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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현산 특강 후기] 공허의 말단에서 찬란하게

  • 작성일 2014-11-06
  • 조회수 1,626

 

[황현산 특강 후기]

 

 

공허의 말단에서 찬란하게

- 황현산 선생님의 강의를 듣고 난 후 -

 

 

 

황현진

 

 

 

    오래 글을 쓰다 보면 막막한 순간이 찾아올 때가 있다. 그럴 때면 황현산 선생님의 글을 찾아 읽곤 한다. 뜻밖에 황현산 선생님의 강의를 들을 기회가 생겨 일부러 챙겨 들었다. 흔치 않은 기회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어떻게든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 간절함이 글쓰기의 어려움과 닿아 있음을 애써 부인하지 않겠다.
    대학원에 다닐 때, 한 학기 동안 황현산 선생님의 강의를 들었다. 선생님의 말씀을 받아 적느라 당시 내가 들고 다니던 노트는 장마다 빽빽했다. 지금도 그 노트를 종종 펼쳐 보곤 하는데, 노트 귀퉁이엔 물음표들이 가득하다. 선생님의 강의가 내게 어떤 해답을 주는 동시에 나로 하여금 세상에 대한 질문을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때로는 질문 자체가 해답이 된다. 김수영의 시에 대해 황현산 선생님이 내게 던져 준 화두는 이것이었다. 자기를 구제하는 것이 가장 진지한 문학 아닌가?

 

    과거(過去)와 미래(未來)에 통(通)하는 꽃
    견고(堅固)한 꽃이
    공허(空虛)의 말단(末端)에서 마음껏 찬란하게 피어오른다

 

김수영, 「꽃」 부분

 

    김수영의 시집 『달나라의 장난』에 수록된 시다. 푸른 줄기 끝에 한 송이 꽃이 피기까지 지속되는 공허를 이 시는 말하고 있다. 꽃은 줄기와 가지와 뿌리와는 전혀 다른 성질의 것이다. 그것은 줄기의 연장에 매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줄기와 가지와 단절된 상태로, 절단된 면에서 피어난다. 그러므로 꽃이 피기 전까지 그 식물의 존재는 공허할 수밖에 없다. 마치 우리의 삶이 그러한 것과 같다.
    세상과 세상에 속해 있는 나의 일상 역시 공허하다. 분노는 오래 지속되지 않고, 타인의 불행은 나의 피로도를 배가시킨다. 선생님은 강의 중에 이런 말을 했다. 개개의 불행에 대해 동일하게 반응하는 인간이 가장 천박하다. 그 피상성이 나라는 인간 자체를 텅 빈 존재로 몰아가는 것이다.
    텔레비전을 안 본 지 이 년쯤 되었다. 신문 구독을 끊은 지도 그쯤 되었다. 이런저런 뉴스를 스마트폰의 작은 화면으로 대충 눈대중만 한다. 세상을 시끄럽게 하는 최근의 화두들은 대개 SNS를 통해 접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빨리 잊힌다. 어떤 대상과 사건을 대하는 나의 태도도 LTE급으로 타올랐다가 사그라지기 일쑤다. 피상을 넘어서 무감각의 지경으로 나아가고 있는 셈이다. 당연히 사는 게 무료하고 뭔가를 쓰고 읽는 일이 무덤덤해진다. 도저히 꽃을 피울 수 없는 상태에 놓인 것이다.
    꽃의 과거는 뿌리도 아니고 줄기와 잎도 아니라고 했다. 선생님은 꽃의 과거를 최초의 열정이 생겨난 순간이라고 설명했다. 다르게 살고자 마음먹은 최초의 순간, 거기서 꽃의 발아가 시작된다고 말이다. 선생님과 함께 읽은 또 한 편의 시가 있다. 한용운의 시다.

 

    즐겁고 아름다운 일은 양(量)이 많을수록 좋은 것입니다
    그런데 당신의 사랑은 양(量)이 적을수록 좋은가 봐요
    당신의 사랑은 당신과 나와 두 사람의 사이에 있는 것입니다
    사랑의 양(量)을 알려면 당신과 나의 거리(距離)를 측량(測量)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당신과 나의 거리(距離)가 멀면 사랑의 양(量)이 많고 거리(距離)가 가까우면 사랑의 양(量)이 적을 것입니다
    그런데 작은 사랑은 나를 웃기더니 많은 사랑은 나를 울립니다

 

한용운, 「사랑의 측량(測量)」 부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세상의 많은 당신들이 사실 나와 아주 무관한 존재들이라는 사실을. 한용운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사랑은 두 사람 사이의 거리에 있는 것이고, 그렇다면 그 거리가 멀어질수록 사랑 역시 더욱 크게 자라날 것이며 끈끈해질 거라는 믿음이 한용운 시에 깃들어 있다. 그렇다면 다시 말해야 한다. 세상의 많은 당신들이 사실 나와 아주 깊은 인연으로 맺어져 있으며, 우리는 서로의 이름도 나이도 알 수 없지만 결코 서로에게 무관한 존재일 수 없다고 말이다. 선생님은 덧붙여 설명했다. 당신과의 관계를 통해 나의 과거가 만들어지는 것이며, 당신과의 만남을 통해 나의 개인사가 이루어져 가는 것이라고.
    모두의 개인사는 모두의 이야기가 된다. 그것을 서사라고 일컫는다. 그것을 이야기라고 말한다. 그것을 문학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선생님이 지적한 대로 모든 예술의 절반은 이 시대가 지나면 사라질 것들로 이루어져 있다. 꽃은 언젠가 진다. 울음은 언젠가 그친다. 내가 다르게 살려고 마음먹었던 찬란한 한순간도 사라진다. 그 순간을 일컬어 선생님은 실존적 결단이라고 했다. 모든 일은 잊히기 십상이다. 하지만 최초의 순간은 다른 이의 기억 속에 남아 존재한다.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어느 타인에게 그것은 다르게 살고픈 마음에 대한 기억으로 전해질 것이다.
    곰곰 생각해 보면 아무도 나에게 그런 마음을 가르쳐주지 않았다. 내가 다만 나의 마음을 일깨운 것이다. 잊힌 기억을 끄집어내듯이. 아마 그래서였을 것이다. 삶은 아주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나는 가끔 글쓰기가 아주 막막하지만 이 막막함은 매우 당연한 것이다. 세상의 모든 사람이 나와 아주 밀접한 사이라고 생각하면 그 또한 막막한 일이다. 슬픔 또한 많아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의 슬픔, 아니 나의 막막함에 반응하는 사람의 수도 그만큼 많다는 이야기다. 이미 우린 서로를 막연하게나마 감지하며 살고 있지 않은가. 또 한 번 황현산 선생님의 말을 빌리자면, 소식을 전하는 또 하나의 방식으로서 서로에게 침묵하면서 혹은 아주 다른 방식으로 전혀 침묵하지 않으면서.

 

    ▶ 관련 게시글 : [기획특강_동영상]황현산의 문학행 야간특급열차(제1강 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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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현진 (소설가)


계명대 문예창작학과 졸업. 명지대 문예창작 박사 수료.
2011년 문학동네 작가상을 수상하며 등단. 장편소설 『죽을만큼 아프진 않아』가 있음


 

   《문장웹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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