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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시대의 문학

  • 작성일 2005-04-26
  • 조회수 4,577









최혜실


Q 최근 십수 년간 급속도로 진행된 컴퓨터의 일상화와 인터넷의 일반화는 삶의 다양한 양태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보는 시각에 따라 여러 가지 가치 평가가 있을 수 있지만 ‘변화’ 자체에 대한 점은 대체적으로 동의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삶의 양태에 변화가 왔다면 문학의 변화 또한 응당 물을 수밖에 없는데, 선생께서 바라보시는 그 변화의 성질은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보다 더 자세히 말해 문학과 인터넷 문화가 주고받는 영향관계는 어떤 것이며, 그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측면은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향후 문학과 사이버스페이스는 어떻게 결합해나갈 것이라고 전망하는가? 이와 관련하여 문학의 창작과 유통, 향수는 어떤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그리고 작가들의 입지는 어떻게 달라지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A 사람들이 책을 읽지 않는다. 독서는 마음의 양식인데 큰일이다. 이런 이야기들은 얼마쯤은 맞지만 얼마쯤은 틀린 면이 있다. 영상 매체와 인터넷은 너무나 많은 정보를 쏟아내고 있다. TV가 바보상자라는 비판은 옛날 말이고 역사, 과학, 시사 문제에 유익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프로가 많다. 검증되지 않은 정보들이 많아 문제이지만 인터넷 검색은 매우 효율적인 지식 획득 방법이다. 일부러 도서관에 가지 않고 전자저널을 통해 논문이나 전문서적을 읽을 수 있다. 종이를 매체로 한 문학작품이 팔리지 않게 된 것은 이런 추세에서 볼 때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아니 이제 문학작품은 하이퍼텍스트 속으로 대거 이동하고 있는 중이다.

소설은 근대 시민계급의 발흥과 함께 탄생했으며 근대는 인쇄 매체의 등장과 밀접한 관련을 갖는다. 지식의 보존과 전달의 필요성을 느낀 인류는 문자를 발견했다. 그러나 일일이 베껴 써야 했기 때문에 지식은 자연히 소수 귀족과 승려에게 독점됨으로써 중세와 절대왕정의 시대가 지속되었다. 그러나 구텐베르크 혁명 이후 인쇄물이 대량 보급되어 많은 사람들이 손쉽게 지식을 접하게 되었고, 교육을 토대로 근대 시민계층이 탄생했다. 소설은 책을 즐겼던 계층이 선택한 대표적인 예술 장르였다. 근대 산업사회를 효율적으로 유지해주는 공동체의 영역은 민족국가 단위로 확대되었다. 민족은 원초적 공동체가 아니라 근대 자본주의의 발전 과정에서 생겨난 역사적 구성물인 것이다. 이때 자국의 언어로 의사소통하는 과정에서 같은 언어를 쓴다는 연대의식은 같은 민족이라는 동질감을 구체적으로 확인시켜준다. 그런데 근대국가 형성기에 대표적 인쇄 매체였던 신문의 소설은 이 ‘상상의 공동체’로서 민족적 연대감을 만들어가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이제 디지털 매체의 발달로 지식의 생산과 교환, 소비의 방식은 근대와 다른 방식으로 이루어지게 되었다. 우선 매체의 통합적 특성을 지니기 때문에 자연히 문자성과 구술성이 혼합된다. 글을 제대로 모르는 아이들에게나 허용되었던 그림책 방식이 이 시대에는 매체의 특성을 활용한 중요한 표현 형식이 된 것이다.

또 인터넷의 양방향적 특성 때문에 읽기와 쓰기, 독자와 작가의 경계가 모호해지게 되었다. 인쇄 시대가 지식의 평등한 분배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면, 디지털 시대의 지식은 공동 생산과 소비의 국면을 맞고 있다. 즉, 인쇄 시대에 지식의 소비는 대다수 국민들에게 공평하게 이루어졌지만, 생산은 소수 전문가들에게 독점되었다. 그러나 이제 많은 정보와 지식, 여론이 공동 생산의 방식으로 생산되고 있고 여기에 대처할 새로운 담론 방식이 필요하게 되었다.


프로슈머(prosumer)의 등장과 문학의 변화



인터넷 문학의 인기는 문학 전문가들에게 다소 껄끄러운 현상이다. 평범한 청소년들이 인터넷에 올린 글이 화제가 되어 종이책으로 출판, 베스트셀러가 되고, 영화, 드라마로 각색되어 인기를 끌고 있다. 물론 전문 작가에 비해 수준이 떨어지는 면이 없지 않으나 젊은이 특유의 감각과 가치관이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런 경향은 시에서도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지금 인터넷상에는 수많은 시 동호회가 존재한다. 등산이나 꽃꽂이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커뮤니티를 만들듯이 시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 자신의 시를 올린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오히려 예전보다 많은 사람들이 시에 관심을 보이고 시낭송회나 시인과의 대화 시간이 많아졌는데도 전문 시인들의 시집은 팔리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인터넷 소설이 인기를 끌고 있지만 전문 작가의 소설은 팔리지 않는다. 아마추어리즘이 문학작품의 질을 떨어뜨리고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 이 악순환 때문에 문학은 더욱 위축된다.

인터넷의 양방향성으로 인한 독자층의 변모에 문학은 각오하고 대응해야 한다. 첫째, 인터넷의 마니아층을 능동적으로 활용한다. 최근의 팬덤 현상은 지금까지 문화산업의 전략에 수동적으로 존재해온 수용자에게 새로운 가능성으로 등장하고 있다. 문학도 인터넷상의 담론을 형성하고 작가와 등장인물의 이미지를 팔 수 있는 창조적 제도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둘째, 작가의 권위나 작품의 완결성에 대해 좀 관대해져야 할 때이다. 지금 디지털 매체에서의 문화예술은 감상의 경건한 대상에서 같이 즐기는 과정으로 이동 중이다. 작품이 영원히 변하지 않고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감상자가 참여하고 관여할 수 있는 것으로 변모하고 있는 시점에서 작가의 개방성이 강조되어야 한다. 작가는 완결된 무엇을 독자에게 던지는 존재이기보다 독자의 담론을 끌어내는 매개일 수 있다.

셋째, 이윤 창출의 새로운 방식이 필요하다. 예전에 ‘소리바다’ 사건에서 볼 수 있듯이 아날로그 미디어 시대의 인세 방식이 정보가 공유되도록 만들어져 있는 디지털 매체에서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시집과 소설은 팔리지 않지만 인터넷에서 많은 네티즌들이 글을 쓰고 수많은 시 동호회에서 시를 쓰고 감상하고 있다. 그것은 음반이 팔리지 않지만 많은 사람들이 개인 PC와 모바일 폰, MP3 등을 통해 음악을 즐기고 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이윤 창출의 방식이 책을 팔아 인세를 받는 것에서 다른 무엇으로 전환되어야 할 시점이다.


유비쿼터스 시대의 문학의 확산


마이크로 칩과 센서가 일상의 모든 물건들에 스며들면서 가상성은 우리 삶의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가상에 현혹된 현대인들은 가상세계의 감각적 속성, 놀이적 속성을 현실에 적용하려는 경향을 지니는데, ‘놀이’는 우리가 참여하여 만드는 이야기다. 이제 이야기는 우리가 사는 문화공간으로 확산되고 있다. 물질을 산출하는 방식보다 기호를 산출하는 방식이 많아지면서 상품의 미학적 가치가 증대되고 있고, 그 미학적 가치의 핵심으로서 ‘스토리텔링’이 존재한다.

최근 문화산업에서 OSMU(one-source-multi-use)라 불리는 것이 바로 이야기 산업이다. 구체적인 예로 <해리 포터>라는 소설이 영화, 애니메이션, 게임, 캐릭터로 만들어지는 사례를 들 수 있는데, <해리 포터>라는 스토리텔링이 있고 그것이 매체의 특성에 따라 편차를 보이며 상품화되는 것이다. 아이들은 해리 포터 신발, 모자를 사용하면서 포터의 마법 이야기를 소비하는 것이다. 이 사례를 일반화하면, 스토리텔링이라는 상위범주가 있고 그 하위범주로서 문학, 만화, 게임, 애니메이션, 영화, 게임, 광고, 디자인, 홈쇼핑, 테마 파크, 스포츠, 캐릭터 상품 등의 하위 이야기 장르가 있다. 상위와 하위, 각각 하위 스토리텔링 장르들은 서로 미학적 영향을 주고받는다.

이때 문학은 이 방식에서 주도적 역할을 한다. 근대의 주도적 이야기 장르의 시기를 거치면서 수천 년의 이야기 장르의 미학이 집결되어 있을 뿐 아니라 엄청난 자본이 드는 영화나 애니메이션, 게임, 드라마의 미학을 미리 가늠하게 할 수 있다. 많은 문학작품들이 영화화, 드라마화되고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문학작품은 더 이상 그 상황을 방관하거나 비판하지만 말고 좀더 주도적으로 나서야 할 시점이 되었다고 본다.


하이브리드(hybrid) 시대, 문학의 변모


최근 영역간의 교류와 융합이 많이 나타나고 있다. 대중음악과 오페라 같은 클래식의 결합, 만화와 미술의 넘나들기, 시와 무용, 시와 대중음악과의 만남이 잦아지고 있다. 방송이나 드라마에도 이런 현상이 있다. 토크쇼 등을 보면 참가자들의 말 중에 재미있는 것, 강조할 만한 것을 화면에 문자로 표시하거나 말풍선, 화살표 등으로 보여준다.

그 원인 중 하나가 디지털 매체의 독특한 특성 때문이다. 예를 들어 미디어 아트와 하이퍼텍스트 문학은 똑같이 문자, 그림, 소리가 결합된다는 점에서 같은 장르로 보아야 한다. 이처럼 매체의 통합성 때문에 장르의 교섭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며, 중요한 것은 장르의 순종성이 아니라 그 미학적 가치다. 예술 장르마다 자기의 특성에 집착하고 그것만을 순정한 것으로 보고 혼합을 잡스러운 것으로 비판하는 것은 각 영역마다 융합이 일어나고 있는 디지털 시대에 뒤진 감이 있다.

문학에서도 인터넷 문학의 이모티콘이나 영상을 문자의 파괴로만 볼 것이 아니라 인터넷의 특성으로 파악해야 한다. 책으로 출판되었을 때 종이 위의 이모티콘은 유치하고 인터넷 문체는 저질스럽게 보인다. 그러나 작품이 게시판에 오르고 인터넷상에서 그 글을 보고 댓글을 다는 과정에서의 이모티콘은 생동감이 넘친다.


변하는 것과 남는 것


새로운 의사소통 환경 속에서 문학은 변하고 있고 변해야 한다. 물론 문학이 추구하는 진정성은 수세기 동안 사람들을 감동시켰던 방식 그대로 전해질 것이다. 그러나 변화하는 매체 환경, 출판 환경에 적응하는 것은 현재, 우리의 몫이다. 과감한 실험과 적응의 과정에서 문학의 미래는 밝을 것이다.《문장 웹진/20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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