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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을 건너가는 풍경

  • 작성일 2009-06-26
  • 조회수 3,108


풍경을 건너가는 풍경  

 

대담  김명인(시인)

진행  김행숙(시인)

 

 

인트로 

바다 밑을 들여다보는 적막한 시간 

『동두천』 

『머나먼 곳 스와니』 

『물 건너는 사람』 『푸른 강아지와 놀다』 

『바닷가의 장례』 『길의 침묵』 

『바다의 아코디언』 

『파문』 

「아버지의 고기잡이」 

시를 쓰는 일은 절체절명의 일 

 

 

낚싯대가 드리운 우주  

 

김행숙  선생님 안녕하세요. 선생님과 함께 시 이야기, 삶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되어 기쁩니다. 선생님은 1973년에 등단하셨고 첫 시집을 79년에 내셨습니다. 첫 시집이 나온 지 올해가 정확히 30년 되는 해입니다. 30년이 넘는 세월을 여덟 권의 시집(『동두천』(1979), 『머나먼 곳 스와니』(1988), 『물 건너는 사람』(1992), 『푸른 강아지와 놀다』(1994), 『바닷가의 장례』(1997), 『길의 침묵』(1999), 『바다의 아코디언』(2002), 『파문』(2005))과 함께 묶이고 펼쳐지며 살아오셨는데요.

김명인  시를 쓰기 시작한 걸로 따지면 40년이 되지요.

 

김행숙  요즘은 어떻게 지내세요?

김명인  올 1월에 학교에서 맡고 있던 학장의 임기를 마쳤습니다. 그리고 이번 한 학기는 연구 학기라 쉬었습니다. 그래도 학교에 할 일이 생겨서 1주일에 한 번 정도는 학교로 출근하며 지냈어요.

 

김행숙  그럼 낚시도 다니고 하시겠네요.

김명인  한 번 갔다 왔어요. 당진에 가서 배를 타고 우럭 낚시를 했지요. 그날은 운이 좋아서 고기를 꽤 여러 마리 잡았어요. 올해 첫 낚시였네요. 작년에는 거의 못했고, 그러고 보니 근래엔 좀처럼 여유가 생기질 않았나 봅니다. 그전에는 아무리 시간이 없어도 한 달에 한두 번 정도는 낚시를 다녀왔어요. 낚시를 평생의 취미로 알고 살아왔던 게지요.

 

김행숙  선생님 시집을 읽다 보면 낚시 이야기, 낚시 이미지가 자주 눈에 띕니다. 또 여덟 권 시집의 자서(自序)만 떼놓고 보아도 두 편이나 낚시와 관련되어 있어요. 제가 한 구절 읽어 볼게요. 시집 『길의 침묵』에 붙이신 자서인데요. ‘낚싯대를 펴놓고 축축한/ 바위에 웅크리면/ 그 발 아래 우주선 같은/ 손바닥만한 말미잘이 해안 가로등/ 불빛을 흠뻑 머금고 있다/ 나는 저 바위 꽃이 열어 놓은 문을 통과하여/ 또 다른 우주로 나아가야 한다’, 그렇게 쓰셨어요.

김명인  그 바위 모습은 형상으로 떠올릴 수 있어요.그러니까 그 바위는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실감 속에 있는 거예요. 어릴 시절 고향 마을에서 1km쯤 걸어 나가면 백사장이 펼쳐지고 바위들이 촘촘하게 엎으려 있는 바닷가가 나왔어요. 그 바위에 큼직한 말미잘들이 많이 매달려 있었지요. 말미잘을 밟으면 물컹했는데, 그 감각이 생생하게 기억에 남아 있어요.

김행숙  그 물컹한 말미잘을 우주선이라고 하셨어요.

김명인  그렇죠. 우주선처럼 둥글게 생겼죠. 거기에 무언가가 닿으면 오므라들고. 그렇게 바로 어린 시절 보았던 것이 감각으로 기억 속에 새겨져 있는 것이겠죠. 그러니 유년의 세계 속에서 나는 바다를 접했고 바다와 무의식의 인연을 키워온 게 아닐까. 어린 시절의 우주가 지금의 우주와 겹쳐져서 시에 표현되는 것이 아닐까. 낚시는 내가 워낙 좋아하니까, 낚시를 시에 견주어서 글을 쓴 적도 있어요. 시-쓰기와 낚시-하기는 묘하게 일치되는 측면이 있어요. 그런 주제로 문학 강연을 해본 적도 있지요.

 

낚시꾼은 육지에 서 있거나, 배를 탄 채 파도 위에 떠 있다. 그런데 물고기는 바다 속으로 회유한다. 시의 물고기 또한 시인의 심연, 곧 무의식의 바다 속에 있다. 보이지 않는 시의 물고기를 어떻게 사로잡을까. 시인들은 저마다 부단한 궁리로 애쓰지만, 어느 어부에게도 스스로 잡혀주는 물고기는 없다. 시의 낚시꾼도 몰두하여 배우고 쇄신하면서 절차탁마의 길을 가야 한다. 시간을 기다리면서 인내하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무심한 낚시꾼은 사로잡힌 물고기조차 놓아 보낸다. 별난 시인 또한 시의 어로로 무한자유를 실천하는 사람일 것이다. 예수가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라.” 큰 시를 낚는 진정한 묘미라면 나도 깊이 맛보고 싶다.

                                                 - 산문 ?시를 낚는 낚시꾼 ? 중에서

 

김행숙  선생님의 시를 좋아하는 많은 독자들처럼 저도 선생님의 낚시 취미가 시와 만나는 지점을 봤던 기억이 있어서 오늘 이야기의 첫 운을 낚시 이야기로 떼었습니다. 선생님의 표현에 따르면 시인이란 시를 낚는 낚시꾼이면서, 또한 바다 밑 보이지 않는 세계를 하염없이 들어다보는 적막한 시간을 감당하고 있는 낚시꾼이겠지요. ‘시간’과 ‘시선’의 문제와 연결되면서 낚시는 선생님 시에 특별하게 작용한다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기교도 없이 새소리도 없이 가라고……

 

 

김행숙  오늘 선생님과의 대담을 어떻게 풀어 나갈까 고민하다가, 그냥 시집을 펼쳐놓고 따라가보는 식으로 해보자고 생각했습니다. 일전에 저는 선생님의 인터뷰어가 되었던 적이 한 번 있었는데요, 『작가세계』(2007, 봄)에서 선생님 특집이 마련되었을 때지요. 그때 저는 ‘시와 삶, 그 하나에 이르는 길’이라는 제목으로 선생님 말씀을 정리했었습니다. 『반시(反詩)』 창간호(1976. 6) 선언문 중에서도 ‘우리가 옹호하는 시는 언제나 삶의 문제에 귀일하는 것이고, 시의 바탕은 삶과 동일성으로 이해될 수 있으므로……’와 같은 구절에 방점을 찍을 수 있겠지요. <반시> 선언이라면, 시인으로서 시에 대한 자각을 새롭게 다짐하시면서 세상에 내놓은 첫 선언일 텐데요, 젊은 신인 김명인이 시와 삶의 동일성에 대한 말을 하였습니다. 오늘은 시집을 한 권 한 권 여기 책상 위에 꺼내놓으면서 시 얘기, 삶 얘기를 풀어 나가면 어떨까 싶습니다.

김명인  좋습니다.

 

김행숙  첫 시집 『동두천』을 펴놓고 먼저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습니다. 79년에 나온 시집 『동두천』에서 ?동두천 Ⅳ?라는 시를 보면 ‘기교도 없이 새소리도 없이 가라고/ 내 詩를 때린다 우리 모두 태어나 욕된 세상을’이라는 구절이 있어요.

김명인  생각해 보면, 내 데뷔 작품 ?출항제?는 197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당선작인데 이것이 첫 시집에 실려 있지 않아요. 『동두천』에 실려 있는 시들은 대개가 75년 이후에 발표한 시들입니다. 그 전에, 그러니까 등단하고 2년 동안에 시를 안 썼는가, 하면 그건 아니거든요. 누구보다 시를 많이 썼고 열심히 썼는데, ‘반시’라는 동인을 하면서 내 나름대로 반성이 찾아왔고 그 반성 속에서 이전에 쓴 시들을 다 버렸어요. 2년 동안 쓴 시를 버리면서 이전까지의 나의 시 세계를 내 스스로 부정해 버린 겁니다.

시집 『동두천』의 시편들은 동두천에서 실제로 7개월가량 지냈던 체험이 바탕이 되었습니다. 대학을 어찌 어찌하여 졸업을 하긴 했는데, 갈 데도 할 일도 마땅치 않았던 시절에 구한 직업이 동두천에서의 국어교사였어요. 그리고 동두천 시절 7개월 후에 군대에 갔지요. 그 경험들이 내 시에는 아로새겨져 있고, 오랫동안 내 속에서 여과되면서 ‘시가 어때야 하는가’라는 질문으로 되돌아오곤 했지요. 그러나 데뷔 첫해는 내가 어쨌거나 시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생각에 빠져 있었고, 관념적인 얘기를 시로 만들려고 애를 쓴 기간이었는데, 그러다가 나한테 반성이 찾아왔습니다. 과연 내가 이것을 내 시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내가 아로새겨져 있지 않은데 이것을 어떻게 내 시라고 할 수 있을까. ‘기교도 없이 새소리도 없이 가라고/ 내 詩를 때린다 우리 모두 태어나 욕된 세상을’이라는 구절은 나를 때린 반성의 문장이지요. 그 반성의 과정 속에서 내가 잘 아는 얘기, 나만이 쓸 수 있는 것, 내가 부대끼는 시대를 시와 밀착시켜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그 각성이 반영된 ‘반시’라는 동인이 결성되었어요.  『동두천』은 그 와중에서 쓴 작품들로 구성된 시집이죠.

 

김행숙  신춘문예라는 제도로 한 번 등단을 하시고, 그리고 선생님 자신의 손으로 자신의 시를 버리면서 다시 한 번 더 시인으로 거듭났으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좀 전에 봤던 ?동두천 Ⅳ?라는 시에는 ‘혼혈아야 내가 국어를 가르쳤던 아이야’라는 구절이 있지요. 동두천 체험은 모국어에 대한 또 다른 경험이기도 했으리라 여겨집니다. 그리고 월남전 체험도 시집 『동두천』에 중요하게 작용하고 있습니다. 대담 전에 잠깐 보았던 선생님의 여러 장의 사진 중에서 군대시절 사진에는…….

김명인  손에 들고 있는 거 진짜 수류탄입니다.

김행숙  현대사가 느껴지는 순간이네요. 『동두천』은 선생님 개인의 삶에 충실한 시집이면서 동시에 한 시대에 가장 깊이 있게 다가간 시집이라고 하겠습니다.

김명인  사실 나는 군대 안 가도 되었는데, 억지로 군대에 간 경우였지요. 평생에 내가 안고 있는 고민 중의 하나가 한쪽 귀가 안 들린다는 것입니다. 중학교 1, 2학년 무렵에 한쪽 귀가 안 들린다는 걸 알았죠. 젊은 날부터 들리는 쪽의 귀마저 이명이 있어서, 내가 갑작이 소리를 못 듣게 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을 늘 갖고 있었어요. 그 때문에 군대도 제때 갈 수가 없는 형편이 됐고 또 안 가도 되는 경우였는데, 억지로 고집을 피워 군대 체험을 그런 식으로 했습니다. 무모하다고 해야 할까 미련하다고 해야 할까.

김행숙  결국 시를 쓰기 위해서 그런 억지를 피웠던 게 아닐까요. 언젠가 선생님은 ‘나의 시쓰기에는 처음부터 우연과 필연이라는 서로 길항하는 생의 추동력이 함께 자리잡고 있었던 셈이다’(?우연과 필연 -나는 왜 문학을 하는가?)고 하셨는데요, ‘우연’으로 삶은 닥쳐오지만 흐르는 시간 속에서 그 우연은 필연이 되기도 하는 것 같아요. 어쩌면 시 쓰기라는 게 자기 삶을 필연으로 만들어 가는 과정이라는 생각도 드는데, 선생님의 군대 체험도 그렇게 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김명인  그렇죠. 그 바람에 특별한 경험을 하게 되었고, ?베트남? 시편을 쓰게 되었죠. 그렇다고 해도 군대에서 졸병으로 꼬박 그 긴 시간을 채우면서 내 시간을 그런 식으로 바꿀 수가 있었을까. 지금 같으면 아마 그렇게 무모한 짓, 어리석은 짓은 안 했을 것 같아요.

김행숙  제게 그런 오빠나 남동생이 있었다면 분명 뜯어말렸을 겁니다.(웃음)

 

 

영원히 되돌아오는 유년

 

 

김행숙 이제 두 번째 시집, 『머나먼 곳 스와니』(1988)를 펴놓을까요. 두 번째 시집 출간은 그 간격이 굉장히 길었습니다.

김명인  첫 번째 시집도 출간이 굉장히 늦었죠. 데뷔가 73년이고 79년에 첫 시집을 냈으니까 6년이 걸렸고. 두 번째 시집 『머나먼 곳 스와니』는 88년에 나왔으니까 10년 만에 나온 시집입니다. 사실은 시만 써서 먹고 살 수 없었기 때문에 데뷔한 후에 중학교 선생도 한 3년쯤 했고, 그러다가 공부가 더 하고 싶어져서 대학원엘 갔는데 대학원을 다니면서 낸 시집이 『동두천』입니다. 80년부터 대학에 자리를 잡았어요. 80년은 우리에겐 미증유의 사건이었죠. 어려웠어요. 그 와중에 시 쓰기란. 시를 못 쓰는 시간이 7년 8년 흘러갔어요. 왜 시를 못 썼는가. 그때는 학위도 따야 했고, 개인적으로 무력해지기도 했죠. 첫시집 이후 시적 전개를 새롭게 열어나갈 만한 전망이 생겨나지 않았다는 것도 이유가 되겠죠. 7~8년을 시를 못 썼습니다. 시를 1년 못 쓰면 회복하는 데 1년이 걸리는 법인데, 시를 못 써서 괴로워진 기간이 7~8년이에요. 두 번째 시집은 내가 다시 시를 쓸 수 있는가를 속으로 열심히 가늠해 본 시집입니다. 이 시집에 대한 비평적 평가가 어떨지는 모르지만 저한테는 매우 애틋한 시집이지요.

 

김행숙  두 번째 시집에서 유난히 눈에 많이 띄는 게 어린 시절 이야기인데요. 선생님 말씀을 듣다보니, 시적 암투를 다시 시작하면서 우리 의식의 가장 밑바닥에 깔려있는 유년을 곰곰이 들여다보게 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네요. 선생님 시에는 어린 시절의 궁핍과 결핍이 문제적인 경험으로 나타납니다. 유년기는 그 당시에는 그냥 겪어낼 뿐이지만, 이 경험은 평생에 걸쳐 되돌아옵니다. 꿈자리로도, 또 시로도 돌아오는 거겠죠. 시집 『머나먼 곳 스와니』를 통해 시에서 유년이 갖는 의미와 위치에 대해 말씀 여쭙고 싶습니다.

김명인 『머나먼 곳 스와니』에는 유년기의 사건들과 이미지들이 집중적으로 드러나는데, 아마 다시 시를 쓰기 위한 일종의 제의와 같은 것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또는 원형으로 회귀하려고 하는 몸짓과도 연결된다고 할 수 있겠죠. 누구에게든 유년은 아련하고 그립고 어느 정도 미화되어 있어요. 그런 과거로서의 유년이 나한테는 전혀 없다고 할 순 없지만, 나에게 유년은 상처입니다. 나는 유년이라는 상처를 『머나먼 곳 스와니』에서 드러내면서 극복하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더욱 이 시집은 개인적으로 각별한 데가 있어요. 내 고향은 경상북도 울진군, 어렸을 때는 강원도 울진군 평해면 산율리였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 땐가 행정구역이 바뀌면서 경상북도가 됐는데, 궁핍한 바닷가 마을이었죠. 한마디로 말하면 몰락한, 전쟁이 할퀸 상처가 그대로 새겨진 가정의 우글거리는 남매들 가운데 태어나서 늘 결핍감에 시달렸던 어린 아이의 모습. 벗어나지도 못하고 벗어날 길도 없는 그런 결핍에 시달렸어요. 그러니까 오랫동안 그런 것들이 시를 쓰면서 알게 모르게 내 시를 억압하는 기제가 되지 않았나 싶어요.

 

어둠은 작은 불빛도 내몰면서 언덕에서

하늘 끝에서 추위를 몰고 왔다.

긴 밤은 언제나 그 한가운데를

기적이 울면서 천천히 끊고 가서

잠깨면 배고파지고 다시 드는 잠 깊어지지 않고

 

새벽까지는 수많은 먹을 것들과 이름도 모를

음식들이 생각났다, 나는 커서 식당을 차리리라

풍성한 눈들이 어둠 속에서도 유리창 가득

서걱거리는 것을 바라보면서

                   - ?머나먼 곳 스와니 Ⅱ? 부분

 

 

물 건너는 사람이 만난 풍경들

 

 

김행숙  『머나먼 곳 스와니』가 『동두천』과 10년의 간격이 있었다면, 그 이후로는 3년, 4년마다 좋은 시집을 보여 주셨는데요. 정말로 촘촘하게 시 쓰는 것과 살아가는 것이 짜여진 결과겠지요. 40년 시력과 여덟 권의 시집과 작품 수보다도 이렇듯 많은 작품을 꾸준히 써 오시면서 편편의 작품마다 긴장감을 끝내 놓지 않고 써왔다는 것이 놀랍습니다. 그 놀라움은 미학적인 차원에서 인간적인 차원으로 넘어가는 것이기도 합니다. 1990년대에는 『물 건너는 사람』(1992), 『푸른 강아지와 놀다』(1994), 『바닷가의 장례』(1997), 『길의 침묵』(1999), 이렇게 네 권의 시집이 계속 출간되었습니다. 이 중에서 먼저, 『물 건너는 사람』이나 『푸른 강아지와 놀다』의 시편들을 보면 선생님의 또 다른 경험 중에 외국 생활이 나타나요.

김명인  『물 건너는 사람』에는 미국 체험, 『푸른 강아지와 놀다』에는 러시아 체험이 나오죠.

김행숙  이방인으로서의 경험은 선생님의 시에 나오는 방랑의 이미지, 혹은 약간 세상으로부터 떨어져나와 있는 고절감, 생활에서 자기를 좀 떼어 놓고 바라보거나 관찰하는 시선들과도 무관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이 시집 두 권을 놓고 선생님의 이국 체험에 대해서도 얘기를 들어 보고 싶습니다.

김명인  『머나먼 곳 스와니』가 출간된 88년 그해 12월, 2년간 교육부 연구비를 받아서 미국에 교환교수로 갈 기회가 생겼죠. 내가 택해서 갔던 학교는 미국의 중서부 사막 지역에 있는 유타 주의 브리검 영 대학이었습니다. 몰몬교에서 세운 대학인데 상당히 금욕적인 분위기가 배어있는 대학이었죠. 거기서 나는 교환교수 자격으로 미국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국말로 한국 문학을 가르치면서 2년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나는 대로  주변의 사막 지역을 여행했어요. 그렇게 완전히 다른 세계 속을 떠돌아다니면서 『동두천』이나 『머나먼 곳 스와니』의 세계가 나름대로 정리되었습니다. 가령 그 두 시집에 나타나는 오래된 상처들이 여행을 통해서 여과되고 다시 태어났다고나 할까요. 내가 나에게 다시 한 번 돌아오는 계기를 만들어 준 것이 『물 건너는 사람』이라는 시집이죠. 시집 제목 그대로 물을 건너가서 다른 세계와 만난, 나를 멀찍이 떼 놓고 그리워할 줄 알게 된, 그래서 지금까지 살아온 나와 앞으로 살아갈 나를 견주어볼 수 있게 된 그 경험들은 내게 상당히 소중한 것이에요. 그 경험에서 시를 더 열심히 써 보겠다는 용기가 생겼죠. 그러나 정작 거기서는 메모만 잔뜩 해서 돌아왔어요. 사람이 건강해야 시를 제대로 쓸 수 있어요. 시 쓰기가 감내해야 할 긴장의 무게가 여간한 게 아닌데 그 무게를 지탱하지 못하면 시가 제대로 안 되죠. 아픈 사람이 시를 잘 쓸 것 같지만 현실적으로 아픈 사람은 그 긴장을 감내하지 못하기 때문에 시 쓰기가 어려운 법이에요. 특히 세 번째 시집 『물 건너는 사람』을 쓸 무렵에, 나는 시를 열심히 쓰기 위해서라도 건강해져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유타 있을 때도 그랬고, 한국에 돌아와서도 날마다 조깅을 하면서  시쓰기 위한 체력을 다졌던 기간이기도 했죠.  

 

김행숙  언젠가 선생님께서 저한테도 그런 말씀을 해주신 적이 있어요. 건강해야 한다, 그리고 열심히 일해라, 시를 잘 쓰기 위해서라도 그 두 가지를 해야 하는 것이라고 말씀해주셨죠. 그때 저는 거의 투정에 가깝게 시‘만’ 쓰면 좋겠다는 말을 선생님께 드렸는데, 선생님께서는 부드럽게 야단을 치셨던 거지요. 개인적으로 제가 선생님 시집 중에서 가장 먼저 읽은 시집은 『물 건너는 사람』이었습니다. 지금 선생님은 그 시집에 실려 있는 유타 시편의 사막 이야기를 하셨는데요, 이야기를 들으면서 선생님 시에 나타나는 모래 이미지를 거칠게 나눠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를테면, 해변의 모래와 사막의 모래. 물과 연결된 모래와 물과 절연된 모래.

김명인  물이 내 시에 많이 나오죠. 유년 시절 원형적 기억과 연결이 된 것이겠죠 바닷가에서 자랐으니까. 바다 자체는 물이고 물의 경계 위에 모래밭이 펼쳐져 있지요. 그런데 기실 바닷물은 마실 수 없는 물이에요.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까 바다와 사막 이미지는 통하는 데가 있어요.  

김행숙  마실 수 없는 물. 그렇네요, 바다에도 사막과 같은 갈증이 있네요.

김명인  소금 이미지와도 통하지요. 바다는 소금물이라서 마실 수 없는 물이니까. 아마 그런 것들이 시 속에 알게 모르게 연관되어 나타나는 게 아닐까. 어쨌거나 나한테는 바다에 대한 두 가지 무의식이 있는 것 같아요. 하나는 저 바다를 넘어가야 한다는 생각, 또 다른 하나는 저 바다는 결코 넘어갈 수 없겠구나, 그런 절망감, 그 두 가지가 함께 엉켜 있지요. 그러한 양면성 속에서 물이든지 모래든지 동질적인 표상으로 그려진 게 아닐까 싶어요. 내 시에는 갈증을 축이는 물에 대한 이미지는 별로 없어요. 대체로 물 이미지라 하면 정화와 순수, 영혼의 기갈을 해소하는 구원인데, 내 시에는 그런 물 이미지가 없어요. 내 시에서 나는 물을 건너가려고 하지 물에 잠기려고 하지 않아요.

 

김행숙  말씀하신 대로 선생님 시에는 아득하게 잠기고 싶은 자궁과 같은 물보다는 건너가는 물, 흐르는 물, 세월과 같고 길과 같은 물들이 등장합니다. 『물 건너는 사람』, 『푸른 강아지와 놀다』, 그 다음 시집이 『바닷가의 장례』인데 여기서부터는 선생님이 평생에 걸쳐 천착해온 바다 이미지가 본격적으로 시집 제목으로도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김명인 『푸른 강아지와 놀다』에 나오는 러시아 체험에도 바다가 있어요. 내가 가 있었던 데가 블라디보스토크이니까. 나는 극동 국립대학에서 러시아인을 상대로 한국문학을 강의했었죠. 그쪽에 갔을 때가 1월 초였는데, 부동항이라고 그러지만 그땐 바다가 얼어 있었어요. 그 위로 차도 다니고 그래요. 나도 바다 얼음을 보러 간 적이 있어요. 그 세계도 어떤 식으로든 내 시 속에 스며들었을 거예요.

김행숙  처음부터 선생님 시에는 바다가 있죠. 사람의 태생이라는 것은 어쩌지 못한다는 생각을 들 때가 있어요. 저는 어릴 때 부산에서 바다를 보고 자랐어요. 그래서가 아닐까 싶은데, 저의 두 번째 시집에는 해변이 자주 나와요. 갑자기 산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데 바다를 봐야지 속이 풀릴 것 같은 느낌이 저한테는 문득문득 밀려올 때가 있어요. 선생님도 바다로 달려가고 싶은 때가 있으시지요?

김명인  낚시 배를 타고 하루 종일 바다에 떠 있는 것도 그런 기갈하고 관계가 있죠. 닫힌 풍경 속에 있으면 탁 트인, 그게 지평선이든 수평선이든 터진 풍경이 보고 싶을 때가 있으니까요.

 

김행숙  시집 『바다의 아코디언』 해설에서 오생근 선생이 선생님 시의 바다를 전기와 후기로 나누어서 살폈던 게 기억나는데요. ‘전자의 바다가 음울하고 척박한 고향의 바다와 연관된다면, 후자의 바다는 넓고 근원적이고 초월적인 생명의 바다와 연결’된다고 했지요. 물론 단순화의 위험을 전제하고 말입니다. 어쨌든 근래에 선생님 시의 바다는 거의 우주적인 크기를 갖는 것 같습니다. 선생님이 어떤 자서에 ‘기원과 범람이 만나는 기적’에 대해 쓰셨던 걸 기억하는데, 기원과 범람, 생과 사, 순간과 영원에 대해서 사유할 수 있는 공간으로 선생님의 바다가 넓어지는 것 같습니다.

김명인 어떤 시적 원류도 우주적 상상력과 통하지만 바다 또한 점점 그런 상상력과 연결됩니다. 일부러 그러는 것은 아니지만, 나이가 들면서 자연스럽게 근원에 대해 자꾸 생각하게 돼요. 사람은 결국 근원으로 돌아가죠.

 

 

내 안의 들끓는 길

 

 

김행숙  『바닷가의 장례』가 다섯 번째 시집이었고, 여섯 번째 시집이 『길의 침묵』입니다.

김명인  『길의 침묵』은 그런 식으로 따져 보면 오히려 바다에서 조금 돌아선 시집이죠. 바다에 대한 상상력보다도 삶의 갈등에서 빚어지는 문제가 많이 드러나는, 삶에 대해 지루하게 물어보려고 애를 쓴 시집이었습니다. 『바닷가의 장례』를 낸 후, 학교를 옮겼죠. 『길의 침묵』부터는 조치원이 시를 쓰는 공간이 돼 버렸고, 가족 간의 갈등이 생기기도 했고, 내가 나를 되돌아보면서 내가 너무 편하게 사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집요하게 했던 시절이에요. 그래서 집, 가족, 나를 둘러싼 환경, 세계에 대한 반감들이 알게 모르게 드러나 있는 시집이 『길의 침묵』이라고 할 수 있죠.

김행숙  『길의 침묵』에서 ?침묵?이라는 시의 끝 구절이, 마음에 아린데요. 제가 조금만 읽어 볼게요.

 

상상도 창 하나의 배경으로 떠오르는 것,

창의 부분 속으로 한 사람이

어둡게 걸어왔다가 풍경 밖으로 사라지고

한동안 그쪽으로는

아무도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그 사람의 우연에 대해서 생각하지만

말할 수 없는 것, 침묵은 필경 그런 것이다

나는 창 하나의 넓이만큼만 저 캄캄함을 본다

그 속에서도 바람은

안에서 불고 밖에서도 분다

분간이 안 될 정도로 길은 이미 지워졌지만

누구나 제 안에서 들끓는 길의 침묵을

울면서 들어야 할 때도 있는 것이다

 

이 시는 나의 밖에, 창밖에 있는 길이 아니라, 창 안에, 내 안에서 들끓는 길을 말하고 있습니다. 선생님은 그런 길의 침묵을 울면서 들어야 할 때도 있다고 쓰셨습니다. 선생님 시의 행로는 점점 내면으로 더 들어가고 내 안의 깊이를 만들어 가는, 다시 말해 내 안의 길들을 땅굴처럼 파고 확장하는 쪽으로 나아갔다고 보입니다. 내면에 대한 천착이 두드러진 시집이 아닐까 싶습니다.

김명인  그렇게 얘기할 수 있죠. 그런데 생각해 보면 우리가 모두 그렇지 않습니까. 겉으로나 반듯한 일생을 살지 속은 누구도 그렇지 못하죠. 격렬하게 외향적인 투쟁을 보여 준 삶을 살지 않는다고 해서 속까지 조용하다고 할 순 없죠. 속은 들끓는 길의 연속이죠. 속의 사람은 내밀하게 감춰져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기에 그 고통이 어떤 건지 제대로 짐작하기 어렵습니다. 자살한 사람들이 자살에 이르는 길을 손쉽게 선택할 리는 없겠죠.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더라도 그가 속으로 겪는 갈등과 고통, 어쩌면 이런 것이 삶에 더 가까이 있는 것이 아니겠느냐는 생각을 했어요. 고요한 삶을 사는 것 같아 보이는 사람일지라도 누구나 자기 삶의 고통은 따로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침묵?이라는 시뿐 아니라, 『길의 침묵』에 있는 많은 시편들이 이런 마음씨들을 보이는 것들입니다.

 

김행숙  일전에 인터뷰 자리에서 선생님과 얘기를 주고받으면서 제가 인용했던 문장이 또 떠오르네요. 릴케의 편지에서 가져다가 인용을 했었죠. ‘멀리 나아가면 나아갈수록 더욱더 인생은 개인적인 것이 되고 독자적인 것이 된다. 예술 작품은 이 독자적인 현실에 대한 필연적이고 반박의 여지가 없는 그리고 영원히 결정적인 표현이다.’ 선생님이 말씀하신, 그 누구도 투명하게 들여다볼 수가 없는, 스스로에게조차 불가해한 지점을 가지고  있는, 내 안의 삶에 대한 천착과 탐구 속에서 삶의 독자성, 삶과 겹쳐지는 예술 작품의 독자성이 나오지 않을까 싶습니다.

김명인  그래요. 그럴 때 독자성이란 혼자가 된다는 게 아니라 고양된다는 얘기겠죠. 누구도 닮을 수가 없는 자기만의 길, 그런 의미에서의 독자성을 가져야겠지요. 그렇게 돼야죠. 그래야 시인인 거겠죠. 그렇지만 또 근래에 들어 나는 내가 과연 깊이 있는 시인인가, 내가 과연 시를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인가, 그런 회의가 들어요.

김행숙  그러한 회의와 반성의 힘이 선생님을 여기까지 이끌고 왔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내가 꽤 괜찮은 시를 써 왔어’, 그런 혼자 생각이 생길 법도 한데 그러지 않고 지금까지도 내가 과연 깊이 있는 시인인가를 스스로에게 묻고, 이 질문이 미적인 긴장과 삶의 성실을 요구하였으므로 선생님의 시가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닐까, 선생님 말씀을 들으니 그렇게 헤아려지네요.

김명인  긴장을 해야죠. 긴장의 끈을 놓치게 되면 시를 대강대강 쓰거나 못 쓰게 되거나, 그렇게 되고 말죠. 요즘의 나는 머리가 텅텅 빈 느낌인데, 시의 끈을 다소 놓았기 때문에 받는 벌 같습니다. 긴장할 만한 건강을 유지해야 하고 또 그렇게 해서 열심히 긴장해야 합니다. 긴장감이 없는 시를 읽는 건 참으로 멋쩍고 무의미해요.

 

 

대전발 0시 50분

 

 

김행숙  다시 바다 이야기로 넘어가나요. 일곱 번째 시집 『바다의 아코디언』에는 같은 제목의 시가 있기도 한데요. 이것은 시하고는 거리가 있는 이야기인데 조금 가볍게 질문 드릴게요. 지금까지 이야기가 다소 무거웠던 것도 같으니까. ?바다의 아코디언?이라는 시의 첫 부분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노래라면 내가 부를 차례라도/ 너조차 순서를 기다리지 않는다.’ 물론 유행가를 부르는 장면은 아닌 것 같지만, 이 구절을 놓고서, 선생님에게는 많은 유행가를 암송하고 배우던 시절이 있었다고 들은 것 같은데, 그때 얘기를 좀 해 주세요.

김명인  중3 시절에 고등학교 갈 형편은 안 되고, 그리고 그 당시 고등학교를 졸업한 형도 진학을 못하고 해군에 자원입대해버렸는데, 나는 에라! 타락해버리자, 그런 기분이 들었어요. 그때 배운 한 가지가 도리짓고땡이라는 거였는데, 화투장 몇 개 깔아 놓고 판돈을 거는 일종의 노름입니다. 애들이 무슨 판돈을 걸 게 있나요. 옛날에 곽성냥이라는 게 있었는데 그 성냥알을 판돈으로 삼아 따먹기 하는 수준의 것이었죠. 또 다른 한 가지가 남녀 학생들이 모여서 유행가를 부르고 배우고 한 것이었어요. 그 당시의 유행가는 전부 다 부를 줄 알았죠.

김행숙  선생님의 18번은 무엇인가요.

김명인  <나그네 설움>,  <대전발 0시 50분>, 뭐 그런 것들이죠. 그때는 시인이 될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던 시절이었어요. 바닷가 소년이었으니 고기잡이가 되거나 할 거라고 생각했었죠. 그런데 나중에 시를 쓰면서 보니까 그때 흥얼거렸던 가사의 어떤 대목들이 이미지화되는 거예요. 그때 흥얼거렸던 리듬 같은 것도 인식이 되고. 쓰린 마음으로 가사를 외웠으니까 서정적인 마음이 그 안에 들어갔던 게 아닌가 싶어요.

김행숙  한때 몰두했던 것이 몸에 새겨져 나중에는 어떤 식으로든 흘러나오는 것일 테지요. 시적 변용을 거쳐서.

김명인  문창과 교수에게 학생들이 물어요. 어떻게 하면 시인이 됩니까. 그래서 나는 한 학생에게 시를 300편 외우거나 유행가를 500곡 2절까지 부를 줄 알면 시인이 된다고 한 적이 있지요. 시를 300편 외우는 애는 못 봤어요. 100편 정도 외운다는 애들도 앞의 것은 까먹고 그러죠.  

 

 

따뜻한 적막, 풍경을 건너가는 시간  

 

김행숙  2005년에 나온 『파문』이라는 시집이 선생님이 출간한 마지막 시집인데, 이제 또 시집 나올 때가 된 것 같습니다.   

김명인  시집 원고를 정리하고 있습니다. 출판사에 시집 문의를 하기도 했고요. 작년부터 내가 이상하게 좀 흐트러져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절반쯤 정리를 하는데도 시간이 많이 걸렸어요. 다 정리가 되면 올해 안에 시집을 낼까 해요. 그렇게 된다면 4년 만에 나오는 시집이죠.  


 

김행숙  『파문』은 시간에 대한 사유와 이미지가 유난히 많이 드러나는 시집이었습니다. 『파문』이라는 시집의 맨 마지막 시가 ?따뜻한 적막?인데요, 이것은 2006년에 간행된 시선집의 제목이기도 하지요. ‘적막’이나 ‘적요’는 선생님 시에 특별히 빈도수가 높은 어휘이기도 하면서, 특별한 세계이며 시간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선생님이 좋아하시는 저녁이라는 시간, 일몰이라는 시간은 ‘따뜻한 적막’의 느낌과 아주 잘 통하는 것 같습니다.

 

아직은 제 풍경을 거둘 때 아니라는 듯

들판에서 산 쪽을 보면 그쪽 기슭이

환한 저녁의 깊숙한 바깥이 되어 있다

어딘가 활활 불 피운 단풍 숲 있어 그 불 곁으로

새들 자꾸만 날아가는가

늦가을이라면 어느새 꺼져버린 불씨도 있으니

그 먼 데까지 지쳐서 언 발 적신들

녹이지 못하는 울음소리 오래오래 오한에 떨리라

새 날갯짓으로 시절을 분간하는 것은

앞서 걸어간 해와 뒤미처 당도하는 달이

지척 간에 얼룩 지우는 파문이 가을의 심금임을

비로소 깨닫는 일

하여 바삐 집으로 돌아가면서도

같은 하늘에서 함께 부스럭대는 해와 달을

밤과 죽음의 근심 밖으로 잠깐 튕겨두어도 좋겠다

조금 일찍 당도한 오늘 저녁의 서리가

남은 온기를 다 덮지 못한다면

구들장 한 뼘 넓이만큼 마음을 덮여놓고

눈물 글썽거리더라도 들판 저쪽을

캄캄해질 때까지 바라봐야 하지 않겠는가

                            - ?따뜻한 적막? 전문

 

김명인  일몰 무렵의 저녁은 최근 시에 갑자기 등장하는 시간대가 아니죠. 내가 원래 좋아하는 시간이 저녁 어스름 땅거미가 짙어 오는 시간이니까. 초기 시부터 자주 등장한 시간일 거예요. 그건 어릴 때의 무의식이 잠재화되어서 나타나는 것이 아닐까. 집안이 망한 후에 아버지는 일손을 놓고 평생 무위도식하셨고, 어머니가 한 집안의 가계를 책임지게 되셨죠. 어머니는 5일장을 돌아다니면서 포목상을 하셨어요. 새벽에 나가서 밤늦게 돌아오셨죠. 어머니가 집에는 안 계시니까 할머니가 우리를 키운 셈이죠. 어머니가 가끔 가까운 데 가령 후포장 같은 데서 가게를 여시면 가 본 적도 있어요. 어쨌든 나한테는 모성에 대한 결핍이 있었는데 그것이 아련한 기다림으로 바뀌었을 테지요. 어머니가 돌아오는 시간을 굉장히 기다린 듯해요. 박모(薄暮)의 어슴푸레한 풍경들을 바라보면서 더러는 슬퍼지기도 하고 더러는 안타깝기도 했어요. 그러면서 유년을 보냈으니까 그 시간대가 유별나게 의식이 돼요. 사실은 맨 마지막 작품, ?따뜻한 적막?은 풍경을 건너서 더 근원적인 시간을 보려고 하는 다짐 같은 것이 들어 있는 시예요, 그 동안의 시들이 그 시간 안에서 펼쳐지는 삶이 중심이 되었다고 하면, 이 시에는 그 풍경을 건너서 더 근원적인 시간을 들여다보겠다는 시의 다짐이 묻어나지요. 그런 쪽으로 시를 많이 썼어야 하는데, 한동안 쓸데없이 학교일 한다고 게을러진 기간이 끼어 있습니다. 어쩌면 그 시간을 건너가면 우주적 시간하고 만나게 되겠죠. 우주적 시간하고 만나는 계기도 만들지 못하면서 나이 들어 쓸데없는 일을 하는 것은 별로 좋지 않은 것 같아요.

 

김행숙  풍경을 건너서 더 근원적인 시간을 보겠다는 시의 다짐은 “들판 저쪽을/ 캄캄해질 때까지 바라봐야 하지 않겠는가’ 라는 구절에 선연하게 새겨져 있는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여덟 권의 시집을 건너 건너 왔습니다. 이쯤에서 선생님의 시 한 편, 선생님의 낭송 부탁드려도 될까요.

김명인  음, 아버지에 대한 시에서 하나 골라볼까요. (탁자 위에 펼쳐져 있는 여덟 권의 시집, 시선집 『따뜻한 적막』) 음, 이것은 여섯 번째 시집 『길의 침묵』에 실려있는 ?아버지의 고기잡이?라는 시입니다. 이 시를 읽으면 나에게는 특별한 감회가 떠오릅니다. 아버지에 관한 회환이랄까 이런 것들이 아로새겨져 있는 시입니다.

 

아버지의 고기잡이

 

열목어의 눈병이 도졌는지, 아버지는

무슨 생각으로 나와 내 漁撈가 궁금해지신다

그러면 나, 아버지의 계류에서 다시 흘러가

검푸른 파도로 솟아 뱃전을 뒤흔드는 심해에

낚시를 드리우고 바닥에 닿는

옛날의 멀미에 시달리기도 하리라

줄을 당기면 손 안에 갇히는 미세한

퍼덕거림조차 해저의 감촉을 실어 나르느라

알 수 없는 요동으로 떨려올 때

물밑 고기들이 뱉어놓은 수많은 기포 사이를

시간은 무슨 해류를 타고 용케 빠져나갔을까,

건져올린 은빛 비늘의 저 선연한 색 티!

갓 낚은 물고기들 한 겹 제 물무늬로 미끈거리듯

아버지의 고기잡이는 그게

새삼 벗어 버리고 싶어지신 걸까,

마음의 갈매기도 몇 마리 거느리고

바다 생살을 찢으며 아침놀 속으로

이 배는 돌아갈 테지만

살아 있음이란 결코 지울 수 없는 파동, 그 숱한 멀미

가득 실었다 해도

모든 滿船은 쓸쓸하다, 마침내 비워내고선

무얼 싣기도 버거운 저기 조각달처럼!

 

김명인  아버지 같이 살지 말아야지, 어릴 땐 그런 결심을 많이 했는데. 나는 어렸을 때 돈을 많이 버는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아마 아버지 탓이 아니었을까. 무능하기 짝이 없었던 우리 아버지, 그런 삶은 살지 말아야지, 그랬는데…… 아버지를 알고 나를 아는 사람들이 요즘 나를 보면 아버지를 많이 닮았다고 해요. 그러니 시를 쓰면서 내가 특별히 긴장을 많이 하는 까닭이 아버지에 대한 잠재적인 마음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해요.

김행숙  선생님, 공부를 조금 더 잘했으면 의대 가셨지요? 이럴 때의 ‘조금 덜’을 다행이라고 하나요.  

김명인  실제로 의과대학 시험을 쳤더랬죠. 지금 생각하면 전교생을 다 합쳐봐야 200명 조금 넘는 시골 학교에서 대학에 갈 수 있었다는 것도 기적이었죠. 그때는 나 같은 사람도 대학에 갈 수 있었으니 운이 좋았다고 해야 할까요.

 

 

시의 길은 또 이어지고……

 


김행숙 끝으로 좀 짓궂은 부탁 하나 들릴까 합니다. 뒤샹이 언제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대요. ‘일반적으로 신문 기자들의 질문은 나를 괴롭힌다. 그리고 사람들이 결코 질문하지 않는, 내가 질문하기를 바라는 질문이 있다.’ 어쩌면 지금까지 선생님을 괴롭히는 질문만 잔뜩 한 게 아닌가, 걱정이 되기도 하는데요, 어떤 인터뷰어도 하지 않는 질문인데 선생님께 중요한 질문이 있다면 질문과 함께 말씀도 좀 해 주세요.

김명인  글쎄 미리 귀띔을 해줬으면 멋진 질문을 생각해서 왔을 텐데……. 음, 언제까지 내가 시를 쓸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근래에 해요.

김행숙  정말 이건 인터뷰어가 하기 힘든 질문이네요.

김명인  언젠가 꿈을 꿨더니 죽은 사람이 날 데리러 와서 같이 가자고 해요. 따라나서다가 돌아섰어요. 왜 돌아서느냐. 시집을 두 권은 더 내야겠다. 꿈속에서 내가 그랬어요. 시를 쓰는 일이 나에게 얼마나 절체절명의 일인가. 그런 생각을 하지요. 이것은 절체절명의 일을 언제까지 더 유지해 갈 수 있겠는가, 하는 질문과도 통해요. 당장 더 못할 것 같기도 하고, 조금 더 할 것 같기도 하고, 그래요. 내가 어떤 식으로든 긴장을 유지하지 못하면, 시적 긴장을 감당해 내지 못하면 시는 끝나는 것이고 감당할 수 있으면 다소 연장되는 것이고 그렇겠죠. 그렇게 생각하면 아득해지죠.

김행숙  저는 시 쓴 지 얼마 되지 않았다고 할 수 있는데 제게도 선생님 말씀하시는 것처럼 시를 언제까지 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공포감과 함께 문득 찾아오는 때가 있어요. 선생님은 그런 시간들을 건너, 건너면서 시를 써 오신 것이겠지요. 선생님이 존경스러운 이유 중의 하나가 그 시간들을 끝내 넘어, 넘어왔다는 것이지요. 선생님의 꿈 이야기를 들으니까 선생님의 좋은 시를 한참 더 많이 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김명인  김행숙 선생과 내 시 얘기를 되짚어 보니까 내 시 써 온 과거가 다시 아로새겨지고 앞으로 다른 시를 보여야 한다는 각오도 새롭게 생기는 것 같아요. 열심히 시를 써 보도록 하겠습니다.

김행숙  되새겨 볼 말씀 많이 들어서 제겐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문장 웹진 7월호》

 

 

[필자 소개]

 

김명인 (시인) 

1946년 경북 울진에서 태어나 고려대 국문학과를 졸업했다. 197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시단에 데뷔했으며 김달진문학상, 소월시문학상, 동서문학상을 수상하였다. 현재 고려대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시집으로 『동두천』(1979),  『머나먼 곳 스와니』(1995),  『물 건너는 사람』,  『푸른 강아지와 놀다』(1994),  『바닷가의 장례』(1997),  『길의 침묵』(1999),  『바다의 아코디언』(2002),  『파문』(2005),  『따뜻한 적막 - 김명인 시선집』(2006) 등이 있다.

 

김행숙  (시인)

1970년 서울에서 태어나 고려대학교 국어교육과 및 대학원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1920년대 동인지 문학의 근대성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9년 《현대문학》에 「뿔」 외 4편을 발표하며 시단에 나왔고, 시집으로 『사춘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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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07-30
시 쓰고 자빠졌네

시 쓰고 자빠졌네. 이런 말 자주 들었다. 누군가에게 자주 두들겨 맞았고, 누군가에게 가끔 린치를 가하던 시절이었다. 이웃 여고 문예부 아이들이 어쩐지 예쁠 거 같아서 문예부실을 전전했다. 그리고 백일장에 나가곤 했다. 물론 남달리 예쁜 아이는 없었지만, 어쨌든 17세 남녀가 교복을 입은 채로 노래방에서 듀스나 룰라, 혹은 투투의 노래를 함께 부르는 모습은 남달리 아름다웠다. 되도록 빨리 노래방으로 가기 위해서 우리는 사바사바, 시를 썼다. 빨리 써야 했다. 시는 최초의 노래였으므로. 엉덩이를 두드리듯, 천사를 찾아. 발라드를 부르며 감정 과잉에 빠지는 철수에게 영희는 이렇게 말한다. 시 쓰냐? 그때 우리는 원고지를 눕히던 누런 잔디에서, 어두운 노래방에서, 혹은 밀도가 높은 교실에서 어떤 감정 속에 놓여 있었을까. 난 누군지 또 여기는 어딘지 아무도 알려 주지 않았기에 우리는 분노에 가득 차 교복을 줄이고 담배를 숨기고 몰래 술을 마시기도 했다. 수채화 대신에 야간 자율 학습 감독을 주로 하던 미술 선생은 또 말했다. 또, 또 시 쓰냐? 시화전 제출 작품에서 피 흘리는 고등어를 그려 놓고 ?어느 고딩의 죽음?이라 제목을 붙이며 나는 전위를 담당한 듯 당당했다. 부끄러움이 없는 남자였다. 미술 선생에게 욕을 먹을 때에도, 맞을 때에도 나는 부끄러움을 몰랐다. 대한민국 학교 다 족구하라 그래. 시 쓰고 자빠졌다, 정말. 정말이란 말에 대해 오래 생각해 본다. 오래 생각하는 버릇은 이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다. 최대한 짧고 단순하게 사고한 것으로 보이는 일들이 생각보다 빠르고 무식하게 벌어지고 있다. 정말? 시집을 묶어내던 중에 바위에서 사람이 떨어져 죽었다. 그 부엉이는 정말 새였을까. 도심에서 사람이 불에 타 죽었다. 그 망루는 정말 구름이었을까. 모두 정말이냐고 정색하며 물어 볼 만한 일들이었다. 분노가 치민다. 지금 나와 싸우자는 건가? 그런데 싸우는 법을 배운 적이 없다. 아니다. 싸움은 끝났다고, 이제 싸움이 아닌 경쟁의 시대라고 배웠다. 나는 그저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잘 모르겠어서, 화가 났다. 사실 싸움보다 훨씬 경쟁이 무서웠다. 사건은 이미지가 되는 순간 거짓말이 된다. 이 모든 게 차라리 멋진 거짓말이었으면 좋겠지만, 이것은 너무나 끔찍한 거짓말. 난삽한 이미지. 이미지가 아닌 이미지. 그러므로 차라리 보이는 게 진실이라고 믿어 본다. 이 지긋지긋하고 끔찍한 진실이 시의 배후가 되어 시에 맘껏 개입해도 나는 좋다. 시가 그렇게 하지 못하겠다면 기꺼이 네가 그렇게 하라. 가져간 나의 반쪽! 때문인가. 이제 둘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그래, 리얼리스트 되자. 모던한 리얼리스트가 되자. 모더니스트가 되자. 리얼한 모더니스트가 되자. 장난하느냐고? 그렇다면, 불길한 장나니스트라고 해 두지 뭐. 꼴에 시랍시고 자빠졌네. 이런 말 자주 들었다. 하지만 누가 뭐래도 나는 시가 좋다. 그리고 시가 밉다. 사랑하고 미워하며 안절부절못하고 있다. 처음 증상을 보일 때는 이렇게 데뷔를 하고 시를 쓰리라 짐작하지 못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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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07-15
일본 소설, 한국 시

일본 소설, 한국 시 한성례 한국에서 일본소설의 베스트셀러 현상 한류바람이 뜨겁게 일본 열도를 달구기 시작한 2000년 이후부터 한국에서 일본소설은 폭발적인 인기를 구가해왔다. 일본보다 한국에서 더 인기가 많은 작가가 나올 정도로 한국은 일본소설 홍수 시대이다. 이 같은 현상에 대해 일본인들은 물론이고 일본소설가들조차도 왜 일본소설이 한국에서 그렇게나 많이 팔리는지 몹시 궁금해 한다. 이에 대한 일본 신문의 인터뷰나 원고의뢰가 있을 적마다 나는 현재 한국에서의 한국시에 비유해서 설명을 한다. 이전에도 한국에서 일본소설은 종종 많이 팔렸다. 70년대 중반에 첫 출간된 무라카미 류(村上龍)의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는 해적판이 끊임없이 이어졌고 출판금지서임에도 안 읽은 사람이 없을 만큼, 문학이나 예술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의 필독서이고 바이블이었다. 1999년 정식으로 저작권 계약을 맺어 커버에 비닐을 씌워 19세 미만 구독불가로서 출간된 후에도 쇄를 거듭하며 읽히는 소설이다. 또한 1989년 원제인 『노르웨이의 숲』이 『상실의 시대』란 이름으로 출간된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의 소설은 당시 크게 각광을 받았고 지금도 계속해서 읽힌다. 당시 한국은 민주화 쟁취와 맞물려 자의식이 집단에서 개인으로 향하던 시기였다. 민주주의가 아직 성숙하지 못한 상태여서 사회, 정치적으로 안정되지 못했고, 급변하는 사회적 환경 속에서 개인이 느끼는 소외감, 고독, 상실감 등이 당시 한국 젊은이들이 처한 현실과 겹쳐지면서 이 소설에 크게 공감했다. 더욱이 하루키의 가독성 높은 문장은 금방 젊은이들을 사로잡았다. 한편으로 문학의 구도자 같은 마루야마 겐지(丸山健二)의 소설도 여러 편 번역 소개되었는데, 이는 주로 문학 창작자들이 마니아였다. 하지만 일본소설의 인기는 단편적일 뿐 전반적인 경향은 아니었다. 오히려 서구소설이 중심을 이뤘다.그러던 것이 에쿠니 가오리, 요시모토 바나나, 쓰지 히토나리, 히라노 게이치로, 요시다 슈이치 등 젊은 작가와 미야베 미유키, 스즈키 코지, 히가시노 게이고 등의 미스터리 소설과 나오키 상을 비롯한 여러 문학상 수상작이 2000년 이후에 대거 한국에 번역 소개되었고, 대형서점에는 코너가 별도로 마련될 만큼 일본소설은 인기를 끌고 있다. 왜 일본 소설을 좋아하는 것일까 무엇보다도 일본소설은 재미있다. 독자를 의식하고 소설을 썼다는 게 금방 느껴진다. 말하자면 자신의 상품을 사줄 소비자의 위치에서 창작을 한다는 것이다. 젊은이들은 일본소설을 읽으면서 비현실적인 주인공을 통해 현실에서 실제로 행동에 옮기지 못하는 자신의 일탈을 꿈꾸고, 대리만족을 느낀다. 일본소설의 주인공 젊은이들은 특별한 목표도 없고, 무기력하며 수동적이고, 나약하기 짝이 없다. 그들은 시대의 흐름과 기존 질서에 따르지도 않고, 세상을 약간은 냉소적이고 관조적인 눈으로 바라보면서, 보편적인 부와 명예, 사회적인 안정 등과는 거리가 멀다. 이에 독특한 상상력과 가독성 높은 문장도 한 몫 한다. 최근 일본과 한국에서 밀리언셀러 판매 기록을 갱신하는 무

  • wikisoft
  • 2010-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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