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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

  • 작성일 2010-09-02
  • 조회수 1,707


[예술을 위하여_4]

피아노


김경미


라디오 클래식음악 프로그램의 원고를 쓴다고 하면 모두들 첫마디가 ‘클래식음악에 대해 잘 아시겠네요’다. 하지만 클래식음악 프로그램에는 음악 원고만을 전담해서 쓰는 음악 작가가 따로 있고 일반 작가들은 음악 원고를 쓸 일이 없다. 그러니 그냥 일반 원고 작가들에게는 저마다 자신이 좋아하는 정도만큼의 지식과 애정이 있을 뿐이다. 그런데 클래식음악에 대한 내 개인적인 지식은 그저 평범한 수준이다. 그러니 클래식음악에 대한 대단한 식견을 예상하는 질문을 들으면 상대방을 실망시킨 듯 좀 미안해지기도 하고 그들이 갖는 클래식음악 지식에의 거리감이 내게도 있음을 알려 준 듯 편안해지기도 한다.
 
그런 데다 꽤 오래 전에는 심지어 클래식음악의 한 장르가, 정확히는 피아노라는 악기 소리가 견딜 수 없이 거슬리기 시작했다. 어느 날 갑자기 바이올린 같은 현악기에 비해 여운도 없고, 건조한, 깊은 예술성보다는 얄팍한 기교만이 강조되는 악기라는 느낌이 들면서 그 소리가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진 것이다.
그런데 클래식음악에서 피아노가 차지하는 역할이란 얼마나 큰가. 결국 피아노 소리를 듣지 않으려면 클래식음악을 포기하다시피 해야 했다.
 
아서 뤼서가 쓴 『피아노와 사회』에 의하면 18세기 유럽의 귀족사회에서는 젊은 여성들이 갖춰야 할 교양이나 취미로 ‘풀종이 작업, 액자 만들기, 종이 장식물이나 인조꽃 만들기에 프랑스 말 몇 마디 하기와 피아노 연주’가 큰 유행이었다. 그중에서도 피아노 연주는 늘어 가는 실력과 피아노를 갖출 수 있는 집안 여유를 함께 과시할 수 있다는 점에서 특히 큰 유행이었다.
그러다 그 유행이 피아노 보급에 박차를 가해 19세기에는 일반 가정의 젊은 여성들도 피아노 앞에 어렵지 않게 앉을 수 있게 됐다.
그렇게 피아노 악기와 피아노를 치고 즐기는 인구가 크게 늘었으니 피아노 음악도 훨씬 크게 발전했을 것 같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였다. 교양을 과시하기 위해 즐기는 피아노 악기에 대해 ‘젊은 여성 교양인’들은 점점 더 ‘홀로 건반악기를 연주하거나 또는 자기 노래를 단순히 반주하는 경우에는 리듬에 있어 마음 내키는 대로 편하게 연주할 수 있고’ ‘그러면서 마음에 드는 음은 부끄러움을 느낄 필요도 없이 마음대로 늘리기도 하고 연주하기 너무 어려운 음은 태연하게 꿀꺽 삼켜 버릴 수도 있는 피아노 음악과 악보’를 원했다. 늘어 가는 그런 요구에 작곡가들도 악보 출판인들도 어려운 통주저음 같은 걸 크게 줄였다. 요한 라이하르트란 작곡가는 노래모음집 『여성을 위한 노래들』의 서문에 이렇게 썼을 정도다.
‘연약한 눈과 작은 손 때문에 나는 부차적인 중간 파트를 작은 음표들로 써넣었는데 예쁜 작은 손이 충분히 벌어지지 못할 경우에는 성악 파트만을 연주해도 되고   그럴 경우 어떤 음들을 빼도 되는지 훨씬 쉽게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유행과 교양이, 그리고 젊은 여성들이 오히려 피아노 음악의 수준을 낮춘 것이다. 확실히 교양이란 이름으로 유행되는 예술은 예술의 수준을 높이기보다는 낮추는 데 기여한다. 교양은 바닷속 심해를 표면의 물결무늬만으로 이해하고 표현하고 과시하려는 겉치레의 성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그 피아노 교양시대에 세잔은 1866~70년 <피아노를 치는 소녀>를 그렸다. 피아노 치는 소녀의 옆모습과 그 옆에서 뜨개질을 하는 여성의 정면 모습을 함께 담은  그림이다. 르누아르는 그보다 30여 년이 지난 1892년에 <피아노 앞의 두 소녀>를 그렸다. 두 자매가 피아노 앞에 앉고 선 채 다정하게 피아노를 치는 모습을 담았다.
두 그림에서 귀족층 분위기는 30여 년 후에 그린 르누아르 그림 쪽이 더 강하다. 먼저 그린 세잔의 그림에서는 중산층 가정이 느껴진다. 특히 피아노 앞에 앉은 소녀의 표정은 언뜻 중년부인처럼 보일 정도로 어둡다. 피아노도 지나칠 정도로 검다. 뜨개질하는, 아마도 어머니일 듯한 여성이 입고 있는 덧옷도 검은색이다. 피아노와 음악이란 주제와 달리 검은색이 주도적인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어머니일 듯한 여성은 정면을 향하고 있고, 피아노 치는 소녀는 옆을 향하고 있다. 구도상 엄마가 뒤쪽에서 뜨개질을 하면서 딸의 피아노 소리를 듣는 풍경이다. 그런데 소녀의 표정과 지나치게 비중이 높은 검은색 때문일까. 왠지 어머니가 딸의 피아노를 대견스럽게 감상하기 보다는 연습을 하는지 안하는지 무언중에 감시하거나 강요하는 느낌이다.
그에 비해 르누아르의 <피아노 앞의 두 소녀>는 르누아르의 색채 취향이 원래 그래서기도 하지만 부유하고 풍족한 귀족층의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평론가들의 표현대로 ‘황금빛과 장밋빛이 가득한’ 분위기다. 재밌게도 르누아르는 이 그림을 세잔의 집에 머물 때 그렸다.
 
혹시 세잔의 시선에는 ‘피아노’라는 교양을 강요하고 강요당하는 중산층의 모습이 눈에 더 많이 들어오고, 르누아르에게는 ‘피아노’라는 교양을 한껏 풍족하게 누리는 귀족층의 모습이 더 눈에 많이 들어왔던 게 아닐까. 화가도, 화가야말로 자신이 보는 만큼 그리는 것일 테니까.
 
어느 날 갑자기 내게서 클래식음악을 빼앗아갔던 피아노가 다시 내 귀와 가슴으로 귀환한 것 역시 어느 날 갑자기였다. 더욱이 그 귀환의 피아노 음악은 곡명을 대면 중학생도 알 만한 초보 교양 수준의 곡이었다. 베토벤의 <월광>이었던 것이다.
이 곡이, 피아노가 이렇게 아름답고 위대하며 예술적인 악기였던가. 나는 중학생처럼 감동하고 설레면서 어쩔 줄 몰라했다. 그 후로 한동안은 그동안의 빗장을 사과하고 만회하듯 피아노 음악만 줄기차게 들었다.
예술의 수준은 교양이나 유행에 ‘영합’하려고 할 때만 낮춰지며 교양은 예술감상의 수준을 이끌어 주고 개화시켜 주고 드높여 주는 소중한 역할을 하기도 한다. 《문장웹진 9월호》

 

 

<피아노 치는 소녀>, 세잔

 

<피아노 앞의 두 소녀>, 르누아르

 



김경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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