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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카페 유랑극장 후기]고래의 꿈과‘서로’기다린다는 것에 대하여

  • 작성일 2014-05-14
  • 조회수 853

 

[문학카페 유랑극장 참관후기]

 

 


고래의 꿈과 ‘서로’ 기다린다는 것에 대하여

― 진해 문학관

 

이은선(소설가)

 

 

 

 

    큰 일이 일어났습니다. 사망자로 밝혀진 분들의 못다 한 생이 안타까워 울었고, 실종자로 밝혀진 분들의 무사생환을 기원하며 가슴 졸였습니다. 문학카페 유랑극단 연출진은 회의 끝에 예정된 행사를 제때에 치르기로 결정했지만 안타까운 마음은 금할 길이 없었습니다. 혹시나 하는 생각을 저버리지 못한 채 진해에서의 시간이 지나갔습니다. 오래 전부터 미리 계획된 행사였고, 취소를 한다는 것조차 그리 간단하지 않은 시간이었기에 그 자리를 준비하는 내내 마음이 무거웠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도 그때에는 ‘기다림’이라는 ‘희망’의 말은 할 수 있었습니다. 꼭 돌아올 수 있으리라는 말 외에 다른 말은 상상하기도 싫었습니다.
    모두 살아 돌아올 것이라고, 굳게 믿었습니다.

 

진해_1

 

    정일근 시인은 사랑하는 사람이나, 하루 종일 바다에 나가 고래를 기다려 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어떤 ‘기다림’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고래뿐만이 아니라 ‘사랑’을 기다려 본 자, ‘자유’와 ‘햇빛’을 기다려 본 사람만이 말할 수 있는 잔잔한 어조로 한 문장 한 문장 힘주어 말을 하였지요. 홍윤기 선생님은 정일근 시인의 저작 중에서 미처 구하지 못한 시집 세 권만 빼놓고 모두 읽은 후에 ‘기다림’이라는 주제를 정한 이유에 대하여 말을 건넸고, 정일근 시인은 ‘내 시에 그렇게 기다림이 많느냐’는 재치 있는 답변으로 무대를 지켜주었습니다. 교복을 입은 여고생들이 객석을 가득 메우고 있었습니다. 어쩐지, 교복을 입은 천진난만한 학생들의 웃음만 보아도 마음 한쪽이 내려앉았어요. 행사 내내 홍윤기 선생님, 정일근 선생님도 그들 쪽으로 자꾸 눈을 두는 것이 보였습니다. 그분들도 하나 된 마음으로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 듯했지요.
    천상병과 베케트, 그리고 정일근의, 기다림의 차이와 공통점 그리고 그 기다림의 자세에 대한 홍윤기 식의 해법에 어느덧 모두의 눈과 귀가 집중되었습니다. 단순한 기다림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그리워하면서 기다리는 것, 또 그 기다리는 사람의 어떤 자세에 관하여 홍윤기 선생님은 쉴 새 없이 이야기를 이어 나갔습니다. 다소 불편한 몸에도 불구하고 내색하지 않으시고 누구보다도 밝게 웃으면서 그 시간을 장식해 주었지요. 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사를 하는 동안에도 내내 휴대전화를 손에서 뗄 수가 없었고,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누군가 구조되었다는 ‘낭보’가 전해지기만을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무대에서는 세월호에 관련된 이야기를 하는 것이 굉장히 조심스러웠습니다. 게다가 어디서부터 어떻게 말을 해야 하는지 몰라 더욱 더 말을 삼가던 참에 정일근 시인이 이렇게 말씀을 해주었습니다.

 

    “기다림, 기다림, 하는데 지금 우리는 누구보다도 그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무어라 더 말을 건네야 하는데, 저는 도무지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큰 무대든, 작은 무대든 진행자의 역할이라는 것이 있기 마련이지요. 네, 어느 상황에서든 여유를 잃지 않고 어떤 말이든 되받아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때의 저는 어떤 말도 생각나지 않았고, 그저 눈물만 나왔습니다.

 


누군가를 홀로 기다려보거나,
누군가와 같이 기다려보거나,
기다림을 기다려보거나,
기다림이 사랑으로 바뀐 순간이어도,
사랑이 고래가 되어 바다에서 다시 태어나도,
기다림을 기다리는 이의 어깨는 내려앉지 않을 것입니다.
그 어깨를 빌려서라도,
고래의 무등이라도 타고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여기 있습니다.


 

   하필 날씨도 궂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다림의 자세, 누군가를 오랫동안 기다리면서 겪은 마음의 상태, 그리고 그것을 ‘해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그 이후의 마음 씀씀이에 대하여 정일근 선생님과 홍윤기 선생님의 대화가 이어졌고, 때가 때이니 만큼 오자토크나 농담을 건네는 것도 어려운 일이었기에 그 코너는 과감하게 생략한 채 행사를 마무리하였습니다. 재미로 넣은 코너를 생략하였지만 홍윤기 선생님께서 워낙 재치 있게 답변을 해주셨고, 그곳에 왔던 고등학생들이 무척이나 열정적으로 무대의 이야기에 답변을 해준 까닭에 행사는 잘 끝났습니다.
    잘, 이라는 말이 몸에서 소화되지 않은 채로 남아버렸습니다.
    ‘잘’ 기다린다, ‘잘’ 자라, ‘잘’ 먹었다, ‘잘’ 했다, ‘잘’…있어라,
    ‘잘’… 가거라,
    부디.

 

    다음의 어떤 말들보다, 저는, 제가 부랴부랴 수정하여 읽었던 행사 클로징 멘트를 덧붙이는 것으로 이번 회의 리뷰를 대신하겠습니다. ‘기다림’의 자세에 대하여 진정성 있는 대화를 나누어주신 홍윤기, 정일근 선생님께 진심으로 깊은 감사의 말씀 올립니다. 경남 문학관, 김달진 문학관, 진해 구민회관 관계자 여러분들의 지원이 없었더라면 날도 궂고 마음도 안 좋았던 그 시간이 무척이나 더 고된 시간으로 다가왔을 것입니다. 교복을 입고 와서 도리어 ‘힘내세요.’ ‘우리도 함께 기도하고 있어요.’라는 말을 남겨주었던 창원경일여자고등학교 학생들에게도 깊은 고마움의 말을 전합니다.(부디, 언제 어디서든, 건강해야 해요, 학생들!)

 

클로징 멘트

 

    - 이제 정말 이별할 시간이 다가와 버렸습니다. 아니, 저는 오늘 ‘이별’이라는 말 쓰지 않겠습니다. 우리는 기필코 다시 만나야 합니다. 뒤집어진 세월호의 푸른 뱃머리가 자꾸만 눈에 아른거립니다. 아직은, 포기할 때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 같은 마음으로, 간절하게 그들의 생환을 바라고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 기다리는 것은 분명하고도 자명합니다. ‘살아 있음’입니다. 이것은 세상 그 어떤 힘보다도 더 강렬한 기다림입니다. 단원고 학급 과제 게시판에 ‘꼭 돌아오기, 죽지 말기’라는 말이 쓰여 있습니다. 학생 여러분들은 한시바삐 돌아오셔서 그 게시판에 적힌 과제를 수행하시기 바랍니다. ‘엄마 내가 말 못할 것 같아서 남겨 놓는다. 사랑한다’라는 메시지가 모두의 가슴에 박혀있습니다. 수학여행 끝날 때 다 되었잖아요. 다 같이 기다리고 있으니, 얼른 돌아와서, 사랑한다는 말을 직접 해주세요.
 
    이제부터 우리의 종교는 기적이고, 기다림입니다.
    언제까지라도 당신들을 기다리겠습니다.
 
    지금까지 주최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한국문학관협회 주관 김달진문학관, 경남문학관 기획 및 연출 양연식, 사회 및 조연출 이은선, 대본구성 이소연, 홍보 및 무대감독 손자연, 낭독공연 극단 창세, 홍보물 디자인 정유선, 음향 및 조명감독 김정혁, 이원조, 영상 및 시각디자인 이명진, 동영상 촬영 및 편집 정용택, 행정진행 한정태, 자문 변인숙이었습니다.

진해_2

 

 

 

 

   《문장웹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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