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인유(引喩)에 대하여

  • 작성일 2006-08-31
  • 조회수 6,265

 

인유(引喩)에 대하여

―정지용의 「향수」를 중심으로



김윤태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There is nothing new under the sun)”라는 이 유명한 말은 구약성서에 나온다고 한다. 이 말을 문학에 적용시키려 하자, 문득 김기림의 발언이 떠오른다. 그는 「오전의 시론」(조선일보, 1935. 4.20)에서 “실로 벌써 말해질 수 있는 모든 사상과 논의와 의견이 거진 先人들에 의하여 말해졌다. 그들은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것을 별로이 남겨 두지 않고 그들의 머리에 떠오르는 뭇 일을 인색함이 없이 토로해 버렸다. 남아 있는 가능한 최대의 일은 선인이 말한 내용을 다만 다른 방법으로 설명하는 정도라는 것을, 더군다나 자신의 작품에서 발견하는 때 우리들의 자존심은 여지없이 쓰러진다”1)고 하면서, 시에서 내용이나 사상보다 기술(技術)의 문제를 강조하였다. 그렇다고 김기림의 저 주장을 액면대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는 것이지만, 문학에서 후속 세대들이 앞선 세대의 작품에서 배워 오는 사례를 우리는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다.  

시에서는 이런 경우에 ‘인유(引喩)’라는 기법을 흔히 거론하곤 한다. 사전에서 ‘인유’란 말의 의미는 “다른 예를 끌어다 비유함”(『표준국어대사전』)이다. 즉 인유는 인용(引用)과 비유(比喩)가 적절하게 결합된 것으로 이해해도 큰 무리가 없을 것이다. 오늘날에는 인유의 개념은 인용되는 텍스트와 인용하는 텍스트 간의 관계, 즉 ‘상호텍스트성’(intertextuality)의 차원에서 이해되기도 한다. 요즘 정치적으로 논란이 되고 있는 ‘표절’의 문제와는 차원이 다른 개념인 것이다. 인유의 경우는 대체로 그 가치가 긍정되는 사례가 더 많다. 왜냐하면 인유는 “선행 작품과의 대조를 통해서 작품에 밀도를 더해주고 고도의 암시성을 부여”2)하기 때문이다.

인유의 유명한 사례로는, 이미 너무 널리 알려져서 식상한 감마저 없지 않지만, 김상용의 시 「남으로 창을 내겠소」가 있다. 그 작품의 마지막 연인 “왜 사냐건 / 웃지요.”라는 구절이 이백(李白)의 한시 「山中問答」에서 나온 것이란 사실은 다 아는 바이다. 이백은 ‘問余何事棲碧山 笑而不答心自閑’이라고 했는데, 이를 굳이 직역하자면 “묻노니, 그대는 왜 푸른 산에 사느뇨. 웃을 뿐, 대답하지 않으니 마음이 절로 한가롭네.”라는 정도가 될 것이다. 이백에게서 14字의 한자가 김상용에 와서 7字의 한글로 간결하게 압축된 것도 눈여겨볼 부분이지만, 두 작품에서 풍겨나는 탈속에의 지향이 일견 도가풍의 사상을 공유한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정지용이 한학적 교양이 풍부한 시인이란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거니와, 그중에서도 특히 『詩經을 좋아하였으며 거기에 나오는 시들을 줄줄 외울 정도였다고 한다.3) 그의 시 「長壽山 1」의 첫머리에 나오는 “벌목정정(伐木丁丁)”이란 말은 『시경에서 비롯된다는 것도 이미 많은 학자들이 지적한 바이다. 『시경의 ‘小雅’편에는 “伐木丁丁 鳥鳴?? 出自幽谷 遷于喬木”(나무를 베기를 丁丁히 하거늘 새가 울기를 ??히 하도다. 깊은 골짜기에서 나와 높은 나무로 올라가도다.4))으로 시작하는 꽤 긴 시가 있다. 여기서 ‘정정’은 나무 찍는 소리이고, ‘앵앵’은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를 형용하는 의성어이다. 이 시는 원래 친구들을 초대할 때의 악가(樂歌)로서5), 명랑하고 경쾌한 흥취를 드러내는 작품이다. 그런데 정지용의 「장수산 1」에서 ‘벌목정정’은 “다람쥐도 좃지 않고 묏새도 울지 않어 깊은 산 고요가 차라리 뼈를 저리우는” 정황을 역설적으로 압축하고 있다. 이는 인용되는 원(原)텍스트에서 ‘벌목정정’이라는 시어가 가지는 본래적 의미를 넘어서서, 그 시어를 전혀 다른 시적 정황 속으로 끌어들여와 적용시킨 아주 성공적인 사례에 해당한다고 하겠다. 쩡쩡 메아리를 울리며 나무 베어내는 소리가 오히려 한겨울밤 산의 고요와 인간의 인고(忍苦)를 증폭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인유는 단순한 원전의 재탕이 아니라 작품의 밀도를 높이는 ‘비판적 인유’6)일 때 더욱 빛을 발하는 것이다.      

정지용의 「향수」도 인유의 사례는 제법 풍성하다. 윤해연이 「향수」의 제 1연에 그려진 고향의 풍경 묘사를 두보(杜甫)의 「江村」이라는 작품을 통해 그 유사성을 읽어내는 것이라든가, 또 제 2연에서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란 구절을 구양수(歐陽修)의 「秋聲賦」로부터 영향 받은 것으로 파악한다든가7) 하는 것은 단순한 영향 관계로는 볼 수 있을지언정 ‘고도의 암시성을 내포하는’ 인유의 차원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듯하다. 하지만 마지막 연은 이 같은 인유의 측면에서 살펴볼 여지가 다분히 있다고 생각한다.8) 특히 그 첫 행의 “하늘에는 석근(혹은 성근) 별”이란 구절에서 판본에 따라 달리 표기된 ‘석근’ 혹은 ‘성근’의 의미를 놓고 많은 학자들 간에 논란을 빚고 있는 정황을 고려할 때, 인유의 중요성을 새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석근 별’인가 ‘성근 별’인가에 대한 논란은 「향수」가 최초 발표된 《조선지광》(65호, 1927. 3)과 첫시집인 『정지용시집』(시문학사, 1935)에서 ‘석근’이라고 표기되었던 것이 『지용시선』(을유문화사, 1946)에 다시 실리면서 ‘성근’으로 바뀐 데서 비롯되었다. 이에 대한 여러 학자들의 견해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① 먼저 ‘석근 별’이라고 보는 주장

  1) 최동호(『정지용 사전』, 고려대학교 출판부, 2003, 179면 및 401면) : “여러 모양의 별들이 섞여 빛나는 모습”이라고 본다.

  2) 민병기(「지용 시의 변형 시어와 묘사」, 《한국시학연구 6호》, 한국시학회, 2002. 5, 69~70면) : “밤하늘에 크고 작은 별들이 섞인 모습”이라는 것. ‘석근’은 ‘석긴’의 변형이고, ‘석긴’은 ‘섞인’의 연철이라는 주장이다.

  3) 맹문재(「「향수」의 내용과 의미」, 최동호 외, 『다시 읽는 정지용 시』, 월인, 2003, 50~51면) : 다양한 견해들을 소개하고 있으면서도 위 민병기의 견해가 가장 논리적이라고 평가하는 것으로 보아, ‘석근 별’을 지지하는 견해로 보인다.


  ② 다음으로 ‘성근 별’이라고 보는 주장

  1) 문덕수(『현대시의 해석과 감상』, 이우출판사, 1982, 109면) : ‘성근’ 혹은 ‘성긴’으로 파악한다.

  2) 유종호 : 글마다 다소 차이를 보이는데, 『문학의 즐거움』(민음사, 1995, 127면)에서는‘성긴’인지 ‘섞인’인지 분명치 않다고 보고 있다. 전자라면 사이가 떨어져 있다[疎]는 뜻이고 후자라면 크기나 빛이 제가끔 다른 별이란 뜻이 될 것이라고 한다. 반면 『시란 무엇인가』(민음사, 1995, 270면)에서는 ‘석근 별’은 ‘성긴 별’로 읽는 것이 옳을 듯하다는 견해를 내비친다. 최근에도 「시인의 언어 구사―정지용의 경우」라는 글에서는, ‘석근’은 한동안 추정과 논란이 많았지만 두시언해(杜詩諺解)에도 나오고 ‘성긴’이란 뜻임은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3) 사에구사 도시카스(三枝壽勝, 「정지용 시 「향수」에 나타난 낱말 고찰」, 『한국문학연구』, 베틀북, 2000, 183면) : “사이가 배지 아니하고 뜬”이란 의미로 해석한다.

  4) 이숭원(『원본 정지용 시집』, 깊은샘, 2003, 59면, 각주⑦) : 중세국어에 ‘섯긔다’가 ‘疎(성기다/성글다)’의 뜻으로 사용된 예를 볼 때 ‘섞여 있는’의 뜻보다는 ‘듬성듬성한’의 뜻으로 보는 것이 문맥에 맞을 것 같다고 밝히고 있다.       

  5) 권영민(『정지용 시 126편 다시 읽기』, 민음사, 2004, 32면) : ‘석근’을 ‘성긴’의 오식으로 볼 수 있다. 기본형은 ‘성기다’이고, 충청도 방언에 ‘성글다’가 있다. “사이가 배지 아니하고 뜨다”라는 뜻이라는 주장이다.


  ③ 어느 한쪽으로 확정하지 않고 두 가지 의미를 다 인정하는 견해 

  1) 김학동(『정지용 연구』, 민음사, 1997, 295면) : ‘듬성듬성한’ 또는 ‘뒤섞여 있는’으로 보고 있다.

  2) 김재홍(『한국 현대시 시어사전』, 고려대학교 출판부, 1997, 618면) : ‘하늘에 크고 작은 여러 가지 별들이 섞여 얼크러져 있는 모습’이라고 해석한다. 해방 후 발행된 『지용시선』에는 ‘드문드문’이라는 뜻으로 ‘성근별’로 표기돼 있다고 덧붙이고도 있다.

  3) 이희중(『현대시의 방법 연구』, 월인, 2001, 197면) : ‘성긴 별’이거나 ‘섞은 별’이거나 꼭 이 구절에서 어느 하나이어야 하는 조건을 찾을 수 없다는 주장. ‘성긴 별’은 달이 밝거나 밤이 깊지 않아 별이 많지 않은 하늘을 표현한 말이고, ‘섞은 별’은 반대로 크기와 밝기가 다른 수많은 별들이 있는 하늘을 표현한 말이어서 서로 정반대로 풀이되지만, 시의 문면은 어느 한쪽을 제약하지도 또 제약받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4) 이남호(『정지용 시집』, 열린책들, 2004, 183면) : ‘석그다’는 ‘성글다’, ‘석글다’(빽빽하다), ‘섞이다’ 등으로 해석할 수 있지만, 정확한 의미는 알 수 없다고 주석을 달고 있다.


  ④ 기타 견해

  - 박경수(『한국 현대시의 정체성 탐구』, 국학자료원, 2000, 289면) : ‘석근’이 ‘석음(夕陰)’, 즉 “저녁의 어스레한 때”를 의미하므로, ‘석근 별’은 ‘저녁 별’을 가리킨다고 본다.

  

이상에서 살펴본 다양한 견해들이 독자들에게 도리어 혼란을 준다는 느낌이 들기도 하겠지만 그보다는 이 시의 의미를 풍부하게 하는 데 기여하는 바가 더 크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그래서 필자도 인유의 측면에서 이 구절에 대한 나름의 소회를 밝혀보고자 한다.

그런데 그보다 먼저 지적할 문제가 있다. 원본비평(textual criticism)이라는 관점에서 정지용의 시집(텍스트)들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정지용의 시 텍스트들에서 어느 것을 가장 권위 있는 텍스트로 보느냐 하는 문제이다. 원본비평의 이론에 따르면, 통상적으로 작가의 살아생전 마지막 텍스트를 가장 권위 있는 텍스트로 간주한다. 이를테면 「향수」의 경우 고려할 만한 텍스트는 앞에서 거론했던 세 가지 판본이다. 「향수」가 최초로 발표되었던 《조선지광》(1927) 수록본, 첫 시집 『정지용시집』(1935)의 수록본, 그리고 해방 후에 낸 선집 『지용시선』(1946) 수록본이 그것들이다. 그것들에는 간행 순서대로 각각 ‘석근’⇒‘석근’⇒‘성근’으로 표기되어 있는데, 이 과정에서 시인 자신이 ‘석근’을 오자(誤字)라고 생각하여 직접 ‘성근'으로 수정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시집을 거듭 낼 때 발생할 수 있는 시어의 수정이나 개작과정에서 시인 자신의 개입은 자연스러운 일일 뿐만 아니라 거기에는 최종적인 텍스트를 향한 시인의 의지나 열망 또한 포함되지 않을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한 연구에 의하면, 처음 『지용시선』 편집에 관여했던 이들은 정지용의 제자 격인 박두진?조지훈 등이었으나 정지용이 그들의 것을 폐기하고 손수 작품을 골라 재편집했다고 한다.9) 이러한 점들을 감안할 때, ‘성근’으로 텍스트의 어휘를 확정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또 한편 필자가 ‘성근’으로 보고자 하는 근거에는 정지용의 한학적 교양에 대한 신뢰감이 적지 않게 있다. 중국 조선족 출신의 학자인 윤해연은 ‘서리 까마귀’란 어휘에 대해 고찰하면서, 한무제(漢武帝)의 「秋風辭」와 위무제(魏武帝) 조조(曹操)의 「短歌行」을 인용하고 있음이 주목된다. 그는 두 작품에서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새가 가을 하늘을 날아가는 소슬한 풍경(‘雁南飛’ / ‘烏鵲南飛’)과 인생무상의 태도를 들어, 정지용의 「향수」에서 ‘서리 까마귀’라는 시어의 고전적인 연원을 해명하고 있다.10) 그러나 이러한 영향관계에 대한 추론은 ‘서리 까마귀’라는 시어의 본래적 의미를 밝히는 데는 그다지 기여하는 것 같지 않다.11)

오히려 이러한 추론에서 필자가 착안하는 부분은 ‘석근/성근’에 대한 인유의 근거를 추적하는 일이다. 윤해연이 인용하였던 조조의 시구에서 그 단초는 이미 발견되었다. 그러면 조조의 「短歌行」가운데 그 부분을 살펴보자.


對酒當歌  人生幾何    술잔을 마주하고 노래하노니. 인생이 길어야 그 얼마더냐.

譬如朝露  去日苦多    아침이슬과 같나니. 지난날 고통이 많았도다.

慨當以慷  憂思難忘    슬퍼 탄식하여도, 근심을 잊을 길 없네.

何以解憂  唯有杜康    어떻게 시름을 떨쳐 버릴까. 오직 술뿐이로다.

                 (중략)

月明星稀  烏鵲南飛    달은 밝고 별은 드문데, 까막까치 남으로 날아가네.

繞樹三?  何枝可依    나무를 세 번이나 빙빙 맴돈들, 어느 가지에 기댈 수 있을꼬.


원래 이 시는 208년 그 유명한 적벽대전(赤壁大戰)을 앞둔 조조가 진중의 노고를 치하하기 위해 선상에서 연회를 베풀어 달빛 밝은 양자강의 밤경치를 즐기고 있었는데 새들이 울며 남쪽으로 날아가는 것을 보고 그가 뱃전에 서서 취중에 지어 부른 즉흥시라고 한다. 위의 인용에서 밑줄 친 부분에 주목할 일이다. 더구나 이 구절은 중국 북송 때의 시인 소동파(蘇東坡)의 「적벽부」(赤壁賦)에도 인용되어 더욱 유명해졌다. 이는 조조 자신이 밝은 ‘달’처럼 빛나니 유비나 손권 같은 여러 군웅(‘별’)들이 사라진다는 뜻으로 노래한 것이다. 얼핏 보면 이 시는 조조의 인간적 비애와 정감이 풍부한 것처럼 보이나, 그의 정치적 웅지를 내심 드러낸 것이라는 평가가 일반적이다. 그러나 천하를 호령하던 조조에게조차 인생은 한낱 아침이슬 방울 같은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이며, 그러한 인생이 의지할 곳이 없음을 개탄하는 이 시의 기본 정조는 인생무상이라 하겠다.12)

여기서 ‘성희’는 글자 그대로 ‘별이 드물다, 별이 성기다’의 뜻이다. 필자는 ?향수?에서 ‘석근(혹은 성근) 별’이 이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추정하는 것은 그다지 무리한 일이 아니라고 본다. 또  ‘까마귀와 까치’를 의미하는 ‘오작’과 「향수」에서의 ‘서리 까마귀’ 역시 인유의 관계가 성립하는 것으로 봐도 무방할 것이다. 한문에 조예가 깊었던 정지용이 이 유명한 시문들(「단가행」과 「적벽부」)을 몰랐을 리 없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월명성희 오작남비’라는 구절 속에 담긴 정치적?역사적 함의는 제거된 채, 「향수」에서는 정서적?서경적 측면에서의 인유로 남겨졌다고 본다.    

 

 

 

주)

1) 김기림, 『김기림 전집ㆍ2』, 심설당, 1988, 156면.

2) 유종호, 『시란 무엇인가』, 민음사, 1995, 24면.

3) 윤해연, 「정지용의 시와 한문학의 관련양상 연구」, 인하대 대학원 박사논문, 2001, 8면. 이 논문에 의하면, 정지용이 1947년 서울대에 출강하여 『시경』집주를 강의하였다고 한다. 

4) 성백효, 『詩經集傳ㆍ上』, 전통문화연구회, 1993, 365~366면.

5) 위의 책, 366면. 

6) 유종호, 앞의 책, 133면 참조. 

7) 윤해연, 앞의 글, 38~42면.

8) ‘서리 까마귀’라는 말의 뜻에 대해서도 논란이 분분하다. 이백(李白)이나 백거이(白居易)의 시에 나오는 ‘霜烏’라는 말에서 그 유래를 찾는 견해(이 경우 인유의 사례로 볼 수 있을 것이다 / 윤해연)로부터, ‘무리를 이룬 떼까마귀’로 보는 견해(김재홍, 사에구사), ‘갈가마귀’로서 ‘반포지효(反哺之孝)’라는 고사(故事)의 주인공으로 보는 견해(윤해연), ‘서리병아리’의 유추로 보는 견해(민병기, 유종호) 등 다양한 견해가 제기되고 있다. 이중 마지막 견해가 현재 가장 유력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9) 김학동, 『정지용 연구』, 민음사, 1997, 251면. 

10) 윤해연, 앞의 글, 44면 참조. 

11) 주 8) 참조. 

12) 주 8) 참조.



추천 콘텐츠

소년, 지구 종말의 날까지 분열하라

소년, 지구 종말의 날까지 분열하라 김지선 1 지구처럼 돌아가는 월세, 지구처럼 냄새나는 음식물 쓰레기, 지구처럼 막히는 싱크대, 곧 멸망할 작은 행성을 뒤로 하고 우주를 향해 눈꺼풀을 밟고 고래는 푸른 등을 돌린다 푸른등돌고래는 갈 곳 없는 포유류가 되어 강물에 몸을 담근다 위험한 가정에 등을 돌리지 못하는 고래 한 마리 브래지어에 너를 매단다 언젠가는 멸종하겠지만 고래는 그런 것이고 너는 흐를 것이다 ― 「고래를 잡는 아이를 위한 안내서」 중 세상은 결국 파국을 향해 간다. 당연하게 멸망은 예정되어 있고, 우리는 흐를 것이다. 정규와 비정규, 주류와 비주류, 일류와 삼류가 뚜렷하게 구분된 세상 속에서 혁명은 무력하고 광장은 추억이 되었다. 우리는 가면을 쓰고, 환상을 내면화하며 지겨운 시간을 견딘다. 종말을 향한 불안한 예감, 불길한 전조 속에서 우리에게 가능한 일이란 지루하게 화석화되고 무기력하게 시간을 죽이는 것뿐. 그밖에 선택이란 없어 보인다. 서효인 시의 화자들은 대부분 그렇게 무기력하다. 세계의 불합리와 부조리를 체득한 자의 무미건조한 발성이 시집을 가득 채운다. 찢기고 구워져 마요네즈에 찍힌 오징어처럼 아스팔트에 구워져 바퀴에 깔리는 환경미화원의 최후(「목격자」), 구운 토스트가 된 채 이틀간 방치된 할망구의 죽음(「냄새나는 사람」)을 읊조리는 목소리는 연민조차 거세되어 냉소를 자아낸다. 냉소란 본래 자조를 동반하기 마련이다. 시에서 삼류 인생들이 사물로 환치되는 것은 자본의 부조리한 체제가 뼛속까지 내면화된 수동성에 대한 적절한 은유다. 그렇지만 서효인 시를 읽는 즐거움은 이런 날카로운 비판적 사회학을 발견하는 것에 한정되지 않는다. 그의 어떤 시들은 의외의 전개로 상황을 밀고 나가는 미성숙한 도발을 그려낸다. 시를 읽어 가다 번쩍 눈이 뜨이는 순간은 바로 그런 똘끼를 발견하게 됐을 때다. 그것은 지루한 시간을 이탈시키는 경쾌한 해방감이며 카타르시스를 맛보게 한다. 서효인의 시가 전하는 즐거움은 시집의 정교한 배열을 주시할 때 더욱 강렬해진다. 시집은 , , , 의 4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장에 따라 아이에서 성인으로 변화하는 시적 페르소나는 그의 시를 성장문학의 하나로 읽게 만든다. 상처의 시간을 딛고 견고해지며 어른으로 자라나는 통과의례는 성장문학이 거치는 당연한 수순이다. 재미있는 것은 그의 시선이 성장문학에 대한 여타의 방식을 뒤집는다는 것이다. 시에서 어설픈 미성숙의 시간이야말로 존재감이 최고조로 고양된 순간으로 격상된다. 2장의 시선을 확보한 뒤에 다시 읽는 1장의 반항적 소년기는 청년이 되어 버린 시적 자아가 취해야 할 행동 지침을 제시하지 않는가. 3장의 성인이 된 아이의 무기력을 거쳐, 4장 연작은 성인이 된 후에도 우리에게 남은 미성숙의 페르소나를 다시 한 번 이끌어낸다. 이런 서사적 배치는 강렬한 메시지를 내재하고 있는 건 아닐까? 혹 우리가 감지하는 것 이상으로 서효인의 시는 불온한 전복의 수사학으로 무장된 건 아닐까? 막연한 의혹을 해결하기 위해 그의 시에 천천히

  • wikisoft
  • 2010-07-30
시 쓰고 자빠졌네

시 쓰고 자빠졌네. 이런 말 자주 들었다. 누군가에게 자주 두들겨 맞았고, 누군가에게 가끔 린치를 가하던 시절이었다. 이웃 여고 문예부 아이들이 어쩐지 예쁠 거 같아서 문예부실을 전전했다. 그리고 백일장에 나가곤 했다. 물론 남달리 예쁜 아이는 없었지만, 어쨌든 17세 남녀가 교복을 입은 채로 노래방에서 듀스나 룰라, 혹은 투투의 노래를 함께 부르는 모습은 남달리 아름다웠다. 되도록 빨리 노래방으로 가기 위해서 우리는 사바사바, 시를 썼다. 빨리 써야 했다. 시는 최초의 노래였으므로. 엉덩이를 두드리듯, 천사를 찾아. 발라드를 부르며 감정 과잉에 빠지는 철수에게 영희는 이렇게 말한다. 시 쓰냐? 그때 우리는 원고지를 눕히던 누런 잔디에서, 어두운 노래방에서, 혹은 밀도가 높은 교실에서 어떤 감정 속에 놓여 있었을까. 난 누군지 또 여기는 어딘지 아무도 알려 주지 않았기에 우리는 분노에 가득 차 교복을 줄이고 담배를 숨기고 몰래 술을 마시기도 했다. 수채화 대신에 야간 자율 학습 감독을 주로 하던 미술 선생은 또 말했다. 또, 또 시 쓰냐? 시화전 제출 작품에서 피 흘리는 고등어를 그려 놓고 ?어느 고딩의 죽음?이라 제목을 붙이며 나는 전위를 담당한 듯 당당했다. 부끄러움이 없는 남자였다. 미술 선생에게 욕을 먹을 때에도, 맞을 때에도 나는 부끄러움을 몰랐다. 대한민국 학교 다 족구하라 그래. 시 쓰고 자빠졌다, 정말. 정말이란 말에 대해 오래 생각해 본다. 오래 생각하는 버릇은 이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다. 최대한 짧고 단순하게 사고한 것으로 보이는 일들이 생각보다 빠르고 무식하게 벌어지고 있다. 정말? 시집을 묶어내던 중에 바위에서 사람이 떨어져 죽었다. 그 부엉이는 정말 새였을까. 도심에서 사람이 불에 타 죽었다. 그 망루는 정말 구름이었을까. 모두 정말이냐고 정색하며 물어 볼 만한 일들이었다. 분노가 치민다. 지금 나와 싸우자는 건가? 그런데 싸우는 법을 배운 적이 없다. 아니다. 싸움은 끝났다고, 이제 싸움이 아닌 경쟁의 시대라고 배웠다. 나는 그저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잘 모르겠어서, 화가 났다. 사실 싸움보다 훨씬 경쟁이 무서웠다. 사건은 이미지가 되는 순간 거짓말이 된다. 이 모든 게 차라리 멋진 거짓말이었으면 좋겠지만, 이것은 너무나 끔찍한 거짓말. 난삽한 이미지. 이미지가 아닌 이미지. 그러므로 차라리 보이는 게 진실이라고 믿어 본다. 이 지긋지긋하고 끔찍한 진실이 시의 배후가 되어 시에 맘껏 개입해도 나는 좋다. 시가 그렇게 하지 못하겠다면 기꺼이 네가 그렇게 하라. 가져간 나의 반쪽! 때문인가. 이제 둘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그래, 리얼리스트 되자. 모던한 리얼리스트가 되자. 모더니스트가 되자. 리얼한 모더니스트가 되자. 장난하느냐고? 그렇다면, 불길한 장나니스트라고 해 두지 뭐. 꼴에 시랍시고 자빠졌네. 이런 말 자주 들었다. 하지만 누가 뭐래도 나는 시가 좋다. 그리고 시가 밉다. 사랑하고 미워하며 안절부절못하고 있다. 처음 증상을 보일 때는 이렇게 데뷔를 하고 시를 쓰리라 짐작하지 못했

  • wikisoft
  • 2010-07-15
일본 소설, 한국 시

일본 소설, 한국 시 한성례 한국에서 일본소설의 베스트셀러 현상 한류바람이 뜨겁게 일본 열도를 달구기 시작한 2000년 이후부터 한국에서 일본소설은 폭발적인 인기를 구가해왔다. 일본보다 한국에서 더 인기가 많은 작가가 나올 정도로 한국은 일본소설 홍수 시대이다. 이 같은 현상에 대해 일본인들은 물론이고 일본소설가들조차도 왜 일본소설이 한국에서 그렇게나 많이 팔리는지 몹시 궁금해 한다. 이에 대한 일본 신문의 인터뷰나 원고의뢰가 있을 적마다 나는 현재 한국에서의 한국시에 비유해서 설명을 한다. 이전에도 한국에서 일본소설은 종종 많이 팔렸다. 70년대 중반에 첫 출간된 무라카미 류(村上龍)의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는 해적판이 끊임없이 이어졌고 출판금지서임에도 안 읽은 사람이 없을 만큼, 문학이나 예술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의 필독서이고 바이블이었다. 1999년 정식으로 저작권 계약을 맺어 커버에 비닐을 씌워 19세 미만 구독불가로서 출간된 후에도 쇄를 거듭하며 읽히는 소설이다. 또한 1989년 원제인 『노르웨이의 숲』이 『상실의 시대』란 이름으로 출간된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의 소설은 당시 크게 각광을 받았고 지금도 계속해서 읽힌다. 당시 한국은 민주화 쟁취와 맞물려 자의식이 집단에서 개인으로 향하던 시기였다. 민주주의가 아직 성숙하지 못한 상태여서 사회, 정치적으로 안정되지 못했고, 급변하는 사회적 환경 속에서 개인이 느끼는 소외감, 고독, 상실감 등이 당시 한국 젊은이들이 처한 현실과 겹쳐지면서 이 소설에 크게 공감했다. 더욱이 하루키의 가독성 높은 문장은 금방 젊은이들을 사로잡았다. 한편으로 문학의 구도자 같은 마루야마 겐지(丸山健二)의 소설도 여러 편 번역 소개되었는데, 이는 주로 문학 창작자들이 마니아였다. 하지만 일본소설의 인기는 단편적일 뿐 전반적인 경향은 아니었다. 오히려 서구소설이 중심을 이뤘다.그러던 것이 에쿠니 가오리, 요시모토 바나나, 쓰지 히토나리, 히라노 게이치로, 요시다 슈이치 등 젊은 작가와 미야베 미유키, 스즈키 코지, 히가시노 게이고 등의 미스터리 소설과 나오키 상을 비롯한 여러 문학상 수상작이 2000년 이후에 대거 한국에 번역 소개되었고, 대형서점에는 코너가 별도로 마련될 만큼 일본소설은 인기를 끌고 있다. 왜 일본 소설을 좋아하는 것일까 무엇보다도 일본소설은 재미있다. 독자를 의식하고 소설을 썼다는 게 금방 느껴진다. 말하자면 자신의 상품을 사줄 소비자의 위치에서 창작을 한다는 것이다. 젊은이들은 일본소설을 읽으면서 비현실적인 주인공을 통해 현실에서 실제로 행동에 옮기지 못하는 자신의 일탈을 꿈꾸고, 대리만족을 느낀다. 일본소설의 주인공 젊은이들은 특별한 목표도 없고, 무기력하며 수동적이고, 나약하기 짝이 없다. 그들은 시대의 흐름과 기존 질서에 따르지도 않고, 세상을 약간은 냉소적이고 관조적인 눈으로 바라보면서, 보편적인 부와 명예, 사회적인 안정 등과는 거리가 멀다. 이에 독특한 상상력과 가독성 높은 문장도 한 몫 한다. 최근 일본과 한국에서 밀리언셀러 판매 기록을 갱신하는 무

  • wikisoft
  • 2010-05-28

댓글 남기기

로그인후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을 남겨 주세요!

댓글남기기 작성 가이드

  • 타인에게 불쾌감을 주는 욕설, 비방 등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주제와 관련 없거나 부적절한 홍보 내용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기타 운영 정책에 어긋나는 내용이 포함될 경우, 사전 고지 없이 노출 제한될 수 있습니다.
0 / 1500

댓글0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