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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긋불긋 〈문장〉에게

  • 작성일 2012-12-11
  • 조회수 670

 

   [새 문장에 바란다]

 

 

불긋불긋 〈문장〉에게

 

박성준

 

 

 

 

 

 

  등단을 해서도, 올해 시집을 내고 나서도 나에게 늘 따라다니는 수식어가 있다. 청소년 백일장을 휩쓴 문청이었다는 것이다. 나는 늘 이런 수식이 부담스러웠다. 백일장이나 현상공모라는 제한된 형식에서 쓴 시로 내가 해온 문학을 가늠하려는 잣대도 불편하거니와, 마치 백일장에서 ‘수상하려고 시’를 쓰는 ‘꾼’이라는 인상이 그런 수식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한데 등단했을 당시 여러 블로그에 등단작과 고교 때 쓴 백일장 수상 시가 같이 올라올 정도였으니 그 불편은 얼마나 심했을까.

   나는 지금까지 써온 시보다 앞으로 쓸 시가 걱정인데 나를 계속 붙잡고 있는 습작 시절의 그 무용담이 싫었다. 물론 ‘꾼’이 되려고 노력한 적도 있었다. 어떻게 하면 시인이 될 수 있는지 몰랐고 어떤 시가 좋은 시인지 몰랐던 시절(지금도 잘 모른다), 무작정 다작과 대회에서 수상으로만 보상받을 수 있었던 칭찬을 따라다니던 때였다. 비슷한 형식과 비슷한 소재로 손끝에서 찍혀 나오는 시를 그저 시라고 믿었고, 나는 내가 쓰는 시에 쉽게 안주했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나는 ‘시인’ 대신 ‘꾼’이 되어 있었고, 그 덕에 대학입시에 성공할 수도 있었다.

   그나마 그 시절에 변명을 보태자면, 예술고등학교를 다닐 당시 일찍이 독립을 했던 터라 학비 걱정에 늘 시달리고 있었다는 것이다. 시집에서도 언뜻언뜻 밝혔지만 가족사적인 이유 때문에 나는 정신적으로 또 현실적으로 빈곤했고 백일장에서 수상한 상금으로 학비를 내고 급식비를 내며 학교를 어렵게 다녔다. 주말마다 이삿짐센터, 공장 기계 조립, 불판 닦기 등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면서 생활을 하기에는 너무 벅찼고, 그때나 지금이나 부모님의 지원은 전혀 없었다. 그런 와중에 나는 많게는 100만 원씩도 상금으로 수여했던 백일장에서 수상을 해야지만 학업과 생활을 유지할 수 있다고 굳게 믿었던 것이다.

   ‘글틴’과 인연을 맺은 것도 이런 상황에서였다. 내 기억으로는 2005년 12월 말이었다. 대학 입학 통지서를 받아 놓고도 걱정이 많았다. 입학금이 반 정도 모자랐고 이미 크리스마스가 지나서 신춘문예 당선 통보는 다 갔을 무렵, 나는 급하게 대회 준비를 시작했다. 하나는 금연 수기 공모였고, 다른 하나는 제1회 문장 청소년 문학상이었다. 담배를 뻐끔뻐끔 피워 가며 금연수기를 쓰는 내 윤리를 부끄러워하면서, 그래도 등록은 해야겠다고 다시 손끝이 징그럽도록 간지러운 시를 쓰고 있는 내가 싫었다.

   그렇다. 사실 나는 ‘글틴’에 죄지은 게 많은 사람이다. ‘글틴’은 게시판에 꾸준히 글을 올리면서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한 학생들의 커뮤니티였다. 그런데 갑자기 오프라인 백일장 ‘꾼’이었던 내가 온라인에 나타나 12월 30일(?)에 시 세 편을 올려 주 장원을 하고 월 장원을 하고 연말 장원 그러니까 문장 청소년 문학상 2등을 수상했으니, ‘글틴’에서 활동하던 문우들은 내가 얼마나 미웠을까. 나는 그때 등록금 압박에 대한 약간의 안도감과 단 세 편으로도 수상할 수 있다는 통쾌함 비슷한 것을 느꼈지만 종국에는 부끄러웠다. 그래서 아르코미술관에서 시상식이 열렸을 때 수상소감으로 부끄러움을 늘어놓았던 것 같다. 고등학교 3년 동안 무엇 무엇을 하려고 문학을 해왔는데, 이 상을 끝으로 이제 문학으로 무엇을 하려는 생각은 버리겠다고, 나를 좀 돌아보는 시를 쓰겠다고. 뭐 그런 맥락이었다. 물론 나는 대학에 가서도 대학 문학상을 휩쓸었다. 또 변명하자면 학교를 다녀야 했으니까. 그 시절의 오기와 가난과 호기 등등은 ‘대학 문학상’에 그대로 들어 있다. 어쨌든 모두 부끄러운 고백이다.

   새 〈문장〉에게 바란다, 라는 산문 청탁을 받고 고민을 많이 했다. 왜 내게 이런 청탁이 왔을까. 내게 〈문장〉, ‘글틴’이란 무엇일까. 습작기의 흔적이 남아 있는 부끄러운 웹상의 기록들인데 대체 왜 내게 이런 청탁이? 지난달에 한국일보에서 ‘글틴’ 출신 작가들 셋이 모여서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이 산문에 쓴 내용은 그때 했던 말들의 축약이지만 신문기사에는 두 마디만 실렸다. 그때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또 이렇게 풀어 놓고 있자니 머쓱하기만 하다.

   ‘글틴’ 출신인 내가 이제 시인, 작가가 되었다. 문장 라디오를 청취하던 내가 초대작가로 출연을 하고, 웹진에 필진으로 참여해서 두 차례 시를 발표하기도 했다. 새로 개편될 〈문장〉에는 더 다양한 청소년 문학 프로그램이 신설되었으면 좋겠다. 온라인뿐만 아니라 오프라인에서도 ‘글틴’ 후배들을 만나고 소통하는 장이 형성된다면 내가 ‘글틴’에 졌던 빚을 조금이라도 갚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아, 쓰고 나니까 얼굴이 더 불긋불긋.

 

 

   《문장웹진 12월호》

 

 

 

 

 

 

   지금 ‘사이버문학광장(www.munjang.or.kr)’은 홈페이지 개편 작업이 한창 진행입니다. (2013. 1. 10 오픈 예정)

   본 내용은 새 '사이버문학광장'에 대한 다양한 기대의 목소리를 담기 위해 마련했습니다. 올 12월과 내년 1월 두 달에 걸쳐, 각 분야 다양한 필자의 글이 릴레이로 연재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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