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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의 다양성과 새로움

  • 작성일 2005-09-22
  • 조회수 6,259

 


사회자 : 김수이(문학평론가)

토론자 : 엄경희(문학평론가)

         손택수(시인)

         김행숙(시인)

         김언(시인)


좌담내용 듣기 1

좌담내용 듣기 2


김수이(이하 ‘사회’) : 웹진 <문장>에서 처음으로 갖는 좌담회입니다. 참석해주신 분들은 평론가 엄경희 선생님, 시인이신 손택수, 김행숙, 김언 선생님이십니다. 시인과 평론가가 함께 하는 자리이므로 시인은 주로 시를 쓰는 창작자의 입장에서, 평론가는 평소 시인과 직접 이야기해보고 싶었던 문제를 개진하는 차원에서 이야기하시면 좋겠습니다. 먼저, 최근 시의 전체적인 지형도를 그리는 것으로 좌담을 시작해 보기로 하지요. 최근 시에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이야기가 무성한데요. 정말 특별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인지, 그 변화는 전(前) 시대와는 다른 새롭고 유의미하며 생산적인 것인지 의견을 나누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엄경희 : 전 시대를 크게 보면, 1980년대를 말씀하신 것 같습니다. 1990년대가 2000년대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볼 때 두 가지 변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첫째는 1980년대의 리얼리즘이 서정화되었다는 것입니다. 부정적인 면은 리얼리즘 정신의 약화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부정적인 것만은 아닐 듯합니다. 서정화를 계기로 리얼리즘 시의 심미성 문제가 깊이 있게 제기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리얼리즘 시가 서정화된다.’는 것 자체가 꼭 미학적 성공을 담보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이것이 리얼리즘도 방법적 모색이 필요하다는 성찰적 의식을 불러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이시영 시인이 시도하는 서술시, 백무산 시인의 자본주의에 대한 깊이 있는 사유가 이런 지점과 관계가 있습니다. 한편 정치적 이데올로기로부터 자유로워진 지금 시점이 서정시가 만개할 수 있는 지점이기도 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이런 변화를 생산적인 변화의 가능성으로 볼 수 있을 듯합니다.

두 번째는 ‘추의 미학’의 발견입니다. 1980년대 중반부터 조금씩 보였던 것인데, 이 경향이 1990년대 중?후반부터 2000년대까지 풍미했던 것 같습니다. ‘추의 미학’은 시의 고전적 미학, 즉 시적 우아함이라는 것에서 벗어나 고착된 시의 틀을 공격했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술에 대한 시각 확대, 상상력이나 사유에도 영향을 주었다고 봅니다. 내용면에서 ‘추의 미학’은 물질만능적인 부르주아의 안일한 삶의 방식을 공포스럽게 되울려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생산적 변화라고 생각합니다. 문학의 영토 확장이라는 측면에서 그렇습니다.


사회 : 엄경희 선생님은 최근 시를 1990년대의 연장선상에서 보시고, 두 가지 긍정적인 점을 지적해주셨습니다. 리얼리즘 서정시의 가능성과 ‘추의 미학’의 만개가 그것인데요. 이를 편의상 리얼리즘 지향성과 모더니티 지향성이라고 부른다면, 여기 참석하신 시인들은 각각 어느 한쪽으로 분류가 가능하다고 봅니다. 손택수 시인이 전통적인 리얼리즘을 옹호한다면, 김언, 김행숙 시인은 모더니티와 관련이 깊다고 할 수 있지요. 이러한 구도에 대해 손택수 시인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손택수 : 리얼리티 지향성이나 모더니티 지향성이나, 기존의 시 문법에 대한 단절의 욕망과 연속성의 의지가 전대(前代)처럼 표층에서 갈등하기보다는 안으로 스며들어서 동거 상태에 있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들뢰즈의 말처럼 ‘자신의 언어 속에서 말을 더듬고 있다.’고 할까요? 김선우 시인의 「돌에게는 귀가 많아」라는 작품에서도 자신이 애써 쌓은 문법을 허물고자 하는 의지가 엿보입니다. 시의 혀가 갈라져 있는 것입니다. 예전의 은유가 동일성의 미학이었다면, 1990년대를 통과하면서 은유는 동일성과 차이를 모두 내장하게 되었다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물론 이것은 우리 시대만의 특징은 아닙니다. 굳이 전대와 비교를 할 때 이런 것이 담론의 층위에서 표나게 강조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회 : 판도가 변했다기보다는 기존의 변화를 끌어안으면서 누적되는 형태가 되었고, 그런 적층(積層)이 시인들의 내면에도 그대로 축적되어 있다는 말씀이신데요. 리얼리티와 모더니티를 이분법으로 나누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지적으로도 들립니다.


김언 : 최근 시의 전체 지형도가 어떠한가는 저 역시도 부담스러운 질문입니다. 눈에 띄는 외형적인 변화부터 얘기하자면, 1980년대에 비해 1990년대 중?후반부터 잡지가 많이 늘어났다는 사실을 지적할 수 있습니다. 매체가 늘다 보니 당연히 거기서 배출하는 시인들의 숫자도 급격하게 늘어났는데, 그런 양적인 확대를 따라잡을 만큼 시인들의 시세계가 넓어지고 다양해졌는가 하면 그렇지 못하다는 생각이 더 많이 듭니다. 시인 한명 한명이 하나의 장르가 되도록 자신의 시를 뻗어나가게 해야 하는데, 잡지도 그렇고 시인도 그렇고, 기존의 몇몇 잡지들이 일구어 놓았던 세계에서 크게 벗어나지를 못하는 것 같습니다. 오히려 그 성향이나 이념의 줄을 이어나가는 듯한 느낌이 강하게 듭니다. 양적인 증가에 비해 새로운 세계가 많이 부족한 것이 사실입니다.


사회 : 잡지나 시인이 많이 증가했지만, 그것은 부정적이고 양적인 증가에 불과하다는 비판이신데요. 최근 시의 판도 변화를 이야기할 때 빠짐없이 거론되는 주인공 가운데 한 사람인 김행숙 시인의 생각은 어떠신지요? 


김행숙 : 시쓰기는 개인적인 작업이므로 어떤 부류에 속한다는 것, 그것도 이분법적인 체계에 갇혀서 논의된다는 것에 기본적으로 불편함 내지 저항감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어쨌든 제 생각에 현재형인 시의 변화에는―일단 그 유의미성과 생산성에 대해선 괄호를 쳐놓고―근본적인 데가 있다고 여겨집니다. ‘문학이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이 나오게 하는 지점에 변화가 도사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지점을 생각할 때, 문제는 미학적인 ‘실험’이 아니라 문학적인 감수성 자체가 바뀌고 있다는 데 놓여 있다고 봅니다. 그 변화가 아직 미미할지는 모르지만, 언젠가는 ‘문학’이라는 개념 자체가 달라질지도 모릅니다. 소위 모더니즘 시를 비판적으로 논할 때 곧잘 동원되는 ‘자의식의 과잉과 실험에의 유희’라는 진단에서, 저는 ‘과잉’과 ‘유희’에서 불편함을 느끼기보다는 ‘자의식’과 ‘실험’에서 모종의 피로감과 함께 진부함을 느낍니다. 오늘날 문학적 지평의 변화를 말하면서 실험의 시대라는 표현을 쓸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미적 실험의 시대는 이미 지나왔고, 이제는 실험 자체가 패러디되고 있을 뿐이라는 판단조차 듭니다. 실험의식과는 무관하게 시적 주체와 세계가, 그 감수성이 변화하는 지점을 느끼는데, 그 부분이 비록 크게 보이지는 않지만 더 근본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최근에 시 비평에서 ‘균열’이라는 말은 문제적인 만큼 흔하게 쓰이는 말이 되었습니다. 여기서 먼저 짚어두고 싶은 것은 균열의 유무가 아니라, 균열을 대하는 태도 혹은 균열을 사는 방식의 차이입니다. 지금까지 대체로 자아의 균열은 존재론적인 회의와 고통과 절망과 함께 지각되는 것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마땅히 통합되어야 하는데, 불행하게도 현재는 그렇지 못한 상태에 놓여 있다는 것이지요. 이 경우, 시인의 회의와 고통은 파편화된 현대 자본주의사회에서 통합의 기억을 가지고 사는 한 가지 방법이 되기도 합니다. 어쨌든 이 경우에 통합은 균열의 기원이자 염원으로 설정됩니다. 그런데 그 반대로 균열을 통합에 앞서는 것으로 감각한다면, 다시 말해 균열을 존재의 자연으로, 통합을 의지와 타협과 기만의 산물로 간주한다면, 균열은 고통스러운 자의식 없이 해방의 에너지와 함께 표출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미적 실험을 추동하는 부정의식이 아니라 근본적인 감수성의 변화에서 균열을 대하는 태도나 균열을 사는 방식의 차이도 발생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회 : 우리 문학의 근본적인 형질이 변하고 있는 것, 기존 시의 토대인 시적 주체와 동일성 미학이 흔들리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는 진단이신데요. 모더니티의 피로와 실험은 끝났다는 말에 대해 평론가로서 엄경희 선생님의 생각은 어떠신지요?


엄경희 : 모더니티의 피로는 시를 쓰지 않고 문학의 장(場)을 떠나서도, 도시의 모든 사람들이 견뎌야 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시의 실험은 끝났다는 말에 대해서는 유보할 필요가 있을 듯합니다.


김행숙 : 제 말이 좀 과격했던 것 같습니다. 다만 실험보다는 더 근본적인 층위에서의 변화가 현재형인 시의 변화를 짚는 데 있어서 핵심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균열은 현대시의 전제


사회 : 용어상의 차이인 듯합니다. 김행숙 시인은 수사로서의 실험은 의미가 없다는 말씀이시고, 엄경희 선생님은 새로운 감수성의 변화도 실험에 속하는 것이므로 이 실험은 끝나지 않을 모험이라는 의견이신 거지요. 그럼, 이야기의 대상을 구체적인 작품과 시인으로 좁혀 보겠습니다. 시와 시인을 분류하는 것은 언제나 위험한 일이지만, 논의를 진전하기 위해서는 불가피한 일이기도 합니다. 현재 우리 시에는 크게 두 경향이 공존하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김선우, 나희덕, 문태준, 박형준, 손택수 시인 등으로 대표되는 서정?자연?동일성의 미학으로 수렴되는 경향과 김언, 김행숙, 이민하, 황병승, 김민정 시인 등으로 대변되는 문화?문명적 상상력, 실험, 환상, 자의식, 타자성의 미학 등으로 수식되는 경향이 그것입니다. 이런 상반적인 지향성의 공존에 대해 당사자인 시인들은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손택수 : 『장자』의 「천지편(天地篇)」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 마을 노인이 웅덩이에서 손으로 물을 퍼올려 채소밭에 힘들게 물을 주고 있었는데, 자공이 지나가며 용두레라는 기계가 있는데 왜 힘들게 손으로 물을 주시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노인이 기계에는 기심(機心)이 있어 도(道)를 지키기가 어렵다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자신은 용두레를 모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쓰는 마음이 부끄러워서 쓸 수 없다고 했습니다. 저는 우리 시대의 시인들에게서 문명적 조건에 대한 긍정과 부정을 동시에 읽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나누는 것 자체가 의미 없는 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시인은 모두를 끌어안고 나아가는 존재이고, 자공 쪽도 노인 쪽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시인은 자공과 노인의 분열을 기록하는 제3의 눈에 가까운 존재가 아닌가 싶어요. 어느 한 단면만을 도려내서 꼬리표를 붙이는 것은 쉬운 일이지만, 드러난 현상의 이면들을 보면 섬세한 차이를 발견할 수 있고, 그것을 토대로 새로운 시적 지평을 열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분법적인 분류가 무의미한 것은 아닌가 생각합니다.


엄경희 : 그렇게 많이 벌어지고, 스펙트럼이 넓어졌다면 거기에는 중요한 장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문학이 개인의 작품이라는 생각을 넘어서서 사회?문화의 전체적인 흐름이나 운동과 연관되는 것이라고 이해할 때, 벌어진 그것이 무엇인가를 밝히는 것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사회 : 분류한 시인들이 모두 나름대로 우리 시대의 균열을 끌어안고 있다고 해도, 그 방식은 분명 다르지 않을까 합니다. 이 차이를 이야기하는 것이 중요하겠지요. 손택수 시인은 독자로서 김행숙 시인이나 김언 시인의 시를 읽으면 어떠신지요? 


손택수 : 저는 문청 초창기에는 시 잡지를 뒤에서부터 읽었습니다. 그리고 현장에 속해 있다고 생각했을 때에는 앞에서부터 읽었습니다. 그때는 고전에 대한 믿음이 강했습니다. 요즘은 중간부터 읽습니다. 그런 과정에서 생각한 것은 시 읽기의 피로감을 느낀다는 것이었습니다. 한 권의 시 잡지를 읽고 좋은 시를 발견하기가 어렵습니다. 그것에 대한 피로감은 어느 쪽이든 공동으로 느낄 수 있습니다.


사회 : 우회적으로 대답해주셨는데요. 손택수 선생님이 시 읽기에서 피로감을 느끼신다면, 조금 전에 김행숙 선생님은 자의식이나 실험에 대해 심리적인 저항감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평자나 독자들은 김행숙 시인의 시에 그런 수식어가 어울린다고 생각하는데, 어떠신지요?


김행숙 : 시를 쓰면서 심각하게 부딪혔던 첫 번째 문제가 1인칭 ‘나’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1인칭의 세계가 대변하는 고백의 감수성과 진정성에 대한 회의가 있었고, 또 지겨움 같은 것이 있었던 거죠. 그것은 인칭이나 화법에 대한 실험의식 이전의 문제였습니다. 말하자면 몸에서, 감각의 차원에서 어떤 거부 반응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단순히 1인칭을 쓰느냐, 쓰지 않느냐의 문제는 아니었지만, 고백의 욕망과 연루되어 있는 1인칭 화자를 통해 발언하고 싶지가 않았습니다. 그렇게 인칭의 문제가 제 고민의 표면에 떠올랐지만, 이제는 1인칭 ‘나’ 바로 그 자체가 제가 부딪혔던 문제의 본질은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근대문학 초창기의 잡지들을 꼼꼼하게 읽어본 적이 있습니다. 1920년대 초기의 동인지들인데요, 그것들은 제게 미학적인 흥미가 아니라 자료더미에 가까운 것으로 다가왔습니다. 이것들을 가지고 근대적인 의미의 문학 자체가 만들어지던 현장을 재구(再構)하여 논문을 썼습니다. 책으로 꾸리면서 ‘문학이란 무엇이었는가?’라는 제목을 붙였는데, 문학이란 초역사적인 것이 아니라 역사적인 것, 다시 말해 본질적인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 것이라는 그 기원의 역사성을 표시하고, 내가 있는 지금 여기에서 느끼는 거리감을 표시한 것이었습니다. 어쨌든 ‘문학적인 것’의 역사적인 기원을 들여다보면서, 문학의 죽음이라는 풍문을 문학의 이동과 탄생이라는 관점에서 사고할 수 있었습니다. 1800년대의 문학 개념과 1920년대의 문학 개념의 차이를 놓고 본다면, 문학에 대한 새로운 관념은 아직은 주어지지 않은 역사 속에나 있는 것 같지만, 어쩌면 우리는 이미 그 역사를 살기 시작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사회 : 공부하면서 획득한 근대문학의 근본 조건에 대한 생각, 역사적인 변화에 대한 성찰과 자각이 김행숙 시인의 시세계에 원동력이 되었다는 뜻으로 해석됩니다. 자의식의 과잉을 싫어한다는 말에서 자의식은 ‘자기’를 의미하는 것일 텐데요, 자기를 탈각시키는 형태로 자기를 드러내는 세계를 지향하는 것이 김행숙 시인의 시적 방법인 듯합니다.


김언 : 저 역시도 공원이 좋고 나무가 좋고 초록이 좋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오히려 멀어 보이는 쪽은 인터넷 게임에 열중하는 프로게이머나 그 게임을 열광적으로 중계하는 프로그램 진행자들인데, 그들의 표정을 보면 이상하게 저하고는 다른 인간들이라는 느낌을 많이 받습니다. 나이가 들어서 그런 건지 아니면 인간의 본질적인 태생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마음의 위안은 자연에서 더 많이 받는 게 사실입니다. 문제는 그렇게 좋다고 생각한 자연을 어떻게 말하느냐에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시인들 개개인이 그 말하는 방식을 저마다 다르게 갖는 것에 대해서는 가타부타 토를 달 생각이 없습니다. 다만 한 가지 짚고 넘어가고 싶은 것은 자연시 혹은 생태시라고 부르는 시들을 앞세워서 논리를 펴나가는 담론이 전적으로 온당한가 하는 점입니다. 뭔고 하니, 가령 ‘저 나무가 이렇게 더운 날에도 땡볕에 서 있는 이유는 제 자식과도 같은 열매를 익히기 위해서이다. 그래서 꾹 참고 견디는 거다’와 같은 문구를 생태담론에 기댄 평자들은 어김없이 생태시의 전범처럼 내세워서 자기들의 논리를 펴나갑니다. 그러나 문제는 내용이 아니고 말하는 방식에 있다고 저는 봅니다.

이 문구가 말하는 것이 어떤 둥근 세계관, 자연이 가지는 모성본능이나 희생본능 같은 것을 일깨우는 내용이라면, 그 내용만으로 하나의 생태시가 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여전히 남습니다. 내용이 아무리 좋더라도 말하는 방식이 폭력적이라면 문제가 있지 않을까요. 어느 누구도 남에게 규정되려고 살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위에서 예로 든 문구는 분명히 어느 누군가를 혹은 무엇인가를 한 치의 의심도 없이 자기 식으로 규정해버리는 말입니다. 그것처럼 심한 폭력이 어디 있겠습니까? 입장을 바꿔놓고 자기를 누군가가 일방적으로 그렇게 규정해버린다면 어떨까요? 때문에 과연 그런 식으로 말하는 것이 자연의 의미를 되새기는 유일한 방식인가, 생태시의 전범인가 하는 점에는 여전히 의구심이 남습니다.

자연시든 생태시든 자신이 보는 시각이나 느낌 등을 한 번쯤 의심해보는 자세가 우선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리고 그런 의심이나 균열의식은 이미 현대시에서 기본적으로 장착되어야 하는 조건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즉, 자기 안에 여러 시선을 두는 방식이라고 할 수 있는데, 막연히 ‘나와 같다면’ 식으로 목소리만 높여 동일성의 미학을 내세우는 시는 한 번쯤 재고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시를 쓰는 시인들을 거부하거나 탓할 생각은 없습니다. 따지고 보면 그것도 저와 다른 입장에서 자신의 시각을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에 충분히 존중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못마땅한 점은 좀더 섬세하게 논리를 펼쳐 나가야 할 평자들이 어떤 지점에선 너무 거칠게 이쪽과 저쪽을 구분하는 건 아닌가 하는 점입니다.

말하는 방식에 상관없이 따뜻한 자연을 이야기하면 무조건 생태시거나 자연시고, 그걸 한 걸음 물러서서 의심해보는 것은 과도한 자의식이라고 매도해버리는 태도는 분명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쪽과 저쪽을 나누더라도 좀더 섬세한 시선이 필요하지 않을까요.〈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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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5-01
어떤 기준

[에세이] 어떤 기준 전석순 “그래도 꽃은 잊지도 않고 제때제때 피네.” 예년보다 개화가 늦어지던 해였다. 어머니는 작년 봄 집 근처 공원에서 찍은 사진을 살펴보며 분명 이번 주쯤에는 피었어야 했다고 중얼거렸다. 이어서 괜히 달력을 들춰 보며 오늘 날짜를 확인했다. 사진 속 날짜와 일치했지만 어째선지 올해는 아직 봉오리조차 불거지지 않았다. 왠지 노크라도 해봐야 하는 게 아닌가 싶었다. 뭐 잊은 거 없냐고. 어디선가 계절을 알려주는 나무는 계절관측목이라고 부른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개나리, 진달래, 매화, 벚꽃 같은. 이 기준에 따르면 아직 봄이 오지 않은 셈이었다. 옆에서 발톱을 깎던 아버지는 아마 까먹은 거 같다고 말하며 히죽였다. 사람도 깜빡깜빡하는데 꽃이라고 다를 게 있겠냐면서. 심드렁하게 이어지는 목소리에 어머니는 아버지를 슬쩍 흘겨봤다. 안 그래도 요새 외출하고 집에 들어올 때 수선 맡긴 바지를 찾아와야 한다거나 식초와 긴장이 떨어졌다는 사실을 더러 잊었던 일이 떠올랐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대수롭지 않게 넘길 수도 있는 일이었지만 어머니는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게 아닌 눈치였다. 몇 번쯤 길을 걷다가도 순간순간 또 뭔갈 잊고 지나쳐 버린 건 없는지 따져 보는 것 같았다. 한참 골몰하다가 겨우 친목회 회비 날짜를 기억해 낼 때도 있었다. 그때부터 사소한 거라도 핸드폰에 따로 메모를 해두고 수시로 빠뜨린 건 없는지 살펴봤다. 요가 교실 수업 신청 날짜나 관리비 납부 마감일과 함께 수리기사 방문 일정까지. 고개를 들다 어머니와 눈이 마주친 아버지는 돌아앉으며 우물댔다. “한 해쯤 그냥 지나가면 뭐 어때서.” 아버지의 생각과는 달리 뉴스에서는 연일 전국 봄꽃 개화 예상 일정을 내보내며 전문가까지 나와 늦어진 원인을 분석했다. 동네 사람들은 환경오염을 들먹이며 사나워진 날씨 탓에 종잡을 수 없는 계절 때문일 거라고 입을 모았다. 꽃도 계절을 헷갈리는 거라고. 개중에는 진짜 꽃이 피지도 않고 봄이 지나가는 게 아닐지 염려하는 이도 많았다. 어머니도 그중 하나였다. 나중에는 꽃을 향해 잊을 것 같으면 알람을 맞춰 두거나 메모하는 습관을 기르라고 조언해 줄 기세였다. 어머니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앞산을 내다보고 매일 지나다니던 화단과 공원을 천천히 돌아봤다. 더러 까치발까지 하고선 주변을 휘둘러보기도 했다. 혹시 진즉 만개한 꽃을 놓친 게 아닌가 싶은 듯했다. 처음에는 조금 서운한 기색이더니 나중에는 아예 울상이 되었다. 어느새 나도 거리를 돌아다니면서 꽃이 필 기미가 보이는지 기웃거렸다. 언뜻 봉오리라도 보이면 사진을 찍어 바로 보내드리려 했지만 좀처럼 찾아볼 수 없었다. 바람까지 서늘하니 날짜와는 상관없이 정말 봄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이러다가 봄을 건너뛰고 곧바로 여름이 되는 게 아닐까,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그즈음 제법 많은 양의 봄비가 내리더니 하루 사이에 기온이 크게 올랐다. 곧 지천으로 사방이 꽃이었다. 지난해 유난히 다닥다닥 모여 있

  • 관리자
  • 2024-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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