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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대의 철학은 어떻게 세계와 소통하는가

  • 작성일 2012-02-23
  • 조회수 1,516

 

[최창근의 쉽고 재밌는 희곡 이야기_마지막 회]

 

 

한 시대의 철학은 어떻게 세계와 소통하는가

─ 아프리카와 오세아니아, 러시아와 동유럽, 그리고 아시아의 희곡들

 

최창근

 

 

 

 

 

스스로 드러내지 않으므로 밝아지고 스스로 옳다고 하지 않으므로 드러내고

스스로 자랑하지 않으므로 공이 있으며 스스로 뽐내지 않으므로 오래간다.

─ 왕필(226-249), 중국 위나라의 학자

 

달려드는 백발에 근심은 뒤얽히고 슬피 우는 백성들은 풍년에도 더욱 굶주린다.

배에 가득한 답답한 생각 적을 수 없지만 우직한 황강 노인 그대야 응당 알리라.

─ 조식(1501-1572), 조선시대의 학자

 

 

 

  노선생님께.

  어떻게 지내시나요? 사석에서 얼굴 본 지가 꽤 오래된 것 같습니다. 꼭 한 번은 이런 식으로 편지를 드리고 싶었는데 어쩌면 참 쓸데없는 짓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어느 정도는 망설이고 미루던 일이었습니다. 그동안 연극인으로 살기보다는 여행자로 산 시간이 더 많아서였는지 제가 몸을 담고 있는 이 세계가 조금은 낯설게도 느껴집니다. 그러나 『리빙 라이브러리』라는 책에서도 나와 있듯 이 글은 그래도 어느 한때 연극판에서 만난 정다운 친구가 건네는 우정의 편지라고 여겨 주시면 좋겠어요.

  저는 작년 연말에 인도와 네팔을 다녀왔습니다. 생애 처음으로 먼 이국땅에서 새해를 맞고 설을 보낸 후 돌아왔지요. 우여곡절도 많고 파란만장했던 한 달간의 일정을 마치고 다시 서울로 돌아왔지만 제가 없는 동안 이곳은 큰 변화가 없는 듯합니다. 하긴 일 년도 아니고 겨우 한 달인데 그 사이 무슨 큰 일이 있었을까요. 단지 서울 거리가 유난히 넓고 깨끗해 보이더라는 것, 또 날씨가 굉장히 추웠다는 정도는 얘기해 둬야겠습니다.

  이제야 선생님께 털어놓지만 언제부턴가 저는 연극을 잘 보러 가지 않게 됐습니다. 연극에 관한 글도 좀처럼 쓰지 않게 됐지요. 연극판에서 벌어지는 행사에 발길을 하지 않게 된 것은 아주 오래 전 일이고 한국 연극에 관한 무수한 담론과 소문에도 일정한 거리를 두게 됐습니다. 이 나라의 연극계가 스스로 울타리를 치고 그 안에 자신들만의 성채를 지은 채 허깨비놀음을 벌이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였지요.

  어쩌면 세계 여러 나라의 희곡을 소개한다는 취지를 빌려 선생님께 보내는 이 편지가 제가 연극현장에 대해 쓰는 마지막 글이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저도 이제 데뷔 십 년을 넘어 조금은 다른 지점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거겠지요. 그게 문학이든, 영화든, 방송이든, 아니면 아예 그것과는 상관없는 다른 일일지도 모르겠지만.

  그래서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제 마음이 조금은 슬픈 듯합니다. 히말라야 트레킹을 하면서 들었던 여러 가지 생각들, 이 세상에 내 맘 같은 사람은 없다는 씁쓸한 기분도 섞여 있겠지요. 유난히 사건사고가 많았던 이 추운 겨울밤을 나기가 외로운 건지도 모를 일입니다. 누구나 외롭기 때문에 따뜻한 온기를 나눠 가지고 싶었던 소박한 제 마음이 연극판에서는 자리 잡기가 정말 어렵구나 하는 일말의 당혹감도 있습니다만 어쨌든 제겐 또 제가 걸어가야 할 길이 따로 있겠지요. 다만 우정이라면 우정에 의지해서 쓰고 있는 이 글이 선생님께 진심으로 전해지기를 바랄 뿐입니다.

 

 

  1

 

 

  나와 그대가 논쟁을 하였다고 가정하자. 그대가 나를 이기고 나는 그대를 이기지 못하였다고 과연 그대가 옳고 나는 그른 것일까? 내가 그대를 이기고 그대는 나를 이기지 못하였다면 과연 내가 옳고 그대는 그른 것일까? 그 어느 쪽은 옳고 그 어느 쪽은 그른 것일까? 우리 모두가 옳거나 우리 모두가 그른 것일까?

  ─ 장자, 〈제물론〉 중에서

 

  우선 아프리카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아프리카 현대희곡에 관한 이야기지요. 아프리카 연극 혹은 아프리카 문학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만. 아프리카의 현대문학은 1960년대 전후 서양 제국주의에서 독립한 신생국들이 식민의 잔재를 청산하고 저개발과 빈곤의 악순환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탄생했다고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지요. 아무튼 아시아만큼이나 아프리카의 문학은 우리들에게 그다지 많이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그나마 중남미 문학이 ‘매직 리얼리즘’이라는 이름으로 세계문학의 중심으로 떠오른 것을 빼면 이곳 대륙들은 문학의 소외지역 혹은 무관심지역으로 분류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최근 인천에서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작가들을 초청해서 문학포럼을 열고 있을 정도로요. 그런데 요즘은 오히려 배낭여행자들의 각별한 관심을 받고 있는 곳이 아프리카지요.

  배낭여행자들의 천국이라는 모로코와 카뮈의 『이방인』 때문에 친숙하게 다가오는 알제리, 그리고 최근에 장기간의 독재 왕정이 무너지고 시민혁명이 일어난 리비아, 피라미드와 파라오의 나라 이집트가 북아프리카에 속합니다. 대부분이 사하라 사막에 걸쳐져 있는 나라이기도 하기 때문에 사막의 모래바람과 밤하늘의 반짝이는 별들을 보고 싶은 사람들의 동경의 대상이 되는 곳이라는 소문도 들었지요.

  중부아프리카에 해당하는 나라들로는 서쪽에 축구로 유명한 세네갈과 나이지리아가 터를 잡고 있고 동쪽엔 킬리만자로 산과 빅토리아 호수, 세렝게티 초원을 둘러싸고 케냐와 탄자니아 그리고 그간의 아프리카의 이미지를 연상시키는 가난과 기아, 각종 질병과 내전으로 얼룩진 소말리아와 에티오피아가 버티고 있는데요. 물론 중앙엔 콩고민주공화국과 앙골라가 끼어 있고 낯설긴 하지만 토고나 베냉, 에리트레아 같은 작은 국가들도 섞여 있습니다. 그밖에도 코트디부아르, 가나, 말리, 잠비아, 부르기나파소, 가봉, 르완다, 수단, 우간다, 카메룬, 튀니지, 짐바브웨처럼 한 번쯤 그 이름을 들어 봤을 듯싶은 나라들과 섬나라인 카보베르데, 마다가스카르도 빼놓을 순 없습니다.

  그러나 부유한 아프리카, 아프리카 중의 아프리카라 불리는 곳은 케이프타운(희망봉)이 있는 남부아프리카의 남아프리카공화국이지요. 남아공은 고약한 흑백분리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와 인권운동의 기수였던 넬슨 만델라 대통령 때문에 더 유명해진 국가이기도 합니다. 〈아일랜드〉와 〈메카로 가는 길〉이라는 희곡으로 잘 알려진 아돌 후가드와 『가 버린 부르주와 세계』를 쓴 나딘 고디머가 이곳 출신의 세계적인 작가들입니다. 체호프의 희곡들을 변주한 러시아 3부작 〈호숫가에서 On The Lake〉, 〈엘레나 Yelena〉, 〈세자매 혹은 둘 Three Sister or Two〉 들을 선보인 여성 극작가이자 배우인 레자 드 왯(Reza de Wet)과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유쾌하게 풀어낸 뮤지컬 〈아시나말리 Asinamali(우리는 돈이 없다)〉의 원작자인 전방위 예술가 음봉게니 응게마(Mbongeni Ngema)도 떠오르는데요.

  그중에서 우리나라에 번역된 아프리카 희곡은 나이지리아 출신의 작가 월레 소잉카(Wole Soyinka)의 대표 희곡선인 『자유로운 영혼의 저항과 노래』(아프리카 문화연구소 엮음, 도서출판 동인)와 『제로 형제의 시련』(박정경 옮김, 지만지)이라고 기억됩니다. 〈길〉, 〈사자와 보석〉, 〈여로의 변신〉 등 세 편의 작품이 실려 있는 『자유로운 영혼과 저항의 노래』에서 요루바족의 전통적 가치를 대표하는 바로카와 유럽의 근대적 가치를 옹호하는 젊은 선생 라쿤레의 대결구도를 다룬 〈사자와 보석 The Lion and The Jewel〉은 단연 압권입니다. 이 두 인물 혹은 두 개의 가치관의 대립과 길항은 보석처럼 아름다운 여인 시디의 마음을 누가 사로잡느냐 하는 구체적인 상황으로 발전하면서 흥미를 더하게 되지요. 『제로 형제의 시련』 역시 탐욕에 눈이 먼 목회자 제로 보암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사건을 소재로 한 희곡으로 사회악이 활개 치는 아프리카 사회의 실상을 풍자한 작품이지요.

  소잉카는 식민의 경험을 당한 대부분 국가들의 작가들처럼 서구식 교육을 받았는데요. 영국에서 유학생활을 마치고 그곳의 왕실극장인 로열코트극장에서 극작가 생활을 하다가 나이지리아로 돌아와 연극작업을 이어 나갑니다. 나이지리아 독립기념식의 공식 초청작이었던 〈숲 속의 춤 A Dance of the Forests〉을 시작으로 1960년부터 마스크스 극단을 창단해 왕성한 활동을 벌여 나갔고 1986년엔 초기 단막극인 〈늪지대 사람들 The Swamp Dwellers〉로 아프리카 작가로는 처음으로 노벨문학상을 받게 되는데요. 군사정권에 대한 저항운동과 반정부 활동, 그로 인한 정치적 망명자 생활 그리고 자국민의 현실을 객관적으로 묘사해서 주목을 받았던 그간의 문학적 공로를 인정받은 셈이지요.

  노선생님께서도 보신 적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2002년 3월에 발족해서 동시대의 외국 희곡을 지속적으로 소개해 왔던 ‘희곡낭독공연회’에서 2008년 12월에 아프리카 희곡 몇 편을 낭독공연으로 무대 위에 올린 적이 있었지요. 그때 소개된 희곡들은 토고의 작가 코씨 에푸이의 〈이오〉, 베냉의 작가 에르마스 바기디의 〈무지의 계곡〉과 〈과거의 향기〉, 콩고의 작가 쏘니 라부 탄지의 〈파리떼 동네〉, 에리트레아의 작가 알렘게이드 테스파이의 〈또 다른 전쟁〉 들이었는데요. 모두가 생소한 국가, 낯선 작가들의 희곡이었지요. 그만큼 여전히 우리는 아프리카 희곡에 대해서는 아는 게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터입니다.

  희곡낭독공연회 얘기가 나와서 잠시 제가 경험한 연극판에 존재하는 단체나 모임에 얽힌 일화를 들려드릴까 합니다. 먼저 ‘한국희곡작가협회’ 그리고 몇몇 비평가와 작가가 만들었던 ‘희곡낭독모임’ 아, 후자의 모임에는 노선생님도 관여하셨으니까 누구보다도 더 잘 아실 겁니다. 바로 말씀드리자면 두 모임 다 제게는 그다지 좋지 않았습니다. 한국희곡작가협회는 희곡작가의 대표기관이라는 명목으로 이익집단의 권리주장에만 앞서 있었고 결국은 새로운 변화를 갈망하는 젊은 편집위원들의 편집권마저 제대로 보장해 주지 않았습니다.

  희곡낭독모임이 깨진 이유는 제가 더 부연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동료 작가를 대하는 기본적인 태도는 조금 고려해 볼 사항이라고 생각해요.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건설적인 비판이 아니라 인신공격에 가까운 비난처럼 들릴 수 있는 말들은 상대방을 굉장히 곤혹스럽게 만드는 일입니다. 물론 저간의 다른 사정이 있었는지는 몰라도 그런 말과 행동들은 자칫 잘못하면 동료 작가에 대한 질투와 피해의식에서 비롯된 나쁜 습관처럼 비칠 수도 있으니까요. 함부로 내뱉은 말에 상처를 입은 한 작가는 그런 언행을 서슴없이 저지른 분을 ‘스스로가 나는 작가가 아니라 영원히 작가가 되고 싶어 몸부림치는 비평가에 불과하다고 선언하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비판하며 울분을 터뜨린 기억이 지금도 선연합니다. 제가 희곡낭독모임을 발의한 이유는 젊은 연출가들의 산실인 ‘혜화동일번지 동인’처럼 작가나 비평가에게도 협회를 벗어난 의욕적이고 창조적인 동인이 필요하다는 자각에서였지요.

  그러나 희곡을 중심으로 한 그러한 동인 모임이 우리나라 같은 척박한 풍토에서는 참 쉽지 않음을 절감했습니다. 그것은 작가나 비평가의 양식의 문제임도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죄송합니다만 다시 문학과 문학을 둘러싼 주변부 이야기를 좀 하겠습니다. 한국 문단이 문제가 많다고는 하지만 제가 보기엔 그래도 그곳엔 논쟁다운 논쟁이 그나마 존재하고 그 논쟁들로 자체정화가 가능한 듯 보입니다. 하지만 제가 체험한 연극판은 아예 그 모든 것이 소진되고 죽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어떤 비평가는 그런 연극판이 싫어 산을 찾고 자연에서 연극의 맨얼굴을 찾으려 합니다. 그렇지만 그게 가능한 일일까요?

 

 

  2

 

 

  …우리는 모두 선택받고 교육받은 자신을 느낀다. 누구나 남보다 더 많이 가질 수 있는 자격을 느낀다. 우리는 모두 ‘나’라고 쓰인 커다란 관을 머리에 이고 돌아다니며 신석기인의 토굴 안에서 아무도 귀 기울여 주지 않는 아귀다툼의 독백을 읊조리고 있느라 다른 사람도 역시 모두 사방에서 동시에 뱉어내고 있는 아귀다툼의 독백을 들을 여유가 없다. 그리고 이제, 스스로 통제할 수도 없고 자체 오물처리 능력도 없는 욕망의 포화상태 속으로 자신을 던져넣으며 그 아름다운 욕망과 한 몸이 되기를 머리를 쥐어뜯으며 갈구하고 있다…

  …가끔 생각하던 건데 최근에 네 말투는 자주 마치 무슨 예술 관료처럼 들린다. 위촉받은 심사위원이나 아니면 자격증을 발부해 주는 사람 말이야.

  ─ 배수아, 『당나귀들』 중 「존 쿳시 J. M. Coetzee의 ‘동물의 생’으로 시작되는 리스트」에서

 

  작가는 어떻게 비평가와 만나야 하는가, 비평가는 어떻게 작가와 만날 수 있는가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물론 정해진 해답은 없겠지만 적어도 창작과 비평이 만나기 위해서는 서로가 각자의 세계를 이해하기 위한 기본적인 마음가짐과 노력이 있어야겠지요. 연극을 보고 무작정 그에 대한 평을 쓴다고 해서 만남이 이루어지지는 않습니다. 한 편의 글을 쓰는 행위 혹은 한 편의 연극을 올리는 행위는 하나의 세계를 창조하는 일인데 그게 그렇게 쉬울 리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그 지난한 일들을 해석하고 평가하는 일이 또 그렇게 쉬울 까닭이 없겠지요.

  작가가 드러내지 않고 숨겨 놓은 작품의 비밀을 온전히 발견하기 위해서는 작가가 기울이는 정성과 수고만큼 비평가 역시 피와 땀과 눈물을 흘려야겠지요. 그러지 않고서는 비평가는 작품에 한 발짝도 다가설 수 없습니다. 나는 이 작품을 완전히 이해했다고 착각하는 비평가들의 오류는 그래서 발생하는 거겠지요. 저는 직업적인 비평의 윤리 없이 아주 쉽게 어떤 작품을 재단하는 비평가들을 종종 마주칩니다. 겸손함을 갖추지 못한 오만함으로는 아무것도 들여다볼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에 제대로 된 연극비평이 드문 이유는 그로부터 출발한다고 여겨집니다.

  창작과 비평을 같이 하는 연극평론가 겸 극작가의 희곡들이 잘 와 닿지 않는 경우는 그래서일 겁니다. 창작과 비평에 관한 적절한 균형과 거리감을 유지하기 힘드니까요. 나는 진정 무엇 하는 사람인가에 대한 철저한 성찰과 자의식 없이는 ‘비평하듯이 희곡을 쓴다.’거나 ‘자신들이 쓴 작품을 자신들이 비평한다.’거나 ‘말만 많고 눈만 높지 그만큼 자신들은 쓰지 못한다.’는 비판을 그들이 피해 가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좋은 희곡 한 편 쓰는 것 이상으로 좋은 연극평론 한 편이 이 세상에 탄생하기가 어려운 일임을 절감해 주셨으면 합니다. 이 또한 제 자신의 동료 비평가들에 대한 무한한 애정에서 나오는 것임을 알아주셨으면 좋겠고요.

  다시 희곡 이야기로 돌아가겠습니다. 오스트레일리아와 뉴질랜드 그리고 남태평양에 흩어져 있는 그 수많은 섬들. 오세아니아의 현대문학이 우리에게 별로 알려진 것이 없는 것은 단순히 지리적인 이유 탓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세계에서 여섯 번째로 넓은 영토를 품고 있는 이 지역이 영국에서 독립한 곳이기 때문이겠지요. 하와이가 미국 문학의 범주에 어우러지듯 이 지역 또한 영문학사에 편입된 오랜 전통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탓일 텐데요. 오스트레일리아 연극계를 대표하는 원주민 출신의 작가 겸 연출가인 웨슬리 이이녹(Wesley Enoch)의 일인극 〈슬픔의 일곱 무대 Aboriginal Story〉를 본 적이 있습니다. 그는 원주민 여배우인 데보라 메일먼(Deborah Mailman)과 같이 호주 원주민인 애보리진의 인종차별과 침략의 역사 그리고 빼앗긴 민족세계를 전면적으로 다뤄 주목을 받았지요.

  오세아니아 대륙처럼 낯선 장소가 또 한 군데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중동지역이라 부르는 시리아, 레바논, 요르단 같은 곳인데요. 터키를 비롯한 사우디아라비아나 쿠웨이트, 이란, 이라크, 이스라엘이 비교적 친숙한 반면 바레인, 카타르, 오만, 예멘 등의 나라는 아직까지 낯설게 다가옵니다. 그래서인지 우리나라에서 아마도 최초로 공연됐던 시리아 현대희곡 작가 사아다 알라 완누스의 〈왕은 왕이다〉를 관람한 기억이 새롭습니다. 같은 작가의 〈6월 5일을 위한 야회〉를 낭독공연으로 만났을 때는 아랍 지역의 희곡을 맛보는 신선한 즐거움에 제 마음이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던 것 같습니다.

  앞에 언급한 두 지역에 비하면 러시아 대륙의 희곡 목록은 아주 풍요롭습니다. 우선 국내에 번역된 작품들 중 읽어 볼 만한 책들을 소개해 볼까요. 열린책들에서 발간된 『러시아 희곡 1』과 『러시아 희곡 2』에서는 고골리나 체호프, 톨스토이, 투르게네프처럼 우리가 자주 이름을 접해 본 작가들의 희곡이 한 편씩 실려 있는 반면 폰 비진의 〈미성년〉이나 그리보예도프의 〈지혜의 슬픔〉같이 아주 낯선 작가들의 희곡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책에서 제가 가장 흥미롭게 읽었던 작품들은 러시아 민중극의 창시자로 불리는 오스트로프스키의 〈뇌우〉와 레르몬토프의 〈가면무도회〉 그리고 푸슈킨의 〈보리스 고두노프〉였습니다.

  또 시리즈로 나온 『러시아 현대희곡 1-3』과 『러시아 현대희곡 4-그와 그녀』, 『러시아 현대희곡 5-사랑』 역시 죽 훑어본다면 1960년대부터 현재까지 러시아 희곡의 현주소를 파악하실 수 있으실 겁니다. 이들 책에는 제2의 체호프라는 명성을 얻고 있는 알렉산드르 밤필로프의 〈오리 사냥〉과 당대 최고의 여성작가로 손꼽히는 류드밀라 페뜨루셰프스카야의 〈친자노〉, 〈스미르노바의 생일〉 등의 희곡이 수록돼 있지만 그중에서도 제가 제일 좋아하는 희곡은 알렉산드르 갈린의 〈새벽하늘의 별들〉과 류드밀라 라주모프스카야의 〈집으로〉입니다. 사무엘 알료쉰의 〈열여덟번째 낙타〉도 상큼하면서도 경쾌하게 흘러가는 맛에 취해서 읽었지만 말이에요.

  

  하지만 제가 정작 권해 드리고 싶은 작가는 미하일 불가코프입니다. 『거장과 마르가리타』라는 장편소설로 20세기의 도스토예프스키라는 칭호를 선사받은 바로 그 작가지요. 우리나라에는 뜻밖에도 불가코프의 희곡이 몇 편 번역돼 있습니다. 몰리에르의 불운하고 모순에 가득 찬 삶을 자신의 비극적 삶에 비추어 철저하게 묘파한 『위선자들의 밀교』(김혜란 옮김, 연극과인간)와 모스크바를 배경으로 1920년대 혁명 직후 러시아의 모습을 담아낸 3막짜리 비극 『조이카의 아파트』(정막래 옮김, 지만지) 그리고 주인공 조야가 빚어내는 통쾌한 웃음과 잔잔한 감동을 통해 그 당시 사회를 풍자한 『백위군』(강수경 옮김, 지만지)이 출간되었는데요.

  1926년 모스크바 예술극장에서 막을 올린 그의 첫 희곡 〈투르빈가의 나날들〉엔 ‘제2의 〈갈매기〉’라는 호칭이 붙여졌을 만큼 그는 골수까지 연극적인 작가였다고 전해집니다. 불가코프는 희곡뿐만 아니라 산문에도 뛰어난 재능을 보였는데 그래서 “내게  산문과 희곡은 피아니스트의 오른손, 왼손과 같다.”는 유명한 말을 남기기기도 했지요.

  그러나 그 불가코프 역시 체호프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희곡을 성공적으로 무대 위에 올린 대연출가 스타니슬라프스키와 갈등이 있었습니다. 연출가가 자신의 작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고 여긴 것이지요. 동서고금을 불문하고 한 편의 희곡을 온전하게 이해하는 연출가는 참으로 드문 듯합니다. 남아 있는 기록을 살펴보면 스타니슬라프스키는 불가코프의 의견을 최대한 존중해서 그의 희곡을 고치지는 않습니다. 그 대신 배우를 통해 자신이 희곡에서 부족하게 느꼈던 부분을 채워 갑니다. 그는 멋있는 예술가였습니다.

  그런가 하면 폴란드 드라마의 아버지로 통하는 스와보미르 므로체크의 『바다 한가운데/미망인들』 같은 희곡집이나 세르비아 최고의 희곡작가인 브라니슬라브 누쉬치의 『수상한 자』 혹은 스위스 출신의 극작가 우르스 비드머의 『정상의 개들』을 접할 때면 이미 동유럽의 희곡들은 상당한 수준에 올라서 있구나 하는 인상을 받게 됩니다. 한 세대 전의 작가 아르투르 슈니츨러의 탁월한 희곡인 『녹색의 앵무새』나 카렐 차페크의 『로봇』을 읽을 때처럼 말이지요. 폴란드를 위시한 체코, 헝가리, 유고, 리투아니아 등의 나라들은 자유를 위한 열망과 투쟁이 자국의 현대사에 아로새겨져 있는 것 또한 특징이지요.

 

 

  3

 

 

  서열과 등수를 매기고, 높고 낮은 가치에 따라 승자와 패자가 결정되는, 그것은 상품들의 세계이지 예술의 세계는 아니다, 라고 그는 생각했다.

  ─ 박성원, 「몰서(沒書)」 중에서

 

  아프리카와 오세아니아를 거쳐 러시아를 돌아보고 나면 자연스럽게 다시 우리가 살고 있는 아시아에 눈길이 머물게 되는데요. 아시아의 희곡을 떠올릴 때 맨 먼저 스쳐가는 나라는 인도인데요. 그리스의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에 필적하는, 아니 그보다도 더 심오하고 거대한 서사시의 세계 『마하바라타』와 『라마야나』, 그중에서도 『마하바라타』는 이미 피터 브룩의 연출로 유럽에 알려져 엄청난 찬사를 받은 바 있습니다. 제 관심의 대상은 여기서 파생된 두 가지 견본인데요.

하나는 산스크리트 문학의 꽃으로 추앙받는 『샤꾼딸라』(박경숙 옮김, 지식산업사)이고 또 다른 하나는 『바가바드 기타』(이현주 옮김, 당대)입니다. 5세기 무렵 깔리다사가 편찬한 전자는 아름다운 숲 속의 처녀 샤꾼딸라가 겸손한 군주 두샨따를 만나면서 벌어지는 사랑 이야기지요. 사랑 이야기이긴 한데 신마저 흠모하고 질투한 사랑 이야기라고 하니 가히 볼 만하지 않겠습니까.

  저의 시선은 이제 인도를 거쳐 중국과 일본으로 건너갑니다. 중국의 현대극작가 하면 바로 가오싱젠이 생각나지만 그는 굉장히 실험적인 작가였습니다. 게다가 정치적인 이유로 프랑스로 망명하게 되면서 작품 외적인 평가가 덧칠해진 감이 많습니다. 한국학술정보에서 펴낸 『중국현대단막극선』을 보면 대사를 위주로 한 극예술인 화극이 어떻게 발전해 왔는지 짐작하실 수 있습니다. 호적, 진대비, 정서림, 구양여천 같은 작가들의 이름을 기억하실 수 있어요. 그런데 저는 한국문화사에서 발간한 조우의 3대 희곡집을 강력하게 추천하고 싶네요. 〈뇌우〉, 〈일출〉, 〈원야〉로 연결되는 그의 작품세계를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문학성이 높고 연극성이 강하다고 해야 할까요.

  학고방에서 하경심, 신진호 공역으로 발간되고 있는 『중국현대희곡총서』도 주목할 만합니다. 역사학자이자 문인으로 역사극을 주로 쓴 곽말약, 소설가이면서 극작가로 현대사에 얽힌 인간군상에 집중했던 노사, 중국 문단의 2세대 작가로 국가와 사회와 민족의 문제를 부각시켰던 풍자희극의 대가 진백진, 팔방미인에 다재다능한 재주를 갖고 있던 전한과 하연의 작품들이 속속 독자들과 만나고 있어서 반갑습니다.

  일본 현대희곡의 뿌리를 훑어보고 싶다면 『일본현대희곡선』(박영산 옮김, 소화)도 눈여겨보시면 좋을 듯합니다. 민화극의 대가 기노시다 준지의 〈석학〉을 비롯하여 부조리의 미학을 유감없이 발휘한 시나 린조의 〈천국으로의 원정〉, 시류에 편승하는 일본인을 비판한 미요시 주조의 〈하룻밤〉, 실존주의와 자연주의가 얼크러진 기묘한 세계를 창출했던 가토 미치오의 〈천국도둑〉, 절대자의 탐구에 몰두했던 야시로 세이이치의 〈미야기노〉 등 그야말로 보석 같은 단막극들이 빼곡하게 실려 있는데요.

  사실 일본 극작가들은 이미 우리나라에 소개될 만큼 소개되어 있고 무대에 올라간 작품들도 여러 편이지요. 다섯 권이나 나온 『현대 일본희곡집 1─5』만 보더라도 신랄하고 유머가 번쩍이는 대사를 구사하는 부조리극의 일인자 베쓰야쿠 미노루, 초기에는 서민들의 일상을 세밀하게 묘사한 작품을 선보였다가 점차 원시적이고 종교적인 색채가 농후한 희곡을 발표하고 있는 마쓰다 마사타카를 시작으로 쓰시다 히데오, 기타무라 소오, 노다 히데키, 기시다 구니오, 코조우 토시노부, 하타사와 세이고, 호라이 류타, 히가시 켄지 같은 각자의 영역이 확실하고 개성이 강한 작가들의 대표작들이 실려 있으니까요. 원로에서 신인에 이르는 다양한 일본 작가들의 희곡을 읽다 보면 극의 구성이 처음부터 끝까지 극에서 극으로 내닫는 집요함과 치열함에 등골이 서늘해질 때가 많습니다. 그러면서 다시 한국의 암담한 연극 현실로 되돌아오게 되지요.

  굳이 한국 연극 100년 그 이후를 점쳐 보고 싶지는 않습니다만, 비평계에 몸을 담고 있는 선생님이 너무나 잘 아시겠지만, 몇 년 전 한국 연극계는 한국 연극 100년을 기념하는 행사를 벌였습니다. 연말에는 대한민국 연극대상이라는 연극인들만의 축제를 만들어 그동안 고생했던 원로 연극인들을 위한 잔치를 마련하기도 했지요. 요 몇 년 사이에 곳곳에 중극장이 들어서고 여러 행사들이 기획, 마련되고 있습니다. 외국에서 화제가 됐던 공연들은 속속 들어오고 있지요. 그런데 저는 이것이 진정한 한국 연극의 부활이고 발전인지 고개가 갸웃거려집니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한국 연극에는 자기 성찰을 위장한 자기 기만과 자기 위안만이 있을 뿐 주체적인 자기 반성이 없는 게 아닐까요? 겉만 번지르르한 빛 좋은 개살구처럼 말이에요. 형식은 늘 요란하고 화려한데 그 속을 들여다보면 실속도, 내용도 없듯이 외관만 부풀려져 있고 정작 있어야 할 알맹이는 어디론가 도망가고 찾아볼 수 없는 영양실조 상태, 그것이 한국 연극의 현주소가 아닌지 가끔씩 두려워질 때가 있습니다.

  가령 희곡을 쓰는 작가들은 더 이상 고민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자신이 왜 글을 쓰고 있는가?’라는 본질적인 질문보다는 ‘어떻게 하면 한 번 더 공연할 수 있을까’ 혹은 ‘남보다 더 이름을 알리고 유명해질 수 있을까’ 하는 눈앞의 생각에만 골몰해있는 듯합니다. 관심이 다른 곳에 가 있는 거겠지요. 그들은 ‘희곡이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도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형식과 내용에 대한 고민이 모두 결여된 것이지요. 그런 희곡이 관객에게 다가가 그들의 마음을 움직이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연출가들은 실험이니 전위니 온갖 미사여구를 동원해 가며 기존의 성역을 무너뜨리는 데만 정신이 팔려 있는 듯 보입니다. 그들이 자주 인용하고 동원하는 ‘새로운 미학’이라는 말은 조금은 의심스럽고 수상합니다. 무릇 어떤 질서나 관념을 해체하기란 쉬운 법이지만 정작 어려운 것은 아무것도 남지 않은 폐허의 빈자리에 다시 그 무언가를 채워 넣고 짓는 일이겠지요. 한국의 젊은 연출가들에게 넘치는 것은 전복의 의지이며 부족한 것은 건설의 의지일 터이지요.

  희곡과 연출이 어디론가 실종된 상태에서 배우들은 외로울 수밖에 없습니다. 그들은 설 자리를 잃어버리고 무대 아닌 객석이나 거리에서 방황을 하거나 혹은 생계를 위해 일찍 영화나 TV 쪽으로 눈을 돌리기도 합니다. 배우에게 부여된 소임을 망각한 채 하루하루를 부초처럼 정처 없이 떠도는 이유는 그들에게 장밋빛 미래가 없기 때문이겠지요.

  작가와 연출가와 배우들이 사라진 텅 빈 극장에 관객들이 찾아올 리 만무하지요. 아무런 의미가 없이 허무한 메아리만 되울려 나오는 예술의 진공 상태에서 극단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이상한 것은 그런데도 극단의 숫자는 늘어만 가고 해마다 대학로로 들어오는 연극인들의 숫자도 줄어들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문예창작과만큼이나 많다는 전국에 있는 모든 연극영화과 졸업생들이 영화나 방송으로 가기 위한 임시 거처로 대학로를 선택하는 걸까요? 참으로 기이한 현상입니다.

  연극을 하는 행위란 외로운 작업이지요. 때에 따라서 예외적인 경우가 없지는 않겠지만 그것은 작가나 배우가 협회를 만들어 행정을 하거나 연출가가 자신의 계보를 만들어 파벌을 형성하는 것과는 본질적으로 관계가 먼 일입니다. 비평가가 비평의 힘을 이용해서 창작자 위에 군림하려는 일과도 아무 상관이 없는 일이지요. 연극은 거기 그냥 홀로 존재하는 것이니까요. 고고하게 존재하면서 그 사회를 드러낸다고나 할까요.

 

 

  4

 

 

  어느 한 편에 들어간 사람은 각기 하나의 세력이 되어 나머지 네댓 편과 대적하게 되니, 한 개인이 외롭지 않으랴? 한 편의 세력이 강성하면 한 편의 세력은 쇠약하기 마련이다. 어느 한 편만을 따라 진퇴를 삼으면서 스스로 절의가 있다고 하는데, 그 절의가 한 개인에게도 해당될 수 있는 것이겠는가?

  누런 것은 스스로 누렇다 하고, 푸른 것은 스스로 푸르다 하는데, 그 누렇고 푸른 것이 과연 그 본성이겠는가? 갑에게 물으면 갑이 옳고 을은 그르다 하고, 을에게 물으면 을이 옳고 갑은 그르다고 한다. 그 둘 다 옳은 것인가? 아니면 둘 다 그른 것인가? 갑과 을이 둘 다 옳을 수는 없는 것인가?

  ─ 유몽인, 「나 홀로 가는 길」 중에서

 

  2000년대, 그러니까 지난 10년간의 한국 연극판을 되돌아보면서 저는 아주 엉뚱하게도 다른 희곡을 상상해 봅니다. 가령, 1. 사건이 없고 상황에 의지한 정서만 있을 뿐이다 혹은 2. 언어는 좋은데 구성이 진부하다 같은 경우가 이에 해당하겠지요. 결론을 말하자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희곡은 시나 소설 같으면 안 될까요? 따위의 어리석은 문제제기에 다름 아닐 것입니다.

  어떤 희곡이 사건이 많고 갈등이 큰 일반적인 희곡의 유형과는 다르게 요란한 사건도 거의 없고 갈등의 진폭도 크지 않다고 가정을 해볼까요. 서양의 꽉 짜인 플롯에 의지하는 웰메이드극(Well-made Play)이라기보다는 스토리텔링(Story-telling)에 더 비중을 두는 동양의 느슨한 구성에 가깝다고 할 수 있을 희곡 말입니다. 저 역시 분위기와 정서와 상황이 극의 전체적인 흐름을 이끌어 가는 희곡을 쓰고 싶었고 무대 자체도 협소한 실내가 아니라 대자연을 배경으로 과거, 현재, 미래를 뒤섞어 희곡이 태생적으로 안고 있는 시, 공간의 제약을 넘어 보고 싶었지요.

  그러하기에 그 희곡이 연출가를 암담하게 만들고 배우들은 기댈 곳이 없는 작품임을 인지하고 있다고 해도 그러나 거꾸로 말한다면 무대 위에 올리기 힘든 작품을 결국은 관객들과 멋지게 만나게 하는 것이 연출가이고 배우가 아닐까요. 늘 하던 쉬운 작품을 올리는 일은 그 누가 못 하겠습니까. 그 대신 그렇게 고생해서 올린 작품에 뒤따르는 명예나 보상은 고스란히 연출가나 배우들 몫으로 돌아가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질문을 던져 봅니다. 희곡이 새롭고 참신한데도 연극은 진부하고 상투적일 수 있는가, 혹은 연극이 비록 천박하고 통속적이어도 희곡은 고귀한 예술성을 담보할 수 있는가. 희곡은 말의 아름다움을 생명으로 하는 문학이지요. 그 말이 왜곡, 변형되고 훼손될 때 무대는 그저 배우들의 한낱 공허한 연회장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습니다. 연출가와 배우는 작가가 살아온 세월과 시간의 무게를 견디며 그 아픔을 함께 나누어 갖는 이들이지요. 그들에게 새로운 창조란 곧 희곡에 대한 충실하고 완벽한 해석과 이해를 뜻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에게 어느 누가 절망과 고통의 면류관인 동시에 희망과 기쁨으로 가득 찬 영광스러운 월계관의 명예를 부여해 줄까요.

  저는 성공을 해서 제자리에 안주하느니 실패를 할지언정 한 걸음 더 나아가는 길을 택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한국 연극이 조금이라도 발전하는 길이라고 믿습니다. 바람이 있다면 그저 제가 나이가 들어서도 희곡을 쓸 수 있고 그 희곡을 소박하게나마 무대 위에 올릴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됐으면 좋겠다는 정도지요. 연극을 하는 사람들끼리 어울려서 잘 나이를 먹으면서 늙어 가고 싶으니까요.

 

 

  * 덧붙임

 

 

  연극평론을 쓰는 본래의 이유는 공연을 보지 못한 사람들에게 연극을 소개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실제로 비평가는 연극 초연을 본 사람들과 동료 비평가들 위주로 연극평론을 쓰는 경향이 있으며 연기를 한 배우들과 연출가들도 염두에 두는 듯하다. 왜냐하면 비평가가 개인적으로 아는 사람들이 바로 그들이기 때문이다. 비평가가 평론을 쓸 때 그 평론을 읽어 줄 사람들도 바로 그들이지 공연도 작품도 작가도 모르는 잠재적인 관객이 아니다. 그 전문가 집단에게 자신이 별로 아는 것이 없는 단순한 사람으로 비치지 않기 위해 비평가는 자신의 지식을 선행시킨다.

  그는 연극을 기술하는 것이 아니라 판결한다. 그는 작가와 작품에 관한 정보를 전하고 거기에서 비평의 척도를 이끌어내는 것이 아니라 독자가 알지 못하는 다른 공연과 연출들을 끌어온다. 그 이유는 연극이 사실상 인사이더들만의 닫힌 세계이기 때문이다. 연출가들도 연극을 비전문가들도 이해할 수 있도록 연출하는 데 주목적을 두기보다는 다른 동료 연출가들과 자신을 차별화하는 데 신경을 더 많이 쓴다. 이런 경향은 연극비평이 연극을 서로 비교하기 때문에 더욱 심해진다. 그러한 이유에서 많은 평론가들은 무명의 창작극보다는 고전적인 작품들의 공연에 대해 많은 글을 쓴다. 그들은 수고를 많이 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리고 창작극에 대해서는 무엇을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른다. 창작극을 발굴하기 위해서는 작품을 읽어야 하고 작가가 누구인지도 공부해야 한다. 게다가 연출과 연기 스타일의 묘사를 위한 적절한 용어가 없다.

  비유하자면, 시계를 잃어버린 사람이 시계를 잃은 장소에서 찾지 않고 조명이 환한 곳에서 찾아 헤매는 경우와 마찬가지다. 그는 시계를 찾아야 한다는 본래의 목적을 망각하고 찾는 일 자체의 재미에 푹 빠진다. 평론가도 이처럼 가장 쉽게 묘사할 수 있는 부분 이를테면 무대화나 의상 쪽으로 도피한다. 이로써 규칙의 쳇바퀴가 생산된다. 비평가가 이런 엉뚱한 곳에 가치를 많이 두기 때문에 연출가는 연출의 ‘구상’, 예컨대 벙커 속의 햄릿, 백악관의 햄릿, 마피아단의 햄릿 따위에 많은 정력을 소모한다.

  그 결과 연극비평은 우리가 순진하게 읽으면 많은 오산을 하게 만드는 텍스트가 된다. 우리는 그 코드를 해석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정보는 관객이 열광했다고 말하는 부분에 숨겨져 있다. 비평가의 혹평이 관객의 환호와 차이가 날 때는 그 부분을 일부러 찾아 행간을 읽어야 한다. 그는 거짓말을 할 수는 없으므로 그 사실을 종속문 안에 숨긴다. 관객의 반응은 공연 전체의 인상이 어떠했는지에 대한 유일한 증거다. 관객은 환대 받거나 감격했으면 왜 그랬는지에 대해 분석하며 관심을 갖게 된다. 작품의 완성도, 구상, 연출의 착상 또는 배우의 연기능력이 거기에서 고려된다. 실제로는 언제나 이 모든 요소가 비중의 차이는 있지만 함께 작용한다. 그러나 비평가는 그 모든 것을 빙빙 돌려 분해해서 연출 부문에만 집중한다.

  우리는 이것을 연출의 효과 자체로 보완해야 한다. 환언하면 『햄릿』은 주인공이 밴드 스타킹 집게를 하고 등장하지 않아도 또는 비디오카세트가 무대에 제시되지 않은 채 텍스트만 뚜렷이 읽어도 효과가 있는 작품이다. 더 자세히 말하자면 비평가가 구상과 무대화를 강조할수록 칭찬이든 비판이든 간에 그만큼 더 많은 의심을 품어야 한다. 비평가가 연출가의 상상력 결핍을 나무라면서 관객의 환호를 지나가는 말로만 언급한다면 우리는 극작가가 의도한 대로 작품을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 디트리히 슈바니츠, 『교양』 중 제2부 능력 2. 책과 글의 세계 〈연극평론〉 전문

 

  재작년 가을 서울에서 열린 제4회 연극올림픽에는 한국의 내로라하는 연극인들과 다수의 명망 있는 국제적인 연극계 인사들이 참여해서 화제가 됐었지요. 세계적인 연출가로 추앙받는 로버트 윌슨이나 스즈키 다다시도 내한해서 심포지엄에 참석하고 자신의 대표작들을 국내 관객들에게 선보였는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들이 이 축제에 참여하고 안 하고는 그다지 중요하거나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지금 말하고자 하는 문제의 핵심은 세계평화와 휴머니즘을 표어로 내걸었던 이 연극축제가 전 지구적인 정글자본주의와 빈부의 격차를 심화시키기 위해 마련된 G20 정상회담을 축하하고 옹호했다는 데 있습니다. 그리고 저의 과문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연극올림픽이 끝나고 나서도 그 지점에 대해서 정당한 문제제기를 한 연극학자와 비평가는 단 한 사람도 없었지요. 물론 대다수의 젊은 연극인들은 그 행사에 참가하지 않는 것으로 자신의 의사표시를 명확하게 했다고 생각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먼 훗날 의식 있는 연극사가들은 2010년 가을 지배 권력을 옹호하기 위해 서울에서 열렸던 연극올림픽을 부끄럽게 여길지도 모르겠습니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한국 연극계의 고질적인 병폐는 유려한 희곡을 쓰는 극작가나 뛰어난 연출가와 배우가 없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떤 문제나 사안을 직시하여 바르게 보고 판단할 수 있는 심미적 이성이나 올곧은 비판의 힘이 부재하다는 데 있는 게 아닐까요. 혹은 그것을 소신 있게 발언할 수 있는 용기 있는 학자들과 비평가가 없다는 데 있는 건 아닐까요.

  모든 예술이 그러하듯 연극 역시 한 개인의 입신출세와 부귀영화를 위해 존재하는 것은 아니지요. 연극은 태생 자체가 사회적일 수밖에 없고 연극이 떠맡고 있는 그러한 역할과 기능은 시대의 변화 속에서도 언제나 늘 전위의 위치에 서 있었습니다. 한국 연극은 그러나 지금 그 모든 소명의식을 망각하고 좌표를 잃은 채 망망대해에서 표류하고 있는 듯합니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도 모르고 그저 바람 부는 대로, 발길 닿는 대로 내딛을 뿐.

  이제 데뷔 십 년이 조금 넘은 후배 작가가 선배들과 선생들을 향해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선생이나 선배들에 대한 인간적인 도리나 예의를 몰라서가 아니라 저 역시 한국 연극계의 울타리 안에 놓여 있는 작가이고 그렇기 때문에 진심으로 한국 연극이 제자리에 머무르지 않고 조금씩이나마 발전하길 바라는 마음에서입니다. 그리고 더 근원적인 이유는… 이 지긋지긋하고 진절머리 나서 눈 감고 등 돌리고 싶은 그러나 결국은 외면할 수 없는 우리의 ‘연극’을 지독히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진심으로 좋아하고 존경하는 러시아의 작가 안톤 체호프의 말을 빌리면서 선생님께 띄운 이 기나긴 글은 여기서 이만 접고 싶네요. “내가 두려워하는 사람은 작품의 행간에서 어떤 의미를 찾아 나를 진보주의자나 보수주의자로 확고하게 규정지으려는 자들이다. 나는 진보주의자도 보수주의자도 아니다. 그렇다고 유신론자도 무신론자도 아니다. 나는 그저 자유로운 예술가이고 싶다.”

  끝으로 최근에 관람한 김승철이 연출한 극단 백수광부의 『안티고네』처럼 지난 한 해 저를 들뜨게 하고 설레게 하고 여러 가지 것을 되짚어 보게 만들었던 연극들의 목록을 전해 드리면서 다가오는 봄을 맞으려고 합니다. 아직은 칼끝 같은 찬바람이 마른 나뭇가지 위를 맴도는 그리움처럼 사람의 마음을 움츠러들게 하는 계절이지만 불시에 들이닥칠 사랑의 예감을 감지하듯 곧 온 생명이 한껏 기지개를 켜는 제5의 나날들이 펼쳐지리라 믿습니다. 그러고 보면 도저히 믿어지지 않지만 저도, 선생님도 어느새 중년의 나이군요. 조만간 어디선가 또 뵙게 되겠지요. 그때까지 사랑과 행복의 충만함 속에서 내내 평안하시길 기원해 봅니다.

 

  * 더 위너, 김수희 작-연출, 극단 미인

  * 마음이 가난한 사람, 이양구 작-연출, 극단 해인

  * 판 엎고, 퉤!, 김지훈 작-연출, 극단 연희단거리패

  * 상주국수집, 강량원 작-연출, 극단 동

  * 마호로바, 호라이 류타 작-김재엽 연출, 극단 드림플레이

  * 인디안 블로그, 플레이위드 작-박선희 연출, 극단 연우무대

  * 못생긴 남자, 마리우스 폰 마이엔부르크 작-윤광진 연출, 공연제작센터

  * 우어파우스트, 괴테 작-다비드 뵈쉬 연출, 명동예술극장

  * 꿈속을 거닐다, 김민정 작-연출, 무브먼트 <당-당>

  * 박완서-배우가 다시 읽다(입체낭독공연), 극단 종이로 만든 배/극단 이루/제12언어연극스튜디오/극단 놀땅

 

 

 

《문장웹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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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12-26
바벨의 침묵

사유의 드로잉_제5회 바벨의 침묵 강수미 (미학, 한국예술종합학교 학술연구 교수) “신이 듣기를 원하는 유일한 인간의 언어, 라틴어를 상실한 비극적인 양들의 무리인 우리는 메에 하고 우는 것 외에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1) 논쟁과 관련해서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잊히지 않는 기억이 내게는 몇 있다. 그중에 특히 내가 사회적으로 발언할 권리가 더 많아지고, 내 주장에 힘이 더 실리면 실릴수록 더 씁쓸하게 되살아나고 스스로를 반성하게 되는 기억이 있다. 그것은 요컨대 논쟁 당시에는 꽤 유창한 언변과 분명한 논리를 펴 논쟁 상대로부터 동의 내지는 항복을 받아냈으나, 결국 그 사람과 관계가 소원해지거나 나중에 예상치 못하게 비판의 부메랑을 맞은 기억이다. 대체로 그런 기억 속에서 상대방은 내 의견에 반박하거나 항변하지 않았다. 다만 조용히 듣고 있다가 자신의 입장이나 생각을 드러내지 않은 채 자리를 마무리했을 뿐이다. 그래서 당시 나는 안일하게도 내 주장이 설득력 있게 그 사람에게 전달됐거니 생각했고, 나아가 어리석게도 서로 잠깐 불편하기는 했지만 결국에는 더 좋은 쪽으로 우리가 함께 가게 됐다고 기뻐했던 것 같다. 그것이 착각이자 오만이었음을 깨닫는 데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실제로 그 사람은 논쟁의 순간 정작 침묵함으로써 나를 공박했을 뿐만 아니라 아마도 가장 실리적인 방식으로 자신의 입장을 관철한 것이라는 사실을 인생 굽이굽이에서 깨달았다. 이를테면 침묵은 논쟁의 기술 중 매우 은밀한 힘을 가진 공격 무기였던 것이다. 제18대 대통령 선거가 끝나고 며칠이 지난 2012년 12월 말 현재, 대한민국의 대중 미디어는 물론 개인 사용자를 기반으로 한 SNS에서 말들이 넘쳐난다. 그 말들의 양은 선거를 치르기 전 상태를 압도하지만, 내용은 그보다는 훨씬 단조롭다. 예컨대 당선자가 된 후보의 소감에서 시작해 당선 후 국민에게 보내는 첫 ‘메시지’, 유력 인사들의 축하 인사말과 당선자의 답사 등이 속속들이 전달되고 있다. 또 그녀의 파란만장한 인생역정과 선거 성공담이 거듭거듭 매체를 통해 회자되고, 대한민국의 새 통치권자가 될 당선자에 대한 각계의 바람과 조언이 줄을 잇고 있다. 동시에 대통령 당선자를 둘러싼 그런 정치적인 말들과 비등한 양을 차지하는 말은 이번 대선 결과에 대한 사회학적 분석 담론이다. 최종 투표율 75.8%로 1987년 직선제 시행 이후 계속 하락 추세를 보였던 투표율이 처음 반등했다는 사실에서부터, 투표율이 70%가 넘으면 야당에 유리할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관성적 예측을 깨고 어떻게 여당 후보가 당선될 수 있었는가에 대한 분석에 이르기까지 범주상 비슷한 말들이 넘쳐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 담론 중 특히 의미심장하고 주목할 자료가 있다. ‘방송 3사 출구조사’를 기초로 전체 유권자 중 투표에 참여한 75.8%를 지역·세대·직업·학력·소득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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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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