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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현대 시인⑤]노아 키케로(Noah Cicero)

  • 작성일 2015-07-01
  • 조회수 1,308

 

[기획특집]

 

 


미국의 현대 시인 ⑤

노아 키케로 (Noah Cicero)

 

제이크(Jake Levine, 시인)

 

 

 

< 미국의 현대 시인을 소개하며 >

 
    21세기 미국 시에 있어 주요 쟁점은 정서가 미국 문학과 함께 잘려나가고 있더라도 개념시가 정서의 본질에 담고 있는 역할에 중점을 두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 시의 권위자인 칼빈 베디언트(Calvin Bedient)는 보스턴 리뷰지에서, 그들이 쓴 시는 개념시가 비윤리적인 것이라고 교활하게 말하면서 ‘삶의 가치를 무시하라’와 같은 개념 프로젝트에 중점을 두고 있다고 썼다. 개념론자들은 개념시가 표현하는 것은 감정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감정을 대신하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또, 찰스 번스테인(Charles Bernstein)이 말한 것처럼, 개념시는 ‘깊은 뜻을 담고 있는’ 시라고 반박했다. 그러는 동안, 이 논쟁은 미국의 더 젊은 작가들의 상상력을 전달하거나 사로잡는 데 실패했다. 왜 그랬을까? 논쟁은 엘리트적이고, 지적으로 멍한 채로, 백인 중심으로, 역사상 있어왔던 이전 논쟁과 같이 가부장적인 태도가 반복될 뿐만 아니라, 대체적으로 사회와 미국 문화와 시의 관계를 무시한다. 또 미국 대학에서 존경 받는 종신교수들이 시는 거품 속에 존재하는 것이라는 식으로 논쟁을 발전시키는 동안, 젊은 세대의 시인들과 이들의 시는 성장하고 있다. 새로운 세대의 작품은 미국의 문화, 정치, 사회를 대표하는 동시에 정면으로 맞선다. 단지 시학에 관한 분석과 해석에 국한하는 것은 시에 해가 되며, 시를 제약하는 것이다. 이는 패러다임 밖의 시이고 그러므로, 적어도 지금까지는, 구체적인 꼬리표 또는 움직임으로 분류되기를 거부해왔다. 몇 회에 걸쳐 나는 미국의 가장 젊은 세대의 시인 몇 명과 그들의 작품을 한국에 소개하고 그들의 시 세계를 인터뷰해보고자 한다.

 

 

 ◆ [시인 소개] 노아 키케로(Noah Cicero) 시인은?

 

    1980년생인 그는 미국의 소설가이자 시인으로 네바다 주 라스베이거스에 살고 있다. 소설 6권, 시집 한 권, 두 권의 전자책을 집필하였다. 타오 린과 더불어 대체문학 운동[Alternative literature movement(Alt-Lit)] 단체에서 아버지 같은 존재다.

 

 

   ■ 들어가는 말

 

    시의 이론화와 보편적인 미국의 창의적 글쓰기를 비평한 내용의 골자는 너무 많은 작가들이 예술학위과정을 이수하는 데 시간을 쏟고 있으며, 문체와 내용이 똑같다고 할 만큼 흡사한 책과 작품을 쏟아내고 있다는 것이다. 쏟아져 나오는 작품들은 솔직함이나 기개, 진심 어린 감정은 적고 출판업계의 동향에 더 초점을 맞추고 있다. 또한 타인보다 한 발 앞서가려고 필요 이상의 시도를 한다. 그 예로 젊은 작가들이 작품의 내용보다 수상 및 출판 업적으로 다른 작가들과 비교하는 것이다. 창의적인 글쓰기의 대가로 돈벌이가 되는 일자리(창작 교수)가 보장되고, 한 가지 기교로 가르침을 받은 교수가 되려고 하는 것 같다.

 

    분야마다 대학에서 정해 놓은 보직 수가 정해져 있고, 작가들을 재정적으로 지원하는 시상 및 장학금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자동적으로 젊은 작가들 사이에 비정상적인 경쟁심(시기심)이 존재한다. 젊은 작가들은 더 많이 출판해야 한다는 욕구를 느끼는 동시에 더 많이 공부해야 하고, 서로 더 알고 지내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 획일화의 부산물로 창작 작가들 역시 대학 제도의 틀에 맞추도록 학문적 준비를 갖출 필요가 있다(그 제도에 고용되기 위해서). 다시 말하면, 작가들은 라캉(Lacan)과 데리다(Derrida)의 글을 읽고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생각은 창의적인 사고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라캉조차 라캉을 이해하는지 미지수다. 데리다는 분명히 데리다를 이해하지 않았다. 이것은 그들의 주장의 일부다.

 

    게다가 학교의 제도주의 때문에, 그동안 창의적 글쓰기는 더 광범위한 미국 문화의 특징 없는, 그리고 밋밋한 백인 중심주의로 이동해 왔다. 이 때문에 대중의 의견을 탈바꿈하는, 즉 급진적인 관점을 제공하는 문학의 힘이 많이 사라졌다. 전통적으로, 창작력이 풍부한 글은 주변, 즉 가장자리에서부터 나왔다. 노아 키케로는 그곳, 가장자리에 남아 있다. 그는 가공되지 않은 상태다. 예술학 학위도 없고 글쓰기 기법도 공부하지 않았다. 기술혁신 면에서 부족할지라도, 그의 글에는 솔직함과 감정이 깃들어 있다. 그러한 면에서 그는 반(反) 개념 시인이자 반(反) 케네스 골드스미스다. 케네스 골드스미스는 앤디 워홀의 말처럼 “기계가 되기”를 원했던 반면, 노아는 인간이길 원하며, 우리 모두가 인간이기를 원한다. 케네스는 뉴욕현대미술관 『모마』의 계관시인이다. 노아는 일반적으로 주유소의 실직한 계관시인이다. 케네스의 시는 백악관에서 읽히지만, 노아의 시는 지저분한 술집에서 읽히며, 시를 읽고 온 사람들 중에 노아에게 술 한 잔 사줄 수 있는 이는 없다. 케네스의 시는 인간적인 면을 끌어내는 데 있어서 정서적으로 비어 있다. 노아의 시는 온통 정서적인 면으로 휘감겨 있다. 케네스에게 영향을 준 사람은 롤랑 바르트와 수전 손택이다. 노아에게 영향을 준 사람은 현재 고인이 된, 알코올중독 문제와 비통한 삶을 노래한 컨트리 음악의 전설, 조지 존스다.

 

    예술학교의 문학 문화의 특권과 우월감에 대한 반발의 하나로 보이는 대체문학 운동은 2000년도 초반에 그 형태가 구체화되었다. 키케로의 첫 소설, 『인간 전쟁(The Human War)』(푸그 스테이트 프레스, 2003)은 미국이 이라크 전쟁에 가담하고 있을 때, 경제적으로 황폐해진 도시의 권리 속에서 이성을 찾으려고 고군분투하는 한 젊은이를 원초적으로 묘사한 글로 독자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안겨 주었다. 사람들은 노아의 작품에 드러난 활기와 기개를 비트족 운동 안팎에서 활동하는 작가들과 비교했다. 사람들은 헌터 S. 톰슨, 잭 케루악, 앨런 긴즈버그를 좋아한다. 대체문학 운동이 비문학적이라고 비난받고 있지만, 대체문학 운동 내에서 키케로가 주요 인물이긴 해도, 그의 작품은 언제나 확연히 달랐다. 아웃사이더들의 운동에 창조하는 것을 돕긴 했으나, 그는 늘 아웃사이더였다. 우리는 잭 케루악이 쓴 『길 위에서』에 등장하는 이 영웅을 잊어서는 안 된다. 멕시코의 한 병원에 입원했지만, 정신은 깨어 있는, 친구들 때문에 무일푼이 된, 철저히 외로운 바로 이 영웅 말이다. 콘래드의 『암흑의 핵심』에 등장하는 말로처럼, “우리는 꿈을 꾸는 것처럼 산다. ─ 혼자서”. 현재 젊은 작가들의 글보다 키케로의 글에는 고맙게도 21세기에 인터넷 때문에 생겨난 특정한 형태의 고독이 떠오른다. 하지만 최근에 그가 호바트 매거진(Hobart¹ magazine)에서 한 인터뷰에서처럼,

 

   보세요! 거울 속을 들여다보면, 그 속에서 당신의 모든 것을 볼 수 있길 바랍니다. 당신이 겪었던 모든 경험, 당신이 느꼈던 모든 감정, 앞으로 당신에게 일어날 모든 일들,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 맺은 모든 관계 말이에요. 그리고 거울을 들여다볼 때, 가끔씩 많이 불안해지는 이유는 무한히 뛰어오르는 흥미진진한 전환과 모든 것에 손을 뻗고 있는 혼란 속에서 우주 전역에 펼쳐져 있는, 우리가 존재하는 모든 곳을 보기 위해 추가 조치를 취해야 하기 때문이에요.

 

    이리하여 조지 존스의 노랫말을 듣는 것처럼, 비록 우리가 외롭더라도, 우리는 함께 외로울 수 있다.

 

 

 

   ■ 시인과의 인터뷰

 

    - 제이크 리빈(이하 JL) : 적어도 동시대의 미국 작가 씬의 배경으로 볼 때, 당신이 걷고 있는 작가의 길은 다소 독특합니다. 오하이오 주 영스타운 출생이고, 작가가 되기 위해 학교를 다니지 않고, 여러 종류의 막노동을 했어요. 왜 책을 써야겠다고 결심했나요?

    - 노아 키케로(이하 NC) : 열여섯에 글을 쓰기 시작했고, 작가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에 사로잡혔죠. 내게 작가란 여행하고, 술 마시고, 결코 어른이 되지 않는 미친 사람들이었어요. 난 그렇게 되고 싶었어요. 결코 어른이 되고 싶지 않았어요. 2칸짜리 방이 딸린 집에 아내와 아이들과 둘러앉아서 콘 시럽을 먹으며 텔레비전을 보고, 몸무게가 늘고, 날씨 불평을 해대고, 잔디를 깎고, 미니밴을 소유하는 일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았으면 했어요. 난 저 따위 것들을 바라지 않았어요. 내게 글이란 일종의 삶의 방식인데, 글을 쓴다는 건 어른이 되지 않는 것과 다르다는 것을 이젠 알아요. 글을 쓰는 것은 자신의 세계를 창조하는 거예요. 나는 하이킹, 완전한 평화, 독특한 친구들, 여행이라는 나만의 세상을 창조했어요. 정말로 이런 것들이 좋아요.

 

    당작가들이 예술학위를 받으려고 학위 과정을 밟는 것이 걱정되는 이유는, 미국에는 예술학위 과정이 120개 개설되어 있어요. 해마다 7천 명이 졸업한다는 뜻이고, 이는 곧, 창조해 내려고 고군분투하면서 몇 년 동안 독창성과 독창성의 의미를 배우는 7천 명의 사람들에게 미국이 수익을 벌어들이는 행위라고 생각해요. “글 쓰는 방법”이라는 문구를 내걸어서 말이죠. 지난 두 세기의 문학 역사를 들여다보면 5권 이상의 대작을 쓴 작가는 고작 몇 명이었어요. 그리고 보통 그분들이 5권의 대작을 얻기 위해서는 12개의 작품을 써야 했어요. 대작이라 함은 ‘말하고자 하는 바’를 담고 있어야 해요. 예를 들어, 안네 프랑크의 『안네의 일기』나 존 건서의 『죽음이여, 자만하지 말라』에는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바가 분명히 포함돼 있고 그것을 잘 전달하고 있는데, 사람들은 작가들이 전하는 그 메시지를 굉장히 좋아하죠. 작가들은 한 권의 책을 가지는 셈이지만, 모든 사람들이 그 책을 사랑해요. 무라카미를 예로 들어 보죠. 대표작으로 『상실의 시대(1987)』, 『태엽감는 새(1995)』, 『1Q84(2009)』 이렇게 세 권을 꼽을 수 있는데, 엄청난 작가라 할지라도, 가히 천재적이라 할 만큼 대단한 책 한 권을 10년 만에 발표한다는 걸 알 수 있어요. 나한테 이 사실이 의미하는 바는 끊임없이 글을 써야 한다는 건데, ‘다음 작품’이 언제 나올지 모르기 때문이죠. 기막히게 좋은 글을 또다시 써야 할지 모르지만, 뭔가 써질지 모르겠어요.

 

    - JL :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라는 생각은 오스카 와일드가 ‘개성’에 관해 한 말과 비슷한 것 같아요. 개성을 가꾸라는 메시지 말이에요. 당신은 오스카 와일드와 많이 닮은 것 같아요. 오스카가 동성애자이고, 찰랑거리는 보드라운 머리카락을 지닌 것만 빼면요. 당신은 동성애자도 아니고, 머리카락도 찰랑거리지 않으니깐요. 하지만 그는 조지 존스나 타운 반 잔트, 재니스 조플린은 모르죠. 그리고 지금까지 백인의 슬픔에 관해 글을 썼어요. 모든 것이 가능하죠.

    - NC : 고등학교 때 오스카 와일드를 정말 좋아했어요. 그가 가장 멋지다고 생각했죠. 그 후, 랭보라든가 비트닉스, 헌터 S. 톰슨을 알게 되었고, 한 사람의 성격을 극한상황까지 끌고 가는 그 생각이 아주 맘에 들었어요. 덥수룩한 헤어스타일을 한 에즈라 파운드의 사진을 본 기억이 나네요. 그 사진을 보고 “저게 바로 시인이지.”라고 생각했죠. 전 극단적인 성격을 가진 사람들을 정말로 좋아해요. 작가든 운동선수든 관계없어요. 보 잭슨, 테리 브래드쇼를 무진장 좋아하는데, 제가 보기에 이 두 사람은 정말로 진정성이 느껴지고, 평소에도 굉장히 편안한 사람들이에요. 춤을 추거나 우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 ‘남의 이목을 전혀 신경 쓰지 않는’ 사람들을 전 정말로 좋아해요. 노래가 들려오면 장소 불문하고 춤추는 사람들, 식당이나 산 위의 바위같이 생뚱맞은 장소에서 잠을 자는 사람들을 좋아하죠. 바보 같은 행동 속에 아름다움을 엿볼 수 있다고 믿거든요

 

    - JL : 모든 것들이 곧바로 평가되고, 트윗 되고, 작가들은 갈수록 자기 작품을 팔고 홍보하느라 한데 엉켜버린 요즘 같은 시대에, 온라인 평가에 많은 가중치를 두고 있나요? 21세기에 미국인 작가가 되기 위해서는 뚜렷한 소셜미디어가 존재해야 한다고 생각하나요?

    - NC : 누군가 100권 이상의 책을 팔고 싶다면, 자기 홍보를 하는 것이 효과 있다고 생각합니다. 소셜네트워크를 유지하는 데 많은 노고가 든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기본적으로 나는 내가 쓴 글이나 재미난 글만 트윗합니다. 페이스 북에 내가 쓴 글이나 하이킹하는 사진들을 올리고, 사람들에게 내 책에 관해 비평하고 싶다거나 나와 인터뷰하길 원하는지 물으려고 이메일을 보내죠. 가끔 세 시간씩 걸리기도 해요. 호바트 매거진에 인터뷰한 내용은 1만 단어로만 구성되어 있어요. 네, 시간이 걸리긴 하는군요. 하지만 다른 작가들과 교류하는 일은 재미있어요. 전 그런 걸 정말 좋아하거든요. 믿기 힘들 정도로 놀라운 책도 몇 권 알게 되죠. 하지만 작가들은 자기 홍보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고, 그래서 책은 500부도 채 팔지 못해요. 음악가는 소리를 완벽하게 내기 위해 몇 달 동안 연습해야 해요. 그러고는 아프건 아프지 않든 간에 공연을 하러 전 세계를 다녀야 해요. 수많은 음악인들은 안무를 연습해야 하고, 연습이 끝나고 오전 5시에 인터뷰를 한다거나 한밤중에 라디오 방송국에 가야 해요. 운동선수들은 시합에 미친 사람마냥 끊임없이 연습하고 운동해야 하죠. 영화판에 종사하는 사람들(카메라 담당 기사부터 배우까지)은 오전 5시에 일어나서 이상한 장소로 가서 영화를 찍느라 하루 온종일 일해야 해요. 배우들은 완벽한 몸매를 유지하려고 어마무시하게 운동을 하죠. 그리고 작가는 트위터에 복사&붙여넣기를 한 링크를 감정적으로 처리할 순 없어요. 음, 그러면 원고를 팔 가치가 없는 거죠. 게으른 거죠. 난 상관 안 해요.

 

    - JL : 호랑이 화가」라는 소설을 썼는데, 그 주인공은 자신의 진정성 또는 우둔함을 찾을 수 없을 것 같아서 결국 자살했지요. 모든 사회에서 그렇듯이, 사회는 그를 거부했고, 그는 자존감이 없고, 사회가 전부 개소리를 하는 거다, 라든가 옳은 사람은 오직 나뿐이다, 라는 실상에 대항할 수 있는 유머 감각이 없어요.

 

    당신은 1년 동안 한국에 살면서 새로운 소설과 시를 많이 썼는데 한국에 있는 동안 당신에게 어떤 영향이 있었나요?

 

    - NC : 두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당장 말할 수 있어요. 먼저, 나는 미국인이다, 라는 것에서 시작하자면, 한국에 가기 전에 난 평화로운 경관을 자랑하는 곳에서 내내 살았어요. 캐나다와 멕시코는 미국에 위협을 가하지 않았죠. 우리는 ‘심각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미국인들은 그냥 신기술을 꿈꾸며 살았고, 어떤 걱정도 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한국의 상황은 달라요. 수천 년 동안 한국 사람들은 중국, 만주, 몽골, 일본의 침략을 받았고, 현재는 북한이 남한 사람들을 죽이려고 해요. 한국 사람들에게는 쉴 여유가 없었고, 한국인들은 눈만 뜨면 이런 생각을 해야 했죠. “우리는 외세의 압력을 받고 있어. 우리는 막아야 해.” 한국인은 아이를 낳으면, 그 아이에게 이렇게 주입시켜야 해요. “너는 한국인이란다. 우리는 위협을 받고 있다. 영원히 위협을 받을 거야. 우린 근면해야 해. 틈을 보이면 또 다른 놈들이 우릴 쳐부수러 올 거야.” 한국인, 유대인, 티베트인, 흑인들은 한 번도 완전한 휴식을 취할 수 없었죠. 세상은 그들이 그냥 어리석게 있거나 삶을 즐길 수 있게 내버려두지 않았어요. 그들은 매일 눈뜨면 적어도 ‘사람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데 초점을 맞추고 살아야 했어요. 나, 노아 키케로는 미국 오하이오 주에서 태어났고, 나는 노아로 살게끔 허락받았고, 휴식을 취할 수 있게 해줬는데, 우리 민족은 모두 무기를 가지고 있고, 우리 민족은 규칙을 가지고 있고, 우리가 만든 그 규칙은 나같이 생긴 사람들을 위해 만들어졌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한국인, 유대인, 티베트인, 흑인은 무기를 가지고 있지 않고, 규칙을 가지고 있지 않으며, 만들어진 규칙도 그들을 위한 것이 아니에요.

 

    내가 지니고 있는 백색에 관해 배웠어요. 난 특권을 지녔어요. 모국어가 영어인 나라에서 태어났다는 것만으로도, 세계에서 평화로운 지역에서 태어난 것도, 그런 걸 가지고 태어났다는 것만으로 그 자체가 특권인 셈이에요. 한국 사람들은 이런 특권을 가지지 못했어요. 그들은 영어를 배워야 하고, 자기네 땅을 차지하고 싶어 안달이 난 사람들에게 완전히 둘러싸인 나라에서 살아야 해요.

 

    - JL : 당신이 새로 쓴 『조울증을 앓고 있는 카우보이』는 첫 번째 시집이군요. 소설을 쓸 때와 어떤 점이 달랐나요?

    - NC : 내 삶에서 일어나는 일을 소설로 쓸 수가 없었고, 소설을 썼다면, 나와 관계를 맺고 있는 문제의 ‘그 여자’에 관해 이야기해야 했기 때문에 시집으로 냈어요. 그리고 난 욕을 하고 싶지 않았어요. 내 인생에서 바로 그 순간 필요했던 건 ‘그 여자’ 또는 다른 사람 내지는 어떤 대상에 대한 욕설을 퍼붓는 일은 아니었어요. 시에서 욕을 하기란 정말 어려운데, 문제의 그 사람이 독자에 대해 욕을 할 만한 가치가 있는지 납득시킬 수 있는 충분한 증거를 계획할 만큼 단어가 충분치 않거든요.

 

    시를 쓴다는 건 정말이지 구속이 없는 것 같아요. 줄거리를 구상할 필요도 없고, 선형으로 구성되어도 되고 비선형으로 구성되어도 상관없으니까요. 그냥 개념을 끄집어내서 종이에 적고 그 글자를 쳐다보면서 즐기면 되죠. 과한 스트레스를 받을 일이 없지요.

 

    - JL : 미국에선 소설과 시 사이에 일종의 경계를 두는 것마냥 사람들이 소설가와 시인 중에 양자택일을 한다는 점이 참 희한해요. 내가 살았던 나라에서는 대부분 시인도 소설, 드라마, 수필 등을 쓰거든요. 미국인들은 왜 그런다고 생각하세요?

    - NC : 아마도 관심 ‘세계’가 분리되어서 그런 것 같아요. 시의 세계는 예술학교 또는 인터넷 속에서 살고 있지 그밖에 다른 곳에선 살고 있지 않아요. 그리고 ‘시의 세계’에 속한 사람들은 에이전트로 구성된 ‘소설 세계’와는 아무 관련이 없는데, 5대 대형 출판사에서는 시는 거의 출판하지 않고, 가장 최상위에 있는 인디 출판사에서는 시를 출판하긴 해도 극히 일부예요. 영화 대본 작가들은 전부 로스앤젤레스에 살고 있고, 그들 눈에는 돈밖에 안 보여요. 난 단 한 번도 연극 대본을 쓰는 작가랑 마주친 적도, 작가 세계에 입문한 11년 동안 연극 대본이 출판된 적도 없었죠. 누가 연극 대본을 쓰는 사람인지, 어디에 살고 있는지, 연극 대본을 쓰는 사람들이 있긴 한 건지 알 수가 없어요. 소설가/시인과 드라마 작가들 간에 소통이 전혀 없어요.

 

    기본적으로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내가 영화 대본 또는 드라마 대본을 썼다고 할 때, 프로젝트를 끝내기 위해 그 어떤 접촉도 없다는 거예요. 기본적으로 글쓰기 세계의 경제구조 및 지리적 구조가 어떤 식으로든 통합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아마도 한국에서는 서울이 모든 아티스트들을 위한 중심지이고, 사람들은 서로 커피숍이나 술집에서 만나고, 네트워크를 형성하죠. 50년대의 파리는 장르에 관계없이 예술인들이 서로 만나서 예술을 만들어낸 곳이에요. 미국 경제는 전문화에 보답하지요. 시 부문으로 예술학위를 받으면, 그 사람은 시집을 출판하기로 내정되어 있고, 소설 부문으로 예술학위를 받으면 소설을 출판해야 해요. 사람들은 그냥 규칙에 따르는 거죠. 하지만 다른 주제로 다양한 종류의 책을 멋들어지게 쓴 노먼 메일러나 헌터 S. 톰슨 같은 작가들의 세계는 끝이 났어요. 대세가 그것을 따르지 않고, 그 책에 값을 지불하려는 이는 아무도 없어요. 바이스 매거진은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순간을 진짜 작가들에게 맡기는 게 아니라 헌터 S. 톰슨을 읽는 풋내기들에게 맡기거나 모델에게 맡기기 때문에 내용의 질을 전혀 보장할 수 없죠. 그리고 그 글을 볼 수 있는 사람조차 없어요.

 

    글 _ 제이크(Jake Levine, 시인)

 

 

   ■ 노아 키케로의 시

 


  신의 존재에 대한 입증

 

 

난 오리건 주에 살았다
그리고 베스트 테리야키라는
장소를 보았다.

 

정말 믿을 수 없을 만치
이상해 보였다.
백인들이 와서 물소를 전부
죽이고 말살시켰다, 아니면 치누크 족을 전부
좁은 공간으로 옮겨버렸다.

 

그 후, 일본 출신인, 개발 면에서
성과를 거둔 어느 나라에서 온 한 사내 또는 여자는
오리건 주에 오기로 결심했다. 해가 거의 들지 않는
숲, 비가 내리고 내리고 내리는 곳, 그리고
백인들은 전부 수염을 길렀다. 그 수염 때문에
덜 잘생겨 보일지라도.
그리고 그 일본인은 가게를 냈는데,
지구라는 행성에 베스트 테리야키가 생겨났다.

 

바로 그 개념, 발상, 관념,
베스트 테리야키의
현상학적 실제는 내게 입증해 주었다
우주는 진짜로 희한하고, 어떤 일이든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왜냐하면 베스트 테리야키가
북미에서도 서쪽 가장자리에 있는 숲 속에 자리하고 있으니까,
어떤 일이든 일어날 수 있다.

 

 

 

  어찌 되었든 한 가지 방법

 

 

모르겠어요. 가끔은
당신네들이 진짜 사람인지, 나는
알아요 당신네들이 사람이라는 걸, 그러니까
당신들은 네 발로 걷고 있지도 않고
옷을 입고 있지요. (하지만 가끔씩, 당신이
옷을 벗고 있을 때면 인간인지 모르겠고
혼란스러워요 그래서 난
스트립쇼 극장엘 더는 가지 않고, 섹스를 하지도 않아요)

 

모두가 어떻게 사람이 되었을까요?
제 시간에 딱 맞춰 일터에 나타나고,
직장 상사의 명령대로 어쩜 그렇게 잘 실행하죠? 어쩜 그렇게
꼼꼼하게 잘하죠? 크레이그리스트² 에 실린
가공업자에게 전하는 광고문구가 있어요. “우리는
진지한 마음가짐으로 일할 준비가 되어 있고 매일 각자 맡은 일에
책임을 다할 수 있는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농담 아니고 진짜로 그 광고에는 그 회사에서 뭘 생산하는지 언급조차
하지 않았잖아요? 어떻게 사람들은
알지도 못하는 그 일에 책임을 다할 수 있고, 직장을 구하고 나면
책임감이 생기나요?
당신은 어떻게 인간이 되나요?
보통, 난 직장을 구하려고 애쓰기보단
유튜브에서 음악을 듣고, 인간이
되려고 애쓰기보단, 노랫말이 되려고 애를 쓰고,
에이미 와인하우스의 커버 곡 “내일도 날 사랑해 줄 건가요?”의
코드 진행이 되려고 애를 쓰고, 그 노래가 되고 싶고, 기타로
그 곡을 익혀서, 아도비 점토로 만든 현관에서 연주하고,
인간이 아닌 것이 되려고 하고, 가끔은 칼스 주니어 치즈버거
맛이 되려고 애쓰고, 몸엔 나쁘지만, 맛있는
버거가 되고 싶어요.
때론 아미타불 독경과
나바호족의 구호를 듣고, 심지어 오래된
켄터키 구 일반 침례교도는 성가를 부르고, 나는
순수한 감정이 되고 싶은데, 그게 천국으로 인도해 줄지도 모르죠
하지만 내가 노아 키케로인 대신에, 가끔씩 난 소리를 지르고,
통제가 안 되고, 길들여지지 않는데,
뭐가 되고 싶은지 모르기 때문이에요.

 

네바다 주 북쪽에 아주 높은 곳, 워커 강 북미 원주민 보호구역 근처로 올라
타고 있는 차 안에서 가지뿔영양을 볼 때 모르겠어요.
뭐가 되고 싶은지, 영양, 영양을 보고 있는 사람, 영양이
뜯어먹고 있는 풀, 영양을 보면서 사람이 느끼는
감정, 풀을 뜯어 먹으면서 영양이 느끼는
감정, 그래서 난 모든 것이 되려고 애써요, 그러면 알게 되죠
나는 그냥 바람이고, 소용돌이치고 휘몰아치는, 그리고 그걸로 괜찮아요. 그리고
괜찮지 않아요,
그리고 모든 게 스스로 알아질 테고, 어떤 것은 자연히 흘러가고 있지만
절대 해결되진 않아요. 그리고 모든 것, 모든 것, 모든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야자나무 잎사귀를 흔들고 있는 바람, 곤충들이 윙윙대는 소리, 그리고
크레이그리스트를 통해 구직을 하려는 나.

 

 

  조지 존스

 

 

지역대학 옆,
웨스트찰스턴 도서관에 갔다.
지역대학을 쳐다보고는
엑셀과
퀵북스 수강신청을 할까 생각했다.

 

도서관 안으로 들어가서
펄 잼의 베스트 음반을 반납했다. 나는
기분 안정제를 먹고 있는데, 단순한 항불안제를
먹었다. 최근에,
공황발작이 나서 울곤 한다.

 

지금 나는 웨스트찰스턴 도서관 내 높은 곳에 있다
도서관 내에서 아무도 모를 거다
내가 얼마나 외로운지. 그래서 사람들한테 고맙다.

 

음반들을 쭉 훑어보고, 컨트리 음반 앞에
서 있다, 난 거의
움직일 수 없었고, 이 약을 먹은 상태에선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조지 존스를 본다
그는 내 형 같다. 나는
조지 존스의 음반을 집어 든다. 아주 짧은 머리를 하고 있고,
초창기에 선보인 곡이다.
나는 이렇게 말한다. “조지 존스 씨,
당신은 내 형이에요. 진짜 내 형은
내게 말 한 마디 건네지 않는 허세남이랍니다.
하지만 조지 존스 당신은
날 거부한 적이 한 번도 없었죠. 당신은
나의 예수님 같아요. 내가 노크하면 당신은 날 받아 주죠.”

 

종교 섹션으로 걸음을 옮겨
한 번도 들어 본 적 없던 도교에 관한 책을 찾는다. 나는
『유안 다오: 도교의 근원에서 다오를 밝히다』를
집어 든다. 난 조지 존스 음악을 들을 거고,
이어서 다오를 추적한다. 나는
진짜 광인일체가 된다.

 

내가 어떤 기이한 사람을 얻을 수 있을까? 신은?
조지 존스가 “멀리 날아갈 거야”를 리메이크했다는 걸
알고 있었어? 그리고 그리 나쁘진 않아.

 

 

  바로 매지 스타의 노래

 

 

포틀랜드 남동쪽에 자리한 포스터 로드 위에 서면
보슬 보슬 보슬
하늘에서 비가 내리고, 지구는 커다란 그림자를 드리운다

 

노아는 그 거리에 서서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생각했다
“여긴 씨발 오하이오 주 같잖아”

 

그는 숨을 헐떡이며 울기 시작했다
그는 그냥 이 상황이 끝나길 바랐다.
그는 약간 이상한 사내의 아파트에 딸려 있는
자그마한 방으로 이동했다. 그 이상한 사내는
예술을 사랑한다고 말했다. 사내는 ‘보헤미안’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사내는 고양이 두 마리를 키우고 있었는데, 노아가 처음 그 고양이들을
만났을 때는 악마처럼 여기진 않았다.

 

한밤중에, 고양이들은
문을 긁어댔다. 노아는 문 긁는 소리를
듣자마자, 2011년에 좋지 않았던 기억이
잽싸게 떠올랐다. 그녀를 처음 만났을 때,
오하이오 주, 오벌린에 살았던 그녀의 방에서 잠을 자고 있었다.
그녀가 키우던 고양이, 튜나는 늘 밤마다
그녀의 방문을 긁어댔다. 튜나는
방문 아래로 작은 발톱을 집어넣었다.
노아는 고양이 발톱을 내려다보는 걸 좋아했다.

 

하지만 지금,
문을 긁고 있는 고양이는, 노아의 머릿속에
끔찍하고 소란스러운 소음이었다.
다음날 아침, 그는 지옥에서, 끔찍한 지옥에서 깨어났다.
그 지옥에선 반복적으로 노아가 자살을 시도하고 있었다.

 

노아 키케로는 포틀랜드 남동쪽에 자리한 포스터 로드에
서 있었다.

 

포틀랜드는 천국이 아니었던가?
이놈의 악마 같은 고양이들은 어디에서 온 거지?

 

노아는 옷과 염주를
챙겨서 차에
올라타 라스베이거스 쪽으로 몰기 시작했다.

 

캐스캐이드를 지나
한랭 사막으로 차를 몰았다. 딸랑 음반 한 장이 있었다.
친구가 만들어준 여러 음악이 섞여 있는 음반이었다.
그 안에 담겨 있는 유일하게 좋은 노래가 바로
매지 스타의 노래
“너에게로 사라져간다(Fade into You)” 였다.

 

노아는 그 노래를 반복해서 들었다.
그는 형 마이클이 생각났다
켄터키 주에서
오래전에 머리에 총을 쏴서 죽은 형
형은 매지 스타의 노래를 좋아했다.
노아는 마이클이 1페니로 BMG레코드에서 낸 16장의 음반을
주문했던 일이 생각났다.

 

노아는 마음속에서 그 음반들 몇 장을
떠올릴 수 있었고,
둥둥 떠다녔다.
엘튼 존의 베스트 앨범, 포 넌 블론즈,
로드 스튜어트, 에디 머니, 바이올런트 팜므,
그리고 바로 이 매지 스타 앨범.

 

노아는 매지 스타를 찾고 싶었고, 궁금했다
그들이 조울증을 앓고 있는 카우보이들이었는지.

bipolar-cowboy

 

 

소개 및 글 _ 제이크 레빈(Jake Levine, 시인)ame-poem-jake


제이크 레빈은 2010~2011년 리투아니아에서 풀브라이트 장학금을 비롯해 여러 장학금 및 수상을 한 바 있다. 두 권의 소책자(『삭제의 문턱(The Threshold of Erasure, Spork 2010)』과 『빌뉴스 악령(Vilna Dybbuk, Country Music 2014)』)를 저술했다. 그의 시, 번역물, 에세이 등은 보스턴 리뷰지, 루에르니카, HTML자이언트, 아틀라스 리뷰지, 페이퍼 다츠 외 여러 잡지에 실렸다. 그는 리투아니아어로 쓰여진 토마스 스롬바스의 작품, 『갓/씽(God/Thing, Vario Burnos 2011)』을 영어로 번역했으며, 현재 김경주 시집 『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를 정희연과 공동으로 한영 번역 중이다. 현재 서울대학교에서 비교문학 전공 박사과정 중이며, 연세대학교 강사로 재직 중이다. 또한 애리조나 투산 소재의 작은 출판사 스포크 프레스(Spork Press)에서 편집장을 맡고 있다.

 

   《문장웹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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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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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리자
  • 2024-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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