직업을 찾아야 할 시기라서 사무직 쪽으로 가고 싶다, 막연한 계획밖엔 없는 것 같아요.
서재진 : 10시간 넘게 일하셨다고 했는데 그때 글을 쓰는 게 가능한 환경이었던가요?
양기연 : 퇴근 후에는 사실 너무 피곤해서 바로 딥슬립이었고요. 주말에 오프일 때 글을 쓰거나 청탁 마감 기한이랑 알바할 때가 겹쳐서 미리미리 써두긴 했는데, 그래도 다시 봐야 하잖아요. 퇴근하고 퇴고하겠다고 앉았는데, 제가 처음으로 노트북 앞에서 꾸벅꾸벅 졸았어요. 퇴근 후엔 힘든 것 같아요. 오프 때나 쓸 수 있는 것 같아요.
서재진 : 네, 감사합니다.
채윤희 : 저는 아까 양기연 작가님이 말씀해 주신 것처럼 혼자서, 회사가 주는 건 아닌데 안식년을 혼자 만들어서 글 쓰는 거 발표하고 이런 식으로 구성해야겠다고 자격사를 따려고 공부했던 것도 이직이 굉장히 쉬워서 따볼까 했는데 정말 쉽지 않았고요. 직업을 가지는 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어디선가 자극을 받아야지 쓸 수 있으니까. 사회생활도 해야지 좀 더 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아르바이트도 해봤는데, 말씀해 주신 것처럼 노동이 굉장히 쉽지 않아서. 저는 해본 알바 중에 병원에서 아주 간단한 행정 업무 도울 때, 나 같은 사람이 이 일을 하면 큰일 나겠구나, 이런 생각이 드는 거예요. (웃음) 서류가 굉장히 많고 빨리빨리 소통해야 하고. 또 전화로 소통해야 하잖아요. 그런데 내선 전화 버튼을 누르는 것도 만날 틀리고. 전화했더니, 이 병동이죠? 이랬더니, 아니래요. 그리고 말단이라 많이 혼나고, 그래서 오래 못 했거든요. 결국 창작을 원활하게 한다는 것은 노동을 하고 남는 시간에 하는 건데, 말씀해 주신 것처럼 10시간쯤 일하면 못 하죠. 노동하면 8시간 정도 일하고 그다음에도 굉장히 쓰기 힘들거든요. 풀타임 근무를 주 40시간 하는 게 아닌데도 생각보다 글을 너무 못 쓰고 있어서. 풀타임 근무하시는 분들 중에도 쓰시는 분이 있는 걸로 아는데 보통 그런 분들은 도대체 어떻게 쓰는지 궁금해요. 비법이 있지 않을까. 지금은 일단 노동과 글 쓰는 것도 비율을 맞춰야 하지 않을까, 그 정도만 생각하고 있습니다.
정성우 : 듣다 보니까 제 사례가 생각나는데, 예전에 원단 회사에서 일할 때 너무 힘들었거든요. 8시에 출근해서 30kg짜리 원단을 하루 종일 날라야 돼요. 그래서 6시에 퇴근하고 카페 가서 쓰려니까 졸려서 자게 되고. 그러다가 실수해서 잘렸는데. (웃음) 그렇게 힘든 현장은 소재가 되더라고요. 오로지 상상해서 쓴 글보다 지인들에게 강렬하다는 평도 들었고요. 그에 비해 학원에서 강의할 때는 시간은 남지만 집필 에너지를 글에 쏟기도 하고, 소재를 얻을 기회마저 모자라니까 아쉽더라고요. 그래서 아, 이게 양날의 검이구나 싶었어요. 그래서 얼마 전에는 신기한 사무직을 얻겠다고 부동산, 그 신입사원들 강의하는 곳에 이력서를 넣었는데 붙었어요. 그런데 면접관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까 시간을 생각보다 많이 투자해야겠더라고요. 그래서 하기가 싫더라고요. (웃음) 병행할 수 있는 일이 작가한테 하나만 있으면 좋겠다, 계속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서재진 : 제가 알기론 정성우 작가님 원단 회사 일하셨을 때 바탕으로 등단작을 쓰셨다고 들었어요.
정성우 : 아, 네.
서재진 : 저도 그런 식으로 알바를 소재로 얻은 적이 있는데 제일 특이하고 기억에 남는 것은 역시 소위 말하는 감성주점, 헌팅 술집이라는 곳에서 일했을 때 소재를 정말 많이 얻었어요. 밤에 출근해서 아침에 퇴근하면 자느라 글을 못 쓰는 거예요. 그때 벌어 놓은 돈을 까먹으면서 생활했던 때도 있었고. 특이하진 않지만, 학교에서 조교 일을 하면서 도서관 근무를 했던 기억이 나요. 근데 제가 있는 부서가 일이 별로 없어서 개인 업무가 가능했기 때문에 거기 있는 컴퓨터로 시를 쓰거나 개인적인 소설을 쓴 기억도 나요. (웃음) 필을 받으면 하루에 50매 쓰는 날도 있고. 정말 열심히 일했던 것 같습니다.
채윤희 : 그 정도면 학점이 갈려 있는 거?
서재진 : 저희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서 전업 작가라는 단어, 혹시 성립 가능하다고 생각하시는지. (웃음) 양기연 작가님부터 말씀해 주시겠어요?
양기연 : 성립 가능하겠으나 저한테도 가능할지는 잘 모르겠어요. 사실 누가 시켜서 하는 것도 아니고. 근데 그걸 떠나서 아까 정성우 작가님이 경험이 없어진다고 하셨던 말씀에 되게 공감했거든요. 저도 소설을, 작품을 쓸 때 보통 일상에서 사유를 길어 올리기 때문에 다양한 경험이 중요한데. 전업 작가를 하게 되면 물론 시간 내서 여러 경험을 할 순 있지만 직업에서 얻는 경험과는 분명히 다르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전업 작가를, 물론 누가 시켜 준다면 굳이 거절하지는 않겠으나 (웃음) 그래도 저는 일을, 어떤 일이든 하면서 글을 쓰는 게 창작 활동에 더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서재진 : 호균 님은 전업 작가라는 단어를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임호균 : 가능하다고 보긴 해요. 왜냐면 빵 터지면 그거에 대한 저작권료가 계속 나오니까. 진짜 크게 한 번 터지면 가능한 것 같은데. 그게 앞서 말한 것처럼 저한테 될지도 모르겠고. 그리고 제가 지금 일을 안 하는 상태라서 대학 생활을 하면서 글을 쓰다 보니 경험이 부족해요. 확실히 저는 강렬할 때 글이 잘 써지더라고요. 가정사라든지 이것저것 되게 잊히지 않을 때. 쓰는 속도도 빨라지고 잘 나오더라고요. 감정이 약간 과열됐을 때. 그래서 전업 작가가 일을 병행하면서 글을 쓰는 게 좋겠어요. 왜냐면 일을 하면서도 힘들 때 강렬해지고 소재가 기억에 남잖아요. 소재도 많이 얻고. 제가 대학 생활만 하다 보니까 강렬한 기억이 별로 없어요. 그래서 소재나 이런 게 별로 안 찾아지더라고요. 오히려 일상생활에서 찾는 게 아니라 책에서 훨씬 더 많이 찾을 수 있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가능하되 일을 병행하면서 하는 게 글쓰기엔 더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서재진 : 마지막으로 채윤희 작가님 말씀 들어 볼게요.
채윤희 : 저도 가능하지 않을까. 장르 소설 같은 경우에는 전업 작가분들 굉장히 많고. 순문학은 가능할까 이런 생각이 들기는 합니다. 전업으로 쓴다는 것 자체가, 아까 다른 분들도 이야기해 주셨다시피 뭔가 자극을 얻기 힘든 구조이지 않을까. 그리고 그거랑 별개로 저는 맞춰서 하고 이런 게 굉장히 싫었거든요. 막상 루틴이 있는 삶을 사는 게 정신건강에는 굉장히 도움이 된다는 생각이 들어서. 갑자기 로또가 되더라도 일은 조금 해야 하지 않나, 생각하고 있어요.
양기연 : 저도 똑같이 생각해요. 인간은 노동이 없으면 너무 쉽게 우울해지는 것 같아요.
임호균 : 맞아요, 반복적인 삶이 있어야…… 사는 데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서재진 : 아침에 일어나서 앉아 있을 수 있는 책상이 있는 일을 하는 것이 루틴을 만드는 자체에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겠습니다.
정성우 : 방금 나온 이야기랑 비슷한 맥락 같아요. 노동이 없으면 우울해지는 것 같다고 하셨는데. 노동이 없는 경우를 직접 겪기도 하셨을 것 같은데, 그뿐만 아니라 글이 잘 안 써질 때라든가 여러 가지 문제 때문에 우울해질 때 있잖아요. 어떻게 보면 문학이라는 것은 감정을 다루는 글이다 보니까. 그럴 때 극복 방식이 있는지 이야기해 주실 수 있을까요? 호균 님부터.
임호균 : 방식이요? 저는 어느 정도 시간이 해결해 주는 것도 있는 것 같아요. 버티면 된다, 이런 말 있잖아요. 그래서 버티다 보면 감정이 가라앉는 경우도 있고. 그런데 그걸 급히 가라앉혀야 할 때도 있잖아요. 빨리 글을 써야 하고 일상생활도 지속해야 할 때는 일단은 저 자신에게 선물을 주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오늘 하루 열심히 살면 저녁에 맛있는 걸 사주겠다, 책을 시키겠다, 아니면 전 게임을 좋아하니까 게임을 하러 가겠다 이런 식으로 하면 하고 싶은 마음이 샘솟더라고요. 그게 약간 우울한 감정을 집어삼키는 역할을 해주더라고요. 그게 저에게 최고의 방법이더라고요. 그거 외에는 교회를 가다 보니까 기도를 하면 마음이 편해지고 명상하면 마음이 가라앉아요.
양기연 : 저는 생각을 그만두는 것 같아요. 제가 어둡거나 우울한 감정이 생길 때는 다른 분들은 모르지만 불안함이 가장 크거든요. 근데 그 불안함이 어디서 기인하느냐를 따져 보면 항상 쓸데없는 걱정 때문에, 이미 벌어지지 않은 일들을 걱정할 때 벗어나기 가장 힘들었어요. 그래서 요즘은 그런 감정이 찾아올 때 먼저 물어 봐요. 지금 이거 네가 생각해서 해결할 수 있는 일이야? 있으면 하고 아니면 그냥 밥이나 먹자. (웃음) 밥 먹고. 일단 배가 불러야 머리가 돌아가잖아요. 그래서 맛있는 거 먹고. 그리고 그 불안을 야기했던 일들을 마주하려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서 작업만 해도, 나 왜 작업 안 하지? 요즘 왜 글 안 쓰지? 가끔 그런 우울감이 찾아올 때가 있는데 사실 해결법은 명쾌하잖아요. 글을 쓰면 되니까. 그런 식으로 저는 감정을 벗어나려고 하는 것 같아요. 제 글의 동기가 우울이 절대 아니거든요. 물론 처음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는 저도 부정적인 감정들을 뭔가 배설하듯이 시작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제가 건강한 정신으로 살려면 이 우울에 빠져 있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하고 우울을 창작의 동기로 삼지 않으려는 것 같아요.
채윤희 : 저는 자기 보상을 해보려고 했는데 뭔가 할 게 있는 상태에서 이게 미뤄지면 보통 불안을 느끼게 되잖아요. 뭘 하면 맛있는 걸 먹을 거야 하면 전 맛있는 걸 먹는 게 우선이 돼서 절대 먼저 해야 하는 걸 먼저 하지 못하고. (웃음) 내가 원하는 걸 먼저 하는 타입이라서. 자기 보상으로 뭔가 해보려고 하는 건 안 되겠다. 하는 거 자체가 자기 보상이어야 하는 구조여서. 글 좋아하고, 좋아하니까 남들보다 많이 하고 조금 더 잘하는 글쓰기를 하려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고. 아까 이야기해 주신 것처럼 전 우울한 타입은 아니거든요. 근데 불안이 계속되면 우울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보통 불안이 그렇게 오래가지 않거든요. 조금만 참으면 되는 거 아니까. 괜찮아, 괜찮아도 한계가 있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뇌가 괜찮다고 말하면 괜찮아지는 경향이 있으니까. 한국어로 하기보다는 외국어로 말하려고 하거든요. 그러면 문법에 신경 쓰면서 진정이 되더라고요.
정성우 : 보통 어느 나라 언어로 하시나요?
채윤희 : 영어나, 영어는 근데 점점 익숙해지잖아요. 제가 제2외국어를 스페인어로 했는데 아기처럼밖에 못 하기 때문에. (웃음) 문법을 한바탕 거쳐야 하거든요. 그래서 스페인어로.
임호균 : 저도 굉장히 공감되는 게 너무 우울할 때는 가끔 외국어로 중얼거려요. 저는 일본어나 영어로 중얼거리는데. 일본어는 다이죠부다, 다이죠부다, 이렇게 중얼거리고. 난데모나이. 난데모나이. 아무것도 아니다, 중얼거리기도 하고. 영어로는 고통이 나를 더 강하게 만든다. 페인 미 스트롱, 이런 식으로 중얼거리니까. 한국어로 할 때랑 좀 다르더라고요. 뭔가 더 강해지는 느낌. 그러니까 단련되고 훈련되는 느낌. 예를 들어 고통으로서…… 그리고 양기연 작가님께서 말씀해 주신 것 중에, 우울이 이제 글 쓰는 동기가 안 된다고 하셨잖아요. 제가 지금 그 상태 같아요. 그 상태가 제가, 과작이거든요, 시 한 편도 열흘 잡아요 초고를.
채윤희 : 괜찮은데요?
임호균 : 아, 그래요? 주변에 빨리 쓰는 사람이 많아서 그런 것 같아요. 저는 초고를 쓰면서 퇴고를 하는 스타일이라 더 오래 걸리는 것 같아요. 그런데 제가 지금 우울을 배설하는 식으로 글을 쓰다 보니까 더 오래 걸리는 것 같기도 하고 글 쓰는 게 더 어려운 것 같아요. 근데 쓴 지 얼마 안 돼서 그런지 이거를 감성적인 부분에서 이성적인 부분으로 탈피해야 하는데 그게 안 되다 보니까 약간 다른 거에는 우울한 감정이 전혀 안 잡히거든요. 근데 글에서만, 나 왜 이렇게 못 쓰지, 왜 느리지, 왜 남들보다 느리지, 이런 생각이 자주 들더라고요. 그래서 그런 이성적인 생각을 갖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글과 삶〉
서재진 : 보통 우울한 감정에 잠식될 때면 타인이 말하듯이 이성을 이용해서 벗어나신다는 대답을 많이들 하셨고요. 글과 삶 파트로 넘어갈게요. 일상과 이상이라는 파트와 교집합이 있는 부분이에요. 내가 작가를 준비한다, 글을 쓰는 것을 업으로 삼고 싶다고 했을 때 주변 사람들의 반응은 어땠는지, 채윤희 작가님, 말씀해 주실 수 있으신가요.
채윤희 : 전 어려서부터 글 쓰고 싶어 했기 때문에 놀라시는 분들은 별로 없었고요. 예고 가고 문창과 가서, 주변에서도 네가 알아서 하겠거니…… 돈을 못 벌 거라는 걸 알고 계셨던 거죠. (웃음) 그런 상황이었는데, 근데 조금 더 먼 친척이라고 해야 할까요. 아니면 어머니나 아버지 친구분들 만나면 굉장히 궁금해 하세요. 분명히 시를 쓴다고 말씀드렸는데, 언제쯤 드라마를 쓸 거냐, 드라마 작가가 돈을 많이 번다더라, 이런 말씀을 굉장히 많이 하세요. 다 똑같은 말씀 하시거든요. 아니요, 전, 드라마 좋은데, 아직 그렇게, 욕망이, 강렬한 인물이 뛰쳐나가는 이야기는 조금 힘들다, 그렇게 대답하는데, 어렵네요. 아버지가 아파트 커뮤티니에서 테니스를 치시는데 너무 자랑을 많이 하셔서 돌아다니면, 시인님 아니냐고 주변에서 그러는데 정말 땅을 파고 숨어버리고 싶어요. 계속 물어 보시죠. 시집 같은 건 언제 나오냐. 나오면, 보통 돈을 얼마나 주냐. 굉장히 궁금해 하시더라고요. (웃음) 저도 모르고 언제 나올지도 모르고 얼마 주는지도 모르니까. 그러고 있는데, 아마 다른 분들도 궁금해 하시는 것 같아요. 다들 알고는 계시겠죠. 얼마 못 번다는 사실을.
양기연 : 저도 완전 비슷한데 저희 집안도 네 맘대로 해라, 이런 집안이어서. 근데 네 맘대로 하는 대신 모든 책임은 네가 지는 거야, 이게 저희 집안 방침 같아요. 그래서 진로 선택하고 입시 보러 다니고 혼자 다 했어요. 그래서 반대한다거나 이런 경험은 한 번도 없었고. 저도 채윤희 작가님이랑 비슷하게 대신 좀 먼 친척이나 주변분들이 소설 씁니다, 하면 어떤 장르 쓰냐 하면, 순문학 합니다, 하면 거기서부터 설명을 시작해야 하잖아요. 순문학이란 무엇인지. 그래서 그냥, 결국 끝에는 아, 뭐, 그냥 글 씁니다, 이렇게. (웃음) 그 정도였던 것 같아요. 딱히 반대를 경험하진 않았습니다.
임호균 : 저는 주변분들이 오히려 좋아하셨어요. 왜냐면 제가 게임 폐인이었거든요. 방에만 틀어박혀 있던 얘가 밖에 나가게 된 것 자체가 너무 다행이었던 거예요. 부모님도 그렇고, 친구들도. 친구들은 그냥 그럴 것 같았다. 제가 워낙 관심종자처럼 학교에서 뛰어다녀서 네가 공부를 할 것 같진 않았다, 예술을 할 것 같았는데, 확실히 글 쓴다고 하니까 이해는 간다 했어요. 부모님도 처음엔 다행이라곤 하셨지만 배고픈 직업이기도 해서 처음엔 반대도 하셨어요. 어머니는 걱정은 되지만 네가 진짜 좋으면 해라, 하셨고. 아버지가 특히 반대가 심했는데, 아버지 꿈이 시인인데 저 낳고 포기하셨거든요. 그 길이 얼마나 어려운지 아셔서 안 갔으면 좋겠는 거예요. 제가 재능이 있든 없든, 잘 쓰든 못 쓰든 그냥 돈을 많이 벌고 안정적으로 사는 게 부모님 입장으로는 자식한테 바라는 점이기도 하고. 그렇게 아버지가 반대하셨는데 이거를 어떻게 허락을 받을까 하다가 결과로서 증명하는 수밖에 없겠다 해서 백일장 엄청 나갔어요. 시만 쓰려다가 어떻게 하다 보니 산문도 쓴 것 같아요. 상이 많지는 않지만 몇 개 받아와서 보여드리니까, 그래, 네가 좋아하는 것 같으니까 한번 해봐라 하셔서 지금은 전폭적으로 지원을 해주시는 것 같아요. 이것저것 계획도 말씀드리다 보니까 신뢰가 생긴 것 같아요. 그런 게 전혀 없었을 때는 되게 걱정되니까 반대를 많이 하셨는데 계획을 차근차근 세우니까 지원을 해주시더라고요. 아버지의 꿈 이야기를 들으니까 더 열심히 쓰게 되는 것 같아요. 아버지의 꿈을 대신 이뤄 드리고 싶다는 감정도 들었던 것 같아요.
서재진 : 혹시 덧붙이실 말씀 있으실까요?
정성우 : 제 이야기가 떠올라서 말씀을 드리자면, 저 같은 경우에는 스무 살 이후부터 어머니께 전혀 지원을 받지 않았어요. 대학교 등록금부터 생활비까지 전부 스스로 마련해야 했죠. 비록 궁핍하긴 했지만 뭘 해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어서 좋았거든요. 그런데 글을 쓴다니까 어머니가 처음으로 반대하는 거예요. 그거 하면 벌어 먹고살겠느냐. 근데 제가 돈을 버니까 어머니가 더는 말릴 수 없는 상황인 거죠. 그래서 제 고집대로 이렇게 온 것 같아요.
서재진 : 저는 예술고등학교 문예창작과를 졸업해서 대학 문예창작학과를 간 케이스인데요. 그래서 등단을 준비한다고 했을 때 주변에서 당연한 수순이지, 하는 반응이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부모님은 항상 전업 작가는 아마 힘들 것이다, 노동을 하면서 글을 써야 한다고 말씀을 많이 해주셨어요. 저희 어머니는 아직도 제 손을 잡으면서 공무원 준비할 생각 없느냐고. (웃음) 경찰공무원이랑 공무원 정말 괜찮다더라, 라는 말을 많이 하시더라고요.
임호균 : 슬퍼지네요. (웃음)
정성우 : 좋습니다. 만약에 주변의 반응이 엄청나게 강했고 미래에 대한 불안이 컸다면 글을 쓰지 않았을 수도 있잖아요. 글을 쓰지 않았다면 지금 어땠을지, 어떤 삶을 살아갔을지 얘기해 주실까요?
채윤희 : 사실 글 쓰는 행위를 동경하면서 살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고요. 저도 예고를 갔다, 글을 쓴다, 그럴 수 있다더라, 이런 건 한 30퍼센트 정도. 중학교 때까지만 해도 학군이 쎄 가지고 공부 압박이 심했어요. 그래서 당장 여기에서 탈출한다, 이런 느낌도 있었고. 예고? 멋있는 것 같기도 하고. 얼른 가족과 떨어져서 띵가띵가 노는 기호도 열망했던 것 같아요, 그 당시에는. 실제로 그렇게 하면서 마찰도 있었는데. 만약에 예고 못 갔으면 집 근처 고등학교 진학해서 스트레스 받아 가면서 공부하고 학교도 어떻게 가고, 이과를 가진 않았을 것 같은데. (웃음) 취직해서 살았을 것 같아요. 아니면 글을 썼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데. 만약에 글을 안 썼더라도, 취미라도, 어떤 방식으로든 창작을 하거나, 어쨌든 지금 가지고 있는 것과는 굉장히 달랐겠지만, 삶을 영위하고 살지 않았을까. 하지만 글과는 좀 멀었겠죠.
양기연 : 채윤희 작가님 말씀 들으면서 제가 가르치는 분들 생각이 많이 났어요. 글을 한 번도 안 써보신 분들 굉장히 많이 오거든요. 근데 항상 자기소개 때 하시는 말씀이 언제나 글 써보고 싶었다고 말씀하세요. 아마 저도 글과 관련 없는 삶을 살았다면 비슷한 수업에서 그 말을 하고 있었을 것 같아요. 어떻게든 글을 쓸 방법을 찾아서. 근데 직업에 있어서는, 저도 이과는 안 갔을 것 같고요. (웃음) 일반 고등학교 나왔는데 문과였거든요. 근데 문과 공부는 좋아했어요. 저는 공부하는 걸 싫어하지는 않아서 열심히 공부해서 공무원 준비를 하고 있거나 혹은…… 사실 제가 좋아하는 것들이 다 돈을 못 버는 것들이에요. 그래서 노래하는 것도 좋아해서 보컬 트레이너를 직업으로 선택했을 수도 있고. 어렸을 때는 운동을 많이 해서, 글을 쓰면서 모든 근육을 다 잃어버렸지만, 운동을 계속했다면 체육인이 되었을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어쨌든 예체능에 가까운 삶을 살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이 듭니다.
임호균 : 전 아까 말했듯이 게임을 계속했을 것 같아요. (웃음) 알바만 하면서 먹고살 만큼만 벌면서 게임만 했을 것 같아요. 그렇다고 게임을 잘하는 것도 아니고 프로게이머는 당연히 안 돼서, 게임만 하면서 계속 살았을 것 같은데. 저도 이과는 절대 안 갔을 것 같아요, 저도 문과 쪽이고. 저도 뭔가, 옛날에 봤던 장래 희망들? 직업을 다시 살펴보니까 돈을 많이 못 버는 역사학자랑 고고학자도 생각했거든요. 그리고 우주를 좋아하다 보니까 중학생 때는 나사 취업하겠다, 이렇게 떵떵거리면서 살았던 것도 같고. 일단은 진짜 고고학자를 해보고 싶었어요. 빗질하면서 조심스럽게 발굴한다는 게 멋있더라고요. 그런 삶을 살았을 것 같고. 그걸 준비하면서 뭔가 벽에 부딪혔다면 다시 게임으로 돌아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웃음)
서재진 : 정성우 작가님은 만약에 글 안 쓰셨더라면 어떤 일을 하셨을 것 같으세요?
정성우 : 안 썼더라면 사업을 했을 것 같아요.
양기연 : 잘 어울려요. (웃음)
정성우 : 직장 생활을 잘 못할 것 같다고 다들 그러셔서. 그런데 사람 대하고 새로운 일을 계속 찾아서 하는 걸 좋아해서 사업을 했을 것 같은데. 나중에, 그때 왜 글을 안 썼지, 그때부터 쓸걸, 그래서 이 에너지로 썼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돈을 덜 벌더라도 만족스럽지 않았을까, 후회할 것 같아서 글을 쓰게 된 것 같아요.
서재진 : 글을 동경했을 거라는 얘기는 다들 비슷하신 것 같아요. 저도 아마 계속 글 쓰는 걸 동경하면서 만화를 그리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만화를 굉장히 좋아해서 애니고를 잠깐 준비했는데 어쩌다 보니까 문예창작학과로 노선을 틀게 되었고 글을 쓰는 지금은 만화를 그리고 싶어 하는 중이에요. 만약 그때 만화를 그렸으면 아마 글을 쓰고 싶어 했을 것 같아요. 다음 질문으로 글을 쓰는 지금은 어떤 삶을 사는가, 얘기해 주실까요? 호균 님부터 부탁드릴게요.
임호균 : 일단은 글쓰기 전에는 게임을 하면서도 재밌지만 텅 비어 있었거든요. 방 안에 틀어박혀 있으니까. 근데 지금은 꽉 찬 느낌이 들더라고요. 좋아하는 걸 찾다 보니 꽉 찬 느낌이 들어서 실제로도 하루를 꽉 채우려 하고 하루가 꽉 차 있는 것 같아요. 일은 안 하지만, 이것저것 계획을 세우고 그거에 맞춰서 사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제 또래, 제 주변 얘들이 지금 뭘 해야 할지 모르고 방황하고 되게 공허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저는 나름대로 계획이 있으니까, 차별점이 있어서 행복한 것 같아요. 제가 길을 잃지 않고 방황은 하고 있지 않구나. 안개가 많이 껴 있어도 잘 가고 있구나. 포기하지만 않으면 나쁘지 않겠구나. 그런 삶을 살고 있는 것 같아요.
양기연 : 호균 님이 글을 쓰는 시간이 오래 걸리신다고 하셨잖아요. 반면 저는 빨리 쓰거든요. 전 등단작도 물론, 퇴고는 더 오래 했지만, 반나절 만에 쓴 거거든요. 그래서 원래는 마감이 닥치면, 아침에 시작할 정도로 엄청 게으른 글쓰기를 했는데 단편은 그게 됐어요. 근데 단편 이상으로 나아가려고 하니까 그렇게 살면 절대 못 쓰겠더라고요. 그래서 요즘은 오후까지 일도 하고 학교도 다녀오고 일과를 끝낸 다음에 새벽에 24시 카페를 찾아가서 짬을 내서 글 쓰는 습관을 들이고 있어요. 그래서 꼭 자정에 카페에 가서 두 시간은 글을 쓰고, 이렇게 살고 있는 것 같아요.
채윤희 : 저는 오히려 너무 안 써서 어떤 삶이라고 하긴 미묘한 것 같고. 학원에서 일하다 보니까, 문예창작학과 입시를 가르치다 보니까, 아이들이 쓰는 글을 제가 보고 이야기를 해주는 상황이라 뇌가 아주 좋아, 글을 쓰고 있군, 이렇게 인식을 하는 것 같더라고요. 하루에 만일 100을 쓸 수 있다면 학원에서 90 정도를 쓰니까. 뇌는 계속 오늘 90이나 썼어. 그래서 뭔가 출력이 안 되는 거예요. 반대로 입시를 하다 보니까 아이들 글을 보면 굉장히 러프하긴 하지만, 반짝거리는 글들이 이렇게 쓰면 아주 좋을 것 같은데, 하는 생각이 들어도…… 약간 그런 생각이 드는 거예요. 이걸 내가 말하는 순간, 나는 쓸 수 없게 되잖아요. 굉장히 미묘해지더라고요. 교육하는 입장과 글 쓰는 입장이. 반대로 왜 뇌가 이런 착각을 일으키는지 솔직히 저는 모르겠거든요. 읽으면서 맞춤법 봐주고 구조를 이렇게 바꿔라, 이 정도인데도. 글은 작은 모임 가지면서 쓰고 있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타입이거든요. 아까 반나절이라고 해서 깜짝 놀랐어요. 어느 정도 반나절을 말씀하시는 거예요?
양기연 : 한 다섯 시간 안으로 쓰는 것 같아요.
채윤희 : 다섯 시간인데, 70매 정도 쓰시는 거예요?
양기연 : 네. 이미 구상해 놓고 쓰는 거죠.
채윤희 : 저는 예열이 오래 걸려서. 하염없이, 하염없이 기다리죠. 그분이 오시기 전까지는.
임호균 : 그러면 시 초고 쓰시는 데 얼마나 걸려요?
채윤희 : 보통 멍하니 있다가 모임 같은 거 할 때 제출해야 하니까, 실질적으로 쓰는 시간은 짧은데 가만히 있는 거죠.
양기연 : 그것까지 저희에겐 다 작업 시간이죠.
채윤희 : 그렇죠. 옆에서 부모님이 보시면 빨리 쓰고 다른 거 하라고, 다 똑같은 거 아니냐 하고. (웃음) 사실 아마 비슷할 거예요. 아마 그때 했어도 비슷했을 것 같긴 한데. 하지만 안 되는 걸 어쩌겠습니까. 그래서 빨리빨리 쓰시는 분들이 굉장히 부럽거든요. 어떻게 그렇게 하시는지 대단하세요.
정성우 : 저는 구상하는 데 오래 걸리는 것 같아요. 1, 2주 정도, 그리고 저도 그분이 오실 때까지 기다리거든요. 좀 내려야 돼, 첫 장면이 떠올라야 되는데, 그게 선명하게 떠오르면 그때부터 한 이삼 주에 걸쳐서 써요. 빨리 쓰면 좋긴 한데, 이게 소설이 이상한 곳이 있다는 게 느껴져요. 그래서 만날 한 페이지 쓰면 마음을 다스려야 해요, 더 쓰고 싶어도 안 돼, 내일 생각해, 하면서. 좀 더 제정신일 때 그다음 장을 시작하려고 남겨 두고 그 에너지를 계속 반복해서 쓰려니까 퇴고가 좀 더 줄어들죠.
서재진 : 저는 막연하게 제가 시를 쓰는 걸 좋아하고, 되게 멋진 시를 쓰고 싶고 언젠가는 쓸 게 확실하다고 생각하면서 살아온 타입인데, 재미를 느끼는 장르는 소설인 것 같아요. 개중에서도 장르 소설의 문법이 너무 재밌어서. 지금은 시는 정말 그분이 오시면 후다닥 십 분 안에 써버리고. 그분이 오시지 않을 때는, 소설은 보통 엉덩이 싸움이라고 하잖아요, 앉아서 장르 소설을 구상하는 일상을 보내고 있습니다.
양기연 : 저도 구상은 오래 걸립니다. (웃음)
임호균 : 저는 그분이 오실 때 쓰기도 하지만, 이제 그분이 오셔도, 그분이 마음에 안 들면 제가 마음에 들 때까지 기다리는 것 같아요. 그럼 또 다른 분이 오시고 그분 것도 생각해 봤을 때 마음에 안 들면 또 제끼고. 그래서 오래 걸리는 것 같아요.
정성우 : 네, 그리고 여러분들이 지금 글 쓰는 삶을 살고 있잖아요. 그러면서도 내가 정녕 무엇을 쓰고 있는 것인가, 내가 쓰는 게 맞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고 정체성의 혼란이 올 때도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일상생활을 하다 보면. 내가 쓰는 사람이라는 것을 자각하는 순간, 그걸 명확하게 자각하는 순간도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렇게 혼란스러울 때, 혹은 쓰고 싶어지는 순간, 그런 것들이 있다면 얘기해 주시겠어요? 채윤희 작가님부터.
채윤희 : 저는 졸업하고 나서 공부하느라 뭔가 하고 싶은 거 해야 하는 거 있으면 토익 같은 거 신청해 두면, 해야 하는 게 잘 된다, 이런 말들이 있는 것도 시험 준비를 하다 보니까 글이 굉장히 쓰고 싶더라고요. 그때 부모님이 만약에, 좌담 보시면 기겁하시겠지만 공부한다기보다 글 작업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지금 생각하면. 그런 자격사를 준비한다고 금전적인 도움을 주시니까. 그래서 사회적 진출을 유예하는 미끼로 썼던 것 아닌가 반성을 하는데. 제가 노무사를 준비를 했는데 법학의 판례가 나오잖아요. 일종의 이야기란 말이에요. 사건이 재밌는 거예요. 그러한 외부의 자극이 있을 때 아, 재밌다, 이게 아니라 뭔가 이야기가 될 것 같다거나 내가 시의 어떤 이미지를 가져올 수 있겠다 이런 순간, 이런 생각이 들면 내가 쓰고 싶어 하는 사람이고 쓰는 사람이구나, 이런 생각이 드는 것 같아요.
양기연 : 저도 비슷한데, 저는 그걸 특히 괴롭게 자각하는 순간은, 일상 속에서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싸우고 있거나 너무 힘든 일이 있을 때, 이거 소설에 쓰면 재밌겠는데, 하고 생각하는 순간인 것 같아요. (웃음) 이거 사실 제가 소설로 이미 써버렸는데 어떤 내용인지는 나중에 제 글을 통해 확인하시고요. (웃음) 대충 말하자면 제가 어떤 서류 준비를 하다가 너무 충격적인 가정사를 알게 됐어요. 그걸 보고 상처를 받는 게 아니라 심란했어요. 근데 시간이 새벽 6시였거든요. 밖에 나가서 담배를 피우면서 하늘을 멍하니 보다가 왜 이렇게 단편소설 같은 일이 나한테 벌어졌지? 생각하고 아, 이거, 오히려 좋아, 내 소설에 쓰면 되겠다, 소재네, 생각하게 된 순간인 것 같아요. 그리고 또 싸우고 있는데 상대가 하는 말이 너무 괜찮으면 다 싸우고 나서 몰래 적어 두고. 나중에 화해했을 때 혹시 그거 써도 돼? 묻는 순간, 그럴 때가 가장 나 글쟁이구나, 라고 느끼는 순간인 것 같아요.
임호균 : 되게 공감되는 게, 저도 뭔 일 나면 그 상황에 집중하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의 문장에 집중해요. 무슨 말을 할지 받아 적을 준비하고 메모장 켜놓는 것 같아요. 그때 약간 섬뜩하더라고요. 분명 이걸 빨리 해결해야 하는데 내가 영감이나 소재거리만 찾고 있구나. 진짜 내가 글에 미쳤나? 중독됐나? 마약을 한 것처럼 그런 생각만 들더라고요. 그때 내가 아, 쓰는 사람이긴 하구나. 그걸 되게 자극을 했던 것 같고. 친한 사람이나 친한 친구들한테는 시도 때도 없이, 영감 내놔라, 소재거리 내놔라, 장난치거든요. 쓰고 싶어지는 순간은, 좀 자극을 받을 때. 주변 사람들이 상을 받거나 잘 쓴 글을 봤을 때 같아요. 주변에 같이 시 쓰시는 분이 있는데 그분은 저랑 다르게 빨리 쓰시고 제가 보기엔 잘 쓰시고, 롤모델이기도 하고. 상 받을 때마다, 매일 같이 보긴 하는데, 볼 때마다 자극을 받고. 나도 이렇게 쓰고 싶다. 쓰면서도 다들 잘 쓰고 싶다는 생각을 사실 하시잖아요. 그래서 그때 쓰고 싶어지는 순간이 오는 것 같아요.
〈벽〉
서재진 : 말씀 잘 들었습니다. 저희 이제 4번째 파트, 벽으로 넘어갈게요. 벽은 조금 현실적인 이야기를 할 텐데, 일단 물꼬를 트기 위해서 글을 쓰기 위해 가장 막막한 순간은 언제였는지 조금 어두운 기억을 한번 여쭤 볼게요.
양기연 : 제가 질문지 받아 보고 가장 고민이 됐던 게 바로 이 질문이었거든요. 딱히 그런 순간이 없는 것 같은데, 라고 생각했는데 오면서 번개같이 아, 나 삼수했구나, 싶더라고요. 문창과 가기 위해서 삼수를 했거든요. 근데 그중에서도 가장 막막했던 순간은 삼수가 결정 났던 순간인 것 같아요. 제가 다른 학교 실기를 보고 과외 쌤한테 왜 그랬냐, 라는 말을 듣고 집으로 돌아와서 책상에 앉아서 벽을 보고 김밥이랑 맥주를 먹다가 펑펑 울었어요. 아, 일 년 더 해야 하네, 그런 생각도 했고 근데 또 한편으로는 제가 그때, 백지영의 ‘총 맞은 것처럼’ 뮤비에서 라면 먹다 오열하는 거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는데 이게 가능하구나. (웃음) 엄청 울면서 삼수를 시작했거든요. 그 순간이 아마 가장 막막했던 순간 같고. 그 이외에는 문학을 공부하다 보니 눈이 굉장히 높아졌는데 제 손에서 나오는 결과물들은 그걸 따라잡지 못할 때, 그런 순간들. 그리고 졸업이 다가올수록 주변에 문학 하는 친구들이 하나둘씩 없어지고 다 취업을 하러 가는 상황 그 정도인 것 같아요. 제일 고민된다고 했는데 제일 많이 말했네요. (웃음)
채윤희 : 막막한 순간은 글을 쓰는 제 자신에 대한 고민 같은 거라고 하면, 미래에 대한 고민을 좀 했던 것 같고. 이제, 한 해, 한 해 학년이 올라가면서 사회 진출이 카운트다운 되잖아요. 그래서 휴학도 하고 괜히 나갔다가 오고, 교환학생도 나갔다 오고. 기간이 안 맞는다면서 휴학 더 하고. 굉장히 고민을 많이 했던 것 같은데. 예술하고 있는 친구, 예고 졸업해서 많지만, 중학교 때 친구들도 그림 그리고 음악 하는 친구들이 많았어요. 걔들이랑 통화를 하면 다 두려워하더라고요. 대학원에 가서 될 일인가? 가더라도, 심지어 금전적 지원이 가능한 친구들도 아닌 것 같다, 졸업해도 정말 아닌 것 같다, 같이 바들바들 떨면서 아무런 준비도 안 하고, 그렇다고 취업 준비를 열심히 하진 않았거든요. 그때는 뭔가 기묘하게 막막했던 것 같아요. 지금 생각해 보면 직장 가지고 글 쓰면 되지, 이렇게 스스로 다독였을 수도 있었을 텐데, 그때는 안 됐던 것 같고. 저는 원래는 입시를 소설로 했고 과에서도 소설을 중점적으로 썼거든요. 3학년부터 시를 쓰기도 했고. 아까도 말했지만, 친하게 지냈던 친구들이 시를 써서 영향을 받았던 것 같아요. 소설 같은 경우, 제가 쓰잖아요. 썼는데 한 80퍼센트 정도 썼는데, 잘못 썼다는 걸 알았을 때 뭔가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 경우가 있잖아요. 시점 인물을 바꿔야 말이 될 것 같다, 이러면 처음부터 다시 써야 하잖아요. 그때가 담배는 태우지 않지만 정말, 아, 한 대 태우고 싶다, 이런 관념적인 욕망이 생길 정도로 그때가 아마 막막하지 않았을까.
임호균 : 저는 사실 지금인데요. 인생 통틀어서. 채윤희 작가님께서 안 쓰신 지 오래되셨다고 하셨는데, 저도 삼사 개월까지는 손을 놓은 상태예요. 그러니까 큰 벽에 부딪힌 것 같더라고요. 가장 막막한 순간은 합평을 여러 번 받았을 때, 혹평을 받잖아요. 이게 쌓이고 쌓이다가 임계치를 넘은 느낌이 있거든요. 제 글이고 자신만만하게 내놓을 수 있어야 하는데 남의 눈치를 너무 봐서 아무리 봐도 마음에 안 드는 거예요. 당연히 모든 글은 누구에게 좋고, 누구에게 안 좋은 게 당연한데도, 아, 이 글을 쓰면 내놓을 수 있을까? 무조건 욕먹을 텐데 내가 왜 써야 하지? 계속 이런 생각이 드는 거예요. 문장도 안 써지고 하루 종일 붙잡아도 한 페이지 반도 안 나오더라고요. 그래서 지금이 가장 막막한 순간인 것 같고. 또 저는 글 배우기 전에, 문창과 오기 전에 수업 듣고 배우면 지식이 쌓이잖아요. 지식이 쌓이면 쓰는 속도도 빨라지고 퀄리티도 빨리빨리 올라가겠다 싶었는데 반대로 되는 느낌이에요. 그러니까 어느 정도의 벽을 뚫고 실력은 올랐는데, 아는 게 많아지니까 쓰는 속도는 느려지더라고요. 쳐내는 과정이 너무 많아진 것 같아요. 옛날에는, 제가 지금 다른 장면 쓰면, 진짜 반나절 만에 후딱 썼는데, 그건 부담이 없어서 바로 내놓을 수 있으니까, 근데 시에는 너무 진심이니까 그게 안 되더라고요. 그래서 점점 더 배울수록 열흘 걸리던 초고가 10일 걸리고, 15일 걸리더라고요. 지금 학부생이니까 가장 막막한 것 같아요. 이 벽을 뚫어야 실력이 올라갈 것 같은데, 제가 상당히 겁을 먹은 것 같아요. 강의를 들을 때도 시에서 약간 움츠러들어 있는 게 보인다고 하셨는데, 왜 그런가 생각하다가 서재진 작가님 강의 듣고 깨달았거든요. 아, 내가 지금 겁을 먹었구나. 그래서 되게 감사했어요, 그 이야기를 듣고. 그걸 어떻게 타파할지 고민 중예요.
정성우 : 네, 좋습니다. 이야기를 들을수록 제가 초조했던 시절이 계속 떠오르네요. 저는 챗GPT 나왔을 때 글을 쓰면서 돈을 그렇게 많이 못 거머쥘 것이다, 그리고 많이 봐주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건 있었거든요. 내가 쓴 글은 나만의 것이다. 언젠가는 봐주는 사람도 생길 것이고 그것도 고유의 가치로 인정을 받을 것이다. 근데 챗GPT가 SF소설을 혼자 썼다는 거예요. 그러면 이제 순문학으로 넘어오지 않을까. 그리고 심지어 1990년대였나. 그때는 시나리오도 AI가 썼다고 하더라고요. 그때 썼으면 지금 정도면 얼마나 발전했을까, 이런 생각 때문에 내 가치 자체가 완전히 훼손되는 느낌이 들었는데 요즘은 그 불안이 줄어들고 있어요. 챗GPT가 바보 되고 있다고 들어서요, 정보를 너무 많이 삼켜서. 그래서 위로받고 있습니다.
서재진 : 제가 막막했던 순간은 2, 3년 전이었던 것 같아요. 학부 졸업 앞둔 어느 날, 대학원에 붙은 그날. 내가 취업을 유예하기 위해 대학원에 가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대학원에 간다는 것 자체가 두렵지는 않았는데 그즈음에 주변에서 동료들이 시집을 많이 냈어요. 그것 때문에 부담감도 있었고. 나는 언제 내지, 될 수 있을까 하는 부담감과 함께 슬펐던 기억이 나요.
정성우 : 좋습니다. 저는 이런 생각 많이 하거든요. 한 달에 50만 원만 정부에서 지원해 준다면 정말 행복하게 살 자신 있는데, 여러분들도 젊은 예술인분들이잖아요, 어떻게 보면 우리나라가 문학 쪽에 꽃을 피우려면 젊은 예술가들의 초조함을 조금이라도 덜어 준다면 충분히 더 좋은 작품을 쓰게 되지 않을까, 이런 생각도 많이 했어요. 그런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라도 여러분들이 목소리를 내주면 어떨까. 그래서 여러분들이 생각하는 필요한 제도 같은 거 이야기해 주시겠어요? 채윤희 작가님부터.
채윤희 : 내려가서 시 모임을 가지게 됐는데. 그림을 그리시는 분들이 독서 모임이나 시모임에 의외로 많이 들어오시는데 그림 그리시는 분들이 시가 굉장히 빨리 느셔서 놀랐거든요. 아무래도 이미지 때문인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그분들도 예술인 패스를 받으신 분들이 창작 기금 이 년에 한 번인가 가능하잖아요. 근데 저희 같은 경우는 그냥 글 쓰면서 썼다, 이런 식으로 프리하게 증빙을 했어도 됐는데. 그분들은 실비로 되어 있더라고요. 아무래도 그분들은 화판 등이 백만 원 이백만 원 금방 넘어가니까. 반대로 생각하면 글 쓰는 동안에도 금방금방 돈을 쓰고 살다 보면 먹고 쓰고 자는 게 다 돈이잖아요. 조금의 지원이 더 있으면 좋겠다 싶으면서도 정부 지원 자체는 굉장히 일차원적인 게 아닌가 생각이 들어요. 문학을 향유하는 세대가 더 많아지고 그런 여유도 생기고. 문학 교육 같은 것도 교과 과정에 이런 식으로 안 들어가더라도 더 풍부하게 읽을 수 있게 도와준다면, 시집도 한 명이 사는 거 두 명이 살 거고. 그런 차원의 지원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양기연 : 저는 도서관 예산 삭감을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너무 많은 지자체에서 도서관 예산을 삭감, 아예 없애버리기도 하는데, 창작을 하기 위해선 읽어야 하잖아요. 그런 사람들에게, 특히 가난한 청년들에게는, 물론 사서 보는 게 출판 사업에 도움이 되지만. 모든 책을 사 보기엔 어려운 현실이라 도서관이 근처에 있는 게 좋고 글을 계속 쓸 수 있게 해주는 뿌리라고 생각하거든요. 예산 삭감을 하면 도서관에서 열리는 많은 프로그램도 당연히 없어지잖아요. 문학뿐만 아니라 그 사람들의 오프라인 모임도 다 없어지는데. 전 문학은 절대 혼자서는 할 수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꼭 옆에서 같이 가는 친구들이 모일 수 있어야 계속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서울 올라와서 제일 놀랐던 게 도서관이 너무 없더라고요. 저는 전주 사람인데 저희 동네에 대학교가 있어서 따로 시립도서관이 없지만, 동네마다 시립도서관이 굉장히 많은 편이거든요. 버스만 타면 쉽게 도서관에 갈 수 있는데 제가 서울 올라와서 처음 살던 곳에는 도서관이 없어서 가장 가까운 도서관에 가려면 버스를 타고 산길을 굽이굽이 올라가서 걷는 시간까지 포함해서 한 시간 걸리는 거리에 있었어요. 너무 깜짝 놀랐고 안타까웠어요. 이렇게 도서관을 만들지 않으면 사람들이 당연히 책을 더 안 읽게 될 텐데 그런 생각과 함께, 도서관 예산 삭감을 하면 안 되는 것 같아요.
임호균 : 저는 이 질문이 가장 걱정됐거든요. 반성이 됐어요. 이런 생각을 안 해봤더라고요, 평소에. 제가 쓰는 거 자체만 신경 썼지. 제가 도움 받을 수 있는 제도나 처음 할 수 있는 분들이 진입장벽을 낮출 수 있는 제도를 생각 안 해봤어요. 그래서 다른 분들의 생각을 일단 들어 보자는 마음으로 왔어요. 친구들한테 왜 이렇게 책 안 읽느냐, 물어 보면 도서관이 너무 멀어, 라고 하더라고요. 저는 시골에 살다 보니까 도서관이 외곽에 있거든요. 읽고는 싶은데 멀어서 귀찮아서 안 간다. 그래서 도서관 예산 삭감, 그것도 너무 중요하고 위치도 중요한 것 같아요. 도서관 크기가 있다 보니까. 시내나 읍내 자체로 옮길 수 없더라도 학교 근처 아니면 학교 내에 도서관을 확장시키는 식으로 해야 쓰는 사람들도 혜택을 누릴 수 있지만, 처음 글에 관심이 있어서 쓰는 사람도 유입이 돼야 하잖아요. 근데 저는 그 유입이 좀 더 국가적 차원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생각이에요. 하지만 중요한 건 돈을 투자해 주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서재진 : 그러면 제도적인 문제에서 더 나아가서 작가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합평 모임뿐만 아니라 도움이 될 만한 모임이나 커뮤니티, 등단에 대한 정보라든가 최저 원고료에 대한 정보라든가 이런 것을 공유할 수 있는 커뮤니티에 대해 생각하신 적 있으실까요?
양기연 : 전 이 질문이 가장 어떻게 답변을 해야 할까 고민했던 것 같아요. 왜냐면 저는 없는 건 아니잖아요. 그런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곳들이. 문학 공모 같은 건 특히나 인터넷을 못 하시는 분들한테는 기회가 적지만 인터넷을 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는 기회가 열려 있기 때문에. 전 다른 분들께 답변을 토스하겠습니다.
정성우 : 저 같은 경우, 이렇게 생각했거든요. 다른 장르도 그렇지만 소설에선 소재가 상당히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다만 합평하는 사람들과 만나다 보면 거의 글 이야기만 하다 보니까 여러 부류의 사람들이, 예술과 관련해서 소재를 쌓을 수 있는 그런 커뮤니티? 여러 명 모이면 좀 더 저렴하게 할 수 있잖아요. 그런 모임도 만들면 좋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들었고. 그런 모임이 만들어졌을 때, 제도적으로 정부 지원도 받을 수 있는 방향이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했거든요.
임호균 : 저는 약간 글 쓰는 사람들 내에서도 중요한데, 유입을 생각해 보면 작가를 꿈꾸지 않았을 때, 학교생활을 떠올려 볼 때 작가에 관한 정보, 작가가 되는 방법, 동아리 활동이라든지 이런 게 전혀 없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작가에 대해서 까먹고 살다가, 우연찮게 학교 게시판 보고 이걸 하게 된 거지 전혀 그런 거에 대한 정보가 없더라고요. 사서 관련 있는 얘들은 사서 선생님께 물어 보면 사서 이야기하면서 글 이야기로 빠질 수 있는데, 전면적으로 작가가 되고 싶은 얘들, 홍보하는 게 전혀 없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그런 게 있으면 좋지 않을까. 작가분들이 아예 모르는, 최근에 저희 대학교에서는 과별로, 과 체험 같은 걸 했더라고요. 그래서 고등학생들을 모아서 과 체험 시키고, 거기 학생회 얘들이 가서 이것저것 알려 주는 걸 했더라고요. 그래서 그 친구들이 학교생활 내에서 그런 경험을 해서 좋은 것 같고. 그리고 아까 소재 말씀하셨는데, 합평할 때 보통 소재에 관해서도 이야기하지만 작품 내용에 대해 이야기하잖아요. 그런데 저는 소재 합평하면 어떨까, 소재 자체만 개요로만 짜서 그거에 대해서 합평하는 거예요. 이건 어떻고, 저건 어떻고, 추가적인 거 빼야 할 거, 이런 걸 이야기하면 좋지 않을까 생각했던 것 같아요. 대신 소재를 뺏길 수도 있잖아요. 그 문제는 생각을 해봐야 할 것 같아요.
서재진 : 저는 제도적인 문제를 생각을 해봤는데요. 최근에 저작권 협회에서 가입을 권하시면서 연수를 한번 열어 주셨거든요. 거기 가서 저작권이라든가 작가 커뮤니티 내에서 한참 논란이 됐던 미투 운동이라든가, 원고료에 관련된 최저 임금이라든가, 그런 것들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말하자면 관련된 작가 노조가 있어도 괜찮겠다,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채윤희 작가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채윤희 : 저도 동의하고요. 미국은 노조가 꽤 강력한 편이잖아요. 넷플릭스랑 제작사 사이에서, 픽사에서 배우들 얼굴을 AI로 합성하는 식으로 협상안을 던졌다가 배우들이 오랫동안 파업을 하고 있는데 만약에 노조가 없었더라면 대응하기 굉장히 힘들었겠죠. 물론 방송인분들은 노조가 있는 걸로 아는데 소설가들도 가능하지 않을까. 사업장이 명확하지 않더라도 산업 단위로 충분히 조직할 수 있을 것 같고. 또 그렇게 되면 그 안에서 원고료라든가 저작권 문제라든가, 독소 조항이라든가 충분히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고. 노조 단위로 밀어붙여야지 법안 같은 것도. 어쨌든 안에서 이렇게 하면, 개인이 이런 낮은 원고료는 수락하지 마라, 이런 것보다는 법적으로 명시되어 있는 게 훨씬 낫지 않나. 지금도 시행 중인 기구가 있을 거예요. 근데 잘 지켜지지 않고 처분이 되진 않으니까. 전 부산에 내려가서 모임을 구할 때, 처음엔 전공생들 위주로 어떻게 어떻게 구성을 했거든요. 그러다가 다음에 비전공자들이랑 처음에 할 때, 쇼크를 많이 받았어요. 저희는 시나 소설 볼 때, 이렇게 쓰면 개연성이 없다든가 이렇게 쓰면 뭔가 문장이라든가 작법적인 부분, 이런 거였는데 그분들은 시를 보면서 이런 식으로 이야기하시는 거예요. 아, 나도 이런 경험이 있었는데, 라든가 이런 순간을 마주한 적이 있었는데 생각난다, 사실 그게 독서잖아요. 가장 순수한 차원의. 그런 자극을 받을 수 있게 예술인들이 지역 안에서 공동체를 조직하듯이 작은 모임을 가지면서 상호작용을 하는 시스템이 좀 더 갖춰져 있다면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정성우 : 그다음 꼭지로 선택과 집중으로 넘어갈게요. 일단 지금까지 많이 들은 것 같은데, 더 명확하게 짚고 넘어가기 위해서 내가 포기한, 아니면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혹은 미래에 포기할 무언가가 있다면 말씀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호균 님부터.
임호균 : 저는 포기한 게 사실 많이 없는 것 같아요. 왜냐면 가지고 있었던 게 별로 없었기 때문에. (웃음) 제가 뭘 하고 있지 않아서. 글 쓰는 것 자체가 유일한 전환점이었거든요. 그래서 포기를 한 거는 별로 없는 것 같고. 미래 포기할 것들은, 저는 약간…… 건강 같기도 하고. 옛날에 운동을 좋아했는데 감정에 매몰된 채로 글을 쓰다 보니까 운동을 별로 하고 싶지 않은 거예요. 글 쓰고 난 다음에 에너지도 없고 뭔가 하고 싶지 않더라고요. 그리고 예열하는 과정도 중요해서 예열하는 것 자체도 에너지가 들다 보니까, 앞뒤로 에너지를 쓰다 보니까 시간도 별로 없고. 하루 십 분 내서 푸시업 정도는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것조차도 하기 싫더라고요. 나중에 글을 쓰다 보면, 건강, 육체적인 건강도 있지만 정신적인 건강, 지금으로선 그런 생각이 드는데 그걸 포기해 버리면 큰일 나잖아요. 그래서 포기하지 않으려고 노력할 것 같아요. 그리고 글을 쓰면서 저는 인간관계, 조금 손을 놓았던 것 같아요. 왜냐면 저는 어리다 보니까 인간관계에 대한 에너지를 엄청 많이 쓰거든요. 기가 엄청 많이 빨려서 사람을 만나고 오면 소재거리는 나오는데 그 소재를 쓸 만한 에너지가 다 사라져서 충전을 해야 하더라고요. 그래서 시간분배를 못 해서 예전에는 친구들 많이 만났는데 지금은 조금 줄이는 것 같아요. 근데 나이가 들수록 인간관계에 손을 놓게 되고 만나는 사람들만 만나잖아요. 제가 그게 좀 빨리 온 것 같아요. 자기 객관화를 해봤을 때, 아, 사람 많이 못 만나겠다, 힘들다, 글 못 쓰겠다, 그래서 인간관계에 손을 놓은 것 같아요.
정성우 : 양기연 작가님.
양기연 : 저도 이 질문 받고 딱히 포기한 건 없다고 생각을 한 것 같아요. 왜냐면 저는 우선순위를 정해서 잠깐 아래 것들을 유예한 거지 제가 아예 포기했다고는 생각 안 하거든요. 저는 문예창작학과에 진학하고 대학교에 입학했을 때부터 생각한 게 대학교 졸업할 때까지는 내가 쓰고 싶은 만큼 글 마음껏 쓰고 그 이후에 취업 준비하자 처음부터 그렇게 마음먹고 들어왔기 때문에. 제가 지금 막학기 재학 중이고 이제 졸업을 앞두고 있는데. 이제는 유예해 왔던 밑에 있던 자격증 준비랄지, 직업을 찾는 거랄지, 취업이랄지, 이제부터 준비하면 된다고 생각해서 딱히 포기한 건 없는 것 같아요. 방금 호균 님께서 건강 이야기를 하셨는데 저도 운동을 진짜 안 하다가 이번 연도에 피티를 받기 시작했거든요. 허리 건강이 너무 안 좋아져서 못 앉아 있더라고요. 계속 글을 쓰려면 체력을 길러야겠구나. 아프니까 집중도 당연히 안 되잖아요. 그리고 또 주변에 예술 전공하시는 분들이 특히 목이랑 허리디스크 많이 걸리시잖아요. 가족 중에도 목디스크, 허리디스크 다 터져서 제가 간병도 했고, 제가 존경하는 교수님도 허리디스크 때문에 힘들어하시는 모습 보면서 미리미리 디스크 안 터지게 관리를 해야겠구나, 생각하고. (웃음) 예전에는 글 밑으로 내려놨던 건강을 이번 연도에 신경 쓰면서 운동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우선순위 밑에 있을 뿐, 포기를 하진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정성우 : 그다음 채윤희 작가님.
채윤희 : 저도 비슷한 것 같아요. 뭘 포기했든 간에, 어쨌든 포기하기 전까지는 했을 거 아니에요. 그게 글 쓰는 자양분이 됐을 거고, 이런 생각을 하기 때문에. 물론 포기하는 과정에서 글 쓰는 건 굉장히 중요하고, 저를, 아마 여러분을 구성하는 부분 중 중요한 부분 중 하나지만 좀 더 실질적인 일을 하고 싶기도 했거든요. 그래서 노무사 준비를 한 것도 사람을 직접 도울 수 있잖아요. 근데 그걸 못 한 게 조금 아쉬운데, 그걸 관련해서 공부한 것, 관련 지식을 쌓은 것, 그게 자양분이지 않을까, 알바 그만둔 것도 나의 자양분이지 않을까. 어떻게 보면 포기도 해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선택과 집중〉
서재진 : 그렇다면 저희 꼭지 이름 선택과 집중에 맞게, 미래를 위해서 뭔가를 선택하고 거기에 집중하는 데 나는 어떤 노력을 하는지, 추상적인 질문 한번 드려 볼게요. 양기연 작가님.
양기연 : 제가 항상 곤란한 질문은. (웃음) 항상 먼저 첫 타자가 되는지.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대학교 때는 글만 쓰자 해서 글만 썼고 그래서 사실 졸업 앞둔 대학생이라면 필수로 가지고 있어야 할 자격증 같은 게 하나도 없거든요. 토익이나 컴활이나. 그래서 졸업을 앞두고, 내년 2024년을 어떻게 살까 생각했을 때, 제가 유예했던 것들을 할 타이밍이라고 생각했어요. 왜냐면 이제 졸업하잖아요. 제가 정해 놨던 글만 쓰는 기간이 끝나고 있으니까. 졸업을 한 이후에는 취업 준비를 해야죠. 그래서 지금은 그런 것 관련 지원 받을 수 있는 복지 제도 같은 것을 알아보면서 지내고 있습니다.
임호균 : 저도 아직 2학년이긴 한데 따놓은 자격증이 전무해서 취업을 가장, 지금 취업에 대한 노력을 하고 있는 것 같아요. 일단 안정적인 직장을 잡아야 하니까. 글 쓰려면 먹고살아야 해서 그런 노력을 하는 것 같고. 아까 막막한 순간이 언제냐고 물어 보셨을 때 주변에 글을 포기하는 분들이 많이 늘어났거든요. 그분들이 보통 취업을 하고 포기하셨거든요, 일에 치이셨을 때. 그걸 보면서 취업하더라도 글 쓰는 마음이 꺾이지 않아야겠구나, 그걸 미리 예열을 해놓고, 준비를 해놓고, 결심을 하고 가야겠다, 마음가짐을 가지고 가야겠다. 그래서 정신적으로는 그런 마음가짐을 가지려고 노력하고. 그다음엔 취업 준비도 하지만, 단순히 더 글을 잘 쓸 수 있는지 계속 찾고 노력하는 것 같아요. 예전에는 혼자 쓰고 합평만 받다가 이제는 시인들 강의도 찾아보면서 전문적으로 해보려 하고. 빡센 강의 있으면, 빡세게 배워 보려고 찾아보고 있는 것 같아요.
서재진 : 채윤희 작가님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채윤희 : 미래라는 게 굉장히 관념적이고 거창하잖아요. 어떻게 생각해 보면 내일도 미래니까. 저는 저를 구성하는 것 중에 가장 큰 게 글이라면, 거의 비슷한 비율로 스포츠를 굉장히 좋아하거든요. 어렸을 때 하다가 안 했지만 보는 건 굉장히 좋아해서. 근데 스포츠 선수들 보면 향상심이 굉장하잖아요. 한번 지면 바닥을 두들기면서 울고. 사실 왜 저렇게까지 하지 싶으면서도, 여러분들도 그런 경험이 있을지 모르지만, 저는 글 쓰다가도 좀 더 잘 쓰고 싶다, 이런 마음에 쪽팔리지만 울어도 봤거든요. (웃음) 그래서 그렇게까지 치열한 순간은 지났지만. 그냥 오늘 열심히 쓰고 그다음에 내일 열심히 쓰고. 운동선수들이 만날 훈련하듯이, 피드백 하듯이. 늘 하던 대로 계속해 나가면 그다음 내일이 올 거고 미래가 오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정성우 : 뭔가 되풀이하는 것 같은데 그래도 한 번 더 질문을 하면 느낌이 다를 것 같아서. 이렇게 노력을 하고 있잖아요, 그럼에도 꺾이는 순간이 있어요, 맞죠. 정말, 크게 마음먹고 다음날 글 쓰려고 했는데, 주변에서 안 도와줄 때 있잖아요. 애인이 내가 몰랐던 부분을 짚어서 혼을 낸다거나 곁에 있던 사람들이 하나 둘 현실적인 문제를 들먹인다거나, 그런 게 한꺼번에 겹치면 힘들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의 타협이 오는 순간이 오면 어떤 마음가짐으로 임하시는지. 호균 님부터.
임호균 : 그럴 땐, 일단 요즘 든 생각이, 포기하지 않으면 결과가 나쁘지 않더라고요. 그냥 꾸준히 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제가 천재가 아니다 보니까 당장에 결과를 내놓을 수 있는 게 아니고, 애초에 등단도 30, 40대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그때까지는 써봐야 하잖아요. 그래서 꾸준하게 진짜 하루에 반 페이지도 좋고, 그 반의 반 페이지도 좋으니까 글 쓰자. 한 문장이라도 좋으니까, 하나라도 적어 보자. 첫 연이라도 써보자. 이런 마인드로 살아가는 것 같고. 그냥 안 좋은 날은 좋은 날이 온다는 믿음으로 버티고. 계속하다 보면 좋은 날이 오겠지. 제가 포기하지 않는 게 제일 중요한 것 같아요. 나만 잘하자. 나만 잘하면 주변이 달라지고 상황도 좋아지겠지, 라는 막연한 마음가짐으로 살고 있는 것 같아요. 또 큰 어려움이 닥쳤을 때는 어떤 마음가짐을 가지게 될지, 이걸로 부족할 수 있잖아요. 그래서 그때는 수정을 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정 안 되면 타협을 해야 하고. 일을 잡았는데 녹초가 돼서 쓰러져서 잘 수 잖아요. 그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생각을 해봐야 할 것 같아요.
양기연 : 저는 타협이라는 단어를 보고 생각난 일화가 있는데, 제가 아르바이트할 때, 또 워터파크 이야기인데, (웃음) 아르바이트를 할 때 체육계 인사들이 많이 모이니까 위계질서가 있었어요. 그래서 만날 정리 시간에 저보다 어린 상사분들한테 혼났죠. 또 그런 상황이 생겼는데, 저랑 친한 동생이 걔 잘못은 아니지만 어쨌든 잠깐 자리를 비웠다는 이유로 불합리하게 모두 앞에서 혼이 났어요. 저라면 그 상황에서 빨리 벗어나려고 죄송합니다, 하고 끝냈을 텐데 친한 동생이 끝까지 고개를 빳빳하게 들고 눈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한마디도 안 하는 거예요. 야, 야, 했는데도 그러는 거예요. 모든 일이 끝나고 숙소로 돌아가면서 그 동생이 저한테, 언니 아까 언니가 죄송하다고 하라는 거 들었는데 나는 내가 잘못한 일에만 사과해, 나는 내가 잘못하지 않은 일에는 사과하지 않아, 이렇게 말하는 거예요. 저는 그 친구가 되게 멋있다고 생각하면서 좀 굴욕적이었어요. 내가 굉장히 이, 위계질서와 뭐랄까요, 군대식의, 그런 부조리에 굉장히 타협을 잘하는 사람이구나. 이 친구는 너무 멋있는데 나는 그렇지 못하네, 라는 생각을 하고. 한동안 그게 계속 생각이 났거든요. 아, 굴욕적이다. 근데 전 그 굴욕감마저 소설로 써버렸어요. (웃음) 그런 순간마다 저는, 내가 이걸 경험하지 못했더라면 절대 알 수 없는 감정인데, 그래, 써야지, 언젠가는 이것도 소재가 될 거야, 라는 마음으로 항상 그런 순간을 넘기는 것 같아요. 앞으로도 아마 그렇게 살지 않을까요.
채윤희 : 다들 비슷하게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저는 졸업하고 준비한 게 영어 점수밖에 없어서 바로 취업이 되지 않으니까 조금 더 직업을 갖고 싶어서 공부를 시작했는데 그때만 하더라도 글을 계속 쓰겠다는 생각 거의 없었어요. 왜냐면 문단 내 성폭력, 그런 거 지나면서 굉장히 환멸이 컸고. 실질적으로, 뭔가 글을 쓰는 것과 다른 문제잖아요. 실질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일을 너무 하고 싶었고. 정말 별로 쓰고 싶지 않았는데 점점 다시 돌아가는 관성을 가지고 있지 않나, 라는 생각이 들어서. 결국 다시 쓰고 있듯이 타협해야 하는 순간이 있으면 해도 되지 않나, 이런 생각도 들어요. 가봤자 얼마나 멀리 간다고 타협을 망설이지, 이런 생각도 들거든요. 결국 쓸 사람들은 돌아와서 쓰는 것 같아요.
서재진 : 말씀 잘 들었고요. 마지막 질문으로 저희가 이렇게 선택하고 집중하고 타협까지 해야 하는데도 쓰는 이유는 뭘까요? 짧게 대답해 주셔도 되고 개인적인 단어도 좋고 문장도 좋고. 편안하게 대답 부탁드립니다.
채윤희 : 제가 아까 스포츠 좋아한다고 말씀드렸잖아요. 제가 부산 사람이어서 야구 좋아하고 그다음에 테니스거든요. 제가 좋아하는 테니스 선수 중에 앤디 머레이라고 있습니다. 그 선수가 트위터 자기소개란에 다른 분들은 나는 프로페셔널 에쓸릿이다, 테니스 플레이어다 이런 식으로 써놓는데, 그분은 아이 플레이 테니스라고 써놓은 거예요. 그게 굉장히 새로운 거예요. 소설가분들이나 시인분들 만나면 저는 소설가 누구입니다, 말하는 경우도 있지만, 저는 글을 쓰는 누구입니다, 라든가 전 누군데 글 씁니다, 라고 소개를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그게 유행인가? 처음엔 그런 생각을 잠깐 했지만, 그게 더 멋있는 것 같아요. 자기는 원래 그런 사람이고, 직업이라기보다는 내가 하는 행동, 나를 구성하는 뭔가, 그래서 나는 글을 씁니다. 이 상태니까 쓰는 거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어요.
양기연 : 저는 이런 질문 많이 받잖아요. 왜 쓰냐. 저는 이 말밖에 할 말이 없어요. 재밌으니까. 왜 재밌느냐고 물어 보면 할 말이 없어요. 그냥 재밌는걸 어떡해. 딱 그거예요. 재밌어서.
임호균 : 제가 알기로 문창과 다니는 사람 중에 꼭 자기는 노벨 문학상 받을 거다, 이런 사람 한 명씩 있는 걸로 알거든요. 제가 그 포지션인데. 그러니까 저는 꿈을 크게 잡았어요. 꿈을 크게 꿔야,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어요, 깨져도 조각이 크다, 라는 말을 깊이 새긴 적이 있거든요. 그래서 저는 그냥 하나는 남기고 싶다, 라는 거창한 목표가 있어서. 최종 목적을 두니까 세부 목적이 알아서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만약에 제가 글을 안 쓰고 띵가띵가 놀고 있으면, 노벨 문학상 받기로 했는데 뭐 하냐, 스스로 그런 질문도 하고 그게 동기부여가 되고 불이 붙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지금은 간단하게 당연히 어려운 거지만 노벨 문학상 받으려는 게 이유다, 주변 사람들에게 말하는 것 같아요. 그게 아니더라도 저도 재밌어서 쓰는 것 같아요. 인생 살았던 것 중에 가장 재밌어서. 그리고 중독돼서 못 벗어날 것 같아서 쓰는 이유도 있는 것 같고요.
서재진 : 미래 설계에 관해서 좌담 나눠 봤고요. 긴 시간 진행되었는데, 집중력 잃지 않고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정성우 작가님 마무리 멘트 있으신가요?
정성우 : 처음에는 질문지 짜면서 아, 이거 너무 민감한 거 아닌가, 이런 거 물어 봐도 되는 건가, 실례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들었는데.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제가 위로를 받는 것 같아요. 물어 보고 나서, 질문할 때, 이걸 나한테 던졌을 때, 과연 나는 기분 안 나쁘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계속 물어 보면서 질문지를 짰는데. 글 쓰는 사람들이 들으면 위로가 될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서재진 : 수고하셨습니다.
〈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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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산책과 가을의 일 박주영 오랜만에 동네 산책을 했다. 여름이 시작되고는 햇빛이 사라진 밤 산책을 하다가 그나마도 열대야 때문에 멈춘 지 오래되었다. 오늘은 해가 뜨기 전 일어났고 스탠드를 켠 책상에 앉아 소설을 썼다. 어느새 창밖이 밝아지는 걸 보다가 해가 완전히 뜨기 전에 바깥으로 나가 걷기로 했다. 산책은 어슬렁거리며 그냥 걷는 것이지만 소설가의 산책에는 생각이 없을 수 없다. 생각을 하지 않으려는 목적이었다면 달리기를 했을 것이다. 나는 산책과 걷기를 구분해서 다이어리에 기록한다. 산책이 바라보고 생각하며 이동하는 것이라면 걷기는 건강이라는 목적을 가장 염두에 둔 움직임이다. 여름이 아니라면 산책은 주로 오후나 해질 무렵에 한다. 늦게 자고 오전에만 일어나도 뿌듯한 사람이라 일어나자마자 소설을 쓰고 쉴 즈음이 대개 그 시간이기 때문이다. 산책을 하면서 내가 지금까지 쓴 것을 생각하다가 빈틈을 메울 생각이 떠오르기도 하고 다음 장면을 생각하기도 하고 이 소설이 제대로 가고 있는지 고심하기도 한다. 여름 해가 뜨기 전 오래간만에 소설을 생각하며 산책을 한다. 나는 문학 전공도 아니고 소설 쓰기를 배운 적도 없고 주변에 글 쓰는 사람도 없었다. 그래서 소설가가 된 후 소설가를 만날 기회가 생기면 알고 싶은 것들을 질문하곤 했다. 글쓰기가 잘 안 될 때는 어떻게 하느냐는 질문에 대한 2개의 대답을 기억한다. 한 분은 그냥 걷는다, 라고 답했고 한 분은 안 되어도 앉아서 써야지 어떡해, 라고 했다. 두 분 다 그때 20년 가까이 소설을 거뜬히 써온 분이었다. 나는 2개의 답을 지금껏 생각하고 있고 그게 지금의 나에게는 정답이 되었다. 하지만 정답을 안다고 정답대로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나는 자주 책상 앞에서 벗어나고 걷는 것이 아니라 누워 있는다. 그냥 진짜 누워만 있는데, 요즘은 소설 쓰는 일에 자주 지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또 한 분의 조언이 생각난다. 건강을 챙기고 운동을 해라, 그러지 않으면 장편소설을 쓸 수 없다. 여기의 조건은 ‘나이 들수록’이다. 비교적 늦은 나이에 등단했고 처음부터 장편소설을 썼던 나는 그 조언이 그때는 크게 와 닿지 않았다. 나는 이미 젊지도 않고 약해 빠졌는데 장편소설을 쓰는 데 그리 힘이 들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그 조언의 참 의미는 어떤 고비마다 왔다. 나이는 한 살씩 먹는 게 아니라 쌓여 있다가 한꺼번에 온다는 걸을 알게 되었다. 어느 날부터 손목이 아프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허리가 아프기 시작하고 이제 어깨가 아프다. 남들은 여름휴가를 가는 시기 나는 병원을 다녔다. 의사는 어깨 인대가 손상되었다고 했다. 특정 자세를 취하지 말라고 했는데 그 자세는 하필 내가 반평생을 취해 온 자세이다. 지금도 나는 그 자세이다. 자판을 치고 노트에 글을 쓰려면 취할 수밖에 없는 자세. 그리고 의사는 옆으로 눕지 말라고 했다. 그런데 어릴 때부터 나는 그렇게 누운 자세로 책을 읽었다. 너무 크고 두껍고 무거운 책만 그 자세로 읽을
- 관리자
- 2024-10-01
[에세이] 다시 서정을 위해 권상진 스무 살 무렵이었던 것 같다. 서른이 되기 전에 시인이 되겠다고 주변에 떠들고 다녔던 기억이 아슴하다. 「홀로서기」를 외웠고 「지란지교를 꿈꾸며」를 외웠다. 이생진을 읽고 백창우를 읽고 박노해를 읽었다. 잔잔하게 때로는 웅장하게 가슴을 밀고 들어오는 시편들이 심장을 가로세로로 뛰게 만들었다. 백석과 김수영과 기형도의 이름은 몰랐지만 굳이 그들이 아니어도 충만한 시간들이었다. 시집이 이천 원에서 삼천 원 정도 할 때여서 큰 부담 없이 고를 수 있었고 외출할 때 시집 한 권을 들고 밖을 나서도 아무도 이상하게 쳐다보는 이도 없었다. 오히려 뭇 여성들의 시선이 슬쩍슬쩍 내 턱선을 지나 책장에 닿는 기분을 느낄 수 있어 좋았다. 생일이나 기념일에는 으레 서점에 들러 시집을 골랐다. 『넌 가끔가다 내 생각을 하지 난 가끔가다 딴 생각을 해』(원태연),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류시화), 『친구가 화장실에 갔을 때』(신진호) 같은 시집을 골라 슬쩍 건네던 날들이 아련하다. 스물이라는, 가라앉을 것 하나 없는 맑은 감정에서 속살거리는 말들을 시인들은 대신 말해 내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 십 대는 가고 이십 대가 펼쳐지고 있었다. 고등학교 입시에 실패하고 대학을 쫓겨나 군대를 다녀오고 나니 어느새 아무데도 기댈 수 없는 성인이 되어 있었다. 오래된 가난이 불편하지는 않았지만 그때부터 가난은 나를 가만히 두지를 않았다. 공장 일을 시작했는데 처음 해보는 노동이란 게 미치도록 좋았다. 종일 몸을 쓰고 땀을 흘리는 일이 알 수 없는 쾌감을 안겨 주었고 월급이라는 보상까지 덤으로 안겨 주었다. 시를 읽고 쓰는 일만큼 일이 재미있었고 누구의 도움 없이 혼자서도 살아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더없이 좋았다. 지쳐 잠들기 전 문득 돌아본 시의 한때는 짧은 여행지의 추억처럼 아득하기만 했다. 나의 스물은 급류처럼 흘러갔고 시는 둑 너머에 있어 쉽게 손이 닿지 않았다. 하지만 일과 돈, 그리고 자립의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노동은 즐겁고 땀은 향기로웠지만 갑자기 내가 꿈꾸던 삶이 이런 것이었던가 하는 질문이 나를 툭 한 번 치고 갔다. 해지는 풍경만 봐도 맥박이 난동을 부리고 꽃과 낙엽의 표정을 살피면 왠지 모를 눈물이 맺히던 한 시절의 기억이 불현듯 피곤에 지친 등을 흔들어 깨웠다. 시인이 되겠다던 꿈을 무참히 짓밟고 나를 공장 노동자로 내몰았던 대학교 재단 이사장의 말이 떠올랐다. ‘약속은 지키면 좋은 것이고 못 지키면 어쩔 수 없는 일’이라던 그의 말. 그가 지키지 않은 약속 때문에 학교에서 쫓겨난 나는 궤도를 이탈해 버린 행성처럼 어둠 속으로 무작정 떠밀려가고 있었다. 막막한 혼돈 속으로 나를 밀어 넣었던 약속이란 단어가 다시 나를 수습하고 있었다. 시간은 이미 서른을 지나갔고 아무도 내게 왜 약속을 지키지 않느냐고 물어 보는 이는 없었지만 스스로와의 약속은 끝내 지켜주고 싶었다. 그렇게 시가 다시 내게로 왔다. 세월도 변했고 시도 변해
- 관리자
- 2024-10-01
[에세이] 과거를 보는 미래 SF 곽재식 며칠 전 나는 한 행사에서 SF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소개하는 발표를 하나 맡게 되었다. 발표가 다 끝나고 질문 답변 시간이 되었는데 청중 중 한 분이 “SF라면 미래를 생각해 봐야 하는데, 왜 옛날 SF를 소개했느냐?”라고 질문했다. 그날 행사 중에는 답변을 짧게 드렸지만 이 내용은 한번 깊게 따져 볼 만한 재미난 주제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오늘은 그 이야기를 한번 해보려고 한다. 명작 SF로 자주 손꼽히는 1970년대 영화로 <>이라는 할리우드 영화가 있다. 찰턴 헤스턴이 주연을 맡아 대형 영화사에서 배급한 그야말로 정통 할리우드 영화인데 그러면서도 비참한 미래의 모습을 예상해서 보여주는 내용이다. 그 결말도 뻔한 할리우드 영화의 행복한 결말이라고 말하기는 매우 어려운 방향으로 흘러가기에 눈에 뜨이는 영화이기도 하다. 맨 마지막에 주인공이 외치는 대사는 SF 영화사에서 유명한 대사 순위를 꼽으면 상위권에 자주 오를 만큼 잘 알려져 있기도 하다. 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미래는 인구가 너무나 빠르게 늘어났기 때문에 멸망해 가고 있는 세상이다. 인구가 너무나 많은 데 비해 식량과 자원은 부족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굶주리고 모든 물자가 부족해 다들 비참하게 살고 있다. 영화 제목인 “소일렌트 그린”이란 식량이 부족한 세상에서 특별히 개발해 보급 중인 신형 인공 식품을 말한다. 그러므로 <>은 19세기 맬서스의 등장 이후 수많은 사람들이 미래 인류의 멸망 시나리오라고 철석같이 밀었던, 맬서스 함정을 정통으로 다룬 영화다.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하는데,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성장한다.”라는 말은 어지간하면 한 번쯤 들어 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지구는 망한다, 그러니 사람이 많은 것은 해악이다, 라는 말을 하는 사람을 본 적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런 생각은 곧 “사람이 곧 모든 파괴의 근원이며, 사람이 없어져야 지구가 살아난다.”는 생각으로도 자주 이어지기도 한다. 재미난 사실은 이 영화에서 다루는 멸망해 가는 미래가 2022년이라는 점이다. <>은 1973년에 개봉된 영화이므로 이 영화에서 말하는 2022년이란 영화가 제작되던 1972년으로부터 50년 후를 말하는 이야기일 것이다. 그런데 이 SF 영화에서 말하는 2022년의 미래라는 시간은, 2024년을 사는 현대의 우리에게는 2년 전의 과거가 되었다. 나는 영화를 보는 과정에서 이렇게 시간의 꼬임을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이 굉장히 신비롭다. 게다가 요즘 이 영화의 내용을 보다 보면 더욱 중요한 사실도 깨달을 수 있다. 실제 2022년이 인구가 너무 많아 식량 부족으로 멸망하는 시간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우리가 겪고 있는 2020년대는 인구가 너무 많은 것이 문제가 아니라 인구 감소와 초고령화가 문제인 시대다. 이러한 현상은 한국만 겪고 있는 문제도 아니다. 한국에서 인구 문제가 워낙 극심하게 나타나
- 관리자
- 2024-10-01
저번까지 읽은 이후로 이어보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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