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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앞에서 우리는 자기동인과 열정을 갖고 있는가

  • 작성일 2008-02-29
  • 조회수 4,080

 

<작가와 작가>


문학 앞에서 우리는 자기동인과 열정을 갖고 있는가

―예술위원회 선정 ‘올해의 시/소설’ 수상자 특집 대담

 

 


대담 이동하(소설가), 장옥관(시인)

진행?정리 김미정(평론가), 신용목(시인)


 

intro

변화

더 자유스럽고 더 편안하게

미문에서 활기와 생기로

그러면서도 놓치지 않는 것들

어깨를 겯고 가는 동지들

큰 기교는 기교가 없다

시대에 따라 문학도 변신

젊은 세대들의 글쓰기

언어의 틈새를 찾아

문학의 멸종은 없다

문학에 대한 재능은 열정


 

 

2007년 우리를 동(動)하게 한 작가들을 만나다


신용목  2007년에 발행된 문학 도서를 대상으로 한국문화예술위원회와 문학나눔사업추진위원회가 선정한 올해의 시에 장옥관 선생님의 『달과 뱀과 짧은 이야기』가, 올해의 소설에 이동하 선생님의 『우렁각시는 알까』가 선정된 것을 계기로 《문장 웹진》에서 두 분 선생님 모시고 <작가와 작가> 이번호를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선생님, 바쁘신 와중에 참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문장 웹진》은 월간으로 발행되고 있고요. 저는 편집위원을 맡고 있는 신용목입니다.

김미정  저도 함께 편집위원을 하고 있는 김미정입니다.

 

 

신용목  오늘 특별하게 어려운 이야기를 하는 자리가 아니라 편안하게 선생님들의 문학과 그 문학을 둘러싼 환경을 격식 없이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는 자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두 분 선생님, 먼저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새해 벽두부터, 특히 이동하 선생님은 올해 정년퇴임하시는 것으로 아는데 오히려 지금부터 더 많은 글을 쓰실 것 같은 기대감이 생겨나는 소식인 것 같습니다. 저희가 두 분 선생님의 수상작을 중심으로 작품을 일별했는데요. 보면서 전작들과 다른 점을 발견했습니다. 가령 이동하 선생님은 그동안 쭉 이어 온 전후세대의 가난과 고난으로부터 한발 비켜나서 생의 여러 현상들과 그것을 비추는 본질에 접근하려는 노력들이 창작집 속에 들어 있었던 것 같고요, 장옥관 선생님도 그동안 시간을 견디면서 낡아 가는 자들을 관심을 가지고 봐 오셨다면 이번 작품집에서는 조금 더 생(生)의 본질을 약간의 해학미를 곁들이면서 기술을 하신 것 같습니다. 이동하 선생님부터, 이번이 9년 만인데 특별히 이전과 달리 이번 작품집에서 신경을 썼다든가, 하고 싶은 말씀이 있었다든가 하시면 말씀해 주십시오.

이동하  특별하게 뭘 의도했다거나 그런 것은 없고요. 왜냐하면 후기에도 밝혔듯이 이 창작집이 부끄럽게도 한 10년 만에 묶어낸 작품이라서 평균 산술적으로 보면 1년에 한 편 정도의 단편을 써 왔다는 이야기가 되니까, 그렇게 게으르게 작업하면서 특별하게 내 작품이 이렇게 변해야겠다거나 이런 것을 특별히 의도했다거나 이렇게 이야기할 근거가 없는 것 같아요. 뿐더러 소설을 쓰면서 특별히 뭔가를 의도하고 그 방향으로 내 작품을 써 온 편이 못됩니다. 씌어지는 대로 써 왔고 그것을 10년 모은 게 간신히 작품집 하나가 됐네요.

신용목  예전 소설들보다 더 구어체 성향이 강하다고 해야 되나요? 편안하게 말씀하시는 듯한 그런 느낌도 많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술술 잘 읽히는 장점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장옥관 선생님, 이번 시집 특히 김달진 문학상 수상한 작품도 들어 있는데 지난 작품과 다른 측면이 있는 것 같은데, 어떠세요?

장옥관  나름대로 좀 달라졌죠. 우선 말하는 방식에서 과거의 시집들은 좀 응결한다고 할까, 그러니까 이미지 위주의 시를 많이 썼습니다. 과거에 미학적인데 관심을 많이 가졌다고 한다면 이번 시집에서는 그런 미학적인 차원을 떠나서 나의 삶에 관심을 많이 가지게 됐고, 말하는 방식도 구어체로 쉽게 쓰려고 했고, 시를 좀 많이 풀어놓으려고 노력했죠. 그러면서 시 쓰는 자체가 상당히 많이 편해졌고. 어떤 측면에서는 지나치게 풀어진, 긴장을 잃은 게 아닌가 하는 이야기도 나오지 않겠나 싶은데요. 나름대로 그전의 시집과 변화가 있었다고 스스로 생각합니다.

신용목  두 분 다 고향은 약간씩 다르지만 대구에서 성장과정을 거치셨는데 좀전에 농담 삼아 그랬지만 사투리로 좌담을 해야 하지 않을까요.

이동하  대구를 떠난 지가 하도 오래됐고 또 강의를 하면서 억양은 어쩔 수 없지만 표준어를 찾아 쓰고 하다 보니까 사투리를 거의 잊어 버렸어요. 내 주변에 호남 쪽 사람들이 비교적 많고 또 내가 목포대학교에서 한 10년 근무도 하고 그래서 사투리를 하라고 하면 오히려 호남 쪽 사투리가 자신이 있어요.

신용목  경상도 사람들이 말을 구성지게 하거나 그렇지 않고, 문장을 쓰더라도 구성진 문장이 나오기 힘든데, 두 분은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문장이 구성지게 이어지지요, 이동하 선생님은 오래 전부터 유명하셨고, 장옥관 선생님도 “경상도 분 아닌 것 아냐” 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달과 뱀과 짧은 이야기』, 『우렁각시는 알까』, 뭔가 달라졌다!


김미정  신용목씨는 좀전에 두 분의 이번 작품집에서 달라진 점을 읽으려고 하면서 말씀을 하신 것 같고, 저도 그런 부분을  찾아가면서 읽으면서 생각해 봤는데, 그런 점들은 있었어요. 이를테면 이동하 선생님께서, 의도하면서 써 온 편이 아니라고 말씀 하셨는데, 초기작들이 시대나 역사나 구체적인 굵은 맥락에서 한발 비켜서서 바라보고 있는 것을 지적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번 작품집에서는 그보다는 당대의 세태나 풍속과 밀착해 있고, 그 세태와 풍속 이면에 담긴 본질적인 문제들에 닿고자 하는 모습을 보여 주셨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또 이번 소설집이 IMF 이후의 작품집 이후에 처음 발표한 소설집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고 읽기도 했는데 IMF 이후의 우리 삶의 기본적인 조건들을 반영하고 있는 분위기 같은 것들이 감지되기도 했고요. 예를 들면 중년이나 노년이 된 가장들이 그들의 자리에서 내몰려서 집으로 돌아온 자리에서 시작한 이야기들이 많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 그들이 살고 있는 배경이 되는 도시에서의 크고 작은 사건들, 이런 풍경들을 보면서 선생님 소설 속의 주인공들도 변모해 가고 있고, 세대가 달라도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가 있었던 것 같고요. 이런 변화에 비하자면 제 개인적 느낌으로는 첫 번째 작품으로 실려 있던 「너무 심심하고 허무한」의 경우는 그동안에 썼던 경향과 조금 다른 분위기였고, 또 「우렁각시는 알까」라는 표제작을 보면 설화적 상상력도 느낄 수 있었고, 「팔각성냥」 같은 경우는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들려주는 듯한, 말 그대로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한 분위기가 있었습니다. 작가의 말, ‘지금까지와는 다른 작품을 한두 편 쓰보고 싶다’고 하셨던 것도 이런 맥락 속에서 생각해 봤고요. 그래서 제가 퍼즐 맞추기를 하듯 생각해 보니 선생님께서 향후 작품에 대한 복선 같은 것을 이번 작품집에서 깔아 놓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그 부분을 좀 여쭙고 싶었습니다.

이동하  구체적으로 「너무 심심하고 허무한」이라는 소설이나 「우렁각시는 알까」라는 단편, 그리고 「팔각성냥」이 세 편이 기왕에 내가 썼던 소설들과는 다른 색깔이지 않느냐는 면에서는 동의가 되네요. 그전에는 스스로 생각해 보면 소설을 쓰는 내 자세가 상당히 경직돼 있지 않았나, 이렇게 보여지더라고요. 그것도 나이를 먹으면서 그전에 썼던 소설을 보면 경직된 자세로 해 왔다는 것이 상당히 강하게 느껴져요. 경직된 것은 문체에도 있지만 특히 관심의 소재가 내 자신의 삶이나 상처에 집중돼 있어서 더 경직되게 느껴지고 이랬어요. 그러다 보니까 좀전에 장옥관 선생님도 그 얘기를 해서 공감을 했지만, 언어도 말도 화법도 내 시선도 좀 편안하게 얘기해 보는 것이 어떨까, 이런 정도의 의도는 있었어요. 그 결과가 앞서 지적된 그런 작품에 비교적 잘 드러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앞으로 어떤 작품을 쓸지 모르지만 만약 쓰게 된다면 그런 작품보다 화법이나 소재에 있어서 좀 더 자유롭고 싶고, 더 편안하게 이야기하고 싶고, 그렇다는 점에서는 뒤의 「팔각성냥」이 그런 의도에 맞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네요.

신용목  무거운 이야기를 하는 것 같은데, 장옥관 선생님께도 여쭤 보시죠.

김미정  장옥관 선생님도 그런 말씀을 하셨는데, ‘말하는 방식이 달라졌다, 이미지 위주에서 미학적인 측면에서 말이라는 것’…. 제 식으로 받아들이기에 말의 육체성 같은 게 연상되기도 했습니다. 제가 인상적으로 봤던 시들이 이런 것이었는데요. 예를 들어 시집 끝에 실려 있는 「밥 먹는 일」에서 단적으로 ‘밥 먹는 일의 범상치 않음’, ‘생기 잃은 몸에 정성껏 드리는 공양’이라고 하신 대목들이 있어요. 여기에서 저는 시집 전체의 마무리, 마침표를 찍어 주시는 것과 같은 느낌을 받았는데요. 이전과 달리 이 시집에서는 선생님의 관심이 주로, 꽃이라는 눈에 보이는 사물에서 꽃이 진 자리라는 곳으로 이동한 것 같았구요. 이런 건 시간의 흐름이 개입되는 것일 수도 있겠죠. 또, 예전에 김달진 문학상 받으실 때 수상소감이 참고가 되기도 했습니다만, 구절을 인용하면, ‘음식 찌꺼기가 뒤범벅된 구정물 같은 언어에 머물러 있는데 솔직히 말하자면 투명한 말의 매혹에서 자유롭지 못하다’고 하셨는데, 투명한 말의 매혹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말씀을 하시면서 거기에 관련해서 양가적인 심정토로를 하신 것도 흥미로웠고요. 인용한 구절처럼, 「꽃이 진 자리」에서는 ‘꽃’에서 ‘꽃이 진 자리’로 이동하는 시선이라든지, 「무슨 일이 있었던가」라는 시에서는 ‘구수하고 따뜻한 밥’에서 ‘지저분한 식판’처럼 변해 가는 것에 대한 시선의 이동이라든지, ‘피어 있던 목련 꽃잎’에서 ‘떨어지는 목련 꽃잎’으로라든지, 「별안간」 이라는 시에서는 ‘찍힌 피사체’가 아니라 ‘잠시 열어 보였다가 닫은 셔터의 속에 있는 축축하고 냄새나는 어둠의 내장’이라든지, 어떤 눈에 보이는 가시적이고 잡힐 수 있는 ‘무엇’보다 이면의 보이지 않는 것들, 닿고 싶은데 닿지 않는 것들, 계속 미끄러지는 것들, 이런 것들에 대해서 좀 보여 주시고자 하는 것들이 많지 않았나 하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래서 시선이 일상과 신변으로 밀착하고 이동하면서 바라보는 대상과 시선이 달라지니까 그것에 대한 언어도 달라질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까지는 했는데 구체적으로 선생님께서 문학상 받으신 이후에 겪고 있는 언어에 대한 관심, 말에 대한 관심, 이런 것에 대해 조금 더 덧붙여주면 이해에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장옥관  정확하게 보신 것 같습니다. 미학적인 관심에서부터 좀 더 본질적인 문제를 생각해 보고 싶었다는 것입니다. 특히 언어의 문제도 언어라는 것이 세상의 오만 더러운 것이 다 묻어 있지 않습니까. 욕망이 묻어 있는 게 언어인데, 그 언어를 지나치게 가공하고 닦고 갈고 한 것이 아닌가 하는 반성이 있었거든요. 그 언어가 가지고 있는 아주 미묘한 욕망의 문제, 인간이 가지고 있는 삶의 가장 축축한 것들을 생각해 봤죠. 그런데 조금 전에도 이야기를 하셨다시피 그 이전의 언어나 이미지보다 이 시집에서 생각한 것은 발견입니다. 그 중에서도 아주 비루하고 사소한 일상 속에서 미처 깨닫지 못했던 장면들을 나름대로 생각해 봤죠. 삶이라는 것이 백주대낮에 환하게 드러난 것에는 진실이 별로 없지 않겠습니까. 백주대낮의 현상과 정황 속에서 잠시 잠시 터져 나오는 것에 주목을 했죠. 예컨대 일하는 아주머니들이 일할 때 몸을 숙이고 일하지 않습니까. 그러면 윗옷과 아래옷 사이에 잠시 나오는 맨살, 그 틈이 우리가 숨기고 있는 진실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거든요. 그런 점을 생각한 것이고, 왜 그런 것을 평소에 발견할 수 없었던가, 우리의 관념 때문이다, 그래서 관념이 조작하고 있는 세상읽기에 대해서 생각해 봤죠. 관념은 다른 말로 언어 아닙니까. 언어의 문제에 결국 귀결될 수밖에 없었다는 이야기죠. 그 점이 과거의 시와 다른 점이고, 우선 많이 풀린 상태에서 시를 쓰려고 노력했죠.

신용목  욕망에 관한 말씀을 하셨는데. 욕망과 허망을 ‘뽕브라’로 갈무리한 시를 보고 무릎을 쳤던 적이 있습니다. 욕망을 이야기하는 것이 무겁게 흘러 갈 수 있는데 이것을 아주 해학적으로 ‘뽕브라’에 빚대면서 무거운 것을 아주 가벼운 생활 속에 있는 것으로 대체하는 것을 보고 이 젊은 감각이 어디서 나오나 의문을 가지기도 했습니다. 형식적으로 조금씩 변할지 모르겠는데 궁극적으로는 「살아 있는 전봇대」, 「지렁이」 이런 시편들을 보면 물상화 되어 가는 생명들의 고통이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 이것들은 첫 시집부터 이어 왔던 것인데 1집에서 「가을 여치」에 보면 이런 대목이 있더라고요. ‘도살장 시멘트 담장 아래 핏물에 절은 엽기풀이 있습니다.’ 짧게 묘사한 이 장면이, 이 시가 운명적으로 그것들과 대치하면서 나가겠다는 것을 강하게 느끼게 했습니다. 이번에도 그런 것들이 이어 오는데 약간 양상을 달리하는 것은 사실인 것 같습니다. 예전 시편들이 현대성과 그 속에서 소외되는 자들을 극명하게 보여 주고 있다면, 흥미 있게 본 시는 「꽃을 꽂는 여자」인데요, 물론 다 같이 소외당하고 패배한 자지만 그것을 양극화시켜서 대치시켜서 바라보지 않고 그것과 이것을 이 세계 속에서 같이 묶어서 하나로 붕 띄워 놓으면서 극복해 나가려는 의지가 보였던 것 같습니다. 「꽃을 꽂는 여자」 밑줄 쳐 가면서 잘 읽었습니다. 그에 못지않게 이동하 선생님의 「너무 심심하고 허무한」, 「우렁각시는 알까」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어떤 주제의식이나 이런 것을 희석시키고 안개 속에 밀어 넣으면서, 시대가 어느 시대인지도 모르겠고 궁극적으로 선명하게 다가오는 것도 없지만, 그 속에서도 뭔가 총체적으로 뭉뚱그려서 짚고 넘어가려는 것이 비췄던 것 같은데요. 경직에서 편안함으로 넘어가는 과정이라고 두 분 다 말씀하셨는데, 경직된다는 것이 다른 말로 첨예하고 조금 더 이 세계의 본질에 대해서 날카롭게 접근하고자 하는 욕망일 수도 있을 테고, 단점의 측면에서는 편안하게 넘어간다는 것이 현실의 문제들과는 조금 더 무관하게 가는 측면도 있는 것 같은데요. 제가 말한 단점의 문제로 간다면 이동하 선생님의 글쓰기 주제와 비켜 나가는 일들이 벌어질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그 점을 어떻게 생각하세요?

이동하  편안함이 안이함으로 가면 문제가 되죠. 또 그런 위험성을 안고 있죠. 거창하게 말해도 될는지 모르지만 그런 작품들이 지향하는 것은 결국은 무거운 것을 가볍게 이야기하고 복잡한 것을 단순화해서 이야기하는 화법인데. 그러면서도 치열성이나 진지성을 놓치지 말아야겠죠. 글쎄요. 이제 앞으로 봐야죠.



문학과 삶을 공유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신용목  개인적으로는 편안한 이야기로 돌려서 이야기를 계속 해 나가면서 그때그때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은데요. 사실은 선배 작가님들 모시면 여쭤 보기 민망한 것이 “누구랑 술 드세요”, “소설에 영향을 미친 친구는 누구세요” 이런 것들이 젊은 작가들이 궁금한 부분인데, 친분관계를 조금 들추고 가면 어떨까요.

이동하  장옥관 선생님부터 하세요.

장옥관  저는 스스로 생각할 때 재능이 없어요. 문학적 재능은 거의 없죠. 그런데 계속 작품을 쓸 수 있었던 것은 주변에 좋은 친구들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해마다 신춘문예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등단하지만 소수의 사람들만 계속 활동을 하죠. 왜 그런가를 짚어 보니까 주변에 동지가 없어서 도태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어떤 교우 관계를 갖는가가 굉장히 중요한 문제인 것 같아요. 대구에서 저하고 가까이 지내는 친구들이 선배로는 문인수 선배, 이하석 선배가 있고, 송재학 시인은 동인이었고 엄원태 시인도 동인이었고. 이런 친구들하고 계속 활동을 하면서 나름대로 영향을 상당히 많이 주고받았던 것 같아요. 만약 송재학 시인이 없었다면 저는 이 자리에 없었을 겁니다. 송재학 시인은 어떻게 생각할는지 모르는데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문학적 동지들이 있으면, 문학 활동을 하다가 슬럼프가 있잖아요, 쉬는 경우가 있는데, 이럴 때 마음이 안이해지는 순간이 오면 옆에 있는 친구들이 열심히 해요. 그러면 정신 번쩍 차려서 집중적으로 작업을 하고, 그러면 다른 친구가 또 쉬다가 하고. 이런 식으로 계속 왔던 것 같아요. 처음에 습작기를 거쳐 등단할 때부터 저는 게으름을 많이 부렸는데... 옆에 있는 송재학 시인이 정말 부지런하고 지독한 사람입니다. 본받을 만한 친구죠. 그래서 그런 친구들을 통해서 작가로의 마음가짐을 다잡게 되고 그랬었죠. 대구에서 문학 활동을 할 수 있었던 것이 행운이라고 생각해요. 서울은 너무 넓어서 인간적인 유대를 가지기 힘든데, 대구는 큰 도시가 아니니까 금방 모일 수 있거든요. 지금도 한 달에 한 번씩 만나니까. 여행도 많이 다니고, 강도 많이 찾아다니고 행복하게 잘 생활하고 있어요.

신용목  술값은 어느 분이 내세요?

장옥관  선배 문인들은 술을 많이 하셨는데 우리 또래는 별로 안했어요. 그래서 송재학 시인과 엄원태 시인은 술 거의 못합니다.

김미정  공유하셨다는 취미는 어떤 것입니까?

장옥관  여행이죠. 여행이 많은 도움을 줬어요. 글을 책상 앞에서만 쓰는 것이 아니라 감각으로 이 세계를 받아들여야 하겠다는 것이 여행이죠. 거기서 감수성이 열리면서 감각의 깊이를 느끼게 되는 것이죠. 굉장히 중요한 것이 감각입니다. 여행을 많이 했죠. 수석 취미가 있어서 돌도 주우러 다니고.

김미정  선생님, 사진도 혹시?

장옥관  사진도 한때 깊이 빠졌죠. 처음에 제가 사진을 열심히 찍을 때 송재학 시인은 시인이 시만 신경 쓰지 다른 데 한 눈 판다고 퉁박을 줬는데 요즘은 자기가 열심히 사진 찍어요.

신용목  수석 취미도 같이 공유하셨어요?

장옥관  대구에서 처음에 수석 취미를 불 지른 분이 문인수 시인이었죠. 문인수 선생님이 1기 백수 시절에 시간을 많이 보낸 것이 수석인데 그것이 이하석 선배라든지 이런 분들에게 파급되면서 우리 또래에서 많이 했죠.

신용목  이동하 선생님은 이전에 《작가세계》에 전영태 선생님이 쓴 글을 보니까 다방도 경영하신다고?

이동하  잘못 오해하면 진짜 내가 다방을 한 것처럼 되는데, 그건 아닙니다. 내가 목포대학에 있다가 중대 문창과로 왔더니 다문화가 전혀 보급돼 있지 않더라고요. 보면 커피도 있고 서랍에는 선물 받은 녹차나 중국차를 쟁여 놓고 먹지를 않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다문화를 보급했죠. 커피도 인스턴트일지언정 맛나게 타먹는 방법부터 시작해서 녹차 다려먹는 법까지. 그러다 보니까 출근하면 우루루 내 연구실로 몰려와요. 이러다 보니까 내 연구실이 간판 없는 ‘동하다방’이었어요.(웃음) 장 선생님 이야기 들으니 새삼스럽게 느껴지는 건데 작가들은 시인들에 비해서는 잘 어울려 다니지 못하는 것 같아요. 작가들은 대체로 독불장군처럼 혼자 시간을 죽이든 여행을 가든 그러지요. 나 같은 경우도 대학을 또래에 비해서 삼 사년 지각 입학을 했는데, 서라벌예대 문창과에요. 와서 보니까 자기들끼리 대학 오기 전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잘 알고 했더라고요. 전국의 재주 있는 애들이 백일장을 휩쓸고 다니고 그래 가지고요. 나는 골방출신이다 강조하고 그랬는데. 그러니까 특별히 문학수업을 하던 때에 영향을 주고받을 만한 문우들이 주변에 없었어요. 대학을 졸업한 뒤 등단하고 문단생활을 하면서도 자별하게 인간관계를 갖고 같이 어울려 다닌 사람은 극소수에 지나지 않아요. 몇 년 전에 타계한 임영조 시인 같은 경우를 제외하고는 거의 없어요. 장 선생님 이야기를 들으면서 부러운 생각이 드는데 저는 늘 외톨이였던 것 같고, 지금도 그런 생각이 드는데요. 크게 보면 내가 1960년대 작가인데 1960년대 작가는 우리보다 한 세대 앞선 1950년대 작가들에 비해서는 작가층이 두터워요. 김승옥부터 시작해서 1960년대 작가들이 그 앞 1950년데 작가군에 비해서는 굉장히 두텁거든요. 개인적인 친분을 떠나서 거시적으로 보면 동년배의 작가층이 두텁다고 하는 것도 하나의 우군이 되어서 그래서 아마 1950년대 작가보다 1960년대 작가들이 플래시를 받지 않았나, 우리 소설문학사 전개에 더 두드러진 부분이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드네요. 작가는 혼자이든 아니든 우군이 필요한 것은 틀림없어요.

신용목  《월간문학》 편집 같이 하셨던 분들하고는 약주 잘 안하셨나요?

이동하  그게 1969년인데 창간할 때부터 편집직원으로 있었던 사람들이 나하고 시 쓰는 김형영씨하고 몇 년 전에 타계한 이문구 씨하고 세 사람이었는데. 김형영 씨하고 나하고는 같이 학교를 다녔기 때문에 자취 동기생이기도 해요. 이문구 씨는 나랑 동갑이거나 한 살 많거나 한데 대학으로는 여러 해 선배예요. 세 사람이 같이 작업을 하면서도 특별히 어울려 다닌 기억은 별로 없어요. 이문구 씨는 나중에도 그랬지만 상당히 교우 범위가 넓어서 나중에 창비와 문지가 있을 때 둘을 두루 통하는 문단의 마당발이죠. 이문구 씨하고도 같이 어울려 다닌 적은 없어요.



우문현답 - 후배들, 문장을 질투하다


신용목  외람된 질문이지만 선생님 문장을 보면서 어떻게 이런 문장을 얻을 수 있을까 하는 궁금증이 드는데요, 등단기나 이럴 때 문장 연습을 어떻게 했다 이런 것은 없습니까?

이동하  초기에 등단하고 나서, 저는 1966년에 신춘문예 등단하고 그 해에 단편을 네 편인가 발표했는데 그 작품을 나중에 이호철 선생님이 월평에 어디다 쓰시면서 문장 이야기를 하셨어요. 요지가 이만한 문장을 쓰려면 엄청난 습작을 하였겠다는 내용인데 저는 습작기간에 습작량이 많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내가 잊어 버리지 않는 말 중의 하나가 연세대의 박영준 선생이 제자가 등단했다고 찾아오니까 첫 질문이 “자네는 습작을 얼마나 했는가, 자네 앉은키만큼은 썼는가.”라고 물었대요. 원고지를 앉은키만큼 쓰려면 몇만 장 써야 하는 거죠. 그렇게 쓰지는 못했고 저는 초고도 원고지에 쓰는 습관인데 더디게 쓰는 편이에요. 문장 하나 붙들고 하염없이 더듬어 가면서. 작가는 선천적으로 눌변이라는 말을 한 분이 있는데, 저는 한정 없이 더듬어 가면서 문장 하나씩을 쌓아 올리는 식으로 썼어요. 비유적으로 말하면 조적공이 벽돌 하나하나 쌓아 올리는 기분이 들었는데 내가 아까 너무 경직돼 있는 것 같다는 것이 문장 차원에서 반성하면 그런 태도예요. 우리말이 생활에서 나오는 말이라는 것이 앞뒤 없고 좀 뒤숭숭하고 그러잖아요. 그래서 설득력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고, 말이 좀 뒤숭숭하고 단순하고 소박하더라도 얼마나 진솔하냐, 내용이 있느냐 이게 중요한 것이니까. 오히려 말 하나의 질서만 붙들고 매달리는 일이 내용이나 생명력을 떨어뜨리는 것이 아니냐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근자에 와서 소설 문장들이 미문의식이 너무 앞서 있는 면이 있잖아요. 그래서 수사는 대단한데 다 읽고, 적고 보면 뭔 얘기인지 남지 않는 이런 경향도 보이고 있고 해서. 문장이 좋아야죠. 문장이 작품인 셈인데, 그러나 그 기준은 좀 달라야 되지 않겠는가, 정말 마음에 가 닿는 언어냐 아니냐 이게 더 중요한 것 아닌가 이런 생각을 해요.

장옥관  저도 바로 그런 측면에서 언어를 새로 평가했거든요. 우리 문학이 지나치게 미학주의, 초월의식에 빠져 있다는 반성이 찾아왔어요. 자연스러운 구어체의 말들이 더 정확하게 핵심을 짚어낼 수 있고 그것이 더 자연스럽고 바르게 포착할 수 있다는 생각. 그래서 언어가 지나친 미문의식에 빠져 있는 것은 문제가 아닌가 하는 깨달음이 왔거든요. 말하자면 큰 기교는 기교가 없다는 것,  뭔가 허술해 보이는데 나중에 뒤통수 낚아채는 것이 무공의 최고수가 아닌가 하는 생각. 그게 이 시집을 쓰면서 사로잡고 있던 게 언어에 대한 생각이었어요.

 

 

이동하  제 몇 분의 스승 중 한 분이 김동리 선생님이신데... 제가 재학시절에 하신 이야기 중의 하나가 문장과 관련된 것인데, 구어체 문장의 한계점에 대해서 상당히 많이 이야기를 하셨어요. 소설 문장이 구어체로 너무 빠지면 결국은 무거운 내용을, 깊은 내용을 담을 수가 없다고 하셨는데, 저는 그 점에 많이 공감을 했어요. 우리가 언어를 통해서 뭔가를 표현한다고 했을 때 그 섬세함에 있어서 또는 깊이에 있어서 문어를 구어가 따라갈 수는 없거든요. 대신에 문어가 자기 수사학에만 빠지면 구어체가 가지고 있는 뚝뚝 뚫어 주는 듯한 생명력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죠. 저는 구어체의 한계도 의식은 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면서 지나친 미문의식에 빠져 있는 문어체의 한계도 극복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그 전에는 소설을 쓰고 나서 다듬을 때 어떻게 하면 아름다운 비유들을 더 많이 집어넣을까 고민했는데 이제는 뒤집어서 웬만하면 그런 비유적 수사들은 지울까 고심하는 편이에요. 가능하면 비유도 줄이고 단순한 문장으로 가 봐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신용목  두 분은 미문의식을 버리고 쓰셔도 미문인데, 저희처럼 둔한 후배들은 아무리 미문을 쓰고 싶어도 잘 안 나와서 걱정입니다.(웃음) 이동하 선생님 소설을 읽으면서 우리말을 살려 쓰는 것을 보고 나도 이 말 꼭 써야지 하곤 했던 기억이 납니다. 문체 이야기가 나와서 요즘 소설 이야기 하고 맞아 떨어지는 것 같은데요. 요즘 가령 디지털 시대다, 영상시대가 해서 시대를 수없이 정의하고 있고 거기에 따라 문학 환경이 바뀌었고 문학의 위치나 자존이 이야기되고 있는데요. 문학 환경이 바뀌었다면 뭐가 바뀌었다고 생각하시는지 듣고 싶습니다.



문학의 주변, 변한 것과 변하지 않은 것


이동하  크게 보면 문학 환경이 바뀐 것 같지는 않아요. 예를 들어서 1960년대에 잡지사에 있을 때 제 옆자리에 이청준 씨도 있었는데, 그 무렵에는 작가들이 작품집 내기가 어려웠어요. 주변에 작가들을 아끼는 그룹들이 있어서 작품집을 사 주고 해도 2천부, 많이 찍어도 3천부 찍었어요. 그런데 지금도 비슷하거든요. 지금도 2천부 3천부 찍는데, 물론 스타 작가는 빼고. 대신에 작가 주변의 친구들이 사 주지 않고 문학나눔사업에서 사주니까 고맙기는 한데, 그런 면에서는 환경이 좋아졌는지도 몰라요. 한 가지 문제라고 생각되는 것은 젊은 세대로 갈수록 활자매체보다 영상매체를 좋아해서 영화나 드라마는 열심히 보는데 책읽기에 대한 관심은 여전히 없거든요. 그렇다고 그 전에 열심히 읽어 준 것도 아니지만, 이런 상태가 아무 노력 없이 흘러간다면 그나마도 소설 책, 딱딱한 본격적인 소설들을 누가 읽어주랴 하는 걱정은 좀 돼요.

장옥관  선생님 말씀처럼 환경이 많이 바뀌었죠. 문자문화에서 영상문화로 옮겨 온 것이 주지의 사실이고. 그러다 보니까 문자보다는 눈으로 보는 이미지에 반응하는 사람들이 많이 나타나니까 옛날만큼 책을 읽는 분들이 줄어들 수 있겠죠. 한편 생각해 보면 인터넷에, 시의 경우를 좁혀서 생각하면 블로그에 시의 수요가 더 많아진 것이 아닌가 생각해요. 블로그에 시를 올리는 사람들이 시를 읽는 수준이 상당히 높아요. 블로그 없이 책을 통해서 시를 접한 사람은 대중적인 베스트셀러 시만 읽히는데 지금은 수준이 높아졌어요. 시의 숙명이라는 것이 소수의 매니아 독자들에 의해서 시의 생명은 계속 이어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고. 시대 환경이 바뀐 만큼 문학도 계속 변신을 하면서 영속적으로 유지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동하  소설에 비해서는 시가 더 많이 찍는 것 같더라고요. 저는 소설집 내면서 이것은 재판 찍을 수 있을까 걱정을 하는데 대체로 재판을 찍게 안 되더라고요. 『우렁각시는 알까』의 경우는 어디서 사 줘서 재판을 찍었지만. 시집은 재판을 찍는 율이 높더라고요.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 내 입장에서는 결론을 얻었어요. 시는 소설보다 활자가 적지 않느냐.(웃음) 최근에 어디서 읽으니까 프랑스 같은 경우에도 시집은 별로 안 팔린다고 해요. 노벨문학상 수상 시인의 시집을 내도 1천 권이 안 팔린다고 해요. 그 생각을 하면 우리나라는 시인 공화국인 것 같아요. 누가 연구 좀 해 보면 될 것 같아요. 아마도 그 차이가 활자 적은 차이는 아닐 테니까.

김미정  소설과 시가 맞고 있는 상황이 조금은 다르다는 생각이 들고요. 소설도 요즘 젊은 작가 소설 중에는 달라진 매체 환경에 발맞춰 가는 듯한 글쓰기의 변화가 느껴지는 소설도 보이거든요. 장 선생님께서 시가 블로그나 인터넷 매체를 통해서 유통이 더 활발해졌다고 하셨는데 소설에서도 문체적인 측면에서 볼 때, 물론 특정작가들에 대한 말이기는 하지만 ‘블로그형 글쓰기’란 말이 나오기도 하는데요. 산문이나 소설 쪽에 매체가 끼치는 영향관계도 흥미롭다는 생각이 들어요. 두 분께서 문학을 둘러싼 환경 속에서 체감하는 것들에 대해서 말씀을 해주셨는데, 그럼 두 분께서는 제자들을 양성하시고 현장에 밀착해 계시면서 요즘 젊은 세대들의 시나 소설에 대한 불만 같은 건 없으신가요. 또 좀전에 언어 이야기 하셨는데, 그 미문의식이라는 것을 조금 바꿔서 볼 때, 언어를 가공하고 인위적으로 조작하는 것에 대한 젊은 세대들의 관심에 대해서도 하실 말씀이 있지 않을까 싶은데요. 현장에서 보는 목소리가 궁금합니다.

이동하  제가 하는 이야기 중의 하나가 시인이나 작가로서의 관심이 좀 다양화됐으면 좋겠다는 겁니다. 우리 세대의 글쓰기라는 것은 대체로 자기의 체험과 밀착돼 있는데 앞으로는 그것으로는 버틸 수 없을 것이고. 독자들의 공감을 얻어내기 어렵다는 것이죠. 결국 그러자면 세상에 대한 관심이 좀 더 다양해지고 저마다 하나씩 이 분야는 자신 있다는 전문영력을 갖췄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는 자주 해요. 석사과정의 경우에 신입생들에게 전공을 물어 보면 다양하게 있어요. 생물학과 출신도 오고 건축학과 출신도 오고 해요. 그런 학생들을 상당히 환영하고 기대한다고 이야기를 해요. 좀더 색다른 자기 시선을 가지고 지금까지의 시인작가들이 진술하지 못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지고 있어요. 이른바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보면 그런 면이 드러나 보이는 신선한 작가들이 더러 눈에 띄죠. 앞으로는 그런 작가들이 자기 몫을 문단에서 해내고 그런 작품들이 거시적인 측면에서는 우리 문학사를 더 풍성하게 하지 않을까 싶어요.

장옥관  제가 학교에서 학생들을 만나 보면 젊은 사람들은 대학 들어올 때 방송매체와 관련된 글쓰기를 많이 꿈꿔요. 시나리오, 방송대본, 구성작가에 관심을 많이 가지거든요. 그 사람들이 시 강의를 듣고 나면 생각들이 좀 바뀌어요. 더 중요한 것은 모두 시인이 될 필요는 없고 시적인 사유방식을 배우면 되니까, 그 쪽으로 이야기를 많이 하죠. 한 학기를 듣고 나면 뭔가 깨지는 게 있는가 봐요. 인식의 전환을 해서 편지를 보내올 때 보람이 있죠. 글쓰기의 방식에서 제 나름대로 생각하는 것이, 이 시집에 관련된 문제이기도 하지만 미문보다는 활기, 생기가 문학의 핵심이고, 문어체는 사어고 구어체는 활어죠. 그러나 구어체가 느슨하게 산문적으로 풀리는 것은 곤란하겠죠. 말과 말의 틈 벌리기, 예컨대 언어에서 핵심은 실사가 아니고 허사이지 않습니까. 이런 데 대한 관심을 깨우게 되고 그것을 통해서 이 사람들이 언어에 접근하는 것을 경험하게 되죠.



문학의 미래를 낙관하는 여유가 필요하다


김미정  선생님 말씀을 듣다 보니 시집으로 돌아가서 여쭙고 싶어지는데요. 생기와 활기를 문학의 핵심으로 말씀하셨는데 굉장히 공감이 되고요. 시집 앞부분에서 정적인 것에서 역동적인 것을 끌어내는 데서 놀라면서 봤고요. 활물성이라는 단어가 문득 떠올라서 앞부분에서 길의 등뼈, 석탑, 암각화, 가부좌, 사실은 소재 자체가 정적이고 말로도 사어의 느낌을 주지만 실제로도 화석화되고 박물화된 느낌을 주는데 거기서 생명을 이끌어내는 느낌이 강했고요. 뒤쪽으로 갈수록 그것과는 시작법 자체가 다른 방식으로 생기, 활기를 다루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장옥관  맞습니다. 앞부분의 시는 상상력의 역동성이고 뒤로 갈수록 언어구절에서 활기가 느껴지는 부분이 더러 있을 것입니다. 시를 쓸 때, 내가 시를 쓰는 순간 언어가 따라가는 대로, 내가 쓰는 것이 아니라, 언어가 언어를 불러오는 방식으로 시를 쓰려고 노력해 봤죠. 그러다보니까 처음에는 범상한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떡 달라붙는 새로운 정황이면 정황, 비유면 비유 이런 것들이 달라붙으면서 시 한편이 활기를 띨 수 있는 이런 방식으로 시를 쓰니까 시가 또 재미가 있습니다. 마지막 부분에 보면 뭔가 엉뚱한 것이 달라붙으면서 삐끄러지는, 예컨대 「오줌꽃」의 마지막 부분들, 뽕브라도 마찬가지고. 제일 마지막 부분이 한 가지 매듭이 꼬여지면서 활기를 불러일으키면서 도약하는, 이런 부분이 언어의 틈새를 찾아가는 작업이 아닌가 생각하게 되었죠. 아까 교우관계를 이야기하다가 다 하지 못했는데 이런 생각들이 조금씩 바뀐 결정적인 계기는 이성복 선생님 때문이라고 할 수 있어요. 평소에 이런 이야기를 많이 나누다 보니까 방향이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고심하다 보니 이런 길로 오게 되었던 것이죠.

김미정  재미난 이야기를 들려주시는데 제가 너무 무거운 질문을 던져서 죄송하네요.

신용목  제가 질문을 하면 잡다한 이야기가 되고 김미정씨가 하면…….(웃음) 환경이랑 버무려서 이야기를 해주셨는데요. 언어나 단어나 단어를 배열해서 문단을 만드는 것은 정신의 결일 수 있고 마음의 결일 수 있는데 영상은 정보의 결이지 그것이 직접적으로 정신을 대변하지는 않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영상시대가 발달하고 영상이 문학을 대체할 수도 있지만 문학의 필요성이 거기서 오지 않는가 하는 아집을 저 혼자 부리고 있는데요. 가령 고진이 근대문학은 끝났다고 하기도 하고, “왜 그것을 문학이 해야 해요. 영상이 다하고 있는데요.” 라는 이야기도 많이 하는데요. 문학은 왜 살아남아야 하고, 왜 문학을 꼭해야 하는지, 평소에 선생님들이 문학에 대해 가지고 계신 철학과 맞물릴 것 같은데요. 좀 들어보고 싶습니다.

이동하  이 시대에도 문학이 꼭 필요한지는 모르겠고요. 영상매체를 대변하는 것이 영화인 셈인데 그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 중에도 그것만으로도 만족할 수 없는 부분이 사람의 정신 영역에 있지 않은가. 의문형으로 말했지만 확신하고 있거든요. 영상매체가 대단히 위협적이기는 하지만 그것이 결코 충족시켜줄 수 없는 영역이 있고, 그 영역 안에 문학이 있기 때문에 문학이 시대환경에 따라서 위축될 수는 있지만 멸종하는 일은 없지 않겠는가. 내 자신이 왜 글을 쓰냐, 왜 쓰냐, 지금도 쓰냐, 그것이 결코 즐거운 작업이 아닌데, 보상이 대단한 것도 아닌데, 무슨 욕심 때문에 쓰냐고 물었을 때 대체로 동인이 나의 밖에 있지 않고 나의 안에 있는 것 같아요. 만약에 궁극적으로 내 안에 있는 것이라면 결국 독자가 소설이나 시를 찾아 읽게 되는 근원적인 동인도 독자 안에 있지 않겠느냐, 이 생각까지 하게 되고. 문학에 회의적인 생각은 여전히 들지 않아요. 당연히 써야 하고. 왜냐하면 내 안에서 그런 충동이 있기 때문에, 당연히 읽을 것이고, 단 소수일수는 있겠지요. 문학은 결국 그런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장옥관  영상매체의 위력 대단하죠. 그렇기 때문에 문학은 그래도 또 쓰여져야 하는 것과는 다른 어떤 차원의 문제인 것 같아요. 예컨대 시각매체인 회화, 미술 이 쪽은 영상매체의 영향을 안 받는가? 그런 것은 아니겠죠. 결국 어떤 방식으로 말하는가 하는 문제겠죠. 어느 길로 갈 것인가. 궁극적으로 예술의 근원은 인간이란 무엇인가, 삶이란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탐구하고 나름대로 답을 찾는 것인데. 그렇다면 영상은 영상의 방식으로 나아가는 것이고, 회화는 회화의 방식으로, 문학은 문학의 방식으로 나아가야 하는 것이 아닌가. 어떤 길로 통하는가의 문제이지 다른 매체 때문에 영향을 받는다는 것은 독자의 차원에서 생각할 때 있을 수 있는지 모르겠지만 나의 표현으로서의 예술로 따지면 다른 별개의 문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김미정  두 분 선생님 말씀을 들으니까 젊은 세대가 가지고 있는 오래된 문학의 위기 운운하는 게 오히려 조급하게 여기거나 강박적으로 여기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고요. 20세기 현대회화가 시사해 주는 바도 생각이 나는데요. 사진 기술의 발달과 함께 회화 쪽에서 같이 경합을 하다가 결국 20세기 현대회화를 성립시키는 계기가 된 것처럼 문학에서도 우리가 위기처럼 느끼고 있는 것들이 다양한 방식, 말씀하신 것처럼 각각의 양식을 발전시키고 깊이를 확보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통찰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문학에 있어서 재능은 ‘열정’이다


신용목  1시간이 넘게 같이 해 주셨습니다. 감사드립니다. 마지막으로 많은 후배들과 동료작가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 있으시면 부탁드립니다.

장옥관  이번에 제가 수상을 하게 되어서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 제 나름대로 개인적인 측면에서 이 수상이 기분 좋은 까닭은 이 시집에 대한 평가나 관심을 가져줬다는 점에서 큰 보람을 갖기 때문입니다. 이 시집이 나오고 난 다음에 인터넷 서핑을 하다 보니까 이 시집을 읽은 사람이 소감을 올렸는데, 이 시인은 습작시까지 시집을 묶어서 냈다고 폄하해서 썼더라고요. 거기에 대한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리는 것을 봤습니다. 나름대로 이 길이 옳다고 생각하고 작업을 해 왔는데 거기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는 분들이 있어서 용기백배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외람된 이야기지만 우리나라에 좋은 시집도 많은데 운이 좋게 수상하게 됐습니다. 제가 이 시집을 내면서 문단에서 계속 활동할 수 있었던 것은 끊임없이 문학에 대한 열정을 붙들고 있어야 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 때문인 듯해요. 제 주변에 재능이 뛰어난 사람들이 꽤 있었는데 다 어디로 가 버리고 제일 재능이 없는 제가 남아 있거든요. 문학에 있어서의 재능은 열정이 아닌가, 끊임없이 붙들고 달려가는 것, 이게 필요하지 않겠나, 꾸준하게 항상심을 가지고 열정을 유지하는 것이 좋지 않겠나, 문학하는 사람 입장에서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동하  저 역시 장옥관 선생님께서 해 주신 말씀과 다르지 않습니다.

신용목  이동하 선생님, 정년퇴임하시면 강단에서는 못 뵙겠지만 작품으로 뵐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문장 웹진》에 자주 글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장옥관 선생님도 멀리 대구에 계시지만 좋은 소식으로 서울 오셔서 《문장 웹진》과 만나기를 기대합니다.《문장 웹진/2008년 3월호》




이동하  1942년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나, 서라벌예대 문예창작과와 건국대 대학원 국문과를 졸업했다. 1966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전쟁과 다람쥐」가 당선되었고, 1967년 현대문학사 제1회 장편소설 모집에 「우울한 귀향」이 당선되어 등단했다. 창작집 『모래』『바람의 집』『저문 골짜기』『밝고 따뜻한 날』(선집)『폭력연구』『삼학도』『문 앞에서』『우렁 각시는 알까?』가 있으며, 장편소설 『도시의 늪』『냉혹한 혀』『장난감 도시』 등이 있다. 『장난감 도시』는 『Toy City』로 영역 출간되었다. 한국창작문학상, 한국문학평론가협회상, 한국문학작가상, 현대문학상, 오영수문학상,  예술위원회 선정 ‘올해의 소설’을 수상했다. 


장옥관  1955년 경북 선산에서 태어났다. 계명대 국문학과와 단국대 대학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다. 1987년 《세계의 문학》으로 등단했으며 시집으로『황금 연못』『바퀴소리를 듣는다』『하늘 우물』『달과 뱀과 짧은 이야기』가 있다. 제15회 김달진문학상, 예술위원회 선정 ‘올해의 시’를 수상했다.


신용목  1974년생. 2000년 『작가세계』로 등단. 시집으로 『그 바람을 다 걸어야 한다』『바람의 백만번째 어금니』가 있다. 제2회 시작문학상을 수상했다.


김미정  1975년에 태어나 성균관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2004년 《문학동네》 신인상에 평론 「‘脫-’의 감각과 쓰기의 존재론-배수아론」가 당선되어 등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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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07-30
시 쓰고 자빠졌네

시 쓰고 자빠졌네. 이런 말 자주 들었다. 누군가에게 자주 두들겨 맞았고, 누군가에게 가끔 린치를 가하던 시절이었다. 이웃 여고 문예부 아이들이 어쩐지 예쁠 거 같아서 문예부실을 전전했다. 그리고 백일장에 나가곤 했다. 물론 남달리 예쁜 아이는 없었지만, 어쨌든 17세 남녀가 교복을 입은 채로 노래방에서 듀스나 룰라, 혹은 투투의 노래를 함께 부르는 모습은 남달리 아름다웠다. 되도록 빨리 노래방으로 가기 위해서 우리는 사바사바, 시를 썼다. 빨리 써야 했다. 시는 최초의 노래였으므로. 엉덩이를 두드리듯, 천사를 찾아. 발라드를 부르며 감정 과잉에 빠지는 철수에게 영희는 이렇게 말한다. 시 쓰냐? 그때 우리는 원고지를 눕히던 누런 잔디에서, 어두운 노래방에서, 혹은 밀도가 높은 교실에서 어떤 감정 속에 놓여 있었을까. 난 누군지 또 여기는 어딘지 아무도 알려 주지 않았기에 우리는 분노에 가득 차 교복을 줄이고 담배를 숨기고 몰래 술을 마시기도 했다. 수채화 대신에 야간 자율 학습 감독을 주로 하던 미술 선생은 또 말했다. 또, 또 시 쓰냐? 시화전 제출 작품에서 피 흘리는 고등어를 그려 놓고 ?어느 고딩의 죽음?이라 제목을 붙이며 나는 전위를 담당한 듯 당당했다. 부끄러움이 없는 남자였다. 미술 선생에게 욕을 먹을 때에도, 맞을 때에도 나는 부끄러움을 몰랐다. 대한민국 학교 다 족구하라 그래. 시 쓰고 자빠졌다, 정말. 정말이란 말에 대해 오래 생각해 본다. 오래 생각하는 버릇은 이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다. 최대한 짧고 단순하게 사고한 것으로 보이는 일들이 생각보다 빠르고 무식하게 벌어지고 있다. 정말? 시집을 묶어내던 중에 바위에서 사람이 떨어져 죽었다. 그 부엉이는 정말 새였을까. 도심에서 사람이 불에 타 죽었다. 그 망루는 정말 구름이었을까. 모두 정말이냐고 정색하며 물어 볼 만한 일들이었다. 분노가 치민다. 지금 나와 싸우자는 건가? 그런데 싸우는 법을 배운 적이 없다. 아니다. 싸움은 끝났다고, 이제 싸움이 아닌 경쟁의 시대라고 배웠다. 나는 그저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잘 모르겠어서, 화가 났다. 사실 싸움보다 훨씬 경쟁이 무서웠다. 사건은 이미지가 되는 순간 거짓말이 된다. 이 모든 게 차라리 멋진 거짓말이었으면 좋겠지만, 이것은 너무나 끔찍한 거짓말. 난삽한 이미지. 이미지가 아닌 이미지. 그러므로 차라리 보이는 게 진실이라고 믿어 본다. 이 지긋지긋하고 끔찍한 진실이 시의 배후가 되어 시에 맘껏 개입해도 나는 좋다. 시가 그렇게 하지 못하겠다면 기꺼이 네가 그렇게 하라. 가져간 나의 반쪽! 때문인가. 이제 둘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그래, 리얼리스트 되자. 모던한 리얼리스트가 되자. 모더니스트가 되자. 리얼한 모더니스트가 되자. 장난하느냐고? 그렇다면, 불길한 장나니스트라고 해 두지 뭐. 꼴에 시랍시고 자빠졌네. 이런 말 자주 들었다. 하지만 누가 뭐래도 나는 시가 좋다. 그리고 시가 밉다. 사랑하고 미워하며 안절부절못하고 있다. 처음 증상을 보일 때는 이렇게 데뷔를 하고 시를 쓰리라 짐작하지 못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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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07-15
일본 소설, 한국 시

일본 소설, 한국 시 한성례 한국에서 일본소설의 베스트셀러 현상 한류바람이 뜨겁게 일본 열도를 달구기 시작한 2000년 이후부터 한국에서 일본소설은 폭발적인 인기를 구가해왔다. 일본보다 한국에서 더 인기가 많은 작가가 나올 정도로 한국은 일본소설 홍수 시대이다. 이 같은 현상에 대해 일본인들은 물론이고 일본소설가들조차도 왜 일본소설이 한국에서 그렇게나 많이 팔리는지 몹시 궁금해 한다. 이에 대한 일본 신문의 인터뷰나 원고의뢰가 있을 적마다 나는 현재 한국에서의 한국시에 비유해서 설명을 한다. 이전에도 한국에서 일본소설은 종종 많이 팔렸다. 70년대 중반에 첫 출간된 무라카미 류(村上龍)의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는 해적판이 끊임없이 이어졌고 출판금지서임에도 안 읽은 사람이 없을 만큼, 문학이나 예술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의 필독서이고 바이블이었다. 1999년 정식으로 저작권 계약을 맺어 커버에 비닐을 씌워 19세 미만 구독불가로서 출간된 후에도 쇄를 거듭하며 읽히는 소설이다. 또한 1989년 원제인 『노르웨이의 숲』이 『상실의 시대』란 이름으로 출간된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의 소설은 당시 크게 각광을 받았고 지금도 계속해서 읽힌다. 당시 한국은 민주화 쟁취와 맞물려 자의식이 집단에서 개인으로 향하던 시기였다. 민주주의가 아직 성숙하지 못한 상태여서 사회, 정치적으로 안정되지 못했고, 급변하는 사회적 환경 속에서 개인이 느끼는 소외감, 고독, 상실감 등이 당시 한국 젊은이들이 처한 현실과 겹쳐지면서 이 소설에 크게 공감했다. 더욱이 하루키의 가독성 높은 문장은 금방 젊은이들을 사로잡았다. 한편으로 문학의 구도자 같은 마루야마 겐지(丸山健二)의 소설도 여러 편 번역 소개되었는데, 이는 주로 문학 창작자들이 마니아였다. 하지만 일본소설의 인기는 단편적일 뿐 전반적인 경향은 아니었다. 오히려 서구소설이 중심을 이뤘다.그러던 것이 에쿠니 가오리, 요시모토 바나나, 쓰지 히토나리, 히라노 게이치로, 요시다 슈이치 등 젊은 작가와 미야베 미유키, 스즈키 코지, 히가시노 게이고 등의 미스터리 소설과 나오키 상을 비롯한 여러 문학상 수상작이 2000년 이후에 대거 한국에 번역 소개되었고, 대형서점에는 코너가 별도로 마련될 만큼 일본소설은 인기를 끌고 있다. 왜 일본 소설을 좋아하는 것일까 무엇보다도 일본소설은 재미있다. 독자를 의식하고 소설을 썼다는 게 금방 느껴진다. 말하자면 자신의 상품을 사줄 소비자의 위치에서 창작을 한다는 것이다. 젊은이들은 일본소설을 읽으면서 비현실적인 주인공을 통해 현실에서 실제로 행동에 옮기지 못하는 자신의 일탈을 꿈꾸고, 대리만족을 느낀다. 일본소설의 주인공 젊은이들은 특별한 목표도 없고, 무기력하며 수동적이고, 나약하기 짝이 없다. 그들은 시대의 흐름과 기존 질서에 따르지도 않고, 세상을 약간은 냉소적이고 관조적인 눈으로 바라보면서, 보편적인 부와 명예, 사회적인 안정 등과는 거리가 멀다. 이에 독특한 상상력과 가독성 높은 문장도 한 몫 한다. 최근 일본과 한국에서 밀리언셀러 판매 기록을 갱신하는 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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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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