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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국동울음상점 외 3편

  • 작성일 2007-12-31
  • 조회수 3,239

 

장이지

 

 

 안국동울음상점

 천사

 십칠야 날씨, 포근함

 너구리 저택의 눈 내리는 밤



안국동울음상점




나선형의 밤이 떨어지는 안국동 길모퉁이, 밤 푸른 모퉁이가 차원의 이음매를 풀어주면, 숨 쉬는 집들, 비칠대는 길을 지나 안국동울음상점에 가리.

고양이 군은 바닐라 향이 나는 눈물차를 끓이고 나는 내 울음의 고갈에 대해 이야기할 것이다. 진열장에 터키석처럼 놓여있는 울음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고양이 군은 ‘혼돈의 과일들’이니 ‘그믐밤의 취기’니 ‘진흙 속의 욥’이니 ‘거위 아리아’니 ‘뒤집힌 함지(咸池)’니 하는 울음의 이름들을 가르쳐주겠지.

나그네가 자신의 그림자에게 말하듯 내가 고양이 군에게 무언가 촉촉한 음악을 주문하면 스탄 겟츠의 「이파네마에서 온 소녀」가 바다 밑처럼 깔리리. 나는 내 안의 함지에서 울음을 길어다주는, 이 세상에서 내 울음을 혼자만 들어주는 소녀 같은 것을 상상하며 그 아이가 아픈 것은 아닌지 어떤지 걱정을 하게 되리.

밤이 깊도록 나는 눈물차를 이백(李白)처럼 마시리. 내가 등신대의 눈물방울이 되는 철없는 망상에 빠져.

그러나 새벽이 오기 전에는 돌아가야 하리. 내일의 일용할 울음을 걱정하며 내가 일어서려 하면, 고양이 군은 ‘엇갈리는 유성들과도 같은 사랑’을 짐짓 건넬지도 모르리. 손에 가만히 쥐고 있으면 론도 형식의 회상이 은은히 퍼지는.

지갑은 텅 비었지만 울음을 손에 쥐고 고양이 군에게 뒷모습을 들키면서, 보석비가 내리는 차원의 문을 거슬러 감동 없는 거리로 돌아와야겠지. 비가 내린다면 맞아야하리. 비의 벽 저편 어렴풋 내 울음을 듣는 내 귀가 아닌 내 귀의 허상을 응시하면서, 비가 내린다면 역시 맞아야하리.




천사




청록색 돌의 길 위로

장난기 많은 천사는 물 폭탄을 터뜨립니다.

그것은 11월의 수정우(水晶雨)가 되어서는

가로수 노란 상념 몇 잎에 가 맺히고,

그것은 또 카페 창유리에 가 이마를 대고

허브 향기 떠도는 실내를 구경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또 세상에서 울음이 가장 많은

실연한 여자의 방에도 내려서는

낡은 책상을 적시고 제비꽃 꽃잎 같은 편지들을 적시고,

소파에는 물웅덩이를 만들어 놓고

침대보를 축축하게 하고

여자의 울음 위로도 흘러내렸으므로,

슬픔은 씻겨가 치자색 실내등 얼비치는 물기로 남는 것입니다.


“무슨 근심이 있나요?”

“무슨 번뇌가 또 있는가요?”

테디 곰 인형의 눈은 말없이 뿌예지고…….


울음 여왕이 잠든 밤,

졸음에 겨운 천사는 여자의 방에 찾아와

울음 섞인 물기를 훔치고

훈의초(薰衣草) 향초에 불을 밝혔습니다.

천사는 여자의 잠옷에 향기로 어리다가

대형 전광판이 눈부시게 빛나는 야경 위를 날아다니는

여자의 꿈에 나타나서는

여자에게 한 아름 유성 꽃다발을 안겨주었지요.

부드러운 날개를 지닌 천사는

훈의초 향기가 어린 하늘을 여자 곁에서 내내 날아다녔습니다.

여자의 착한 새 애인이 되어서는.




십칠야 날씨, 포근함




열이렛날 밤 달빛이 야위었다.

자다 깬 텁텁한 입에

보름날 먹다 남은 부럼 털어 넣고,

달빛에 홀려

창가 의자에 엉덩일 내려놓는다.

죽은 나무 위에서 고양이 그리자벨라가

솔로로 「메모리」를 열창하는 밤,

올해는 소원도 빌지 못했구나.


호주머니에 신화를 넣고 다니던 시절,

달님은 동요 속 쟁반,

검은 설탕물 걸쭉하게 흐르는 호떡,

개구쟁이들의 축구공이었다.

신화를 잃은 사람들이 꿈을 꾼다.

가족의 건강, 사업의 번창,

사랑의 기원, 집 장만, 복권 당첨.


대학 입시 때인가 처음 정월 보름달에 빌었다.

고향집 앙상한 목련 나무 꼭대기, 대머리 달은

내 인생의 편집자처럼 앉아 있었다.

내 생의 스토리를 다 안다는 듯.

타관땅 서울에서의 정월 대보름달은

한강 밑으로 잠긴 은항아리로 내게 있다.

짝사랑에게 전화 걸고 돌아오는 길

깊이 가라앉는 달을 보았다.

은항아리 안을 휘도는 물의 발레!


열이렛날 밤 달빛에서 호두 맛이 난다.

늦은 더위라도 팔아볼까, 허물없는 달에게.

나는 아직 꿈을 꾸지만,

달이 무슨 소원을 이루어주는 것은 아니리.

달은 아버지가 아니겠는가.

고3 때 자율학습 끝나고 늦은 귀갓길

무거운 가방 들어주러 나오시던.

짝사랑에 가슴 조이던 대학 시절

술잔 건네며 격려해 주시던.

달은 그렇게 아버지처럼 늘 곁에서 걸었다.


달빛에 기대어 잠시 졸아도 좋으리.

열이렛날 밤 달빛의 품이 벌써 봄 같다.

그리자벨라가 하늘 사다리를 타고

행복한 기억 속으로 마실 나가던

십칠야 날씨, 포근함.




너구리 저택의 눈 내리는 밤




너구리 가죽을 뒤집어쓴 12월 바람, 눈은 내리는데,

푹푹 쌓이는데, 너구리 가죽을 뒤집어쓴 할아버지 혼신,

너구리 가죽을 뒤집어쓴 아버지, 수북한 털가죽에

손을 찔러 넣고 체념하지 못한 꿈을 노래하는데,

막걸리 한 잔씩을 걸치고 날생선을 뜯으며.

세상은 머리까지 눈 이불을 뒤집어쓰고 잠꼬대를 하는데,

너구리 가죽을 뒤집어쓴 고양이, 강아지, 수한무,

개그맨, 회사원, 꽃집 아가씨, 약국 아저씨, 농부,

너구리 가죽을 뒤집어쓴 두꺼비, 탐정, 손자놈, 전경 아우들,

썩은 굴참나무 밑 너구리 저택은 흥청흥청.

눈보라가 빗금을 그으며 떨어지는 12월,

너구리 가죽 가득 눈꽃들을 받아주겠다고

손녀딸의 잠을 툴툴 털어 주고 계신 너구리 가죽을 뒤집어쓴

선생님, 우와, 하고 입을 쫙 벌린 너구리 가죽을 뒤집어쓴

조직 폭력배, 동승, 소설가 김씨, 사실은 순진했던

너구리 가죽을 뒤집어쓴 국회의원 양반,

통속적인 활극을 연출하는 너구리 삼인조,

왁자지껄, 수한무를 찾는 숨이 넘어가는 만담,

모두가 즐거운 한때, 눈은 쌓이는데,

두런두런 유년을 찾아가는데, 종종 미끄러지는데,

청어를 굽는데, 날치 알을 먹으며 깔깔대는데,

하얀 눈은 아랫마을을 재우고는 재 너머 공동묘지에도 내리는데,

썩은 굴참나무 그림자에 빠져 죽은 수상한 허물들 위에도 내리는데,

누군가 죽은 친척 이야길 꺼내 시무룩해졌다가는,

다시 만월(滿月)의 잔이 도는데,

푸치니 오페라 『나비부인』 중 「어떤 갠 날」도 좋고,

음정 박자 무시한 「한 오백 년」도 좋은데, 엉덩이춤을 추는데,

정부도 없고 계급도 없고 빈부마저 없이

너구리 가죽끼리 따뜻한데,

썩은 굴참나무 밑 너구리 저택에도 눈은 시간처럼 쌓이는데,

작은 혁명의 밤이 하얗게, 하얗게 지워지는데,

바람의 말을 자꾸 헛들어도 좋은,

너구리 말로도 그대로 좋은 너구리 저택의 밤.


하얀 눈 위에 찍힌 너구리 발자국,

그리고 

천 년만큼 깊이 내려간 쓸쓸함, 눈을 툭툭 털고 들어오는.




시?낭송 : 장이지

출전 : 장이지 시집 『안국동울음상점』, 랜덤하우스,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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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07-30
시 쓰고 자빠졌네

시 쓰고 자빠졌네. 이런 말 자주 들었다. 누군가에게 자주 두들겨 맞았고, 누군가에게 가끔 린치를 가하던 시절이었다. 이웃 여고 문예부 아이들이 어쩐지 예쁠 거 같아서 문예부실을 전전했다. 그리고 백일장에 나가곤 했다. 물론 남달리 예쁜 아이는 없었지만, 어쨌든 17세 남녀가 교복을 입은 채로 노래방에서 듀스나 룰라, 혹은 투투의 노래를 함께 부르는 모습은 남달리 아름다웠다. 되도록 빨리 노래방으로 가기 위해서 우리는 사바사바, 시를 썼다. 빨리 써야 했다. 시는 최초의 노래였으므로. 엉덩이를 두드리듯, 천사를 찾아. 발라드를 부르며 감정 과잉에 빠지는 철수에게 영희는 이렇게 말한다. 시 쓰냐? 그때 우리는 원고지를 눕히던 누런 잔디에서, 어두운 노래방에서, 혹은 밀도가 높은 교실에서 어떤 감정 속에 놓여 있었을까. 난 누군지 또 여기는 어딘지 아무도 알려 주지 않았기에 우리는 분노에 가득 차 교복을 줄이고 담배를 숨기고 몰래 술을 마시기도 했다. 수채화 대신에 야간 자율 학습 감독을 주로 하던 미술 선생은 또 말했다. 또, 또 시 쓰냐? 시화전 제출 작품에서 피 흘리는 고등어를 그려 놓고 ?어느 고딩의 죽음?이라 제목을 붙이며 나는 전위를 담당한 듯 당당했다. 부끄러움이 없는 남자였다. 미술 선생에게 욕을 먹을 때에도, 맞을 때에도 나는 부끄러움을 몰랐다. 대한민국 학교 다 족구하라 그래. 시 쓰고 자빠졌다, 정말. 정말이란 말에 대해 오래 생각해 본다. 오래 생각하는 버릇은 이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다. 최대한 짧고 단순하게 사고한 것으로 보이는 일들이 생각보다 빠르고 무식하게 벌어지고 있다. 정말? 시집을 묶어내던 중에 바위에서 사람이 떨어져 죽었다. 그 부엉이는 정말 새였을까. 도심에서 사람이 불에 타 죽었다. 그 망루는 정말 구름이었을까. 모두 정말이냐고 정색하며 물어 볼 만한 일들이었다. 분노가 치민다. 지금 나와 싸우자는 건가? 그런데 싸우는 법을 배운 적이 없다. 아니다. 싸움은 끝났다고, 이제 싸움이 아닌 경쟁의 시대라고 배웠다. 나는 그저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잘 모르겠어서, 화가 났다. 사실 싸움보다 훨씬 경쟁이 무서웠다. 사건은 이미지가 되는 순간 거짓말이 된다. 이 모든 게 차라리 멋진 거짓말이었으면 좋겠지만, 이것은 너무나 끔찍한 거짓말. 난삽한 이미지. 이미지가 아닌 이미지. 그러므로 차라리 보이는 게 진실이라고 믿어 본다. 이 지긋지긋하고 끔찍한 진실이 시의 배후가 되어 시에 맘껏 개입해도 나는 좋다. 시가 그렇게 하지 못하겠다면 기꺼이 네가 그렇게 하라. 가져간 나의 반쪽! 때문인가. 이제 둘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그래, 리얼리스트 되자. 모던한 리얼리스트가 되자. 모더니스트가 되자. 리얼한 모더니스트가 되자. 장난하느냐고? 그렇다면, 불길한 장나니스트라고 해 두지 뭐. 꼴에 시랍시고 자빠졌네. 이런 말 자주 들었다. 하지만 누가 뭐래도 나는 시가 좋다. 그리고 시가 밉다. 사랑하고 미워하며 안절부절못하고 있다. 처음 증상을 보일 때는 이렇게 데뷔를 하고 시를 쓰리라 짐작하지 못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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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07-15
일본 소설, 한국 시

일본 소설, 한국 시 한성례 한국에서 일본소설의 베스트셀러 현상 한류바람이 뜨겁게 일본 열도를 달구기 시작한 2000년 이후부터 한국에서 일본소설은 폭발적인 인기를 구가해왔다. 일본보다 한국에서 더 인기가 많은 작가가 나올 정도로 한국은 일본소설 홍수 시대이다. 이 같은 현상에 대해 일본인들은 물론이고 일본소설가들조차도 왜 일본소설이 한국에서 그렇게나 많이 팔리는지 몹시 궁금해 한다. 이에 대한 일본 신문의 인터뷰나 원고의뢰가 있을 적마다 나는 현재 한국에서의 한국시에 비유해서 설명을 한다. 이전에도 한국에서 일본소설은 종종 많이 팔렸다. 70년대 중반에 첫 출간된 무라카미 류(村上龍)의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는 해적판이 끊임없이 이어졌고 출판금지서임에도 안 읽은 사람이 없을 만큼, 문학이나 예술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의 필독서이고 바이블이었다. 1999년 정식으로 저작권 계약을 맺어 커버에 비닐을 씌워 19세 미만 구독불가로서 출간된 후에도 쇄를 거듭하며 읽히는 소설이다. 또한 1989년 원제인 『노르웨이의 숲』이 『상실의 시대』란 이름으로 출간된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의 소설은 당시 크게 각광을 받았고 지금도 계속해서 읽힌다. 당시 한국은 민주화 쟁취와 맞물려 자의식이 집단에서 개인으로 향하던 시기였다. 민주주의가 아직 성숙하지 못한 상태여서 사회, 정치적으로 안정되지 못했고, 급변하는 사회적 환경 속에서 개인이 느끼는 소외감, 고독, 상실감 등이 당시 한국 젊은이들이 처한 현실과 겹쳐지면서 이 소설에 크게 공감했다. 더욱이 하루키의 가독성 높은 문장은 금방 젊은이들을 사로잡았다. 한편으로 문학의 구도자 같은 마루야마 겐지(丸山健二)의 소설도 여러 편 번역 소개되었는데, 이는 주로 문학 창작자들이 마니아였다. 하지만 일본소설의 인기는 단편적일 뿐 전반적인 경향은 아니었다. 오히려 서구소설이 중심을 이뤘다.그러던 것이 에쿠니 가오리, 요시모토 바나나, 쓰지 히토나리, 히라노 게이치로, 요시다 슈이치 등 젊은 작가와 미야베 미유키, 스즈키 코지, 히가시노 게이고 등의 미스터리 소설과 나오키 상을 비롯한 여러 문학상 수상작이 2000년 이후에 대거 한국에 번역 소개되었고, 대형서점에는 코너가 별도로 마련될 만큼 일본소설은 인기를 끌고 있다. 왜 일본 소설을 좋아하는 것일까 무엇보다도 일본소설은 재미있다. 독자를 의식하고 소설을 썼다는 게 금방 느껴진다. 말하자면 자신의 상품을 사줄 소비자의 위치에서 창작을 한다는 것이다. 젊은이들은 일본소설을 읽으면서 비현실적인 주인공을 통해 현실에서 실제로 행동에 옮기지 못하는 자신의 일탈을 꿈꾸고, 대리만족을 느낀다. 일본소설의 주인공 젊은이들은 특별한 목표도 없고, 무기력하며 수동적이고, 나약하기 짝이 없다. 그들은 시대의 흐름과 기존 질서에 따르지도 않고, 세상을 약간은 냉소적이고 관조적인 눈으로 바라보면서, 보편적인 부와 명예, 사회적인 안정 등과는 거리가 멀다. 이에 독특한 상상력과 가독성 높은 문장도 한 몫 한다. 최근 일본과 한국에서 밀리언셀러 판매 기록을 갱신하는 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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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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