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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 김연수 소설가와의 대화

  • 작성일 2012-09-22
  • 조회수 2,632

 

  철학카페에서 작가를 만나다_제4회

   김연수 작가와의 대담

 

 

[대담] 소설가 김연수와 철학자 김용규의 대담

 

 

일시 _ 2012. 7. 23 저녁 7시 20분

장소 _ 대학로 예술가의 집 3층 다목적실

 

 

 

 

 



   김용규 _ 제가 김연수 작가를 소개해 드리려고 하는데, 여러분들이 저보다 더 아시겠지만 간단히 요약하자면 이렇습니다.

   김연수 선생님은 1993년 작가세계 여름호에 시를 발표하시고 94년에 장편소설 『가면을 가리키며 걷기』로 제3회 작가세계 문학상을 수상하면서 본격적인 문학 활동을 시작하셨습니다. 그 이후 장편소설 『굳빠이 이상』으로 2001년에 동서문학상, 소설집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로 2003년 동인문학상, 『나는 유령작가입니다』로 2006년 대산문학상, 「달로 간 코메디언」으로 2007년 황순원문학상을 받았습니다. 읽기도 힘듭니다. 상을 너무 많이 받으셨어요. 단편 「산책하는 이들의 다섯 가지 즐거움」으로 2009년 이상문학상을 수상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지난해 젊은 문학 비평가들과 문학 전문기자, 서점 MD들이 선정한 설문조사에서 2000년대 최고의 한국 문학 목록에 단편 「다시 한 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과 우리가 오늘 얘기 나눌 장편소설 『밤은 노래한다』를 함께 올려놓으신 발군의 작가이기도 합니다.

   오늘 함께 말씀드려 볼 『밤은 노래한다』는 여러분들 다 읽고 오셨죠? 읽고 오셨으리라 믿습니다.

   『밤은 노래한다』는 일제 강점기에 동만주 항일 유격 근거지에서 조선의 해방과 사회적 평등이라는 숭고한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 혁명에 투신했던 동지들이 서로를 일제의 간첩으로 몰아서 무차별 처형을 감행함으로써, 급기야 불과 3, 4년 만에 자취를 완전히 감춰버린 ‘민생단’ 사건을 소재로 하고 있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많은 분들이 김연수 선생님이 이런 감춰진 사건, 잘 알려지지 않은 사건을 다루시지 않았다면 이런 사건이 있었는지도 모를, 그런 귀한 소식을 다루셨습니다.

   이야기는 1930년대 초 북간도 땅을 배경으로 박도만, 최도식, 안세훈, 박길용이라는 네 명의 젊은이들과 그들 모두의 연인인 이정희라는 신여성, 그리고 만철의 측량기사로 역시 이정희를 사랑했던 주인공 김해연이 겪어야 했던 처절하고 잔혹한 운명을 따라가면서 그리고 있습니다.

   민생단 사건은 최소 오백여 명에 달하는 혁명가들이 적이 아니라 동지의 손에 처형되었다는 점에서, 또 그것이 이데올로기가 가진 어둠 때문에 일어났다는 점에서 아서 쾨슬러의 『한낮의 어둠』이 다룬 모습, 재판과 맥을 같이한다고 저는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민생단 사건을 다룬 『밤은 노래한다』의 밤과, 모스크바 재판을 다룬 『한낮의 어둠』의 어둠이 그 성격이 다를 수가 없다는 것이 제 생각이기도 한데요.

   정말 그런지 아닌지는 선생님 직접 모셨으니 여쭤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렇게 나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또 평소 좋은 소설을 써주셔서 저뿐만이 아니라 많은 독자들이 선생님께 늘 감사함을 드리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본 질문에 앞서서 개인적인 질문을 하나 드리고 싶습니다.

   조금 전에 제가 읽기도 숨 가쁠 만큼 상을 참 많이 받으셨어요. 작가세계 문학상, 동서문학상, 동인문학상, 대산문학상, 황순원문학상, 이상문학상을 수상하셨습니다. 웬만한 문학상은 다 받지 않으셨나 하는데요. 저도 그렇습니다만 후배 작가나 동료작가들도 부러워할 것 같습니다. 외람되지만 선생님 소설의 어떤 점이 높이 평가받는다고 생각하세요?

 



  
김연수 _ 왜들 웃으세요? (웃음) 아무래도 뭐 이게 참, (웃음) 상을 받을 때는 한 번 한 번 받을 때마다, 굉장히 뭐랄까? 오랜만에 받는 듯한 느낌이었거든요. 그런데 지나고 나서 그렇게 죽 읽으시니까 굉장히 자주 받은 듯한 감이 드네요. 제가 제 입으로……. 사실은 왜 상을 받았는지는 저도 잘 모르겠고요. 글쎄요. 잘 모르겠습니다. 허허.

 

   김용규 _ 아! 상금도 많죠?

 

   김연수 _ 예. 많았습니다.

 

   김용규 _ 대강 얼마씩?

 

   김연수 _ 처음에 받았던 게 이천만 원이고요. 그 다음에는 오백만 원 받았고요.

 

   김용규 _ 한 1억 가는 것도 있습니까?

 

   김연수 _ 지금은 1억짜리 상금은 없습니다. 공모하는 상금 중에는 1억짜리가 있고 기성 작가들이 발표하는 작품에는 1억짜리 상금은 없습니다.

 

   김용규 _ 그래도 본인들이 여러 가지로, 사실은 자기의 삶과 영혼을 다 바쳐서 작품 활동하는데 거기에 대한 경제적 수입이 미치지 못하는 풍토에서 참으로 큰 힘이 되겠습니다.

 

   김연수 _ 예. 아주 큰 힘이 됐고요. (웃음) 생계에 큰 도움이 됐습니다.

 

   김용규 _ 선생님. 제가 이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작가 선생님을 네 번째 모시는데 다른 작가들에 비해 상당히 쑥스러워하시는 것 같아요.

 

   김연수 _ 첫 질문이 상당히 쑥스러워서요. 오히려 취조를 당하는 듯해서. (웃음)

 

   김용규 _ 제가 선생님에 관한 정보를 수집하느라 인터넷을 좀 뒤졌습니다. 선생님께서 어떤 인터뷰에서 자신을 ‘프로 소설가다’라고 규정하셨더라고요. 그 뜻이 뭐냐는 질문에는 이렇게 답하셨습니다. “폼 나게 계속 소설을 쓰자. 마음에는 큰 꿈을 갖자. 뭐 그런 생각이 있는 거죠. 일전에 인터뷰를 하면서 ‘체력이 약하다고 에베레스트 산의 높이를 낮출 수는 없지 않은가’라고 한 적이 있어요. 목표를 수정하거나 그렇게 하지 말자. 소설에 대해서는 그렇게 하지 말자. 이 소설에 대해서 어떤 사람이 관여하지 못하도록 이것을 지킨다. 그런 거죠. 억지로 받게 되는 청탁에는 콧방귀도 안 뀌는 것, ‘저는 그런 소설을 안 씁니다’라고 하는 것, 이런 의지가 제가 소설을 쓰면서 결심했던 거예요.”라고 이렇게 답하셨는데요. 참 훌륭한 결심입니다. 바로 그래서 좋은 소설을 쓰시고 상을 받는 게 아닌가 생각을 해봅니다.

   본인 생각은 어떠세요?

 

   김연수 _ 아무래도 그렇겠죠? 저도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웃음)

 

   김용규 _ 그러세요? 프로 소설가다?

 



  
김연수 _
사실은 소설 쓰는 게 굉장히 힘이 들어요. 저는 아주 운이 좋은 경우여서, 한 십 년 정도, 아까 말했다시피 아주 가끔씩 돌아오는 것처럼 상을 받았는데요. 돈이 떨어질 만하면 상을 주시더라고요. 공교롭게도 딱 2년씩 받았어요. 2년 정도면 버티고 버티다가 ‘힘들어 죽겠다’ 할 때요.

   전 원래 직장을 다녔는데요. 제가 직장을 그만두고 나서 소설을 좀 써보자 하고 그 전에도 돈을 일단 벌 계획을 세워 두고 그만뒀어요. 연재를 잡고 그 다음에 번역을 해서요 그 계획 중에 소설로 돈을 벌어서 생계를 유지하겠다는 계획이 없었어요. 아까 숭고함 그런 얘기 많이 했는데요. 소설로 번 돈은 쓰지 말자. 이것은 다른 것에 쓰자. 생계에 쓰지 말자. 생각을 하고 다른 돈을 버는 일들을 많이 했어요. 왜냐하면 기본적으로 소설로 들어오는 돈이 너무 적기 때문에 이걸 저의 생계로 쓰겠다는 게 자존심이 되게 상했어요.

   예를 들어 제가 2002년에 회사를 그만뒀는데요. 월드컵 할 때였어요. 그래서 ‘월드컵 전 경기를 보겠다’ 회사에 얘기하고 그만뒀어요. ‘폼 나게 살자’가 계속 모토인데, ‘소설 쓰려고 그만둡니다’ 이렇게 얘기하는 건 구차해 보이잖아요? 그리고 열심히 일하는 거죠. 그땐 아르바이트도 하고 있을 때였어요. 어떤 백과사전에 항목을 써주고 한 달에 100만 원씩 받고 그럴 때였는데요. 그때 책을 내면 3,000부 정도가 나갔어요. 1년에 책 한 권 내기가 굉장히 어려운데, 쓰면 되겠지만 쓰기도 어렵고 그 책을 내기도 힘들어요. 어렵게 한 권 내면 3,000부가 팔리니까 계산을 하면 그때 책값이 7,000원 정도라 200만 원 정도가 들어와요. 1년에 200만 원을 받는 일을 한다? 그런 게 굉장히 자존심이 상해서 200만 원은 그냥 쓰고 싶은 데 쓰고 나머지는 다 딴걸로 돈을 벌어서 생계를 유지했어요.

   저는 결혼해서 아이도 있었고요. 글 쓰면서 되게 가난한 집 이미지를 주고 싶지 않아서 다른 일을 열심히 했던 거죠. 그래서 아마 더 그런 생각들을 했던 것 같아요. 아예 처음부터 소설로는 돈을 벌지 않겠다는 생각은 있었어요. 그런데 상금은 예외였고요. (웃음) 상금은 약간 다른 문제라서 제가 쓰는 글에 영향을 안 미쳤어요. 제가 20년째 글 쓰는 문학계에 있는데 다른 곳에 비해서는 약간 공정해요. 예를 들어서 어떤 사람이 잘 보여서 술자리에서 막 ‘상 좀 주세요’ 해서 상을 받고 이런 경우는 잘 없어요. 어느 정도는 공정한 편이어서 이게 제가 쓰는 거리나 행동에 영향을 많이 안 미쳐요.

   그런데 이제 제가 책이 많이 잘 팔려서 다음 소설을 써야겠다고 그러는 순간부터 저는 이제 제대로 된 소설을 쓸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뭐 당연하죠. 그렇게 생각하면 언제나 부족해요. 지금도 부족해요. 제가 쓰는 소설만큼 돈을 벌지 못한다고, 지금도 생각을 해요. 지금보다 훨씬 많이 벌어야 한다 생각하는 거죠. 지금도 소설로 내가 아주 많은 돈을 벌겠다 그런 생각은 전혀 없고요. 그게 왜냐하면 안 그러면 어쨌든, 제가 약간 그게 무엇인지 모르겠는데요. 시장의 요구일지 아니면 출판사의 요구일지 알 수 없지만, 거기에 고개를 숙여야 되는데, 아직까지는 고개를 숙이는 게 싫으니까요.

 

   김용규 _ 예. 무슨 말씀인지도 잘 알겠습니다. 참 훌륭하십니다. 왜 잘 아느냐 하면 저도 같은 고민을 늘 한 사람이니까요 저는 선생님처럼 훌륭하지 못해서 늘 시장을 기웃거리고 한 권이라도 더 팔아 볼까 엿보는 사람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앞으로도 좋은 뜻으로 선생님 말씀하신 프로 소설가로 남으셔서 좋은 작품 많이 내주시기 바랍니다.

   오늘 우리는 이데올로기 형식적 특성에 대해서 얘기했기 때문에 지금부터 이와 연관해서 질문을 드리려고 합니다.

   해석하기 나름이겠지만 제 눈에는 선생님 소설 『밤은 노래한다』가 마치 도스토예프스키 주인공처럼 이데올로기를 신봉하는 사람들, 곧 이데올로그(ideologue)들의 문제를 다룬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선생님은 이 작품을 쓰시기 위해서 2003년까지 2008년까지 6년을 보내셨고, 그 사이에 연변대학교에 가서 9개월 동안 조사를 하고 자료를 찾는 등 특별한 열정을 기울이셨어요. 이런 사람들의 문제에 이처럼 특별한 관심을 두신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요? 궁금합니다.

 

   김연수 _ 처음에는 이 소설을 쓰려고 했던 게 아니라 다른 소설이었는데요. 어떤 소설을 써야겠다 한 건 1994년이었는데요. 그때 북한 핵문제가 불거졌어요. 4월쯤 됐던 것 같은데요. 도서관에서 조선일보를 보고 있는데 하단에 월간 조선 광고가 실렸어요. 맨 위에 어떤 문구가 있었는가 하면, ‘북한을 지금 당장 폭격을 하자. 연변 핵시설을 폭격하자’라는 구호가 실린 광고가 있었어요. 그때 그걸 보고……. 허허. 상당히 대담하더라고요. 공격을 하자니, 엄청난 상상력이죠. 제가 못 하는 상상력이니까요.

   책을 보고 있는데 첫 번째 든 의문은 ‘어떻게 이 말을 대놓고 할 수 있을까?’였고요. 저도 그때는 순진했으니까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할 수도 있겠죠. 못할 것도 없죠. 같은 족이라고 안 죽이는 것도 아닌데, 남한에서도 서로서로 죽이고 그러잖아요. 북한이야……. 그런데 그해 여름까지 도서관에서 책을 봤는데 두 가지 책을 봤어요. 하나는 독일의 콘라트 로렌츠 동물학자가 쓴 『공격성에 대하여』라는 책이었어요.

 

   김용규 _ 유명한 책이죠.

 

   김연수 _ 그 책을 봤는데 동족을 잡아먹는 물고기에 대한 게 있었어요. 그게 드문 경우라는 거예요. 서로 죽이는 건 동물도 안 하는 짓이구나. 그게 참 인상적으로 보이더라고요. 두 번째는 역사책인데 이름은 정확히 기억이 잘 안 나고요. 1910년대 독립운동에 대해서 쓴 책이에요. 거기에 어떤 인물이 나오는데요. 전덕원이라는 인물이었어요. 그 사람은 유림, 유학자 출신이고 왕을 다시 옹립하자는 복벽주의자예요. 그래서 합병이 되니까 책 다 팔고 대가족 이끌고 식솔하고 만주로 갔어요. 거기서 무장투쟁을 하는 거죠. 한 10년 고생하면서 무장투쟁을 하는데 중국에 공화사상이 들어오니까 복벽하고는 원수가 되는 거예요. 공화사상은 대리인을 뽑는 거죠. 그 사람 그룹에도 공화주의자들이 생겨 갈라지게 돼요. 공화파하고 복벽파하고요. 정확하게 팩트가 헷갈리는 게 둘 중에 한 그룹이 주재소를 습격해요. 습격하고 전과를 거두고 돌아오는데, 아마 복벽파가 공화파들을 쐈을 거예요. 그래서 하필이면 멋진 성과를 거두고 돌아올 때 의견이 달라서 이 사람들을 죽여요. 자기들이 다 아는 사람들이죠. 상황이 너무 드라마틱했어요. 예를 들어서 할 일도 없고 힘들어 죽겠고 우리 다 죽었으면 좋겠다 이럴 때 와서 죽이면 별거 없잖아요. 하필이면 주재소 습격해서 완전히 성과를 거뒀을 때, 너무 기뻤을 때 돌아오는 사람들을 죽였어요. 그게 너무 인상적이었어요. 그게 첫 번째 동란이라고 하더라고요. 이걸로 소설을 써보자 했어요.

   그 세 가지가 합쳐져서 소설을 써보자고 했던 거예요.

   대학교 3학년 때였는데, 열심히 썼어요. 한 1년 정도요. 상상하시겠지만 대학교 3학년이 아무리 써봐야 너무 어려워요. 진짜 어렵더라고요. 책을 봐도 뭔 소리인지 잘 모르겠고요. 썼는데 역사 부분만 쓸 수 없으니까 역사 부분하고 현대 부분 오가면서 썼는데 역사 부분은 다 옛날 이야기 같은 소리라 써먹을 수 없어서 역사 부분은 포기했어요. 현대 부분은 보니까 그럴 듯해서 그걸 가지고 쓴 게 「7번 국도」예요. 역사 부분은 버린 게 됐죠. 쓰고 싶다 이런 생각은 있는데 능력이 없어서 못 쓴다 생각을 했고요. 그러다가 1995년에 와다 하루키 교수가 쓴 『김일성과 만주항일 전쟁』이라는 책이 출간이 돼서 우연히 보게 됐죠. 그걸 봤더니 복벽파, 공화파 동란하고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어마어마하게 자기들끼리 죽인 사건이 있더라고요. 그게 ‘민생단’ 사건이었어요. 그래서 이 사건에 너무 끌리더라고요. 너무 끌려서 ‘아! 이건 너무 쓰고 싶다’ 생각을 했는데, 그때만 해도 제가 쓸 방법이 없었어요. 일단은 이 사건에 연루된 사람들이 북한 지도부들이었고요. 연변에 가서 조사를 해야 하는데 공산주의자 얘기고, 일본 자료와 중국 자료가 다 뒤섞여 있어서 쓸 능력이 없는 거예요. ‘쓰고 싶다’라고 생각만 했지 쓸 수 없는 그런 작품이었는데 그 이후로 몇 번의 소설이 더 나왔고요.

   결정적으로 동인문학상을 받아서 돈이 조금 생겼어요. 그때 그 돈을 가지고 무작정 연변으로 가보자 했어요. 왜냐하면 연변으로 가기 전에 제가 써보려고 한국에서 자료 조사를 계속했는데, 예를 들어 사회주의 인명사전에서 만주 부문 사람들만 노트에다가 다 베껴 썼어요. 빈농의 사람들은 다 네 줄 정도밖에 안 되는 거죠. 유명한 사람은 아주 길고요. 네 줄 정도 베껴 쓰는데 ‘어디 어느 현에서 빈농의 아들로 태어나 어디 중학교 다니다가 입단해서 하다가 민생단 처형’ 그렇게 돼 있어요. 도무지 파악이 안 돼요. 무슨 말인지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거예요. 네 줄 갖고 어떻게 소설을 쓰겠다는 건지, 보고 있다가 너무나 한심해서 쓰다가는 큰일 나겠다 생각했어요. 최소한 뭐라도 해야겠는데 그래서 한 게, 연길이라도 가서 일단 쓰자 생각을 하고 연길에 무작정 갔어요. 무작정 가게 된 저간의 사정은 『여행할 권리』에 나와 있습니다. 무작정 연변대학에 가서 등록하면 얼마냐고 묻고 등록했고요.

 

   김용규 _ 등록을 하셨어요? 무작정 직접 가서 학생으로 등록하셨다는 거예요?

 

   김연수 _ 위장 학생으로 등록했어요. 아니, 언어를 배우는 유학생으로요. 처음에 한 달은 가서 중국어를 좀 배웠어요. 제가 설음이 아주 좋아요. 서러움이 아니라 설음이요. (웃음) 왜 그러냐 하면 중국 수업에 들어가야 하니까요. 들어가기 전까지 중국어를 한 번도 안 들어 봤어요. 왜냐하면 체재하기 위해서 위장 등록한 거라서. 한 달은 재미있더라고요. 비자를 받아야 하니까 덕분에 중국어도 배우고 그랬습니다. 연변대학교 외국인 기숙사에 있었어요.

 

   김용규 _ 선생님 지금 말씀을 제가 이해한 바로는, 처음부터 특별히 이데올로기 문제를 다루고 싶은 생각이 있던 건 아니고 제노사이드 · 종족 살상에 충격을 받으셨어요. 물고기나 침팬지도 합니다. 생태계에서 극히 소수의 종만, 인간을 포함한 소수의 종만 동족을 살상하죠. 그걸 제노사이드라고 하는데, 그런 일이 벌어진 ‘민생단’ 사건을 접했을 때 ‘이건 내가 꼭 써야겠다’는 생각을 가졌다 이런 말씀이시죠?

 

   김연수 _ 그런데요, 이념하고도 약간 관계가 있죠. 왜냐하면 처음에 가장 친한 친구를 죽이는 건데 친구를 죽일 수 있는 논리적 근거가 뒷받침되어야 하는데 웬만한 논리적 근거는 뒷받침이 안 되는 것들이고요. 대부분은 이념싸움 때문에 그들을 살려 놓을 수가 없기 때문에 죽이는 경우였어요. 단순히 학살과는 약간 다르지 않을까요? 제가 의문을 품었던 건 어떻게 자기하고 가장 잘 아는 사람, 이 사람이 이런 생각을 하는지를 잘 아는 사람을 죽였나 하는 거죠. 그게 해결되지 않는 의문이어서 그걸 알고 싶었습니다.

 

   김용규 _ 바로 그 말씀을 듣고 싶었습니다. 사실 오늘 우리는 이데올로기라는 게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함으로써 자기가 가진 이념 안에 폐쇄성이 내포된 이념, 수단을 마치 목적처럼 여기는 허위의식이 들어 있는 이념을 말한다고 얘기해 왔습니다. 그런 이데올로기 숭배주의자들, 이데올로그들은 제가 조금 전에 종이를 가지고 만들어 보인 뫼비우스의 띠처럼 폐쇄적 사고의 틀 안에서 판단하고 행동하는 사람이라고 얘기를 해왔는데요. 따라서 이런 사람들은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는 어떠한 수단도 가리지 않는다는 점도 얘기했습니다.

   바로 이런 의미에서 선생님 소설 『밤은 노래한다』의 주요 인물로 등장하는 박도만, 최도식, 안세훈, 박길용 이런 사람들을 선생님이 의도적으로 인물 구성을 하셨을 텐데요. 제가 보기에는 이 사람들 모두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이데올로기적이고 도스토예프스키적인 인물들로 보이는데요. 그들이 주장하는 이념과 색깔과 강도는 조금 다릅니다.

   ‘민생단’ 사건 자체가 상당히 복잡한 사건이라 아마 독자 여러분들도 그러실 텐데, 저는 그랬습니다. 이 사람들의 이념 색깔과 강도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기 쉽지 않아요. 선생님은 이 인물들을 하나하나 의도적으로 구성하셨을 테니까 여기 온 참석하신 여러분들을 위해서 각자의 이념, 색깔, 또는 강도 등과 어떤 뜻으로 이 인물들을 만들어내셨는지 얘기해 주셨으면 합니다.

 



  
김연수 _
설명을 드리자면 긴 얘기가 될 것 같은데요. 어떻게 짧게 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지금도 연길에 가면 약간 변경의 느낌이 있어요. 3개국 정도가 뒤섞인 것 같은 느낌인데, 제가 연길에 있을 때 자주 가던 곳이 ‘대우주선’이라는 술집인데요.

 

   김용규 _ 도서관만 가신 게 아니라 술집도 가셨군요 ?

 

   김연수 _ 취재하러 갔습니다. (웃음)

 

   김용규 _ 술은 안 드시고요?

 

   김연수 _ 술도 취재했습니다. (웃음) 그래서 대우주선에서 술도 취재했는데요. 노래도 일본, 중국, 한국, 북한 노래, 남한 노래를 무대에서 다 불러요. 그 느낌이 막연하게, 그런 말들이 있었어요. 서부라고요. 서부 개척하듯이 일제시대 프런티어라는 말이 있는데, 약간 그런 냄새가 물씬 풍기는 곳이에요. 변경이에요.

   민생단 사건은 변경의 문제였던 거죠. 짧게 말하면 국제주의라는 게 있고요. 코뮌테른이라고 하는 국제공산주의 운동, 그리고 우익 민족주의자들이 있는 거고요. 20년대는 민족주의자들이 이념을 잡고 있었는데 30년대 되어서는 공산주의자들이 나와요. 이 사람들은 국제주의자들이에요. 공산혁명부터 먼저 해야 된다 그런 거죠. 민족주의자들은 민족해방부터 먼저 해야 된다고 하고요. 80년대 한국 학생운동에도 있는 문제인데요. 아주 오래된 문제가 만주에서 벌어지게 되는데요. 문제는 뭐냐 하면 나라가 없다는 점이에요. 나라가 있으면 그 두 문제가 공식성상에 올라가면 될 텐데, 나라가 없는 게 가장 큰 문제였어요. 그래서 국제주의를 표방한다 하면 중국 공산당의 논리를 따라간다는 거예요. 왜냐하면 중국 당이 있기 때문이죠. 코뮌테른의 1국 1당 원칙에 따르면 공산주의자들은 여기에서 중국 공산당에 들어가야 하는 거죠. 민족주의자들은 중국 공산당에 들어갈 순 없는 거죠. 중국 공산 혁명을 할 순 없는 거니까요. 그래서 갈등이 비롯되는 건데요.

   우리가 봤을 때는 쉽게 민족주의가 옳지 않은가, 우리나라가 민족 해방하는 게 먼저 아닌가 생각하지만 사태가 그렇게 간단하지 않아요. 아주 복잡해요. 민생단 자체가 민족주의를 표방했어요. 민생단을 조직한 사람들이 경성에 가서 특집기사를 많이 써요. 쫓겨나는 거잖아요. 조선에서 살다가 일본 사람들이 오니까 밀려서 가난한 사람들은 간도로 간 거예요 간도로 가서 중국인 지주 밑에서 소작을 부치고 사는데 가서 보면 너무 불쌍한 거죠. 그래서 경성 지식인들이나 유지들, 일본 제국주의를 인정하는 사람들이죠. 그 사람들이 가서 동포들이 거지꼴로 살고 있는데 그 사람들 생계를 돕자, 먹을 것을 주자 그래요. 그래서 말 그대로 민생단이에요. 이 사람들을 살리자, 민족을 생각하면서 살리자라는 거죠. 이건 아주 문제가 커요.

   중국 쪽에서 봤을 땐 일본 제국주의의 앞잡이가 되는 거예요. 왜냐하면 살리자 그래서 자체 기구를 만들면 당연히 일본 경찰이 들어와요. 그런데 일본에서 봤을 때도 치안이 안 미치는 곳에서 얘네들이 조선 자치를 한다니까 말이 안 되는 거죠. 양쪽에서 다 불허하니까 민생단이란 건 없어졌어요. 이제 껍데기만 남은 거죠. 우리 민족 동포들을 살리자고 말하는 순간부터 일본 앞잡이이자 조선 자치하려는 사람들이 되는 거예요. 거기서부터 문제가 시작되는 거죠.

   그래서 간단히 말씀드리면 여기 등장인물 중에 박길용이라는 사람은 민족주의자가 되는 셈이에요. 논리는 아주 간단해요. 우리 민족이 다시 국가를 세우면 된다 그게 우리의 목표다 그래요. 당연하죠. 그것은 이상론이에요 배경이 되는 1932년에는 그 말은 엄청난 희생을 부르는 말이에요. 이 사람을 아는 모든 사람이 숙청당해요. 박길용은 이상론적인 사람이고요.

   박도만 같은 경우에는 그 뒷세대여서 20년대 후반에 중학교를 졸업한 걸로 돼 있는데, 민족보다는 현실을 후세대에서 인정을 해야 한다고 해요. 현실은 중국 공산당에 입당해서 중국인들을 도운 뒤에 그 다음에 우리 해방을 하자 이게 현실론인 거죠. 그리고 현실론과 이상론, 이 두 개는 항상 부딪치는 거잖아요? 이기는 건 극단적이라서 이상론이 이겨요.

   소설에서도 마찬가지인 게 이상을 펼치는 사람들이 극단적이라 이기는 거고요. 최도식이라는 사람은 박도만과 마찬가지 처지로 중학교를 졸업해서 공산당 열혈분자가 되는데 중간에 체포되어서 변절을 하는 사람이에요. 소설에서 이렇게 나오는 거죠. 체포를 해서 몇 달 뒤에 풀어 줘요. 풀어 주고 형사가 며칠에 한 번씩 그 집에 잘 있나 보러 찾아가요. 이 사람들은 공산주의자가 되면 계속 공산주의 운동을 하고 싶어 해요. 운동을 계속 하고 싶어 하는 게 있어요. 그래서 다시 자기 동지들을 만나는데 동지들이 의심을 하는 거죠.

   “너를 왜 풀어 주냐? 다른 사람들은 다 못 나왔는데……. 너는 왜 나왔냐?”

   사람들이 안 믿어 주죠. 실존했던 사람이에요. 아무도 안 믿어 줘요. 자기는 아무런 자백도 안 했는데, 정황상 자백을 한 것이 돼버리죠. 그래서 이 사람이 뭘 하느냐 하면 자기가 앞장을 서겠다고 해요. 토벌대의 앞장을 서요.

   나중에 1931년부터 1933년까지 거의 한 80%가 괴멸되고요. 토벌에 의해서도 죽고 자기들끼리 500명 정도 죽이고요. 아주 뛰어난 전사들이에요. 33년쯤 되면 거의 다 없어져요. 없어지고 나서도 토벌이 계속되는데 그때 토벌할 때 가장 앞에서 하는 사람이 전향한 사람들이에요. 아주 이것도 문제적인 지점이겠죠. 어쨌든 최도식은 전향을 하는 인물이고요. 이정희라고 되게 낭만적으로 그려 놓았는데요. 연길의 안나리,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온 안나리!

 

   김용규 _ 신여성이고 모든 남자들의 연인이고요.

 

   김연수 _ 제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멋진 여자를 마음껏 그렸어요. 제가 소설 작가니까 마음껏 그렸는데요. 이 사람은 아까 연극 보다가 인상적으로 들었는데 우리라는 말을 계속하고 있다가 나라는 걸 알게 되는 그런 경우의 인물이죠. 물론 혁명을 하려고 했던 여자고요. 그랬는데 감정을 알게 되고, 나 자신의 고유한 감정이라는 걸 알게 되면서 그렇게 죽어가는 혁명 속에서 나를 발견하는 인물입니다.

 

   김용규 _ 그래서 제가 여쭤 보고 싶은 것이 이정희라는 인물은 박도만, 최도식, 박길용 이런 사람들과 달리 이 사람들보다 어쩌면 더 골수 엘리트 혁명투사였는데 동시에 만인의 연인이기도 하고요. 이 사람을 보면 이중적인 성격이 있기 때문에 주인공 김해연과의 관계가 좀 의심스럽습니다. 그녀가 정보를 빼내려는 목적으로 김해연에게 접근해서 김해연을 이용했는지 진정으로 사랑했는지 이야기 흐름으로 보면, 이정희는 정보를 빼낼 목적으로 접근했다가 나중에 김해연을 사랑하게 된 것처럼도 보이고요. 그런데 이 사람의 성격을 분석해 보면 어려서부터 삶이 아주 역동적이고 가득 차길 바라는 욕망을 가진 소녀였어요. 이 성격을 분석해 보면 이정희는 오직 자신의 삶을 충만하게 하기 위해서 혁명에도 뛰어들었고, 사랑에도 몰두한 것처럼 보이죠. 그래서 남자가 한둘이 아닙니다. 최소 다섯은 되죠? 그렇게 몰두한 것처럼 보이는데, 해석이야 독자 여러분들의 몫이지만, 이정희를 창조하신 김 선생님 입장에서는 어떤 쪽입니까? 이정희가 정말 김해연에게 자기 정보를 빼내기 위해서 접근했다가 정보를 빼내다가 사랑하게 된 것인지 아님 그것도 아니고 이정희는 본래 삶의 방식이 아주 열정적으로 삶을 충만하게 하기 위해서 혁명에도 적극적으로 뛰어들었다 또 사랑에도 몰두하는 쪽인지 어떤 쪽인지 설명해 주실 수 있는지요?

 

   김연수 _ 저도 여자를 잘 몰라서요. 1인칭 김해연 시점에서 소설을 쓰고 있는데 저도 여자 속마음에 대해서 잘 모릅니다. 허허허. 그런데 그건 있는데요. 어쨌든 여기 주인공에게 제가 감정이입을 해서 슬픈 이야기인데 이정희가 사랑했던 남자는 있어요. 그 남자를 박길룡이 죽여요. 죽이고 나서는 이제 이 여자에게는 큰 환멸 같은 게 느껴지기 시작하는 거죠. 그게 아마 이데올로기에 대한 환멸인 것 같고요. 제가 이정희로 하여금 그걸 알게 한 이유는 저는 여성들이 남성보다 우수한 종이라고 생각해서입니다.

 



   김용규 _
아! 그렇게 생각해요? 여기 여성들 많은데요.

 

   김연수 _ 아부하려고 한 건 아니고요. 남성보다 여성이 좀 더 우수한 종이라고 해야 할까요? 그렇게 생각해요. 감정의 문제, 약함의 문제인데요. 오늘 말씀하신 거랑 비슷한 맥락일 텐데, 이데올로기라는 게 있을 때 맹목으로 가는 것인데 맹목으로 가면 뭘 하냐면 감각을 모두 끊는 거죠. 예를 들어서 뻔히 보이는데 안 보이는 것처럼 행동하는 거고 비명을 질러도 안 들리는 것처럼 행동을 하죠. 실제로 안 들릴 거예요. 그러니까 그 일들을 하는 것이죠. 감각적으로 남자들이 둔한 거 같아요. 그래서 이제 좀 더 그런 이데올로기에 많이 들어가는 거 같고요. 그 사람들이 숭배하는 강함 자체가 그런 정보들, 인간적인 정보들을 무시하게 하는 작용을 하게 하는 것 같아요. 그런데 여자들 같은 경우는 약한 부분이 존재를 하고 있죠. 여자들 존재 자체가 약하니까 그런 것도 있고 감정적인 사람들이니 그럴 수도 있겠고요. 그래서 일관되게 가야 되는데 일관되게 가지 못하는 거죠. 자꾸 딴소리를 하는데 (웃음) 여자들 같은 경우는 ‘논리적으로 이렇게 시작했으니까 일관되게 이렇게 끝이 나야 한다’에서 가지 못하는 것 같았어요.

 

   김용규 _ 그 약한 점이 오히려 인간적이고 거기에 희망이 있다 이런 말씀으로 들립니다. 그 말씀이죠? 그 일관되게 간다는 것, 『한낮의 어둠』에서 논리를 따라간다는 것, 결국 그것은 남성적이고 폭력적이고 그럴 수밖에 없다 그런 말씀으로 들립니다.

 

   김연수 _ 그렇습니다. 그래서 합목적적이란 게 굉장히 폭력적인 이야기인데요.

 

   김용규 _ 합목적적이란 게 무서운 거죠.

 

   김연수 _ 그런데 여자들은 그것에서 자유로운 존재들인 것 같아요. 그래서 여자 이정희에게 그 역할을 맡긴 것이에요.

 

   김용규 _ 쾨슬러의 『한낮의 어둠』을 보면 이성이 가진 어둠, 혁명이 드리운 그림자 이런 뜻으로 하지 않았나 싶은데, 제게는 『밤은 노래한다』의 ‘밤’ 이것도 한낮의 어둠과 의미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정말 그런가요? 다른 뜻이 있나요?

 

   김연수 _ 밤은 약간 부정적인 밤인 거 같아요. 저 ‘한낮의 어둠’이라는 것 자체는요. ‘밤은 노래한다’의 ‘밤’은 부정적이기도 하고요. 그 다음에 좀 뭐랄까? 사랑의 시간이기도 하고요. 그리고 맨 마지막 장면에서는 신화적인 것, 박길용이 원했던 이상적인 것? 그런 것을 쫓아가는 시간, 그런 식으로 복합적으로 썼던 것 같습니다. 이성의 캄캄한 어둠은 아니고요.

 

   김용규 _ 그 안에 희망도 있고요?

 

   김연수 _ 예. 연변의 밤 같은 느낌이죠. 아주 냉철한 공간은 아닌 것 같습니다.

 

   김용규 _ 밤이 끝나면 새벽은 오니까요?

 

   김연수 _ 예. 오겠죠.

 

   김용규 _ 선생님 소설은 새벽에 대한 희망을 잃지 않은 것 같아요. 그래서 이데올로기와 연관해서 우리에 대한 과제라면 어떻게 잘라버리느냐, 우리가 숭고한 목적을 세웠는데도 불구하고 나쁜 결과를 가져오는 이데올로기, 허위의식을 어떻게 잘라버리느냐가 문제가 될 텐데요.

   그러니까 선생님의 『밤은 노래한다』에서 보면, 끝부분에 김해연이 최도식을 살해할 수 있는 상황이고 살해하러 갔고, 할 수도 있는 상황인데 최도식의 어린 아이들이 뛰어오고 하니까 살해하지 않고 그냥 지나쳐 가서 이정희가 남긴 편지를 읽는 그런 부분이 저에게는 투쟁과 혁명의 어떤 덧없음, 사랑과 용서의 진실함? 뭐 이런 것들이 아닌가, 그래서 선생님께서 보신 희망도 사실은 다시 말해서 도스토예프스키적인 해결책, 이런 게 아닌가 생각해 보았습니다.

   선생님 어떻게 생각하세요?

 

   김연수 _ 저 같은 경우에는 말씀드린 대로 94년부터 의문이 하나 있었는데요. 그 의문이 아까 말씀드린 대로 어떻게 해서 친한 친구를 죽일 수 있을까였고요. 그 다음에 그러면서 진실이라고 말을 할 수 있을까? 그게 의문이었죠. 저는 이 소설을 먼저 쓰고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을 쓰면서 그 과정에서 조금씩 나름대로 해결책을 알게 됐어요. 뭐라고 할까? 어떤 찝찝함 같은 게 있는데요. 막 찝찝해요 예를 들면 최도식이 살아남아서 자기 아들이랑 같이 살죠. 아들을 위해서 사는 거죠. 부모가 되면 아들을 위해 사는 거니까요. 이 놈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많이 죽었는데, 그런 놈을 살려 두는 거죠. 찝찝한 거죠. 찝찝함에도 불구하고 살려 두는 거죠. 그게 제가 생각한 해결책이었습니다.

   어디서 그걸 직관적으로 깨달았는가 하면요. 입체사진을 봤는데 두 개가 핀트가 안 맞잖아요? 다른 부분들이 존재하고 있죠. 그걸 렌즈로 들여다보면 두 상이 합쳐지면서 입체가 생기는 거죠. 약간 다르다는 것의 찝찝한 느낌, 이런 게 같아지면 모노로 딱 또렷하게 보일 텐데, 찝찝함을 놔두고 견디는 것 자체가 이 세계의 어떤 깊이를 주는 게 아닐까, 그때부터 해결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게 됐고요. 예를 들면 저는 이분법 같은 것, 양자택일하는 문제들, 어릴 때 많이 물어보잖아요?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이럴 때 대답을 하지 말자는 해결책을 발견하고 난 뒤에 이제 알게 된 거예요. 어떤 사람이 나에게 ‘이걸 할 건가? 저걸 할 건가?’ 할 때 두 개 다 하는 게 정답이더라고요. 국제주의냐 민주주의냐라고 했을 때 같이 하는 대신에 찝찝함을 견디는 거죠. 한쪽이 깨끗해지는 건 없다는 거죠. 그래서 그 견디는 게 아까 생각하기에 남을 위해 참는 거잖아요? 싹 없어졌으면 좋겠는데 참는 게, 마지막 구절에 나오던 배 밑에 짐, 그 윤리라는 거, 그렇게 꼴 뵈기 싫은 것들을, 나한테 큰 해를 안 끼치는 한에서 참아 견뎌 주는 게 윤리가 아닐까라는 게 제 생각이었습니다.

 

   김용규 _ 선생님 아주 깊은 철학적인 사유가 담긴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이 자리에서도 두 번째 시간 그때일 겁니다. 윤성희 작가의 작품을 다루면서 비슷한 얘기가 나왔는데요. 선생님 방금 말씀하신 대로 서로 다른 각도에서 찍은 두 개의 영상을 겹쳐 놓았을 때요. 여러분들 영화관에 가서 3D 영화 보시죠? 원리가 그렇습니다. 촬영할 때 사람마다 차이가 있지만 동공이 대개 5~7cm 사이랍니다. 이 정도 차이에서 두 개의 카메라로 다른 각도에서 같은 사물을 찍어서 서로 다르지만 하나로 통일하지 않고 겹쳐 놓는 것을 안경을 쓰고 봅니다. 이때 입체상으로 새로운 진실이 드러나는 이런 놀라운 일을 우리가 3D 영화에서 봅니다. 방금 선생님 말씀하신 게 바로 그런 것입니다.

   근대의 가장 큰 문제점이 ‘다름이 곧 틀림이다’, ‘나와 네가 다르면 너는 틀린 거야’ 이런 객관주의가 결국은 폭력을 불러오고 그런 것 아닙니까? 서로 다른 것들을 참고 견뎌 주는 게 이게 윤리가 아니겠느냐? 참 훌륭하신 생각입니다.

   지난 시간 심보선 시인을 모셨을 때 그분이 ‘그럼에도 불구하고’란 말씀을 자주 하셨습니다. 결국 제 생각도 그렇습니다. 인간이 인간으로 산다는 것은 자연 상태로 사는 게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찝찝함을 참는 것이죠. 자기 옆에 사람이 살게끔 놓아 두는 것 이게 사실은 윤리의 시작이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좋은 말씀 해주셔서 감사하고요.

   작가들에게 자신의 작품 한 부분을 낭독을 하게 하는 순서가 있습니다. 『밤은 노래한다』에서 특별히 낭독해 주시고 싶은 부분을 낭독해 주세요.

 

   김연수 _ 두 부분이 있는데요. 둘 중에 하나를 양자택일하십시오. 야한 장면과 끔찍한 장면 중에서요.

 

    이은선 _ 되도록 야한 걸로 읽어 주세요.

 

   김연수 _ 147페이지인데 너무 야해서 잘 안 읽는데 읽어 볼게요.

 

 

   짧게, 그리고 길게 모두 세 번의 비가 내린 금요일과 일요일 사이, 길게 드리운 구름장 뒤에서 종이로 만든 것처럼 투명할 정도로 창백한 만월이 다시 이지러지기 시작한 열엿새의 낮과 밤, 세상의 모든 버드나무 가지들이 내게 말을 걸었던 48시간, 심장에서 돋아난 귓바퀴가 어둠의 가장 깊은 곳에서 울려 퍼지는 말들에 귀를 기울이던 마지막 토요일 저녁, 끝으로 세차게 소나기가 내렸고, 그 비를 온몸에 고스란히 맞은 여옥이가 지난 가을 해란 강변 버드나무의 사연과 내게 여자를 사랑하게 되면 모든 게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던 한 사내의 일들과 자신이 변절한 게 아닐까 하고 의심하다가 결국 변절하게 된 또 다른 사내의 운명이 어지럽게 씌어진 내 방문을 열고 들어왔다. 어둠이 짙게 깔려 문을 여는 기척만 들릴 뿐, 누가 들어오는 것인지 알 방법이 없었으나 서늘한 밤바람과 함께 밀어닥친 비린 냄새만으로도 나는 그게 여옥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봄나무의 몸에다 대고 입을 부비며 하나하나 봉오리를 틔우는 봄비를 맞은 여옥이의 보이지 않는 몸에서 하얀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게 눈에 보였다. 나는 봄비를 흉내 내어 그 김이 피어나는 자리마다 입을 맞췄다. 여옥이의 몸이 완전히 열릴 때까지, 여옥이의 어두운 몸이 깨어나 노래를 부를 때까지 그리고 내 몸의 밤이 환해질 때까지, 모로 돌아누운 여옥의 뒤에서 등뼈를 하나하나 혀로 핥아 가자, 여옥이는 내 오른손을 자신의 가슴으로 잡아당겼다. 내가 자기 등뼈의 생김새를 확인할 때마다 여옥이는 낮은 탄성을 내뱉었다. 낚시에 붙잡힌 물고기처럼, 여옥이는 가슴살이 빨갛게 홍조가 띨 정도로 가쁘게 숨을 몰아쉬다가 바다가 어떻게 생겼는지 보여줄 수 있느냐고 내게 물었다. 나는 물기로 축축한 여옥의 검은 몸을 어루만지며 여름 땡볕을 받아 마른 돌들이 하얗게 타오르는 광경을 떠올려 보라고 말했다. 바다란 그 마른 돌들이 흐느껴 잠들면서 꾸는 꿈이라고 말했다. 내 말에 여옥이는 몸을 뒤척이면서 우리는 서로 다른 지방에서 자랐기 때문에 서로의 말을 이해하기는 어렵다고 그런 말로는 바다를 떠올릴 수 없으니 물결 하나만 보여 달라고 말했다. 한 줌의 달빛이면 보름의 밤을, 한 닢 꽃이 피면 봄날의 바람을 볼 수 있으니 어서어서 이랑이 긴 물결 하나만 보여 달라고. 나는 어둠 속에서 미끈거리는 여옥이의 몸 안으로 남해 푸르른 물결 하나를 밀어 넣었다. 우리는 둘이서 함께 모든 맨몸의 물고기들을 따뜻하게 덮어 주는 세상에서 가장 큰 푸른색 이불이 됐다. 우리는 지치지 않고 서로 밀려왔다가 또 밀려갔으며 우리는 쉬지 않고 아래위로 출렁거렸다. 내 안의 작은 물결로부터 파도소리가 들려오더니 온 방 안으로 남해가 밀려들었다. 공중으로 떠가는 하얀 돛의 젖은 배들, 한데 모여 시퍼렇게 휘어지는 물방울들, 별자리의 길만을 조심스럽게 밟고 가는 여름앓이 새들, 바라볼 때마다 환하게 열리고 또 환하게 닫히는 수천의 작은 창문들, 가닿을 수 있는 먼 해변으로 밀려와 슬픔의 경계만을 간신히 표시하고 물러서는 파도들, 막 울음을 터트리려는 아이의 눈망울 너머로 내다보이는 세상과 같은 풍경들, 바다라는 것 그날 여옥이에게 보여준 바다라는 것, 바다의 풍경이 우리의 검은 눈썹을 스쳐 지나간 뒤 여옥이는 내 가슴에 뺨을 부비며 말했다. 혁명의 도리를 깨치고 연락원 일을 한 뒤로는 그게 내가 아는 세계의 전부였었지. 이슬을 맞으면서도 신이 나서 밤새 노루처럼 산을 타고 다녔슴둥. 엉겅퀴나 산국 날카로운 이파리들이 종아리에다가 내가 어떤 사람인지 적어 놓았습지. 여옥이는 잠시 말을 멈추고 내 심장에 얼굴을 붙이더니 귀를 기울였다. 마치 내가 숨을 멈추고 죽어버리기도 한 것처럼. 그리고 다시 길게 숨을 내쉬더니 여옥이는 내 왼쪽 가슴에 오래도록 입을 맞췄다. 나를 데려가오. 이번에는 진짜 바다를 내게 보여줍소. 사람은 무엇 때문에 살며 어떠한 사람으로 되며 사람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나는 잘 압지. 그러니 내게 진짜 바다를 보여줍소 그럼 나는 숨이 다하는 그날까지 당신의 바다로 들어가는 작은 오솔길이 되겠슴둥. 그리하여 어둠 속에서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둠 속에서 내 얼굴이 몇 번 환해졌다가 어두워졌다.

   몇 번의 계절이 찾아왔다가는 또 물러갔다. 나는 여옥이의 손을 움켜잡았다. 그제야 나는 여옥이가 없으면 나 역시 다시 바다를 볼 수 없게 됐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여옥이는 보름 넘긴 달처럼 조금씩 수척해지는 얼굴로 하얀 궤도를 그리며 내 가슴 위에서 잠들었다. 나는 어두워질수록 빛이 나는 여옥이의 몸을 어루만지며 여옥이와 함께 경성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했다. 출렁이는 물결처럼 밤새 여옥이는 내 가슴 위에서 뒤척였다. 그러므로 사흘째 길송이 형이 찍은 사진들이 어랑촌 소비에트에 전해지지 못한 까닭은 모두 바다 때문이라고 해도 좋으리라.

 

─ 『밤은 노래한다』 중에서, 김연수

 

 




   김용규 _ 우리는 이데올로기적인 문제 같은 이런 어렵고 사변적인 문제만을 다루는 게 아니고, 이렇게 감각적인 문체를 가지신 훌륭한 소설가를 갖고 있습니다. 다시 한 번 박수 부탁드립니다.

 

 

 

 

   이은선 작가의 10minutes

 



  
1문 1답

 

   ━ 김연수에게 유령작가란? 제일 좋아하는 책

   ━ 김연수에게 역사소설이란? 도전

   ━ 김연수에게 김윤아의 야상곡이란? 몸을, 모든 걸 다하는 노래

   ━ 김연수에게 마라톤이란? 글쎄? 뭐지?

   ━ 소설을 쓰지 않는 일이란? 심심함?

 

   ━ 김용규에게 철학카페란? 제가 사랑하는 공간이죠.

   ━ 김용규에게 문학작품이란? 철학을 하다가 가끔씩 외도하는 곳

   ━ 김용규에게 이 행사는? 행복한 시간입니다.

 

 

   국어교사모임에서 보내온 질문

 

   이현주 선생님 _ 탈고한 직후에 어떻게 시간을 보내는지 궁금합니다. 혹시 작품을 끝냈다는 데서 오는 공허함이 있는지요. 어떻게 시간을 이겨내는지요.

 

   김연수 _ 지금까지는 다음 일정이 없었던 게 아니고 있어서 잠시 쉬는 시간이고요. 쉴 때는 친구들 많이 만나서 매일 술 마시지요.

 

   유형주 선생님 _ 김연수 작가에게 성장의 원동력이 되는 분이 계신가요? 김중혁 작가인가요?

 

   김연수 _ 김중혁 작가가 되기에는 제가 더 이상 크지 않아서 성장의 원동력은 안 되는 거 같고요. 글쎄요. 제가 최근에 나이가 들어간다는 느낌이 드는데, 그 원동력은 딸인 것 같아요. 지금 열세 살입니다.

 

   반은지 선생님 _ 김용규 선생님. 현대사회도 1930년대 못잖게 폭력과 자극적인 무언가를 우선시하는 사회인데요. 청년들이 이데올로기에 어떻게 주관을 세우고 표현을 해야 할까요?

 

   김용규 _ 그건 강연을 들었으면 잘 아실 텐데 제가 아서 쾨슬러의 방법을 제시했습니다. 어떻든 끊어야죠. 숭고한 목적이 숭고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도록 해야 할 겁니다. 그런데 사실은 시간이 없어서 김연수 선생님께 드리려 했던 말씀 중에 한 가지 빠트린 게 있는데요. 바로 그 얘기와 관련이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김 선생님이 쓰신 『밤은 노래한다』 후기에 보면 2008년 촛불 시위 현장에서 남총련 학생들이 구호를 외치는 대신, 폭력적이고 돌을 던지고 화염병을 던지는 대신, 대중가요를 부르며 춤을 추는 모습을 보면서 이 소설의 마지막 모습을 완성할 수 있었다 그렇게 쓰셨어요.

   지난해 9월 미국 뉴욕의 맨해튼 주코티 공원에서 시작한 반월가 시위도 그 후 전 세계로 산불처럼 번졌죠. 곳곳에서 역시 폭력보다는 색소폰, 트럼펫, 리코더들로 어우러져 즉흥적인 연주를 하면서 지냈습니다. 결국은 새로운 시위문화로 자발적이고도 비폭력적이고 놀이문화적 요소를 도입하는 이러한 시위에서 우리 김 선생님도 새로운 희망들, 아까 찝찝함이라고 얘기하셨는데, 찝찝함을 견디고 새로운 가능성으로 나갈 수 있는 이런 희망을 보신 것 같은데요. 이런 일들이 비록 미세하고 작은 일이라 할지라도요. 선생님 말씀하신 찝찝함이란 말 참 좋은 말인 것 같아요. 남을 참고 견딘다는 게 참 찝찝합니다. 그러나 그걸 견디고 나도 틀릴 수 있고 남도 맞을 수 있다는 그런 가능성을 늘 가지고 살아가는 것, 이게 윤리이자 폭력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아닌가 생각을 합니다.

 

 

   현장 문답

 

   Q. 김연수 작가님께 질문 드리고 싶은데요. 이데올로기에 대한 이해를 목표로 저희가 모였는데, 수단으로 김연수 작가님을 모셨어요. 수단을 대표해서 김연수 작가님을 타깃으로 질문해서 죄송한데요. 작품들을 보면 「다시 한 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도 그렇고 『원더보이』도 그렇고 씌어지지 않은 것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지만 결국은 알지 못하는 비극적인 장면들이 많이 나오는데요. 다른 진술에 보면 간절히 바라면 이뤄진다고 했는데요. 작가님이 생각하실 때 말해지지 않은 것, 그것을 이해하는 것이 가능할까요? 저는 작가님 작품들을 보면서 말해지지 않은 것에 대해서 어디까지 탐구하고 어디까지 알 수 있을 것인가 생각을 많이 했거든요.

 

   김연수 _ 제가 말을 가지고 다루는 사람인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직업이 굉장히 모순적인 직업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말 자체에 대한 한계를 많이 느껴요. 제가 당연히 말을 다루니까 한계를 느낄지도 모르겠는데요. 번번이 실패하는 소설들을 제가 계속 쓰고 있어요. 예를 들어, 말씀하신 ‘설산’도 실패한 소설이고요. 이렇게 말하면 이상한데, 제가 쓰고자 하는 소설이 제대로 반영이 안 되는 것 같아요. 언어로 썼을 경우에요. 소설을 쓰면서 계속 딜레마를 느껴요. 한 번도 끝이구나 느끼기 되게 힘든 거죠. 말 자체가 가진 한계가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이제 저는 제가 쓰지 못한 게 있을 거라는 생각들을 하고 있어요. 말하지 못한 것들을 말하는 일에 대해서 얘기를 하는 것이죠. 다른 사람의 글을 봐도, 그렇다면 이 사람이 쓰지 못한 것들이 있을 것이라는 것을 제 경험상 알 수 있고요. 만약에 이 사람이 쓰지 못한 것들은 도대체 무엇인가, 그런 게 최초의 작가로서 의문이고요.

  그 다음에 그게 있어요. 이루고자 했으나 이루지 못한 일들이요. 말하려고 했으나 말하지 못한 것들과 비슷한데요. 문장으로 쓸 수 있잖아요. 삶에서 뭘 하려고 했는데 뜻은 있는데 하지 못했어요. 예를 들어서 누굴 좋아했는데 결혼을 못 한다거나 이뤄지지 않았어요. 끝이잖아요. 그런데 생각 속에선 분명히 존재했던 일인데 없단 말이죠. 그렇다면 이건 다 어디로 갔을까? 제 두 번째 확장된 질문이에요. 그래서 더 가면 여기까지 가는데요. 혁명을 꿈꾼 많은 사람들, 심지어 죽은 사람들도 있죠. 수백만 명이 죽었다고 쳐요. 그래서 이 사람들이 원했던 미래는 어디로 갔을까 없어졌을까 하면, 제가 글을 쓰는 느낌상 그건 없어지지 않았던 것 같아요. 어딘가에 존재를 하는데 보이지 않는 것이죠. 말로 설명하기 되게 어려운 문제인데요. 그래서 이루어진다는 게 도대체 뭔가라는 걸, 제가 생각을 하는 거죠. 간절히 원하는 것은 이루어질 거라 생각해요.

   제가 역사 같은 것을 계속 봤더니 이루어지긴 이루어지는데 자기 당대에는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예를 들어서 흑인들도 참정권을 가지자고 당대에는 그렇게 바라고 원하고 싸우고 했는데 다음다음 대에 이뤄지니까, 역사의 눈으로 봤을 때는 이뤄진다고 보는 거죠. 간절히 원하면 이뤄진다 이게 진실!

   하지만 개인의 차원에서 봤을 때는 아까 말씀드린 대로 간절히 원했으나 이뤄지지 않은 꿈들 같은 거, 남들이 없다고 말하는 게 되는 거잖아요? 당대에서는 미래를 모르니까요. 그런데 없진 않은 것들이잖아요. 역사의 눈에서 보면 그런 거예요. 제가 간절히 원하면 이뤄진다는 것은 그래요. 설명하긴 되게 어렵지만요.

 

   Q. 저는 경기 북부에서 왔는데요. 같은 맥락으로 연결되는 질문인데 저희 도시에 작년에 왔었는데, 그때 굉장히 인상적인 대답을 들었어요. 한 남자 고등학생이 자신의 실연에 대해 질문하면서 제가 헤어졌는데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느냐고 물었어요. 작가님께서 하셨던 대답이 우리가 그런 걸 과연 극복할 수 있을까 하면서 그때 잃었던 게 그 사람이기만 할까? 그 사람을 사랑했던 자신의 모든 것들이 없어진다, 그런 게 힘들지 않을까 싶다, 답은 시간뿐이다 그러셨어요. 소설가도 그럴 거 같거든요. 마에스톤같이요. 그 당시 썼던 자신의 모습의 반영? 그런 면에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해요.

 

   김연수 _ 예. 그렇죠. (웃음) 더 이상 말씀드리기 어려운데, 저는 어쨌든 어느 날 나한테 가장 큰 욕망, 가치관 같은 게 뭔가 스스로에게 물어봤더니 성장하는 것, 변화하는 것이더라고요. 제가 조금 더 바뀌는 것, 나아지는 것. 여러 가지 의미가 있겠죠. 조금 더 바뀌는 것 그게 가장 큰 중요한 의미더라고요.

   다행히 저는 작가가 돼서 좋은데요. 지나온 흔적들이 남아 있어서 ‘저때는 저렇게 썼구나’ 그래요. 이젠 못 써요. ‘그렇게 지나왔군’ 보고 그런 면에서 중요한 경로가 되는 거죠.

 

    이은선 _ 외람되지만 실연의 시간의 상처는 『세계의 끝 여자친구』에 아주 좋은 답이 나오지 않았나 생각하는데요.

 

   김연수 _ 그런가요?

 

    이은선 _ 질문했던 두 분께는 『밤은 노래한다』를 증정하겠습니다.

   김용규 선생님, 아까부터 숭고라는 말씀 하셨는데요. 숭고는 결과적으로 미의 영역이잖아요? 단순히 미라고만 말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는 것 같아요. 숭고는 무엇인가요?

 

   김용규 _ 지금 질문 시간은 여러분들의 시간이지 진행자의 시간이 아니죠. 시간이 다 끝나 갑니다. 저희 프로그램의 단점이 있다면 너무 긴 시간을 소요한다는 것이고, 장점은 여러 가지 다양한 것을 접하고 경험할 수 있다는 거죠. 문화를 즐기는 사람에게는 하나의 콘서트고 파티 같은 그러한 축제인데요. 축제가 끝나 갑니다. 김연수 선생님 또 모시기가 쉽지 않습니다. 질문 더 받겠습니다.

 

    이은선 _ 저런 것이 숭고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 순간의 숭고를 위해 질문 더 받겠습니다.

 

   Q. 경기도 군포에서 왔습니다. 제가 예전에 윤성희 작가님 강연을 한번 들은 적이 있는데, 단편 잘 쓰는 작가가 김연수 작가님이라고 생각한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잘 쓰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고 물었더니 김연수 선생님이 ‘내 소설 필사해라’ 이렇게 말씀해 주셨다고 하더라고요. 상도 많이 받으셨고 사람들이 인정을 해주시잖아요? 본인이 생각하시기에 자신이 쓴 소설 중 가장 마음에 드는 소설은요?

 

    이은선 _ 저도 선배님 소설 필사하면 잘 쓰게 됩니까?

 

   김연수 _ 아니에요. 그렇지 않아요. 윤성희 씨는 굉장히 친한 후배예요. 예전에 장편을 쓰지 않았을 때 장편을 나중에 썼는데요. 장편을 어떻게 쓰냐고 물어서 강연을 들으라고 한 적이 있었어요. 농담이에요. 다!

   제가 제일 좋아하는 소설은 소설집 『나는 유령작가입니다』에 들어 있는 소설을 다 좋아하고요. 그 소설을 썼을 때가 지금보다 훨씬 젊고 얼굴도 더 잘생겼고 여러 모로 마음에 들어서 그 책을 가장 좋아해요. 다시는 저렇게 쓰지는 못할 것 같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어요.

 

   Q. 양재에서 온 학생입니다. 김연수 작가님 되게 좋아하고, 읽었던 소설 속에서 궁금한 게 있는데, 인터넷 찾아봐도 답을 찾을 수 없어서 항상 궁금했던 건데요. 단편적인 건데 「케이케이의 이름을 불러봤어」에서 밤메를 찾아가잖아요. 시간이 흘러서 간 곳이 다른 장소인지 같은 장소인지 궁금해요.

 

   김연수 _ 같은 장소인데 밤뫼, 방미라고 알아들은 거죠. 밤메라고 한 건데요. 듣는 외국 여자는 구분할 방법이 없으니까요. 해피가 찾아서 원래 같은 장소로 다시 데려가는 건 맞아요.

 



   Q : 수원에서 왔습니다. 두 가지 여쭤 보겠습니다. 작가들이 작품을 발표하면 평론가들이 평론을 쓰는데 작가들이 생각할 때 말도 안 되는 오독을 하면 짜증이 나실 테고 미처 제대로 표현 못 한 것을 확장해서 표현하면 기분이 좋을 것 같습니다. 김연수 작가님 입장에서 작품을 잘 인도하는 평론가 한 분을 선정해 주시고 이유를 말씀해 주세요. 그리고 전에 최인훈 선생님 글 중에 사람들이 어른이 되면서 문학을 읽지 않으면 간사해지고 폭력적이 된다고 했는데요, 문학의 힘에 대해서 김연수 작가님의 짧은 한 마디 듣고 싶습니다.

 

   김연수 _ 평론가 부분은, 저는 여러 사람들이 호의적으로 써준 편이에요. 그중에서 제가 좋아하는 평론가는 신형철이라고 『세계의 끝 여자친구』의 평론을 써준 분인데요. 잘 써줘서 좋아하기도 하고 그분이 글을 잘 써요. 저도 평론을 안 본 지가 오래됐는데, 신형철 글을 읽으면서 ‘평론은 읽는 글인데 평가하고 그런 글이 아닌데’ 그걸 상기시켜 줘서 좋아하고요.

   문학은요, 오늘도 도스토예프스키도 나오고 그랬는데 긴 예전 소설, 지루한 소설들을 아주 좋아한다기보다 읽어요. 아주 지루해서 읽어요. 그게 경험의 문제인데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을 안 읽고 죽을 확률이 많겠죠. 카라마조프를 읽는 경험은 북극에 가서 오로라 보는 것과 비슷한 경험이라고 생각해요. 다른 사람은 하지 못하는 경험인데요. 긴 시간 동안 하나의 텍스트를 죽 읽는다? 이건 단순히 만화책을 읽는다와 약간 다른 게 있어요. 뭐랄까, 한 세계가 이렇게 탄생했다가 기승전결에 의해서 끝이 나는데 아주 긴 시간이 지나가거든요. 시간을 경험하는 문제인데, 지금은 그 정도 길게 경험할 수 있는 게 별로 많지 않은 거죠. 문학작품을 끝까지 읽는 일이 주는 경험은 굉장히 중요하단 생각이 들어요. 장편소설은 지루해요. 안 지루하다는 건 거짓말이고요. 이 지루함을 견디는 게 인생에서 소중한 시간이라고 생각해요. 그 다음에는 다른 어떤 부분을 견딜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삶이 스마트폰이나 뉴스 속보 보듯 이뤄지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대부분 지루함으로 이뤄져 있고 지루함의 끝에 가서 잠깐 동안의 통찰 같은 게 생기는 거잖아요. 왜냐하면 지루함을 견뎠으니 통찰이 생기는 건데 삶이 그렇게 구성되어 있다고 생각을 해요. 그걸 이제 간접적으로 압축해서 경험하는 거죠. 죽을 때 아마 다 경험하게 될 텐데 이렇게 지루하게 살다가 가는데 ‘인생의 의미는 여기에 있었구나’ 한 번 그때 팍 깨닫다가 죽겠죠. 다시 살 기회는 없을 거고요. 긴 소설을 읽으면 압축적으로 그 지루함을 경험하면서 마지막에 통찰까지도 경험하게 되는 거니까 여러 번 살 수 있는 거죠.

   그래서 이제는 학생들한테 ‘재밌는 책부터 읽으면 돼’ 그러는데, 어렸을 때 강제로 읽히자 그런 생각이에요. 나이 들수록 읽을 시간이 없어요. 어렸을 때 읽는 게 제일 낫더라고요. 대학생만 돼도 읽을 시간이 없어요. 너무 바빠요. 대학교 졸업하면 끝이에요.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을 취직하고 읽는다는 건 거의 있을 수 없는 일이고요. 직장 잘리면 몰라도요. 사십 살 넘어가면 전혀 읽을 시간도 없고 그 뒤에는 인생 자체가 『카라마조프의 형제들』과 거의 비슷해지기 때문에 굳이 안 읽어도 요지는 알 것입니다.

 

    이은선 _ 마지막 질문에 어울리는 답변이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긴 시간 강연과 대담을 준비해 주신 김연수, 김용규 박수 부탁합니다. 그리고 제가 시작하기 전에 중요한 공지사항 하나 말씀드린다고 했는데요. 철학카페의 수문장이자 정신적 지주이신 김용규 선생님께서 4회 김연수 소설가 편을 끝으로 철학카페의 수문장 역할을 다른 분에게 양도를 하시게 됐습니다.

   사실 ‘철학카페에서 작가를 만나다’는 김용규 선생님께서 저술하신 『철학카페에서 시읽기』, 『철학카페에서 문학읽기』에서 모티프를 얻은 프로그램입니다. 선생님이 안 계셨으면 시작하기 힘든 프로그램이었어요. 매회마다 다른 삶의 테마 및 문학작품을 직접 선정하셨고, 낭독 공연 역시 관련 희곡을 찾고 요약하는 것을 넘어 직접 번역까지 하고 각색까지 하셨습니다. 당연히 강연원고도 직접 작성하셨고 질문지까지 만드셨어요. 이곳을 찾는 모든 분들의 마음에 지혜로운 생각과 문학적인 활력을 불어넣어 주셨습니다. 가히 ‘김용규 선생님의 원맨쇼’라고 해도 부족하지 않을 만큼, 선생님에 선생님의 선생님을 위한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우리 철학카페 토대를 이끌고 철학카페 4회 프로그램을 끝으로 하반기 프로그램의 바통을 다른 분에게 넘겨주셨어요. 김용규 선생님 모시고 그간의 소회와 앞으로의 일정에 대해서 잠시 대화를 나눠 보도록 하겠습니다. 박수 부탁드릴게요.

 

   김용규 _ 감사합니다. 뭐 이런 준비를 했는지 몰랐습니다. 제가 지난 4월부터 오늘까지 네 달 동안 눌변인 데다가 여러 가지 부족한 사람이 여러분들에게 참 사랑을 많이 받았습니다.

   사실 지난 연초에 이런 프로그램에 대해서 얘기들이 오갈 때 ‘다른 모임과는 달리 해보자’는 것을 가장 큰 콘셉트로 잡았습니다. 요즘 사람들은 교회 가도 목사님 설교 30분이면 좁니다. ‘다음부터 가지 말아야지’ 이런 때인데 오늘도 세 시간이 넘었습니다. 이렇게 기획한 것은 뭔가 좀 풍요로운 여러 가지 다양한 문화들을 이렇게 모아서 모처럼 멀리서 오신 분들에게 ‘뭔가 얻어간다’ 이런 느낌을 주자는 생각으로 만들었습니다. 제대로 된 무대는 아니지만 연극도 낭독 공연으로 대신하고 약간의 강연도 하고 작가를 모시고 대담도 하고 이런 걸 꾸며 봤습니다. 어찌 보면 무사히 네 번에 걸쳐서 할 수 있던 것은 무엇보다 여러분들이 귀 기울여 주셨던 사랑이 가장 컸고요. 이런 자리를 마련해 주신 정대훈 선생님을 비롯해서 관계자 여러분들 감사하고 또 연출을 맡아 주신 양연식 선생님 감사합니다. 문학뿐만 아니라 철학에도 조예가 깊으시고 연극에도 발이 넓으셔서 좋은 배우들을 섭외하셔서 무대를 마련해 주셨고, 여기 절대 미모 이은선 작가님의 사회가 없었으면 제 눌변으로 여러분들 모두 주무셨을 거예요. 사이사이 활력이 되었고 이렇게 피피티 만들어 준 원해솔 학생 너무 감사합니다. 저는 개인적인 사정 때문에 연말까지 하려고 했는데 이번까지만 하고 강신주 선생님이 맡아 해주시기로 하셨습니다. 그분은 훨씬 젊고 미남이시고 말씀도 잘하시니까 철학카페가 더 발전하고 융성해지기를 바랍니다.

 

    이은선 _ 철학카페 시즌 투 해외 순방 공연은요?

 

   김용규 _ 기대하고 별 준비 없이 시작해서 미흡했습니다만 강신주 선생님 하시는 동안 뒤에서 여러 가지 준비를 해서 더 좋은 내용과 형식으로 내년에 만나 뵙게 되길 바랍니다.

 

    이은선 _ 저도 더 완숙해진 미모로 다가오겠습니다.

 

   김용규 _ 그러리라 믿습니다.

 

    이은선 _ 긴 시간 고생 많으셨습니다. 다음 달은 강신주 선생님과 함께 하반기를 열어 보겠습니다.

 



   《문장웹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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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리자
  • 2024-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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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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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어떤 기준 전석순 “그래도 꽃은 잊지도 않고 제때제때 피네.” 예년보다 개화가 늦어지던 해였다. 어머니는 작년 봄 집 근처 공원에서 찍은 사진을 살펴보며 분명 이번 주쯤에는 피었어야 했다고 중얼거렸다. 이어서 괜히 달력을 들춰 보며 오늘 날짜를 확인했다. 사진 속 날짜와 일치했지만 어째선지 올해는 아직 봉오리조차 불거지지 않았다. 왠지 노크라도 해봐야 하는 게 아닌가 싶었다. 뭐 잊은 거 없냐고. 어디선가 계절을 알려주는 나무는 계절관측목이라고 부른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개나리, 진달래, 매화, 벚꽃 같은. 이 기준에 따르면 아직 봄이 오지 않은 셈이었다. 옆에서 발톱을 깎던 아버지는 아마 까먹은 거 같다고 말하며 히죽였다. 사람도 깜빡깜빡하는데 꽃이라고 다를 게 있겠냐면서. 심드렁하게 이어지는 목소리에 어머니는 아버지를 슬쩍 흘겨봤다. 안 그래도 요새 외출하고 집에 들어올 때 수선 맡긴 바지를 찾아와야 한다거나 식초와 긴장이 떨어졌다는 사실을 더러 잊었던 일이 떠올랐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대수롭지 않게 넘길 수도 있는 일이었지만 어머니는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게 아닌 눈치였다. 몇 번쯤 길을 걷다가도 순간순간 또 뭔갈 잊고 지나쳐 버린 건 없는지 따져 보는 것 같았다. 한참 골몰하다가 겨우 친목회 회비 날짜를 기억해 낼 때도 있었다. 그때부터 사소한 거라도 핸드폰에 따로 메모를 해두고 수시로 빠뜨린 건 없는지 살펴봤다. 요가 교실 수업 신청 날짜나 관리비 납부 마감일과 함께 수리기사 방문 일정까지. 고개를 들다 어머니와 눈이 마주친 아버지는 돌아앉으며 우물댔다. “한 해쯤 그냥 지나가면 뭐 어때서.” 아버지의 생각과는 달리 뉴스에서는 연일 전국 봄꽃 개화 예상 일정을 내보내며 전문가까지 나와 늦어진 원인을 분석했다. 동네 사람들은 환경오염을 들먹이며 사나워진 날씨 탓에 종잡을 수 없는 계절 때문일 거라고 입을 모았다. 꽃도 계절을 헷갈리는 거라고. 개중에는 진짜 꽃이 피지도 않고 봄이 지나가는 게 아닐지 염려하는 이도 많았다. 어머니도 그중 하나였다. 나중에는 꽃을 향해 잊을 것 같으면 알람을 맞춰 두거나 메모하는 습관을 기르라고 조언해 줄 기세였다. 어머니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앞산을 내다보고 매일 지나다니던 화단과 공원을 천천히 돌아봤다. 더러 까치발까지 하고선 주변을 휘둘러보기도 했다. 혹시 진즉 만개한 꽃을 놓친 게 아닌가 싶은 듯했다. 처음에는 조금 서운한 기색이더니 나중에는 아예 울상이 되었다. 어느새 나도 거리를 돌아다니면서 꽃이 필 기미가 보이는지 기웃거렸다. 언뜻 봉오리라도 보이면 사진을 찍어 바로 보내드리려 했지만 좀처럼 찾아볼 수 없었다. 바람까지 서늘하니 날짜와는 상관없이 정말 봄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이러다가 봄을 건너뛰고 곧바로 여름이 되는 게 아닐까,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그즈음 제법 많은 양의 봄비가 내리더니 하루 사이에 기온이 크게 올랐다. 곧 지천으로 사방이 꽃이었다. 지난해 유난히 다닥다닥 모여 있

  • 관리자
  • 2024-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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