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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코

  • 작성일 2013-04-09
  • 조회수 856


십년감수(十年感秀)_시

 

  코코

 

   함기석

 

 

 


   뽈롤롱이 뭐야? 내가 물으면
   뽈롤롱은 뽈롤롱! 코코의 이 말이
   거울은 늑대라는 말인지
   오렌지는 폭탄이라는 말인지 난 모른다
   말은 안개라는 말인지
   말은 가면이라는 말인지
   말은 유령이라는 말인지 난 알 수 없다
   코코 장난치지 말고 좀 진지할 수 없어?
   내가 널 얼마나 사랑하는지 몰라? 다시 물으면

 

   뽈롤롱은 뽈롤롱을 뽈롤롱할 수 없어!
   코코의 이 말장난 같은 말 또한
   우리는 서로를 사랑할 수 없다는 말인지
   만물은 죽음을 피해 갈 수 없다는 말인지
   언어는 의미를 고정할 수 없다는 말인지
   시간은 실체를 파헤칠 수 없다는 말인지
   인간은 우주를 해독할 수 없다는 말인지 알 수 없다
   그래서 난 코코랑 코코에서 코코를 까먹으며

 

   뽈롤롱이 뽈롤롱을 뽈롤롱할 때까지
   뽈롤롱을 뽈롤롱하는 것이다
   그러나 나의 이 말 또한
   사물이 사물을 독살할 때까지
   세계가 세계를 사살할 때까지
   언어가 언어를 암살할 때까지
   사상이 사상을 총살할 때까지
   내가 오토바이를 탄다는 말인지
   내가 높이뛰기를 한다는 말인지
   내가 밤마다 달과 섹스한다는 말인지
   내가 날마다 턱걸이를 5백 개씩 한다는 말인지
   넌 알 수 없다 그러니 너도
   오늘처럼 뽈롤롱한 날엔 뽈롤롱과 함께
   뽈롤롱에 가서 뽈롤롱을 맛있게 먹으며
   뽈롤롱한 시간을 보내면 그만인 것이다

 

— 『뽈랑 공원』(랜덤하우스코리아, 2008)에 수록

 

 

   추천하며


   이제부터 말(言)을 ‘코코’라고 부르기로 한다. 시인이 사랑하는 코코는 일종의 ‘말을 하는 말’이다. “뽈롤롱은 뽈롤롱”. 코코와의 유쾌한 말놀이를 시작한다. 그런데 “뽈롤롱은 뽈롤롱”이라고 하니까 ‘나’는 그것이 “말은 안개라는 말인지/ 말은 가면이라는 말인지/ 말은 유령이라는 말인지” 알 수가 없다. 시인에게 말이란 이를테면 ‘뽈롤롱한’ 것인데, 이는 ‘A는 B다’처럼 그 의미를 명확하게 정의할 수 없다는 뜻이다. 말이라는 기표는 ‘안개’라는 ‘가면’이라는 ‘유령’이라는 특정한 의미에 안착되지 않는다. 말이라는 말을 특정한 의미 속에 가둘 수는 없는 노릇이다. 기표와 그것이 담고 있는 의미는 완전하게 결합하지 못하고 자꾸만 미끄러진다. 기표와 기의의 관계를 의심하라. “언어는 의미를 고정할 수 없다”고 시인은 선언한다.
   그것은 마치 사랑, 죽음, 시간, 우주에 대하여 ‘A는 B다’라고 선명하게 정의할 수 없는 사태와 같다. 의미의 미끄러짐은 마치 죽음을 피해 갈 수 없고 시간의 실체를 파헤칠 수 없는 것처럼 필연적인 것이다. 시 속에서 ‘단일한 말’이라는 것은 일종의 폭력에 가깝다. ‘A=B’의 관계는 말이 담고 있는 무수한 세계를 암살하기 때문이다. 시인은 ‘이것은 이것’이라는 지시, 그 단일한 의미 위에 부과된 무게가 지겹다. 그리하여 이렇게 “코코랑 코코에서 코코를 까먹으며” 놀이를 한다. 말에서 고정된 의미를 빼고 그 무게만큼 자유롭게 말놀이를 한다.
   그렇다면 과연 말놀이의 미학이란 무엇인가. 사물과 세계와 사상을 뽈롤롱하라? 이들은 자신에게 부과된 기왕의 사변들을 모두 뽈롤롱으로 만듦으로써, 이를테면 사물은 사물을 세계는 세계를 사상은 사상을 모조리 파산시킴으로써, 자신의 본질에 더욱 가까워진다. 시의 언어 또한 마찬가지다. 함기석에게 시는 ‘언어를 암살하는 언어’의 세계다. 시의 정체(正體)를 암살함으로써 시는 비로소 시에 가까워지는 것이다. 주체도 그리고 세계도 결코 단일하지 않다. 언어가 어찌 그 분열된 주체와 세계를 단일한 의미로 고정할 수 있겠는가. 언어를 암살하는 말놀이. 그것이 바로 함기석이 시를 사랑하는 방식이다.

 

(문학평론가_고봉준, 김나영, 김영희, 양경언)

 

   《문장웹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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