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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작가의 樂취미들] 어떤 고백

  • 작성일 2016-01-05
  • 조회수 790

 

[젊은작가의 樂취미들]

 

 


어떤 고백, 피의 역사

 

 

 

박신수진

 

 

 

    내 몸속에 흐르는 피는 사실 보이지 않는다. 그것은 푸르스름한 색으로만 비쳐질 뿐이다. 피부색의 바탕에 깔려 있는 피의 존재는 내 살을 찢고 나와야지만 나의 눈앞에 드러난다. 내 몸이 상처를 입어 고통을 수반할 때 피는 내 살을 뚫고 나와 눈앞에 흐른다. 생명이란 피의 소유와 다르지 않다. 소유한 피를 밖으로 모두 내보냈을 때 생명을 가진 모든 존재는 죽음을 맞이한다. 그래서 피는 우리의 생명을 주장하는 증거가 된다.

 

    피는,
    언제나 내게 신기하고도 오묘하며 이상한 대상이었다.

 

    그래서 나는 언제 어떤 시작에 의해서건 매료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가장 안전하고 정상적으로 내가 원하는 때 나의 피를 내 눈으로 볼 수 있는 단 하나의 방법에 말이다.

 

    첫 경험은 고등학교 2학년, 영어시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학교로 찾아온 헌혈버스는 강당에 매트리스로 간이침대를 만들었다. 학년별로 헌혈을 원하는 학생들은 강당으로 내려오라는 방송이 흘러나왔다. 첫 경험은 호기심도 봉사정신도 아닌 그저 수업시간에 주어지는 흔치 않은 자유를 만끽하고자 별다른 고민도 없이 치러졌다. 약간의 흥분과 모험심을 앞세워 도착한 강당에는 친절한 웃음을 얼굴에 가득 뿌린 간호사 언니들이 가득했다. 차례대로 똑같은 교복의 여고생들을 살갑게 매트리스에 눕히는 간호사 언니와의 소소한 대화 끝에 내 왼쪽 팔에는 혈관의 피를 통제하기 위한 노란색 고무줄이 묶여졌다.

 

    처음이라 과정과 고통의 분야를 몰랐으므로 팔뚝까지 걷은 교복 소매 바로 아래 고무줄이 끊어질 듯 팽팽하게 매였어도 나는 대수롭지 않게 웃으며 말했다. ‘그런데요, 고무줄이 너무 아파요.’ 나를 따라 웃으며 역시 대수롭지 않게 ‘헌혈 처음이지? 원래 그런 거야.’ 대답한 간호사 언니는 피를 모을 투명한 팩과 투명한 호수 줄을 내 옆에 놓아두고 한눈에도 구멍이 보이는 큰 주사바늘을 꺼냈다. 저 바늘로 내 팔을 찌르는 것보다 고무줄에 묶여 있는 지금 내 팔이 더 아프겠다, 생각하면서도 여전히 눈을 깜박깜박 생글거리고 있던 내게 ‘조금 따끔할 거예요.’라며 간호사 언니가 내 혈관에 바늘을 꽂았다. 그리고 동시에, 바늘이 내 살에 들어오는 것과 정확히 동시에, 내 팔에는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한껏 부풀어 오른 혈관에서 튀어나온 피가 위로 솟구쳤다. 외마디 들숨으로 숨을 멈춘 간호사 언니는 당혹스러움에 눈이 커져 즉시 묶여 있던 고무줄을 풀고 솜뭉치로 흐르는 피를 덮었다. ‘너무 세게 묶였나 보다.’ 격앙된 한마디를 내뱉은 간호사 언니는 빠르게 피를 닦아내고 피로 물든 솜뭉치를 챙겨 내 곁을 떠났다.

 

    처음이라 몰랐던 과정과 처음이라 몰랐던 강도와 처음이라 몰랐던 고통의 분야는 그렇게 솟구치는 피를 처음 목격하는 것으로, 피부를 뚫는 바늘보다 혈관을 통제하는 고무줄이 더 아팠던 것으로, 그리고 호의를 담은 소소한 대화와 웃음 띤 얼굴이 처음 보는 타인을 당황시킬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으로 꽤나 인상적인 기억토막으로 남았다.

 

    그게 처음이다.
    주민등록증이 나와야만 할 수 있었던 새로운 경험의 시작. 누구도 그 경험을 강제할 수 없기 때문에 자발적 의지 없인 획득되지 않는 헌혈의 처음. 그러나 형용할 수 없을 만큼 강렬하고 만족스러운 느낌의 포만감을 가져다준 분류할 수 없는 낯선 체험.

 

    처음이 처음일 수 있는 것은 두 번째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두 번째부터는 그 경험의 역사는 자신의 기록을 써내려가게 된다. 첫 경험이 시작된 것은 그 처음이 두 번째 경험으로 나를 이끌었기 때문이고, 헌혈이 내게 두 번째를 약속할 만큼 매력적인 경험이 된 것은 첫 경험이 만들어냈던 예기치 않은 감각들 때문이다.

 

    터지는 선명한 피의 색감과 내 팔에 닿았던 내 피의 따뜻한 온기, 팔을 죄어 온 외부 압력에 의한 고통과 낯선 타인의 경계 없는 호의. 그 대화, 그 감촉, 그 손길. 고통 뒤에 오는 환희와 살아 있음의 가장 강력한 표지인 피의 목격 그리고 그 피를 소유한 생명으로서 우리는 모두 동등하다는 인류의 이미지가 거대하게 떠오르는 어떤 망상. 그 모든 것이 다소 변태적으로 섞여 들어가 만들어낸 그 순간의 느낌이 내게 인간이라는 생명종의 삶과 죽음에 대해 생각하게 했다.

 

    그래서 두 번째는 부대끼는 일상에서 지쳐 가던 순간에, 사람과 사회의 숨 막히는 옥죄어옴이 마음속을 복잡하게 엉키게 하던 순간에, 불현듯 떠오른 충동으로 이루어졌다. 머리의 끈적거림과 마음의 텁텁함을 밖으로 솟구치게 할 신체의 고통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그때 헌혈의 경험을 간절히 원하는 나를 발견했던 것이다.

 

    그렇게 두 번째는 근처의 헌혈의 집을 검색하고 일부러 멀리 돌아 찾아가 내 손으로 헌혈의 집의 문을 열고 들어가 착하게 순번을 기다려 그날의 나의 신체가 헌혈이 적합한지 검사를 받는 애타는 마음으로 이루어졌다. 오늘 내가 헌혈을 할 수 없으면 어쩌지 하는 전전긍긍함 속에서. 내게 헌혈은 봉사정신도 타인에 대한 사랑도 아닌 지극히 개인적인 의미의 쾌락이다. 정신의 고통을 완화시키는 신체의 고통을 위해 내 살을 뚫고 들어가는 바늘과의 맞닿음을 즐기게 됨으로 이어진. 내 팔에서 흘러나오는 피를 바라보며 생명과 죽음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방해받지 않는 시간을 얻기 위해 일부러 만들어낸.

 

    그 후로 내 헌혈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처음을 기억하는 두 번째가 첫 경험을 표지 삼아 시작을 새겨 넣은 피의 역사.

 

    나는 올해 여름에 헌혈 30회를 채우고 적십자회가 수여하는 헌혈유공장 은장을 받았다. 열여덟에 처음 시작한 헌혈은 12년간 일 년에 두세 번 주기적으로 이어져 이제 32번을 넘겼다. 마흔이 되기 전에 헌혈유공장 금장을 받고 싶다. 10년의 기간이 남았고 18회의 횟수가 남았다. 내 피는 언제나 헌혈에 적합한 농도를 지녀 칭찬받는 착한 피다. 그리고 내 피는 언제나 밖으로 빼낸 만큼 안에서 빠르게 차오르는 살아 있는 피다. 양쪽 팔에는 바늘 자국이 넘치지만 나는 그 자국들을 사랑한다. 그건 내 취미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살아가면서 내 사적인 즐거움이 타인을 위한 선행으로 합치하는 경우는 정말이지 흔치 않다. 나는 피를 뽑는 순간의 만족스러운 체험이 즐겁기 때문에 헌혈을 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내가 뽑은 피는 타인을 위해 쓰일 것이라는 그 의도치 않은 맞닿음이 꽤나 흡족하다는 것을 고백해야만 하겠다. 다소 그 동기와 집착이 기묘하게 비춰질지라도 그러한 개인적 역사와 사연을 쏙 빼고 나는 말하곤 한다. 내게 취미를 물어 오는 사람들에게, 나의 취미는 헌혈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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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번은 은장이다.
    50번은 금장이다.
    100번은 명예의 전당에 오른다.
    헌혈의 세계에서는 말이다.

 

    당연히 내 취미의 목표는 헌혈의 세계, 명예의 전당이다.

 

 


작가소개 / 박신수진 (극작가)

- 경희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졸업. 2004년 도서 『19세, 굼의 체온 39도』 2014년 네 번째 남산희곡페스티벌 <마트로시카 : 인형안의인형>

 

   《문장웹진 2016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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