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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人詩爲(일인시위) ‘청년정신’

  • 작성일 2017-10-01

[기획]

 


포에트리 슬램이란?

시를 쓴 후 이를 슬램의 형태로 표현하는 것.
2차 대전 이후 시인과 래퍼들이 이를 세상을 향한 발화형태로 표현하기 시작했으며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一 人 詩 爲 (일인시위) ‘청년정신’ - Poetic Justice

 

 

 

 

 

수능시험

 

제이크

 

 

1
오늘은
사람이 아닌 것을 배우는 날
목숨으로 시험을 보는 것처럼
다리에서 뛰어내리지
강물 안
빈 답안에 몸을 넣으면
푸르게 부어져. 아니면
아파트 앞 보도블록에
빨갛게 납작 엎드려.

 

수업에 1등이 될 순 없지만
높이뛰기는 이길 수 있지.
수학 3등
영어 4등
언어 8등
자살 1등
엄마, 마침내 내가 자랑스러워?
내가 죽은 후
프로게이머나 유튜브 스타로
다시 태어날 수 있을까?
이 삶에 모든 사람들
나의 등급을 알지
죽음엔 한도가 없어

 

 

2
아파트 옥상
어린 새들이 가득한 상자를
풀어 놓는다
날아가라! 날아가라!
눈 안에 천사를 만들며,
두 팔을 펼치면서.
성형수술을 하기 위해 날아가라
내 아빠의 월급은 형편없어
나랑 결혼하고 싶은 남자는 찾을 수 없지
나는 얼굴이 너무 커. 내 눈은 너무 작아
V-Line 대신 내 얼굴은 Q
S-Line 대신 내 몸은 W다
난 토끼 같은 아이유 표정을 해도
아무도 귀엽다고 생각하지 않아
가슴이 더 커지는 기도를
예수에게 빌어 보지만
아침마다 베개에 떨어진 머리털이 많아
잃어버린 털 둘로 나누고
살았던 날들로 곱셈하고
혀가 하얗게 될 때까지
이 방정식을 영어로 되풀이 한다

 

떡볶이는 영어로 말하면 쌀 케이크란 뜻이야
그런데 영어에선 케이크는 모두가 단맛이야
난 매운 떡볶이 좋아 치즈랑

 

 

3
배고파
늘 배가 고파
죽은 후에
난 못 먹은 떡볶이를 생각하면
눈물이 나
못 먹은 떡볶이도 날 생각하면
눈물이 날까?
떡볶이 눈이 있다면 빨갛고 매울 것 같아
잘린 손목으로 흘러나오는 피도
빨갛고 매웠어.

 

예수는 내 생각과 선택이 좋지 않다는 걸 알아
지옥은 괴롭지만 wifi만 있다면 난 괜찮을 것 같다
걱정하지 마

 

아니면
wifi는 있는데 아무도 wifi 비밀을 알지 못한 곳이 지옥이라면?

 

엄마
신호는 강한 거야
도착하고 와이파이 신호 잘 뜨면 메시지 보낼게
약속해

 


 

The Suneung

 

Jake Levine

 

 

1
Today I am learning how to be a not-person.
Jumping off a bridge is like taking a test
With your entire life.
You fill the blank correctly by inserting your body
In a river and turning it blue
or flattening it to a pancake on the street.
Even though I can’t be first in my class
I can finish first in the high jump.
No. 3 in Math
No 4 in English
No. 8 in Language
No. 1 in Suicide
Mom, finally you will have something I did to be proud of
After I die maybe I can be reborn a pro gramer or a youtube star.
In death I have no limits.
In life everyone knows my rank.

 

 

2
Dropping a box of baby birds
Off of an apartment roof
While screaming “Fly, fly!”
Flapping my arms like making an angel while lying in the snow,
My dad doesn’t make enough money for me to get plastic surgery
So no one will ever want to marry me.
My face is too big. My eyes are ugly.
Instead of a V-line my face is a Q.
Instead of an S-line, my body is a W.
Even if I puff up my cheeks and make a face like a rabbit
No one thinks I’m cute.
I pray to Jesus to make my breasts bigger
But in the morning all I can do
Is count the hairs on my pillow that fell out of my head while I slept.
I divide them by 2
Multiply by the amount of years I have lived
And repeat the whole equation in English
Until my tongue turns white.

 

떡볶이 in English means rice cake, but cake in English
Is sweet. I like 떡복이spicy. With cheese.

 

 

3.
I am hungry.
I am always hungry.
After I die I think of all the 떡볶이I didn’t eat
And it makes me cry.
Maybe the 떡볶이I didn’t eat cries too.
Cries tears, red and spicy.
When I cut my wrists the blood the color of 떡볶이rushes.
Red. Spicy.

 

I know Jesus doesn’t like these thoughts, these choices,
But as long as there is wifi in hell I’ll be okay.

 

Or is hell a place where there is wifi that no one knows the password to?

 

Mom, if the signal is strong
I’ll try and send you a message and check in with you once I get there.
Promise.

 


 

 

 

 

 

 

 

 

새빨간 시

 

 

김상우

 

 

젊은 그때,
왕십리에서 홍대로 가는 전철을 타고 마시러 다녔다

 

플랫폼으로 들어오는 부서지는 사람들
터널 어둠 속에서 불어오는 파도
바람을 가득 씹은 입속에 엉겨 있는 파도의 근육
파도를 물고 있으면 가슴은 정면을 보는 푸른 방파제
아! 입속의 너는 나의 뜨거운 숨이로구나

 

을지로 입구에서 신호 대기하는 너를 본다
문이 닫히고 시청으로 향하는 젊은 2호선
새파란 시작 노트에 빨갛게 끓고 있는 시
2호선 둥근 궤도 위에서 떠돌던 호화롭던 녹색의 밤하늘
아! 시여 우리는 달빛을 향해 이글거리자

 

비가 올 듯 구부정한 홍대 입구
어디론가 가는 8번 출구 사람들

 

 

Crimson Poem

 

 

Kim Sang woo

 

 

When I was young
I would ride the subway from Wangsimni to Hongdae to go out to drink.

 

People breaking apart entering the platform.
A wave sounding in the darkness of the tunnel.
Inside the chewing mouth full of wind, the congealed muscles of the wave.
If you were biting the wave, the heart would face the front of a blue seawall.
Ah! Inside your mouth, my warm breath!

 

You see the sign to wait in line for Euljiro station.
And the door closes, on line 2, so young, heading in the direction of city hall.
A poem that started blue on a note cut to red.
Even on line 2 which is a round track, the night sky of the luxurious green of wandering.
Ah! With poetry we blaze toward the moon!

 

At Hongdae station that is stooped like falling rain
Wherever the people leaving platform 8 are going to
Between cigarette butts and people smoking, that time
Staggers into oblivion.

 

 


 

 

 

 

 

Review

 

김봉현

 

 

김상우의 시는 왠지 동물원 같은 그룹의 노래를 떠오르게 한다. 지하철이 등장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난 그렇게 일차원적인 사람이 아니다. 다시 말해 김상우의 시가 그리는 청년은 ‘2017년의 스무 살’이라는 느낌은 확실히 주지 않는다. 시의 방향성도 명백히 ‘회상’이다. 김상우의 시는 김창기의 노랫말 같기도 하고 아다치 미츠루의 만화에 등장하는 여름 같기도 하다. 그리고 나는 이 시를 읽고 영화 <접속>을 다시 봤다.

 

제이크의 시는 제이크의 시다. 늘 풍자적이고 약간 냉소적이다. 또 일상친화적인 소재를 적절히 잘 활용한다. 이번 시에서 꼽자면 ‘와이파이’ 등이 그렇다. 그는 와이파이로 한 여자 아이의 평범성을 드러낸 뒤 ‘지옥’을 나란히 배치시켜 비극성을 한층 더 드러낸다. 시에서 가장 인상 깊은 구절은 이것이다. “학교 수업에서 1등이 될 순 없지만, 높이뛰기는 전부 다 이길 수 있지 난” 한편, 이번에야말로 동물이 등장하지 않은 최초의 시가 될 수 있었지만 ‘어린 새’나 ‘토끼 같은 표정’ 등의 표현이 등장하며 기대를 무너뜨린다.

 

엠씨메타의 퍼포먼스는 두 곡 모두 지난 회의 <단독생활동물>의 연장선으로 보인다. 랩을 날카롭게 쏘거나 라임을 치열하게 뱉어내기보다는 노래 부르듯, 랩 하듯, 말하듯, 편안하게 작품을 소화한다. 이 두 곡에 한해서 말한다면 그는 마치 래퍼라기보다는 ‘보컬리스트’ 같다.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란 뜻이 아니라 말 그대로 인간의 ‘목소리’를 활용하는 예술가라는 의미이다. 정확한 의도를 전달하기 위해 ‘래퍼’보다 더 중립적인 표현이 필요했다. 지금까지의 곡들에서 엠씨메타가 자주 ‘랩 플레이어’로서의 정체성을 드러냈다면, 이 두 곡에서 그는 ‘목소리의 연주자’에 더 가까운 모습이다. 여기에 우열은 없지만 차이는 있고, 그 차이가 이 ‘일인시위 프로젝트’의 새로운 국면을 만들어내는 것 같기도 하다. 팝콘각.

 

 

 

 

 

 

 

 

 

 

 

참여 / 김상우

이리카페 운영자, 시인, 마음 드러머

 

제이크
참여 / 제이크 레빈

아이스크림 황제

 

MC메타
참여 / MC메타

힙합 음악가. 현재 <금기어> 발표 가리온 3집 준비

 

김봉현
참여 / 김봉현

힙합 저널리스트. 대중음악, 그중에서도 힙합에 관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네이버뮤직, 에스콰이어, 씨네21 등에 글을 쓰고 있고 레진코믹스에서는 힙합 웹툰을 연재하고 있다. <서울힙합영화제>를 주최하고 있으며 김경주 시인, MC 메타와 함께 시와 랩을 잇는 프로젝트 팀<포에틱 저스티스>로 활동 중이다.

 

Lei
참여 / Lei

그래픽 디자이너

 

   《문장웹진 2017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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