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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군의 맛」은 독(毒)이다

  • 작성일 2012-12-11
  • 조회수 855

 

   [내가읽은 올해의 책]

 

 

「교군의 맛」은 독(毒)이다

─ 명지현 장편소설 『교군의 맛』을 읽고

 

채현선

 

  

 

 

   소설 「교군의 맛」은 독(毒)이다.

   은밀하고 강하며 치명적이다. 모든 치명적인 것은 이면의 속성을 포함한다. 위험하면 위험한 만큼 빠져드는 매혹, 설명할 수 없는 그 매혹의 늪을 건너며 경험하게 되는 긴장과 카타르시스라는 달콤한 세계, 이것이 바로 교군의 맛이다.

   교군의 주인인 이 여사(덕은)의 음식들은 사람을 살리기도 하지만 죽이기도 하는 양가적 속성을 가진다. 검은 입술과 검은 혀로 풀어내는 매운맛의 레시피는 곧 우리가 살아가는, 끝내 살아내야 하는 삶의 과정과 닮아 있다. 교군의 맛을 맛본 사람들은 요리에 스며든 매운맛 속에서 하나같이 희로애락의 세계와 맞닥뜨린다. 웃거나 눈물을 흘리다 종국엔 카타르시스 지점에 도달해 무장해제 되는 결말을 맞는다. 그것은 바로 삶의 레시피다. 배가 아프도록 웃어젖히거나 눈물과 콧물을 섞는 그야말로 혼돈의 순간을 끊임없이 반복하며 겪어내는 인간의 삶과 다르지 않다.

   「교군의 맛」의 주요 배경인 ‘교군’은 하나의 왕국이다. 이 왕국에서 매운맛은 여러 색채의 풍경이 되고, 그 풍경은 곧 삶이라는 현실이 된다. 지독한 매운맛이 혀끝에서 심장으로, 온몸으로, 발가락 끝까지 휘돌다 다시 현실로 환원되는 일이 반복된다.

   이 여사가 직접 제조한 ‘교군의 집장’은 다른 매운맛과 차별성을 갖는 데 주요한 역할을 한다. 집장이 들어간 요리를 맞보는 동안엔 삶과 죽음이라는 복잡한 세계가 내면에서 극한 충돌을 일으킨다. 이것은 곧 에로스와 타나토스의 충돌이다. 에로스가 보존하고 통일하려는 충동의 총합, 곧 삶을 진지하게 탐구하고 이를 통해 생의 의욕을 다지는 충동이라면, 죽음의 본능인 타나토스는 파괴의 충동이다. 요컨대 에로스가 통일체를 구성하는 힘이라면 타나토스는 역으로 그것을 해체하고 파괴하는 충동적인 힘인 것이다. 그리고 그것의 극한은 죽음이다. 인간은 내부에 파괴적 충동을 본질적으로 갖추고 있으면서, 반면에 지속적인 생명력을 고양하는 에로스적 충동 역시 갖춘 모순적 존재라고 할 수 있다. 교군의 맛을 본 사람들은 온몸이 해제되는 경험에 중독된 듯 또다시 교군을 찾는다. 생성과 파괴를 경험하면서도 끝내 다시 찾아올 수밖에 없다. 반복의 패턴이다. 삶이라는 과정도 반복으로 이루어진다. 비슷비슷한 하루의 일상이 조금씩 다른 무늬로 되풀이되는 것이다. 반복은 어느 순간 삶의 원동력이라는 힘을 가진다. 작가는 이 반복을 소설 전개 내내 매운맛의 반복묘사로 스며들듯 때로는 몰아치듯 배치해 놓았다. 생성과 소멸이라는 순환의 모티브가 교묘한 전략으로 파고든다.

   소설 속 ‘교군’을 무대로 펼쳐지는 삼대에 걸친 세 여인의 삶은 파란만장하기만 하다. 복잡한 가계도는 세 여인이 겪는 운명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주요 등장인물은 교군의 외손녀인 김이와 교군의 실질적 주인인 이 여사, 김이의 생모이자 죽음으로써 과거의 인물이 된 미란의 역사가 매운맛과 끈끈하게 얽히고 교차되며 전개된다.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한다.

   “어두운 비탈을 오르느라 미란은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라이트를 끈 검은 세단이 멀찌감치 떨어져 천천히 따라오고 있었다.”

   이 시작점에 붙은 소제목은 ‘토끼사냥’이다.

   소설의 시작을 죽음의 그림자로 알린다. 첫 장에서 김이의 생모인 미란은 죽음을 맞는다.

   이어 매운맛의 끝없는 향연과 교군 안과 밖 사람들의 애환이, 음식 재료 또는 독특한 맛을 내는 양념, 더 나아가 삶의 향기를 내는 향신료 같은 세계가 펼쳐진다. 여기에 교군의 외손녀이자 미란의 비밀스러운 인생의 결과물인 ‘김이’와 가지를 스물다섯 상자나 잘못 주문해 별명을 얻은 ‘가지’의 사랑이 미묘한 맛으로 가미된다.

   소설의 가장 큰 축은 교군의 주인인 이 여사다.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여왕이자 ‘교군의 맛’의 창조주다. 자신의 욕망을 숨김없이 드러내고 온전히 이루려는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인물인 이 여사는 검은 혀와 검은 입술을 가졌다. 그녀가 왜 검어질 수밖에 없었는가. 그것은 욕망의 모습이다. 교군의 안주인이 되기까지 겪어내야 했던 일들이, 남편을 자신이 만든 음식으로 죽음의 세계까지 이끌 수밖에 없었던 이야기가, 그녀만의 희로애락이 누군가의 한숨처럼 은밀하게 스며 있다. 살아남는 것, 욕망하는 것, 죽음을 불사하게 만드는 것, 그리고 그 지독한 과정이 그녀만의 집장으로 응축된다. 집장은 교군을 지탱하는 맛이며, 교군을 특별하게 만드는 비법이다.

   집장과 더불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고추술’이다. 집장과는 또 다른 매운맛, 온몸의 근육과 혈관을 노곤하게 풀어헤치는 독의 세계다. 독은 죽음과 맞닿지만, 잘 쓰이면 생명에 숨을 불어넣는 요소로 작용한다. 아이러니다. 교군의 맛이 그렇다.

 

   소설 마지막 장의 소제목은 ‘봄의 풍류를 즐기다’다. 교군의 맛을 이어받는 복선을 안은 인물인 가지와 김이의 열정적인 키스가 마지막 장면으로 등장한다. 매운맛이 혀끝에 닿을 때처럼 짜릿짜릿하다.

   “마당의 불빛은 요란하고, 귀가 따갑게 시끌벅적했지만 방 안에는 달뜬 숨소리 외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이야기는 이렇게 끝난다. 죽음으로 시작한 이야기가 에로틱한 장면으로 끝나다니. 소설 한 권에 우리 삶의 본질인 삶과 죽음의 거대한 세계가 치밀하게 버무려져 있는 것이다.

   “우주의 삼라만상이 전부 내 입으로 인해 열리고 닫힌다.”

   이것이 교군의 안주인인 이 여사의 세계다. 작가는 이런 세계를 거침없는 입담으로, 끝없는 향연과 적당한 농담으로, 슬며시 툭, 건드리듯, 그러나 천천히 치명적이게 풀어 놓았다. 탁월하다. 탁월하다는 것은 사악함의 일면이다. 사악하지 않고서는 이룰 수 없는 영역이다. 악과 선의 경계가 분명하지 않은 것처럼 사악한 것과 사악하지 않은 것의 경계도 분명하지 않다. 다만 그것이 만들어내는 것들이 이처럼 탁월할 수 있다면, 충분히 사악할 필요가 있지 않겠는가.

 

 

   참고문헌

   ─ 조용훈, 『에로스와 타나토스』, 살림

 

 

  《문장웹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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