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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美)라는 성지를 찾아가는 순례

  • 작성일 2008-04-30
  • 조회수 3,630

 

<작가와 작가>


미(美)라는 성지를 찾아가는 순례



대담 윤후명(소설가)

진행?정리 김도언(소설가)

 

intro

근황

문청시절

자기를 찾아가는 길

끝없는 고행

우리는 식물 앞에서는 한없이 겸손해져야한다

다른 시각의 프리즘을 통해서 보는 눈

물음을 던지는 문학

문학의 달라진 위상

생략과 펼침의 조화

새롭지 않으면 소설이 아니다

동인

문장

젊은 작가들에게

아름다운 완성

한국 문학의 세계화

미화시킨 것은 진실이 없다


 

윤후명, 영원한 탐미주의자의 근황


김도언  선생님, 안녕하세요. 어느덧 선생님도 이순의 연세를 훌쩍 넘으셨는데 여전히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하시면서 후배들한테 귀감이 되어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더욱이 작년에는 「새의 말을 듣다」라는 작품으로 김동리 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하셨는데요. 늦게나마 축하드립니다. 독자들뿐 아니라 많은 분들이 궁금해 하실 텐데 선생님 요즘 근황과 건강은 어떠십니까?

 

 

윤후명  건강이야 뭐 예전부터 술꾼으로 명성이 자자했다고 할까요. 여러 사람에게 나쁜 짓도 많이 하고, 패악도 많이 부렸죠. 술이란 게 뭐 그렇지죠. 사실은 사십대부터 좀 심각했어요. 그때 시 쓰던 박정만이란 친구가 있는데 그 사람은 마흔둘에 죽었어요. 저랑 동인도 같이 했는데 다들 박정만 다음이 나다 이런 말을 했을 정도였죠. 저도 아닌 게 아니라 심각하구나 하는 생각을 했죠. 다행히 어떤 인생의 계기가 와서, 그걸 소설로도 썼습니다만. 입원을 하게 됐어요. 작품에 나와 있으니까 굳이 숨길 필요는 없는데 제가 입원했던 곳이 폐쇄병동이었죠. 거기서 다시 갱생이랄까. 다시 글을 써봐야겠다 이런 생각을 했어요. 근황이란 것도 늘 글쓰기인데요. 아닌 게 아니라 아까 나이 이야기를 했으니까. 우리나라 작가들이 조금 일찍 글쓰기를 그만두는 경향이 있는데, 난 그러지는 말아야지 한 게 오늘까지 왔죠. 젊었을 때의 다짐을 지켜볼까 하고 뭔가 하기는 해야겠다 하면서 늘 글을 썼고, 이게 제 근황이죠.



작가로서의 삶은 과연 행복했는가


김도언  개인적으로 저는 문청시절에 선생님 작품을 읽으면서 강렬한 인상을 받았고 영감도 많이 얻었습니다. 결과론적이지만 선생님께서 데뷔하신 같은 지면으로 저도 먼 훗날에 소설가라는 이름을 얻게 돼 더욱 더 선생님이 저에게는 각별하게 생각되는데요. 오늘 인터뷰의 취지가 선생님의 문학관과 세계관, 인생관, 그리고 작가로서 살아오신 시간들을 되돌아보시면서 소설가가 되고자 하는 작가지망생과 후배작가들에게 귀감이 될 만한 메시지를 전달하자는 것인데요. 처음부터 좀 도발적인 질문을 드려보겠습니다. 작가로서 선생님의 삶을 돌아봤을 때 과연 행복한 삶이었는지, 작가로서의 삶이 성공적이었다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윤후명  그것은 어쩌면 평론가가 대답해야 할 것이 아닌가 하는데요……. 나름대로 보람 있는 작가생활이었다고 생각해요. 내가 쓰고자 하는 것을 지켰으니까요. 다른 눈치 별로 안 보고 내 길을 걸어왔다는 게, 앞으로도 얼마인지는 모르지만 그렇게 가겠지요. 그런 점에서는 충실하게 살아왔다는 생각이 들죠. 또 자기 삶을 문학을 통해서 구현할 수 있었다는 점도 저로서는 행복한 부분입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는데 제가 소설가로 데뷔했을 때의 데뷔작이 3인칭 시점으로 씌어진 작품이었습니다. 그때 저는 이후부터 쓰는 소설은 모두 다 1인칭으로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것이 자기를 찾아가는 길이라고 설정했죠. 그 무렵에는 나를 주인공으로 하는 소설이 지금과는 달리 비주류였어요. 나는 내가 대체 누구인지를 알아봐야겠다, 문학이란 자기탐구가 아닌가 하는 생각으로 문학의 방향을 설정했어요. 그래서 초기에는 제 소설이 오해를 받기도 하고 그랬어요. 왜냐하면 저런 것도 소설일까 싶을 정도로 낯설었으니까 말이죠. 그런데 오늘날의 소설을 보면 거의가 1인칭이죠. 1인칭이 참 많아요. 문학은 물론 꼭 1인칭이어야 한다, 3인칭이어야 한다는 법칙은 없지 않습니까. 어떤 것을 해도 상관없는데 아무튼 제 신념에 의거해서 제가 하고 싶은 문학을 타협 없이 한 번도 잃지 않고 해온 것이 자랑스럽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 점에서 어떤 분들은 그래서 독자들과 서로 소통하기가 어렵지 않느냐는 이야기도 합니다만 저는 개인적으로 너무 많은 독자와 소통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옛날에 허균 선생이 했던 말이 있는데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기 글을 좋아하길 바라는 그런 사람을 나는 믿지 않는다는 말이었어요. 이게 참 어려운 이야기 같은 데요. 작가들은 누구나 많은 사람에게 읽히기를 바라는 것 아니겠어요. 그런데 허균 선생이 왜 그런 이야기를 했을까를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것이 철학적인 어떤 과제처럼 들리기도 한단 말이에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기를 좋아하기를 바라는 사람은 믿지 않는다는 문제와도 연결되거든요. 조금 철학적인 문제같이 들리는데 그 점도 또 곱씹어야 할 말이 아닐까. 이런 생각도 합니다.

 


1인칭 화자의 소설을 고집하는 이유


김도언  방금 말씀 하신 것처럼 데뷔하시고 비교적 초기부터 그 당시의 소설적 환경과는 다르게 1인칭 화자를 내세우는 소설 창작에 몰두를 하셨는데요. 그것은 자아탐구에 대한 욕구에 직접적인 원인이 있다고 보여집니다. 선생님 스스로도 자아를 확립하지 않으면 그 작가는 세계를 인식할 수 없다는 말씀을 하신 것으로 알고 있어요. 선생님께서는 데카르트의 ‘코기도 에르고 숨(Cogito ergo sum)’ 명제도 인용하시면서 그런 것을 설명하셨는데. 선생님 소설을 읽어보면 자아탐구가 직접적인 동인이 돼 1인칭 화자를 내세워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시는데, 소설을 다 읽어도 답은 여전히 오리무중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어떤 면에서는 선생님에게 있어 자아는 해석되어지지 않는, 보여지지 않는, 다시 말해 객관화가 불가능한, 화해 자체가 불가능한 주제가 아닌가 싶은데요. 이것은 어떤 면에서는 부정적이고 비관적인 세계관에서 촉발되는 것이 아닌가 싶거든요. 그래서 선생님 소설의 대부분의 분위기가 약간 음울하고, 공허하고, 어둡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실제로 자아탐구라는 주제와 관련해 세계를 부정적으로, 비관적으로 보시는지 궁금합니다.

윤후명  글쎄요. 세계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문제는 문학의 근본이 부정에서 출발한다는 말이 있듯이 보편적인 것 아닐까요. 긍정하면 쓸 수가 없으니까요. 아까 데카르트 이야기지만 그것도 역시 생각해보자는 것이 말하자면 의심하자는 것과 같은 것이거든요. 그것 또한 부정에서 시작하죠. 너는 뭐냐, 나는 뭐냐 이렇게 물을 때 이것 또한 부정에서부터 시작하는데, 그 부정 또한 문학을 가능하게 하는 긍정이죠. 다시 말해 문학은 부정에 의한 긍정이죠.



알 수 없는 것을 알고 가는 과정이 문학이다


김도언  부정의 문학적 가치를 조금 더 설명해주실 수 있으신가요?

윤후명  생각해 본다, 모든 것을 의심해 본다, 이것은 부정이지만 그러나 그게 긍정 아니겠어요. 이것은 분명한 긍정이죠. 저는 예전부터 우리 삶에서 개인 문제가 부족하다고 생각해왔어요. 어떤 사람들은 이것을 서구 사상이라고 이야기를 하죠. 그러나 동서양을 막론하고 개인 또는 자아를 탐구하는 것처럼 중요한 문제가 또 있을까. 그것 없이 어떻게 모든 역사가 있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그리고 문학을 통해서 그 문제를 다뤄보자고 생각했어요.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무엇인지 알고 싶어 하지만 성현이 아니고는 알 수가 없죠. 성현들은 보통 글을 안 쓰는데, 그 이유가 삶을 알기 때문이에요. 그러나 우리는 거기까지 가지 못하니까 글을 쓰는 것이죠. 저는 인생 자체의 목적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도 자주 생각하는데, 우리가 죽음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인생의 목적을 생각하게 되는 것 아닐까요. 그런데, 죽음이 목적일 수는 없잖아요. 목적은 결국 죽음에 이르는 과정 속에서 구성되는 것 같아요. 이를테면 삶 자체가 자기가 무엇인지를 알 수 없는 것을 찾아가는 과정, 이 자체가 삶의 목적이지 그것이 어떤 완성에 있다는 것은 아니라는 거죠. 우리가 오늘 만나 이야기를 하지만 이 자체 역시 삶이고 또한 이것이 목적이기도 해요. 나중에 어떤 목적이 있다면 그것은 죽음이겠죠. 죽음은 종결이니까. 그런데 역설적으로 죽음 자체가 목적이 될 수는 없잖아요. 죽음은 죽음이니까. 그렇다면 죽음에 이르는 길, 과정이 목적이죠. 자아탐구도 자기를 찾아가는 과정을 말하는 거예요. 자기가 뭔지를 안다면 아까 말했듯이 성인의 길이겠죠. 그러나 글 쓰는 사람은 성인이 아니죠. 과정을 탐구해야 하고 그 과정에서 늘 몸부림 쳐야 하고. 시시포스나 프로메테우스 신화처럼 그 돌을 굴려 산 위로 올라갈 때 목적을 이룬 것 같지만 다시 시작해야 하는 이런 운명이죠. 문학이. 목적이라는 것이 없죠. 이뤘다고 생각하는 순간 아니니까.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니까. 그래서 그런 과정을 끊임없이 탐구하고 반복하는 것이 작가의 운명이겠죠. 작가란 글쓰기를 통해서 이런 문제를 한번 확인해보자라는 생각을 갖는 사람들인 것 같아요. 그 목적을 이룰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말이죠. 시시포스도 알고 있겠죠. 몇 번인지 알 수 없게 다시 시작했으니. 그러나 다시 해야 하는 부조리의 상황에 처했다고 할까, 그러나 아까 말했듯 이 부조리, 부정 자체가 곧 긍정이죠. 이게 글의 길이라고 늘 생각해 왔어요. 이것은 끝이 없는 고행 혹은 형극이라고 생각해왔죠

 

 



윤후명 문학의 여성성


김도언  답이 없다는 전제하에 보이지 않는 답을 끝없이 찾고자 하는 과정 자체가 부정이 아니라 오히려 의심과 회의를 인정하는 것 자체가 어떤 면에서는 긍정이랄 수가 있다는 말씀이시죠. 그런 문제의식을 지금까지 여일하게 견지해 오신 것 자체가 선생님께서 꾸준하게 오랫동안 작품 활동을 하실 수 있었던 요체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네요. 좀 다른 질문을 드려볼게요. 아까 말씀하셨던 것처럼 병동체험이 들어 있는 소설, 「별을 사랑하는 마음으로」의 ‘그녀’처럼 선생님 소설을 보면 여성들이 남성 화자로 하여금 정신적으로 각성하게 하거나 인식의 전환을 하는 데 필수적인 계기를 던져주는 소설들이 많거든요. 그런 것을 보면 “여성성이 우리를 구원 한다”는 괴테의 말이 상기될 정도로 선생님 역시 여성성에 대해서 상당히 옹호를 하고 있는 입장이신 것 같은데요. 선생님 소설에서 여성성이란 과연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듣고 싶습니다.

윤후명  그와 비슷한 질문을 그 전에도 어디선가 들었던 것 같은데요. 제가 여성이라고 하는 것은 꼭 현실의 여성은 아니에요. 철학적 명제로 보자면 음양의 문제랄까. 전세계에는 두 가지 측면이 있죠. 전세계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말이죠. 쉽게 예를 들면 지구의 절반은 어둠이라는 것인데, 그것을 통해서 다른 한쪽의 세계를 바라볼 때, 그 반대쪽의 본질이 훨씬 더 잘 드러나 보이지 않겠는가 하는 거예요. 문학 작품 속에 여성이 등장할 때 어떤 사람은 현실적인 대상으로 여겨서 말하자면 “보바리가 누구냐”라고 묻는데요. 그 대답이 “보바리는 나다”라는 말이 있죠. 이런 식으로 여성은 나 자신일 수 있죠. 내가 세상을 보는 나로서의 눈이 있고 또 다른 시각의 프리즘을 통해서 보는 눈이 있다는 것이죠. 그 두 세계를 밝음과 어둠으로 볼 수도 있고, 음양으로 볼 수도 있고 좌와 우로도 볼 수 있겠죠. 내 소설 속의 여성은 그런 과정 속에서 나온 거예요. 내 말의 요체는 세상을 하나의 눈으로만 봐서는 안 되겠다는 거죠. 나는 여성을 통해서 내가 서 있지 않은 반대편의 시각을 구했던 것입니다.

김도언  그렇다면 선생님 소설 속의 등장인물들을 소설 구성상의 특정한 역할을 부여받은 캐릭터로 파악하면 안 되겠네요.

윤후명  그렇죠. 현실속의 여성 그 자체가 아니라는 것이죠. 다른 대상을 통해서 다른 세계를 볼 수 있다. 자기를 발견해 가는 과정에서 한 가지 눈으로만 볼 수는 없다. 그런 뜻이라는 거죠. 그래서 그런 여성이 등장하도록 한 거죠.

 


윤후명 문학의 식물성


김도언  그것과 연관해서 선생님 소설을 읽다 보면 예전 소설부터 지금까지 생소한 꽃, 식물 이름이 많이 나와요. 이런 꽃과 식물이 있었구나 이런 것에서 감탄할 때도 있는데요. 선생님께서는 한때, 소설가가 안 됐다면 식물학자가 됐을지도 모른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어요. 실제로 식물과 관련된 책도 펴낸 적이 있고요. 식물에 대한 비상한 관심의 연원에는 무엇이 있는지 듣고 싶습니다.

윤후명  어렸을 적에는 식물에 대한 별다른 생각도 없이 식물을 좋아했어요. 그런데 나중에 점점 생각하기를 식물만이 이 세상에서 유일한 생산자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식물 이외에는 다들 소비자죠. 우리는 아무것도 생산을 못해요. 우리 같은 동물들은 말이죠. 식물은 그 자체가 생산이죠. 동물과 식물의 차이는 흔히 움직이느냐 움직이지 못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근본적으로 생명을 책임지고 있느냐 못 지고 있느냐의 문제인 것 같아요. 다시 말하지만 양분을 생산할 수 있는 것은 식물 밖에 없죠. 그게 순전한 의미에서의 생산자라는 뜻인데요. 우리는 그것을 섭취하잖아요. 그래서 우리는 식물 앞에서는 한없이 겸손해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다 거기에 빚을 지고 있으니까. 난 그 세계의 숭고함 같은 것에 경도 돼 있었죠. 아까 말했듯이 식물에 대한 책도 하나 냈지만 잡문을 쓸 기회가 있으면 될 수 있으면 식물에 대한 글을 쓰려고 하고 있어요. 거기에 대해서 쓰다 보니까 책도 한 권 내야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던 거죠. 우리가 식물에 대해 너무 소홀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식물 자체만을 놓고 보면 투쟁성도 굉장한 것이거든요. 살아남으려는 노력이 상당해요. 그 점도 또한 소홀히 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어렸을 때 좋아하기 시작한 것이 지금은 어느덧 생활 철학처럼 돼 버려서 꽃을 심기도 하고 식물을 퍽이나 즐기죠. 꽃이라고 하면 이상하게 삶과 괴리된 것이 아니냐 하는, 꽃과 식물을 관상의 대상으로 밖에는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의 그런 관습화 된 태도에 대해서도 많이 아쉬워요. 어떻게 하든지 식물을 우리 삶 속에 끌어들여서 구체화해야겠다는 생각을 쭉 해왔죠.



원류를 찾는 질문으로서의 문학, 소설의 역할


김도언  가장 최근에 펴내신 소설집 『새의 말을 듣다』작가의 말에 보면 도자기의 진품과 가짜를 구분하는 방법으로 오래오래 보아도 싫증이 나지 않는 도자기가 진품일 가능성이 높고, 싫증이 빨리 나면 가짜일 가능성이 높다는 도자기 전문가의 말을 인용하는 말씀을 하셨는데요. 문학도 시대와 세월을 초월해서 꾸준히 오랫동안 읽히는 소위 만년작이 우수하고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오랫동안 꾸준히 읽히는 문학작품의 요체가 무엇인지 그것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계시는지 궁금합니다.

윤후명  어떤 원류를 찾아가는, 다시 말해 시류에 따르지 않고 원류가 무엇인지 물어보는 그런 자세가 우리 삶에도 필요하다고 봐요. 근본이 무엇이냐 물어보는 자세 말이죠. 사실 늘 시류에 맞추려는 것이 문학뿐만 아니라 다른 것에도 다 있죠. 거기에서 여러 가지 갈등이 생겨나는 거라고 생각해요. 우리 삶이 무엇인지, 역사가 무엇인지, 우리 삶의 뿌리가 무엇인지 이 전체를 종합해서 자기 안의 그것을 생각하는 태도, 그것이 진정한 문학인의 길이 아닐까 생각해요. 또한 그와 같은 자세가 고전적인 세계를 받아들이는 태도가 아닐까 늘 생각해왔어요. 조금 외로울지는 몰라도 그것이 참 아름답고 중요한 태도라고 봐요. 사실 원류를 구현해 낸다는 것은 상당히 어려워요. 하지만 필연적인 과정이라고 생각해야죠. 과정 속에서 그런 생각만 가지고 있어도 좋은 겁니다. 사실 그게 뭔지는 아무도 모르니까요. 늘 물어보는 자세가 필요한 거죠. 문학 자체가 예전에는 모든 문제에 대한 해답처럼 돼 있어서 어떤 문학 작품은 사랑은 이런 것이다라고 단정을 하기도 하죠. 하지만 나는 거기서 조금 더 달리 가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문학자가 해결사가 될 필요는 없다. 물음을 던지는 것이 문학이다라고 생각했어요. 해결방법은 시대에 따라 달라질 수 있잖아요. 하지만 물음은 사라지지 않아요. 삶이 무엇이냐고 물을 때 이 물음은 사라지지 않잖아요. 어떤 시대가 와도 “너의 삶은 무엇이냐” 묻는 질문이야말로 원류의 하나로 남아 있죠. 보통 독자들도 소설가가 어떤 문제를 제기해서 해결해 놓는 것을 바랍니다. 나는 그것은 조금 하류의 문학이다, 이렇게 생각해요. 그래서 내 문학이 좀 어려워지죠. 질문이니까. 사랑이 무엇이냐고 묻는, 사랑이 이런 것이라고 하지 않고 사랑이 무엇이냐고 물을 때는 누구한테나 어려워지기 마련이겠죠. 그러나 어려워지는 쪽으로 자기 인생도 가져가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런 점에서 문학자는 어떤 의미의 구도자다 이런 생각을 하죠.



소설가의 역할, 과거와 현재


김도언  방금 말씀하신 것과 연관해서 여쭙자면 예전의 작가들은 지금의 작가들의 역할과는 꽤 다른 역할을 떠안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방금 구도자라는 표현도 하셨는데 구도자로서, 시대의 지성으로서, 지식인으로서 우리 사회가 큰 혼란이나 혼돈에 빠졌을 때 그때그때 적절한 조언도 해주고 방향을 알려주는 역할을 했었거든요. 그런데 요즘의 젊은 작가들을 보면 구도자나 지식인의 역할에는 아무런 흥미도 못 느끼고 마치 연예인이나 패션 리더처럼 트렌디한 것에 관심이 많더라고요. 시대에 대해 발언하는 것에도 아무런 책무를 못 느끼고 말이죠. 이렇게 작가의 위상이 달라지는 것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윤후명  그게 흔히 말하는 문학의 위축 이런 이야기와도 연결되는 것 같은데요. 과거에 문학하는 것은 구도라고 표현한 것은 맞는데요. 내 생각에는 과거에는 문학자들이 너무 많은 위상을 가지고 있었다고 생각해요. 지사도 돼야 하고 재미있는 소설도 써야 하고, 사태의 핵심을 한마디로 제시할 수 있어야 하고, 다들 그런 역할들을 당연하게 여기고 맡아왔죠. 오늘날 작가들의 역할이 달라진 것과 관련해서 문학의 위축이라는 얘기를 할 때마다 나는 아니다, 제 위상대로 간 것이다라는 생각을 해요. 왜 문학하는 사람한테 여러 가지 역할과 스펙트럼을 요구하느냐, 그럴 필요가 없다 이거죠. 시대와 역사의 발전이라는 문제를 놓고 볼 때 옛날에는 여러 가지 문제를 아우르는 철학이 있었고 그것이 다였거든요. 간단하게 의학도, 과학도 그 안에서 다 나온 것이죠. 그런데 그것이 분화되어서 철학이라는 분야가 위축된 것처럼 보이는데 사실은 철학이 제 갈 길을 간 것이죠. 제 위상을 찾은 결과라는 말입니다. 나는 오히려 문학자가 그렇게 많은 역할을 감당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우주의 원리를 설명할 때도 예전에는 종합적인 지식을 통해서 설명했죠. 그런데 지금은 전문적으로 분화가 되어 각자의 입장에서 설명을 하잖아요. 난 그것이 옳다고 봐요. 우리나라 경우에 책이 영상 문제와 결부돼서 과거보다는 약화됐다고 하는데 전 또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그것도 제 갈 길로 간 것이라고 보죠. 옛날에야 매체가 발전이 안 돼서 소설이나 문학이 다 가지고 있을 수밖에 없었죠. 지금은 그럴 필요 없습니다. 순문학 서적의 판매량이 저조하다고 하는데 저는 그 정도면 충분하다고 봅니다. 소설이 어떤 재미를 다 그렇게 가질 필요가 없다. 왜 문학이 모든 것을 다 떠맡으려고 하는지. 그것은 미개 상태에 불과한 것이라고 생각해요. 오히려 지금 문학이 잘되고 있다고 보죠. 문학한테 너무 여러 가지 과도한 기대를 한다면 문학이 안 될 수밖에 없죠. 문학이 계몽주의도 돼야하고, 뭐도 돼야 하고, 그것은 아니죠.



시정어린 문체의 비밀


김도언  인터뷰의 취지가 개별 작품들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여쭙고 선생님께서 대답하시는 그런 형식보다는 이 인터뷰의 폭넓은 수요층을 생각해서, 소설을 쓰고자 하는 사람들, 문학에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 선생님에 대한 정보를 드리는 데 의미가 있다고 봐서 보다 전반적인 문제들을 여쭐게요. 선생님께서는 소설가가 되기 전에 시인으로 데뷔해서 시집도 내셨는데요. 선생님 소설의 분명한 특징인 문체와 관련해서 환상성과 시정어린 문제가 시를 쓰신 전력에서 찾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데 저 개인적으로도 시 쓰기가 선생님의 현재 소설 쓰기에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하거든요. 시에 대한 생각, 시를 쓰는 마음이 소설을 쓰는 문장으로 전이가 될 때 어떤 화학적 반응이 일어나서 특유의 향기가 나는 느낌을 받았는데. 소설을 쓰고자 하는 아마추어들 입장에서 궁금할 것 같아서 여쭙습니다. 그런 시정어린 문체라는 것이 꾸준한 연마에 의해서 습득이 되는 것인지, 타고난 재능과 더 관계가 있는지, 기질적인 것인지, 유전자에 관련된 것인지 궁금합니다.

윤후명  타고난 것을 자기가 어떻게 알 수 있나요. 알 수 없죠. 전 고등학교 때부터도 시인이 되려고 시 공부를 했죠. 시집을 내기도 했고요. 시를 쓰고 나서 11년, 12년 만에 다시 소설가가 됐어요. 시 쓰던 사람이 소설로 바꾸는 것이 장르를 넘나드는 것이 보편적인 외국에서는 자연스럽게 될 수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장르 구분이 좀 엄격한 편이거든요. 요즘 와서는 조금 덜합니다만 시인으로 있다가 소설가 되기가 까다로운 면이 여전히 있어요. 서로간의 방법론이 좀 다를 뿐이라고 생각해요. 난 길항 작용이라고 표현하고 싶은데 하나는 생략 응축 이런 쪽에 있고, 하나는 그와 반대로 펼침 쪽에 있다고 봐요. 이 두 개가 서로 싸우죠. 시냐 소설이냐 할 때 말이에요. 나 역시 이 점의 조화 때문에 애를 많이 먹었습니다. 그렇지만 어떻게든 이것을 조화해야 문학적 삶을 완성할 수 있겠다 싶어서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고심이 많았습니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시적인 것이 차용된 것이죠. 이것은 또 사실 저로서는 궁여지책이기도 했어요. 도대체 시적인 것을 아예 버리고 산문만 쓴다 할 적에는 충족이 안 되고 내 특징이 무엇이겠는가 하는 자괴감이 들더란 거죠. 작가라는 것이 남하고 달라야 하는데 말이에요. 어떤 분이 말씀하시기를 소설은 어떻게 쓰는 것이냐. 동서고금의 모든 소설을 읽고 그와 달리 쓰면 된다고 해요. 내 생각엔 이것이 명언 중의 명언 같은데, 달라야 된다는 것 그것이 핵심이죠. 그것이 문학인의 생명이죠. 비슷한 것을 답습하면 문학이 될 수 없는 것이라고 봐요. 아마도 이 점이 문학하는 사람들에게는 가장 중요한 문제일 거예요. 그런데 한편에는 자기가 잘 아는 것을 쓰라는 말도 있는데요. 가장 잘 아는 것이라는 것이 자기 삶 속에 녹아 있겠죠. 제 경우에는 그것이 시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그것을 차용하기로 했지요. 또 식물에 대한 생각을 차용하기도 하구요. 이런 식으로 해서 자기 세계를 찾아가보자 해서 나온 것들이 그런 소설이에요. 누가 일찍이 그것을 타고 나는 것을 알 수 있을까요. 그것은 오랜 연마를 통해서나 가능한 것이죠. 내가 처음 이야기한 것과 연결됩니다만 자기를 찾아가는 것이 문학이거든요. 오랜 동안 써 오면서 자기를 찾고 확립해가는 것이 문학이죠. 써가는 과정에서 자기를 만들어가는 것이죠. 연마를 통해서 자기 것이 되고 자기 삶이 되고 자기 문학이 되는 과정이 바로 글쓰기의 요체겠죠. 쓰는 분들이, 결국 가르쳐보기도 하는데, 뭔가 조금 답습하는 것이 있어요. 그 자체를 벗어나야 하거든요. 해답은 없는데 거기에 무슨 방정식이 있는 줄 알고 말이죠. 사실은 아무것도 없는데 말이에요. 자기를 찾고 확립해 가는 그 자체가 문학이라고 생각해요. 그것은 남한테는 절대로 없는 것이어야 하죠. 그 점을 좀 더 확실히 해야겠다고 늘 생각했어요. 내 소설을 돌이켜보면 소설이란 이러이러하다는 고정관념을 깬 것이 내 소설의 길이 아닐까 생각해요. 그전까지는 이렇게 말하는 것이 좀 어려웠어요. 그러나 거기에 진짜 삶의 길, 문학의 길이 있다고 생각하죠.

 



소설은 허구의 장르인가 아닌가


김도언  선생님 말씀을 듣고 보니까 아닌 게 아니라 제가 선생님 소설을 쭉 읽어오면서 느낀 것은 소설이라는 장르에 대해서 대부분의 소설들은 장르에 대한 형식과 내용적 특질들을 규정해 놓고, 그것에 묶여 다소간 경직돼 있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선생님 소설을 읽다 보면 소설이라는 장르적 특성에 대해 자연스럽게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소설이라는 장르가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을까 하는 생각까지 연결되더군요. 예를 들면 선생님 소설을 보면, 『새의 말을 듣다』에도 그런 내용이 있는데 일상적인 경험들을 그대로 소설 속에 들여놓고 겹쳐 놓는 소설들이 많다는 걸 발견할 수 있어요. 예를 들어 실존하는 시인 이름이라든가, 선생님이 집어든 책 이름이라든가, 작고한 작가 이름이라든가 이런 것이 소설 속으로 많이 들어오잖아요. 이런 어떤 구체적인 일상적인 체험 같은 것들이 소설적인 각색 없이 그대로 소설 속에 들어오는 전략이 어떤 차원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인지, 선생님만이 만들어낸 고착화 된 특질과 어떻게 연결되는 것인지, 그것과 관련해서 실제적인 체험을 소설 속으로 들여 놓는다면 기존 소설에 대한 장르 규정, 예를 들어 소설은 허구라는 것을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것인데. 그것과 관련해서 선생님께서 생각하시는 소설이라는 장르에 대한 입장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방금 전에 고정관념을 깨는 것이 바로 소설이라고 말씀 하셨는데.

윤후명  소설이라는 게 현대에 와서 상당히 달라졌다고 봐요. 물론 근자에도 제임스 조이스나 카프카 같은 실험소설이 있었고 그들의 소설은 과거의 소설과 조금 다르죠. 비유하자면 소설이라는 게 추상과 구상으로 생각할 적에 우리가 옛날에 생각했던 것은 구상의 세계였어요. 그러나 최근에 추상에 대한 인식이 생겼죠. 우리 삶과 생각에도 이와 같은 구분법이 있는데 사실 추상을 받아들이기가 좀 어려웠어요. 이것 자체도 지금에 와서는 받아들여야 한다는 쪽으로 바뀌고 있는 것 같아요. 어느 서양 소설가가 지금의 소설은 과거의 소설이 아니라 종합으로 가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어요. 저는 이것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과거에는 소설이란 이런 것이어야 한다고 했는데, 지금은 그렇게 말하는 것이 의미가 없어졌어요. 지금의 소설은 종합이죠. 어떤 범위까지 넓혀가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모든 것을 소설을 통해서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소설은 이러이러해야 하는 것이 아니고 종합이니까 말이에요. 그런데 과거의 소설은 종합이 못됐어요. 장르 개념이 명확해서 소설은 이래야 한다고 했던 것이죠.

김도언  제도권 교육에서는 여전히 그렇게 하고 있지 않습니까.

윤후명  제도권 교육이라는 것이 나왔는데요. 우리가 예전에 생각했던 소설이라는 것과 문학이론에서 가르치는 것은 예전의 소설에서 그 특징을 뽑았던 것이죠. 예전 소설을 보고 소설이란 이런 것이구나라고 말이죠. 그런데 지금은 새로운 것을 써야 하거든요. 진정한 작가라면 새롭지 않으면 더 이상 소설이 아니라고 해야 하니까요. 그렇다면 소설이란 이러이러하다고 가르칠 수 없는 것이죠. 그렇게 가르치는 것은 과거의 것이죠. 교육을 통해서 이것을 가르치는 것은 불가능해요. 새로운 게 무엇인지 모르니까요. 이 한계 속에서 문학교육은 상당히 딜레마가 있죠. 소설을 공부하는 학생들은 과거의 소설에 집착해서 소설이란 이런 것이구나 하지만 그건 답이 아니지요. 앞으로 나올 소설을 알 수 없으니까. 그 얘기를 하는 순간에도 우린 또 앞으로 가고 있죠. 소설이란 어쨌든 종합이라는 것까진 나아갔는데 종합이라는 것은 사실 너무 포괄적이라서 좀 어렵죠. 아무튼 소설이란 정의할 수 없다는 이야기 밖에 안돼요.

김도언  과거의 소설과 지금의 소설에서 지켜지는 것은 분량밖에 없는 것 같아요.

윤후명  그렇죠. 가르치려면 그렇게 할 수밖에 없어요. 여태껏 증거가 있는 데서 추출해서 이렇게 해왔는데 이 순간 벌써 그것은 아니라는 것이죠. 앞으로 어떻게 발전하느냐, 그것은 미래학자들도 아무도 몰라요. 종합일 뿐이다, 이게 대답이에요. 소설은 과거보다 훨씬 더 폭넓게 갈 수 있는 장르가 됐다는 것이죠. 어떤 제약도 없이 말이에요. 제약이라는 것이 있는 순간 소설이 아닌 입장까지 왔죠. 그 새로운 것이 어떤 것인지 우리는 몰라요. 소설을 보면 새롭구나 하고 느낄 수는 있어도 말이죠. 지금의 소설은 늘 새로워야 한다는 것이 지상명제로 돼 있어요.

 



동인 활동 시절과 습작 시절


김도언  소설가로 데뷔하신 이후에 ‘작가’라는 동인 결성을 하셨고. 아주 유명한 분들이 함께 멤버로 활동하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이문열 선생님이라든가, 김채원, 김원우 선생님들이 다 동인활동을 함께 하신 분들이었죠? 그때 동인을 결성해야 했던 필연적인 이유는 무엇이었는지 궁금합니다. 요즘 작가들은 무리를 지어서 정기적으로 모이는 경우가 극히 드문데 그 대신 요즘 작가들은 혼자 음악이나 사진 찍기라든가 게임이라든가 개인적인 취미에 함몰하는 경우가 많지 함께 무리 지어서 문학을 고민하고 자극하고 이런 문화는 없는 것 같더라고요. 이와 관련해서 답변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윤후명  글쎄. 그것도 시대적인 양상일 텐데요. 우리나라는 진정한 의미의 동인이라는 것이 있는지 없는지 그 문제부터 근본적으로 따져 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즉 어떤 이념이 있어서 같이 결성한 것인가라는 문제 말이죠. 외국에는 그런 이념이 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의 동인은 느슨한 형태의 동인입니다. 우리도 그때 모여서 한국문학을 책임져보자는 생각을 했었어요. 상업주의나 이런 것을 조금 이겨내자면 동인이 필요한 것이 아닐까라는 고민이 있었던 것이죠. 하지만 우리도 그랬지만 한국의 동인 역사를 보면 오래가지 못해요. 느슨한 형태이기 때문에 그래요. 어떤 이념으로 뭉쳐서 세계를 개혁한다는 문제까지 가지 못한 것이 한국의 동인지 역사예요. 그러니까 그것이 조금 가다가 막을 내리는 형태였어요. 동인지의 장점 중 하나는 눈치를 안 보고 자기 작품을 써볼 수 있겠다는 것이었어요. 그 점은 매우 유리한 점이라고 생각해요. 그때 모인 사람들은 꽤 열심히 했죠. 그래서 어떤 하나의 세계를 향유했다고 할까, 그렇게 까지 된 점은 있었어요. 하나 두드러진 점이 있는데 우리는 소위 말하는 순수문학 쪽의 사람들이었다는 거죠. 사실 순수문학 이야기만 나오면 80년대, 90년대까지 뭔가 시대에 빚진 것처럼 그랬던 것이 사실이에요. 우리 역시 문학의 본질을 옹호하겠다는 어떤 뜻이 있었어요. 쓰는 것 자체가 곧 참여다 뭐 이런 이야기였죠. 그것을 통해서 비교적 어떤 시대에 어떤 빚은 지지 않고 있었다 그런 생각을 합니다. 옛날에 팽팽하게 둘로 갈려 있던 시대를 생각할 때는 사실 쉽게 할 수 있는 얘기는 아니에요.

김도언  선생님은 문학을 전공하신 분도 아니고 스스로도 소설 이론에 대해서는 한 번도 공부해 보신 적이 없다고 하셨어요. 어쨌든 지금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소설가로 왕성하게 작품 활동을 하고 계시는데. 철학과를 가셔서 철학을 전공하시면서도 문학에 심취해 문학을 전공하는 다른 대학 문청들과 자주 어울렸다는 얘기도 들었는데요. 그 시절과 관련해서 인상적인 에피소드나 일화가 있으면 말씀해 주십시오.

윤후명  철학과에 들어간 것은 맞는데 고등학생 입장에서 철학과에 대해서 잘 몰랐어요. 아버님이 법과를 자꾸 가라고 하셨는데, 안 가겠다고 반항하면서 회초리도 맞았지만 끝까지 법과는 안 가겠다고 했습니다. 이미 문학에 심취했던 나는 당연히 문학하면 국문과를 가야하는 줄 알았죠. 그런데 아버님이 국문과도 안 된다 법을 해야 한다고 계속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절충안으로 나온 것이 철학과에요. 거기 가서 1년, 2년 해보면서 인생에 대해 생각해보면 네가 생각한 것이 잘못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해서요. 그래서 전공했다고 볼 수는 없고요 적만 두고 있었죠. 그렇게 해서 갔지만 저는 문학에 심취해 있어서 그때 서라벌예대 같은 데 찾아가서 강의도 듣고 그랬어요. 서라벌예대 졸업앨범 같은 걸 보면 몇 사람씩 그룹으로 찍은 사진을 보면 거기에 내 얼굴도 나와 있어요. 거기 놀러 갔다가 우연히 사진을 찍는 데 끼게 된 것이죠.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내가 서라벌예대를 나온 줄 알고 있는 사람도 있어요. 분명히 앨범에 내 얼굴이 들어가 있으니까 말이죠. 거기 다니면서 여러 선생님들도 뵙고, 좋은 친구들도 많이 만났죠. 소설 쓰는 이동하 씨니 시 쓰는 김형영 씨니 마종하 씨니 다 그때 만났어요. 40년도 더 된 이야기입니다. 그때 어울려서들 문학 운운하면서 많은 것들을 고민했죠. 지금 생각하면 상당히 유익한 시절이었어요. 그 쪽에 가서 어울리고 한 것이. 세월은 많이 갔습니다만 아직까지도 그 시절이 생각나고 그립습니다.

 



소설을 쓰는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것


김도언  선생님께서는 여전히 소설가가 되고 싶어 하는 작가 지망생들과 같이 클래스를 꾸려서 소설 수업을 진행하면서 소설을 가르치고 계시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평소에 제자들에게 가장 강조하는 것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제가 전해 듣기로는 소설 시간에 상당히 엄격하시고 의외로 형식이나 내용면에서 정통소설의 문법을 강조하신다고 들었어요. 기본기가 먼저라는 생각 때문에 그러시는 건가요?

윤후명  가르친 지 꽤 됐습니다. 학생들에게 특히 강조하는 것은 문장입니다. 무엇보다도 문장이죠. 당신이 가장 잘 아는 당신의 세계를 쓰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러나 문장은 매 시간 강조하는 것이죠. 문장 기본기가 안 돼 있다는 지적을 많이 해요. 그리고 기왕에 소설가가 되기 위한 공부이기 때문에 기본기를 주문하기도 하죠. 정통소설까지는 아니라도 그것을 강조하는 건 맞습니다. 그러나 작가가 되는 순간 지금까지의 공부를 버려야 한다고 분명히 얘기합니다. 사실 그 얘기를 해도 그 사람들은 그 말이 잘 안 들리는가 봐요. 학생들 입장에서는 제일 급하다고 여기는 것이 등단이기 때문에 등단한 뒤에 사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이야기가 잘 안 들리는가 봐요. 일단 관문을 통과하기 위해서는 기본기가 충실해야 하기 때문에 그것을 강조하죠. 그 다음에 아까 말했듯이 작가가 되면 달라야 한다는 말을 해요. 데뷔를 하기 위한 공부를 하는 학생들에게 다른 의미를 강조하면 그게 잘 소화가 안 되더군요. 기본기가 잘 돼야 한다는 것이 원칙이겠죠. 그래서 그 점을 강조하고 있어요.

김도언  과거에 비해 소설을 쓰는 사람들이 훨씬 많아졌다고 하는데요. 원고를 생산하는 방식 자체가 매체의 발달로 원고지에 손으로 쓰는 사람은 거의 없고, 다 개인용 컴퓨터로 쓰고. 문학은 위축되고 있다고 하는데 신인공모를 하는 신문사나 문예지는 여전히 많이 있고요. 선생님도 심사위원으로 많이 참여해서 신인 작가들을 발굴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러시다 보니 자연스레 젊은 세대의 작품들도 많이 읽으시는 것으로 알고 있거든요. 요즘 젊은 세대들의 작품을 읽어보면 어떤 느낌이 드세요.

윤후명  상당히 다양해졌죠. 옛날에 비해서 다루는 세계가 다양해졌죠. 최근에는 과학소설 영향을 받아서 그런지 미래 세계에 대한 소설이 상당히 많아졌어요. 좀 터무니없는 것까지 가는 것들이 종종 있어요. 그 점은 경계를 해야 한다고 봐요. 과학을 다룬 소설, 이른바 공상소설이라고 해도 상상력의 근거가 있어야 하는 것이거든요. 옛날에 잠수함 소설 이런 것은 근거가 있는 것이거든요. 그런데 요즘 젊은이들의 소설은 터무니없이 쓰는 사람들이 많고, 기본기나 문장에 대한 공부가 부족해요. 그런 사람들이 많아진 것이 특징이에요. 그런 점들을 좀 더 면밀하게 자각했으면 좋겠어요. 아무리 디지털 시대라도 해도 문학이란 것에는 아날로그적 요소가 있거든요. 당선 작품을 뽑을 적에도 역시 문장을 많이 봅니다. 이 작가가 과연 자신만의 세계를 가질 수 있을 것인가, 그 가능성에 대해서도 심사를 할 때 생각합니다.



불교적 테마와 샤머니즘


김도언  선생님 작품을 보면 불교적인 것에서 모티브를 얻은 작품들이 꽤 있는데요. 잠깐 생각나는 것만 해도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돈황의 사랑」부터 『삼국유사 읽는 호텔』, 「나비의 전설」 같은 작품에서 불교적인 이미지들이 주조음으로 등장을 하는데요. 실제로 소설 속의 공간적 배경이 불교 유적지가 되기도 하고요. 제가 알기로는 선생님은 불교대학도 다니셨고 포교사증도 가지고 있다고 들었어요. 선생님은 흔들림 없이 일관되게 데뷔 이후부터 소설가로서 첨예한 자의식을 가지고 정해져 있지 않는 답을 찾는 과정 속에서 깊은 고민과 회의를 통해 선생님의 세계를 만들어 오셨는데, 그런 세계를 지키는 것이 상당히 독자적이고 어떤 것에도 구속되지 않는 독립적 자아를 유지해야 가능할 것 같은데 그런 것과 종교적 신념이 어떻게 상보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는지 궁금하거든요.

윤후명  깊은 공부도 없이 불교를 자꾸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요. 저는 소위 원류라는 의미에서 우리 역사에서는 불교라는 것을 배제할 수 없구나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과거에 삼국유사라는 책에서도 그런 생각을 피력했는데요. 나는 아무리 외래종교라고 해도 그것이 한 나라의 건국과 얽혀졌다고 하면 외래종교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불교는 가야국의 건국을 이끌었죠. 소수림왕 때 전래된 것보다도 훨씬 이른 시기의 일인데, 수로왕 전설이나 신화에도 나와 있는 것으로 봐서, 그것이 서기 사십 팔년 쯤 됩니다. 가야국의 건국에 분명히 그것이 거론돼 있는데, 사학자들이 삼국유사를 참고할 만한 역사책이 아니라고 배제한 것은 잘못이라고 생각해요. 김수로왕의 가락국이 매우 중요한 역사라고 나는 생각해요. 이천년 되는 역사 속에서 불교가 계속 살아온 것인데 그것을 어찌 부인할 수 있나요. 나는 이런 불교가 한 세계로 가는 데 길잡이 노릇을 할 수 있겠다 싶어서 제 문학적 제재로 채택하기로 했죠. 불가의 세계에는 여러 가지 아름다운 이야기들 많이 있어요. 그 역사를 부정할 순 없겠다 싶었죠. 제 소설 자체도 그런 역사 속에서 뿌리를 내리고 있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흔히 그쪽 세계를 여러 소설에서 다루게 됐죠. 물론 이번에 낸 책에는 『새의 말을 듣다』에는 샤머니즘 이야기가 조금 나와요. 그것 또한 우리의 세계죠. 내가 불교든 샤머니즘이든 오래된 우리 민족, 그전에는 민족 생각을 잘 안했는데요. 이번에 쓰면서 보니까 나 스스로 민족을 생각하고 있더라고요. 내가 너무 이념적인 사람이 되면 안 되는데 싶으면서도 우리 뿌리를 생각하면 내가 또 한민족이 되는구나 이런 생각도 하고 했어요.



문학적 관심의 변화


김도언  저도 『새의 말을 듣다』를 읽으면서 그런 부분을 발견하면서 선생님께서 마지막으로 궁극에 이르는 과정으로 붙잡고 있는 화두 같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제 소견으로 선생님 문학작품들을 쭉 일견해 보면 초기부터 중기까지 개인적인 일상에서 발견해 내는 삶의 공허함이나 궁핍함 같은 것들, 가령 예를 들면 『협궤열차』 같은 경우에는 선생님께서 “내게 자멸의 시간은 지났는가” 라며 자칭 자멸파라고도 하셨고, 그런 시기를 거쳐서 최근 2000년대 이후에는 민족적인 원류, 민족적인 정체성을 찾는 모색의 일환들이 작품에 조금씩 보이는 것 같아요. 특히 『새의 말을 듣다』 에서는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북방 샤머니즘에서 찾고자 하는 어떤 관점이 진해진 것 같은 느낌이 들던데요. 이렇게 소설의 세계가 바뀌는 과정에서 특별한 인식의 전환 같은 것이 있었는지 궁금해요.

윤후명  나이 탓이 있다고 생각됩니다. 예전에는 혼자 했던 방황의 경험을 기록으로 남겨야 되겠다라고 생각했는데요. 이제는 삶의 전체의 모습을 더 생각하게 돼요. 그때는 전체의 모습이 아니라 젊음의 방황을 중요하게 여겼고 또 그것 자체가 삶이라고 봐서 그런 부분들을 많이 썼어요. 최근에는 종합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고 있는데 그런 때가 온 것이라고 봐요. 종합이라는 것은 나 혼자만의 문제를 생각하는 게 아니라 내가 속한 사회를 다 합쳐서 그 속에 있는 나의 문제를 밝히는 거잖아요.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몰라도 아마 당분간은 이런 문제에 좀 더 관심이 머물러 있을 것 같아요. 이제는 젊은 날의 방황을 그리워할 수도 없을 것 같고, 자멸파 운운하면서 험하고 어려운 터널을 지나온 것은 사실이고 그 기록 또한 내 기록이지만 이제는 뭔가 아름다운 완성 쪽으로, 물론 완성이 뭔가는 모르지만 그쪽을 기웃거려 봐야 한다는 의식을 하고 있어요. 그래서 아마 이렇게 되는 것 같습니다.

 



한국문학의 세계화와 근원적 아름다움에 대한 천착


김도언  방금 말씀 하신 것처럼 최근 작업을 보면, 원래부터 선생님 작품을 여로형 소설로 설명하는 사람도 있는데 최근에 펴내신 작품집에서도 화자가 국내와 국외 여기저기를 여행하면서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는데 그게 우리 소설사적 측면에서 보면 우리 소설의 영역이 넓어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거든요. 또 선생님 스스로도 글로벌한 세계화에 대해서 나름대로 자각을 하고 있다고 말씀하신 것을 들은 적이 있어요. 그것과 관련해서 질문을 드리겠는데요. 지금 한국문학의 세계화 논의가 상당히 많이 진전되고 있고 과거에 비해서 많은 작품이 해외에 번역돼 소개되고 있잖아요. 선생님 작품 중에도 프랑스에 소개된 것도 있고요. 노벨문학상에도 한국작가와 시인들이 우력한 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상황인데 그런 것들이 결실을 맺기 위해서는 체계적인 번역 및 출판지원 프로그램이 선행돼야 하겠지만 작가입장에서도 좀 더 노력해야 할 점이 있는 것 같거든요.

윤후명  실제로 외국에 나가보면 우리가 사실 우리 자신을 과대평가하고 과대망상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을 알게 돼요. 사실 아직까지 한국문학은 아주 미미합니다. 문학이 있느냐고 까지 물어볼 정도로 말이에요. 이웃 일본문학만 해도 100년이 넘었는데 우린 이제 시작을 했어요. 그리고 여전히 번역문제는 큰 벽이에요. 앞으로 우리는 갈 길이 멀다고 생각해요. 그 점에서 작가들이 무대를 외국으로 옮긴다고 해서 글로벌이 되느냐, 그렇지 않다고 봐요. 거기에 내적 필연성이 있느냐 하는 문제가 따라붙거든요. 왜 불란서냐, 왜 어디냐라는 필연성이 없어서는 아무리 외연을 넓혀놓는다고 해서 그게 우리 문학의 외연이 넓어지는 게 아니거든요. 우리는 그 점이 좀 부족하다고 봐요. 이 사람이 꼭 거기에 가야만 되는 확실한 것이 없단 말이죠. 그 점은 다시 한 번 생각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냥 왔다 갔다 하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거죠. 작가들의 노력도 필요하고 번역의 다양화가 매우 중요하다고 봐요. 일본 작가들은 러시아를 특히 많이 갑니다. 그런데 우리는 거의 없어요. 러시아 쪽으로 안 들어가요. 러시아는 스웨덴 한림원과의 문제가 있어요. 그 사람들은 옛날부터 전쟁을 하던 앙숙이지만 옆에 붙어서 서로 무시할 수 없는 영향을 미치죠. 그런데 우리는 그것을 간과하고 있어요. 그런 것까지 면밀하게 생각해야 해요. 어떤 사람은 왜 스웨덴에 직접 안 들어가느냐고 묻는데 그건 타당한 의문입니다. 그러나 스웨덴 시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문제가 생긴단 말이죠. 아닌 게 아니라 스웨덴에 직접 들어가면 훨씬 유리할 겁니다. 그러나 거기에 대한 정책이나 이런 것이 없기 때문에, 또 번역자가 없으니 어쩌겠습니까. 그런 점들을 다시 한 번 생각해서 대책을 세워야겠죠. 번역원에서도 열심히 하려고 해요. 어쨌든 우리는 초보 수준이라는 것. 안할 수도 없고 하기는 해야겠고. 그런 것을 냉철하게 인식해야 해요. 문화가 들어가야 하는데 우리는 그렇게 안 돼 있어요. 자꾸 일본하고 비교하는데. 우리는 정말 한참 뒤떨어져 있어요. 그들과 비교하는 것조차가 아직은 시기상조예요. 솔직히 좀 그렇죠.

김도언  마지막 질문을 드릴게요. 선생님께서 사석에서 가끔 말씀 하신다고 들었는데 아름다움에 대한 선생님 나름대로의 관점인 것 같은데요. “예쁜 것은 아름다울 수 없는데 추한 것은 아름다울 수 있다.”는 말씀을 가끔 하시는 걸로 알고 있어요. 저는 그 말씀 속에 선생님의 미학이 함축적으로 들어 있다고 생각해요. 선생님 연보를 살펴보면 강릉에서 나셔서 부산 내려갔다가 서울 올라오시고 많이 이사를 다니면서 지냈다고 알고 있는데. 어느 순간에 사춘기 무렵에 아버님이 의부라는 것을 인식하게 되면서 문학에 침잠을 하셨다고 들었어요. 그때부터 빠져든 문학에서 헤쳐 나오지 못하고 시인과 소설가가 되어서 아주 희귀한 스타일을 가진 작가로 우뚝 서셨는데. 선생님께서 자전적인 글에서 문학이야 말로 선생님의 모든 꿈을 무력화시켰다고 말씀하셨거든요. 아까 말씀하셨듯이 식물학자로서의 꿈, 역사학자로서의 꿈, 아버님이 원하신 법조인의 꿈도 문학 때문에 포기할 수밖에 없었고, 이처럼 모든 꿈을 좌절시키는 문학이 꿀 수 있는 꿈은 무엇인가. 모든 꿈을 좌절시키면서까지 해야만 했던 문학이 어떤 꿈을 꿀 수 있는가? 서두에 말씀드린 아름다움에 대한 관점과 연관 지어서 설명해 주십시오.

윤후명  전체 삶을 돌아보는 것처럼 어려운데요. 그때 그 꿈이라는 것은 현실의 이야기겠죠. 현실에 대한 세속적인 욕망을 접어야 했다는 의미로 말한 것이었어요. 옛날에 우리들이 문학을 하면서 어떤 보상을 바라고 한 것은 아니에요. 다른 사람들이 가고자 하는 길과는 다른 방향이었을 뿐이죠. 소위 세속적인 출세와는 멀어져야 한다는 현실의 문제가 도사리고 있었죠.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자기 자신과 그렇게 하기를 바라지 않는 주변의 욕망들과 싸움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나를 단련시켰다고 봐요. 투쟁을 해서 얻은 것이죠. 그런데 문학적 의미에서 자신과의 싸움은 결국 이길 수가 없는 싸움이에요. 그 길을 가는 것은 굉장히 고독하고 그 길 자체가 결코 승리할 수 없는 길이거든요. 다른 사람들이 다 큰 길로 가는데 자기만 보상이 없고, 피해를 보는 길을 택해야 한다는 건 굉장히 외로운 일이거든요. 아까 인용한 말은 사실은 고갱이 한 말로 알고 있는데요. 미화시킨 것은 진실이 없다, 그런 뜻으로 한 말이에요. 삶을 미화시키면 안 된다, 삶의 실체를 들여다봐야 한다, 이래서 그런 말을 했던 것이죠. 오늘날 와서 보면 남들이 좋은 세상이라고 여겼던 쪽을 안 가고 이렇게 왔던 것 또한 잘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세속적으로 봐서 어떤 것을 이뤘다고 얘기할 수 없을지는 몰라도 분명히 문학이나 나름대로 어떤 세계를 찾아왔다는 것은 괜찮은 길이었다고 여기게 됩니다.

김도언  첫 질문이 작가로서 삶이 성공적인 삶이었냐고 여쭈었는데 선생님께서 보람 있는 삶이라고 말씀 하셨잖아요. 그것과 연관되는 대답인 것 같습니다. 오늘 장시간 좋은 말씀 주셔서 많이 배웠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작품 많이 쓰시고 건강하셔서 계속 후배들 자극해 주시고 영감도 주시기 바랍니다.《문장 웹진/2008년 5월호》




* 인터뷰 후기 : 윤후명 선생님은 인터뷰 내내 맥주를 드셨다. 인터뷰를 마친 다음에도 꽤 많은 양의 맥주를 드셨다. 선생님은 여전히 아름다움을 좇는 자신의 자취를 수줍어하는 것 같다. 이날 선생님은 삶과 소설에 대해서 제법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지만, 내가 들은 것은 그저 단 한마디다. 삶을 아는 것은 불가능하며, 그 사실을 견디기 위해선 고독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 그는 그 말을 힘겹게 토해내고는 쑥스러워서 술을 마신 것일 테다. 그가 취하면 문득 세상이 슬프다. 그의 건강을 간절히 바란다.




윤후명  1946년 강원도 강릉에서 태어나 연세대 철학과를 졸업했다. 1967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시 「빙하의 새」가, 1979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소설 『산역(山役)』이 당선되어 등단했다. 시집으로 『명궁』등이 있고, 소설집으로 『둔황의 사랑』『부활하는 새』『모든 별들은 음악 소리를 낸다』『여우 사냥』『가장 멀리 있는 나』 등이 있고, 장편소설로 『별까지 우리가』『약속 없는 세대』『협궤열차』『무지개를 오르는 발걸음』『삼국유사 읽는 호텔』등이 있다. 이 밖에 장편동화 『너도밤나무 나도밤나무』, 산문집 『곰취처럼 살고 싶다』『꽃』 등이 있다. 녹원문학상, 소설문학작품상, 한국일보문학상, 현대문학상, 이상문학상, 이수문학상을 수상했으며, 현재 소설 창작론을 강의하면서 창작에 전념하고 있다.


김도언  1972년 충남 금산에서 태어났다. 1998년 「철제계단이 있는 천변 풍경」으로 대전일보 신춘문예에, 이듬해 「소년, 소녀를 만나다」로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었다. 소설집으로 『철제계단이 있는 천변풍경』『악취미들』이 있고, 장편소설로 『이토록 사소한 멜랑꼴리』가 있다. 현재 <작업> 동인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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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07-30
시 쓰고 자빠졌네

시 쓰고 자빠졌네. 이런 말 자주 들었다. 누군가에게 자주 두들겨 맞았고, 누군가에게 가끔 린치를 가하던 시절이었다. 이웃 여고 문예부 아이들이 어쩐지 예쁠 거 같아서 문예부실을 전전했다. 그리고 백일장에 나가곤 했다. 물론 남달리 예쁜 아이는 없었지만, 어쨌든 17세 남녀가 교복을 입은 채로 노래방에서 듀스나 룰라, 혹은 투투의 노래를 함께 부르는 모습은 남달리 아름다웠다. 되도록 빨리 노래방으로 가기 위해서 우리는 사바사바, 시를 썼다. 빨리 써야 했다. 시는 최초의 노래였으므로. 엉덩이를 두드리듯, 천사를 찾아. 발라드를 부르며 감정 과잉에 빠지는 철수에게 영희는 이렇게 말한다. 시 쓰냐? 그때 우리는 원고지를 눕히던 누런 잔디에서, 어두운 노래방에서, 혹은 밀도가 높은 교실에서 어떤 감정 속에 놓여 있었을까. 난 누군지 또 여기는 어딘지 아무도 알려 주지 않았기에 우리는 분노에 가득 차 교복을 줄이고 담배를 숨기고 몰래 술을 마시기도 했다. 수채화 대신에 야간 자율 학습 감독을 주로 하던 미술 선생은 또 말했다. 또, 또 시 쓰냐? 시화전 제출 작품에서 피 흘리는 고등어를 그려 놓고 ?어느 고딩의 죽음?이라 제목을 붙이며 나는 전위를 담당한 듯 당당했다. 부끄러움이 없는 남자였다. 미술 선생에게 욕을 먹을 때에도, 맞을 때에도 나는 부끄러움을 몰랐다. 대한민국 학교 다 족구하라 그래. 시 쓰고 자빠졌다, 정말. 정말이란 말에 대해 오래 생각해 본다. 오래 생각하는 버릇은 이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다. 최대한 짧고 단순하게 사고한 것으로 보이는 일들이 생각보다 빠르고 무식하게 벌어지고 있다. 정말? 시집을 묶어내던 중에 바위에서 사람이 떨어져 죽었다. 그 부엉이는 정말 새였을까. 도심에서 사람이 불에 타 죽었다. 그 망루는 정말 구름이었을까. 모두 정말이냐고 정색하며 물어 볼 만한 일들이었다. 분노가 치민다. 지금 나와 싸우자는 건가? 그런데 싸우는 법을 배운 적이 없다. 아니다. 싸움은 끝났다고, 이제 싸움이 아닌 경쟁의 시대라고 배웠다. 나는 그저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잘 모르겠어서, 화가 났다. 사실 싸움보다 훨씬 경쟁이 무서웠다. 사건은 이미지가 되는 순간 거짓말이 된다. 이 모든 게 차라리 멋진 거짓말이었으면 좋겠지만, 이것은 너무나 끔찍한 거짓말. 난삽한 이미지. 이미지가 아닌 이미지. 그러므로 차라리 보이는 게 진실이라고 믿어 본다. 이 지긋지긋하고 끔찍한 진실이 시의 배후가 되어 시에 맘껏 개입해도 나는 좋다. 시가 그렇게 하지 못하겠다면 기꺼이 네가 그렇게 하라. 가져간 나의 반쪽! 때문인가. 이제 둘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그래, 리얼리스트 되자. 모던한 리얼리스트가 되자. 모더니스트가 되자. 리얼한 모더니스트가 되자. 장난하느냐고? 그렇다면, 불길한 장나니스트라고 해 두지 뭐. 꼴에 시랍시고 자빠졌네. 이런 말 자주 들었다. 하지만 누가 뭐래도 나는 시가 좋다. 그리고 시가 밉다. 사랑하고 미워하며 안절부절못하고 있다. 처음 증상을 보일 때는 이렇게 데뷔를 하고 시를 쓰리라 짐작하지 못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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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07-15
일본 소설, 한국 시

일본 소설, 한국 시 한성례 한국에서 일본소설의 베스트셀러 현상 한류바람이 뜨겁게 일본 열도를 달구기 시작한 2000년 이후부터 한국에서 일본소설은 폭발적인 인기를 구가해왔다. 일본보다 한국에서 더 인기가 많은 작가가 나올 정도로 한국은 일본소설 홍수 시대이다. 이 같은 현상에 대해 일본인들은 물론이고 일본소설가들조차도 왜 일본소설이 한국에서 그렇게나 많이 팔리는지 몹시 궁금해 한다. 이에 대한 일본 신문의 인터뷰나 원고의뢰가 있을 적마다 나는 현재 한국에서의 한국시에 비유해서 설명을 한다. 이전에도 한국에서 일본소설은 종종 많이 팔렸다. 70년대 중반에 첫 출간된 무라카미 류(村上龍)의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는 해적판이 끊임없이 이어졌고 출판금지서임에도 안 읽은 사람이 없을 만큼, 문학이나 예술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의 필독서이고 바이블이었다. 1999년 정식으로 저작권 계약을 맺어 커버에 비닐을 씌워 19세 미만 구독불가로서 출간된 후에도 쇄를 거듭하며 읽히는 소설이다. 또한 1989년 원제인 『노르웨이의 숲』이 『상실의 시대』란 이름으로 출간된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의 소설은 당시 크게 각광을 받았고 지금도 계속해서 읽힌다. 당시 한국은 민주화 쟁취와 맞물려 자의식이 집단에서 개인으로 향하던 시기였다. 민주주의가 아직 성숙하지 못한 상태여서 사회, 정치적으로 안정되지 못했고, 급변하는 사회적 환경 속에서 개인이 느끼는 소외감, 고독, 상실감 등이 당시 한국 젊은이들이 처한 현실과 겹쳐지면서 이 소설에 크게 공감했다. 더욱이 하루키의 가독성 높은 문장은 금방 젊은이들을 사로잡았다. 한편으로 문학의 구도자 같은 마루야마 겐지(丸山健二)의 소설도 여러 편 번역 소개되었는데, 이는 주로 문학 창작자들이 마니아였다. 하지만 일본소설의 인기는 단편적일 뿐 전반적인 경향은 아니었다. 오히려 서구소설이 중심을 이뤘다.그러던 것이 에쿠니 가오리, 요시모토 바나나, 쓰지 히토나리, 히라노 게이치로, 요시다 슈이치 등 젊은 작가와 미야베 미유키, 스즈키 코지, 히가시노 게이고 등의 미스터리 소설과 나오키 상을 비롯한 여러 문학상 수상작이 2000년 이후에 대거 한국에 번역 소개되었고, 대형서점에는 코너가 별도로 마련될 만큼 일본소설은 인기를 끌고 있다. 왜 일본 소설을 좋아하는 것일까 무엇보다도 일본소설은 재미있다. 독자를 의식하고 소설을 썼다는 게 금방 느껴진다. 말하자면 자신의 상품을 사줄 소비자의 위치에서 창작을 한다는 것이다. 젊은이들은 일본소설을 읽으면서 비현실적인 주인공을 통해 현실에서 실제로 행동에 옮기지 못하는 자신의 일탈을 꿈꾸고, 대리만족을 느낀다. 일본소설의 주인공 젊은이들은 특별한 목표도 없고, 무기력하며 수동적이고, 나약하기 짝이 없다. 그들은 시대의 흐름과 기존 질서에 따르지도 않고, 세상을 약간은 냉소적이고 관조적인 눈으로 바라보면서, 보편적인 부와 명예, 사회적인 안정 등과는 거리가 멀다. 이에 독특한 상상력과 가독성 높은 문장도 한 몫 한다. 최근 일본과 한국에서 밀리언셀러 판매 기록을 갱신하는 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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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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